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8:10-16 (악신과 두려움)
삼상 18:10-16 (악신과 두려움)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18장10-16절
제목 : 악신과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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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4-12 15:52
악신과 두려움
2009년 4월 12일 본문 말씀:사무엘상 18:10-16
(삼상 18:10, 개역) 『그 이튿날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힘있게 내리매 그가 집 가운데서 야료하는고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삼상 18:11, 개역)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12, 개역)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삼상 18:13, 개역) 『그러므로 사울이 그로 자기를 떠나게 하고 천부장을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삼상 18:14, 개역)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삼상 18:15, 개역)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삼상 18:16, 개역)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
성경에서 인간을 볼 때에 독자적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인간들이 괜히 자신을 독립적이고 자존적으로 보고 싶어할 뿐이지요.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인간은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임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종의 빈 그릇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악령이 임하면 임하는 대로 악령의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령이 임하면 임한대로 성령대로 살아야만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3장에서 악마는 그냥 두지 않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해서 기어이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주위에서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라는 사람은 죄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예언을 미리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죄를 극복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는 겁니다.
휘돌리면 휘돌리는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마지막 심판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두 종류의 심판이 나옵니다. 하나는 독자적으로 인생을 만들어 나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즉 이들은 자신의 행함으로 자기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믿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몽땅, 예외없이 지옥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에 다른 한쪽은 생명책에 명단이 있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명단에 적힌 대로 호명하면 그것으로 생명의 나라에 직행하게 됩니다. 이들만큼은, 인간이란 자신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입장임을 압니다. 반면에 지옥 가는 자들은 기어이 자신의 행함에 준해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는 자들입니다.
즉 사람이란 자신의 행함들이 모여서 자아가 형성된다는 겁니다. 악마든 성령이든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기에 따라 들어오고 나오고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참된 성도만은 압니다. 인간은 빈 그릇이라는 겁니다. 로마서 9:21-23에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담긴 것을 주목하십니다. 이 점은 악신 걸린 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담긴 것이 악신입니다. 이 악신이 하나님에 의해서 착실하게 일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울에게는 하나님이 부리신 악신이 힘 있게 작용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로서 인간은 두 종류의 그릇으로 나뉘어져 있게 됩니다. 악신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울은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집니다. 다윗이 어떤 인물입니까?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다윗도 결코 홀로 있지 아니합니다. 이로서 이 세상은 다윗과 사울의 싸움이 아니라 성령과 악령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를 악신은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사도행전 19:15에 보면,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악신은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게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활동을 흐릿하게 하고 가리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흔히들 믿는다고 말합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여리고성이 나옵니다. 이 여리고성을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무너지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돌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동행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동행이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악신의 역할은 마치 여리고성과 같아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앞길을 막습니다. 사건이나 사태를 통해서 막아버립니다. 그렇게 될 때, 믿음도 없고 하나님과의 동행도 안 되는 자들은 이 여리고성 같은 사건을 통해서 도리어 자신들의 믿음이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말 성령이 함께 있는 자인지 아니면 남 흉내는 사람인지를 압니다. 즉 악신 있는 자들은 본인도 모르고 성령받은 자를 대단히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악신이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성령받은 자를 겁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시험합니다.
즉 “당신도 나처럼 두려워해야 하는데 왜 건방지게 안 두려워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성령받은 사람은 자체적으로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두려움을 추방당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히브리서 2:14-15에 보면,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도도 예수 믿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예수 믿다가 정말 망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성령께서 녹아지게 하니 그 어떤 여리고성이 들이닥쳐도 믿음으로 그 사태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지혜’라고 합니다. 지혜가 뭔가 하면, 세상을 볼 때에 이처럼 악마의 활동까지 하나님께서 기준에 세우기 위한 작업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즉 악마를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욥이 처음에 지혜를 몰랐을 때는, 하나님께서 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고 난 뒤부터는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자신의 고난도 자비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선별하는 작업이며 세상과 결별하는 수순으로 여긴 것입니다.
예를 들면, 참으로 정신적으로나 실제로 투자를 많이 한 사람이 교회와 끊어지고 예수를 안 믿겠다고 나설 때, 참으로 괴롭고 근심되고 걱정되는데 결국 이것은 두려움으로 이어집니다. 이 두려움을 자신의 믿음으로 이기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도리어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즉 “저 사람이 저렇게 교회와 발길을 끊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벌리시는 결벌 수순을 강제로 하시는 작업이요 섭리로 봐야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결발 수순을 존중해주고 인정하는 것이 곧 지혜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몸이 성령께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장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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