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6:14-19 (하나님의 신과 악신)
삼상 16:14-19 (하나님의 신과 악신)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16장14-19절
제목 : 하나님의 신과 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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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3-15 15:28
하나님의 신과 악신
2009년 3월 15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16:14-16
(삼상 16:14, 개역)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삼상 16:15, 개역)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삼상 16:16, 개역)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다윗이 선택되고 난 뒤에 그 날 이후로 다윗이 하나님의 신에 의해서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즉 다윗이 현재 갖고 있는 구변과 인물과 자질과 성격과 용기 같은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해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즉 문제 제기도 하나님이 하시고 문제 풀이도 하나님만이 해내십니다.
인간의 사적인 능력과 자질로 해 낼 수 있는 하나님의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하나님의 일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또 우리가 고민할 필요없는 것은, 아무리 우리가 기도해도 악신이 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사람이 악마를 부른다고 해서 악마가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왜 악신이 사울에게 임하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셔서 임하게 하시는 겁니다. 즉 사울이 나쁜 짓을 했기에 악신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 악신이 임하고 아니임하고는 어디까지 하나님 소관이지 인간이 태만한다고 해서 악신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 우리가 고민할 필요없는 일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악신이 임한다고 해서 인간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악신이 임하게 되면 그저 ‘악신이 임한 자’일 뿐입니다. 갑자기 독하고 악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악신이 임한 지 아니면 성령이 임한지를 인간들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가능치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임했는지 악령이 임했는지는 본인들은 잘 압니다.
이렇듯 성신과 악신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사실은 모든 인간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벌리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 될 뿐이라는 점입니다. 즉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해 악신이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신이 임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버리시는 작업’도 평소에 늘 쉬지 않고 실시하고 있음을 보이시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존재를 버리시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벌려놓으신 타작마당을 정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심판 행위가 공평정대함을 보이기 위해 그 어떤 더러운 것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로 인해 이방인들이야 아예 버림받은 자들이 됩니다. 알곡은 하늘 곡간에 채우고, 가라지는 불에 태우시는 일을 하십니다. 알곡은 성령을 보낸 자에게만 해당되고 가라지는 악신이 임한 자에게 해당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양보없으며 그 어떤 피조물과도 상의하시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시켜 버리십니다. 그래서 활발한 악신의 활동이 요구되는 겁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에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성도는 감사하는 자가 됩니다. 곧이은 구절인 데살로니가후서 2:13-14에 보면,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신자와 불신자의 운명은 각자의 노력이나 의지나 결심이나 다짐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악신과 성령님의 활동의 결과로서 구원되는 겁니다. 인간들이란 원래 자기 마음대로 해왔습니다. 책임감을 느낀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안 행한 것이 아닙니다. 책임감에 투철할 때도 자기 마음대로 살았고, 그것이 없다고 마음먹을 때에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기 마음 측정은 어디를 근거로 이루어지는 걸까요?
독자적 자유성, 바로 이 자체를 유지하는데 있습니다. 여기서 죄라는 것이 발생되는데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안되면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해버리십니다. 야고보서 1:12-16에 보면, “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핑계대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보고 죄지으라고 유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죄지은 자의 변명이라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유혹하지 아니하셨으며 단지 죄가 발생되는 것은 인간들의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 모든 것을 유혹으로 이해한데서 비롯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일부로 유혹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자리잡은 악마적 본성이 작동하여 세상에 일어나는 일 중에서 본인의 욕심이 이끌리는 것만 선별해서 유혹받고 싶어하는 자기 본성을 충족시키는 식으로 살아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도 스스로 매사를 갖고 선별하고 선택하면서 살아오고 있는 겁니다. 뭔가 기대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 그 여파가 바로 하나님보다 자신이 죄 지도록 유도했다는 책임을 지라고 항변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결국 인간들은 자기 가능성에 준해서 세상을 파악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사울의 병 치료에 대해서 권면하는 부하의 마음도 그러합니다. 음악으로 하면 구원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은 “음악을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능력으로 거룩과 선을 만들어낼 재간이 인간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으로 성령받은 사람은 오직 그러주신 성령으로 인하여만 구원됨을 고백합니다. 악신의 각가지 활동들은, 왜 인간의 자력으로 구원되지 못하냐를 알려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평생토록 살면서 우리 힘으로 되지 않았던 성령주심을 찬미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우리교회
09-10-20 13:29
http://media.woorich.net/성경강해/사무엘상-2008/035강-삼상16장14-19(하나님의신과악신)-1sa090315.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