안산강의 2006년 12월 08일(고린도후서 1강) 3/3
안산강의 2006년 12월 08일(고린도후서 1강) 3/3
이름 : 조현창(IP:221.151.109.169)
어떤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사람의 모든 것은 아침에 화장실에서 결정된다. 왜냐하면 아침에 변비다, 그러면 하루종일 기쁜 나쁘고, 은혜가 없어요, 그런데 변을 잘 봤다 그러면 하루종일 기분 좋은 겁니다. 굿 모닝하며 난리가 납니다. 결국은 인간이 산다는 것은 감정따라 기분따라 사는 것이지, 말은 주의 뜻 주의 뜻 하지만, 사실을 기분따라 사는 거예요.
애 보세요. 기분 좋으면 자는 거예요. 주의 뜻대로 해도 뭐 소용없어요. 자기가 기분 좋으면 자고 기분 나쁘면 우는 거예요. 여기가 어딘지 상관없어요. 그냥 울어 재끼는 거예요. 그리고 애가 어른이 되잖아요.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어른도 어린이의 본성 그대로 있습니다. 프로이트라는 학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 사람은 자궁을 잊지 못해요. 왜 그러냐? 자궁은 포근하잖아요.
보온되지, 냉방되지, 먹을 거 다 주지. 욥기에 보세요. 차라리 이렇게 밖에 나와서 고생하느니 밖에 안나오고 안에 있었으면 좋았을 걸, 욥기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전도서에 나오는 이야기예요. 성경에. 주의 뜻이 무엇이냐? 넓습니까? 간단합니다. 주님의 보온을 받는 것이 ,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이것이 주의 뜻입니다.
자궁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빼도박도 못해요. 우리가 아무리 동으로 서로 미국으로 달아날 지라도 자궁 속에서 못 달아납니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되요. 엄마의 자리로. 너의 어머니는? 어디 있다? 너의 어머니는 하늘에 있다. 그러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하늘에 가야합니까? 천만에 말씀. 하늘의 어머니께서 하늘에 있지, 지상에는 뭐가 있느냐, 어머니가 주신 약속이 있는 겁니다. 그게 약속의 자녀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무엇을 보여주었나하면 아브라함이 ‘내 자식 이삭은 절대로 내 힘으로 낳지 않았습니다’라는 말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이삭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의 조상이죠? 믿음의 조상이죠. 믿음의 조상이 딴게 아니예요. 자기 믿음이 좋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기 믿음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예요. 뭐냐하면 내 뜻이 아닌데 자식이 생겼다 라는 것을 증거 할때 그것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죽었다가, 죄를 위해 피흘리고 부활한 것 이것은 내 뜻이 아니야, 라는 것이 믿음이예요. 주의 뜻으로 죽었다가 부활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자기의 잘 잘못을 자기 속에서 끄집어 냈어요.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끄집어내는 것이 우리는 24시간 주특기이지만 그거 하나님께서 안 봅니다.
이번에는 나쁜 것 억제하고 좋은 것 끄집어 내는 것 아예 보지도 않아요. 그걸 모색하는 행위는 우리도 한 번 넓은 길을 가보자 음흉한 속셈을 드러내는 겁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진다는 것. 이거 우리가 지킵니까 못 지킵니까? 지킬려고 하지 마세요. 안 지켜도 되요. 주께서 댐 댐 넘어오면 물길이 지키게 하십니다. 살 소망 끊어지게 하십니다.
요새 주부들요 하루에서 서너번씩 콱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결혼전에는 이레이레 하면 남편이 내 마음대로 되리라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한 10년 정도 지나면, 아니 몇 년만 지나도 남편이란 인간은 도무지 내 마음대로 될 자가 아니구나 라는 걸 알아요.
믿습니까? ^^ (아멘) ^^ . 이 남편이란 이 작자는 도대체 내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고 날 이용할 뿐이지 자기 편한 대로만 살고 아쉬운 것 어려운 것 있으면 전부 나한테 미루고. 좋은 것 있으면 전부 지 잘란 척 다하고 생색 다 내고 전부다 자기는 하고 싶으대로 다하고 어렵다 싶으면 와가지고 징징대고 다 또 기붙고... 여기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간 만들려고 붙잡으려 붙잡으려 해도 나중에 한 10년 지나면 아예 포기해 버려요. 포기하면 이제 나이 50 넘으면 지가 지 풀에 죽어가지고 이뻐해줘 하면서 기 들어오고. 그때까지는 진작 지 마음대로 다 하고. 차 열 번씩 바꾸고 자기 하고 싶은데로 다하고.
그러니까 아내가 가정을 위해서 충성하는 충성도를 남편은 도저히 이해를 안 해주는 거예요. 반이라도 이해를 안 해줘요. 아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마음 고생하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해줘요. 내가 니가? 다 이해하게. 우짜란 말이고. 나도 힘들다. 이런 소리나 하죠.
그러면 아내가 이래하죠. ‘그럼 부부가 뭔데? 서로 이해해 줘야지 그것도 이해 안 해 주면 그게 뭔 부부고?’ 하면, ‘나한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마라. 나는 그것밖에 안되는 인간이다’. 하죠. ^^ ‘그럼 책임 회피가?’ ‘책임회피라도 할 수 없다. 난 몸이 두개가 아니니까 나는 원래부터 그거 밖에 못하는 인간이다’.
‘결혼 전에는 그 이야기를 왜 안했느냐?’ ‘나도 그럴 줄은 몰랐지’. ^^ ‘나도 그런 인간인 줄 몰랐지’. ‘아이고 이야기 고만하자’. ‘자자’. ^^ 집안에 대화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이 ^^ 이럴 때 비록 집에 10억이 있고 애가 공부를 잘 해도 뭔가 내가 기대하는 것 하나 안되면 그다음에 뭐냐 살 소망을 잃어버립니다. 죽고 싶어요. 이게 주부 우울증입니다.
왜 처녀 때 몸매를 유지하지 않았으냐, 왜 중부지방(배살)에 지방이 끼었느냐 우울증에 걸려요. 내가 이런 소박한, 큰 욕심이 아니고, 작은 욕심인데 왜 내 뜻대로 안되느냐 허탈감 회의감 이게 우울증이 됩니다. 우울증이 뭐냐하면 잠재적인 자살 충동 아닙니까? 우울증은 잠재적이 자살 충동이예요.
죽기 적당한 것을 못 찾아서 못 죽었지... 죽기 정당한 것, 분위기 좋은 데를 못찾아서 못 죽었지. 왜냐하면 지금은 한강 물이 차가와서 못 들어가잖아요. 봄 되어야 따듯해 지고, 지금 얼음이 있어서 아프잖아요. 그래서 못 죽잖아요.
이런 충동 이게 뭐냐 살 소망이 없는 거예요. 불신자든 신자든 이게 생기는데... 놀랍게도 살 소망이 끊어질 때 그때 그리스도가 짠 하고 나타나요. 잠시 나타났다 사라져요. 이제 내가 너의 행위를 받지 않고 나의 십자가 행위로 너를 일방적으로 피로서 구원하는 이유를 아느냐?
너는 기껏 내가 아무리 사랑해봤자 죽겠습니다 하고 나자빠지는, 많은 사랑과 은혜를 줘 봤자 감사할 줄은 아예 모르고 맨날 하는 것이 하나님 이레 나오면 나 죽을랍니다 하고 이렇게 시위하고 반항하는 그런 행세밖에 할 줄 모르는게 우리예요.
그런데 거기에 누가 찾아와서 이제 너의 주제를 아는구나 했을때 그 관계를 믿음이라 합니다. 아 믿음은 철저하게 나의 본성을 까발리는구나. 그래서 뭐 이렇게 부족하니까 그냥 마음 맞추어서 사세요 하는 것은 불신자에게 하는 (결혼식) 주례고, 신자한테는 원래 마음 안 맞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소망을 그리스도에 두세요 주례합니다. ^^
자, 그 다음에 12절.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밀려오듯이 너희들이 원치 않지만 내가 너희에게 찾아가는 겁니다. 고린도교회에 또 찾아가는 겁니다. 이게 뭐냐? 너희들이 초청한 게 아니고 사도바울 뒤에서 떠미는 거예요. 누가? 주님이. 누굴 만나라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만나라고. 떠미는 거예요.
제가 여기 안산에 오는 것도 떠미는 것 같아요. 주인 없는 집에서 뭐하는 고^^ 처음 안산 성경공부 하자 할 때 나는 한 세 번 갈까 했어요. 세 번까지는 해 주자 이랬어요. 하도 성의가 없는 것 같아서. 지금 세 번이 뭡니까 열 세번도 넘었어요.^^ 떠미는 것 같아요. 이게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불신 세계에서는 아무리 직장생활하고 사회생활해도 이런 이야기를 옆에서 누가 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심지어 교회에 가도 안해 줘요. 돈내라 예배당 짓게 돈내라 그 소리 밖에 안해요. 돈 안내면 저부 받는다. 우리교회 돈 안내서 저주받은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 매주 이야기하고. 돈 내고 복 받은 사람 많다. 하고.
돈 내나 안내나 그것도 아무 의미 없고, 지금 누가 여러분들을 떠미십니다라는 말을 누가 해주느냐 말이죠, 누가. 사도바울이 해 줘요. 사도바울이. 너희에게 다가감은 육체의 지혜대로 아니하고 통밥 굴리는 게 아니고 주의 은혜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런데 만나는데 누가 방해하느냐? 나중에 나옵니다. 마귀가 못가도록 방해해요. 마귀가 방해할 만하죠. 이런 사도바울이 복음전해서 그들이 구원받으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여기 19절 봅시다.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님은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니고 예 대로 실제로 일을 하셔서 지금 사도바울이 너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잖아. 이 편지를 내가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떠 미시는 분이 계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자기가 택한 백성을 기어이 건지시는데 어떤 지수(?)도 없고, 어떤 중지도 없고, 어떤 실패도 없고, 우리는 맨날 실패해도, 주님께서는 계속에서 우리에게 오직 주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의 용서하심으로 이미 너희는 구원되었어 우리에게 통보해 주시려고 그렇게 애를 쓰시는 거예요.
20절에 보면,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히야 이 말씀 좋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킵니까? 노(No). 우리가 실천합니까? 노(No). 그러면 우리 말고 누가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료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는 적용 대상일 뿐이예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 적용대상이 되니까 우리는 구원 ‘될 자’ 로서 적용되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야만 하는 자’로 적용되고. 아 이 말이 좀 어렵네요. 좀 쉽게 해 봅시다. 중요한데 그냥 못 지나가겠어요. 봅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실 때 여기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자기 죄 때문에 지진 않았을 거예요. 왜? 자기는 죄가 없으니까.
그러면 누구 죄 때문에? '자신이 구원할 자'의 죄 때문에 십자가 지셨잖아요. 그러면 이 십자가에 죽을 때 누구와 함께 죽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20절에 보면, 우리 구원 받은자, 하죠.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심도 없고 도망치죠. 주님께서 도망치는 것을 붙잡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뭐냐하면, 이 십자가가 예수님 혼자의 십자가가 아니고 우리와 대동(帶同)된, 데리고 다니시는 십자가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치지 못하는 거예요.
엄마가 애하고 시장에 가보세요. 애가 시장에서 도망치더라도 엄마는 애를 놓을 수가 없죠. 왜? 엄마의 임무가 뭡니까. 자기 애를 기어이 집까지 귀환시키는 것 아닙니까? 엄마가 애를 놓치지 않고 집까지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것이 임무라면, 애가 도망간다고 에이 그 애는 말도 안들어 놔 둬 버려. 이런 엄마는 없잖아요.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한 자로, 약속이 뭐가 된다고요? 예가 된다. 이 말은 우리가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치지 못하는 이유가 자기가 택한 백성을 안 놓치는데 성공했다 이말입니다. 십자가 믿을 때 뭘 믿어야 되요? 주께서는 안 놓치겠구나 하는 것 까지 믿어줘야 십자가 믿는 것이죠.
주님 자신이 이미 예가 된 거예요. 완료가 된 겁니다. 우리는 못 빠져나와요. 빠져나오는 주님의 십자가라면 반토막 십자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자기만 구원 받으면 안되잖아요. 죄 용서가 성립안되죠. 원래 자기는 죄가 없으신 분이니까.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 피를 흘렸다면 이 피가 피답게 유효하려면 우리는 도망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우리가 예가 되는 거예요. 함께 예가 되는 거예요.
그것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위로받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우리에게 넘친다는 말입니다. (집 주인이 왔으니까 이제 끝마쳐도 되겠다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죠.
21절 봅시다.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그리스도안에서 어떻게 한다? 견고케 한다. 아~ 참. 견고. 이게 칼빈의 견인이라는 거예요. 견고케 한다. 내빼지(도망가지)도 못하게 만들어요. 우리 힘으로 못 내빼요. 우리가 내빼고 싶어도 우리 힘으로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주께서 견고케하고 예하고 아멘했기 때문에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지금 우리는 고린도후서 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고린도 후서까지 이 만큼 다 했어요^^)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22절에 보세요.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지금 우리에게 뭘 주죠? 뭘 쳤다고요? 인. 도장. 도장은 서류에 아무리 내용을 써도 뒤에 뭐가 없으면 무효입니까? 도장이 없으면 부도난 거예요. 거짓 서류란 말이예요.
돈에 뭐가 있습니까? 한국은행장 도장이 있죠. 그 도장이 없으면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십자가라는 것은 홀로 십자가가 아니고 우리 죄 용서받을 자기 백성을 같이 끌어안고 가는 십자가죠. 이것이 이미 모든 약속이 예수님 안에서 완료가 되었다. 예가 되었잖아요. 예가 되었음을 그러니까 예수님만 계신 것이 아니고 예수님으로부터 못 빠져나갈 택한 백성도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면 그것이 우리안에 아멘이 된다면 이것은 바로 도장을, 주님께서 이 사람한테는 너는 십자가로서 이미 구원 받았어 하고, 도장을 팍 새겨 찍어 놓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도장이 없는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을 볼까요.
(계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얼 하십니까? 무슨 일을 하시죠. 무슨 일을 하십니까? 이마에다 뭘 박아요? 인. 하나님의 도장을 찍죠. 그 도장 우리가 파서 우리가 찍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건 자기가 자기 믿는 거잖아요. 제가 아까 우리가 우리 믿는 믿음은 믿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것은 다 헛 수고예요. 허망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이마에 박혀 버리면 이것은 빼도 박도 못해요. 내가 물로 세수한다고 지워지는게 아닙니다. 이마에 찍힌 도장이 세수한다고 지워지는게 아니예요. 그 확정된 운명을 우리가 수정이 안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해도 수정이 안되요.
도장 찍어 놔버리면, 옛날에 미국에 노예시장 때 노예 엉덩이에다 도장을 찍었어요. 소유권을 표시한거죠. 네 몸은 너의 소유가 아니라 도장 찍은 사람의 소유다, 란 말이죠. 이런 식으로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버립니다. 그 도장을 오늘 고린도후서에서 뭐라 합니까? 그걸 두자로 성령.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성령으로 도장을 찍었다. 성령이 있다 이 말은 도장이 있다. 이 성령은 고린도전서 2장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한 것을 드러내는 성령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한 것이 뭐라 했죠? 십자가죠. 십자가.
십자가를 안다는 것이 곧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사람의 지혜로 알지 못하고, 우리 사람의 지혜로는 (십자가가) 어리석게 보이죠. 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되신 성령이 와야 깨닫게 되는 거죠. 요한복음에도 나옵니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것을 깨닫게 하고 깨닫게 되는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십자가가 뭔지를 압니다. 십자가가 뭐냐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자기 택한 백성의 죄를 이미 해결 조치를 했다라는, 이미 완료했다, 라는 것을 믿어지게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죠. 이 것을 두자로 사랑이라고 하거든요. 사랑.
사랑은 여기 있나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것이 사랑이다 했죠. 그래서 사랑으로 인치심입니다. 사랑으로 확증했다. 그래서 주께서는 사랑으로 우리를 이야기합니다. 흔히 법적인 칭의 이렇게 하는데 다 거짓말입니다. 사랑으로 이야기 합니다. 마지막 계명이 뭡니까? 사랑이예요.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사랑으로 하는 거예요.
이 사랑의 특징은 사랑해주신 분의 사랑만 남고 사랑받은 자의 사랑은 여기 해당이 안됩니다. (주인장? 먼저 일이 있어 나가면서? 모임 끝나면 잠그시고 열쇠는 수퍼에 맡겨주세요. 알았어요. 수퍼 없었으면 오늘 큰 일 날 뻔 했네요. ^^ 하나님의 뜻이예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예를 이루는...)
요한복음 17장을 봅시다.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만민을 다스리는 뭡니까? 권세를 주셨다. 수퍼예요. 어떤 사람은 수퍼마켓 하게하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뭐가 되게 하시고... 이게 다 택한 백성에게 영생주기 위해서 모든 배치를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자신을 믿지 말고. 우리가 가진 재산이나 자식 이것을 믿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 지신 그분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을 짧은 순간이지만, 2.2초이지만,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하시는 겁니다. 도장 찍은 것을 다시 보게 합니다. 수시로 하나님 도장이 어디 있더라 다시 보고, 웃고, 다시보고, 웃고, 다시 꺼내서 다시 보고...
아하 십자가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를 꾀더냐 하는 말씀대로 아, 십자가로 다 이루었구나, 용서받았구나, 구원받았구나, 주께서 나를 인도하시는구나 좁은 길로. 하고 다시보고 기뻐하고. 또 끄집어 내고. 그런 식으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신 것을 기억나게 한다고 요한복음 16장에 나와있습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성령께서는 오직 예수님이 하신 것만 기억나요. 우리가 하는 것은 기억이 안나요. 우리가 하는 것은 맨날 자기 자랑밖에 안하니까. 예수님이 과거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무슨 일을 했는가를 늘상 기억나게 하시는 일은 성령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가 못해요.
우리는 내 자랑 밖에 못해요. 무슨 고생했네, 그때 복음전한다고 엎어졌네 자빠졌네, 그런 자기 자랑 밖에 안해요. 십자가 예수 전한다고 그게 자기 구원받는 게 아니잖아요. 그죠? 그리고 자기 죄 짓는 거 그 죄 지었다고 구원받는 거 아니잖아요. 의롭게 했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맨날 일상적인 자기 생각밖에 안하는데 그 속을 뚫고 십자가가 뭐냐를 회상하고 깨닫게 하는 일, 그것은 바로 성령께서 인 받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입니다.
- 끝 -
(다음 모임에 대한 상의)
아~ 다음이 1월달이거든요. 1월달에 12일(금)인데 어떻게 할까요? 8,9,10은 수련회고...12일이 다음 달 모임인데 할까요? 서울은요? 서울하고 관계없이... 서울 하든 말든... 목사님 너무 힘드시지 않을까요? 그것도 힘들면 못 오지만 만약 힘 안든다면 와야 할 것 아닙니까. ^^ 왜냐하면 우리 안산모임이 자주 바쁘다고 들, 자주 못 온다고 하니까, 목사님 오늘도 바쁘잖아요. 바쁘니까 바쁘기 때문에 법대로 하자 그러면 안 되고, 법이 아니라 사랑이잖아요. ..... 그래서 ???(해야죠?) 해야 됩니까? 법대로? ^^ 그 때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는 인원수도 많았고 한 번 쉬어도 따라서 하시겠지 했는데, 그게 안되면 너무 기간이 2개월치 너무 건너뛴다 말이죠.
이번에 8,9,10일 대전에서 수련회 하는데, 참석하시면 좋은데, 안산에서 가깝잖아요. 오시면 좋겠는데. 호텔에서. 회비 7만원. 형편상 어려워 못 오면 할 수 없는데 오늘 사모님도 바빠서 못 오시고 하는데...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 우리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예수님 보냈던 일 자체를 생각해 볼 때, 왜 주님께서 보내셨고, 왜 십자가 지게하셨고, 왜 사흘만에 부활하시키시고, 왜 성령께서 오게 하셨는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인 줄 깨달았사오니, 이제는 그 사랑에 사랑으로 보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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