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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0310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히브리서자유게시판히브리서

20090310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히브리서

이름 : 한윤범(IP:119.192.174.43)

20090310b 부산강의 : 조지래드 [신약신학]-히브리서

(강의:이근호 목사)

히브리서 10장 31절 봅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그러니까 하나님 손에 빠져진다는 게 무섭습니다. 지금 자기가 비방 안에 있는 걸 신경 쓸 새 없어요. 하나님이 더 무서우니까.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고.

좀 어렵게 해봅시다. 밧줄이 나오는데 밧줄보다 ‘관’합시다. 천국에서 관이 나오면 파이프가 나오면, 파이프가 뭐가 흘러나오면서 어떤 힘이 나오면서 흘러들어가게 되죠. 흘러나와서 다시 도달된 사람에게 빠져 들어가는 것을 관과 연결된 천국에서 보는 시선, 바깥에서 바라보는 시선, 이걸 둘 다를 히브리서는 이야기하기 때문에 히브리서는 그 자체가 역사적이 아니고 묵시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애네들은 이걸 가지고 공간적 이원론이라고 하잖아요. 히브리서 여기서 래드가 말하기를 다른 서신은 전부다 시간적인 것인데, 시간적일 때는 이게 없이 한 개인만 있죠. 개인이라 하는 것은 과거에서, 현재에서 미래로 끌려간다 이래 되잖아요. 시간은 그렇잖아요.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흘러가잖아요.

그런데 묵시는 어떻게 된다? 미래에서 와서 데려가는 식으로. 우리 성도가 그걸 느껴야 돼요. 주께서 나를 데려간다는 걸 느껴야 돼요. 죽을 때도 그냥 죽는 게 아니고 누가 와서 데려가는 거예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죠. 거지 나사로가 천국 못 갑니다. 아주 좋은 말이죠. 왜? 천사가 와서 데려가죠. 데려가는 식으로.

뭔가 나를 끌고 가는 용역업체직원, 보디가드처럼 뭔가 천국에서, 성령이 하시는 일이지만, 나를 데려가는 식으로 하다보니까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고, 놀림감이 되고, 내가 고이 가꾸어놓은 그동안 산업은 빼앗기고, 축적되고 누적된 나의 의로움도 다 없어지고. 그러니까 역사적 예수는 자칫하면 자신의 의를 쌓으면 그 의로 구원받는다, 이래 되겠는데 묵시는 데려가기 때문에 나의 선행, 이것을 필요 없고 데려가는 자체가 의로운 행동으로 보이는 겁니다. 참 어렵지요.

성경에 보면 ‘네 행함으로 구원받는다’는 구절 많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끝에 나오지요. “그 사람 행한 대로 갚으리라” 이게 1번 시선이 아니고, 2번 시선으로 보니까 그 사람 고난 받는 것도 뭐로 보입니까? 그 사람의 행함으로 보이는 거예요. 그럼 행함으로 보이는 것을 일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있지요. 요한복음 3장 21절. 누가 읽어보세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보세요. 우리 행함이 아니고 먼저 우리 외곽에 빛이 나타나서 강력한 빛의 힘으로 끌고 가면 우리는 어떤 행함이 나타나는데, 그 행함은 나의 행함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을 어떻게 한다? 바깥으로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나타나게’ 드러내게 함이라. 뭘 증거한단 말입니까, 우리는? 나 착하다가 아니라 ‘빛에서 나온 행위입니다’라는 것을 증거하니까 기존의 2번 시선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행해야 돼요? 자기가 자기 의지와 오기로 행하는 사람과 어떻게 돼요? 충돌이 일어나겠죠. 그러니까 비방하잖아요.

이 바깥에 1번 시선으로 왔을 때 내려왔을 때 이 내려오는 과정과 들어가는 과정에서 감사하게도 우리한테 맡기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우리한테 맡기면 제가 아까 히브리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는 히브리서 백날 봐도 지옥 갑니다. 근데 감사하게도 여기 뭐가 왔느냐 하면, 율법이 와요. 율법을 히브리서에서는 이걸 ‘옛 것’이라고 하죠.

옛 것이 우리한테 꽂히지요. 우리한테 꽂히면 우리는 실체가 되는 게 아니고 모형이 되고 그림자가 되는 겁니다. ‘내가 왜 그림자냐?’ 옛 것, 율법이 꽂혔으니까. 율법자체가 폐기될 거거든요. 폐기될 그것이 꽂히면 그것은 무조건 모형이고 그림자에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율법이라 하는 것은 모세오경만 아니고 시편부터 해서 예레미야까지 합해서 전부다 이걸 율법이라 하고 모형과 그림자로 간주합니다.

특히 히브리서 10장에 보면 선지자 한 분 등장하죠. 히브리서에서 유일하게 구약 선지자 등장하는 게 이 부분인데 이게 누구냐 하면, 예레미야가 오죠. 예레미야 31장, 새 언약부분. 그게 인용돼있죠. 인용을 하면서 나오는 게 뭐냐 하면, 구약 전체를 옛 것으로 봤잖아요. 그러면 옛 것에 접촉 받은 모든 것은 모형과 그림자죠.

율법이 우리한테 꽂히면 우리는 모형과 그림자가 된다. 그러면 꽂힌 율법을 누가 뽑아요? ‘새 것’이 와서 뽑잖아요. 새 것이 와서 뽑을 때마다 뭐가 튀어나옵니까? 죄가 나오지요. 왜냐? 제사장은 율법을 행했고 그림자니까. 죄가 나오죠. 그래서 죄가 나올 때마다 제사장은 모든 제사하는 것도 제물 바치는 것도 다 죄가 나오는데,

죄가 나오면서 뽑을 때 뭐가 나와요? ‘피’가 나오죠. 그래서 “피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 ‘사함’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뭐가 있을 때만 사함입니까? 죄가 있을 때만 용서가 있죠. 죄 없는데 용서가 필요 없잖아요. 죄 있다. 그 다음에 새 것이 와서 뽑아보니까 거기서 뭐가 쏟아진다? 피가 쏟아지면서 동시에 뭐가 쏟아져요? 우리의 감추어진 죄가 쏟아지면서 새 것이 있으니까 그 새 것 되시는 분이 예수님 아닙니까.

히브리서 10장에 보니까 모든 제사의 제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한 몸을 예비했다. 시편에 나오는 인용인데. 그 몸 자체가 새 것이죠. 그 몸 자체가 뽑아가면서 가신 길이 있어요. 그 가신 길을 가면서 먼저 뽑혔던 가신 길을 어떻게 하겠는가?

방금 이야기한 논리는 설명되겠죠. 꽂히고 뽑아낼 때 퐁퐁퐁 하면서 죄 쏟아지고 그 다음에 같이 뽑히면서 피 쏟아져서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것은, 율법 안에는 피가 들어있어서, 난 피가 들어있는 줄 모르고 내 행함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율법을 행함으로 지키겠다 하는 그게 죄가 되고, 실제로 율법을 뽑아보면 피가 나와서, 내가 율법을 오해한 그 죄를 피가 용서함으로써 하는데 그 작업을 새 것 되시는 분이 하신다. 새 것이 누굽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가신 거꾸로 돌아가는 길에 수많은 선배들이 징검다리를 놨죠. 그게 뭐냐 하면, 히브리서 11장에 제일 처음 나온 사람이 누굽니까? 에녹 나오죠. 에녹 나오고, 노아 나오고, 아브라함 나오고 그들은 나그네였고, 그 다음에 이삭 나오고, 야곱, 모세, 각종 사사들, 그리고 선지자들 쭉 나오죠.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모형이요 그림자요 하나의 파편이죠. 모자이크 퍼즐의 한 조각으로 거기에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그 조각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난 조각이다’ 이러면 안 되고, 우리는 역시 뽑혀야 되는 거예요.

히브리서 4장 12절. 지금 제가 뭘 이야기하려고 하느냐 하면, ‘아까 첫째 시간에 목사님, 믿음이 없으면 안식에 못 들어간다 했는데 우리한테 믿음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지 걱정됩니다’ 3개월짜리 끊고 교회 그만 하려고 하는데 믿음 없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하는데 여기 12절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부산지하철에 가면 ‘마음속에 칼을 빼라’하는 게 있어요. 광고에. 칼 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내가 만든 칼 말고, 남을 죽이는 칼 말고, 나를 죽이는 칼이 있어야 돼요. 그 칼을 두 자로 이야기하면 ‘말씀’입니다. 세상에 말씀을 무디게 하면 안 됩니다. 말씀은 날카로울수록 나한테 덜 고통스러워요. 단칼에 자를 수 있으니까. 망나니가 사람 죽일 때 칼 안 갈아놓으면 진짜 그 죄인은 죽을 지경입니다. 죽이려면 빨리 죽이지.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인생이란 자체가 악마란 망나니가 있어서 평생 단칼에 안 죽이고 구십 동안 끌며 죽입니다. 그 망나니 중에 마누라요, 자식이요, 목사요, 교인들이요,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단칼에 죽이는 게 아니고 야금야금 죽이지요. ‘컴퓨터 그만하세요. 아침 일찍 일어나세요. 밥 제때 먹으세요. 발 끌지 마세요. 약 챙겨 먹으세요. 옷차림, 넥타이 단정히 하세요. 와이셔츠 갈아입으세요. 빨 것 내놓으세요. 화장실에 물 제대로 내렸어요? 손 씻으세요.’

잔소리가 끊임없이 하는데 특징이 뭐냐 하면, 백 개 잔소리 들어놓고 한 개 하려 할라치면 거기서 화냅니다. 이상하게 손해 본 기분이야. 왜 잔소리하느냐 하지만 난 잔소리할 것 없거든. 당신은 잔소리 들을 게 많지만 난 잔소리 들을 게 없거든. 모든 인간은 누굴 지향한다? 자기 자신.

어쨌든 인생이라 하는 것이 소위 정 때문에, 우정이나 사랑, 의리 때문에 야금야금 피를 말리면서 우린 삽니다. 누가 그렇게 해요? 내가 그렇게 해요. 내가 안 죽으려고. 기어이 죽을 거면서 안 죽으려고 버티는 거 있잖아요. 참 고맙게도 복음이 있어서 그런 나를 ‘에이 죽어라’ 하고 단칼에 베어버리잖아요. 골수를 쪼개면서.

골수를 보통 쪼개면 전치 8주 나옵니다. 그렇다면 해봅시다. 혼도 영도 관절 다 쪼개면 이거는 전체가 다 망가집니다. ‘주여, 이 손으로 고아를 돌봤습니다.’ 고아 골수 다 찢어버려요. ‘네가 제대로 했어. 너만 지향했잖아.’ 하고 내가 한 오른 손 착한 손 다 잘라버려요. 물에 불은 조기 찢듯이 찢어줄 때 ‘나 없다. 내 자체가 이미 죽었다’ 하고 날려버릴 때

그래서 모든 말씀은 뽑는 거예요. 어느 구석 죄 아닌 구석 없잖아요. 진흙탕 밟을 때 어느 곳도 진흙탕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인생 자체가 죄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으로 뽑아놓고 그걸 빼면서 그냥 빼는 게 아니고 호리면서 뽑아버리죠. 뽑는 쪽으로 우리는 끌려가야 돼요. 마음이. 누가 뽑느냐? 누가 뽑아서 피를 내느냐? 그게 바로 히브리서에서 제사제도를 가지고 설명합니다.

그 제사의 주체를 땅에서 찾지 않아요. 땅은 멸망해야 되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는 주체가 있느냐? 세상에 모든 인간은 멸망하게 돼있는데 멸망하는 주체가 없다고 보통 알고 있는데 있다는 겁니다. 어디 있느냐? 그게 히브리서 7장에 의하면 멜기세덱 이야기에요. 그래야 뚫립니다. 뚫리게 돼있어요.

1장에 주는 이미 하늘에 승천하신 주님이에요. 지상에 남아있지 않아요. 이런 것도 어려워요. 주님께서 올라가 있어요. 지금 천사한테 영광을 받고 있어요. 1장에 나오지요. 여러분 다 안다 하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라 합니까? ‘주님은 좋겠다. 지 혼자 믿음 좋아서 천당 갔으니까.’ 그러면 우리하고 어떻게 돼요? 상관없잖아요. 강사 선생님 머리 좋은 것 하고 지 머리하고 아무 상관없어요. 덕을 봐야 하는데 혼자 영광 받아. 천사들한테 받들어 올라가서. 지상에 있는 우리는 상 없다 이 말이죠.

여기서 내려오는 있습니다. 지상에 내려올 때 그림을 그려보겠습니다. 제 그림을 잘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도 어려워서. 여기 땅과 하늘 사이에 얇은 모조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모조지가 있으면 그림자는 보이고 실체는 안 보이는 곳, 상상되십니까? 여기에 누가 살고 있느냐 하면, 멜기세덱. 멜기세덱의 족보가 있어요.

족보가 뭡니까?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있지요. 보통 족보는 아버지가 아들 낳고, 아들이 또 아들 낳고 이렇게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의 족보가 있어요. 그 족보가 무슨 족보입니까? 멜기세덱 족보지요. 그런데 그 족보에 속한 사람은 절대로 이 모조지 바깥으로 해서 땅으로 내려오진 않아요. 하나의 그림자로 보인다 말이에요.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하늘의 그림자지만 하늘에서 보면 이쪽이 뭡니까? 이쪽의 그림자가 보이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 모조지하고 멜기세덱하고 연결했던 사람이 있어요. 누구냐 하면, 아브라함입니다. 이 모조지 앞에서 멜기세덱한테 아브라함이 뭘 받았습니까? 복을 받았지요. 이런 해석은 구약 전체 해석의 히브리서만의 독특한 해석이에요.

사람이 직접 만나서 대화 되는데 대화도 없이 만나서 복을 받았거든요. 왜냐하면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동거한 사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님?’ ‘왜?’ ‘이제 같이 제사장 합시다.’ ‘그래.’ 이게 아니고 잠시 만났다가 복만 주고 가버렸어요. 그렇다면 이 멜기세덱 반열에 속한 인물들, A, B, C, D, E 나오는 이 모조지 바깥에 그림자로 보이는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브라함에게 내려오는 사다리처럼, 헬리콥터에서 내려오는 사다리가 바람에 덜렁덜렁거리죠. 이게 아브라함부터 덜렁덜렁 내려오는 거예요.

오늘 강의 중요한 대목입니다. 내려오면서 이 사다리가 땅의 세계의 숱한 족보들을 만나면서 발로 차면서 멜기세덱 족보에 해당되는 사람만 골라서 연결, 연결 되는 그런 새로운 족보가 여기서 전개돼요. 그걸 유다 족보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그러니까 히브리서에서 뭐라 합니까? 이 말은 어렵도다. 어떻게 젖을 먹는 아이들이 알 수가 있느냐? 어렵도다.

다시 할게요. 왜 이러한 그림을 그리고 하느냐 하면, 아까 했잖아요. [하나님은 무섭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 안 무섭지요. 세상에선 누구 중심이다? 내 중심이니까 ‘간섭하지 말라’ 내 중심이잖아요. 전혀 하나님이 안 무서워요. 안 무서운 세계에서 무서운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면서 구원될 자를 구원시키는 방법에서 발로 차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계속 차다보니까 무슨 이야기도 나오느냐 하면, ‘믿음이 없는 자는 안식에 못 들어간다’는 미완성, 그 다음에 ‘한 번 성령을 받고도 탈락한 자는 잘린다’는 그 미완성, 그 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을 밟는 자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그 무서움, ‘네가 네 산업과 직업 때문에 교회 못 나온다’ 그럼 잘린 자, ‘톱 켜는 게 무섭다고 도망쳤다고? 그럼 넌 믿음 없는 자’ 자꾸 잘라내는 이유가 뭘 강조하기 위함입니까? 멜기세덱의 반열에 속한 사람만 고를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는 거예요.

그럼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적인 힘으로 이 사다리에 올라탈 생각은 아예 하라, 하지 말라? 해도 소용없죠. 아예 안 되죠. 그렇다면 아브라함 밑에 사다리는 이 힘은 어디서 나옵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복’에서 나오죠. 그러면 히브리서의 복의 개념은 뭡니까? 내가 하나님의 성도가 된 걸 아는 그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증인 된 것, 내가 믿는 자 된 것 이게 복이죠. 왜냐하면 인간의 힘으로 접근 못하니까. 계속 발로 차나가니까.

여기에 아브라함의 계열에서 내려올 때, 아까 기존의 인간들의 죄를 보여주는 족보도 함께 내려오죠. 울산강의 때 했죠. 사람에서 뭐가 나온다? 죄가 나오고 하나님의 영이 같이 나오죠. 성도한테는.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서 저주도 나오고 복이 나오죠. 예수님에게서 저주가 나오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저주잖아요. “나를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축복이 나오잖아요. 성도한테는 마찬가지로 다 나와요. 자기 죄가 나오고 하나님의 약속이 나오고 다 나옵니다.

아브라함에서 레위 지파, 그 다음에 유다 지파 나오죠. 그런데 여기서 이게 모조지 입장에서 볼 때 아브라함에서 레위 지파 나오고, 유다 지파 나오는 이것도 모형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잘리고, 잘리는 구약의 원리가 지금 신약시대 되도 히브리서에서는 아직까지 종결되지 않았어요. 계속되는 겁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가 히브리서에선 성립이 안 돼요. 구약적인 구조가 계속 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발로 차는 거니까. ‘레위 지파 아니야.’ 그럼 무슨 지파다? ‘유다 지파야.’ 그러면 진짜 레위 지파, 유다 지파는 아니죠. 왜냐하면 모조지 위에서 보면 하나의 모형이고 그림자기 때문에.

결국 이건 뭐냐 하면, 자기의 택한 백성에 대한 것이 얼마나 귀한 걸 보여주기 위해서 바깥에 택하지 않은 것을 차는 그 방식 중에 하나가 뭔가 인간적으로 다 됐다는 것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계속해서 차고, 차는 선택, 구별작업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히브리서다.

그러면 히브리서 2장 16절에 보면, 누구 자손 나오죠? 이미 택한 자손 나오죠. 아브라함 자손. 다시 이야기할게요. 히브리서는 구약을 이렇게 본다. 어떻게? 구약 다음에 신약이 아니라 구약에 있었던 구원방법이 신약에 와서 없어지는 게 아니고 구원방식에서는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같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구약에서는 모형으로 구원했고, 신약에서는 아들로 구원하는 방법.

그러나 그 방식의 환경과 구조는 전혀 바뀐 적이 없다. 안식에 믿음 없으면 못 들어간다는 것은 마치 광야시절과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다 이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건지고자 하는 자는 뭐냐? 아브라함에게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해당되는 거예요. 그럼 아브라함 자손이 누구냐 하는 것은 인간적인 행함으로 접근 못하지요. 여기 2장 14절에 보면, “혈육에 속하였으매”

그런데 혈육에 속했으니까 모조지 위의 하늘나라에서 멜기세덱은 어디 속했습니까? 멜기세덱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는 말을 왜 할까요? 여러분 멜기세덱도 모형입니다. 누구 모형? 예수님 모형이거든요. 모형 자리에서는 뭐가 있어야 돼요? 모조지 위에나 아래나 누가 있어야 돼요? 혈육적인 사람이죠. 그리고 멜기세덱은 실존인물입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을 만났어요. 하지만 같은 혈육이라도 모형의 쓰임새가 다르죠. 역할이 다르죠.

그러니까 히브리서를 결론 낸다면 한 마디로 뭐냐? 당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솜씨가 어떻습니까’ 묻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재주는 뭡니까’ 묻는 게 아니고,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강합니까’ 묻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당신의 역할은 뭡니까’ 방주 만드는 것, 그건 노아의 역할이고, 아들 바치는 것, 그건 아브라함 역할이고, 침상 지팡이 위에서 축복하는 그건 야곱의 역할이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태어난 건 모세의 역할이고, 톱으로 켜는 건 이사야 역할이고, 광야에 유리하는 건 선지자의 역할이고. 당신 역할은 뭐냐? 그거는 우린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면 되겠지요.

역할은 바꿔집니까, 안 바꿔집니까? 안 바꿔지지요. 그래서 히브리서는 고맙게도 안 바꿔지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행함은 바꿔집니다. 그런데 역할은 안 바꿔지죠. 왜? 내가 지정한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다에 26번 들어가렵니다. 이렇게 자기가 고른 게 아니라 복이 와서 주어진 역할이기 때문에 그 역할은 바뀌지 않습니다.

레위 지파가 지옥 간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사람은 구약 때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유다 지파는 무조건 구원받는다. 절대로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유다 지파였어요. 그런데 분명히 사탄이 임했잖아요. 전부다 하나의 역할이죠.

그러니까 예수님만으로 하나님 앞에 하나의 역할자가 돼요. 하나님 아들이란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 1장부터 뭐냐? ‘예수님이 누구냐’가 아니라 ‘아들이 누구냐’가 돼요. 아들의 역할이 뭐냐? 아들은 혈육에 속해야 된다. 히브리서 2장 14절. 아들의 특징은 혈육에 속했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 십자가 이해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혈육에 속했으니’ 히브리서에서 말한 십자가의 의미다 이 말이죠.

혈육에 속해서 그 다음에 그들과 함께 고난 받고 하면서 결국 하나의 제물이 되어서, 제물의 특징이 피를 내는 거예요. 그래서 “하물며 아들의 피를 짓밟는” 했죠. 그리고 히브리서 마지막에 무슨 피? ‘언약의 피’라고 돼있어요. 아들이 혈육에 속했으니까 혈육 자체가 죄가 되는 거예요. 이걸 로마서 5장에서는 우리는 아담에 속했으매 죄가 왕 노릇한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혈육에 속한 걸 보니까 죄가 되는 거예요. 혈육에 속했을 때 아들이 되니까.

그러니까 얼마나 원천적입니까? 차츰 확인해보자는 게 아니고 우리가 앞으로 잘해보자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까고 들어가잖아요. 처음부터 발각시켜가잖아요. 모든 혈육은 죄다. 거기서 죄가 나오고, 거기서 또 피가 나오고 죄가 나오죠. 인간의 피가 나오고 죄가 나온다는 말은, 인간 자체가 죄란 뜻입니다.

그런데 아들의 피만이 여기서 혈육에 속한 아브라함 자손에 의해서만 따로 건져내는 겁니다. 그래서 건져내는 그 과정이 한 마디로 말해서 고난의 길이었는데 그 고난의 길을 예수님을 보여주는 하나의 역할, 증인이니까 이것이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보이지 않는 걸 믿는 ‘믿음’이라 하는 거예요.

히브리서 11장 봅시다. 다같이 읽어 봅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증거’라 했어요. 그러니까 아까 제가 증거란 말을 뭐로 바꿨습니까? 역할. 소유가 없다니까. 내가 믿음을 갖는 게 아니고 믿음이 나를 증인으로 만들어버리죠.

그래서 3절에 보면 뭡니까?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이게 믿음을 소유된 감정으로 보게 되면 해석이 안 됩니다. 뭐냐 하면 우리는 이걸 말씀으로 지어진 줄 몰랐었는데 믿음이 오니까 우리가 ‘아하, 내가 말씀 중에 역할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나를 죄악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나는 혈육에 속했기 때문에 이건 중요하지 않고, 혈육에 속한 내 속에 어떤 증거가 왔는가, 예수님의 증거가 들어 왔는가, 이게 중요하죠. 이 증거가 나로 하여금 증인되게 만들죠. 나로 하여 인생을 천국으로 이끌게 만든다 이 말이죠.

히브리서 11장 15절에 보면,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우리는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이에요. 어디에? 여러분 태어난 고향으로. 부산에서 태어났습니까? 나의 고향이 박탈당했단 말은 무슨 자리? 고향이 나의 자리 아닙니까. 우리는 나의 자리를 박탈당한 사람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가 없어요. 참 히브리서 무서운 동네에요.

‘주여, 제가 아픕니다.’ ‘네가 없어.’ ‘배가 고픈데요.’ ‘그것도 역할이야.’ 누구 역할? ‘네 역할 아니야.’ 누구 역할? 예수 그리스도 역할. ‘저만 고생하는데요.’ ‘주님도 그렇게 했어.’ 주님이 그렇게 한 이유가 뭡니까? 딱 한 가지 이유밖에 없어요. 혈육에 속했기 때문에. 혈육이 문제라. 혈육이 자꾸 날 붙잡아매요. 이걸 메를로 퐁티라는 [몸의 현상]이란 책에 나오지만, 인간은 몸에서 나온 것으로 몸으로 돌아간다. 이 이론이거든요.

히브리서 보면 혈육에서 나온 것은 혈육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래서 혈육에 속했기 때문에 누굴 못 이긴다? 히브리서 2장 14절. 혈육이 죽는 걸 못 이기죠. 그래서 누구의 종이 됐습니까? 마귀의 종이 되었죠. 그런데 마귀의 종을 누가 풀어준다? 우리 혈육에 꽂히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란 그 힘이 증거가 나로 하여금 죽기를 두려워하여 마귀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풀어주려 함인데 그게 누구한테만 해당된다? 아브라함 자손에게만 해당된다 이 말입니다.

겁나서 히브리서 두 번 다시 보기 싫어요. 뭔가 우리한테 변명할 입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버려요. 뭐가 없으니까? 기회조차 상실된 사람이에요. ‘주님, 가만있어 보세요. 정신 차리고 믿읍시다.’ 이럴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요. ‘정신 바짝 차리고 믿자’가 아닙니다. 이미 역할이 꽂혀버렸어요. 위에서 줄을 잡아당기면 우리는 주님 가신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누가 한다? ‘말씀’이 합니다.

그럼 말씀이 히브리서 1장에서 어떤 역할 하는지 봅시다. 히브리서를 1장부터 차근차근 하시지 하는데 히브리서 자체가 차근차근한다면 래드처럼 중구난방이라. 이거는 그 자체를 허용하지 않아요. 여기 1장 6절 끝에 뭐라 돼있지요? “말씀하시며” 그 다음에 1장 1절에 보면,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 다음에 1장 2절 “마지막 날에 ... 말씀하셨으니”

말씀의 세계를 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결국은 우리는 돌아갈 내 자리가 박탈당하고 결국은 모든 것이 말씀으로 지어진 말씀만 있을 뿐이죠. 말씀대로 될 뿐이죠. 말씀이 왜 어려우냐 하면 자꾸 기존 것이 있기 때문에 바꾸겠습니다. 말씀을 ‘구조’로 바꾸겠습니다. 말씀은 자체적인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 구조는 ‘예수님 중심의 구조’에요.

예수님 중심의 구조가 되면 둘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히브리서 1장 10절에 보니까 멸망해야 될 하늘과 땅, 이건 자연구조죠. 자연 자체니까. 1장 10절 다시 보면, 하여튼 히브리서는 구약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구약의 1장 1절에 없는 이야기가 있지요. 여기선 뭘 집어넣습니까? “주께서 명하시니, 주께서 지으시니”

창세기 1장을 여기다 집어넣으면 세상은 하나의 하늘과 땅이라는 구조가 되죠. 이 모조지 밑에. 이것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께서 만들었죠. ‘주’에는 구조로 보면 두 가지 있죠. 하나는 ‘만드시고’ 그 다음에 이걸 어떻게 하는가? ‘부수시고’. 결국 이 세상의 말씀의 구조는 만드시고, 그 다음에 부수시고 이 둘밖에 없지요.

부술 때 부수는 목적이 있지요. 영존하기 위해서 부순다. 그러면 부셔지는 것은 뭐는 안 된다? 영존하지 않다. 그럼 다시 봅시다. 말씀의 구조 안에 ‘영존하는 것’과 ‘영존하지 않는 것’. 그렇다면 말씀구조 안에서 말씀에 의하면 인간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주께서 만들었죠. 그 만들어진 모든 피조물과 모든 구조 안에 뭘 집어넣는다? 잘 들으세요. 제일 중요한 겁니다. 이것 하고 그만해도 좋아요.

예수님이 갖고 있는 구조가 뭐냐? 영존한다, 영존하지 않는다. 그 원리를 인간이란 구조 속에 집어넣어버리면 인간이 두 종류의 인간이 돼버리죠. 하나는 뭡니까? 주님과 함께 영존하는 인간 되고,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소멸하는 불이니까, 사실은 소멸되지 않죠. 지옥 불에 가죠. 하여튼 바깥쪽에선 소멸 아닙니까. 없애버리는 인간과 영원히 영존해야 될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릴 인간이 있죠.

그러면 히브리서는 그런 주님의 기능을 무엇과 연관시키느냐 하면, 창세기 2장 1절에서 3절, 여기에 뭐가 나와요? 주께서 안식 나오죠. 안식을 히브리서는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게 아니고 아들한테 안식을 적용시켜버리면 주님은 새로운 창조에 나서야 되는 겁니다. 아, 논리가 어렵다 정말.

결국은 없애는 이유가 새로운 창조를 위해서. 그런데 새로운 창조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그들만 안식에 참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나오는 용어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다 붙여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셨던 그 이유를 구약에 나오는 모든 창조의 원리를 거기다 집어넣어서 예수님 위주로 구조를 만들어버렸어요.

구조로 만들어놨기 때문에 구약의 원리를 벗어날리 없기 때문에 망할 놈을 망해야 되고, 살릴 사람은 살려야 되는 그 원리를 광야이야기를 집어넣어서 그래도 다 해버리는 겁니다. 그래놓고 히브리서는 그걸 약속이라 하지 않고, 옛날식으로 해서 옛날 구약용어, 언약 용어죠. 앞에 ‘새’자를 집어넣어서 새 언약의 목자 되시는 예수, 여전히 구약용어 사용합니다.

그러면 히브리서를 손 털면서 히브리서 손 털었다. 그렇다면 기존에 신약 시대 때 사용됐던 여러 가지 신약의 용어들, 이거는 구약을 버리고 나온 용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성령 같은 경우에. 그런데 여기 보면 성령도 도로 구약구조에다 다시 집어넣어버리죠. 성령이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못 알아듣느냐? 성령의 차별을 받고 잘림을 당하리라. 이걸 해석하려면 사울과 다윗 해석해야 됩니다. 히브리서에 나온 용어가 신약용어라도 그걸 해석하려면 구약 속에 집어넣어서 해석해야 돼요.

그렇다면 성령 받고도 잘린 사람은 누구십니까? 사울이지요. 사울은 분명히 성신 받아서 정해졌죠. 성신 받아서 왕 됐죠. 그런데 다윗 만나고 난 뒤부터 성신이 떠나고 악신이 임하니까 자기 몸이 악신 걸려서 아프니까 기타 치는 사람 필요할 때 기타치고 난 뒤에 창으로 찌르잖아요.

그걸 보고 교인들이 ‘목사님, 우리도 성령 받아놓고 분명히 로마서 보면 성령 받은 사람은, 한번 선택된 자는 구원받는다 했는데 보세요. 히브리서는 6장에 있잖아요. 성령 받아놓고 잘린다 했는데 우리보고 어느 학원에 가야 됩니까? 도대체 몇 개월짜리 끊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천당 갑니까?’ 왜? 간섭하지 말라고 독립해서 교회고 뭐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도 손에 쥐려고 하는 사람에게 한단 말이죠. ‘그럼 우린 구약 성도 되잖아요’ 하는데 우리가 여전히 구약성도는 아니지만 구약의 구조를 못 벗어납니다. 율법을 폐기하면서도 그 새 언약으로 구약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히브리서는 현재, 현실이라는 것, 실제라는 것, 몽땅 설명을 다해버렸어요. 이만큼도 남김없이 다 해버렸어요. 무섭다. 그것도 그냥 무서운 게 아니고 되게 무섭다. 어느 정도냐? 시내산 자체가, 토양 자체가 떨 정도로 되게 무섭다. 그리고 하늘? 믿지 마라. 하늘도 떤다. 하지만 영원히 진동이 멈추고 떨지 않는 그 나라에 너희 선배들 가 있을 거다. 총회. 이 구조자체가 구약적 용어입니다. 결국 구약을 새 언약이 이루면서 구약도 모든 말씀도 함께 이뤄지는 그게 바로 히브리서가 됩니다.

그럼 나는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안 되지요. 당신한테 어떤 역할이 있는가? 어떤 사람은 직업이 없더라도 어떤 사람은 직업이 세 개, 네 개, 쓰리 잡해도 구원받는다 이 말이죠. 왜? 그 사람이 잘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역할은 부자 되어서 그 사람은 역할이 부자 되면서 바라보기는 돈이 아니고 세상이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그걸 바라보는 사람 같으면 부자 되어도 구원받아요. 이런 사람은 이런 모양, 저런 사람은 저런 모양.

히브리서 1장 1절하고 마치겠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 날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그럼 아들이 무슨 역할 합니까? 아들이 바로 옛날에 하나님 역할을 하셔서 지금 우리들을 뭐로 만든다? 하나의 선지자처럼 우리를 여러 모양으로 같은 신학해도 직업도 다양하고 생각도 다양하고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뭐냐? 아들로 통해서 아들을 증거하기 위해서 아들을 바라본다는 동일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돌아갈 기회는 없다. 어떤 사람은 부자 되서 나그네 생활하고, 어떤 사람은 진짜 노숙자 되서 사는 사람하고 어느 게 유리하다 불리한 게 없어요. 어떤 사람은 백 살까지 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차사고 나서 서른 살만에 죽은 사람 있고. 그거는 우리가 알 바 아니요. 요한아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요.

주께서 항상 어디서 뭘 하든지 간에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처럼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에 꽂혀서 주께서 파이프를 박아서 복으로써 잡아당기니까 우리는 끌려가는 겁니다. 우리는 멜기세덱 같아. 아비도 없고 나의 본향이 없으니까. 그냥 주께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약속하신 그것이 꽂혀 오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안식의 때를 바라보면서 가는 겁니다.

이거는 미완성 아닙니다. 왜? 꽂힌 것은 미완성이라 볼 수없지요. 꽂힌 것은 빠지지 않지요. 구조라니까요. 존재가 아니고 구조에서는 미완성이 없어요. 존재는 미완성이 있지요. 하다가 잘리고, 하다가 잘리고. 잘려야 구조가 되니까. 구조의 완성 속에 우리는 포함돼버리면 더 이상 미완성은 없고 다만 잘릴 사람은 잘려줘야 구조가 계속해서 견고히 서니까. 그리스도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점점 더 격차가 벌어지겠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히브리서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왜 피를 흘렸는지 우리가 혈육에 속했던 것 때문에 피 흘린 것을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꽂히고 뽑을 때마다 우리에게는 죄가 송송 나오게 해주시고 우리의 죄 값의 피도 나오게 해주시되 더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 죄를 씻어준다는 것을 멜기세덱의 반열에 속한 피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090310b 부산강의.hwp (52.5K), Down: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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