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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6칠곡강의(서양철학)04(강의정리)-피타고라스,스토아,에피쿠로스등등자유게시판[철학]

06칠곡강의(서양철학)04(강의정리)-피타고라스,스토아,에피쿠로스등등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6칠곡강의 [서양철학] 04 ☞ 교재 - 파깨비의 철학노트 (도서출판 상아기획)

06,02,1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인간을 해부해보면 ??

옛날의 신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인간의 내부세계를, 즉 우리의 심성을 파헤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옛날 철학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지금 우리의 심성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철학공부의 의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들은 이 대자연을 한꺼번에 자기 손에 잡으려고 하는데, 대자연의 모든 변화를 말이다. 즉 인간은 대자연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런 대자연을 어떻게 제대로 예측을 하려고 하는, 여기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인간은 대자연의 광대함에 대해서 기가 죽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활개를 쳐도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대해서 원칙만 낚아채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한 대자연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절할 수가 있다는 것을 음흉한(?) 가운데 노리게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용가리나 이무기를 보면 인간보다는 분명히 힘도 세고 덩치도 큰데, 그러나 제 아무리 크다고 해도 그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서 약점을 찾아내면, 그런 괴물들을 이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와 같이, 아무리 힘이 세고 엄청난 위력을 가진 대자연도 그 원칙만 알게 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해서 !!

괴테가 지은 작품 가운데서 '파우스트' 라고 있는데,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게르만 민족의 전설을 괴테가 작품화시켰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파우스트 박사가 나오고 악마가 등장하는데, 파우스트 박사의 심적인 싸움이라는 말이다. 이 악마가 파우스트 박사와 흥정을 하는데, 즉 "니가 무엇이든지 다 하도록 해주겠는데, 그런데 마지막에 니 영혼은 나에게 다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가 자기에게 속아서 넘어갔다고 여기는데, 즉 "니가 인간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만 있다면, 심지어 너와의 약속도 얼마든지 깨고 너에게서 벗어날 수가 있다" 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자기가 힘이 없지만, 그러나 나중에 그 악마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만들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파우스트 박사가 방탕하게 자기 마음대로 살기도 하지만, 또한 절제도 하고 회개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괴테가 루터교 신자인데, 그래서 게르만의 토속종교와 독일의 루터교가 결합된 것이 바로 이 괴테의 '파우스트'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파우스트를 구약의 욥기와 비교를 하면서 비슷하게 보기도 하는데 말이다.

◈ 파우스트에서 마귀는 전혀 미동도 없어 !!

아무튼 결론은 어떠한고 하니, 나중에 파우스트 박사는 자기가 악마에게 속은 줄을 알고 아무리 회개를 하고 노력을 해도, 악마는 그런 파우스트 박사의 착함과 자비로움에 전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사가 방탕할 때만 악마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충분히 그럴 수가 있고 이해가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파우스트 박사가 아무리 착한 일을 하고 의롭게 살려고 해도, 심지어 주님에게 그렇게 회개하고 매달리고 해도, 이 악마는 거기에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파우스트의 하이라이트이고 포인트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옛날 고대신화의 주된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처음에는 비록 잘못을 해도 나중에 잘못했다고 하면, 그것이 악마든, 대자연이든, 신이든 간에, 그 사람의 과거를 묻지 않고서 용서해주는 것이 상투적인 내용인데, 우리나라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전설의 고향도 다 그런 내용인데,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가 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 파우스트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비록 나쁜 짓을 했더라도 더 영웅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면, 자기의 그러한 소소한 나쁜 짓은 그냥 묻힌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렇게 해야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인데, 이런 것이 그리스 신화나 헬라철학에 다 골고루 퍼져있는데, 즉 한 줄기의 희망만 있다고 하면, 심지어 지옥이라고 해도 창문만 있다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잠재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다.

◈ 인간 속에 신성이 들어있다 !!

바로 그것을 헬라철학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인간 속에 신성이 들어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화가 철학으로 바뀌면서 유사종교가 발생을 하게 되는데, 그러한 유사종교의 특징이 바로 "내 속에 하나님이 들어있다" 라는 것이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 속에 신이 들어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희망만 있다고 하면 그 희망을 품고서 저 태양을 향해서 얼마든지 나아갈 수가 있다는 말이다. 비록 지금은 최악의 상태라고 해도 말이다. 즉 인간은 지금 자기가 질곡에 처박혀 있다고 해도, 손톱으로 절벽을 긁어서라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 결국은, 인간도 신의 일족 !!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유토피아를 향해서 나아가는 영웅적인 용기와 자기 절제와 덕과 지혜가 있다고 하면, 인간도 곧 신의 일족으로 인정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헬라철학의 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그것이 현대철학과도, 즉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나요? 그러므로 지금도 여전히 헬라철학이고, 그러면 철학은 발전이 없나요?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고대의 헬라철학을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심성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은 발전이란 없는데, 다만 그 범주를 처음에는 넓게 잡은 것인데, 지금은 소소하게 작게 잡은 것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고대철학은 처음부터 범위를 너무 넓게 잡았다는 것이다.

◈ 현대과학이나 철학은 일종의 기술에 불과해 !!

그러니 만약에 그 당시 고대 헬라철학자들에게 지금의 과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이야기하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일종의 기술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그러한 기술, 즉 기능은 옛날부터 천한 직업인데, 머리로 따지고 해야 고상한 직업이지 말이다. 우리나라도 역시 그러한데, 왜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도 노비출신이 아닌가? 결코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배아줄기세포가 최고의 직업이지만, 그러나 옛날에는 천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똥을 펄 때 어떻게 펄 것인가? 그런 것이 곧 기술인데, 그런데 그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되는데, 각도를 잘 조절해서 퍼면 흘리지 않고 냄새도 덜 나게 펄 수가 있다는 것이다.

◈ 뭘 해도, 인생의 쓴맛을 좀 알아야 !!

그러니 작은 부분은 깊숙이 생각하면 무엇이라도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차방정식은 어떻게 푸는가? 그것은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게 조그만 노력하면 다 되게 되어있는데, 그러니 그런 것을 가지고서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하느냐는 말이다. 즉 작은 범위는 집중만 하면 되지만, 그러나 넓을 경우에는 인생을 좀 알아야 그런 문제가 풀린다는 것이다. 인생의 수많은 경험과 질곡을 말이다.

학원에서 젊은 강사들의 강의가 나이가 조금 있는 강사들보다 매끄럽지 못한 것은, 고생을 덜 하고 실패를 덜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집중하면 푸는 기술을 획득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인생에서 실패를 해보면 이 세상을 보는 범주가 넓어지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 쪽이 아닌 다른 쪽에 있는 것들도 마구잡이로 이용할 수가 있고 말이다.

그런데 실패의 경험이 적은 젊은 사람들은 그런 융통성이 적고, 즉 노련미가 없다는 것이다. 주고받고, 주고받고 하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가려면 자기의 틀이 깨어지는 아픔이 있어야 하는데, 즉 살아가면서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융통성이나 노련미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다시 괴테의 파우스트 이야기를 !!

이제 괴테의 파우스트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하면, 아무튼 인간은 희망 하나만 있다고 하면 자기 속에 있는 신적인 요소를 끄집어내어서, 그 희망의 한 줄기 빛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잠재력이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삐삐용' 이란 영화를 보면, 그 외딴 섬에 있는 감옥을 탈출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더스틴 호프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스티브 맥퀸은?) 탈출하겠다는 그 희망이 그 지옥과도 같은 힘든 감옥생활을 견디게 한다는 것이다. 즉 희망이 자기의 힘이 된다는 말이다.

◈ 희망은 사라졌지만, 어디선가 천사가 !!

그런데 이 괴테의 파우스트는 그것이 아니라, 아까도 잠깐 말했지만 놀랍게도 루터의 신학과 결합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파우스트 박사는 희망이 있다고 여기고 계속해서 노력했는데, 그런데 결과는 그런 희망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이제 희망이 없는데, 그런데 그 상태에서 천사가 나타나서 이 파우스트 박사를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파우스트의 주제인데, 그러니 그 당시로서는 아주 획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괴테는 이 파우스트를 통해서 악마를 너무 쉽게 얕잡아 보지 말라는 메시지도 함께 던지는데, 인간이 아무리 간절하게 부르짖고 애타게 애원을 해도 뭐라고 하는가? "내놔. 니 영혼"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가 회개하고 하나님 편이라고 해도 말이다. 역시 악마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내놔. 니 영혼"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아무리 선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혹시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반성을 해도, 결코 그것을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이 '파우스트' 라는 작품의 모티브가 되고 말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 파우스트 박사를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 파우스트 박사의 선행도 아니고, 회개도 아니고, 그리고 반성문을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천사에 의해서, 즉 하나님께서 그냥 구원시켜준다는 것이다.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행위와도 전혀 상관이 없이 말이다. 그러니 루터의 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상당히 복음적이고 말이다. (??)

* 질문 -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영화는 없나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그렇게 영화를 만들면 곧 바로 망하니 말이다. (ㅋㅋ) 그렇게 되면 인간의 존엄성을 뭉개는 것이 되는데, 영화는 항상 인간의 존엄성을 치켜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설령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아무튼 영화에는 희망과 영웅주의가 반드시 들어가는데, 그렇게 해서 주인공이 그 어떤 질곡과 고난도 이겨내고 결국 승리한다는 것이다.

◈ 무슨 영화라도, 결국 인간이 승리하는데 !!

'투모로우' 라는 영화를 봐도 그러한데, 아무리 빙하기가 찾아와도 인류는 반드시 그러한 고난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빙하기에 만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대자연의 원리를 알아서 인간이 극복하자는 것이다. 지금 엘리뇨 현상 때문에 난리인데, 결국 그것도 극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말이다.

앞으로 그런 지구종말에 관한 재난영화가 많이 만들어지지 싶은데, 내용이 대부분이 다 그렇게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종말론자들이 만들면 달라질지도 모르겠는데, 즉 '꽝' 하고 지구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그대로 끝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영화감독이라면 그러한 영화를 만들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도 '꽝' 하고 망할 것이니 말이다.

◈ 대자연과 더불어서 !!

아무튼 인간이 철학을 한다고 해서 그 철학이 어느 특정 학문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은 바로 인간의 삶 자체인데, 그래서 대자연을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그 대자연의 구조를 미리 만들어서 구조화시키는데, 즉 방정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방정식을 만드는데, 물론 그렇게 해서 대자연을 인간이 장악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이 대자연은 인간보다도 훨씬 더 크고 바람과 구름은 인간이 시키는 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다만 무엇을 포착을 하는고 하니까, 이 대자연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 원리만 알고 있으면, 인간은 그 대자연을 타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자연을 이용할 수는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것을 쉽게 말하면, "대자연과 더불어서 함께 살아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도 그렇게 주장했고 말이다.

* 질문 - 대자연을 섭렵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까?

섭렵이란 장악과도 같은 의미인데, 그러니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치 행글라이더가 바람을 이용해서 날아가듯이, 그렇게 인간이 대자연을 이용하면 된다는 말이다. 바람을 굴복시키는 게 아니라, 바람과 더불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가 좀 그렇기는 하지만, 왜 영화를 보면 여자가 깡패에게 납치가 되었는데, 그런데 그만 여자가 그 깡패두목을 사랑해서 그만 결혼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경찰은 그것도 모르고, "너희는 포위되었다. 여자를 풀어줘라" 라고 뒷북을 치고 말이다.

◈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

그러니 나쁘다고 여긴 그 가치가 그만 더불어서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되는데, 그러한 방법을 스스로 수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서 '자연스럽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불교라는 말이다. 과학은 자연을 극복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그러나 불교는 자연과 더불어서 바람을 타고 날아가듯이 그렇게 한 몸이 되어서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슬람교도 역시 그러한데, 즉 신의 결정에 대해서, 이것이 곧 결정론인데, 그냥 자기 몸을 맡겨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들이 오늘 강의할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그리고 피타고라스도 역시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이기 이전에 '교주' !!

먼저 피타고라스를 살펴보면, 그를 흔히 수학자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수학자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그 당시 특정종교의 교주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처음에는 '디오니소스' 라는 종교가 있었고, 이것이 뒤에는 '오르페우스' 라는 종교로 바뀌었고, 또한 그것을 개혁한 것이 곧 '피타고라스' 라는 종교라는 말이다.

먼저 이 '디오니소스' 라는 종교가 무엇인고 하니, 마구 떠다니고 움직이는 종교인데, 마치 강물 위의 널빤지나 또한 나그네처럼 말이다. 그러니 어떤 한 곳에 머무는 신이 아니라, 즉 특정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 술을 통해서 신과 합일 !!

그러니 이 디오니소스 신과 하나가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인간은 떠다니면서, 즉 돌아다니면서 살아가는 묘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과 어떻게 접촉을 하겠는가? 그것은 윤리나 도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아주 독한 술 파티를 연다는 것이다. 그렇게 술 축제를 벌리고 술에 도취가 되면 신비로운 디오니소스 신과 합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술에 취하면 말이다.

그야말로 술의 제전인데, 일종의 환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환각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데, 자기들은 오히려 술에 취하지 않는 상태를 환각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즉 환각에서 깨어나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데, 허망한 이 세상에서 깨어서 본질에 들어가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술을 통해서 본질에 들어가는데, 그러면 그동안 껍데기로 살아왔던 환각은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 대자연을 붙잡을 수 있는가? 과연 바람이나 구름을 잡을 수 있는가? 울타리를 치고 가축을 키운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붙잡은 것인가? 소나 말은 풀어놓으면 그냥 자기 마음대로 가버리고 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왜 자꾸만 자기 위주로 이 자연을 붙잡으려고 하는가? 즉 자기 소유물로 삼으려고 하느냐는 말이다.

◈ 햇볕을 가리지 마시오 !!

이런 디오니소스적인 요소가 '디오게네스' 라는 철학자를 보면 나타나는데, 알렉산더 대왕에게 햇볕을 가린다고 좀 비켜달라고 했던 철학자 말이다. 대왕이 이 나라의 절반을 주겠다고 해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비켜달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스토아 학파에게도 나타나고 말이다.

아무튼 인간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려면 자연의 일부가 되면 되는데, 그렇다면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스럽다' 라는 말이 그런 의미인데, 그야말로 프리하게 어디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돈에 얽매이지 않고,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고 자기 목숨에도 얽매이지 않고 말이다.

◈ 그러나 '올림푸스' 종교는?

그러나 여기에 비해서 '올림푸스' 종교는 무엇인고 하니, 이 올림푸스는 그 지역의 산 이름인데, 거기에는 제우스가 살고 있고 말이다. 이 종교는 앞에서 말한 디오니소스 종교와는 달라서 상당히 공간적인데, 즉 공간적으로 제한이 되어서 한 군데 머물러있는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신이 이렇게 머물러 있으면, 그 신을 따르는 추종자들도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머무르게 되면 땅의 분배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 왕은 당연히 올림푸스 종교를 선호하는데 !!

그렇다면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어느 신이 편리하겠는가? 당연히 제우스 신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을 분배할 때 어떻게 하는고 하니, 정의로움으로서 분배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땅을 많이 주고, 적게 하면 적게 주고 말이다. 또한 나쁜 짓을 한 놈에게는 징벌을 내려서, 그가 가지고 있던 땅마저도 빼앗아서 착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는 말이다.

이러한 올림푸스 종교에서 추구하는 것들이 바로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 원동력이, 즉 삶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소유하고 싶어하는 욕심을 긍정적으로 뒤에서 마구 밀어주니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에 전쟁이 터지면 왕이 뭐라고 하겠는가?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공을 세운 자들에게는 땅을 주겠소. 또한 그 땅은 자손들에게 세습이 될 것이요" 라고 하면,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리가 주어지고 또한 노예까지도 들어온다는 것이다. 싸움에서 패배한 자들이 그 가족들과 함께 승리한 쪽의 노예가 되니 말이다. 그래서 노예가 100명인데, 군인 50명이라고 하면 일인당 2명씩 노예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 노예의 경우에 !!

그 당시의 노예는 요즘의 집안의 가구나 전자제품과도 같은데, 즉 빨래가 있으면 세탁기 역할도 하고, 주인이 심심하면 앞에서 노래도 해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물건이 좀 시원치 않으면 시장에 나가서 물물교환을 한다는 것이다. 돈을 좀 더 주던지 해서 싱싱한 놈으로 바꿔온다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용도로 사용할 노예를, 즉 아내가 병이 들어서 외로우면 아내의 역할을 해줄 젊은 여자노예를 데리고 오던지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그 당시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노예를 얻기 위해서 자기는 국가를 위해서 착한 일을 했다는 것이다. 또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자기 나라가 망하고 가족이 노예가 되는 것을 막았고 말이다. 그러니 노예는 정의롭게 획득한 하나의 전리품이고 집안의 가구라는 것이다.

◈ 왕은 불쌍한 존재 ??

양심은 가책이라는 것은 나쁜 짓을 했을 때나 받는 것이지, 그런데 제우스 신이 시키는 대로 순종을 했는데, 왜냐하면 신의 대리자가 바로 왕이니 말이다. 그렇게 신의 명령에 따라서 정의로운 일을 했는데 무슨 양심의 가책을 받느냐는 말이다. 또한 왕은 당연히 나라를 지키고 보존하해야 하는 책임이 있고 말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왕이 병들었다 싶으면 가차없이 암살을 하는데, 그것은 국가를 위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과의 중재자가 시들해지면 신이 자기들에게 축복을 덜 주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왕을 죽이고 그 친척 가운데 싱싱한 놈을 골라서 왕의 자리에 세운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또 병이 들면 몰래(?) 죽이고 말이다. 그래서 서로 왕이 안 되려고 도망을 가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도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말이다. 물론 자기가 건강하면 다행이겠지만,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는 것이다. 의료기술도 형편이 없는데 말이다.

그것은 왕이 미워서가 아니라, 자기 부족이나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건강한 왕이 있어야 신의 축복을 더 많이 받으니 말이다. 그러니 알고 보면 왕이 참 불쌍한데,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그렇듯이 말이다. 요즘 '궁' 이라는 드라마를 하는데, 저는 안타까워서 보지 않는데, 불쌍해서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왕도 일종의 노예라는 말이다.

* 질문 - 아까 노예는 가재도구라고 했는데, 그러면 노예의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노예에게도 역시나 고마운 일인데, 지금 노동자들이 사장님에게 고마워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는데 말이다. 삼성그룹의 신입사원이 이건희 회장에게 고맙지 않겠는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살려주니 말이다. 노예의 경우에는, 자기는 이제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 그런데 주인 덕분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물론 땅도 다 빼앗기고, 나라자체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옛날에 땅 싸움은 그냥 단순히 누가 땅을 더 많이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민족이 더욱 더 정의로운가?" 라는 것인데, 즉 착한 자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정의에 합당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사실 착한 자가 더 많이 가진다고 하는 것은 말은 되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많이 가진 자가 착한 자이다" 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버는 인간이 복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신으로부터 말이다.

◈ 내가 사는 것이 곧 착한 일 !!

분명히 착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복을 받았고, 재벌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결국은 그 돈이 우리를 살리니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사는 것이 곧 착한 일인데, 무병장수하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일찍 죽는 사람은 하늘에서 내린 벼락을 맞아서 죽은 것인데, 그런 벼락을 맞을 짓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전생의 액운을 없애기 위해서 굿을 하는데, 그래서 모든 민족에게는 조상숭배가 공통적으로 다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전생의 좋지 않은 기운을 우리 인간들은 모르지만, 그러나 죽은 자의 귀신들은 그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들을 섬긴다는 것이다.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들을 위해서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가요?

그것은 좁게 보아서 그러한데,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만 집착해서 말이다.

* 질문 - 그런 뜻이 아니라, 왜 목사님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지금 살고 있지는 않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이런 강의를 할 수 있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므로 자기 혼자 살기 위해서 이 세상이 존재한다고,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떠하냐는 말입니다.

물론 고대의 헬라철학에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을 것인데, 하지만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헬라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도대체 인간의 심성이 어떠한지, 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인간이니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 인간이나 지금 인간이나 해부해보면 동일하다는 말이다.

◈ 개가 오히려 솔직해 !!

사람에게는 역사라는 것이 있고 문명이 그렇게 발달하니 옷도 바꿔 입고 뭔가 달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의 개가 오후에 자듯이 그 당시에 개도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문명의 발달과는 상관이 없이 개는 여전히 개인데, 사실은 그 개가 솔직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괜히 자기가 개가 아니라고 하면서 폼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고 하니, 인간도 하나의 개로서 보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역사라는 것을 떼어버리고 말이다. 인간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동일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그동안에 여러 가지 종류의 다른 사고방식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래서 각각의 '계파' 라는 것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 왜 '계파' 라는 것이 생겼는가?

그래서 여러 계파를 모두 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스토아적 계파도 있고, 또 에피쿠로스적인 계파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이 양쪽을 모두다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피타고라스 계파를 공부하고 있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런 계파를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 헬라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즉 자기 중심의 사공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물론 '나' 중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맞는데, 거기서 조금 더 세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나' 중심이 과연 신이 없다고 하는 자기 중심인지, 아니면 신에게 복종하는 자기 중심인지를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런데 여기에 왜 자꾸 신이 등장하는고 하니까,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게 신을 섬긴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데, 그러나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맞아죽어도 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하면, 왜 패배를 했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무기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금 우리 생각이고, 자기들의 신이 원래는 선한 신이었는데, 지금은 악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들이 착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 질문 -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제가 지금 강의를 들으면서 너무 인간중심으로 생각을 해서 그런 것 같은데 말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자기의 어쩔 수 없음을 신에게 의존하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신을 만들어서 극복하려고 하니, 그렇게 다양한 계파적인 요소로 나타난다는 말씀이지요?

지금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과학적 요소가 그만 신의 범주를 넘어서 버렸는데, 왜냐하면 과학은 인간들의 힘으로서 대자연을 정복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신의 개념이 자꾸만 추가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신은 자기 자리를 점령해나가는 입장이고, 우리는 또한 현대과학에 물들어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말이다. (??)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가 않았는데, 헬라어에 '모이라' 라고 '운명' 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아낭케'가 나오는데, '필연' 이라는 뜻인데, 또 '우연' 이라는 의미도 나오고 말이다. 여기에서 필연이 스토아 학파로 연결되고, 그리고 우연은 에피쿠로스 학파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말이다.

◈ 신이 운명 밑에 있어 !!

그런데 바로 이 운명 밑에 신이 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신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게 되면, 신은 불사의 존재임은 분명하게 맞지만, 그러나 영생의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신은 죽지는 않지만 그러나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신이 울고 신이 실패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신이 신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더 재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전혀 신이 신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 질투하고 시기하고, 또한 한 여자를 놓고 줄 당기기를 하고, 심지어 인간을 짝사랑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신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첫째 시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다시 반복하면, 인간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감정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제 아무리 똑똑해도 자기에게 터져 나오는 감정은, 이미 자기 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 혹시, 겨울여자나 별들의 고향을 아시나요?

예를 들어서, 자기가 서울법대를 나와서 검사를 하고 있는데, 그런데 혼처가 들어오는데 보니까, 여화여대 법대를 나온 아나운서도 있고, 종합병원의 의사도 있고, 또한 재벌의 무남독녀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맞선을 보아도 그런 여자는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가 한번씩 힘들 때마다 찾아가는 술집 아가씨가 그만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력이고 돈이고 뭐고 간에 그렇게 자기를 땡기는 그 마음만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다. 겨울여자나 별들의 고향이 다 그런 영화들인데 말이다. 소위 고상한 집안에서 술집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인데, 그런데 말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나이가 16살이나 많은 중학교의 여자 선생님이, 자기 반 학생하고 결혼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말이 되는데, 그래서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남자 선생님이 아니라 여자 선생님인데, 16살이나 연상의 여인과 말이다. 그렇게 땡기면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다.

◈ 대자연속에서 신과 인간이 공유하면서 !!

이러한 것에 대해서 인간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인간에게 신적인 요소가 들어와서, 그래서 인간은 대자연속에서 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자연이 신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대자연 속에 신도 있고 인간도 있는데, 그렇게 대자연속에서 서로가 공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합당한 논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엄연히 있으니 말이다.

◈ 운명대로, 운명대로 !!

그렇다면 신과 인간이 다 같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고 하니, 곧 '대자연' 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운명' 이라고 본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도 인간도 운명대로 가는데, 그렇다면 아까 말한 괴테의 파우스트는 무엇인가? 결국 파우스트 박사를 천사가 구원시켜주는 것도, 악마도 역시 신인데, 그러니 악마도 박사의 영혼을 가지고 비록 인간하고 흥정은 했지만, 그러나 운명대로 해야한다는 것이다.

창세기에도 보면 야곱과 에서가 서로 흥정을 했는데, 에서가 하는 말이, 팥죽을 먹게 해주면 자기의 장자권을 야곱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빈틈없이 흥정을 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하나님의 선택된 계시가 그들의 그런 흥정을 다 취소시키고 야곱을 장자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 드디어, 너 자신을 알라 !!

그러니 이러한 것 자체가 곧 운명인데, 그래서 운명은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 선을 벗어나면 안 돼" 라고 말이다. 그것을 벗어나면 처벌을 받고, 그러면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경계선을 지키는 것을 두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느 신전기둥에 적혀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소크라테스가 적극적으로 인용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이것만 딱 떼어서 이야기하면 안 되고, "당신이나 잘하세요" 라고 말이다.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닌데, 즉 "자기의 분수를 알아서, 자기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가지 말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유다서에도 보면 이런 비슥한 내용이 있는데, 악마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그만 넘어가서 타락을 했다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결국 운명은 거스릴 수가 없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그런데 이 운명이라는 것이 아까 말한 올림푸스의 제우스 신에 결합이 되면, 이것이 확고한 국가체제의 시스템으로 확고하게 바뀌어서 굳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할 때는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어제 새벽 3시 20분에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는데, 그렇게 올림픽이 열리면 '성화(聖火)' 라고 해서 불을 봉송하는데, 그 불이 바로 신에게서 훔친 불이라는 것이다. 불은 신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사실은 훔치면 안 되는데,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열면 안 되듯이 말이다.

◈ 그런데 판도라 상자의 마지막에 희망이 !!

열린 판도라 상자 안에 갖가지 악한 것들이 다 들어있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 상자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바로 '희망' 이라는 것인데, 즉 '호프' 라는 것이다. 맥주가 아닌 희망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서로 비슷한 용도로서 사용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다시 말해서, 열린 그 판도라의 상자 안에서 온갖 추악하고 음란한 것들이 다 튀어나오는데, 그런데 마지막에 희망이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붙들고서 인간이 살아간다는 말이다. 올림픽 성화의 그 불이 곧 지혜인데, 그러니 올림픽을 여는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인간이 불을 잘 활용해서, 즉 지혜롭게 되어서 평화롭게 살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 '노모스', 즉 '법' 이라는 것은?

그런데 그런 올림픽을 열려고 하면 그 주체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리고 참가한 임원과 선수들은 그 주체자의 말을 들어야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완벽한 공간적 국가체제인데, 바로 이것을 두고서 '노모스' 라고, 즉 '법'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법은 무엇인가? 운명을 대변하는 제우스 신에 의해서, 물론 제우스가 운명의 신은 아닌데, 왜냐하면 운명 밑에 신이 있으니 말이다. 이 제우스 신이 법을 제정하는데, 그러면 왜 법을 만드는가? 그것은 사람마다 타고난 자기의 경계가 있는데, 그 경계를 넘지 않도록 강제적인 힘, 즉 정치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법 체제인데, 즉 자기 분수를 넘지 말라는 것이다.

◈ 민주주의 - 다수의 힘이 곧 진리 !!

그런데 이것이 민주주의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민주주의에서 법은, 운명의 법에서 그 주권이 국민들에게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운명에 의한 필연적인 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융통성이 있는 법이 된다는 말이다. 즉 다수결에 의해서 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소수가 진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아무리 진리라고 해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소수가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할아버지라고 해도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 민주주의라는 것은 다수의 힘이 곧 진리가 되는 것인데, 그러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면 힘이 생기는데, 그러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하겠는가? 옛날 같으면 땅의 소유를 좋아했는데, 물론 요즘은 돈이고 말이다. 그렇다고 하면 상공인들과 금융인들, 그러니 이러한 중산층의 자본가들에게 적당한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 마침내 히틀러가 등장 !!

그런데 이러한 자본주의에 의한 민주주의의 가장 적나라한 폐해가 바로 '히틀러'의 등장인데, 그런데 이 히틀러가 자본주의를 옹호했겠는가? 아니면 공산주의인가? 당연히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가 제일 싫어한 것이 유대인과 공산주의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 왜 히틀러에게 그런 힘이 모아졌는고 하니, 독일도 자본주의가 되어서 잘 살기 위해서는 힘을 하나로 모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고 나발이고, 그 놈들은 매일같이 싸움만 하니 다 때려치우고, 사실 그 당시 국민들은 그런 국회와 국회의원들에 대해서 너무나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틀러' 라는 언변에 뛰어난 사람에게 힘을 다 모아주었는데, 이것이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에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 다수결을 위한 독재는 OK !!

그의 정치이론에 의하면, 결국은 힘이 한 사람에게 모이게 되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재산을 증식해주면 계속해서 혼자서 독재를 해도 괜찮다고 하는 '독재론'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좋은 독재가 되는 것을 민주주의의 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밖에 모르는 나쁜 독재는 용납이 안 되지만, 그러나 다수의 이익을 반영하는 독재는 괜찮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스스로를 비하시켜서 뭐라고 하는가? "조선 놈은 맞아야 나라가 된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아직도 박정희와 전두환을 그리워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림푸스가 아닌 디오니소스는 전혀 이런 것이 아닌데, 제우스가 디오니소스를 볼 때, 그것은 전혀 법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법천지라는 것이다. 매일같이 술이나 쳐 먹고 돌아다니니 말이다. 그렇게 취해서 하는 말이 무엇인가? "이 세상은 다 꿈이고, 헛된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도 절도 없이 그냥 나그네로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 영혼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에서 !!

왜냐하면, 이 디오니소는 전혀 공간적인 것을 차지하지 않는데, 그냥 구름따라 바람따라 돌아다니면서 시나 짓고 말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라고 할까? 아무런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디오니소스적인 종교가 오르페우스적인 종교로 바뀌게 되는데, 그렇다면 오르페우스 종교의 주장은 무엇인가? 인간 속에 있는 영혼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에서 나왔다고 한다는 것이다.

◈ 영혼은 분여(分與)된 것 !!

이것이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인간 속에 있는 생명은, 즉 "영혼은 분여(分與)된 것이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 '분여' 라는 말은, 원래는 하나인데 나누어졌다는 것이다. 반면에 분배는 하나에서 나누어져서 없어지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분여는 나누어주면 하나로 다시 모이는, 그러한 나눔이라는 것이다. 분유가 아니고 말이다. (ㅋㅋ)

◈ 죽으면, 원래 하나인 생명으로 다시 복속이 !!

그런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은 이 땅에서 살다가 생명이 끊어지면 원래 하나인 생명으로 다시 복속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아가 날아가 버리는데, 그러니 이것은 완전히 불교 스타일이라는 말이다. 즉 개별적으로 살아있을 때만 자기 영혼이 있는 것이고, 그 생명이 끊어지게 되면 그런 개별적인 것이 다 사라지고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수제비를 뗄 때에 하나씩 떼면 툭툭 다 떨어지지만, 그러나 그것을 하나로 다시 합치면 원래의 모습대로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르페우스 종교인데, 여기서 개혁한(?) 것이 바로 피타고라스 종교라는 말이다. 이 피타고라스 종교는 죽으면 하나 하나의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세계에서도 개별적인 영혼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차이점을 알겠지요?

다시 말해서, 디오니소스 종교가 개혁된 것이 오르페우스 종교이고, 또한 오르페우스 종교가 개혁된 것이 피타고라스 종교인데, 그런데 디오니소스 종교는 무엇인고 하니, 죽음과 생명은 일치한다고 보는 것인데, 그러니 쉽게 말해서, 사나죽으나 똑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과 생명의 세계를 하나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엄청난 자유가 주어지는데,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당연히 죽음인데, 그런데 그렇게 죽는 것이나 지금 살아있는 것이나, 그것이 다 같은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 왜 피타고라스는 수(數)를 이야기했는가?

그렇다면 이 피타고라스 종교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니, 개별적인 영혼이 따로따로 존재한다고 하면 사람들마다 다 질적인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옆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까?" 라고 하는 질문이 성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화론이 말이다.

바로 그때 피타고라스는 수(數)를 이야기하는데, 인간은 대자연 속에서 하나의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인데, 그런데 자기 영혼이 맑고 깨끗이 되려고 하면 이 대자연에 흐르는 원칙을 파악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자연의 수법과 원칙은 어떻게 알 수 있는고 하니, 인간의 감정을 통해서, 즉 그러한 인간의 감정이 유발하는 흔적을 통해서 조사할 수 있는데, 그 흔적이 바로 '미술' 이고, 또한 '음악' 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기분이 좋으면 흥을흥을거리는데, 어떤 사람은 밥만 맛있게 먹으면 노래가 나온다는 것이다. '띠라리 라라라라'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대자연의 원리원칙에 있어서, 인간에게 그런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인간 속에 리듬이 있다는 말인데, 그런데 그 리듬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대자연과 동일한 요소로서 인간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 음악의 리듬을 수학적으로 비율을 맞추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곧 자연의 비율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½'이나 '⅓'과 같은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분수화가 되어야만, 그래야 비율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 이 우주는, '1'부터 '10'에 갇혀있어 !!

여기서 출발해서 이 숫자를 조금 더 조사해보니, 모든 것이 다 '디케(?)', 즉 '10' 이라는 것으로 모든 설명이 가능하더라는 것이다. 즉 '1, 2, 3, 4, 5, 6, 7, 8, 9' 하고 그 다음에 '0'은 없고 다시 '1'로 가는데, 그렇게 해서 '10'이 되는데, 즉 '1'부터 시작을 해서 '10'으로 가니 다시 '1'로 되돌아오더라는 것이다. 즉 주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는 어디에 갇혀있는고 하니, '1'부터 '10'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모든 숫자는 어떻게 되는가? 짝수는 무규정적이고 홀수는 규정적인데, 즉 짝수는 뭔가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여자에 해당이 되고, 그리고 홀수는 남자에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낳는다는 것은, 무규정적인 짝수가 규정적인 홀수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1, 2, 3, 4, 8, 9, 27', 이런 식으로 숫자가 번지게 되는데, '테트라락투스(?)' 라고 해서 말이다. 즉 대자연의 모든 것이 이 '10'의 구조로서 설명이 모두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6면체, 8면체, 12면체 등등으로 해서 이 세상의 모든 기하학적인 구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자연의 본질이 숫자라고 하는 추상적 개념으로 다 환원이 가능하다고 하면, 결국은 이 대자연이 바로 숫자가 아니냐는 것이다.

◈ 자연이 숫자로서 맺어질 때, 보다 더 순수한 영혼이 !!

이렇게 자연이 숫자로서 맺어질 때만 사람은 이 대자연의 원리원칙을 파악한 것이 되고,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의 영혼은 자연의 원리를 파악한 영혼이 되어서, 남들보다 더 순수한 영혼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순수한 영혼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나중에 죽어서 남들보다 더 깨끗한 하늘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피타고라스가 주장한 종교인데, 그러니 그의 종교에 의하면, 하나의 정수, 즉 그야말로 말 그대로 자연수인데,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수가 수를 낳고 또 수가 수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숫자로서 다 설명이 된다는 말이다.

◈ 바로 '틈' 사이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창조되는데 !!

이것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즉 피타고라스와 다른 철학자들을 비교하면 어떠한고 하니, 옛날 신화의 세계에서는 신을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즉 땅의 신, 바다의 신, 그리고 음부의 신으로 말이다. 이렇게 체계가 잡혀져 있다는 것이다. 제우스, 포세이돈 등등으로 말이다. (그런데 하늘의 신, 땅의 신, 그리고 바다의 신이 아닌가?)

그런데 옛날 사람들의 생각에는, 여기 이러한 틈 사이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창조되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하늘과 땅과, 그 땅 밑의 죽음의 세계가 있는데, 그것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요동을 치는데, 그렇게 하면서 인간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낯선 면들이 보이는데, 그것을 바로 '틈'으로 본다는 말이다. 이러한 틈에서 새끼 신들이 나오고 말이다.

이것을 피타고라스 방식으로 표현을 하면, '2, 4, 6, 8' 이라고 하는 짝수라는 것이 대자연 속에 있지만, 그렇게 무규정적인 짝수가 있는데, 그런데 그 틈을 통해서,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듯이, 그렇게 해서 새끼를 낳으면 그것이 곧 홀수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홀수는 분명히 짝수와 짝수의 결혼에 의해서 나왔다는 것인데, 그렇게 해서 이 대자연에 대해서 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 그러면 '기분이 좋다' 라는 의미는?

이러한 피타고라스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이 기분이 좋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게 기분이 좋고, 착하다는 것은 균형이 잡힌 것이니 짝수가 되는데, 그런데 갑자기 시기심이 발동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짝수와 짝수의 틈 사이에서 나온 것으로서 홀수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가능한 한 홀수는 줄이고, 그 대신 안정감이 있는 짝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짝수' 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짝이 있다는 것이니, 마치 저울에 있어서 양쪽이 모두 다 있기 때문에 균형이 잡혔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니 친구사이에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짝수사이(?)가 되는데, 그런데 그만 갑자기 한 명이 토라져서 가버리고 혼자가 되면 어떻게 되는가? 다시금 홀수가 되어버리니, 그러면 다시 다른 친구를 잘 토닥거려서 사이좋게 지낸다고 하면 안정감이 있는 짝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혼자서 산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도 대자연에 합쳐서 더불어 살지 않고 따로 독립을 해서 튀어나와서 살아간다면, 그것 자체가 바로 악함이라는 말이다. 즉 홀수는 악한 것이고, 반면에 짝수는 착하다는 말이다.

◈ 피타고라스의 숫자개념은, 영혼을 위한 종교적인 접근 !!

그러니 이러한 피타고라스의 주장은, 현대의 수학처럼 숫자를 가지고 어떤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 자체가 짝수적인 것이 있는데, 즉 홀수처럼 톡톡 튀어나온 게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톡톡거리면서 살아가지 말고, 이 대자연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기 영혼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그러한 종교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본질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바로 윤리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점인데, 그러니 모든 것이 다 윤리적이라는 말이다. 물론 요즘 수학은 윤리가 아니지만, 그러나 옛날에는 모든 것이 다 자연에 합치해서 살아가는 윤리로 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기 영혼자체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말이다.

◈ 이제 스토아 학파에 대해서 !!

이 정도로서 피타고라스에 대해서는 정리하고, 많이 힘들었지요? 그렇다고 하면 지금부터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등장하는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먼저 스토아 학파를 이야기하면, 쉽게 말해서(?) 그들은 유물론적 유신론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제가 쉽게 이야기하려고 노력을 하기는 하겠는데, 여기에서 유물론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 스토아 학파 사람들은 자연자체를 신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이 신은 점점 쇠퇴해지는데, 이 신 위에는 '모이라' 라고 하는, 즉 운명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곧 스토아 학파라는 것이다.

◈ 신을 배제하고, 원인과 결과로서 설명을 !!

그렇다면 이렇게 신을 빼버리면 자연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원인과 결과로서 가능한데, 즉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원인과 결과라는 말이다. 이렇게 대자연에 사람도 있고, 코끼리도 있고, 돌맹이도 있고, 바람도 있고, 구름도 있고, 그 어떤 것들이 있다고 해도, 그 사이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로서 맺어져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이 있어서 어떤 원인과 목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는데, 그런데 이 스토아 학파는 그렇게 신이 있어서 목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체는 스스로 원인이 되고 또한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개체가 다 그렇다는 말인데,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컵이나 볼펜도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결정론적인데, 그 어떤 것도 원인이 없는 것은 없으니 말이다.

◈ 만약에 길에서 돈다발을 주웠다고 하면 !!

예를 들어서, 자기가 아침에 출근을 하다가 길에서 돈을 일억을 주워서 경찰서에 가져다가 주었는데, 그때 마침 방송국 기자가 그것을 보고서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그런 착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까? 인터뷰를 좀 합시다" 라고 한다면, 그는 뭐라고 하겠는가? 자기는 기자가 생각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한다는 말이다.

자기는 그날 따라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는 바람에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출근을 했고, 그래서 돈을 주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주워갔던지 했지 말이다. 그러니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는 것과 자기가 착한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자기가 못났으니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었지 말이다.

그러니 지금의 자기가 있는 것은 아내 때문에 있는 것인데, 그런 아내가 있다는 것을 또한 장모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말이다. 장모님이 그러한 딸을 낳지 않았으면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렇게 모든 것은 결정된 것인데, 그러니 자기가 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모든 것이 결정이 되었다고 하는 운명론적이지 않습니까?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운명이고 순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이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그대로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먼저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도종환의 시(詩)를 하나 읽어보겠는데, "가지 않을 고난의 길은 없었다" 라고 시작하는데, 시 자체가 상당하게 운명론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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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 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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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를 잠시 풀이하면 !!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자기에게는 갈 수밖에 없는 고난의 길만이 놓여있었다는 말이다. 운명론적인 스토아 학파인데, 자기가 그동안 살아온 것이 참으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도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의 이치에 맞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인처럼 그 고난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에게는 운명이고, 또한 순응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현대의 모든 과학은 다 무엇인가? 현재 인간이 이만큼 진화되었다고 하는 것을 존재하기 위해서 있다는 말이다. 진화론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우주가 왜 있는가?" 라고 하면, 그렇게 우주가 왜 있는지를 묻기 위한 인간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과학도 유물론적인 스토아 학파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말이다.

◈ 자기 운명을 저항한다고 해서 복음이 아닌데 !!

제가 잠시 이 시를 평가하자면, 자기 운명을 저항한다고 해서 복음이 아닌데, 그러므로 지금 시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길은 말고 다른 길을 그리워하는 저항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 좋아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 나는 어쩔 수 없었어"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물론 후회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음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베여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으면 자기가 살아왔던 그런 길을 다시 가기 싫다고 하는 의미인데, 그러니 자기 인생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저항하는 모습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저항하지만, 그러나 자기는 워낙 인간성이 좋고 착해서 받아줄 용의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시인이 저항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자기 속에 자연과는 이질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적으로 봐서는 하나님과 화목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 즉 뭔가 불만족스러움이 남아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토아 학파에서 말하는 운명론적인 것인데, 즉 순응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 자연에 순응하지 않고 덤벼들면?

그렇다면 이러한 순응에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불쑥 원인으로 나설 때, 그것은 바로 운명에 대한 저항이고 도전이라고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운명에 대들면 손해는 누가 보는가? 역시 자기만 손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어려운 점인데, 이것이 스토아 학파에 있어서 약점이기도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이 스토아 학파는 금욕적인데, 그러니 욕심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라는 게 무엇인고 하니, 원인과 결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원인의 제공자로 나서겠다고 우기는 것, 바로 그것을 욕심으로 본다는 것이다.

아까 들었든 예인데, 길에서 돈을 주웠는데, 그런데 그것을 주워서 자기가 가지자, 옆에서 지나가던 방송국 기자가 보고는 "왜 돈을 경찰서에 갖다주어서 주인을 찾아주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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