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회개(?)
이름 : 김성환(IP:114.207.231.210)
안녕하세요~
책을 읽던 중 "회개"란 단어가 등장해서 질문을 드립니다.
십자가마을 홈피에 있는 "회개"의 글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저에게 던져주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는
인간의 죄의 범위를 어디까지 덮어 주는지요?
저에게 질문이 생기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택한 받은 자의 모든 죄 즉 과거부터 영원까지 다 용서해주었다는 사실을 믿기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선택받은 자나 불신자나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죽을때까지 죄의 정욕이 불일듯하지만....십자가의 피는 오직 선택받은 자만을 위해서 과거 현재 미래 영원히 사죄의 은총을 베푼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의 내용처럼 주님의 자비와 긍휼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아닐까요?
이근호(IP:117.♡.139.16)
09-04-06 08:34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회개'라는 요소를 오로지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만 발췌해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라 '반성'입니다. '반성'이란 반성한 만큼 더욱 더 자신을 의롭게 만들어버리는 비언약 노선(지옥으로 연결된 노선)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악마의 덫이지요. 악마의 올무입니다. 회개한 당사자가 회개후 더욱 근사하고 멋있게 보이게 여겨지게 됩니다. 회개를 하면 할수록 더욱 빠져들어가게 됩니다. 나중에는 회개를 멈추는 순간이 오는데 이 때는 "내가 곧 신이다"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더이상 회개조차 필요없고 누구를 믿을 필요도 없고 오직 자신이 원래부터 신이었음을 그대로 인정하는 그대로가 곧 자유요 신성한 차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끝까지 탐구한 불교쪽에서 자신있게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는 하나다 . 단지 진리에 이르는 다른 등산로일 뿐이다. 진리를 놓고 이야기하자. 이야기가 안 통할리없다"고 말입니다.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바리새인들도 그러합니다. 언약에 입각한 회개란, 성도 자신이 죄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곧 악마의 속성을 지니고 살아오고 있음을 압니다. 그 악마의 속성이란 바로 '반성'를 통해 자아 해탈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예수님이나 신을 라이벌이나 모델로 여기는 심보를 뜻합니다. 이것을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합니다. (심리학자 마슬로우의 주장)
결론적으로 말해서, 반성하는 자들에게는 이미 어떤 죄용서가 없는 상태입니다. 단지 이미 죄용서받은 성도에 한해서 새언약의 완성을 증거하는 회개가 일어날 뿐입니다. 평생을 걸쳐서.
김성환(IP:114.♡.231.210)
09-04-06 09:0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이 구절이 바울의 새언약의 완성을 증거하는 회개인가요? 아니면 "저는 지난주에 이런저런 육신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십자가의 피로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 이것인가요? 사람들이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십자가의 피로 매일 씻겨지기를 원해요. 이 표현은 저에게 좀 낯설어요. 그래서 회개란 성령님이 성도안에서 매일 말씀으로 성도의 죄성을 지적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주님의 이름만을 의지토록 하는 것이 회개의 영을 주시는 성령님의 역할이 아닌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기도가 "주님 이런저런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을 인정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공로만 의지케 하소서(십자가의 피로 나의 죄를 씻어주소서가 아니라)" 답변부탁드립니다~
이근호(IP:117.♡.139.16)
09-04-06 09:43
예수님의 업무(계속 죄 씻음)이 성도 자신에게 도달되기를 성도가 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개인적 용무 때문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하실 일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새언약이 벌리시는 작업이란 바로 예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결코 '미완성'이나 '미완료'가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성도 개인적인 종교적 업적을 곁눈질해서 항상 자신에 대해 '미완성'과 '미완료'를 느끼는 그런 비언약적 태도에 대해서 용서를 빌어야 하는 겁니다.
김성환(IP:125.♡.0.183)
09-04-06 10:56
답변감사합니다~그럼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선언하신 "다이루었다"란 것이 무엇인지요? 구약에서 모세가 백성들을 향해 매일 번제단에서 잡았던 짐승의 피를 시시때때로 죄를 분출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을 향해 뿌렸는데 이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즉 새 언약안에서 모두 다 성취된 사건이 아닌지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단 번에 영원히 제사를 드리심으로 이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것이 없지 않습니까? 목사님의 말씀처럼 '미완성'과 '미완료'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그런 상태말입니다. 예수님의 '다이루었다'란 '완성'이란 의미안에 앞으로 범죄할 죄까지 다 통째로 함유된 것이 아닌지요? 다른 질문하가지요? '자비를 베푸소서'와 '긍휼히 여겨 주소서'란 말이 '나의 죄를 용서(죄를 씻음)하소서'와 동일한 의미로 이해해도 될까요?
이근호(IP:117.♡.139.16)
09-04-06 13:23
하나님의 일이 성도에게 덮치게 되면, 그 덮쳐진 지층 속에서 '죄 용서가 가능한 근거와 장치'가 담겨있게 됩니다. 이 장치가 바로 구약 때의 제사제도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성도는 더이상 자신의 의나 거룩을 내세울 수 없고, 오로지 순종치 않았던 자신의 죄를 아울러 알게 됩니다. 강퍅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오로지 긍휼밖에 없게 됩니다.(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이로서 성도는 대내적으로 '긍휼케 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증거하는 바가 됩니다. 즉 제사는 개인구원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