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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6대구강의14-이삭전쟁,야곱전쟁(추가)1자유게시판사도행전

06대구강의14-이삭전쟁,야곱전쟁(추가)1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6 대구강의 14 - 지옥의 하나님 15

06,11,0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이삭의 전쟁 !!

오늘은 교재 47페이지에 있는 '이삭의 전쟁'을 하겠는데, 먼저 창세기 22장 17절의 말씀을 살펴보자.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여기에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라고 하는데, 이것을 기존 목사들도 설교시간에 많이 이야기하고, 또한 교인들도 또한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아하,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하시는구나" 라고 말이다. 여기서 축복이라는 것은, '팍팍' 늘어나는 것인데, 전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를 하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먹고 살아가는데 풍족하도록 그렇게 해준다는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보니 말이다.

왜냐하면, 옛날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자식을 많이 낳는다는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자식을 많이 낳도록 허락해주셨다고 하는 것은,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자식이 많다고 하는 것은, 땅 자체가 아브라함의 편이 되어서, 아브라함이 요구하는 데로,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데로 충족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브라함에게 가는 곳마다 축복을 해주신다는 것이 전제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

그런데 여기 17절 후반부에 보면 축복을 해주는 것 가운데 무엇이 있는고 하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라는 것이 축복으로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이런 말이 왜 여기에 들어가느냐는 말이다.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라고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자식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자기 가문을 중심으로 할 때는 납득이 잘 되는데, "아하, 하나님께서 우리 가문을 축복해주시는구나" 라고 말이다. 그렇게 평화롭게 잘 살면 되지, 그런데 대적이 어쩌고 하면서 꼭 전쟁터에 나가야 되고 싸움을 벌려야만 하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싸움에서 승리하고 패배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싸운다고 하는 것 자체가 괴롭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이나 풍성하게 주셔서, 밥이나 잘먹고 평화롭게 살도록 해주는 것이 축복이지, 왜 대적을 문을 열어서, 그렇게 시비를 걸어서 전쟁을 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즉 전쟁을 해야만 하는 존재로서, 그것이 축복된 사람이라고 하는 뉘앙스를 풍기느냐는 것이다.

◈ 목사님, 전쟁이라니요?

그래서 오늘날 교인들에게 목사가 "예수님을 믿고 천당에 가세요" 라고 하면, 교인들은 "아멘" 이라고 대답을 하지만, 그러나 전쟁을 해야 한다고 하면, 교인들은 엄청나게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냥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면 되지 무슨 전쟁을 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 목사 :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천당에 가세요
* 교인 : 아멘.
* 목사 : 그런데 전쟁을 해야 합니다.
* 교인 : 예? 전쟁을 하라고요?
* 목사 : 예. 그렇습니다. 그것도 영적 전쟁을 말입니다
* 교인 : ? ? ?

◈ 왜 영적 전쟁을 해야 하는가?

에베소서 6장 12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는데,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러한 악의 영들과 싸워야만 하는가?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냥 이 땅에서 잘 먹여주고, 나중에 천당에서 만나자고 하면 되는데, 왜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전쟁을 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증인' 이라는 것인데, "너나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너를 너 되게 하신, 그분이 바로 네 안에 있고, 또한 네가 그분 안에 있다" 라는 것의 증인이 되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을 증언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된다고 한다는 것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성도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 되는 싸움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전쟁인데, 그것이 싫다고 해서 회피하고 벗어난다면 당연히 신자가 아닌데, 물론 신자라고 하면 자기 마음대로 벗어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 인간이 원하는 전쟁이 아니라 !!

그렇게 보면, 창세기 22장 17절 말씀을, 앞에서는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라고 하면서 얼른 보고 지나가려고 하다가, 뒤에 나오는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라는 부분에 가서는 "아하, 이삭이 본인이 원하지도 않는 전쟁에 휘말리는 입장에 놓여있구나" 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삭을 찾아오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전쟁에다 집어넣는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두 말할 것도 없다는 말이다. 성도라고 하면 당연히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여기서 "대적의 문을 얻고" 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 당시의 전쟁은 성채, 즉 요새인데, 그 성채 중심으로 전쟁을 벌리는데, 그러니 상대방의 문을 얻는다는 것은 곧 그 성문을 열고 쳐들어가서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지금 교재 47페이지의 '이삭의 전쟁'을 하고 있는데, 혹시 "존재란 무엇인가?" 라는 강의를 지난 시간에 했나요? (예, 했습니다.)

◈ 왜 '리브가'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아무튼 여기서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라는 말씀이 곧 "원수의 성문을 열어 젖힌다" 라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하면 "이 놈들아, 문을 열어라" 라고 하면 되는데, 왜 그런 상대방 대적의 문을 여는 일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왜 '리브가' 라는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만이 이 대적의 문을 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대적의 성문을 여는데 있어서, 그냥 문을 열면 되는데, 왜 특별히 지정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이, 그것도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여성의 몸에서 말이다. 왜 그런 자식이 등장해야만 문이 열리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적이, 그 원수가 도대체 어떤 원수냐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도대체 어떤 적이기에,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출생되는, 즉 리브가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만이 이길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 인간들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전쟁이 아닌데, 그래서 혈과 육이 아닌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한 영과의 전쟁이란 말이다.

◈ 우리는 영적 전쟁을 감도 못 잡아 !!

그러니 우리 힘으로는 이 전쟁이 밀려와도 그 의미도 모르고 이길 수도 없다는 것이다. 아예 자기가 전쟁 중에 있는 줄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인 전쟁을 알려고 하면 우리에게 영적인 능력이 임해야, 그때부터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좁게 생각하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자기 자손에게 국한되어 있다고 여길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영적으로 생각하면 어떠한가? 그 수많은 자손이 그것이 자기의 능력으로 잉태되는 자식들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용해서 뽑아내는 기적적인 자식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서, 그 전쟁의 전리품으로 주어지는 말이다.

◈ 이스라엘은 곧 전쟁의 전리품 !!

바로 그러한 자식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이삭의 자손이고, 또한 야곱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원리대로 하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은, 즉 본질이 무엇인고 하니, 전쟁의 결과로 포획된 노예들을 모아놓은 집단임이 여기서 암시가 된다는 말이다.

◈ 이스라엘과 어린양의 피 !!

오늘 제가 교재 '지옥의 하나님'을 하는 차례가 아닌 줄 알고 다른 것을 준비해왔는데, 요즘은 정신이 영 왔다갔다하는데, 그렇다면 오늘 어디를 할 순서인가요? 교재 54페이지 '이스라엘과 어린양의 피'를 할 차례라고 하는데, 맞아요?

일단 교재 54페이지를 한번 살펴보자.

** [이스라엘과 어린양의 피] - 이스라엘 국가가 세워진 동기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과 그 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찬양에 있었다.

여기에 보면 '유월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출애굽기 설교를 하면서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 더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즉 문설주와 문턱에다가 어린양의 피를 바르는데, 그것은 이 집안에 대한 모든 책임은 어린양이 질 것이니, 죽음의 사자는 여기에 개입하지 말고 비켜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 유월절, 어린양이 책임을 지고 !!

그러므로 죽음의 사자와 어린양의 계약인데,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말이다. 즉 희생을 당한 어린양과 심판을 해야하는 죽음의 천사와의 계약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니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 어린양이 책임을 지고 모든 운명을 다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집안에서 살아남은 장자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바로 어린양의 소유가 된다는 말이다.

어차피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의 천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나, 어린양에게 빼앗기는 것이나, 자기의 자식이 아닌 것은 뻔한 이치인데, 아무튼 어떻게 하든지 간에 자기 자식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유월절 행사를 행할 때 무엇을 하는고 하니, '할례'를 행하는데, 그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유월절에 피를 바른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그렇다면 이렇게 할례를 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먼저 인간의 육적인 노선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해주는 절차라는 것이다. 즉 "너희들이 어린양 피를 발라야 되는 이유는, 너희들의 조상 대대로부터 내려오는 육적인 혈통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할례를 행해야만 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냥 할례만 행하면 되는 것이지, 왜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고 어린양의 피를 왜 다시 발라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너희들이 육적인 혈통을 잘랐다고 하는 것을 더욱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너희들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살림을 당해야 하는 어린양의 백성임을 알아라" 라는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할례를 행하고, 또한 어린양의 피도 바르는데,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의 소속이 어디인가를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은 '특수한 나라' !!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디를 가든지 간에, 어린양의 취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그릇으로서, 도구로서, 증인으로서만 존재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저는 어제 오후설교 시간에 '특수한 나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원래 보통 말하는 '나라', 혹은 '국가' 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자기 가문과 종족에서, 이 나라는 원래 종족에서 나왔는데 말이다. 그것을 '부족' 이라고 해도 되는데, 한족이나 조선족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자기 부족이 관료적으로, 이렇게 되면 막스 웨버의 사회학을 언급해야 하는데, 그것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말이다.

◈ 잠시 '국가'에 대해서 !!

아무튼 이것을 '가부장제도' 라고 해서, 옛날에 고조선이나 그런 종족들의 시대에 있어서, 그것이 어떻게 국가로 되는지, 그것을 사회학자들이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보니, 가부장제도라고 하는 신분제도에 의해서, 생산된 것들은 전부가 다 그 가부장의 몫으로 돌아가서, 그 가부장의 가문의 명예와 이름을 위해서 밑에 자손들이 존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가와 같은 것은 나중의 문제인데, 국가가 우선이 아니라 가족이 우선이고 종족이 우선이고 부족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그 명칭은 그냥 뒤에 붙이면 그만이고 말이다. 그렇게 부족이 우선이라는 것은, 가부장적인 제도아래에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설명을 해야하는데, 구약성경에 다 나오니 말이다. 두레깽(?) 이라는 학자도 그런 주장을 했는데,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 여기서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라 신이 되는 것인데, 그 밑에 자손들이 있더라도 한번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가 된다는 말이다. 즉 신의 대행자가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 후손들이 자연세계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가 없는데, 그렇게 보호를 받지 못하면 독립을 해서 나가버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라가 그만 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즉 질서가 그만 엉망이 되고 마는데, 힘이 세고 잘난 놈이 있으면 형제들끼리 싸우고 난리가 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형제들끼리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려고 하면, 그런 형제를 능가하는 초월적인 신적인 권위를 주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을 '토테미즘'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토테미즘은 동물을 의인화한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 골고루 다 퍼져있는데,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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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테미즘(totemism) - 토템을 숭배하는 사회 체제 및 종교 형태. 심리적으로는 특정한 토템과 각 집단이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의례적으로는 토템에 대한 외경이나 금기로 표현되며, 사회적으로는 집단의 성원을 통합하는 힘이 되는 동시에 외혼제를 발생하기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등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토템(totem)은, 미개 사회에서,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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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이면 왜 동물인가?

그렇다면 왜 시시하게 동물들을 가지고 하는가? 아버지를 묘사하는 방법이 바로, 도저히 될 수 없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세운다는 것이다. 즉 동물이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될 수가 없는데, 그것은 바로 신적인 요소가 작용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그래서 우리 조상님은 동물에서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는 것이다. 박혁거세처럼 알에서 사람이 되고 말이다.

그렇게 대대로 내려옴으로서 무슨 의식이 가능하게 되는고 하니, 조상숭배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조상숭배의 방법이 바로 놀랍게도 성만찬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떡을 떼면서 제사를 드리는데, 그렇게 떡을 떼는 것은 아버지를 나누어먹는 의미라는 것이다.

◈ 종교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

프로이트가 이런 점에 대해서 아주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물론 그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종교를 연구한 종교학자들이 다 그렇게 주장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종교학이 100년 이상을 발달했는데, 놀랍게도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모든 혼과 정신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고, 그렇게 내려오는 것은 조상의 것을 분배해서 가능한데, 그러니 분배를 받지 않으면 조상의 것이 없다는 말이고, 그런 사람은 죽임을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은 치외법권으로 여겨서, 그런 사람은 죽여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조상님은 곰이나 호랑이로서, 바로 그러한 조상님으로부터 태어난 단일민족이라는 것이다. 또한 알에서 태어난 신적인 조상이기 때문에, 바로 그 조상님의 신적인 은덕으로 인해서 현재 자기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조상님으로 인해서 말이다.

◈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경우에 !!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이 받은 벌이 무엇인가? 자기가 다른 종족에게 갔을 때는 맞아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특별한 표적을 주어서, 가인이 종른 민족에게 가더라도 맞아죽지 않도록 해주셨다는 것이다. 다른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자기들은 조상으로부터 신적인 요소를 부여받았는데, 그런데 낯선 사나이가 와서 자기들의 땅에 와서 설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대인들은 이런 것을 모두 다 잊어버렸는데, 그래서 그런 옛날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조상의 땅인데, 즉 우리가 대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이 금수강산을 말이다. 이런 것을 만약에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으면 쉽게 이민을 가고 마는데, 하지만 미국에 가도 미국은 자기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은 근대주체 사상의 영향으로 자기밖에 모르는데, 그러나 옛날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이런 경향이 남아있는데, 추석이나 설이 되면 어디로 오는가? 모두가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으로 말이다.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볼록 볼록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데, 그렇다면 거기에 무엇을 하는가? 절을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나' 라는 정체성은 '나'를 통해서 규정할 수 없고, 자기 뿌리를 찾아서, 그 뿌리와 한통속이 됨으로서 그 사람은 비로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뭉쳐진 종족이 바로 '국가' 라는 개념이라는 말이다.

◈ 이스라엘은 기존의 종족과 전쟁을 !!

바로 그런 종족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아주 특수한 종족으로서 그런 종족과 대적을 하는데, 즉 싸움을 벌린다는 것이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다른 신을 용납하지 말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다른 신은 모두 엉터리이고 가짜라는 것이다.

결국은 인간이란 피조물은, "인간이 어떻게 잘되는가?" 라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고, "어느 신이 자기를 만든 진짜 신인가?" 라는 것에 대한 견줌과 비교와 대조를 통해서, 정말로 자기가 믿는 신이 참된 영생을 주는 신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그 싸움에, 하나님은 바로 거기에다가 성경말씀을 읽는 독자들을 모두 다 몰아넣어 버린다는 것이다.

◈ 니가 모시는 신을 한번 보자 !!

그러니 성경말씀은 인간들로 하여금 "니가 모시는 신을 한번 내놔봐라" 라는 것인데,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잘되는지, 거기에는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어떤 신을 골라잡았는지, 그것을 한번 보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신이 진짜 신인지 가짜 신인지를 한번 살펴보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들이 내놓은 신이 만약에 가짜 신이면 저주를 받고, 또한 진짜 신이면 복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냥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마구 쑤셔야만 내어놓는데, 그렇게 쑤시는 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것이다.

물론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만,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지금 우리들이나 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제가 앞서 말한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이고, 우리 관심사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 몸뚱아리 하나, 그냥 이 200억조(?)의 세포가 그냥 밥 먹고 살아가는 것, 그것뿐이라는 말이다.

◈ 하나님은, 내부전쟁을 외부전쟁을 동시에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원하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전쟁에 몰아넣기 이전에, 그 전쟁이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는고 하니까, 이스라엘의 구성원들이 우리와 동일한 육적인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하나님은 내부에서부터 그 전쟁을 벌려가면서 외부에서는 외부대로 또 그 전쟁을 벌려 가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두 가지 전쟁을 모두 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먼저 내부의 전쟁을 벌리시는가? 그것은 바로 외부전쟁을 벌리기 위한 기초작업으로서 내부전쟁을 벌리신다는 것이다. 그런 내부전쟁을 벌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내부로 지도자를 보내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 지도자와 또 싸운다는 것이다.

◈ 하나님, 모세, 백성들 !!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놓고 그 모세와 싸우는데, 그래서 모세가 깨어질 때 그 모세는 아론과 한 편이 되어서 애굽에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또 싸운다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고 싸우고 하면서,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게 되는데, 그런데 홍해를 건너고 나서는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과 모세와 광야에서 또 싸운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40년 이후에 모두가 한 바탕 완전히 다 죽고 난 다음에는 에돔, 아람, 블레셋과 같은 이방나라들과 계속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는데, 물론 처음에는 이스라엘도 제법 잘나갔는데, 그런데 모세와 여호수아가 죽고 난 다음에, 즉 이제 사사들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외부싸움에서 패배를 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외부전쟁에서 패배를 당하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내부의 문제로 몰아넣어 버리는데,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여, 지금 저희들이 압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소연을 하니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지금 너희들이 전쟁에 진 것은 여호와를 몰랐기에 그렇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 구약의 사사와 예수님 !!

그렇게 내부의 문제로 몰고 가는데, 그래서 성신을 받은 사사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이 놈들아, 바로 그것은 너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다" 라고 하면서 내부의 문제라고 지적을 하면서, 동시에 외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구약의 사사는 예수님의 하는 일과 거의 흡사한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사사가 전쟁에서 승리하면, 일단 여기 내부는 이스라엘이고 외부는 이방나라인데, 여기 이방나라에는 이방신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반해서 이스라엘은 오직 참된 신인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신과 신의 싸움이 되는데, 그런데 여기서 사사가 등장하게 되면, 외부는 외부대로 전쟁에서 승리를 하게 되고, 내부의 갈등은 갈등대로 노출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악마를 물리치면서 자기 백성들의 치부를 모두 드러내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 네 자신을 알라 ??

무슨 말인고 하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적인 군사가 되어서 마귀와 전쟁터에 나갔다고 하면, 그들은 어떻게 오해를 하는고 하니, "야, 이제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나를 밖에 영적인 전쟁을 하라고 내보내었구나"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인데, 막상 전쟁에서 승리는 승리대로 하면서 오히려 그 과정을 통해서 자기도 몰랐던 자기의 엉터리 같은 자기 믿음이, 즉 자기 내부의 죄도 병행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의 죄가 드러나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번 전쟁의 승리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솜씨이고 예수님의 승리이지, 내가 잘 싸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쪽으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오직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이다.

◈ 이스라엘이 부르는 찬송은?

출애굽기 15장에서 홍해를 건너올 때, 그때 미리암이 선창을 해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렇게 찬송가를 부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그들이 홍해를 건너오고 애굽 군사들을 물리치는데 있어서, 무슨 특별히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이 있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전혀 말이다. 그냥 바라보기만 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이다. 창이라도 한번 던진 사람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출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 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 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왜 불평과 불만이?

홍해를 건너오면서 애굽 군사들은 홍해에 빠져서 죽었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그들의 입에서 찬양이 흘러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인데, 이제 자기들이 뭔가 조금이라도 했다고 여길 때는 찬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저 내려주는 은혜로만 살아가라고, 즉 양식을 걱정하지 말라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다는 것이다. 메추라기도 공짜로 주시고 말이다. 심지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가 지팡이를 올리니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다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할 때는 찬양이 나왔는데, 그런데 그만 왜 적들과 마주치게 되니, 그때는 자기도 미처 몰랐던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모세에 대한 도전이 튀어나오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모세를 죽이려고 달려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은 자기들이 처음에 찬양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니까,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여기저기서 마구 터진다는 것이다. 물이 없다고 하면서 모세를 마구 닥달내고, 양식이 없다고 징징거리고 말이다.

◈ 차라리 정탐을 하지 않았다면 ??

그런데 약속에 땅에 들어갈 때, 물론 처음에는 참았는데, 그런데 나중에는 그 땅을 미리 보여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또 보여주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보여주고 나니 그들이 어떻게 나오는가?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한 12명의 정탐꾼이 미리 가보았는데, 차리리 미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미리 보고 난 뒤에는 대성통곡을 한다는 것이다.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끔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고 하니, "지금 이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장난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냥 헛것이고 말이다. 아마 여러분도 그렇지 싶은데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 내가 현실을 잘못 읽고 있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돈을 주는 사람이 없던데, 그렇다면 지금 교회 밖에서 하는 이야기가 맞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사실은 바로 우리도 그런 순간까지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정탐을 해야되고, 그래서 그쪽은 장대와 같고 우리는 메뚜기와 같음을, 즉 게임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이미 드라마를 다 보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아서 끝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데, 그렇게 모르니 그들이 내놓은 것이 통곡밖에 없는데, 또한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말이다.

◈ 그들은 왜 통곡을 하는가?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운명인데, 그래서 통곡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차를 몰고 가다가 진흙탕 속에 빠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것과도 같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인데, 그것이 고린도후서 1장 5절에 나온다는 것이다.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지금 이스라엘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리고 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한 바울은 진짜 사도가 맞는데, 마귀도 인정을 했고 말이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구절인데, 사도바울은 자기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자기도 눈과 귀가 다 있고 그래서 현실을 바라보는데, 도저히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왜 사도에게 고난이 넘치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에는 십자가의 고난이, 즉 그리스도가 주신 고난이 마구 넘쳐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고난을 받으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또한 자기가 먹고살기 위해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받는 고난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십자가의 고난이 들이닥치는데, 물론 자기는 그런 고난을 받기 싫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의 고난이 넘쳐오는가? 그 이유가 바로, 지금 자기가 개척교회를 성공적으로 잘하고, 또한 사업이 잘되고 하는, 그런 것으로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니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고난을 받고 싶은가?" 라고 하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말미암은 고난을 묻는 방향으로 고난이 넘쳐온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만 있으면 저는 행복합니다" 라는 말을 아직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캄캄하고 어두운 현실의 장벽 속에서도 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 살 소망이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 선고까지 !!

그런데 그런 고난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8절과 9절에 보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도바울 자신이 돌아다니면서 설치다가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식투자에 실패를 하던지 해서 말이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께서 뜻이 있어서 자기를 그런 살 소망이 끊어지는 처지로 몰아넣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9절에 있듯이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라는 것이다.

(고후 1: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고후 1: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지 모르는데, 더 이상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그런 양 사방이 완전히 막힌 캄캄한 현실의 세계로 몰아넣는다는 것이다. 자기가 개혁주의신학을 했던지, 무엇을 했던지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을 하늘에서 선물로 주어지지 않고서는 도대체 어느 놈이 견디느냐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믿음이라고 하면, 그렇게 견디다가 견디다가 시험하다가 시험하다가 결국은 나자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가롯유다인데, "저 양반이 메시야가 받기는 맞나?" 라고 하면서, 시험을 하다가 하다가 결국은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 지금 십자가 마을에서는 무슨 일이?

지금 우리 십자가 마을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문제가 좀 있는데, 왜 그런고 하니, 사람들이 이렇게 죽은 자도 살리는 복음의 능력을 농담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지금 분위기가 그러한데, 농담이고 장난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목사도 자기가 복음을 위해서 굶어죽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 전하는 복음은 가짜가 확실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정작 목사 본인이 복음을 장난으로 여기면서, 복음을 자기 밥벌이 수단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그런데 평신도가 그렇게 한다고 왜 시비를 거느냐는 말이다. 목사는 주의 일을 한다면서 교회를 세워놓고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운운하는데, 복음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자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물론 본인이 전혀 그렇게 살지 않으니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런 목사가 아무리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설교시간에 아무리 강조해도, 교인들은 그것을 장난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지금 분위기가 바로 그렇게 장난이나 치고 모든 것을 농담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도대체 어느 미친놈이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달fi서 죽은 그 청년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믿느냐는 것이다.

지금 십자가 마을의 글들을 보면, "저는 복음으로 죽겠습니다" 라는 것은 없고, 대부분이 어떤 분위기인고 하니, "이것은 모두 다 목사라는 명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대충하고 넘어가자. 그러니 자기만 목사라고 우기지 말고, 서로 그냥 밥벌이나 하고서 지나가자. 그러니 너무 엉뚱한 소리는 하지 마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 믿음은, 자기가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하지만 악마도 인정한 진정한 사도인 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런 진흙탕으로 밀어 넣는고 하니, "사도바울아, 지금 니 속에 있는 믿음이 니가 만들어낸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누가 준 것인가?" 라고 하는데, 바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서,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바로 그런 환난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적 전쟁인데, 즉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이 지음을 받은 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천국의 한 식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진짜로 천국 백성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수한 나라인 이스라엘의 모습인데, 물론 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보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좀 살기가 좋으면 하나님을 버리고, 좀 급하다고 하면 쫓아와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다.

◈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

바로 이런 현상이 전쟁 가운데 자꾸만 벌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드러나는데, 즉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인지, 아니면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현실이 진짜 현실인지를 묻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나를 위한 나인가? 아니면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위한 나인가?" 라는 것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데, 그래서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 보면,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후 1: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 예, 예수님. 좋습니다 !!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사도바울과 그 일행들은 그야말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똘마니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종이 되었으니 이제는 "예수님, 제가 힘이 듭니다. 싫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입밖에도 전혀 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자기가 힘이 들어도 무조건 '예' 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 자기가 힘이 든다고 '아니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말이다. 그래서 "집사님, 요즘 주식이 잘 됩니까?" 라고 하면, 아무리 힘이 들고 깡통계좌가 되어도 "예. 잘 됩니다" 라고 해야한다는 말이다. (ㅋㅋ)

◈ 혹시, 고은아를 아세요 ??

그런데 혹시 여러분 가운데 '고은아(?)' 라는 분을 아시는 분이 있어요? 장로님도 모르세요? 지난번에 저에게 메일이 왔는데, "목사님, 요즘 많이 힘들지요?"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혹시나 성우 고은아를 말하는 것인가요? 요즘 기독교 방송국에서 연예활동중인데, ㅋㅋ)

그건 그렇고, 지금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 우리는 힘들어 주겠는데, "지금 잘 있지? 모든 것은 '예' 이지, '아니오' 라는 것은 없는 것을 알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20절에 보면, 우리가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한다는 말이다.

◈ 성도의 환난은, 유월절의 의미를 !!

그러니 정말로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고백을 사도바울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환난이 온다는 것은 실패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라고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건너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의 의미인데, 유월절이 되면 얼마나 어린양의 생명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말이다.

그러니 그 어린양의 수하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이 어린양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 어린양의 능력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척결하고, 또한 어린양을 어린양이 되게 하시는 참된 하나님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양도 봉사하고, 그 어린양에 소속된 우리도 어린양과 함께 하나님께 봉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에서 사도바울도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난데없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어린양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주님의 백성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것이 교재 55페이지에 보면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성경구절을 한번 살펴보자.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17절의 말씀인데 말이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출 3:16)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출 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속 헷족속 아모리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속 여부스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

여기 15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인데, 이런 말들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 나오는 '이름' 이라고 할 때는, 이렇게 이름이 붙여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분이 실제로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고, 그렇게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 이름에 합당한 분이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가 부르는 그 주님은 지금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라는 고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고백 가운데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지금 자기 딸이 어두운 다락방에서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말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때는 엄마가 자기 딸 이름을 부르는데, "영희야, 그만 울고 나오너라" 라고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라고 하는데,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친구는 옆에서 "야, 니가 지금 미쳤나?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노? 상상하고 있지?" 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 신자 :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 친구 : 야, 니가 지금 미쳤나?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노?
* 신자 : 주님에게 이야기하지.
* 친구 : 주님이라고? 지금 니가 상상하고 있지?
* 신자 : 아닌데, 실제로 계시는데.
* 친구 : 그러면 실제로 계시면,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되나?

◈ 주의 이름은, 일하시는 이름 !!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이름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에서 이름이라는 것은 일하시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도 나오고 성경 여러 군데에 나오는데, 물론 찾기가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의 이름은 능력이 된다고 했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이름은 다른데, 물론 우리도 이름이 있지만 우리의 이름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이근호' 라는 이름이 있어도 그것이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이지 말이다.

◈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름을 가지고 일을 하시는데, 그러데 그 이름이 무엇인고 하니, 그냥 '여호와'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 출애굽기 3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여호와' 라는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여기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은 틀렸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그냥 부르면 안 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말도 어려운데,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부릅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제대로 부르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도착하게 되면, 그 이름이 도착한 사람들은 어디를 쫓아가는고 하니까, 아브라함을 어떻게 만들고 다루었는지, 또 이삭과 야곱을 어떻게 만들고 다루었는지, 거기로 달려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말이다.

◈ 도대체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러니 여호와의 증인처럼 아무리 "저희들은 여호와를 믿습니다" 라고 해도, 그런 것은 다 이단인데, 왜냐하면 그들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는 하나님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 거기로 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달리기를 잘하든 못하든 간에 말이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따라가야 되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하신 일이 곧 하나님의 하신 일이라는 것을, 즉 예수님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일치시키게 되고, 예수님의 하신 일을 의지하고 믿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주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인데, 그 이름 속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라고 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하신 일이 있는데, 그 이름이 일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다루는 방식으로, 그렇게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사용하시는지, 거기에 관심을 두게 된다는 말이다.

◈ 이스라엘의 하나님 !!

그렇다고 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다음에는 누구이겠는가? 그 다음에는 누구의 하나님이 되겠는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누구인가?" 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제 당해야 하는데, 즉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방식으로 군소리는 접어두고, 그야말로 당할 대로 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을 다루시는 하나님, 이삭을 다루시는 하나님, 야곱을 다루시는 하나님이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니 말이다. 그렇게 다루는 대로, 벌어지는 사건대로 그냥 모든 것이 '예'가 된다고 하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완전히 가지고 노는 것인데, 마치 고린도후서의 바울처럼 말이다. 십자가의 고난에 마구 넘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주께서 그렇게 하시니 말이다.

◈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잖아요 ??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백성인데, 하지만 사람들은 오해를 해서 뭐라고 하는가?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잖아요?" 라고 하는데, 그래서 "당신이 불렀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면,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님이 그 사람을 상대로 일을 벌리는데, 그렇게 일을 버리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 그것도 역시 주께서 벌리신 일 중에서 하나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도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당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라고 하면, "주께서 선물로 주셔서 믿었습니다"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제가 믿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라고 하면 그야말로 정말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의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이름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란 말이다.

◈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 내가 ??

지금 십자가 마을의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까,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주의 이름을 어떻게 높이는고 하니, 자기 이름을 낮추면서 높인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렇게 "자기 이름을 낮추고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을 누가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된 내가 해야한다" 라고 나오니 문제라는 것이다. 즉 이제는 자기가 새 사람이 되었으니 자기가 그것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해서 자기가 알아서 자기 이름을 낮추면, 그렇게 하면 주의 이름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무엇을 하시는가? 성령은 자기가 부를 때만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성령이 자기를 가지고 논다고 하면, 자기가 거듭났다고 하는 폼이 나지 않는데, 즉 자기 주도권을 찾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요? 지금 제가 말하는 논리가 엉터리인가요?

◈ 질질 끄집고 다니시는 주님 !!

다시 말해서, "너는 이제부터 새 사람이야.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한다" 라고 하는 것과, "니가 제대로 못하면 내가 도와줄게" 라는 것 중에서 어는 것이 맞느냐는 말이다. 주님은 "너는 새 사람이야" 라고 해놓고는 질질 끄집고 다니면서 뭐라고 하시는가? "니가 하는 것은 죄야. 그래서 내가 해야 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돈을 사랑하는 것을 일만 악의 뿌리이다" 라고 하면, "주님, 가만히 있으세요. 제가 새 사람이 되었으니 제가 한번 지켜보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돈이 많을 때, 그때 잠시동안 5초 정도는 될지 몰라도, 그러나 돈이 마구 새기 시작하면, 그것이 도저히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은 전혀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질질 끌고 다니신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까 말한 죽는 환난이 닥쳐도 말이다. 우리는 그런 과정 속에서 "왜 내가 지키는 말씀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주께서 지키는 것만이 영광이 되는가?" 라는 것을 내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는 것이다.

◈ 너희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

그러므로 주의 이름이 왔다는 것은, 이제 우리가 주님에게 무엇을 해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즉 일을 벌리고 있는데, 그런데 이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니, 우리를 구원을 해준다고 해놓고, 왜 이방나라가 침범하게 하고, 또한 쫓아내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너희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그렇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 사울왕도, 다윗왕도 마찬가지 !!

그런데 사울왕은 뭐라고 하는가? "그래서 제가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언약궤를 앞장세우지 않았습니까? 선지자를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서, 제가 제사를 정성껏 드리고 전쟁을 시작했는데, 왜 실패합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즉 순종하지 않아서 전쟁에서 졌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있어서 다윗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자기들의 왕이고 이방나라가 쳐들어왔다면, 당연히 그들은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 라고 하는데, 그것이 또한 당연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고 말이다. 그런데 소년 다윗이 등장해서 적들을 쳐부수었는데, 그래서 백성들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그런데 왜 사울왕이 삐치는가? 그것은 바로 사울왕의 평소 마음가짐이 정말로 "하나님이여, 도와주소서" 라고 한다면, 그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도와주어도 "저는 이렇게 못났는데, 역시 주님이 준비하신 분이 있군요" 라고 나올 텐데,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왜 다윗을 향해서 죽으라고 창을 던지고 하느냐는 말이다.

◈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은?

그렇다면 그런 마음가짐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없는가? 아니, 부교역자가 설교를 잘하는데 당회장이 왜 화를 내느냐는 것이다. 정말로 주의 종이라고 하면 '아멘' 이라고 하면서 기뻐해야지 말이다. 그래서 쫓겨난 부교역자들이 어디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 그냥 다른 트집을 잡아서 쫓아내어 버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지금 천 목사님의 주님의 교회는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번 주에 그만 3천명이나 왔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교회 교인들도 모두가 거기로 갔다고 하면 말이다. 그리고 왜 우리교회 당회장이 열을 받느냐는 것이다. (ㅋㅋ)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열심히 주의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박수를 치지 않고 씩씩거리고 열을 받는다는 것이다. 주님이 그렇게 이름을 부르도록 했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먼저 내부전쟁을 시작으로 !!

다시 말해서, 주님이 부르도록 해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열심히 기도해서 주의 이름을 불렀다고 하는 것이 일종의 공로로 작용해서, 그런 것이 자기 의로 구축이 되어있으니, 그래서 그런 성과가 자기가 기대한 대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당연히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싸움이 바로 내부전쟁이라는 말이다.

◈ 다윗은 왜 우리야 장군을 죽였는가?

사울왕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러면 다윗은 그렇지 않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역시 다윗도 마찬가지인데, 왜 우리야 장군을 죽이느냐는 것이다. "우리야 장군, 수고했어. 당신 때문에 우리가 살았어. 당신이 이제 왕을 해" 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야 장군을 왜 죽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윗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즉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누구의 아들인가? 엄연히 다윗이 아들이 맞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야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 족보에 의하면 말이다. 그래서 그 족보는 밧세바를 다윗이 아닌 우리야의 아내라고 한다는 말이다.

(마 1: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하나님은 이런 것을 훤히 다 아시는데, 지금 우리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항상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비켜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엉뚱한 일을 벌려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자기 의를 완전히 풍선을 터트리듯이 그렇게 터트려 놓는다는 것이다.

◈ 병원에 심방을 가도 !!

가끔 병원에 심방을 가게 되면, 그렇게 가보면 굉장히 제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왜냐하면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니가 지금 목사라고 나에게 병 문안을 왔어? 그래, 니는 잘났다 이거지? 니는 착해서 건강하다는 것이지? 그래, 나는 죄를 지어서 지금 병원에 있어. 하지만 나도 건강하면 얼마든지 병 문안을 할 수 있어. 그런데 니가 지금 나를 동정을 해. 지금 당신 눈초리를 보니 아주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은데, 그렇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든지 그런 태도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 병 문안을 가도 태도를 조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병을 더 악화시키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이번에 재수가 없어서 병에 걸린 것이지, 당신보다 내가 못난 것이 뭐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 수가 있는데, 마치 자기는 이웃사랑을 실천한다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 집에 라면을 가져다주었는데, 그런데 상대방이 집어던지듯이 말이다.

바로 그런 전쟁을 지금 우리 내부에서 주님께서 자기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데, 주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니 지금도 계속해서 그 전쟁이 우리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그런데 어떻게 자기가 성경말씀을 지키고 말고 하겠느냐는 말이다.

◈ 봉사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

그래서 제가 이런 토를 달았는데, 베드로전서 4장에 보면, 봉사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하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 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해야 하는가?

지금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강의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워졌는데, 제가 그렇게 만들었나요? 무슨 말을 못하겠는데, 그건 그렇고 다시 교재로 돌아가서 출애굽기 3장 14절을 보면, 아무튼 그렇게 작용해서 "반드시 가나안 10족속을 물리치고 너희들을 이 땅에 심겠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결국 이것은 이방족속과 하나님이 만드시는 이스라엘 족속과는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뭐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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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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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