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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가복음 12장38-44절 제목 : 종교적 위선설교마가복음

막 12:38-44 (종교적 위선)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12장38-44절
제목 : 종교적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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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5-17 13:30

종교적 위선

2009년 5월 17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2:38-44

(막 12:38, 개정)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막 12:39, 개정)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막 12:40, 개정)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막 12:41, 개정)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막 12:42, 개정)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막 12:43, 개정)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막 12:44, 개정)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심판주 되시는 예수님께서 두 번 이 세상을 방문하게 되는데 먼저 오신 경우를 우리는 본문을 통해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관찰자이십니다. 여기저기를 살피십니다. 서기관들의 건방짐도 보고 계시고, 그리고 생활비 전부를 헌금하는 과부도 보고 있습니다. 이렇듯 대조가 되는 두 가지 경우를 언급하신 것은 구원될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구원받는 이 과부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위인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없습니다. 차라리 우리의 평소의 행동이 책망받은 이 서기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서기관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우러러받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모임에서 상석이나 상좌에 앉으면서 행세께나 합니다.

사람들이 이 서기관들을 자기네보다 우대하는 것을 마냥 싫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내세우는 구원이란 인간이 가능한 것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들 속에 담겨있는 온갖 고상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고, 엄숙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을 모아 모아 놓으면 그것이 곧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밑바탕이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오늘날 천주교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거룩한 구원 통로가 되겠다고 자진해서 나선 것이고, 대중들은 이러한 신성한 권위를 인정해주므로서 ‘눈에 보이는 거룩’을 구체화하는 것이 마음 편하게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말하기를, “어디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 합니까”라고 예수님에게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답변하시기를, “여기도 아니요 저기도 아니요 성령이 임하는 그 사람이 곧 예배하는 것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인위적으로 조작해낸 모든 거룩과 성스러움을 다 걷어치웠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도 예수님을 믿습니까? 눈에 앞에 그 어떤 성스러운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구원받는데 지장없는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들에게 있어 과부의 행위는 참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서기관쪽처럼 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선입니다. 창세기 3:10에서 보면,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이들 부부가 말합니다. 여기서 ‘두려워하여’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과부의 행동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은 생존이 안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더 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입니다. 따라서 이 두려움이 여전히 우리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한 과부와 같은 행위는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이 과부는 두려움없이 기꺼이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했고 그 신앙심을 예수님께서 포착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종교적인 덧대기를 하는 이유는 불가능함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그 불가능성을 피해 자꾸만 자기 내부로 기어들어가게 됩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은 ‘나의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 시커먼 상한심령은 우리가 보이에도 참으로 처참하지만 그 처참한 마음 자체를 하나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안 받습니다.

바로 이 원리를 그대로 적용시키면 됩니다. 서기관들이 종교적 허세로 자신을 치장하는 이유는 인간 내부에 법적 장치가 들어가 있는데 그 장치란 내가 한 그 어떤 행위도 의로운 행위로 변모시키는 장치입니다. 즉 “나는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이런 행위를 어쩔 수 없이 행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전적으로 죄인이라고 말 못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곧 인간들의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과부로 통해서 나온 ‘불가능성’은 그 과부 안에 이미 들어있는 불가능성이 작렬해서 나온 열매입니다. 이점을 알기 쉽게 하기 위해 다른 비숫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7-49을 보게 되면,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발견하고자 하는 인물이 따로 있음을 뜻합니다. 이 나다나엘이 무화과 나무 밑에서 기도 할 때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잊습니다. 그리고 자신마저 잊습니다. 그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나다나엘에게 다른 이야기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 다음의 약속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약속이 바로 예수님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려주므로서 나다나엘로 하여금 어떤 식으로 메시아와의 관련성을 이루는지를 말해주셨습니다. 그것이 50-51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즉 과부는 헌금의 하나님의 약속 따라, 말씀 따라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넘쳤기에 그 감사의 표시로 헌금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눈이나 시선을 의식할 필요조차 없이 이루어진 일입니다. 내가 기도하게 되는 분이 계시고, 그 분께서 내 기도를 처리하신다는 그 자체로 인하여 성도를 즐겁습니다. 그리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즉 생활비란 ‘사는 비용’입니다. 이 ‘사는 비용’을 실제적으로 자신을 살려주시는 분의 몫으로 돌려드림으로서, 절대로 나는 나의 힘으로 살지 않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하실 분과 구원받을 분의 엮임입니다. 이 불가능성이 자리잡고 있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들이 자랑거리는 오직 십자가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낚시하듯이 위해서 건져올리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우리 대신 보내셔서 우리의 죽음 안에서 그분이 같이 죽었고, 그분의 부활로 인해 우리가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죄와 악이 같이 나란히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므로서 비록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은 몸이나 같이 들어온 예수님의 의로 구원받을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을 차지하고 있는 ‘불가능성’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평생을 구원해주신 감사함으로 유지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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