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대구강의14(교회를넘어서07)새언약5(에스겔)b 나머지 짤린 부분
04대구강의14(교회를넘어서07)새언약5(에스겔)b 나머지 짤린 부분
이름 : 관리자(IP:125.19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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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목사님, 기존의 성전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런데 에스겔의 새 성전에는 모든 백성들이 다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이제 왕이 제사를 드려서 그렇게 된 것인가요?
기존의 성전은 제사장에게 맡겨 놓아서 관리를 하게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모두 박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즉 에스겔의 새 성전을 보면 그것이 무용지물이 되었는데,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디에 기초를 둔 제사장이냐는 것인데, 즉 “누가 당신을 보고 제사장을 하라고 했는가?” 라는 것이다.
그러한 제사장을 그 당시에는 왕이 지명하게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 왕 자체가 또한 엉터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새 성전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는데, 차라리 이 세상에서 볼 때는 모든 사람이 다 왕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약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구상인데, 물론 왕은 하나님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은 신약의 새 성전을 위해서, 구약의 모든 가능성을 이 에스겔의 새 성전에다가 집어넣어 놓았기에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넣어놓고는 폭발을 시켜버리는데, 그렇게 되니 이러한 새 성전에 대해서 기존의 제사장들은 감당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구조를 만들고 해야될지를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는 말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는 무엇을 인정하는고 하니, 선지자와 제사장 직분을 인정하는데, 그런데 여기 에스겔에서는 모든 백성들이 다 들락날락하니, 무슨 시장바닥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될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에스겔의 새 성전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다 합쳐서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으니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이 에스겔의 새 성전이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는 것을 미리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에스겔 자신도 예수님의 인자가 됨을 보여주고 말이다.
* 질문 - 이건 좀 다른 내용의 질문인데, 인간의 타락이전에 하나님과 예수님의 구원협약(?)이 이미 있었는지 궁금한데, 정말 있었나요?
물론 있었는데, 하나님과 예수님의, 즉 성부와 성자의 협약에 의해서 구원될 자는 구원되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타락이전’, 즉 ‘전(前)’ 이란 용어가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칼빈은 두 가지를 다 이야기하는데, 물론 처음에는 타락 전 예정론을 주장하다가,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 문제와 서로 맞지를 않으니, 즉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날 때 죄가 있는 몸인가? 없는 몸인가?” 라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타락 이후’를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칼빈도 헛갈리면서 일관성이 없어지는데, 그래서 칼빈이 이 문제에 대해서 엄청 짜증을 내었다는 말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 ‘전(前)’이나 ‘후(後)’ 라는 것은 시간과 관련된 문제인데,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창세 전 예정’은 전혀 시간의 연속성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창세 전’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전(前)’을 시간과 연결해서 이해를 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를 하면 되는가? ‘언약 안’의 일과, 또한 ‘언약 밖’ 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아닌 언약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기존의 시간개념을 가지고서 ‘창세 전의 구원’ 이라는 식으로 보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것을 시간으로 여기게 되면, 하나님께서 일부러 인간을 죄에 빠뜨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우리는 전혀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타락 전 창조이기 때문에, 인간은 타락도 해야되고, 구원도 받아야하기 때문에, 즉 이렇게 양쪽을 다 여기 시간에다 심어 넣기 위해서 작전을 꾸민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질문 - 물론 언약은 시간과 관련이 없지만, 하지만 인간의 타락을 염두에 두고 예수님이 하나님과 맹세를 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맞는 말인데, 그러나 그것이 시간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의 타락을 염두에 두었다는 의미가, “그러니까 그 뒤에 우리 인간이 타락을 했잖아” 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가지고 전(前)과 후(後)로 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제가 쓴 ‘시간과 구원의 연관성’ 이라는 글이 있는데, 물론 상당히 어려운 내용인데, 여기 ‘아이온’의 세계에서는 창세 전에 이미 죄를 짓고 하는 것이 다 들어있는데, 그러니 ‘후(後)’에 벌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후(後)’ 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것이 인간인데, 즉 이 인간이 어떻게 되고 타락을 하고 주님이 오시고 하는 것은, 여기서 이것까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 모든 전체가 언약대로, 즉 주님의 맹세대로 된다고 고백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다 되는 것도 주님이 알고 있은 것이 아닙니까?” 라고 따질 수 있는 자격은 우리에게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약대로 되었습니다” 라고 할 수는 있지만, 즉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로 작정이 되었습니다” 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렇다면 야곱이 그렇게 나쁜 짓을 해도 구원을 해주기로 작정이 되었습니까?” 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연결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야곱의 경우에는 양반인데, 에서의 경우는 정말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에서는 백날 무엇을 해도 지옥으로 갑니까?” 라고 한다면, 물론 그것은 작정이 되었는데(?), 하지만 “에서가 하나님을 잘 믿고 착한 일을 해도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 질문을 앞의 것과 연결시켜서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언약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그런 질문을 하면 우리는 “그것은 언약의 내용이 아닙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참, 쉽지요잉!!)
2009,05,14 오후 11시에 마침.
롯데가 삼성에 3연승을 했다.
마귀야, 물러가라 !!
첨부파일 : 대구040823교회를넘어서7새언약5.hwp (60.0K), Down: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