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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급고...!!자유게시판[신학]

급고...!!

이름 : 최종훈(IP:121.151.0.245)

'성경신학2'의 "재판 본"을, 읽어 나가는 중에,

제책 과정 중에 생긴 듯 한

작은(?) 문제가 발생하였음을 급히 알려드립니다!!

337쪽이 빠진 채, 339쪽이 두번 씩이나 나오며,

340쪽이 빠진 채, 338쪽이 두번씩이나 나오는 오류가 발견 되었구먼요!

일단은,

빠진 두 쪽을 여기에 올려 놓겠습니다.

복사 하여 끼워 넣으셔서 계속 읽도록 하시고,

인쇄소엔 지금 곧 왠 영문인지를 문의 토록 해 볼랍니더!!

( 실수 란걸,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혹시...!!)

그럼 ...... !!,

추신; 지금 막 '카피'하여 넣고 보니, 원래 그대로 가 아니네요

거기에다 원래가 '컴맹 세대' 인 터에 다가

당연히 실력이 모자라서 인지라......

그냥 내용을 살필 수 있음에만 만족을 하셔야 겠습니다!!

(337쪽 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는 구속사를 완성시켜 건지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 그리스도 중심으로 다 이루었다는데 대한 다른 차원의 선포이다. 예수님은 '때'를 성취하신 분이 아니라, '말씀'을 성취하신 분이다. 단지 실시하신 특정 '때'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특정 '때'를 기다리시기는 했지만, 그 특정 '때'를 위해서 오신 분은 아니다. 이처럼 오스카 쿨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나 존재 보다 구속사라는 시간적 요소를 절대적 계시의 대용으로 삼고자 했다. 이는 유대교적인 히브리인의 사고의 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 흔히 고대 문화에는 두 대조적인 인식 사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헬라)적 사유가 그것인데,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 쪽 사유, 즉 히브리적 사유를 계시 전달에 적합하다고 여겨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히브리적 사유 쪽을 분석해 보면 하나님의 본래의 취지가 보다 확연해 진다는 것이다. 토를라이프 보만 교수는 그의 저서,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에서 히브리 사유적 시간관의 특징은 궁극적인 목적을 지향하는데 있다고 했다. 과연 이러한 인식론이 계시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까? 아니면 장애가 되었을까? 성경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 이다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마 22:41-46) 바리새인들의 말씀 해석은 시간의 흐름에 준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의 틀은 예수님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궁극적 목적을 지향하는 역사 인식이 도리어 메시야 앞에서 좌초된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죄라고 규정짓고 부정해 버리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히브리적 사유든 아니면 헬라적 사유든 상관없이 말이다. 제임스 바 교수는 원어 분석이라든지 언어 그 자체에 무슨 비결이라도 들어 있는 온갖 해법을 거기에다 기대를 거는 것에 대해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기껏 해봐야 연못에 자기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이 자기의 선입견만 되찾아 오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적 직선 론과 희랍적 순환론간의 엄격한 구별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한다. 게임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유명한 구절처럼 "맨 바탕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살펴보라!"에 충실하면 인간의 시간관념 속에는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외에도 '아이온'(시대)과 '플레로마'(특정한 질의 때의 충만) 같은 것들도 있다.

물론 이런 용어들의 사용은 일종의 그 시대의 용어 사용에 있어 서로들 언어 규칙에 존중하겠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 이런 게임은 단순히 즐기기 위함이 아니라 모호한 문화적 현상들을 보아 합리적으로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도 있고 물리적 시간성과 조화를 위한 목적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미래 시대에 대해서 확신 있는 내용으로 확장시켜 채우자는 데 있다. 인간은 생태적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아무리 지금 형편이 엉망이라 할지라도 구원 될 미래를 내다보는데 생의 전부를 건다. 따라서 의미의 충만과 완성의 때, 즉 '플레로마'를 필요로 한다. 꼭 성경이나 신학이 아니더라도 모든 문학이 이런 성향을 담고 있다. 플롯(줄거리)에 의해서 과거 및 중간의 시점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래에 대한 인간들의 물릴 줄 모르는 관심 탓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똑-딱'이라는 시간성으로 이어지는 인간성이 동일한 인간성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과거의 그 인간과, 현재의 그 인간과, 미래의 그 인간이 그 어떤 변화를 보이지 않고 모든 면에 있어 연속적인 동일인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340쪽 분)

3.구속사 만들기와 인간 '행함'의 자리

인간이 범죄 한 후에 모든 면에 있어 인간은 하나님을 공격한다. 하나님의 율례나 법도나 말씀이나 언약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홀로 달성해 내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자들이 아니라 거침없이 대드는 존재로 이미 달라져 있었다. 이런 바벨탑 건립으로 처음 드러난 성향은 '자기 이름 내기'이다.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자기 이름 내기'란 모든 의미성을 인간 존재성에 두겠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규정은 어떻게 하면 인간의 존재함을 더 높이 다질 수 있느냐?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의 자존심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인간들의 자존심을 부수는 식으로 만물이 움직인다는 사실만을 현실로 보신다.

지금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셔서 모든 피조물에 대한 권리 행세를 마음껏 하신다. 더 이상의 현실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이름 내기' 성향은 '구속사→역사→시간→인간→존재' 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내막을 쏟아내고 있다. 어쨌든 자기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이 점을 현실 규정의 핵심으로 간주해 달라고 신에게 항변할 참이다. 인간의 존재성을 배제하고 하나님 쪽에서 구원사역을 시도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의 영광을 위하든, 무엇을 하든, 서로의 존재를 피차 인정해주시면서 그로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해 주십사 하는 것이다. 인간이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께서 인간들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서 그 인간을 통해서 구원이 성취되도록 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성이 의미를 갖추는 식으로 일을 하시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앙은 나의 존재의 증명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인간 자존심 깨기도 '구속사→역사→시간→인간→존재' 라는 과정을 뒤덮으면서 따라오고 있다. 존재의 궁극적 구원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아니다. 역사 속에 등장했다 점멸된 모든 존재의 재등장과 보존성은 구원의 내용이 아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하고 사라지게 한다. 이는 시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세계는 인간이 봤을 때 부정성(否定性)을 지니고 있음을 시간은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은 자기 구원에 앞서 '시간 구원'에 들어간다. 즉, 시간 속에 살아진 것을 수집하여 구속사를 만들어 놓고 그것으로 '시간 구원'으로 삼게 되며 시간 안에 있는 부정성을 제거함으로서 모든 시간이 인간에게로 의미 있는 것으로 되돌아오게 만들고자 한다. 따라서 인간 구원에 앞서 시간 구원이 우선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에 직접 나서기에 앞서 '구속사'라는 명칭으로 시간 구원에 몰두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게끔 한다. '구속사→역사→시간→인간→존재' 라는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사상은, 신의 구원성은 인간 쪽에서 제시한 구원성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규정될 수 있는 성질이다. 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신성의 자리는 '존재의 보편성'으로 마감 처리된다. 존재의 보편성이라는 구원의 종국점 에서 쏟아내는 각가지 개념들은 어쨌든 존재의 영원한 보장을 위해 부정성이 삭제된 개념들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도,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해서 구원해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만약 사랑의 대상 상실이 빚어낼 결과로 인해 자체적으로 이 결함적인 소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시라는 것이다. 즉, 아무리 만능의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사랑의 대상이 되는 우리 인간의 존재성 없이는 '사랑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사실이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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