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 2" 25-29 (다윗의 예언)
Re..행 2: 25-29 (다윗의 예언)
이름 : 이근호(IP:)
다윗의 예언
2003년 11월 5일
본문 말씀:사도행전 2:25-29
2:25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26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사람은 말씀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말씀을 갖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말씀이 그 사람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성도의 상태입니다. 불신자의 마음은 그 중앙에 그저 욕심으로만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마음 중심에 말씀이 놓어 있어 언제든지 그 말씀으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도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언젠가는 말씀으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질서가 잡혀 있습니다. 때로서 세상 만사가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빗나가는 것 같지만, 다시금 말씀으로 예언된 그 상태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는, 그 우주의 질서가 되는 말씀이 마음 중심을 장악하고 있는 성도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니 천사도 그 신분을 흠모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성경공부 한다고 이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가 먼저 그 사람에게 찾아와서 그 사람을 말씀의 세계 안으로 집어 넣고 계시는 겁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입니다만, 말씀의 사람은, 걸을 때도 말씀이 출렁거려야 하고, 뛸 때도 말씀이 출렁출렁대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오직 말씀의 위력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만약 성도이 시신을 두 동강 내었을 때, 마치 그 가운데 드러나지 않는 말씀 자체가 발견되는 그 가상적인 그림을 연상할 정도로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참된 신앙인들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먼저 찾지 마시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에게서 찾아보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다윗의 예언에 대해서 흔히, 다윗 개인적인 사견이 개입된처럼 간주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무려 1000년 후의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허풍이 심해도 이런 식으로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다윗은 1000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1:10-11에서 그 문제가 풀립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여기서 일단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단어에 주목 해봅시다. 보통 사람이 결정할 때는, 본인의 의지와 판단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영력이 아니라 다른 외부의 힘이 작용해서 판단한다고 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곧이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바로 이 점에 대해서 검색하신다는 겁니다. 즉 "네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느냐?"를 가지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너는 내가 준 것을 갖고 있느냐?"고 묻으시면서 심판하시는 겁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성도가 불신자와 차이나는 가장 근본적인 사항은, 성령을 받았다는 겁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심판 할 때, 바른 선택을 하겠다고 나서봤자,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의 선택을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구원될 자에게는 심판이 오기 전에 먼저 '성령'을 보내셔서 그 사람을 장악케 하시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성령의 보증금'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보증금이란 일종의 구원에 관해서 하나님편에서 제공하신 계약금이라고 보면 옳습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기에 구원이 되는 겁니다. 성령없이 자력으로 구원되는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령 안에는 무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수님의 '주 되심'에 의한 예수님의 속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 가졌던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성령님은 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오직 성도에게는 무상의 선물이 그대로 주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성도는 예수님을 비로소, '구세주'로 인정하게 되는 겁니다.
자신의 구원은 결코 자기 노력과 자신의 염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게 됩니다. 구세주란, 진정한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도 자신은 그 임금님의 영원한 종이 됨을 고백하는 겁니다. 다들 잘난 맛에 살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특정 인물을 자신의 영원한 임금으로 인정하고 자신은 그 분의 종으로 전락시키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찾아와서 생긴 사랑으로만 성사되는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상사병을 앓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 분이 너무 보고파서 밥도 제대로 먹히지 않고 밤에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 정도로 누구를 그리워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그런 상사병을 앓는 사람의 특징은, 세상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모든 일도 다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는 그 사랑의 예수님을 나중에 가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듯이 또렷하게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불신자 고3학생들에게는 본인에게 대입학력 수능시험이 크게 중요한 사건이라고 여기겠지만 성도에게는, 떠나야 될 이 세상에서 그저 한 날을 보낸 것이 불과합니다. 참 힘들고 수고로운 하루 일과를 보내지만 붉은 태양은 아무런 말도 없이 오늘날 서산넘어 자기의 얼굴을 숨기게 되는 법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소망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자에게만 생기는 일입니다. 세상적인 출세나 성공 조차도 이런 사랑 앞에서는 빛이 잃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 올 때는, 모두들 세상에서 한이 맺힌 것이 있어 그것을 들고 오게 마련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이 소망하는 그 무언가를 충족시켜 주기를 기대하고 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7절을 보세요.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은 어떤 식으로 신앙생활을 했단 말입니까?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영을 받았다고해서 신나게 세상을 활개치며 산 것이 아니라 늘 생명의 위협을 만나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왔습니다. 시편의 대부분이 그런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에서 세상에서의 평안과 행복과 안일함을 얼마나 소망했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그런 내용이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앞으로 하실 일에 관한 것입니다. 즉 인간들은 하나님에게 요구하기를 이 지상에서 오래 살기를 요구하지만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겠다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졸지에 죽더라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습니다.
즉 영생입니다. 이 영생이 확실하게 주어지는 이유는, 바로 오늘 본문에 담겨 있는 내용대로, 장차 오실 그 누구 때문에 생기게 된 현상입니다. 다윗은 말씀의 사람입니다. 그의 입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 대해서 예언하는 겁니다. 그 메시야의 핵심은 그 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분이라는 점입니다.
다윗은 결코 개인적인 사견을 과도하게 섞어서 예언한 게 아닙니다. 자신이 말씀을 관리하거나 조절한 위치에 있지 않은 겁니다. 말씀이 요구하는대로 그는 예언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만 나온 것이 바로 메시야의 고난과 그 영광성입니다.
베드로전서 1:11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해두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윗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성령으로 예언했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는 이미 오신 분이 어떻게 사셨다가 어떻게 부활하셔서 우리 영생의 기초가 되었는가 하는 점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개척교회 하는 목사가 자기 뜻대로 매사가 안되고 소위 교회가 부흥되지 않으니 심한 회의와 원망과 불안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향하여 하소연을 하게 됩니다.
자, 이런 하소연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과 상호 비교해 보세요.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다윗은 그토록 수난과 고생으로 범벅이 된 인생을 살면서도 그는 여전히 장차 오실 메시야에 초점을 맞추어서 예언해 내고 있습니다.
만약 그 개척교회 목사가 같은 성령을 받은 자라면 다음과 같이 고백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저는 비록 목회조차 제대로 못하는 인물이지만, 예수님이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만을 의지합니다. 저에게 이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주신 것도 다 예수님 덕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분은 비록 세상적인 눈에서 볼 때 목회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시대 최고의 예언자요 성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다윗처럼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령받은 성도임을 다시금 분명히 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우리가 죽은 자에 불과한 존재임을 알게 해주옵소서. 단지 살아있는 이유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과 의를 증거하기 위함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