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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대구강의08(교회를넘어서)04-새언약2(에스겔)자유게시판에스겔

04대구강의08(교회를넘어서)04-새언약2(에스겔)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4 대구강의 8] - 교회를 넘어서 4 - 새 언약(에스겔) 2

04,07,1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아니, 건물이 어떻게 움직이는 몸으로 ??

오늘은 '교회를 넘어서' 213페이지부터 하겠는데, 일단 지난 시간에 한 것을 요약을 해보자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성전은 분명히 건축물인데,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몸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해드렸는데 말이다.

여기 '성전(聖殿)' 이라고 했을 때, 이 '전(殿)'은 분명히 '집' 이라는 의미인데, 공간적인 의미이고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마치 우리교회가 있는 이 건물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건물이 어떻게 몸이 되느냐는 것이다. 즉 "고정되어있는 건물이 어떻게 움직이는 몸이 될 수 있는가?" 라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연히 옳다는 것이다. 즉 "니 몸이 성전이다" 라고 했으면, 아무 이유도 필요 없이 성전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는데, "예, 맞습니다. 성전입니다" 라고 해야한다는 말이다. 기존의 건물은 성전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렇게 그냥 넘어가면 안 되고, 하나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바로 그런 내력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하, 이렇게 이렇게 되어서 우리 몸이 성전이 되는구나. 그런 조건이 되는구나" 라고 하면서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 언약이 개입해서 !!

지난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되는데는 무엇이 개입이 되었다고 했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인데, 즉 언약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건축물이 개입되면, 이 건축물은 건축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원리에 의해서 몸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당히 어려운 내용인데,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의 언약이 임하면 언약이 임한 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건축물이 건축물이 아닌 몸으로 전환이 된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몸으로 말이다. 그러니 언약이 그런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 언약 속에는 인간의 심성을 고발하는 기능이 !!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이 언약 속에는 인간들이 건물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두려는 심성을 고발하는 기능이 내포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이 자기가 만든 건물이나 공간에다가 신을 가두어두고는, 그 신에게 밥을 주고 뇌물을 주면서 아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것을 받아먹은 신은 인간들의 노리개감이 되어서 시키면 그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주인이 강아지에게 밥을 주고 나서, 그 강아지를 애완동물로 가지고 놀기 위해서 재롱을 부릴 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정성껏 신에게 무엇을 바치면, 신은 그것을 받아먹었으니까 인간들의 소망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 인간들의 심성에 희생을 당하는 분이 !!

바로 그러한 인간들의 심성에 의해서 희생을 당하고 고난을 받은 어떤 인물이 언약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언약의 실체는 신약시대에 어떤 분으로 오시는데, 그래서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헐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곧 기도하는 집이지, 건물이 그런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 자신이 기도하는 집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은 '부활' 이라는 중간매체로서의 역할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이 주가 되심으로 말미암아서 기도를 받는 자와 기도하는 자의 매개체가 성사된다는 것이다. 장차 미래에 그러한 일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그런 예수님의 사흘만에 부활하신 몸이 기도하는 집이 되는 예수님의 몸이 앞당겨서 언약 속에 미리 내장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보가 집착되어있다고 하는데, 즉 압축된 상태에서 미리 들어있다는 말이다.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언약이 성전에 침투하게 되면 !!

그렇게 미리 당겨진 언약에 의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인간들에게는 자기 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성전건물이 있는데, 언약이 거기에 침투하게 되면 이 성전건물은 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점점 더 실체를 향해서 진격을 하게 되고, 이 실체가 참된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즉 지체로서 몸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내력이 성전과 몸의 관계에 담겨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아야 하는데,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을 정해진 장소에 모시고 무엇을 드리는 것이 왜 나쁜 짓이냐는 말이다. 오히려 성스럽고 경건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에 대한 성의표시인데 말이다. 물론 제가 강아지에 비유를 하면서 과격하게 표현했지만, 아무튼 그런 인간의 마음이 기특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릴 때는 목욕도 하면서, 그렇게 잘 보이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이 어떻게 죄가 되느냐는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골을 하나 넣어도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다윗을 통해서 그것이 제대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말이다.

◈ 제사를 드리는 것이 왜 죄인가?

지금부터 정신을 좀 차리고 들어야 하는데, 어려우니 말이다. 어떻게 하나님을 성전에 모시고 제물을 드리는 것이 왜 죄인고 하니, 그것이 하나님께 나가는 순수한 신앙의 표현이 아니고 말이다. 그것을 추적해 들어갈 때, 그것을 죄라고 규정짓는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까, 다윗시대에는 '이스라엘' 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좀 책임져주소. 우리는 지금 강대국에 둘러싸여서 너무나 위태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맞다면 이스라엘을 좀 지켜주소. 우리가 하나님과 결합관계에 있지 않습니까? 부탁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어떤 짓을 하는고 하니,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위에 테두리를 치고, 또한 경계선을 넓히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즉 자기가 어떤 든든한 공동체에 속함으로 말미암아서, 자기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하는 마음이 다들 들어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 왕이여, 왕을 주소서 ??

지금 우리가 다윗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다윗 이야기를 지금 해야하는고 하니, 이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일인고 하니까, 백성들이 "하나님이여, 우리에게도 왕이 필요합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왕을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왕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왕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는 말인데, 그 왕은 어떤 왕인가? 물론 인간 왕인데, 그런 인간 왕으로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만 이스라엘을 적들로부터 지킬 수가 있고,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드리면서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도 지도자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고, 국가도 지도자가 없으면 제대로 나라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발상, 그러한 발상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합당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사무엘상 8장에 보면 그런 발상이 바로 하나님을 버리는 짓이라고, 즉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되심을 버리는 흔적이라는 것이다.

(삼상 8: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삼상 8: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삼상 8: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한 그것을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삼상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 그들은 왜 하나님을 차버리는가?

이러한 이야기가 어렵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것이 과연 하나님의 왕 되심을 포기하는 모습인지, 그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말이다. 즉 왕을 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왜 하나님의 왕 되심을 포기하는 것인지 말이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고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여, 지금 나라에 지도자가 없어서 백성들이 전부가 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 팔을 자기가 흔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제발 왕을 주소서" 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왜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되심을 포기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발로 차버리는 것이고 동기가 되는지, 그러한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사울이 다윗을 핍박한 이유도 거기에 들어있고, 민중들이 다윗을 따르지 않고 사울을 따르고, 그로 인해서 다윗이 많은 핍박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어떻게 하는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데 말이다. 오로지 이스라엘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또한 선지자 노릇을 하는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거짓 선지자는 눈에 보이는 국가를 위해서, 그것을 국가의 자기 '아이덴티티' 라고 하는데, 즉 정체성이라는 말이다.

◈ 역시, 우리교회가 최고 ??

그렇게 자기 정체성의 확립을 위해서 열심히 뛰는, 애국자이고 민족주의자인 그들이 바로 거짓 선지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집단화이고 이기주의인데, "우리교회가 최고!" 라는 것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그런 이야기는 없는가? 그런 것들이 모두 거짓 선지자들이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그런 것들의 뿌리가 여호와의 왕 되심을 거부했기에 나타나는 현상들이라는 말이다.

◈ 이스라엘은 언약을 위해서 존재하는 나라 !!

그렇다면 왜 인간인 왕을 달라는 것이 여호와의 왕 되심을 포기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면,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살리는 방식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깔아주신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그 나라자체의 존재이유가 바로 오직 하나님의 언약 완성을 위해서 있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내뱉은 자기 약속을 이루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강아지를 도둑으로부터 집을 잘 지키라고 구입했는데, 그런데 그 강아지가 밥을 주지 않는다고 땡깡을 부리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강아지는 자기가 왜 이 집에 있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오히려 그 집주인이 자기를 밥 먹여주고 지켜준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개가 그 가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정이 개를 지켜준다고 말이다.

◈ 하나님아, 우리는 친구아이가 ??

그것이 바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인데, 그렇게 서로 뭔가 주고받고 하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그야말로 하나님을 막 먹는 친구처럼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 친구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막 먹는 의미의 친구가 아니라 희생한다는 의미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분명히 있는데,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자기 새끼 피아노를 가르쳐야 되고(ㅋㅋ), 또한 밥도 먹고 숨도 쉬면서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것에 관심이 있지, 즉 사람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는 관심이 오직 자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 본능은, 죄임에는 분명하지만, 포기는 안 돼 !!

그러므로 인간들이 신을 자기 손아귀에 쥐려고 하는 것은, 그것은 그야말로 타고난 본능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죄라고 규정은 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타고난 본성이기 말이다.

예를 들어서, "방귀를 뀌지 말라" 라고 하면, 그것이 말이 되는가? 나올 때는 그냥 발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방귀가 속으로 들어가서 내장이 다 썩어버리니 말이다. 즉 "하나님도 나에게 잘해주는 하나님이 나는 좋아" 라고 하는 것은, 마치 "나는 방귀를 뀔 거야" 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붕, 붕' 거리는 것은 우리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에서 무엇을 "고쳐라, 바꾸어라" 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데, 그냥 자기 성질대로 털어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지 말이다. 즉 "저는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에게 잘해주어야 진짜 하나님이지 말입니다. 저에게 못해주면 저는 믿지 않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그러니 이스라엘에 있어서 성전은 바로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은 오직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우리 인간이 착하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고개를 숙이고 항복했다고 구원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물론 그런 겸손은 얼마 가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야,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다 하신 것이지, 우리는 개뿔도 한 것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모여서 천국을 이룬다" 라는 것이다. 또한 그런 자들이 모여서 교회라는 것이 성립이 되고 말이다.

◈ 잠시 '교회'에 대해서 !!

여기서 잠시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다시 진도를 나가도록 하겠는데, 교회의 단점(?)이 무엇인고 하니, 희생하기 위해서 작정을 하고 모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것도 희한한 이야기인데, 갓바위에 모은 사람들처럼 신에게 빌어서 자기의 욕망을 더 채우기 위해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아서 서로를 위해서 있는 것도 내주면서 희생을 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그렇게 작정하고 기어 들어온 인간들의 모임이란 말이다.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그것을 두고 사도행전 20장에서는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한다는 것이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

빌립보서 2장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즉 사도바울이 설교를 하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라고 하니, 아마도 교인들이 바짝 긴장을 했지 싶은데 말이다. 무슨 마음인지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기를 포기하고, 그렇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비웠다고 말이다. 물론 우리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비워서 어디까지 낮아졌는고 하니, 자기보다 못난 인간들의 종이 되는 위치에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렸다는 말이다. 그러니 바로 그러한 마음을 본받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을 향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이 상당히 부담감을 가질 것이 분명한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계속 뭐라고 하는고 하니, "우리가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서 만유의 주가 되도록 하셨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주(主)로 시인을 한다면, 바로 그런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예수님의 흔적을 드러내기 위해서 모여라 !!

그러니 적어도 사람들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께 빌고, 그렇게 해서 교회에 나오지를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있는 것도 희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었다는 것을, 즉 자기가 좀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있는 능력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흔적이라는 말이다. 바로 그런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서로 서로 형제끼리 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교회에 누가 오겠는가? 하지만 택한 자는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물론 택한 자가 별로 없으니 문제가 되지만 말이다. 250만명 중에서 서너 명 정도가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분명히 맞기는 맞다는 것이다.

◈ 희생이 담겨야 교회이고, 성전 !!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이고 성전인데, 바로 이러한 성전 속에 무엇이 포함되어있어야만 하겠는가? "나는 누구로부터 희생을 당했단다", 혹은 "나는 누구를 위해서 희생을 했단다" 라고 하는, 그런 언약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때만, 그것이 성전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희생이 나타나게 된 요인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들의 자기 정체성, 즉 "이스라엘을 지켜주소서" 라고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왜 그렇게 이스라엘을 지켜달라고 했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즉 인간의 힘으로 신에게 흥정해서 자기 나라를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하나님의 뜻이고 뭐고 간에 다 때려치우고, 그냥 자기가 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신에게 매달리는, 바로 그런 죄로 인해서 희생을 당한 정신이 포함되어있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이며 성전이고, 또한 구약 때 하나님이 원했던 성전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구원받습니다" 라고 하면, 교인들이 제일 오해하는 점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여, 약속을 하소서. 그 약속을 제가 지키겠습니다. 약속다방에 2시에 나가면 됩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약속이라고 하는 어떤 규칙을 지키는, 그런 기능을 발휘하려고 오해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의 찢겨진 살과 흘린 피가 곧 약속 !!

하지만 약속은 어떤 분의 대가없는 희생인데, 즉 예수님의 찢겨진 살과 흘린 피가 약속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가 거래처하고 하던 그런 약속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언약이란 약속의 이미지가 "서로서로 칼 같이 지키기" 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이 약속을 지키면 원하는 것을 들어줍니까?" 라고, 그렇게 매일같이 반대급부를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란 말이다.

아무튼 이 '약속' 이라는 말을 하기가 사실상 겁이 나는 지경에까지 왔는데, 오해할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약속을 이야기하려고 하면 많은 설명을 미리 깔아놓고서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희생은 빼버리고 "그런 약속은 나도 잘 지키는데" 라고 하면서, 즉 자기도 약속을 지켰다고 얼굴을 들이미는 꼴이 되니 말이다.

그런 대표적인 종말론 프로젝트인데, "러시아가 지금 이렇고, 또 이란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 마지막 때를 견디기 위해서는 이런 이런 것을 하지 말아야 하고, 또 저런 것을 해야됩니다" 라고 하니, 또 그것을 듣고는 순진하게도 "아하, 그렇구나. 이런 이런 것은 하면 안 되고, 저런 것은 해야 되는구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이런 것은 하지 않고, 저런 것은 했으니,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면 가뿐하게 구원을 받는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 예수님의 행동이 하나님의 의 !!

우리 인간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약속과 언약을 생각하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에는 손톱만큼도 우리의 선함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백퍼센트의 순수한 예수님의 피와 살만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로움인데, 예수님의 그런 행동이 바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의가 있어서 천국에 가고, 또한 없어서 지옥으로 간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로마서에 의하면 이 하나님의 의가 바로 약속인데, 즉 마지막에 약속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라는 말이다. 하박국에 나타나는 의가 그렇고, 시편에 나타나는 의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 의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데, 그것은 결코 인간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이 홀로 외롭게 감당했던, 바로 그 '의'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언약 자체가 다 이루어지고 말이다.

◈ 그런데 다윗은 왜 등장하는가?

그렇다면 다윗은 왜 등장하는가? 인간을 왕으로 세워달라는 그 취지가 노골적으로 고스란히 담겨있는 인물이 바로 사울인데, 그러니 이 사울이라는 작자가 등장하고 난 뒤에, 이스라엘에 그런 기존의 인간 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시 다윗이라는 자를 왕으로 사무엘을 시켜서 기름을 부어 세워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나라꼴이 말이 아닌데, 나라에 왕이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에 말이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까, 현재 이 땅이 꺼지고 천국 백성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은 그대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자들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주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런 사람들을 그만 등장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땅에 있는 자들도 그만 헷깔리는데, "저 놈들은 미쳤어. 자기들이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나 뭐라나. 자기 아버지도 하나님이라고 하고 말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성령을 받은 성도들도 헷깔리기는 마찬가지인데,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도 해야 되고, 또 천국백성으로서 예수님을 왕이라고 하면서 기다려야 되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에 예수님을 믿는 판사라면, 교회와 절에서 분쟁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떤 판결해야 하겠는가? 참으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데, 물론 법대로 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겠는가? 도대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또 세례요한은 어떻게 버텼는지, 그런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 선지자의 난처함을 !!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구약의 선지서가 나오는데, 선지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힘드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모두가 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렇지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인간을 보고 "너희들은 전부 가짜야" 라고 해야하니, 그런 선지자의 마음이 오죽 불편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성신을 받았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절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결코 힘들지 않는데, 즉 "그래, 너희들은 부처를 믿어라. 나는 혼자라도 예수님을 믿겠다" 라는 것은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당에 가서, 그것도 부흥집회에 모인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는데 있어서는 한 가닥 하는 인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난처하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간증을 하면서 모여서 난리를 치는 곳에 가서, 선지자가 성신을 받아서 "너희들은 전부 가짜야" 라고 하니, 선지자는 당연히 인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고난과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사야는 톱에 켜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정말 전설로 끝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 선지자가 당하는 고난의 밑바닥에는?

오늘 우리가 에스겔서를 보려고 하는데, 그 에스겔 선지가 당했던 고난과 시련, 바로 그런 선지자가 당하는 고난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당시 백성들은 하나님을 언약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하나님관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이비이고 엉터리들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거짓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 인해서 선지자가 고난을 당한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펴보려는 이 에스겔서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성경인데, 또 성경을 읽다가보면 피로가 몰려오는 시점이기도 하고 말이다. 모세오경은 그래도 잘 나가는데, 그러다가 역대기에 가서 한바탕 헤매다가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아는 선지자가 나오면 다시 힘을 내다가, 이 에스겔서에 들어보면 그냥 힘이 모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머리가 '띵' 하면서 말이다. 물론 내용을 잘 몰라서 그러한데, 그래도 알면 읽는 재미가 있을 텐데 말이다.

◈ 에스겔은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했는가?

에스겔서의 밑바닥에는 고난이 있는데, 그래서 이 에스겔서를 이해하려면 이 고난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에스겔은 무엇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예, 에스겔은 성전이 부서지라고 했기 때문에 고난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다. 물론 성전만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성전도 불에 타고, 유다나라도 망하고, 또 백성들은 잡혀가야, 그것이 약속입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이 쉽지 사실은 얼마나 힘이 들겠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목사가 대심방 기간이라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앞으로 신랑이 하는 사업이 망할 것입니다" 라고, 또 "작은아이가 교통사고가 나고, 큰놈은 대학에 떨어질 것입니다" 리고, 그리고 "작년에 시집간 딸이 곧 쫓겨날 것입니다" 라고, 그렇게 저주를 마구 퍼붓는다고 하면, 그것이 어떻게 목사가 할 짓이냐는 말이다.

물론 그 중에서 "목사님, 우리가 그렇게 벌을 받아도 당연합니다. 그래도 희망이 조금도 없겠습니까?" 라고 하면, 그것조차도 목사는 "아닙니다. 이젠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라고 해야하니 말이다. 평소에 그렇게 서로 사랑했던 목사가 얼마나 하기 힘든 이야기이냐는 것이다. 성품이나 인상도 그렇게 좋은 목사가 말이다.

바로 선지자가 그러한 일을 하는데, 그렇다고 자기 집구석은 챙기는 것이 아니라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은 자기 마누라가 죽어도 울지 않는다는 말이다. 노숙자 이상으로 또라이 짓을 하는데, 옆으로 누워서 390일을 지내고, 사람의 똥으로 밥을 해먹고 말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엽기적인 짓이냐는 것이다.

◈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포로 됨을 미리 라이브로 !!

그러한 선지자의 수난이 보여주는 것은, 이 유다나라가 하나님의 적국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그 광경을 자기 집안을 통해서 생생하게 라이브로 미리 중계를 해준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포로로 잡힐 때, 이런 비참한 몰골로 잡혀간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라고 말이다.

아까 개를 이야기했는데, 개는 주인이 주는 것을 먹고 자기 배만 부르면 그만이겠지만,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주인이 개를 때려야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 그 개는 사랑하는 주인이 자기를 왜 때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면서 그런 불만을 터뜨리겠지만, 그러나 에스겔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기 뜻만 고집부리는 인간들을 때려서라도 방향을 돌려야만 할 시점에 와있다는 것이다. 즉 이제는 자기들의 뜻이 아니라,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는 쪽으로 말이다.

이것을 에스겔은 본인도 고난을 받으면서, 또한 자기 집구석도 역시 모두 날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기 가정부터 그러한 시련이 벌어지면서, 원래 하나님이 생각했던 이스라엘은 무엇인지, 유다나라는 무엇인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무엇인지, 또 다윗에게 무슨 일을 하려고 하셨는지, 그것을 풀어주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에스겔서 밑바닥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 고난을 담아내는 일을 할 자, 곧 '인자' !!

그런데 그러한 밑바닥에서 고난을 담아내는 일을 해야할 자를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고 하니까, 옛날의 다윗을 생각해서 '인자(人子)'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한자가 너무 어려운가요? 인자(仁者)가 아니고 인자(人子)라는 말이다. 글자는 쉬운데 내용이 어렵다는 말이다. (ㅋㅋ)

예수님께서 "너희는 인자를 누구라고 하더냐?" 라고 했을 때, 그런 인자의 용어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고 하니, 에스겔이 담겨있고, 다니엘이 함축되어서 다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약에서 인자를 풀이할 때는 에스겔서의 핵심과 다니엘서의 핵심을 다윗의 시편 8편 등에 나오는 핵심들을 다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 8편에 나오는 '인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억울하게 사울이라는 가짜 왕에게 핍박받는 다윗 자신의 서러움과 연약함과 희망 없음과 무기력함, 그리고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방법이 없는 실존을 가지고 다윗은 '인자' 라고 했다는 것이다.

◈ 다윗이 왜 고난을 받았는가?

다시 제가 묻겠는데, 다윗이 왜 고난을 받았는가? 그것은 바로 진짜 이스라엘의 왕과, 물론 진짜 왕은 여호와인데 말이다. 그러니 다윗은 여호와께서 부리는 개인데, 진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인데,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 되심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증거로서 다윗을 '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그대로 이 지상에 담아내는, 그런 왕으로서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에스겔에 보면, 하나님은 다윗 왕을 다시 보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다윗 왕을 고집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경 두 명이 예수님에게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하는데, 즉 자손이 선조를 살리는 방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다윗 왕이 등장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 왕이 등장함으로서 하나님의 왕 되심을 포기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들이 왕을 달라고 하든지, 그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말이다. 즉 하나님은 "나는 이스라엘의 왕 됨을 포기한 적이 없다. 너거들 알아서 해라. 봐라, 다윗이 가만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참석했잖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 그래서 다윗을 왕으로 뽑을 때도 퍼포먼스를 ??

하나님은 사무엘에게도 전혀 의논하지를 않고 일방적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워버렸다는 말이다. 전혀 인간의 의사가 개입되지 않도록, 연약한 막내아들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이 다윗을 찾는 것도 일종의 퍼포먼스인데(?),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서, 그 첫째 아들인 엘리압의 준수함을 보고 왕으로 세우려고 하니 하나님이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참으로 이상한데, 분명히 이새의 아들이 맞는데. 그럼 누구지?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데, 그냥 갈까?" 라고 하다가, 다시 이새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혹시 다른 아들이 없는지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뭐라고 하는가? "막내가 있기는 한데, 그 아이는 전혀 그런 인물이 안 됩니다. 그냥 양이나 치는 놈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무엘은 그 아이를 부르게 되는데, 보니까 바로 그 아이라는 것이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왕다움이 철저하게 인간의 눈과 귀에는 감추어진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숨어있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인간 속에 섞여서 등장한다는 말이다.

◈ 아, 누가 믿었으리요 !!

이것을 이사야 선지자는 뭐라고 말하는가? "그러니 누가 믿었으리요. 누가 알았으리요. 우리는 그를 흠모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분이 채찍에 맞는 것을 그분이 잘못해서 맞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려 초라하기 짝이 없이 죽어간 그 청년이 우리의 구원자임을 누가 꿈엔들 상상이나 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는 인물이 잘 생기고 훤한 사람보다는, 그야말로 행태나 몰골이 초라하고 전혀 볼품이 없어 보이는 목사가 진짜 목사가 아니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저는 전혀 목사의 자격이 없지 싶은데, 아무도 동의를 하지 않는 표정인데 말이다. (ㅋㅋ)

◈ 제가 1억을 드리면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만약에 어떤 목사가 돈이 많아서 살기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고 하면, 즉 "지금 살기가 매우 어렵습니까? 1억을 드리면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전도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집도 사주고 시집 장가도 보내주고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또 다시 망한다면, 그래도 예수님을 믿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목사가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얼마든지 설교는 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것을 천당에 가는 기준으로 제시하게 된다면, 그러면 이혼을 한 사람은 그런 교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은 이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이혼을 6번이나 하고 천당에 간 사마리아 여인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목사가 그런 가정의 화목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성경 때문에 아니라 "우리 교회에 나오면 이렇게 화목을 가정을 누립니다" 라고 하는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을 꼬드기고 유도해서 믿게 만들면, 그것은 십중팔구 가짜 예수라는 말이다. 즉 미끼를 던져서, 그 미끼를 무는 놈들을 교인으로 삼게 되면, 그런 것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하는 짓이라는 말이다.

◈ 선지자는, 현실의 습성을 있는 그대로 외쳐야 !!

우리가 이 에스겔서를 보게 되면, 에스겔이 어디 돈을 나누어주었는가? 아니면 집을 사다주었는가? 그런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습성을 있는 그대로 외쳤다는 말이다. 즉 "너희들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했고, 언약을 어겼다" 라고 말이다.

그것을 오늘날 그대로 가지고 오면 뭐라고 해야 하겠는가? "너희들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새 언약을 거부하고 있다" 라고 말이다. 목사들이, 목사라는 라이센스를 가지고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가 장담을 하건데, 지금 에스겔이 이 자리에 있다고 하면, 그 당시처럼 낱낱이 다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다.

다시 이야기하면, 나라가 교체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 세상 사람과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섞여서 살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베드로전서에 보면 성도는 이 세상에서 선지자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바로 그런 역할을 하라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땅에 죽치면서 살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이 세상은 아무리 의지를 하려고 해도, 마지막에는 그냥 '픽'하고 꺼져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바늘에 찔린 고무풍선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금 당하는 고난은 장치 올 영광과 족히 비교되지 않는데, 바로 그러한 것을 외치기 위해서, 즉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선지자 노릇을 하기 위해서, 먼저 선지자 노릇을 한 예수님, 그리고 구약의 에스겔이 당한 수난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자' 라는 것이다.

◈ 성도는 '인자의 아들들'로서 !!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인자의 아들들' 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10장에 의하면, 인자를 증거하는 자들인데, 즉 사람들 앞에서 인자를 시인하는 자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그러니 이 본문에 의하면 우리가 인자 됨을 시인해야 하는 것이지, 예수를 시인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만들어낸 예수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기에 말이다. 즉 돈을 벌게 해주는 예수, 병을 낫게 해주는 예수, 가정의 우환을 없애주는 예수, 바로 그런 예수가 조용기를 비롯한 한국교회 목사들이 전하는 가짜 예수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인자' 인데, 바로 이 인자 속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고난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뜻을 쫓아서 살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종으로 삼는, 바로 그런 잘못된 뜻 때문에 희생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 분이 인자이고, 그 인자가 걸어가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이다.

◈ 다니엘도, 요셉도, 그리고 교회도 !!

그것은 다니엘도 역시 그러한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니엘에게 환상과 계시를 보내주었지만, 하지만 다니엘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점점 더 고난과 고난이 다가오는 고난의 길로 가게 되는데, 그러니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과도 같다는 것이다.

자기는 좋은 일을 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정작 그 벌을 요셉 본인이 받게 되고, 그렇게 해서 결국에는 감옥에까지 가고 만다는 것이다. 또한 감옥에서도 배반을 당하고 말이다. 그러니 요셉은 약속이 아니었다면 감옥에서 그냥 종치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물론 약속이 감옥으로 데리고 갔지만 말이다.

그것은 오늘날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성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만약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없다고 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되고 그야말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닭 쫓는 개와 같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요셉의 경우도 하나님이 왕에게 꾸게 해준 꿈이 있었기에, 신하가 그 왕을 꿈을 듣고는 요셉이 생각나게 했고, 그래서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내게 했고, 그래서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하나님의 유일한 계시인 말씀에 말이다. 자기 신상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이루어나가기 때문에 말이다.

◈ 성도의 장래는 주님이 !!

그런데 만약에 그 말씀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희망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그 3가지 올무에 그만 걸려드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인기와 세상 부귀영화와 돌이 떡 되게 하는 경제적인 문제, 그런 것에 말려들게 되면 스데반 집사님처럼 천사의 미소를 지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안 된다는 말이다.

성도의 모든 장래는 요한계시록에서 다 책임을 지는데, 그러므로 성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천국에서 영원히 살 자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왜 이 땅에서 우리의 구세주가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아서 그러한 사실을 자기의 삶 속에서 증거하는 희생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니, 진짜 죽을래 ??

그러니 부부간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누라의 멱살을 잡고서 "니, 진짜 죽을래?"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서로 용납하면서 남편 된 자가 아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치 주님이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처럼, 그런 모습을 보여야 참된 신랑인 예수님을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신랑에게 당연히 아내는 복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부부관계가 종말론적으로 봐서는 그냥 단순히 부부관계가 아니라, 예수님과 교회와의 관계라는 것이다. 즉 여호와의 왕 되심이 이 세상에서는 다윗 왕의 수난으로 보여지듯이, 그렇게 감추어진 왕, 남들이 알지 못하는 왕으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가정도 예수님의 신랑 됨과 성도의 신랑 됨이 압축되어서 감추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종말의 모습인데, 사실 이 종말이라는 말도 참 어렵지만 말이다.

◈ 에스겔 - 왜 성전이 깨어져야 하는가?

아무튼 이 에스겔서을 살펴봄에 있어서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왜 성전이 깨어져야만 하는가?"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성전을 중심으로 몰려든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에스겔뿐만이 아니라, 다니엘, 이시야, 예레미야 등을 제대로 해석하는 해법이라면 해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왜 성전을 중심으로 몰려드는가? 그것은 바로 성전중심으로 돈이 몰리게 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이사야서나 미가서 등에 보면 나오는데, 그 당시 지도층에는 3가지 그룹이 있는데, 제일 위에 왕이 있고, 그 왕 밑에 방백 그룹이 있고, 제사장 그룹이 있고, 또한 선지자 그룹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방백들은 행정적인 처리를 하고, 또 제사장들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성전이 있는데, 이미 솔로몬 이후에 성전은 미신화가 되고 우상화가 되었는데 말이다. 마치 북한에서 죽은 김일성이 우상이 된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에 김일성 생일이었는데, 온 나라가 난리라는 것이다. 아무튼 제사장들을 성전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 제사장, 방백, 선자자들이 한 통속이 되어서 !!

그리고 선지자는 무엇인고 하니까, 요즘 말로 하면 교육 공무원들이고, 교수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선지자들은 대량으로 양성을 해서 온 마을마다 모두 파견근무를 시킨다는 말이다. 즉 선지학교를 만들어서 학생들을 졸업을 시켜서 전국적으로 골고루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연적으로 선지학교 동기생들이 생기는데, 그것이 하나의 파워를 형성하게 되고, 그러면 선지자 그룹에 서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총회장, 노회장, 시찰장이 만들어지듯이 말이다. 그렇게 하면서 모든 백성들의 이데올로기를, 즉 사상과 정신을 관장하고 지배해서 일종의 정체성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거기에 대해서 반발을 하지 않는가? 백성들은 과거에 산당에서, 이 산당은 지난 시간에 했는데, 골짜기에는 산꼭대기마다 있었다는 것이다. 법궤가 거쳐난 흔적이 있는 곳마다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곳에는 신비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왜 요즘도 기도원 같은데 가면, "이 장소는 누가 누가 기도해서 응답을 받은 곳입니다" 라고 적어 놓듯이 말이다.

◈ 아하, 이곳이 효과가 있는 곳이구나 !!

우리가 목회를 해보면 알지만, 진리가 들어있지 않은 인간들의 습성은 굉장히 단순한데, 한번 효과를 보았다면 그 효과를 기대하고 또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방을 하고 흉내를 낸다는 것이다. 안수기도를 받아서 효과를 본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안수기도를 받는다는 말이다.

인간은 이렇게 항상 고정화를 시키는데, 이것을 앞에서 너무 어려워서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인간의 심성은 항상 고정된 것에서 거룩과 기적이 샘솟듯이 나온다는 본다는 말이다. 사실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서 나오는데 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어떤 특정 장소가 특정적인 효험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심성이라는 말이다.

이 산당들은 과거에 한번씩 효과를 본 곳인데, 그래서 그곳에다가 건축물을 세우고 제사장을 두어서 봉사를 했다는 것이다. 솔로몬도 일천번제를 산당에서 드렸는데, 왜 그렇게 했는가? 민중들이 그것을 원했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산당에서 드리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당시 선지자는 민중들의 점쟁이였다고 볼 수 있는데, 그래서 미가서에 보면, 돈을 많이 내는 놈들에게는 축복의 점괘를 내고, 그렇지 않은 놈들에게는 불길한 점괘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돈을 내는 만큼 축복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목사들과도 똑같은데, 그렇게 자기들끼리 노동 조합을 만들어서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점쟁이 노동조합을 말이다.

이렇게 선지자도 나쁘지만 제사장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자기들이 봉사하는 성전이 없으면 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신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도록 백성들을 세뇌를 시키게 되는데, 그래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성전만 있으면 이 나라는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 그들을 정면으로 반박한 에스겔 !!

그러한 분위기에서 에스겔이 나타나서 뭐라고 했는가? "이 성전은 불타고 날아간다" 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기존의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하나님이여, 성전이 있는 한 이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에스겔은 "빨리 도피해라. 이 나라는 반드시 망해서 70년 동안 포로로 잡히게 되어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당시 백성들은 누구 말을 들어야 하는가? 그 시대에는 망해야 된다고 외치는 사람만을 따라다니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거꾸로 사는 사람의 모습인데, 즉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영원무궁합니다" 라고, 그렇게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외쳤던 놈들은 전부가 모두 가짜라는 말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시대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고 백성들을 현혹하는 와중에서 어떤 자들이 있는가? "우리는 천국만 바라보아야지,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오로지 실망만 있을 뿐입니다" 라고 외치는 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렇게 기존 세상을 부정하면서 하나님의 새 언약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즉 예레미야와 같은 경우에는 진짜 선지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선지 생도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이 자기가 배운 기술을 어떻게 숨길 수가 없는데, 자기들이 선지학교에서 선배에게서 배웠던 그 가락을 그대로 써먹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제사장으로부터 고난을 한 몸에 받는 자가 바로 '인자' 라는 것인데, 그가 바로 '에스겔' 이라는 말이다.

◈ 다윗이 와야만 한다 !!

그렇다면 이 에스겔이 말한 핵심이 무엇인고 하니, 새로운 성전이 주어지는데, 단 조건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와야 한다는 말인데, 이것은 바로 다윗부터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 에스겔서에서 제일 어려운 점이 바로 이러한 점인데, 즉 "다윗부터 새로 시작하겠다" 라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는 역사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에스겔은 B.C 500년경의 사람이고 B.C 900년경의 사람인데, 그러니 400년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윗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사람이 제일 오해하는 점이 무엇인고 하니, "그러면 다윗의 시절로 되돌아가서 솔로몬의 나라를 다시 새롭게 세우라는 말인가?"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이 에스겔에서 말하는 다윗은 천상의 다윗이란 말이다. 그래서 에스겔 1장에 보면, 하늘나라의 보좌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지상에 있던 다윗을 '전(前)다윗' 이라고 한다면, 이 다윗은 소년이었는데,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려고 갔다가 골리앗과 전투에서도 참여해서 물맷돌을 던졌고 말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전다윗은 소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 왕이 되어서 우리아를 만나는데, 즉 그의 아내 밧세바를 만나서 동침을 하면서 우리아를 죽이게 되고 말이다. 그리고 나중에 말년에는 자기 아들인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고 말이다.

◈ 전(前) 다윗이 아닌 후(後) 다윗이 !!

그런데 여기 에스겔에서 말하는 다윗은 그 전다윗이 아닌데, 하나님이 다윗에게 무슨 약속을 했는고 하니, "다윗, 니가 나를 위해서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너에게 집을 지어주겠는데, 내가 '다윗가문' 이라는 이름의 집을 지어주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에스겔에서 말하는 다윗의 집은 하나님이 손수 짓는 집이지, 인간들이 만든 그런 헤롯의 성전과 같은 건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건물은 완전히 물 건너갔는데, 이미 건물을 지어보았지만 그런 건물을 우상처럼 섬겨서 망했다는 것이다. 또한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봉사한다고 하면서, 성전에 온 자들에게 돈을 내라고 협박을 하고 말이다. 성전을 유지한다는 조건하에서 돈을 쳐 먹고 말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임무는 무엇인가? 자기가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것이 전혀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목사의 임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구세주이지 목사가 구세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라는 것이다.

◈ 하나님은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지어준 집은 무엇인가? 그것이 곧 다윗의 가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윗이 마지막으로 죽을 때 선지자 노릇을 했는데, 그것이 사무엘하 22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천상에서 직접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고 말이다.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
(삼하 22: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삼하 22:15)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시며 번개로 파하셨도다

그러니 에스겔서에는 나오는 다윗은 전다윗이 아닌 후다윗인데, 이 후다윗은 무엇인고 하니, "여호와께서 직접 왕이 되신다" 라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아까 소년 다윗이 하나님의 왕 되심의 표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언제?).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다윗과 같은 모습으로 왕으로 오신다는 말이다. 바로 그렇게 직접 하나님이 왕이 되신 분이 누구인고 하니,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그 어느 것 하나라도 구약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것이 전혀 없는데, 즉 그 모든 것이 예언된 말씀을 이루기 위함인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철저하다는 것이다. 성경을 공부해보면 이런 부분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는데, 이렇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껍데기만 맞아서는 되는 것이 아니라, 구약전체가 마치 눈사태처럼 그렇게 돌진해온다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신약에 있는 사람을, 마지막에 지옥에 갈 사람과 천당에 갈 사람으로 그렇게 덮쳐서 구별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즉 "이제 종말이다. 그러니 둘 중에 하나이다" 라고 말이다.

◈ 설교에는, 눈사태의 다급함과 절박함이 !!

목사도 그런 의식으로 설교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목사에게 덮치는 시련 가운데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까, 여름철이 되면 "날씨도 더운데 30분만 대충하고 마치자" 라는 것인데, 물론 저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특히 시골교회에 있어보면 노인네들이 여기 저기서 졸고 있으면 그야말로 비상인데, 설교를 하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러한 자리에도 주님이 앉아 계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목사는 항상 말씀이 눈사태처럼 닥쳐오는 다급함과 긴급함도 없이, 그냥 시간만을 대충해서 때우려고 하는 시험에 들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목사라는 라인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죄라면 죄인데, 그런 것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말씀이 눈사태처럼 흘러내릴 때만 목사이라는 것이다.

◈ 과연 다윗이 와서 무엇을 ?

그렇다면 에스겔에 있어서 다윗이 와서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다윗이 성전을 세우는데, 물론 기존의 성전은 불타고 말이다. 그렇게 기존의 성전은 불타서 없어지고 새로운 성전이 세워지게 되는데, 바로 그 성전을 설명해주기 위해서 3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골짜기로 가는데, 놀랍게도 마른 뼈에 살이 붙어서 살아난다는 것이다.

(겔 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그리고 그 다음의 40장부터는 정말로 보기에 답답하고 지루한 내용이 나오는데(?), 새 성전의 구조가 말이다. 또한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 우리 교재에 나오고 말이다. 참, 이번에 여름이 되었다고 우리가 방학을 꼭 해야 하는지 궁금한데, 그냥 계속해서 했으면 좋겠는데, 날씨다 더워서 안 되겠다 싶으면 좀 쉬고 말이다.

(겔 40:1) 우리가 사로잡힌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겔 40:2) 하나님의 이상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그건 그렇고, 이제 교재 227페이지를 살펴보자.

** 에스겔 5장 1절에는 수염과 머리털을 깎아 불사르고 사방으로 날려야만 했고, 8장 8절에서는 담을 헐어야 했다. 12장 3절에서는 행구를 만들어 대낮에 적의 침공에 의해서 이사를 가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12장 4절에서는 포로로 잡혀가는 시늉을 보이기도 했다. 밤에는 성벽을 뚫고 나가고, 20장 46절에는 삼림을 향하여 예언하고, 24장 3절에서 5절에는 가마솥을 걸어놓고 고기를 푹 삶아야 했다. 특히 24장 15절에서 24절까지는 아내가 죽어도 울지 말아야 하는 지시를 하나님께 받는다.

이러한 에스겔의 행동 자체가 모두 계시인데, 즉 앞으로 유나나라가 당할 모습에 대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장차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간다는 것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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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4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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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