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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9대구강의02-죽은신을위하여(슬라보이지젝)1-2자유게시판요한복음

09대구강의02-죽은신을위하여(슬라보이지젝)1-2

이름 : 관리자(IP:125.190.2.45)

이제 교재 1페이지 마지막을 보자.

** 진정한 예수에 대한 신뢰와 신앙은, 추종자로 하여금 예수에 대해서 배신케 함을 유발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 진정한 신앙은, 배신케 함으로서 !!

이것이 상당히 괜찮은 표현인데, 지금 이것을 베드로와 12제자를 두고 말하는 것인데, 정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제자들이라고 하면, 그 제자들은 무슨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고 하니까, 즉 “우리가 이러 이러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신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라는 것을, 바로 그것을 구원받은 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역시 배신을 하는데, 가롯유다도 배신을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지젝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의 입장에서 배신을 하고, 베드로와 12제자는 구원을 받은 자의 입장에서 배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결코 자기 공로로, 즉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지젝에 의하면, 그것은 베드로나 가롯유다 때문이 아니라, 신이 스스로 자기를 배신함으로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스스로 배신을 하면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내어서 “아하, 주님이 바로 나 때문에 그렇게 배신을 하셨구나” 라는 것에 참여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 스스로 목숨을 버리시는 예수님 !!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은 스스로 죽는다고 해놓고는, 그런데 막상 제자들은 모두 다 배신토록 하고 도망치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을 철학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해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그렇게 예수님은 자기 배신에 고맙게도 택한 백성들을 끌어당겨서, 그 배신의 어두운 공간에 우리로 하여금 휘말리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3장에 의해서 우리들이 왜 버림을 받아야만 하는지, 그 원초적인 의미까지도 모두 다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기를 버려야만 !!

그것이 바로 지난주일 오전설교였는데, 즉 버림을 받은 자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하면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는 그러한 하나님과 같은 안목을 가지고서,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버릴 차례이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목으로 자기 자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안목으로 자기를 버리니까,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라고 하는 자화자찬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자랑거리만 가득하게 차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버린 것인가? 오히려 더 끌어 모은 것이지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숨어있는 X를 이해하는 것은, X로 인하여 주어지는 자신의 배신을 수긍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예수 앞에 서면 예수로 인하여 모든 것이 노출되어진다. 예수는 곧 ‘타인’으로서의 시선이며 그 타인으로 인해 ‘나’가 규정된다. 불교의 허점은 그 타인의 시선을 삭제하는데 있다. 즉 타인 없는 가운데 자아마저 없애려고 한다.

이렇게 인간은 예수님을 배신하는데 자기가 가담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자가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진짜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젝에 의하면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예수님 앞에서 서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는 어떠한가? 그런 자아마저도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불교의 ‘무아론(無我論)’이고 말이다.

◈ 엄마가 왜 따로 놀지?

자꾸 제가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는데, 어렵고 또한 중요해서 말이다. 아무튼 사람은 태어나서 엄마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데, 그렇게 엄마가 있는 것을 두고 ‘주이상스(jouissance)’ 라고, 굳이 번역을 하자면 ‘향유’, 혹은 ‘즐김’ 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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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이상스(jouissance) - 라캉의 주이상스는 우리나라에서 예전에는 희열, 향락, 향유, 절대쾌락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었는데, 최근에는 향락으로 통일되고 있고, 아예 주이상스를 그대로 쓰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enjoyment’라고 번역하다가 아예 브루스 핑크는 주이상스라고 써버리죠. 주이상스는 상징계(법, 언어, 이성, 제도)를 넘어서는 즐거움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무의미한, 고통스러운 즐거움이죠. 목표를 향해 힘든 노력을 할 때 힘든 노력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죠? 또한 사람들이 엽기적이고 불쾌한 장면을 보려고 할 때 그것은 이성과 제도의 관점에서는 전혀 즐거움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묘하게 끌리죠. 그게 바로 주이상스입니다. 최근 조안 콥젝과 지젝 등은 주이상스를 죽음충동의 핵심으로 보며(왜냐면, 주이상스의 추구는 종국적으로 이성과 현실을 넘어서는 죽음의 영역이므로) 칸트의 철학과 연결시킵니다. - 네이버 ‘질문과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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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아이가 나중에 가만히 보니 엄마가 따로 논다는 것이다. “야야, 오늘은 곗날이니 니 혼자 집에 좀 있어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아이가 처음에는 ‘엄마, 엄마’ 라고 하다가, 그 엄마도 자기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알 때, 그것을 ‘거세’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 욕망이 그만 거세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는 아기” 라고 하다가, 그만 그 주체가 와장창 모두가 다 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엄마에게서 인정을 받는 ‘나’이었는데,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디서 그런 ‘나’를 찾느냐는 말이다. 그렇게 엄마가 따로 나가서 노니까 말이다.

◈ 그러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엄마가 떨어져 나가버리면, 그렇게 깨어진 자기 인생을 어디서 다시 같다 붙이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엄마를 대신할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그동안 엄마와 같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결손이 가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 라는 것이 타인의 욕망이 가득 차 있는데, 그래서 자기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전부가 다 남의 것이지 말이다. 그렇게 남의 것으로 땜질을 하다가, 그 남의 것이 그만 떨어져 나가버리니, 자기 것이 그만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만약에 50대 주부가 자아를 발견했다고 하면 무슨 의미인가? 지금까지는 한 남자의 여자로서 살다가, 그만 남편이 따로 노니까, 자기의 것이 그만 없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것이 자기에게는 곧 죽음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빗금을 긋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옛날에 사냥꾼이 사냥을 하고 나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正’으로 표시를 하는 것처럼, 빗금을 그어서 그렇게 표시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은 자기는 죽은 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미지의 희망에 기대를 걸고 !!

그런데 그 죽은 주체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데,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지만, 그 죽은 주체라고 해도 그 속에 욕망은 살아있기 때문에, 그 욕망이 자기로 하여금 새로운 향유, 즉 자기를 기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을 찾아서 헤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헤매는 것이 삼각형인데, 즉 아직도 자기가 모르는데, 그런 미지이지만 뭔가 자기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이 자기를 살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그렇게 자기의 그 쪼개진 주체를 알 수 없는 희망이 살리는데, 즉 미지의 희망이 자기를 살릴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오늘 하루도 힘들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말이다.

◈ 그런데 인간은 왜 죽는가?

그런데 여기서 라캉은 뭐라고 하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왜 머리카락은 빠지느냐고 말이다. 즉 왜 늙어 가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미지의 것은 미지의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곧 ‘죽음’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를 기껏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여기는 바로 그 여김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죽음이라는 얼굴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에게는 생식본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죽음을 피해서 도망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이 나타나면 “저를 어서 드세요” 라고 하는 인간은 없는데, 즉 그 어떤 인간도 무서움을 그대로 받아들일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조건 도망을 치게 되는데, 그것을 ‘가두리’ 라고 번역을 하는데, 참 멋있는 번역인데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결국은 미지의 죽음에 가두어져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도망을 쳐도 그것은 뺑뺑이를 돌뿐이지, 그렇게 다시 돌아올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드디어 신을 !!

그렇다면 인간이 그 죽음에 굴복하는가? 그것이 아니라, “내가 왜 죽는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 라고 하면서, 그 죽음마저도 극복하려고 등장시킨 것이 바로 ‘신’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신에게 무엇을 붙이는고 하니, 신은 불멸하다고 하는데, 그것을 신에게 대우를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신을 섬기게 되면, 자기 안에 그 신이 들어오기에, 자기도 역시 영원히 산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신은 인간의 장식품이 되었는데, 결국 “내가 신이다” 라고 하니 말이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가지고 유혹한 것인데, “니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신처럼 될 수 있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아귀가 척척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아무리 돌고 돌아도, 마지막에는 “내가 신이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피’ 라는 책의 결론이라는 말이다.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그러니 인간이 그 무슨 짓을 하더라도, 팔을 젓고 옷깃을 스칠 때마다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나는 신이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인간은 백 날을 돌아다녀도 인간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마귀의 말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마귀의 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두고서 ‘버림받았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버림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뭐라고 하셨는가? “아버지여,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님의 그런 십자가에서 모습이 바로 우리 인간들이 그렇게 평생을 뺑뺑이를 돌아도 그 자리라는 것을, 그것을 한꺼번에 다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죄인이 하나님에게 당할 마지막 대우인데, 즉 지옥에까지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성경말씀에서 전혀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그런 타인의 시선을 없애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도 없어지니 말이다. 그러니 불교에서 주장하는 것이 ‘공즉시색, 색즉시공’ 이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즉 “모든 것은 나타난 것이고, 그 나타난 것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불교의 허점은 그 타인의 시선을 삭제하는데 있다. 즉 타인 없는 가운데 자아마저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이 타자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레비나스나 데리다의 타자성이 문제가 된다. 그들이 주장하는 타자성이란 지루한 동일성을 지닌 타자이다.

◈ 아니, 타자가 지루한 동일성을 ??

그러니 라캉이나 지젝이 볼 때, 레비나스나 데리다가 이렇게 타자가 항상 동일하다고 본 것이 바로 문제라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타인을 ‘나’ 때문에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 레비나스를 공부하면서, “야, 어떻게 유대인 철학자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 아는가?” 라고 했는데 말이다.

◈ 그건 십자가가 아니야 !!

하지만 지젝에 의하면 그것은 십자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자기가 비참하게 된, 즉 자기의 비참한 모습을 긍정하기 위해서 새로 등장하는, 즉 비참해진 자기 몰골을 가장 이상적인 자기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걸쳐놓으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아까 인간은 변하지 않고 엄마 품에서 늘 동일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영원히 동일화되고 싶은 것을, 인간은 무엇으로 대체하는고 하니, 일그러진 노숙자 모습이나 매 맞는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형편을 그런 식으로 겸손하게 봐준다는 것이다.

◈ 당신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 !!

예를 들어서, 거지가 와서 한 푼을 달라고 하면, “당신의 모습을 보니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네요. 여기 가지고 가세요” 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동정심’ 이라고 하는데, 즉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것, 즉 ‘UNDERSTAND’ 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 끊임없이 향유를 찾아서 !!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라캉은 피식 웃을 수밖에는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에 거지가 와서 동냥을 하면, “당신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네요” 라고 하는데, 또한 거기보다 더 망가진 사람이 와도 “당신은 내 모습이요”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런 타인의 망가진 모습까지도 고상하게 등급으로 매길 정도로 인간은 거기서, 유쾌, 즉 자기가 그만큼 훌륭하다는 것에 대해서 즐거움과 행복감을 찾을 정도로, 그렇게 인간은 항상 항유를 누리고 찾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렇게 향유를 하는 것은 돈이 많아서 어떻게 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지로 살기, 도피생활을 하기, 남에게 얻어터지기, 이런 것을 매조키즘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까지도 자기의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다. 즉 비참하게 되는 것도 괜찮은 취미생활 가운데 하나라는 말이다.

그런 것을 ‘성도착증’ 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까, 인간의 신체기능 외에 다른 것에 성적인 즐거움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 아내나 남편에게 만족하지 못할 때는 뭔가 다른 것으로 대신해서 푼다는 말이다.

◈ 뜨개질을 하는 것이 성행위 ??

그래서 프로이트는 여자가 뜨개질을 하는 것이 성행위라고 했는데, 조금은 심한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한데 말이다. 그것도 일종의 도착증이라는 것이다. 뭔가 즐겨야 하는데, 그런데 남편에게 그런 즐거움을 느끼지를 못해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 그것이 성적인 도착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는 아니라고 부인을 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자기 꿈이 그런 것들이 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낮에는 의식이 있어서 눌리고 있으니 그대로 잠재해 가만히 있다가, 그런데 밤에 의식이 잠들고 나면 그렇게 눌려져있던 자기의 본색이 마구 드러난다는 것이다. 의식이 통제를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 꿈에 나타난 것이 성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성적인 것을 나쁘게 볼 게 아니라, 인간의 동물적 생존본능이라고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그런 꿈을 알게 모르게 꾸고 있지 않는가?

◈ 어린아이가 어른의 스승 !!

그래서 어린아이에게 윤리나 도적을 이야기할 수 없는데, 그런데 그런 어린아이가 어른의 스승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감추고 있던 것들을 아이들을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다 해버리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어도 아이는 옆에서 마구 운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안 된다고 타일러도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6.25때 피난길에 숨어 있다가 아이가 우는 바람이 들켜서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자기가 울고 싶으면 그냥 운다는 것이다. 전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말이다. 심지어 강아지보다도 더 못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직도 아이들에게는 무의식의 요소가 많이 남아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 꿈속에서 왜 날아다니는가?

어른들의 경우에도, 꿈속에서 마치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그렇게 날아다니고 하는데, 그것은 평소에 그만큼 날고 싶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 왜 날고 싶어하는가? 그것은 바로 분통이 터지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분통이 바로 자기가 만족하기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데, 그러면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기와 그것을 일치시키면 만족하는데, 그런데 그들이 자꾸만 도망을 가니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는 그 놈이 있어서 자아를 이루는데, 그런데 그 놈이 그만 떠나버리니, 그렇게 그 놈을 대신해서 메워줄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다른 것으로 임시방편으로 메우다보니, 그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니 꿈속에서 붕붕 날아다니고, 또한 총싸움을 하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기를 통제해도, 언제나 통제가 되지 않는 영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무의식이며, 그 무의식은 인간의 동물적인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것이기에 도저히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강의를 더 하면 소화가 안 되지 싶어서 좀 남겨두고, 다음시간으로 넘기도록 하겠는데, 괜찮겠지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십자가를 왜 지셨는지 그것을 제대로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땅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베드로나 사도바울이 구원을 받는 것처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03,01 오후 9시 55분에 마침.

오늘 설교는 너무 짧았다 !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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