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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6칠곡강의(서양철학)06(강의정리)-스토아학파자유게시판[철학]

06칠곡강의(서양철학)06(강의정리)-스토아학파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6칠곡강의 [서양철학] 05 ☞ 교재 - 파깨비의 철학노트 (도서출판 상아기획)

06,03,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이 세상을 바라보는 3가지 방법 !!

이 세상을 보는데는 3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첫째가 무엇인고 하니까? "물질 위에 관념이 있다" 라는 것인데,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가 사람의 몸을 해부하면 신체만 나오지 정작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런 따로 있는 관념을 신체라는 물질이 보담아준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렇게 감싸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물질이나 물체는 그냥 없어지고 마는데, 하지만 관념의 세계는 영원하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이런 관념을 중심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라는 것이다.

◈ 자연주의 - 관념이 아니라, 물질이 !!

두 번째는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고, 그런데 세 번째는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에서 관념과 같은 모두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로 남아있는 것은 물질이나 물체밖에 없는데, 그런데 이러한 물질이나 물체도 나중에 해체가 되는데, 물도 마치면 없어지고 우리 몸도 죽으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없어지는 것 위에 관념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러니 그 바탕이 되는 물질도 없어지면 그 위에 있는 관념도 역시 없어진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잠시 있다가 그냥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는 것을 소위 '자연주의' 라고 하는데, 앞의 것을 '관념주의' 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은 다 사라지는데, 다만 일시적으로 나타날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도 화장을 해서 재를 뿌리면 결국에는 인간도 사라지는 것이고 말이다. 즉 이근호도 사라지고, 영혼이고, 신이고, 나발이고 다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신이고 예수이고 하는 것은, 그냥 물질이 우연히 조립해서 만든 허구이고 허상에 불과한데, 즉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첫 번째는, 사람의 신체는 없어지지만 관념은 영원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런 신체, 즉 물질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물질도 역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질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데, 이렇게 만져지니 말이다. 여기 이렇게 칠판 지우개가 있는데, 그것을 없다고 우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세 번째는 관념이 물질과 물체에서 일시적으로 조립해서 나온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물질이 없어지면 그 관념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는 관념이 먼저 있었고, 그것을 물질이나 물체가 보호하기 위해서, 즉 그 관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 사랑이 먼저냐? 인간이 먼저냐?

예를 들어서, 자연주의에 의하면 영혼은 이 세상에 없는데, 물론 사랑이니 슬픔이니 라는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한 사랑이란 없는데, 그런데 남자라는 물체와 여자라는 물체가 만나면 서로 좋아하고, 또 헤어질 때는 슬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연주의 입장에서는 사랑과 이별의 슬픔과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일시적인 기분에 불과하지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관념론자들은 뭐라고 하겠는가? 그것이 아니라, 사랑은 분명히 있는데, 오히려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남자와 여자가 죽어도 어떻게 되는가? 그 사랑은 계속해서 남아서, 그의 후손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섬기고 제사를 지내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관념주의와 자연주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빠른가요?

무엇이 빠르다고 하기보다는 관념주의가 우선인데, 물론 시대적인 흐름은 다같이 가고 말이다. 항상 서로가 싸우면서 진행되니 말이다. 심지어 '엠페도크레스' 라는 사람은 얼마나 자연주의자인지, 자기는 이 세상이 불이 전부이라는 것을 신봉하고는, 자기가 죽을 때 분화구에 몸을 던져서 죽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이 자기이고 자기가 곧 불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그런 불 가운서 편안하게(?) 죽겠다는 것인데, 그러니 그는 철저하게 이 세상에는 자연밖에 없다는 것인데, 탈레스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우리가 공부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자연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 플라톤주의와 기독교는 이웃사촌 ??

그러나 여기에 비해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인가? 그들은 자연주의가 아닌 관념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즉 영혼이 원래 이데아의 세계에 있었는데, 그런데 그 영혼이 타락을 해서 물체와 함께 결합한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물질인 몸이 죽으면 영혼은 다시근 자기가 왔던 그 본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플라톤주의가 기독교가 들어오기 400년 전의 이미 있었는데, 즉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이미 이런 아이디어가 인간의 머릿속에 다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느 것이 마음에 들고 지지하는지 궁금한데 말이다.

* 질문 - 피타고라스 종교는 어떠한가요?

물론 피타고라스 종교도 마찬가지이고, 그 이전의 디오니소스 종교의 경우에도 역시 이러한 자연주의 쪽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디오니소스 종교는 이런 식의 접근이 아니라, 즉 사람의 진실은 이라는 것은, 법적으로 정의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까, 인간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것은 제일 처음 배웠던 헬라철학의 근원과 비슷하지 않나요?

물론 그런 근원 속에 하나로 들어있는데, 뮈토스, 즉 신화의 세계 속에 말이다. 그렇게 항상 대비적인 요소가 있는데, 아무튼 이 디오니소스 종교는 '주신제(酒神祭)' 라고 해서 술의 축제를 벌이는데, 왜냐하면 법과 양심대로 사는 것이 너무 지겹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모습, 진정한 해방감을 느끼려고 그런 술의 축제를 열고 하는데, 그것이 자연주의와 비슷하다는 말이다.

◈ 극단적인 감정의 표출로서 진리를 !!

이들은 심지어 이런 잔인한(?) 짓도 했다고 하는데, 아이를 풀어놓고 그 아이를 잡아서 먹어버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자유가 무엇인지를 맛보려고 하는 짓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극단적으로 악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즉 인간이 지을 수 있는 최고의 죄악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그들은 그것이 죄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서, 바른 삶을 추구하는 것인데, 즉 진리가 무엇인지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디오니소스 종교에 의하면, 진리라는 것인 극단적인 자기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할 때 가장 진리에 가깝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하고 싶은 데로 모두 다해도 아직도 여전히 목마른데, 그래서 온갖 짓거리를 다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인간의 가지고 본질적 욕망을 진리라고 본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하지만 그것은 이 시대의 법에 의하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데, 심지어 자연주의자들은 악이나 죄는 없는데, 다만 죄라고 인정할 때만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이다.

◈ 당신이 뭔데 죄악을 이야기하는가?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살고자 하는데, 그것을 누가 죄라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즉 "당신이 뭔데 죄라고, 또한 악이라고 하는가?" 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즉 자연에서 툭 튀어나온 '혹' 이라고 볼 수 있는데, 옆에 있는 튀어나온 혹은 코끼리이고, 개구리이고, 또한 꽃인데 말이다.

그러니 굳이 따지려고 하면 이 대자연에게 따져야 하는데, 왜 하나의 혹에 불과한 인간에 따지느냐는 것이다. 아니, 자기 몸에 종기가 생겼다고 하면, 그 종기보고 야단을 쳐서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그 종기를 생기게 한 몸에게 따지던지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이 피곤해서 종기가 생긴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인간을 두고서 법을 가지고 나쁘다고 하면서 벌을 주고 하는 것이, 그것은 바로 자기 눈을 자기를 손으로 찌르는 것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인간이 인간에게 무슨 자격으로 그런 짓을 하느냐는 말이다. 다같이 자연의 일부이고, 튀어나온 혹인 주제에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사람을 죽이는 것도 역시 그렇다는 말씀이죠?

물론 그러한 살인조차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여기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고 하니까, "진리가 무엇인가?" 라고 하면서, 그 진리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진리라는 것은 이 대자연 가운데 그냥 노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깊숙이 숨어있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 극단적인 감정에 몸을 맡겨서 !!

그러니 혹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인간이나 코끼리나 꽃이나 돌맹이 등에 집착해서는 이 진리를 찾을 수가 없고, 더욱 더 깊이 깊이 파고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깊은 진리층으로 어떻게 파고 들어가는가? 그것은 바로 극단적인 인간의 자기 감정에다 자기 몸을 그냥 내어 맡기면 된다는 말이다.

◈ 정념(에토스)으로 진리를 !!

그런 감정적인 폭발로서, 그것을 '정념(情念)', 즉 '에토스' 라고 하는데, 그냥 쉽게 '정열' 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에 취하고, 요즘 말로 하면 마약에 찌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해체시키는 것인데, 술이나 마약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해체를 시키면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뭔가가 풀어서 녹아지는데, 마치 밀가루가 그렇게 물에 녹아서 밀가루풀이 되듯이 말이다. 그렇게 해체되고 남은 것이 곧 '정념' 인데, 그렇다면 여기서 "나와 너는 왜 생겼는가?" 라는 문제가 남는데, 그것은 바로 감정이 어떤 경계를 지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인간답다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것인가?

예를 들어서, 시장에 가서 두부 한 모를 달라고 하면 한 통을 다 주지는 않듯이 말이다. 정사각형으로 끊어서 주는데, 바로 그렇게 끊어진 것이 곧 법이고, 양심이고, 사회의 윤리와 도덕이고, 또한 가정의 훈계이고, 소위 이 사회에 말하는 '인간답다' 라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즉 부모에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그리고 약속시간을 지키고 하는 것이 말이다.

그렇게 두부를 자르듯이 잘라질 때, 비로소 '나' 라는 것이 성립되는데, 그런데 술에 취하면 '나와 너' 라는 것이 없는데, 남자와 여자도 구별이 안 되고 다같이 꽥꽥거리고 난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에 술이 깨면, '나와 너'가 분명하게 구분이 된다는 말이다. 바로 그러한 것을 자기를 위장하는 가상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디오니소스 종교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디오니소스 종교는 인간의 감정처리에 관한 문제를 다른 것이고, 실제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는 세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 중에서 방금 이야기한 것이 바로 첫 번째의 자연주의이고, 또한 세 번째의 관념론이 있다는 것이다.

◈ 아, 이 맛있는 음식들을 !!

늦게 오신 분이 있어서 다시 정리를 하자면, 그렇게 인간들이 주체할 수 없는 자기의 욕정과 욕구를 어떻게 해결했는가? 예를 들어서, 로마시대의 귀족들은 어떻게 살았는고 하니, 맛있는 것이 지금 자기 눈앞에 있다고 하면, 그것을 먹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먹었던 것을 다시 토해낸다는 것이다. 보다 더 짜릿한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당시 황제나 귀족들이 먹던 음식에는 200가지 코스가 있다고 하는데, 코스를 먹고 또 먹으면 뒤에 음식이 앞에 것에 가려서 제대로 맛을 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 앞에서 먹은 것을 토해내고 다시 새로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다. 주인이 토하면 그 토한 음식을 처리하는 시종이 또 옆에 있고 말이다. (그것을 받아서 먹었을까? 당근!!)

◈ 맛은 하늘에, 음식은 땅에 !!

그러므로 "가장 맛있다!" 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고 하니, 그 맛은 분명히 관념의 세계에 있고, 그런데 음식은 실제로 여기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동일한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이 같지 않는데, 그것은 맛이 아닌 음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야, 맛있다!" 라고 하는 맛은 여전히 그대로 있는데, 그런데 음식은 동일한 것을 먹어도 그 맛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야, 맛있다!" 라는 것을 계속해서 유지해주려고 하면, 그 음식은 세월을 따라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해주어야만 "야, 맛있다!" 라는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은, 즉 물질은 변하는 것이니 이 세상에 속해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야, 맛있다!" 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 즉 변하지 않은 영원한 관념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이것이 바로 첫 번째의 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디오니소스는 여기에 속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어떤 점이 유리한고 하니, 이 관념을 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 판사가 어떻게 강도를 재판할 수 있는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아까는 '맛있다' 라는 것을 예로 들었는데, 이제는 '훌륭하다', 혹은 '선하다' 라는 것을 예로 들어보면, 제 아무리 천하에 악한 살인강도라고 해도 선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아무리 아비가 악해도 자식에게는 좋은 준다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악한 아비 속에도 좋은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도에게도 선한 것이 있고, 또한 판사에게도 역시 선한 것이 있는데, 그런데 판사가 강도를 재판할 권리가 어디에 있는가? 둘 다 동일하게 선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판사는 강도보다도 선한 것이 더 많다는 말이다.

◈ 관념의 세계에도 서열이 있어서 !!

이것을 관념의 세계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하늘의 세계에서는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선해지는 그런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최고로 선한 사람은 철학자인데, 즉 이것을 '철인'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밑에는 제사장을 비롯한 종교인들인데, 제일로 밑에 있는 자들이 누구인고 하니, 거의 짐승의 수준인 백정과 강도와 포주와 일반 농민들(?)이고 말이다. 아무튼 선하지 않고 악하다고 여기는 놈들이 여기에 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념의 세계에서 선이 있으면 제일 밑바닥에는 악이 있는데, 그렇게 되면 선과 악 사이에 약간 덜 선하고 덜 악하다고 하는, 그런 서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서열이 성립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서열을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하면서 하나의 국가체제가 성립되고 말이다.

◈ 그러니, 선생님은 학생보다 착해야 !!

예를 들어서,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면, 그 학생은 선생님이 자기보다 더 착하다고 하는 것이 인정될 때는 그 매를 받아들이면서, 즉 "나도 선생님처럼 나쁜 짓을 하지 않고 훌륭하게 살아야지" 라고 하는 것이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선생인 니나 나나 다 나쁜 놈인데, 왜 니가 나를 때리노?" 라고 하게 되면,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생님이 학생보다 착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착함이 아니라 수학지식이라고 하면, "나도 선생님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수학을 잘해야지" 라고 한다면, 그렇게 해서 수학이 90점이 되고 80점이 되고 50점이 생기게 되는데, 그러면 선생님이 50점을 받은 아이에게 "너는 왜 90점을 받지 못하나?" 라고 하면서 야단을 친다면, 그것은 인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나도 열심히 해서 90점을 받아야지" 라고 하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상태가 바로 신의 세계인데, 그리고 아직도 악한 것이 있는 것은 인간의 세계이고 말이다. 그러니 인간의 세계에서 훈련을 받고 수련을 해서, 점점 더 이 세상이 신의 세계를 닮아가게 될 때, 비로소 이 세상은 이상적인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관념의 세계는, '법'의 존재를 긍정 !!

그러므로 이 관념의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법' 인데, 즉 법의 존재를 긍정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디오니소스 종교의 경우에는 법이 있으면 있을수록 무엇을 억압하는가? 그렇게 되면 파도가 점점 더 강해지는데, 그러면 자기의 진정한 자아를 잃어가게 되는데, 물론 그들에게는 자아도 없는데, 아무튼 그렇게 되면 점점 더 진리의 세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계속해서 대립이 되는데, 그런데 이것이 헬라철학서 나중에 로마세계로 유입이 된다는 말이다. 즉 로마가 나라가 강성해져서 옆에 있는 그리스와 다른 나라들을 정복함으로서 헬라철학이 로마세계에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권력자들은 당연히 이 관념적인 철학을, 즉 법을 중요시하는 철학을 옹호하게 되는데, 디오니소스 쪽보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이 해야 된다고 해서 '철인정치' 라는 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철인' 이라고 하니까, 마치 철갑을 입은 그런 군인을 연상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철학자들이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 로마의 3가지 정치제도 !!

로마의 정치에는 3가지가 있는데, 먼저 '군주제'가 있고, 이것은 일인독재라고 할 수 있는데, 황제가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공화제'가 있는데, 이것은 귀족들이 하는 정치로서, 일종의 철인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소위 똑똑한 사람들이, 철학을, 즉 진리를 비교적 많이 아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게 참여하는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있는 '민주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공화제는 민주주의가 아닌가? 구분이 애매한가?)

어떤 의미에서 지금도 이런 시도는 계속해서 그 실험이 진행이 되고 있는데, 먼저 군주제는 상징적인 왕이 있는 나라인데, 영국이나 태국이나 일본이나, 일부 왕이 있는 유럽국가 그렇고,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도 역시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귀족정치는 무엇인고 하니, 이것이 바로 의회제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국회의원이 되려면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하고, 남들보다 많이 배우고 똑똑해야 되고, 또한 윤리적으로 남들보다도 더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제는 말 그대로 민주주의로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래서 이 칠곡의 경우에도 칠곡주민들의 권한을 한 두 명에게 위임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 권리를 이양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당신이 시키는 데로 복종을 하겠습니다" 라고 계약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권한을 위임받은 데서는 또 대통령 후보를 내게 되는데, 그렇게 되니 결국에는 민주제에서 귀족제로, 그 귀족제에서 다시 군주제로 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3가지가 한꺼번에 모두 다 있는 것이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할 때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법을 가지고 해야하고 말이다.

◈ 이제 '스토아 학파'에 대해서 !!

이렇게 첫째 자연주의와 셋째 관념주의를 이야기했으니, 그 가운데 두 번째로 있는 스토아 학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는데, 이 스토아 학파의 유래는, 그 창시자인 제논이 아테네의 광장에 있던 공회당 '채색주랑(彩色柱廊)'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즉 여러 개의 기둥이 있는 방도 아닌 곳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 제자들을 스토아파, 즉 '주랑(柱廊)의 사람들' 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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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아(주랑, 柱廊) - 여러 개의 기둥을 세워놓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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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사건중심으로 보자 !!

아무튼 그들은 그러한 주랑에서 생각을 하면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녔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 어떤 존재가 물질인가? 아니면 관념인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보자는 것이다. 사건으로 본다는 것은 아주 특이한 경우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이렇게 지우개가 있다고 하면, 이 물질이 움직이는데, 그것을 운동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움직이는지를 알려면, 망치를 가지고서 그 물질을 깨보면 되는데, 그러면 그 안에서 왜 움직이는지, 즉 운동을 하는 이유와 그 원인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물질주의자들은 말하기를, "불이 왜 타는가? 미워서 탄다" 라고 하는데 말이다.

흔히들 "물질이 먼저 있고 운동이 나온다" 라고 한다면, 물론 그것은 맞는 말인데, 그리고 그 물질은 관념에서 나온 일시적인 구체화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형상이고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너무 어렵게 하면 서로 힘드니 그런 것은 오늘 생략하고 말이다.

그런데 스토아 학파는 그것이 아니라, 운동이 먼저 있고 그 운동이 잠시 구체화된 것이 물질이라는 것이다. 즉 사건이 먼저 있고, 그 사건이 터질 때 보니 물질이 생기더라는 말이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얼마나 기발한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시간과 공간이 !!

보통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물체가 있다고 보았는데, 즉 물체는 일시적이지만 시간과 공간은 영원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스토아 학파는 그것이 아니라, 사건으로 말미암아 물체가 생기면, 동시에 거기서 공간도 생기고 시간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 이렇게 텅텅 비어있는데, 이렇게 점을 하나 찍으면 이 점이 있는 공간이 하나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아무 것도 없으면, 그것을 빈 공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간자체를 없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기에 이렇게 책상이 있고 그 위에 컵이 있다고 하면 '컵이 놓여있는 책상' 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데, 그런데 컵이 없어져 버리면 그것이 아예 의미가 없어지고, '컵이 놓여있는 책상' 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컵이 놓여있는 사건이 일어나야 된다는 말이다.

◈ 이근호는 1953년생이다 !!

또 예를 들어서, '이근호' 라는 인간이 태어났기 때문에 "이근호는 몇 살이다" 라는 것이 성립되는데, 즉 대한민국의 역사를 볼 때 이근호는 1953년에 태어났다고 보면, 그렇게 "이근호 너는 1953년생이다" 라고 하면 말이다. 그런데 스토아 학파에 의하면 그게 아니라, 즉 서기 몇 년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자기 중심으로, 이근호가 태어나고 나니 비로소 1953년이라고 하는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스토아 학파의 주장을 완전히 엉터리로 보는데, 미친놈들이 하는 헛소리로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을 곰곰이 되새겨보면 말이 되는 것이, 왜냐하면 제 아무리 월드컵이고, 붉은 악마든 간에, 자기가 눈을 감고 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무엇이 있는가?" 라는 것이 아니라, 즉 관념이 있는지, 사랑이 있는지, 물질이 있는지, 또한 불이 있는지,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에게 의미가 무엇인가?" 라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말이다.

그러니 이 스토아 학파의 사람들이 기존의 철학자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물론 지금도 이러한 스토아 학파와 같은 주장을 하면 왕따를 시키고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관념적이고 법적인 체제는 철저히 서열중심이기에 말이다.

◈ 수학은 어디에 있는가?

아까 집사님은 전화를 받는다고 듣지 못해서 다시 하겠는데, 예를 들어서, 수학의 경우에, 원래 수학이라는 것 자체는 없는데, 그런데 수학시험을 쳐보면 점수가 좋은, 즉 수학지식이 뛰어난 사람이 있더라는 것이다. 수학은 없지만, 그런데 그러한 논리를 만들어서 시험을 쳐보니, 어떤 사람은 엄청 잘하는데, 그런데 어떤 사람은 빵점을 맞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학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사실은 없는 것이 모든 것은 다 있는데, 이데아의 영원한 세계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완전한 수학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데, 그런데 이 지상에는 수학을 많이 아는 사람도 있고, 조금 아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즉 서열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니 관념의 세계에서는 항상 중요한 것이 서열인데, 즉 최고부자는 하나님인데, 그런데 이 땅에서는 그런 최고부자에 가까운 사람들이 있고, 또 지지리도 못난 가난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이에는 당연히 서열이 생기는데, 그렇게 서열을 매기는 것을 두고서 '법'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착함의 경우에도 서열이 있어서 !!

아까도 말했지만, 착함은 어디에 있다고 했는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데, 그러니 이 세상에는 조금 많이 착한 사람이 있고, 덜 착한 사람이 있고, 또한 조금 악한 사람이 있고, 많이 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열이 생기는데, 그런 서열에 따라서, 즉 서열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가르치고 훈계할 때, 사회는 그 권위를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니가 뭔대 나를 훈계하노?" 라고 하면, "나는 너보다 착함이 많거든" 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야 질서가 유지되고,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토아 학파는 이러한 것을 완전히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법 체제를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착함이라는 것은, 사건과 사건의 우연한 마주침에서 일시적으로 자기에게 의미가 생길 때, 그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한번 해보겠는데, 여기 이렇게 법이 있으면, 관념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데,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목적이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인데, 또한 기독교 신학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지금 모든 기독교 신학이 다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목적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모든 행위가 다 목적이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목적인' 이라고 했고 말이다. 그러니 인간을 망치로 부수게 되면 그 안에 목적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것이 안에 들어있으니 인간의 모든 행위가 다 목적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다.

◈ 스토아 학파 - 과연 인간의 행동에 목적이 있는가?

그렇게 인간 속에 목적이 있다는 것은, 그 인간 속에 신성이 들어있다는 말인데, 그래서 인간은 신이라는 목적을 향해서 질주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또 서열이 생기는데, 그런데 스토아 학파는 이런 것이 없다는 말이다. 즉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감히 상상이 되는가? 인간의 행동에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말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스토아 학파가 목적이 없는 삶을 살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즉 "여러분, 목적이 없는 세상을 만듭시다. 그러면 행복합니다" 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이 또 목적이 되니 말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새가 우는지, 새에게 물어보았는가?

스토아 학파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흔히 사람들은 원숭이가 꽥꽥거린다고 하면 그것은 목적이 있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을 원숭이에게 물어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새가 짹짹거리면, 우리는 새가 운다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을 새에게 물어보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운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만 의미가 있는데, 그러니 새에게는 그러한 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새에게는 새만의 다른 세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일방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느냐는 것이다.

◈ '나'와 '너'를 비교해보면 !!

제가 방금 인간과 원숭이와 새를 비교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서 '나'와 '너'를 비교해보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느끼면 남들도 그렇게 느낀다고 윽박지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아이의 행동에 대해서 미처 그것을 아이가 판단이기 이전에 이미 부모가 먼저 판단해서 그 의미를 아이에게 주입을 시켜버린다는 말이다.

◈ 아이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

그러니 그 아이는 부모의 의미를 마치 자기의 의미처럼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야단을 맞으니 말이다. 그래서 부모가 요구하는 대로, 마치 앵무새가 따라하듯이 그렇게 따라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말이다.

예를 들어서, "너는 왜 영어를 공부하지?" 라고 하면, "예, 영어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훌륭하다는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다. 아무튼 부모가 심어준 대로 그냥 그대로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런가 하여(?)"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어떤 일이 있어서 그만 그 자식이 부모에게 상처를 입었다든지 하면, 그동안 자기가 부모로부터 받은 그 모든 인식을 한꺼번에 다 휴지통으로 그냥 버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부모의 꼴도 보기 싫어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새롭게 정립을 하는데, 그때부터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친구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 콜부르기(?)의 '도덕성장론' !!

이것이 콜부르기(?)의 '도덕성장론'에 보면 나오는데, 점점 자라면서 부모개념에서 친구개념으로 옮겨가면서 평등개념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면 독자적 개념으로 나아가서, 자기가 이제는 과거의 자기 부모처럼 그렇게 절대 신으로 군림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에는 사건에 대한 의미를 주입식으로 부모가 그렇게 주는 대로 받아들였는데, 즉 부모가 아이에게 일어난 사건을 부모의 입장에서 해석하는데, 그렇게 해서 "이것은 너의 해석이다" 라고 하면서 강제적으로 주입시키는데, 그러면 아이는 앵무새처럼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성장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선택' 이라는 저의 명저(?)에도 나와있지만, 몸이 커지니 그만큼 에너지도 많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서 부모들은 늙으니까 젊은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젊은 시절을 기억해봤자, 그렇다고 해서 현재 자식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관행이라는 것이 있어서, 부모는 계속해서 부모 노릇을 하려고 하는데, 그래서 나이 80이 된 노모가 50이 된 자식에게 "야야, 운전을 조심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때 속으로는 "어머님이나 조심하세요"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은데, 자기는 운전은커녕 제대로 걷지도 못해서 병원에 하루가 멀다하고 입원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권위라는 게 있어서, 부모는 그렇게 잔소리를 할 때 그 권위가 보존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잔소리를 하게 되고, 그러면 자식은 "예, 알겠습니다. 어머님" 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부모는 자식이 자기 말을 잘 듣는 줄로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뒤로 호박씨를 까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까, 뻔히 자식이 부모를 알고 부모의 마음을 달래는 쪽으로, 부모가 그동안 구축한 자아의식을 존중해주는 식으로 화답을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80 평생 살아온 그 성격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즉 방치를 하면서 그냥 기분만 맞추어준다는 것이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결국 각자의 존재 의미가 달라 !!

이처럼 '나'와 '너' 사이라고 해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바라보는 이 세상에서 존재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의미가 다른가? 바로 그것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데, 즉 모든 것은 '의미' 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존재의 의의' 이고 말이다. 즉 "왜 사는가?" 라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존재분석을 해놓은 것을, 즉 "인간은 이러 이렇다" 라는 것을 실컷 배웠는데, 인간은 지정의로 되어있고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수학도 배우고 영어도 배운다는 말이다.

◈ It's rain ??

예를 들어서, "It's rain" 이하고 하면 "비가 온다" 라는 의미인데, 그런데 거기에 왜 'It'이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그런 'It' 이라는 의미가 없는데 말이다. 그 이유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It'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빼버려도 말은 분명히 되는데, 그런데 그만 시험에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It's rain" 이라고 하면서도 왜 그런지, 정작 그 이유는 모른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의 행동은 자기가 결정하는데, 그런데 왜 그 의미도 전혀 모르면서 그렇게 "It's rain" 이라고 'It'를 쓰느냐는 말이다. 왜 그러한 의미 없는 미친 짓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냥 'rain' 이라고 쓰고 싶은데, 왜 'It' 이라는 것을 써야하느냐는 것이다. 다른 것에도 모두 이 'It'를 붙으면 몰라도, 또 그것은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이런 의미 없는 짓을 강요하는 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 싶다는 말이다.

◈ 각자 각자에게 발생한 사건이 다르기에 !!

그러니 스토아 학파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니 꼴리는 대로 하세요" 라는 것인데, 즉 남이 강요하는 그런 의미 없는 행동에 따라갈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남이 강요하는 의미이기에 말이다. 왜냐하면, 남이 강요하는 의미라는 것은, 자기가 아닌 그 사람에게 발생한 사건이 만든 사건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사건' 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해야 하는고 하니, 사람은 사건과 사건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내'가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만 있지 말이다. 그리고 이 '어제' 라는 것도, 어제가 있어서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 있으니 어제가 있다는 것이다. 즉 오늘이 되어봐야 비로소 어제가 있다는 말이다. 어제에는 어제가 없는데, 아무튼 지금 오늘의 '내'가 있다는 말이다.

◈ 만약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면 !!

그러니 오늘 이렇게 있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그만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그것은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교통사고' 라는 사건이, 그런 특수한 사건을 '사고' 라고 하는데 말이다. 사건이 중요하지 사고는 조금 곤란한데, 사고는 그 뉘앙스 자체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고나 나서 기억을 잃어버리면 고등학교 시절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렇게 보는 것이고, 그러나 보통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여기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즉 "지금 니가 대학생이니 고등학교 시절이 있었잖아. 그러한 시절이 없이 어떻게 대학생이 될 수 있는가? 지금 니가 사고로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내 말이 맞잖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태도는 무엇인고 하니, 시간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나' 라는 사건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스토아 학파적인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관념적이고 법적인 체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적인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너는 이씨 집안의 자손이야 !!

예를 들어서, "너는 이씨 집안의 자손이야. 그러니 뼈대가 있는 양반이야" 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양반이라고 하는 것도, 지금 '나'의 사건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적인 입장에서는 "지금 너는 이씨 집안의 공간이라는 곳에 있고, 그 이씨 집안의 한 사람으로서 태어났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인데, 그래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말이다. 자기는 어떤 가문에 속했음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즉 부모가 없이는 자기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토아 학파에게는 그렇게 본다는 것 자체가 자기 자신에 대한 모독이란 것이다. 즉 시간이나 공간이 먼저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 있다고 하는 우연한 사건, 바로 그 사건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내'가 있기 위해서 사건이 있다고 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건이 하나의 목적을 지니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일어난 사건은 목적이 없는데, 우연하게 발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연히 마주치니 '나' 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말이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말이다. 이름이라는 것도 다른 특별한 이름이 없어서 그냥 '근호' 라고 지었고 말이다. 즉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은 사건의 의미를 핍박해 !!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정해버리면 그만 목적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은 그 시간과 공간의 종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어떤 사건이 발생해도 그 사건의 의미를 핍박하게 되는데, 즉 "어허, 조용히 해. 그것이 알려지면 우리 가문에 똥칠을 하는 거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뭔가 사건이 터졌는데, 그런데 부모는 그것을 자꾸만 감추라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환장할 노릇인데, 그러면 자식은 부모에게 다시 묻게 되는데, "아버님, 도대체 어떤 사건은 감추고, 또한 어떤 사건은 드러내야 합니까? 좀 가르쳐주세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을 하겠는가? "응, 니가 서울대학에 들어간 것과 또 장학금을 받은 것, 그런 것은 드러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술을 마시다가 술집여자와 놀아나다가 그만 사고를 쳐서 돈을 물어준 것은 감추어야만 돼. 그리고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을 다치게 한 것도 숨겨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온통 자기 의미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뿐 !!

이것은 부모가 강요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중에 결혼을 하면 자식도 그러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빠는 싫어. 아빠 앞으로 뽀뽀도 하지마. 매일같이 술 냄새와 담배 냄새, 그런 것은 정말 싫어. 술 담배가 얼마나 몸에 안 좋은지 아빠는 몰라?" 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되면 부모의 눈치뿐만이 아니라 자식의 눈치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술과 담배가 몸에 좋지 않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가? 그것은 바로 그 아이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자기의 의미인데, 그런데 그 아이는 자기에게 발생한 자기의 의미를 자기 아버지에게 그대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아이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의미가 자기에게 강요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 사건은 목적이 아닌, 원인만 있어 !!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스토아 학파에게서 어떤 점이 어려운고 하니까, 모든 사건이 목적이 없다는 것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한 것인데, 사건에 목적이 없다는 것이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니 목사님, 사건이 왜 목적이 없습니까? 제가 이렇게 물을 떠온 것도 목사님이 목이 말라서 떠가지고 온 것이니, 다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라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목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오직 모든 것은 원인밖에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보통 사람에게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즉 '나' 라는 존재도 하나의 사건인데, 스토아 학파도 그것을 사건으로 보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통 부모의 결혼이라는 사건이 있어서 '나' 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런데 스토아 학파는 그것이 아니라, 부모의 결혼이라는 사건조차도 '나' 라고 하는 것이 있는 그 사건의 일부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건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나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부모를 만난 것도 있고 말이다. 즉 'B' 라는 지점에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서 'A' 라는 지점에 영향을 주는데, 그런데 스토아 학파에서는 한 쪽에서 원인제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제공을 한다는 것이다.

◈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을 제공 !!

무슨 말인고 하니, 더 어렵게 이야기하면(?), 제가 우리 집안에서 둘째 아들인데, 그렇게 둘째 아들이 등장하도록 그렇게 부모에게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아야 되겠다는 것을 유발시켰다는 것이다. 그냥 부모가 둘째를 낳았기에 이근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다 원인제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단순히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상호간에 다 원인을 제공한다는 말씀이지요?

그것이 바로 스토아 학파의 윤리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사건에는 상호간에 다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책임을 지우고 말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 원인을 제공했으니 말이다.

◈ 왜 당신은 거기를 지나갔는가?

예를 들어서, 어느 술 취한 놈이 길 가는 여성에게 성폭행을 했다고 하면, 그런데 그 놈이 하는 말이 "왜 당신이 그 어두운 밤거리를 지나갔느냐?"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일반적인 관념적 차원에서 볼 때는 선한 판사의 경우에, 그런 놈은 형량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냥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면 5년만 징역을 살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그래도 스토아 학파에게 좀 배웠다고 하면서(ㅋㅋ), "왜 당신은 거기를 지나갔는가?" 라고, 그 따위 소리를 하게 된다면, 그만 판사는 열을 받아서 형량을 10년으로 때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10년의 형을 받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다가, 그만 그 교도관과 싸워서 죽이게 되어서 사형을 당하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왜 별은 반짝이는가?

그게 '뫼르소' 라고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인데, "왜 별은 반짝이는가?" 라고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죽는 것도 그런 이 세상의 모습인데, 즉 '부조리' 라는 말이다. 이 주인공이 아라비아 사람을 죽여서 그만 체포가 되는데, 왜 죽였느냐고 물으니, 자꾸 햇볕 때문에 죽였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 햇볕이 너무 따가워서 총을 발사했는데, 그만 아라비아 사람이 맞아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주인공은 사형을 당하고 마는데, 이 까뮈의 '이방인'이 19세기초의 철학적 배경을 담고있는 작품인데, 그렇다면 법적인 관념론에는 이것을 뭐라고 하겠는가? 주인공이 왜 그 아라비아 사람을 죽였는지, 그 이유를 밝힌다면 말이다.

그 당시에 프랑스로 아라비아 사람들이 많이 유입이 되는데, 그렇게 되니 기존 프랑스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값싼 노동력이 들어오니 말이다. 그렇게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감정이 좋지 않던 차에 태양이 내리쬐는 해변에서 그만 주인공이 열을 받아서 총을 당기게 되는데, 거기에 그만 아라비아 사람이 맞아서 죽었다는 것이다. 물론 제가 느끼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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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 [異邦人, Etranger, L'] -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1942). 세상에 대한 자각도 없이 수동적인 권태감에 빠져 살던 평범한 주인공 뫼르소는 단순히 태양빛 때문에 우발살인을 한 후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인생에 대해 무관심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인간은 이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고, 자기 운명의 불합리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항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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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죽었는데, 내가 왜 울어야 하는가?

하지만 정작 까뮈는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것은 법의 기능은 그럴지 몰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책에 오면 주인공의 엄마가 죽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런데 엄마가 죽었다고 자기가 왜 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번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자기는 엄연히 전혀 다른 존재인데 말이다.

다시 말해서, 엄마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즉 다른 사건이 엄마를 만들었는데, 외할배와 외할매가 동침해서 말이다. 그런데도 왜 자기가 울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평소에 엄마가 자기를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즉 먹을 것도 먹지 않고, 시장에 나가서 장사하고, 남들이 다 노는 공휴일도 쉬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을 좀 알아달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사건들이란 말이다.

◈ 왜 철학자들은 자살을?

그러니 까뮈는 이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하는 말이, 자기 그런 목적자체에 대해서 거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목적이 있어야 되는 이유를 누가 한번 이야기해보라는 것이다. 정작 까뮈 본인도 나중에 자살을 하게 되는데, 엠페도크레스도 불 속에서 뛰어들었고,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인 제롬도 자살했고, 또 현대 프랑스의 철학자인 들뢰즈도 자살을 했고 말이다.

이 자살은 무엇인고 하니, 죽음이라는 사건이 어차피 올 것 같으면, 그것을 '아이온' 이라고 하는데, 순수한 시간이라고 말이다. 헬라어로 시간에는 '카이로스'와 '아이온'이 있는데, 즉 한 순간 한 순간을 카이로스라고 하고, 아이온은 그런 사건과 사건이 한 곳에 다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아이온의 입장에서 보면, 자살이라는 것은 죽음을 미리 마중을 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제일 무서워하지만, 그러나 철학을 하게 되면, 죽음조차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해야만 철학이 철학답고, 진리가 진리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지나가는 관만 쳐다보아도 "엄마야" 라고 하면서 무서워하는데, 왜냐하면 죽음은 자기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니 말이다.

체코의 프라하에 가면, 중세 13세기에서 15세기에 사용한 고문기구들이 그대로 전시가 다 되어있다고 하는데, 물론 저는 사전으로 보았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온갖 기구들이 모두 다 있는데, 사람의 뇌를 짜내는 기구, 살을 골고루 다 찢는 기구, 그리고 쇠로 된 가시가 안으로 박혀있는 옷도 있고 말이다. 그런 것들이 다 일종의 위협인데, 실토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것은 몸이 해체되는 것인데, 그러니 사람들은 팔과 다리와 머리가 다같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무서운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살아야 하겠다는 목적이 있어서 그러한데, 그러니 자연적으로 죽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함께 병행이 된다는 말이다.

◈ 삶의 목적이 없으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

그런데 그런 목적이 없다고 하면, 즉 살아야 하겠다는 목적이 없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역시나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두려움이 없는 것만큼 더 확실한 진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곧 스토아 학파에서 이야기하는 최고의 윤리인데, 즉 죽음조차도 무서워하지 않고 살아갈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 질문 - 스토아 학파를 듣고 난 뒤에 드는 느낌이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 제 안에 채워있다고 하는 것이 마치 빈 통처럼 느껴지는데 말입니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냥 목적이 없이 그냥 부딪치면서 살아가는 느낌이라는 말입니다.

◈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

그래서 스토아 학파에서는 그것을 두고 늘 개운다고(오바히트?)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에게 목적 대신에 원인이 들어오니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원인이 들어오면, 그 원인은 머물러있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 버린다는 것이다. 즉 바람이 통과하듯이 그냥 그렇게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여기 학원에서처럼 전화가 결려오면 또 상담을 하다가, 그리고는 또 다시 바람처럼 지나가 버리고 말이다.

그렇게 지나감으로 해서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면, 그렇게 된다면 종교라는 것도 필요가 없게 되는데, 더 이상 누구를 믿고 의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것도 다 나름대로 목적이 있는데, 즉 천당에 가려고 말이다. 그러니 이 스토아 학파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이 철학에 대해서 문제점을 이야기할 것인데 말이다.

◈ 관념론자 - 신을 향하여 !!

하지만 여기에 비해서 관념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 속에 신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최고의 수학자는 신이라는 말이다. 이 우주를 정확하게 알고 설계를 하고 창조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수학을 하는 것은 정당한데, 신이 수학을 했기 때문에 말이다. 오히려 그런 수학을 하지 않으면 무식하기 때문에 서열상 저 밑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언어를 이야기했다고 하면 우리 인간도 역시 언어를 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은 놈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잘 하는 사람은 신적인 요소를 많이 부여받았기 때문에 서열이 높은, 즉 이 세상에서는 영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관념에서는, 모든 것이 다 신으로 나아간다는 말이다.

◈ 스토아 학파 - 내가 곧 신이다 !!

하지만 스토아 학파는 그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즉 그러한 원인과 원인을 바로 신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스토아 학파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닌데, 오히려 "인간이 바로 신이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오잉, 독수리 오형제 !!

그러므로 신은 하나가 아니라, 마치 '독수리 오형제'처럼 그렇게 여러 명이 합쳐서 하나의 비행기가 되고 한 마리의 불새가(?) 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5명이 아니라 4명이 된다면, 즉 뭔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는 말이다. 즉 5명이 모여야 제대로 하나의 신이 되고, 또한 5명이 되어야 각자가 하나 하나의 신이 된다는 것이다. 즉 합쳐진 하나도 신이고, 5명이 하나 하나가 모두가 신이라는 것이다. 작은 신도 아닌, 모두가 동일한 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신이 되겠다고 하는 목적을 내재적으로 집어넣으면 그만인데(?), 즉 따로 신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관념적인 사고에서는 "신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스토아 학파에서는 "신으로 산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점을 아시겠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시켰다" 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사건이 나오도록 했다" 라는 것인데, 즉 자기가 신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사건을 자기에 발생시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찬양을 하더라도, 자기가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찬양하는 사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내가 곧 당회장이다 !!

이것이 곧 스토아 학파인데, 그러니 기존의 뭔가가 남아있으면 새로운 원인이 와서 충돌하게 되는데, 그러니 토해내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부인'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러한 자기부인이 곧 윤리인데, 즉 교회에서 "내가 당회장이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새로운 원인이 다가오면 그만 반격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 목사 :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당회장이야.
* 장로 : 그동안 수고하셨는데, 이제 그만 나가주셔야 하겠습니다
* 목사 : 내가 당회장인데?
* 장로 : 그래도 나가주셔야 합니다.
* 목사 : 그러면 돈을 줘야지?
* 장로 : ? ? ?

왜 이런 현상들이 생기는고 하니, 그동안 자기가 설교하고 목회를 한 것인 사건인데, 그런데 그것을 사건으로 보지 않고 존재로 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가 더 잘하는지, 그것을 비교해보자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설교를 제일 잘 하는데, 그렇다면 이 땅에서는 그런 하나님과 제일 가까운 사람이 역시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제가 이렇게 천박한 예를 드는 것은, 평소에 우리가 철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으니, 자기가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펴보면, 여기 스토아 학파에게는 자기가 노골적으로 신으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그런데 관념적으로 그렇게 자기는 부족하다고 하면서 신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닮아가려고 하는 것도 역시 자기 아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저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하는 모습조차도, 즉 그런 모습도 역시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고집하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의 잘난 것만을 붙잡아두려고 하는 것은, 그것도 역시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모습이 아니냐는 것이다.

◈ 당신들은 왜 솔직하지 못한가?

그러니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들을 보고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만약에 그럴 것 같으면 아예 풀어서 헤쳐버려라. 왜 인간이 되어서 그렇게 솔직하지 못한가? 나는 신이 되려는 목적이 있다" 라고, 그렇게 얼마든지 비판조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 관념론 : 어이, 잘 있었나?
* 스토아 : 그래, 잘 있었지.
* 관념론 : 나는 거룩해야만 돼.
* 스토아 : 당신에게 누가 그런 목적을 집어넣었지?
* 관념론 : 하나님이 그렇게 했지.
* 스토아 : 하나님이라고 둘러대지 말고,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배웠는데?
* 관념론 : 저근호(?) 목사에게 배웠지.
* 스토아 : 그것은 당신의 목적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당신에게 기대한 목적이지?
* 관념론 : 무슨 말이야?
* 스토아 : 니가 처음부터 그런 목적을 가지고 있었나?
* 관념론 : 아니, 없었어.
* 스토아 : 그러면 누가 집어넣었지?
* 관념론 : ? ? ?

이러한 목적이 있을 때는 이것이 다른 목적과 충돌이 되는데, 그러면 여기서 다툼이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서로 싸우게 되면 결국 죽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토아 학파는 이것을 보고 비웃는데, 즉 "너희들이 그렇게 신을 바라보고 선을 행한다고 하면서, 그런데 그 선을 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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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5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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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