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 1- 3 (첫 열매의 가치)
렘 2: 1- 3 (첫 열매의 가치)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예레미야 2장 1- 3절
제목 : 첫 열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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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003강-렘2장_1-3(첫열매의_가치)-jer090325-(이_근호_목사).hwp (48.0K), Down:1
이근호
09-03-25 20:49
첫 열매의 가치
2009년 3월 25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2:1-3
(렘 2:1,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렘 2:2, 개역)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렘 2:3, 개역)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재앙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우리 인간들은 이 재앙을 모면할 생각부터 먼저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심정은 그런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고자 하느냐에 관한 취지입니다. 마치 엄마가 딸에게 회초리를 들게 때리면, 딸은 늘 엄마에게 다음과 같이 대꾸합니다. “엄마, 나는 엄마한테 맞을 짓을 안한 것 같은데 왜 저를 때리려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분명 재앙을 내릴 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어째서 재앙이 떨어지느냐?”하고 의심하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죄에 따라 벌도 달라질 것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세상 교도소에서도 이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교도소 내에 많은 사람들이 각양 죄를 짓고 들어와서도 일단 교도소 생활은 같은 스케줄에 같이 움직이게 됩니다.
즉 죄를 달라도 벌은 같습니다. 이것은 달리 말씀드리면, 벌이 같다는 말은 결국 죄도 같다는 말입니다. 모든 죄는 오직 한 가지 죄에서 나온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죄가 무엇일까요? 그 죄가 예레미야 1:16에 나와있습니다.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상숭배가 바로 심판받을 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에 나오는 바는 얼른 보면 우상숭배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는 첫 열매인 이스라엘은 무시하는 자는 재앙을 받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1:16과 예레미야 2;3을 연결시켜 봅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첫열매의 가치를 모른다든지 무시하는 자는 우상숭배에 해당되기에 심판과 재앙을 받는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 직업에 열중하고 매진하기 마련입니다. 24시간 여호와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나왔을 때 잠시 하나님 생각하다가 교회문 닫고 나가는 그 순간부터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매달립니다.
따라서 우상숭배 아닐 때가 거의 없습니다. 늘 생활이 우상숭배의 반복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첫열매가 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런 불가능한 일을 우리 하나님은 해내십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들의 자력으로 성사될 수 없는 열매를 자신의 능력으로만 만들어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그 ‘첫열매’의 가치를 모독하는 자는 우상숭배 죄에 해당됩니다. 물론 첫열매되는 그들조차도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면 우상숭배에 해당됩니다.
사람이란 자신을 자신의 열매라고 여기게 됩니다. 평생에 걸쳐서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짜면서 추진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자아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아상은 이 세상에서 ‘우상숭배’ 여부를 가리게 하는 기준점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열매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첫열매란 우리를 구원코자 함이 아니라 우리를 세상에 내세워서 진정 이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솜씨를 무시하고 모독하고 있는지를 들추어내어 심판받게 하는 취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첫열매를 어떻게 만들어내십니까? 광야에서 만들어내십니다. 광야없는 첫열매란 없습니다.
사람들이 농사지어서 열매 맺는 것은 광야가 아니라 옥토에 물대어서 열매를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열매란 광야라는 환경 안에서는 성사됩니다. 다른 것은 안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는 인간들이 자기 가능성을 시도하기 때문에 100% 예수님의 공로가 훼손되어 버리는 겁니다.
시편 107편의 광야 묘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저 부르짖기만 했습니다. 뭔가 따로이 할 것이 없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열매란 광야가 아닌 배경에서 인간들이 일구어낸 것입니다. 광야란 인간들이 아무리 애써도 아무 것도 나올 수 없는 곳을 의미합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용을 쓰도 전혀 얻지 못하게 만드는 곳이 광야입니다. 따라서 이런 공간에서 열매가 맺혔다면 이는 분명 인간의 수고나 희생이 아닌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열매라는 것을 언급하려면, ‘광야였음’이라는 고백이 나와야만 합니다. 만약에 인간의 조금이라도 가능성의 실마리가 마련되어 있다면 이는 ‘열매’라는 말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성사시킨 그 원리란 바로 그 안에 속한 인간들의 각가지 마음가짐 모두가 다 ‘하나님의 열매’에 해당되는 마음인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그 광야에서 인간들은 뭘 했습니까? 자기 백성들은 자기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했고 불평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와 하나님은 희생하셔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첫열매란 예수님의 희생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겁니다. 요한복음 12:24-26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오직 ‘한 알의 밀의 죽음’에만 성사됩니다. 이 열매의 공로를 위해서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목숨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래야 100% 모든 공로가 예수님에게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성도는 자신이 처해 있는 이 세상 자체가 광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광야란 사람이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곳입니다. 그저 부르짖을 뿐입니다. “악!, 윽!”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외마디 말고 다른 표현이 도입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아무리 자신을 알아주는 추종자가 많다 할지라도 그런 것들을 동원시켜서라도 첫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의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증거하기 보다는 자신의 잘남을 증거하는 바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로님께서 일요일날 아침마다 교회 오셔서 화초에 물을 주십니다. 만약 화초가 마음이 있다면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나는 장로님의 첫열매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첫열매임을 잊지 맙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우리가 잡은 놓은 계획이 광야로 만들겠다는 예수님의 취지가 맞지 않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19:58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예레미야-2009/003강-렘2장1-3(첫열매의가치)-jer090325.hwp
우리교회
10-12-28 23:11
003강-렘2장 1-3(첫열매의 가치)-jer090325-(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장 1절부터 3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079페이지입니다.
예레미야 2:1-3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재앙을 받으리라.’ 또는 ‘저주를 받으리라.’ 단서가 붙어 나오는데 하나님의 모든 말씀 전부가 다 그러합니다. 들어도 흥, 안 들어도 흥, 지켜도 흥, 안 지켜도 흥, 그것이 아니라 ‘만약에 이 말씀대로 되지 아니하면 반드시 재앙이 임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서실 때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되느냐.
우리는 우리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보고 재앙을 내린다고 할 때에는 필수적인 것이 ‘나라도 그런 짓을 한다면 나한테 재앙을 내리겠다.’라는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엄마가 매를 들고 ‘손바닥 내밀어라. 때려야 되겠다.’ 할 때 대부분이 아이들은 ‘엄마,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 왜 때리는데?’ 이렇게 나오지요.
‘엄마, 엄마가 나를 안 때려도 나라도 나를 때리겠어.’라는 말을 하는 아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엄마하고 아들하고 사고가 안 맞아요. 사고방식이 안 맞고 일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에 엄마는 화가 나서 때리려고 하는데 애는 그 매를 가로막으면서 ‘맞을 짓을 내가 한 적이 없는데.’라는 의심을 나타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있으리라.’ 했는데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 같으면 ‘맞습니다. 나라도 나에게 재앙을 내리겠습니다. 마땅히 벌 받을 짓이 맞습니다.’ 동의를 해야 될 텐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자꾸 하나님이 협박조로, 나무라면서 재앙을 내린다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나오십니까?’라고 도리어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을 갖기 마련입니다.
쉽게 다시 엄마와 아이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얘, 네가 오늘 매를 좀 맞아야 되겠어.’ 애가 ‘엄마, 왜 때리는데?’ ‘네가 컴퓨터만 하고 엄마 시킨 대로 숙제를 안했잖아.’ ‘엄마, 숙제는 하면 되잖아.’ 이렇게 할 때에 엄마의 취지는 모르고 숙제 안한 것 때문에 당한다 싶어서 숙제만 하면 된다고 나오거든요.
그것이 엄마 마음하고는 또 안 맞아요. 엄마는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지요. 매를 들기 전에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숙제는 다 했습니다.’ 이렇게 다 해주기를 원하는데 한 번 잘 하는지 보니까 안 하고, 두 번째 또 보니까 또 안하고 세 번째는 매를 들었는데 애는 엄마의 마음은 모르면서 그 순간만 모면하기 위해서 ‘숙제 해주면 될 것이 아닙니까?’ 하고 숙제를 억지로 하더라는 말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린다 하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모르고 ‘아, 재앙 내리면 재앙 안 받는 쪽으로 하면 되지.’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자기화를 모면하려고 하는 의식이 그대로 노출된 거지요. 그래서 이런 복잡한 것을 간편하게 정리하는 방법이 있어요.
그게 뭐냐, 거기에 대한 쉬운 예가 있어요. 교도소에는 각양 사람들이 각양 죄를 짓고 들어옵니다. 교도소 생활하는 것을 보면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같은 벌을 받게 되어 있어요. 간통을 해서 들어왔든, 사기 쳐서 들어왔든, 살인해서 들어왔든, 대통령 욕하다가 들어왔든, 공산당을 욕하다가 들어왔든, 어떻게 들어왔는지에 관계없이 들어오게 되면 예를 들어 외출금지, 사제음식사절, 그런 것은 똑같은 거예요.
죄는 달라도 벌은 동일한 것이 교도소 생활입니다. 죄에 따라서 벌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에요. 일단 감방에 들어가면 똑같이 취급당하지요. 죄는 달라도 벌이 동일하니까 그것을 조금 더 자세히 하면 벌이 동일한 것을 보니까 죄도 똑같은 죄구나, 간음죄, 살인죄, 부모공경 안한 죄, 여러 가지 죄가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같은 죄라는 말은 결국 동일한 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우리가 감 잡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착각하기를 ‘죄는 네 죄 내 죄 다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벌이 같다는 것으로 인해서 ‘아하, 내가 어떤 죄를 지어도 동일한 죄를 짓는구나.’라는 것을 여기서 정립해야 됩니다. 야고보서에 그런 말씀이 있잖아요. ‘온 율법을 지키더라도 하나를 어기면 전부를 어기는 것이 된다.’(약 2:10) 논리학에서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 해당됩니다.
부분 속에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이런 아주 어려운 문제가 나와요. 밤하늘에 달이 떴는데 전 세계 천개의 강에 그 달이 다 비치지요. 불교의 화엄경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와요. 달이 밤중에 전 세계의 강물에 다 비친다는 겁니다.
그런 말이 있듯이 뭔가 하나님께서 똑같은 식으로 재앙을 내릴 때, 우리가 보기에는 ‘저 사람은 죄 많이 짓고 나는 죄 적게 짓고.’라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저 인간은 성폭행한 뒤에 살해하는 식으로 여섯을 죽이고 나야 그저 노상방뇨나 했을 뿐이니 그에 비하면 전혀 죄도 아니다.’라는 식으로 여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똑같은 벌을 받는다고 할 때 그 원리를 성경을 통해서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취지와 우리생각하고 다르구나.’ 그러면 하나님의 근본적인 죄가 뭐냐, 1장 16절에 보면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베풀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지금부터 제가 약간 어렵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예레미야 1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푸는데 그 벌의 이유가 뭐냐, 다른 신을 섬기는 겁니다. 그리고 방금 읽었던 오늘 본문 2장 3절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레미야 1장 16절에는 ‘다른 신을 섬기면 벌을 받는다.’ 2장 3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존재의미를 모르고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면 다 벌을 받는다.’
그 두 개를 한번 합쳐봅시다. 합칠 때 어떤 결론에 도달되느냐, ‘하나님께서는 우상 섬기는 것에 대해서 벌을 주는데 우상 아닌 것이 뭐냐, 여호와를 섬긴다고 우상 아닌 것이 되는 게 아니고 이 지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어떤 열매, 하나님이 하시는 어떤 작업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인정 못하면 그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된다고 보고 똑같은 벌을 받는다.’ 그 말입니다.
우상숭배하면 심판 받는다, 내 백성 건드리면 심판받는다, 둘을 합쳐버리면 뭐가 우상이 아니냐하면,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무시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열매라고 인정 못하면 그게 바로 곧 우상숭배와 동일한 죄에 해당되는 겁니다. 우상숭배가 죄라고 할 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자기직업에 매진하면서 여호와를 섬기겠습니까?
우상숭배, 다른 신을 섬기면 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교회 올 때는 여호와 생각나고 교회 올 때는 예수님이 생각나지만 막상 교회 문 열고 교회 밖에 나가면 자기일, 자기프로젝트, 자기사업, 자기농사에 매진할 때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생각나느냐 그 말이죠. 안 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은 자기 직업에 매진했다는 이유 때문에,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를 보고 있는 그 순간에 여호와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우상숭배에 해당되는 심판과 벌을 받느냐 하는 문제가 등장됩니다.
사람이 스물네 시간 여호와만 생각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가, 그 문제입니다. 연애할 때도 여호와이야기, ‘실례지만 여호와를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가, 하는 그 문제입니다. 벌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상숭배가 심판받는다는 이 말은 ‘모든 인간은 마땅히 심판 대상이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인간도 자기생각만 합니다. 억지로 하나님을 생각하라고 하면 그 순간만 하나님 생각하지 돌아서면 마찬가지로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인간도 심판받을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고맙게도 ‘우상숭배하면 심판받고 벌 받는다.’ 해놓고 2장에 들어오면 ‘내가 (비닐하우스 같은데서) 손수 길러낸 첫 열매에 대해서 너희들이 무시하면 심판받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첫 열매에 해당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마땅히 벌 받아야 될 사람입니다. 왜냐, 어느 인간도 스물 네 시간 여호와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네가 말을 너무 심하게 했네요. 스물네 시간이 뭡니까? 하루 24초도 여호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여호와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것을 다 잊고 살아요.
잊어버리고 사는 그런 인간들, 하나님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마귀백성밖에 안되는 이런 인간들을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열매라고 묶어주시는 작업을 지금도 쉬지 않고 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내가 보기에도 여호와 생각 안할 시간이고 그럴 엄두도 안 나고 그럴 상황도 아닌데 내가 하나님의 첫 열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오게 되면 그 때 나 자신은 뭐가 되느냐하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점, 우상숭배냐 아니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기준점으로서 나서게 되는 판에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로 우리 성도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작업이 성도를 떠나지 않아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나쁜 것이 뭐냐, 자기가 신앙생활 하는 것이 제일 나빠요. 그것이 불신자보다 더 나쁜 이유는 그것이 불신앙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신앙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나쁘지요.
어느 신앙도 본인이 하는 신앙생활이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라 하는 것은 누구 열매냐, 하나님의 열매가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내는 자기열매로서의 자기가 되어버려요. 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열매가 아니라 자아의 우상숭배가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우상숭배가 뭐냐,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손수 만든 그 열매에 대해서 우상숭배다. 그러면 우상숭배가 아닌 것이 뭐냐, 주께서 손수 첫 열매를 만들어 내신다, 그것을 믿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닌 것이 됩니다. 다시 정리해 봅시다. ‘목사님, 24시간 여호와만 생각합니까?’ 그런 인간도 없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뭐가 우상숭배가 아닙니까? 사업을 하든지 뭘 하든지 맨 날 여호와만 부르고 전도만 하고 그래야 우상숭배가 아닌 겁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뭐냐, 너 자신에게 지금도 하나님의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 내가 사업체에 있든지 아니면 집에서 잠을 자든지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너는 첫 열매다.’라는 그 신분에 걸맞게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 2주정도 스포츠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는데 배구나 야구나 감독들이 시합 나갈 때 꼭 선수들에게 하는 소리가 있어요.
네 글자입니다. ‘정신 차려!’ 선수들이 시합 중에 멍청하게 집에 가스 불 켜 놓고 온 게 아닌지 그것을 생각하는 수도 있고, 야구 외야수가 공 날아오는 것에 집중해야 될 텐데 이번 게임 끝나면 보너스 얼마나 받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다가 날아오는 공을 놓친다고요. 그래서 감독이 늘 ‘정신 차려!’ 그 소리를 한다고요.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 가도 하나님의 첫 열매의 신분입니다. 하나님께 그 열매에게 하는 소리가 뭐냐, ‘잘해라.’가 아닙니다. ‘훌륭해라.’가 아닙니다. 한마디 밖에 없어요. ‘정신 차려! 너는 네 작품이 아니고 여호와의 작품이다. 정신 차려! 네가 열매로서 있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숭배 할 것이냐, 말거냐를 결정하는 기준점으로서 이 어두운 세상에 배치했다.’는 거예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열매를 달라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걱정되는데 우리 열매가 아닙니다. 절대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열매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열매입니다. 본문 그대로에요. ‘그들은 나의 열매다.’ 하나님이 만든 열매가 분명히 있습니다. 어떻게 만드는가?
2장 2절에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우정)과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광야 없는 데서는 하나님의 첫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광야 속에서 열매를 맺어요.
보통 사람들이 농사를 어디서 짓는가, 사막에서 짓지 않아요. 물을 잘 댈 수 있는 땅, 씨만 뿌리면 가을에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농사 잘되는 옥토에서 농사짓는 것이 인간의 열매 맺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그 반대로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주신 동산에서 편히 쉴 때 죄지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죄짓고 난 뒤에 하나님이 찾아왔습니다.
환경이 좋다고 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좋기에 인간은 자기 능력을 믿고 그 환경을 믿고 하나님의 열매를 자기가 만들려고 애를 써요. 그것은 백이면 백 다 실패합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의 백성 맞다 하는 것을 언제 느끼느냐하면, 내가 갑자기 광야에 홀로 남았다고 여길 때 비로소 내가 열매다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참 희한해요. 내가 기댈 수 있는 돈이 있다든지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든지 나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든지 내 팬이 많다든지 나를 좋아하는 추종세력이 많을 경우에는 절대로 나 자신이 하나님의 첫 열매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고 나라는 인생은 내가 나를 만드는 나의 열매라고 보이는 거예요.
아주 교만하지요. 제가 지난 주일에 이야기 했잖아요. 하나님의 권세라 하는 것은 과거와 다 끊어지고 미래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바로 하늘의 권세고 세상의 권세는 과거에서 잡아당기는 것이 세상의 권세에요. ‘네가 젊을 때는 참 잘나갔잖아. 그런데 요즘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런 것이 세상의 권세고 하나님의 권세는 미래에서 당기기 때문에 과거와 결별하라는 거예요.
하루 지났나, 그러면 과거를 잊어버리고 또 지났어, 그러면 그제 일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자꾸 잊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미래라 하는 것은 막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광야입니다. 이 광야에서 뭘 하느냐,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을 집어넣고 열매를 맺은 이유가 광야에 가면 사람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겁니다.
광야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게 없어요. 제가 TV를 우연히 보니까 73살 먹은 할아버지가 나와요.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가 한 평생 살아오는 동안 스무 번의 실패를 봤답니다. 성공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요. 그것도 작은 실패가 아니라 큰 실패에요.
태어나자마자 형이 벙어리 되어버리고, 얼마 안가서 동생들이 바닷가에서 다 죽어버리고, 미역하고 김 양식 하는데 폭풍이 와서 다 날려버리고, 개 키워서 좀 살려고 했더니 도둑놈이 와서 개 다 가져가버리고, 느지막하게 막노동을 시작해서 몸은 다 망가지고 그 나마 2층집 하나 짓는다고 농협 대출을 받았는데 하던 사업이 망하면서 은행 차압이 들어와서 힘들게 지어놓은 2층집이 넘어가게 생겼어요.
지금은 뭐하느냐, 닭 한 마리하고 개 한 마리하고 두 마리를 키우는데 집은 한 평짜리 동굴 파고 지내면서 하루 세 끼 라면 먹고 있어요. 소원이 뭐냐, 한 달 십만 원만 벌어봤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에요. 막노동을 해서 이미 몸은 다 망가졌어요.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 한 평생 스무 번의 큰 낭패를 봤답니다. 성공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이것이 인생이다>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지만 이 사람만큼 심하게 망가진 인생을 찾아본 적이 없어요. 한 달 수입이 십 만원이 안돼요. 그래서 십만 원만 벌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거예요. 국가에서 노인들한테 주는 그것도 집이 있다고 안 된다고 하지요. 닭 한 마리 키우고 개 한 마리 키우는데 그것 해서는 한 달 수입이 십만 원이 안 되는 모양이에요.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사업 벌일 밑천이 있습니까, 도와줄 친척이 있습니까? 동생들은 다 죽어버리고 형은 벙어리 되어서 진즉에 집 나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아내는 별거중이니 있으나 마나죠. 아까 십자가마을에 올라온 제임스 리의 글을 보니까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고, ……없고 ……없고’ 이렇게 ‘없고’가 줄줄이 달려 있어요.
하나님께서 생각해놓은 첫 열매는, 내가 나에게 나는 인생을 이렇게 해나가겠다는 어떤 계획을 잡아서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라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열매는 손톱만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순전하게 하나님의 첫 열매에요. 그리고 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첫 열매가 되어야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믿는 신은 다 가짜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1장 16절 봤지요. 다른 신을 섬기면 우상숭배가 되어서 심판받게 되어 있어요.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은 다 가짜입니다. 왜 가짜일 수밖에 없느냐? 그것은 인간들의 노력이 가미된 것을, 자기가 은근히 노리고 기대한 것을 신이라고 잡고 그것을 믿고 기도하기 때문에, ‘아마 예수님은 좋은 분일거야.’라고 생각하고 교회 나오기 때문에 우상이 된다는 말이지요.
진짜 우상이 아닌 신은 뭐냐, 본인부터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예수고 하나님이고 아예 기댈 언덕도 없고 완전히 망가져서 광야에 있을 때 예수님의 쓴잔, 십자가의 피, 그 쓴잔에서 도출된 열매가 진짜 열매입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요한복음 12장에 나와요.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사랑하면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 목숨을 미워하면 영생을 얻으리라.’라고 하면서 그 앞에 보면 ‘한 알의 밀이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했습니다. 그 한 알의 밀알이 뭐냐, 예수님의 쓴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그 첫 열매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상숭배가 되도록 했는데 그 진짜 하나님의 첫 열매 이스라엘은 100퍼센트 완벽하게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으로만 등장된 아주 희한한 사람, 희한한 백성들입니다.
그 백성들은 누가 보더라도 진짜 제대로 본 사람은 ‘저 인간들 구원받는 것은 100퍼센트 여호와 하나님의 공로다.’라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는 그것이 첫 열매입니다. 백퍼센트 주님의 공로입니다. ‘아이고, 거지 나사로가 천당을 가? 그 거지가 뭘 했다고.’ 거지 나사로가 천당 가면 그것은 백퍼센트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마찬가지로 ‘저 창녀가 구원을 받아? 저 강도가 구원을 받아?’ 완전히 백 퍼센트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그럴 경우에만 예수님의 첫 열매라, 예수님의 사랑을 입었다, 예수님의 우정을 입었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제조해요. 광야자체가 비닐하우스에요.
왜, 사람들은 거기서 손을 쓸 수가 없어요. 자기를 건진다든지, 어떤 식으로 구원하겠다든지, 내가 나에게 어떻게 손을 도무지 쓸 수가 없어요. 기도를 해서 구원받는 것이면 기도를 하겠는데 그것도 안 돼, 시편 107편에 보면 광야에 대해서 이렇게 나옵니다. 4절에서 9절에 보면,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그들은 광야에서 부르짖기만 했다는 거예요. 아주 간단하지요. ‘목사님, 광야가 뭡니까?’ 광야란 당신이 어쩔 수 없이 반드시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광야입니다. 광야라고 해서 밥 퍼주는 사랑을 한다고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봐준다는 그런 것이 광야가 아닙니다. 광야라 하는 것은 환경문제가 아니고 본인문제에요.
본인 마음에 ‘나 이제 주님 아니면 이제 희망 없다.’는 부르짖음, 이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상태. 언젠가 그런 설교했지요. 말도 안 나오고 딱 한마디만 나오는데 악, 하는 상태, 윽, 소리만 나오는 상태. 주여, 하는데 그것도 안 나오지요. 주여, 는 두 글자니까. 주님 부를 힘도 없어요. 헉, 그것은 백퍼센트 첫 열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와서만 주의 열매가 아니고 그 열매가 교회 밖에 나가면 매 순간마다 우리는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지요. ‘주여, 하나님이 손 안대도 이 정도는 제 선에서 처리됩니다.’라는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주여,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광야인데 제가 이런 일에 대처할 것은 제 솜씨나 능력이나 지혜가 다 소용없습니다. 저는 그저 윽, 악, 아이쿠, 하는 부르짖음뿐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고 요령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난데없이 바위에서 물이 나오고 난데없이 하늘에서 메추라기 떨어질 때, ‘아, 나는 살았다.’가 아니라 ‘나는 첫 열매 맞구나.’ 그걸 아시라는 겁니다. 주일날 되면 조 장로님께서 하시는 일이 있어요. 유아 실 화초에 물을 주거든요. 화초가 마음이 있고 뜻이 있다면 그때만 기다릴 거예요.
‘장로님 아니면 누가 나에게 물을 주지? 여러분? 누가 나에게 물을 주지?’ 화초가 아마 그랬을 거예요. 그때 그 화초는 조 장로님의 첫 열매가 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지금 계속해서 우리를 열매라고 생각하고 우리에게 물을 주십니다. 왜, 우리 보기에는 ‘저만한 일은 내 선에서 처리할 것인데’ 하지만 주님보기에는 그게 아니에요.
‘넌 광야에 있어.’ ‘광야 아닌데요. 난 돈도 있고 아는 것도 많은데요.’ ‘까불지 마. 광야야, 광야. 네 힘으로 하는 것 아니야. 광야야. 아무리 네가 잘 먹고 잘 살고 네가 똑똑해도 이 세상 자체가 광야다.’라고 하는 거예요. 만약에 내 인생 내가 만든다고 한다면 남들 보기에 우상 숭배자냐 아니냐의 기준점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스스로 나는 광야에 있고 주께서 키우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그 순간만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광야라는 것은 신명기 8장에 있는 대로 마음을 낮추면서 ‘나는 어떤 경우라도 주님의 은혜 없이는 열매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늘 명심하시면서 세상을 광야로 만들어줬기 때문에 날마다 주님만 쳐다보게 하신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자력으로 자기의 소망한 자기의 목표를 이루려고 시도했습니다. 안 되는 짜증부리다가 되면 자기공로고 자기능력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백퍼센트 하나님의 공로만 백퍼센트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첫 열매인줄 알아서 앞으로 저희들이 이 광야에서 주의 주신 은혜로만 살 수 있다는 그런 처지에 있음을, 그런 열매임을 저희들이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