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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요리문답공부 25 (20030608)자유게시판히브리서

소요리문답공부 25 (20030608)

이름 : 오용익(IP:211.194.56.66)

소요리문답공부 제 25강 (이 근호목사, 2003년 6월 8일, 우리교회)

구원론 계속합니다. 다시 한 번 쓰겠습니다. 여덟가지이기에 여러번 해도 기억이 잘 안나게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르심. 두 번째는 거듭남, 세 번째는 회개, 네 번째는 믿음, 다섯 번째는 칭의, 여섯 번째는 양자, 일곱 번째는 성화, 여덟 번째는 영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할 때는 이런 관점, 이런 목적으로 구원한다’는 겁니다.

양자되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믿음 주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회개케 하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거룩 되도록 하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부르시기 위해서 구원하시고, 이런 취지에서 하나님께서 다가오십니다.

그런데 이 구원론의 모든 취지는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오직 성령의 일하심, 이것을 역사(history가 아니고 work)라고 하는데, 그 성령의 일하심으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다루신다’고 아시면 됩니다. 부르심이란 우리를 불러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불러주시고, 중생이란 것은 육의 실체를 비로소 아는 것입니다.

일단 육에서 빠져나와 보니까 ‘전에는 육이라는 것이 파출소 안 끌려가고 감옥에 안가면 죄인 아닌 줄 알았는데 성령을 받고 보니 밥 먹고 살려고 하는 그것도 죄구나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하는 원리에 의해서 내가 살고자 함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고 내가 살고자 하는 그것조차 죄악된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항상 산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서 살기 때문에 자기이름을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우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일하시는데 이것이 육적인 것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은 배제되고 자기 자신이 우선 살고보자는 식으로 나가는 것,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거지요.

회개라는 것은 사는 방향이 날 위해서 사는 방향에서부터 거꾸로 가는 거지요. 원래 내 자리 죄인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회개입니다. 사람이 죄를 알아야 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래 나의 자리, 그 자리란 아담이 죄를 지었던 자리입니다. 믿음이란 ‘내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그것이 믿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을 믿느냐가 믿음이냐 아니냐를 결정합니다. 예수 믿으면 믿음이고 예수 믿는 나의 믿음을 믿으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믿음이란 그 내용물이 예수님을 향해 있을 경우에만 그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더니만 예수 잘 믿게 되었다’라고 믿는 것은 믿음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자기 과시가 되겠지요.

이렇게 네 가지를 했습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칭의’입니다. 칭의란 말도 잘 못 듣던 용어입니다. ‘칭’(稱)이란 ‘불러준다’는 뜻이고 ‘의’(義)라는 것은 ‘의롭다’는 말이니까 칭의란 ‘의롭게 하심’입니다. 그런데 ‘칭’의 의미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의롭게 인정함’이라고 풀이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천국에는 죄인이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원래 사람의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따로 있었고 사람의 나라가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은 원래 사람의 나라에서만 살게 되어 있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은 사람의 나라이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사람의 나라 중에서 살만한 곳이 에덴동산이었지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나라는 아니었어요. 어디까지나 사람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짓고 난 뒤에는 이제 그 살만한 것조차도 완전히 뭉개졌어요. 그 에덴동산이 있던 그 자리가 바로 전쟁이 일어난 이라크의 바로 그 장소가 아닙니까? 지금 이라크는 엉망진창이죠. 결국 에덴동산이 있던 그 토지마저 새 하늘과 새 땅에 의해서 완전히 뭉개지고 없어져야 됩니다.

마치 종이에 불을 붙이면 공중으로 솟구쳐서 완전히 흩어져 사라지는 것처럼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모든 땅과 하늘은 종이축이 말려 올라가는 것처럼 불붙어서 사라져 버린다’(계 6:14,15)고 합니다. 히브리서 1장 10-12절에 보면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갈 수 있는 자격이 안 됩니다. 왜? 인간이기 때문에. 천국은 하나님과 천사들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천사들만 사는 세상에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인간들도 천국에서 살 수 있는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그 전에 다윗이랄지 먼저 죽은 사람들은 그냥 음부에 있다(행 2:29)고 했습니다.

그런 것이 상당히 어려운데 그러면 그들은 음부에만 있고 천국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들은 음부에서 대기상태에 있었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뭐냐? 천국이 천국답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비로소 가능한 나라입니다. 그것이 상당히 신학적으로 어려운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가면 그만인 줄 알지만 요한복음에 보면 분명히 처소를 마련해 줘야 천국이 됩니다.

요한복음 14:2,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신 나라에는 인간이 들어갈 수 없었고, 사람이 살수 없는 나라인데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먼저 그 나라에 앉으심으로 인간들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나라의 특징은 어떤 경우라도 죄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천국, 이것은 도저히 말이 안 됩니다.

남자인데 여자? 그것도 말도 안 되지만 성전환을 해서 말이 되는 세상이 되었지요. 세상에서는 이렇게 말이 안 되는것이 될 수도 있지만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란 죄가 천국에 스며들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 의로운데 약간의 죄? 그것도 안 됩니다. 완벽한 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고 순수한 의가 아니면 천국은 도저히 들어오지도 못하고, 들어가는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함으로 천국 간다는 것은 태평양 바다 밑바닥에서 혼자 헤엄쳐서 올라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완전한 의는 인간세상에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인간은 날 때부터 죄를 지었고 날 때부터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죄를 안 짓는다고 해도 절대 의롭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이 좀 커서는 ‘저것이 나쁘다’라고 해서 자기관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릴때는 분위기에 잘 편승합니다. 특히 학교에서 왕따 같은 일이 잘 일어나는 이유는 그것이 옳은지도 모르는 채 분위기에 편승해서 다수의 편에 서서 미운 놈 때려주기 같은 것에 휩쓸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특히 어릴 때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집안 뒤져서 돈 훔쳐가고 특히 가게 하는 집은 돈을 자꾸 빼가니까 수지타산이 늘 안 맞고 집에서 문방구 하면 연필 볼펜 가져다가 친구들 다 줘버리니 남는 게 없고, 엄마가 식당하면 친구들 우르르 데리고 와서 공짜 밥 다 먹어버리니 또 남는 게 없고 그러면서도 그게 죄인 줄도 모르죠. 그래서 어떤 인간도 그 이력서가 완벽하게 흠잡을 데 없도록 완벽한 의로움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커서도 마찬가지고 연세 많아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구원하고 싶어도 의가 없어서 구원을 못하는 거예요. 그냥 복주면 될 것이 아닌가, 하는데 복이라는 것도 구약에서 보면 의가 있어야 복이 옵니다. 구약에서 어렵고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구약의 시편의 끝부분에 보면 복이 나오는데 그 복은 반드시 그 앞에 제사를 드려서 응답을 받는 경우에 의롭다고 인정을 받아서 그 경우에만 복이 오는 거예요.

제사 먼저 드리고 그 제사를 바탕으로 그 다음에 기도할 자격이 있습니다. 제사응답 안되면 기도도 응답 안됩니다. 제사하고 응답받고 기도하고 그 응답으로 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흔히들 ‘기도하면 복이 온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의로움이 있어야 응답이 됩니다. 야고보서에 의인의 간구는 역사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5:15,16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옛날 사람들 마냥 너무 복, 복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름도 복(福)자 집어넣어서 짓고 하는데, 성경에서 복이란 의로우면 저절로 복이 오게 되어 있어요. 어떤 사람은 과거에 자기가 잘못한 것 가지고 너무나 주접떠는 사람 있어요. 그것도 잘못입니다. 과거에 그런 행동 안했으면 복 받겠습니까? 아닙니다. 과거에 잘못된 것을 반성하는 것은 좋아요. 그것은 훌륭한 자질입니다.

그러면 그런 짓 안했으면 나머지 짓은 다 괜찮은 짓인가? 역시 아닙니다. ‘하이고, 내가 거짓말만 안했어도 복을 받았을 것인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복이라는 것은 완벽한 의가 아니면 복이 안와요. 왜냐하면 복이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의로움을 확산시키지 나쁜 짓을 확산시키는 힘은 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의라는 것은 완벽해야 한다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왜 복이 안오는가? 의가 없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바가 안됩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에 보면 ‘미리 아신자를 부르시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구원론에서 하나 빠진 것이 있다면 ‘미리 아심’입니다.

‘예정하심’인데 이것은 이미 우리가 공부했는데 다시 정리해보면 미리 아신자가 따로 있어요. 영생주시기로 작정한 자가 따로 있습니다.(행 13:48) 미리 아신자만 불러요. 미리 모르는 자인데 ‘쟤를 한번 불러서 구원시켜 볼까?’ 이런 하나님은 없습니다. 미리 딱 챙겨놓은, 미리 딱 찍어 놓은 사람만 불러내요. 부르신 자에 한해서 불러주면 거듭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칭의’라는 것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안 자가 있기 때문에…, 잘 들어보세요. 지금 아주 골치 아프고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칭의’ 곧 의롭다 하신다는 것은 미리 예정하신자가 있기 때문에, 미리 예정하신 그 사람에게 의롭다 하심을 도배하기 위해서 실어놓기 위해서 칭의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칭의는 뭐가 빠지느냐 하면 행함으로 칭의가 안되는 거예요.

왜냐? 우리가 행하기도 전에, 이 땅에 출생하기도 전에 미리 안자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냥 짐 싣듯이 하나의 짐으로 실어놓기 위해서 예정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칭의가 되는 거예요. 이걸 사람들이 잘 몰라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하나님 믿고 잘 살아 보려고 애를 썼는데 잘 안되더라.’

잘 안되니까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하나님, 제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군요. 다른 대책이 없습니까?’ ‘그래, 네 힘으로는 안되지?’ ‘안됩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를 통해서 공짜로 되게 해줄게’ 이렇게 해서 그냥 차후 조치로서 대책으로서 그 사람을 의롭게 한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리되어 버리면 칭의를 얻는 근거가 뭐가 되느냐 하면 ‘나, 회개했잖아. 나 부족한 것 알았잖아’ 가 칭의의 근거로서 들어가게 된다 이 말입니다.

‘나 부족하잖아. 내가 못난 것 알았잖아.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잖아. 그래서 차후 조치로 칭의 해줬다’고 이렇게 되어 버리면 칭의 이전에 인간이 부족한 것을 깨닫는 것이 칭의를 받는 하나의 유발적인 원인으로 작용해 버려요. 그렇게 되어 버리면 목사가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하는 일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회개하세요. 회개하면 복받습니다.’ 이래 된다 이말이죠.

그러면 그 교회는 이제 금요철야기도회 하면서 막 조지기 바쁘죠. ‘회개하라. 죄지은 것 다 끄집어내라. 그래서 복받은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다’라고. 하나의 삐딱한 신학이 실제 목회에서 얼마나 잘못되게 활용되는가를 유심히 살펴서 알아 놓아야 돼요. 그러면 왜 그런 신학적인 아이템을 끄집어 냈는가?

그것은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교회 사람들을 어떻게 가지고 놀것인가, 그것을 먼저 염두에 두니까, 기존의 교인들이 잘난체를 하거든요. ‘나도 복음 안다. 나도 구원받았다’ 하고 잘난체를 하니까, 잘난체를 한다는 말은 목사의 손아귀에서 떠난다는 그 말이거든요. 그러면 목사의 권위가 없어지니까 그 사람을 내 맘대로 주물렀다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복음도 알고 뭘 알지만 아직도 여러분에게 목사가 있어야 되는 이유는 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여러분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잘못을 지적하거든 회개하셔야 그제서야 복이 옵니다.’ 그 뒤에 붙는 말이 있어요. ‘내가 지적하는데 말을 듣지 않다가 저주받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우리가 죄를 깨닫느냐, 못깨닫느냐 그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의 예정하심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속성을 거기에 완전히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 ‘이제부터는 너의 죄악된 속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롭다 하는 속성 그것으로 완전히 포장된 채 그렇게 살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칭의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칭의가 왔기 때문에 뭐가 붙겠어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겠지요. 이 능력이 뭐냐 하면 ‘어떤 죄를 지어도 나는 의롭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보통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식을 가졌다는 것은 로또 복권 당첨된 것보다 더 좋은 거예요. ‘어떤 죄를 지어도 나는 의롭다 함을 받는다’ 하는 것.

마치 살인강도처럼. ‘내가 한평생 살인 강도짓을 했지만 오늘밤에 내가 낙원에 가게 된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칭의의 의미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칭의란 나의 행동과 무관하게 그냥 주신 것이다’라는 것을 가장 바르게 알 때에만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따라서 이런 고백을 할 줄 모르게 되면 이렇게 돼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만 그 다음에 저주가 오느냐 축복이 오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행동여하에 달렸습니다’ 라는 이 엉터리같은 말에 교인들이 주눅이 들어서 꼼짝 못하고 ‘엄마야, 그럼 어제 나 방에 들어갈 때 신발 아무데나 마구 벗어 던지고 들어 갔는데 그것 때문에 어제 학원에 가서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성적이 떨어졌구나.’ 온갖것과 연관을 다 시켜 버립니다.

‘맞아. 그 때 내가 오줌 누고 화장실 물을 안 내렸는데 그것 때문에 집 앞에 쓰레기 내놓은 것 안가져갔고 그 와중에 비 다 맞혔구나. 앞으로는 오줌 누고 물 꼭 내려야지.’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연관시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심리가 어느정도 약하냐 하면 ‘오늘 내가 교회 지각했는데 세상에, 교회출석 늦게 하니까 이 병 마개가 안 열리네. 이것은 분명히 내가 교회 늦게 온데 대해서 벌 받아서 안 열리는거다.’ 온갖것과 다 연관시키는 거예요.

칭의라는 것이 나의 요구사항이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사항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이거 모르면 안돼요. 우리 요구가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라는 것이 거기에 나옵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하나의 수단이죠. 하나의 그릇이죠.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그릇으로 사용하여,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의인되는 것은 내 요구가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가 우리에게 입혀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의로움에 대해서 자기행함을 연관시키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남에게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첨부파일 : 소요리25(030608).hwp (69.5K), Down: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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