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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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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2: 1-12 (포도원 농부와 아들)우리교회마가복음

막 12: 1-12 (포도원 농부와 아들)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12장 1-12절
제목 : 포도원 농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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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3-29 13:33

포도원 농부와 아들

2009년 3월 29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2:1-12

(막 12:1, 개역) 『예수께서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 자리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막 12:2, 개역)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막 12:3, 개역) 『저희가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막 12:4, 개역)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막 12:5, 개역)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저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혹은 때리고 혹은 죽인지라』
(막 12:6, 개역) 『오히려 한 사람이 있으니 곧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가로되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막 12:7, 개역) 『저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업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막 12:8, 개역)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어 던졌느니라』
(막 12:9, 개역)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막 12:10, 개역)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막 12:11, 개역)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더라』
(막 12:12, 개역) 『저희가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버려두고 가니라』

오늘 본문에 보면, 사람들을 또 두 패로 나눕니다. 농부들 편이 있는가 하며는 다른 한쪽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와 아들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이 양편이 보는 하나님의 구원방식이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는 특정 사람만을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운명을 다 포함시킨 설교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에서 두 패로 나누어졌다는 말은 온 인류가 두 패로 나뉘어졌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 두 패 사이는 우호적으로 사이가 아닙니다. 10절에 나온 말씀처럼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말은 곧 이 두 패 사이에는 서로 밀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멸당할 농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님은 완전히 쓸데없고, 쓸모없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갖다 버리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그들 보기에 쓰레기입니다. 그런데 그 쓰레기에서 뭔가 꿈틀거리면서 구원받을 집단이 형성되니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농부들은 예수님을 쓰레기 취급해서 갖다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이 점을 알기 위해서 마태복음 23:34-35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의 운명을 소개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오늘 본문에서 농부들이 선지자들을 이런 식으로 대우했기 때문입니다. 즉 선지자를 학대한 자들이 도대체 어떤 구원방식관을 갖고 있었기에 선지자를 이처럼 버림받게 만들었느냐는 겁니다. 마태복음 23장에 아벨이 피를 흘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아벨을 죽인 자를 찾아보는 겁니다. 아벨을 누가 죽였습니까? 형 가인이 죽였습니다. 왜 죽였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악이 올라 죽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받지 않을 제사를 드린 겁니까? 바로 이 가인의 제사 의식이 곧 오늘 본문에 나오는 농부들의 의식입니다.

농부들이나 가인이나 모두 신에게 압력을 가해서 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조치하게끔 했습니다. 즉 신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다가선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안받았습니다. 제사 받으시는 당사자가 안 받겠다는 겁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신에게 가하는 압력에 말려들지 않겠고 단호하고 내치겠다는 겁니다.

제사 받으시는 본인이 안 받겠다는데 인간이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성이면 정성이다’는 오기로, 정성을 다 기울려면 신이 안 받고는 못배기고 복을 안주고 못배긴다고 우기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방식은 이게 아닙니다. 시편 40:6-7에 보면,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드린 것을 받고 그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겠다는 겁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신이 다 받는다고 우기는 것은 인간들의 일방적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즉 구원에도 구조가 있습니다. 그 구조에 뭔가가 들어가게 됩니다. 단순히 신과 인간이 의견을 정리해서 구원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전혀 예상 못한 방식의 구조가 삽입되어 들어가게 됩니다. 그 방식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아버지가 아들을 버림’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서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버지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단 눕혀놓고 잡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의 정성을 받고 복을 주시는 그런 간편한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 겁니까? 그것은 천국에 살 사람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그 마음을 모르고서는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삭을 막 잡으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수양을 미리 풀 속에 준비시켜서 이삭 대신 잡아 죽이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이레' 곧 ’하나님의 준비하심‘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제사 행위를 믿은 것도 아니요 아들 이삭의 순종 덕분에 구원받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두신 분’ 때문에 구원받는 것을 믿고 알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6:39에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면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들이 나름대로 소원하는 바가 따로 있음을 밝혀주시는 겁니다. 즉 인간들이 원하고 있는 구원의 방식과 구원의 틀을 하나님은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겁니다. 농부들은 자신들이 노동한 바가 포도원을 이루었다고 해서 포도원 소유권을 자기 쪽으로 돌려서 자신들이 주인행세 하고 싶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된 인간들의 구원방식입니다. 이 속에서는 아버지의 아들 버림의 정신이 들어있지를 않습니다. 그저 각자들의 노고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게 될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짖으면서 은근히 노리는 바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즉 전적으로 아들의 나라 되는 것을 원치 않고 그 자리에 자신의 영광을 집어넣는 그런 상황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의 욕망은 궁극적으로 자아실현으로 치닫습니다. 믿고 의지할 필요없이 오로지 자기 자신만 인정하는 그런 최후의 순간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자신의 노동한 것과 자기가 수고한대로 자신에게 영광이 돌아오는 것은 상태를 향하여 인간은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들의 내면의 요구 앞에서 선지자 되시는 분들과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싫어버린 바 될 수 밖에 없는 자들이 됩니다. 바로 우리가 그 선지자들과 예수님을 죽이는 장본인입니다.

정말 이점을 우리가 바로 안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를 저주해야만 합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자만이 생명을 얻습니다. 자기를 저주하는 순간만이 사랑이 도출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것만을 받아들이려면 우리 자신을 저주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쓰레기 취급했다고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다른 이름으로 구원받을 이름이 없기에 우리 이름으로도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받음을 감사히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16:16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마가복음-2008/56강-막12장1-12(포도원농부와아들)-mar090329.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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