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이단들이군요...왜 전부들 저런 댓글처럼 저렇게 되는 지요?
갈수록 이단들이군요...왜 전부들 저런 댓글처럼 저렇게 되는 지요?
이름 : 고관규(IP:119.192.148.55)
갈수록 이단들이군요...
2009-03-18 22:29:25 이름 : 고관규
목사님의 글중에 "예수님과 희생양"...이라는 글입니다.
이 글을 제가 카피해서 어는 기독카페에 올렸드니 그 운영자가 이런 댓글을 올렸네요? ㅎㅎ
아주 미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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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글ㅡ
예수님과 희생 양 ...
속죄 의식이란 모든 인류,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들어 있는 심성이다. 자기 양심에 흠집이 난 것은 것은 어떤 식으로도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종교들이란, 결국 '죄 의식 처리'를 다루게 되면서 형성된 것들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종교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가,
헌금은 합리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가가 주요 과제가 아니다. 날마다 신도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죄의식에 만족스럽게 제거해 줄 수만 있다면 어지간한 불법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신도들의 넓은 마음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자신들이 감추고 있고 또 모르고 있기에 재수 없이 신으로부터 매맞고 있는 점을 교주들이 제대로 파악해서 들추어 내어 주고 또한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인위적 방식만 제 때에 제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 한다.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우, 속죄에 관한 의식은 노골적일 정도도 핵심 분야이다. 유대교에서는 소나 양을 잡아서 죄를 제거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에 와서는 예수라는 분이 자신이 친히 속죄양이 되었기에 그 예수를 믿음으로 죄가 씻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번잡스럽고, 시간 낭비와 비용이 많이 드는 유대교적 방식과는 달리 기독교의 속죄 의식은, 신도들의 간단한 짧은 생각만으로 속죄가 이루어져 버렸다. 이 신앙 고백에 뒤따르는 갖가지 의무들, 예를 들면, 경건한 폼 잡기와 윤리 생활, 엄숙하고 중후한 예배 분위기 유지하기, 교회라는 경제적 단체에 대한 비용 부담, 잡무에 대한 봉사 제공, 성직에 대한 특별 대우와 존경 강요하기 같은 것을 교회측에서 요구하더라도 차라리 자발적 해 드리고픈 생각마저 들 정도로 신은 인류에게 너무 간편한 속죄의 길을 열어 준 것으로 받아 드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다.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비복음적이라는데 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억울하게 징벌 받고 박해 당한 그 예수라는 분에 대해서 깊은 동정심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성경적으로 결코 복음이 아니다는 점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
신도들은, 소위 전문 종교인들이 예수님의 희생양 인상을 가지고 얼마나 장사 잇속을 채우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마치 유명 비극영화를 상영해서 관람객을 울려 주고서는 혼자서 휘파람부는 영화관 주인과 같다는 사실을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중들은 참 예수님의 희생을 정신을 알고 싶어하는가? 그들이 과연 예수님이 소개한 그 길을 가고자 하는가? 천만에 말씀! 정말 제대로 십자가와 복음을 소개받았다고 한다면 아마 대중들은 그들이 복음 들은 것을 후회하고 오히려 전에처럼 희생양 영화관에 앉아서 그 영화를 돈주고 관람하는 편이 자기들에게 속 편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짐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 예수는 정말 훌륭하고 멋있고 대단한 분이고 위대하고 감동적인 분이기는 하지만 그저 자기 앞에 타인으로만 머물러 주었으면 바랄 뿐인 것이 대중들이다. 그 예수님이 직접 자기 안을 차지해서 자신이 예수처럼 산다는 것을 너무나도 끔찍한 사태라고 그들은 예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참 예수님은 너무나 참혹한 삶을 살았기에 철저하게 거부하고 싶은 제 1순위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그저 인위적인 속죄 방식만 요구한다. "어떻게 하면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참 예수님은 이렇게 대꾸하신다.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니, 죄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리고 참으로 그 죄를 미워하고 싶습니까?" 대중들은 이렇다. 죄가 미운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자기를 건드리는 자는 다 미운 것이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22-23)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찌르기 위해서 오셨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눅 2:34-35) 참으로 복음을 아는 자는, 예수님에게 고마워하는 자가 아니라 속죄 받고자 하는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는 자이다. 속죄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선택이었다!(요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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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운영자댓글ㅡ"관점이 너무 냉소적인 듯하군요. 다수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진리도 모르고 자기 편한 것만 찾는 우민으로 매도하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남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자신이 먼저 남의 인정을 받을 만한 신앙의 분량에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거기 운영자는 통합측 교회의 49세의 부목사라고 합니다. )
**** 저 댓글이 오늘의 교회들이 하는 작태들입니다. 아,,갑갑혀,,아주 미쵸요
장자교단이라고 하는 광나루출신들의 수준이 저 정도입니다.***********
이근호(IP:117.♡.139.200)
09-03-19 09:14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비판의 기준=심판의 기준'은 십자가 뿐입니다. 선종하신 한경직 목사나 손양원 목사나 데레사 수녀나 김수환추기경의 삶이 아니지요. 왜냐하면 이들은 심판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가 자신을 비판할 때, 그 비판의 기준이 예수님께서 정해놓으신 심판의 기준과 일치되는가를 봐야 할 것입니다. 비록 사도 바울은 심판주는 아니지만 분명한 심판의 기준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누구든지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고관규(IP:211.♡.92.2)
09-03-19 19:33
아래는 그 분의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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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신도들에 대해서 "죄의식을 만족스럽게 제거해 줄 수만 있다면 어지간한 불법은 눈감아줄 수 있다"느니 "교주들이 자신의 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들추어내서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인위적 방식만 제기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한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요?
한국교회의 신도들은 님의 의견처럼 그리 몽매하지 않으며 중세의 그리스도인처럼 복음의 진리도 모르는 우민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자보다 신앙적, 신학적 소양이 더 뛰어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에는 그동안 목회자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의 주장은 나름 타당성이 있어서 수긍할 수 있었지만 한국교회의 신도 대중을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고관규(IP:211.♡.92.2)
09-03-19 20:03
관규말씀이 전부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많은 분들이 대중속에서 편하게 기복이나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더 많은 분들은 예수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고 있음 또한 사실입니다
참 복음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나 대신 십자가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에게 고마워해야 되지요.
관규님의 말씀처럼 속죄는 주님의 선택인데 잘나지도 않고, 자격도 없는 내가 선택받았음에 고맙습니다.
선택받은 은혜가 고마워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 말씀에 따라 살고자 노력합니다 또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또 이웃도 나와 같이 구원받기를 원하기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다만, 속죄받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의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기에 우리 자신은 아직도 부족하고, 모자라서 넘어지고 또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교회 모두를 싸잡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이 또한 주님이 기뻐하시는 발언은 아닐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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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다른 분의 댓글입니다.
이근호(IP:117.♡.139.200)
09-03-20 07:48
문제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안 나오기에 때문에 육적이라는 말입니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러이러한 헤택을 입은 것에 대해서 고마워합시다"는 식으로 대중들을 변호하고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나와있는 성령의 일이 아니라 구원받아 죽어서 좋은데 가겠다는 인간들의 자기 이익을 생각하는 죄악된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즉 '자기 부인'이 안되는 겁니다. 이것이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마저 자신의 이득(구원 욕구)을 위해 이용하겠다는 겁니다. 목사들이 한국교회에 여전히 미련갖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 편에 서서 죽으려고 하기 보다는 예수 이름을 들먹이면서 예수 덕분에 목사로서 살아보겠다는 생존 본심을 못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대중들의 마음을 달래서 그들 편에 서고 싶어하는 이유는, 목회라는 이름으로 장사해서 밥먹고 살겠다는 자기 심보를 정당화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적하신 강도의 소굴입니다. 도무지 목사짓해서 살겠다는 그 자체가 죄악인지를 모르는 겁니다. 이런 이단들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아니요 예수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 자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요 우상숭배요 다른 복음이요 다른 예수요 다른 성령이요 양의 탈을 쓴 악마의 일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