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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제국의 시대]강의-

제국의 시대2009년 3월 4일 이 근 호 목사 저 자 :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번 역 : 김동택 출판사 : 한길사 (서울 : 2007) 1. 우리의 터전을 다시 돌아보면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직업들은 과연 언제 누가 만든 것인가? 군인, 성직자, 공무원, 무역상, 어부, 농부, 벌목공, 광부, 금융인, 열쇠수리공, 소매상인, 부동산 중개인, 기업가, 법률가, 약사나 의사, 교사, 성악가, 미장, 크레인 기사, 미용사, 파출부 등등의 각종 직업을 종사하는 그 노동들이 과연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에 관해서는 부끄럽지 않는 당당한 직업이라고 여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 직무에 태만하지 않거나 자기 직무를 통해서 남을 이용하거나 속이지 않는 한 반듯한 직업인이라고 자부한다. 즉 자신이 종사하는 일을 도적질이나 강도질이나 사기와 같은 범죄에 해당되는 일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자기 집 앞 도랑에 음식 쓰레기를 버린 할머니는 환경법에 저촉한 것이다. 음식 쓰레기 회사에 의해서 고발조치 당해야 한다. 그런데 삼국시대라면 이 할머니는 범법자가 되지를 않는다. 이 할머니의 젊은 시절의 원칙은 더 이상 ‘옳은 것’이라고 인정받을 수 없다. 옛날 주부가 했던 그 업무들이 오늘날에는 법으로 간섭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구약 시절이나 서양에서는 신을 섬기는 것이 자신의 업무나 기능보다 늘 우선되는 때가 있었다. 즉 신을 섬기는 업무가 모든 ‘옳은 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특정 직업(성직자)이 다른 직업의 궁극적인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모세 때는 그 어떤 세속적인 직업도 모세와 아론 제사장이 하는 일 보다 앞 설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요즈음에 와서는 ‘신을 섬기는 직업’ 조차도 일상적인 어떤 직업보다도 우월하지 않다. 도리어 성직보다 더 우월한 직업이 있다면 그것은 왕의 자리요 대통령 자리다. 왜 이렇게 바뀌었는가? 그것은 국가라는 실체가 등장되고서부터다. 즉 국가라든지 국민이라든지 민족이라든지, 산업체라는 것이 개념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기준에 의해서 선과 악을 가려진다. ‘옳은 직업’과 ‘나쁜 직업’도 국가에 대한 유불리로 결정된다. 국가에 위기가 닥친 전쟁 중에서는 대중가요 가수들도 소집되어 전쟁터로 위문 공연을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애국(愛國)’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애국에 유리하면 좋은 직업이 되고 애국에 불리하면 나쁜 직업이 된다. 특정 업체가 수출을 많이 하게 되면 그 업체의 노무자들은 파업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국가의 경제에 큰 손실을 입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노동자가 회사의 중요기밀을 빼내어 다른 나라로 이민 가서 그 나라의 산업체에 이 기밀을 제공하면 그는 ‘훌륭한 직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좋은 기술은 전 인류가 골고루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치 중국에서 목회 씨를 밀수입한 문익점이 한국에서는 위인이 되는 경우와 같다. 문제가 여기서 부터다. 왜 전 세계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민족으로 이름으로 구분되어져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진리에 속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러해 온 필요악처럼 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종 직업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체로서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의 업무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석기 시대에는 병드는 것도 신의 선하고 합리적인 섭리요 조치였다. 따라서 감히 인간들이 신의 섭리에 도전해서 정성껏 치료해서는 아니 되고 신으로부터 온 영혼을 정성껏 잘 돌려보내느냐가 최선의 처방이다. 만약에 선조들이 암이라는 정보를 몰랐다는 것으로 비난한다면 이는 곧 모든 선조들이 모든 후손들로부터 비난 받아 마땅한 자들이 되는 이치다. 오늘날의 사람들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후대 사람들로부터 ‘무지몽매한 선조들’ 욕설을 무덤 위에서 들을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그들의 먼 후손들로 부터 비난받게 된다. 이것은 선후배 간에 서로 비난하지 말자는 취지의 말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직업에 대해서 그 어떤 정당함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업무의 소중함과 정당함을 핑계로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 섬기기’는 성직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의 주 업무일런지는 모르지만 자신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취미와 여가활동에 불과하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위 성직자라는 자들도 자신을 전문직업인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폐기해야만 한다. 즉 ‘하나님 섬기기’가 결코 특정 직업인들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리와 법칙을 적용시켜나가기 때문이다. 성직자가 자신을 전문가로 자청하지 않겠다는 말은 자신의 업무를 금전적 수입원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즉 성직자는 성직자가 되지 말고 계속 성도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설교나 심방이나 기도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복음0 앞에서는 날마다 자신 활동의 가치를 부정해야만 한다. 이 원칙은 성직자라는 직업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이 종사하는 모든 직업에도 다 적용되어야 될 원리다.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결코 정당한 것으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단지 자신의 직업과 노동조차도 산업 시대까지 접어들게 된 인간들의 활동들이 쏟아낸 부산물임을 인간적인 부산물임을 인식해야 한다. 본 책은 19에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1875년∼1914년)의 서양 역사를 다룬 책이다. 비록 서양이 아니더라도 이 서양역사에서 수립된 모든 정치, 경제적 형식들이 얼마 안 가서 전 세계를 산업화시켜버렸다는 점에서 오늘날 현대를 사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것이다. 2. 본 론 도대체 19세기 말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과 같은 정치, 경제 틀을 갖추게 되었는가? ‘진보’라는 말은 최근(19세기 말)에 생긴 말이다. 3세기 전만해도 유럽의 지식인들은 고대 로마의 농업, 군사시설 그리고 의약품 따위를 그들 자신의 모델로 간주했다. 그리고 2세기 전만 해도 근대는 고대가 이루어낸 성과물 정도라도 성취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고, 18세기 말의 전문가들은 과연 영국의 인구가 계속 성장할 수 있지를 걱정해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철도와 나무 전주를 타고 끝없이 이어지는 전신망과 증기선으로 인해 비로소 ‘가시적인 진보’를 언급할 수 있었다. 이로서 ‘진보’의 개념의 반대말은 ‘전통’이라는 말에 해당되었다. 진보란 젊은이가 늙은이를 가르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진보정신은 결국 후진 지역에 대한 침략과 억압과 고향으로부터의 박탈로 이어지게 된다. 즉 ‘진보’란 진보를 언급한 지역의 가치만을 인정하기 위해 타 지역을 ‘열등’이라고 규정짓게 한다. 이 진보작업을 위해 서구는 탐험에 나서게 되었는데, 탐험은 더 이상 '발견‘이 아니라 ’시합‘이 되었다. 누가 더 빨라가서 점령하는지 게임을 벌리는 식이었다. 약 100년 전 (18세기 말)에 두 개의 중요한 혁명이 있었다. 하나는 1776년에 있었던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혁명이요, 또 다른 혁명은 1789년에 있었던 프랑스 시민혁명이었다. 이 혁명으로 인해 유럽에서 자유 자본가( 자유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했고 이 자본의 투자처를 찾아서 서구 열강으로 식민지 사냥에 나서게 된다. ‘전 세계의 자본화’ 시도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자유 부르주아는 대 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로서 산업혁명이 정치혁명을 삼켜버렸다. 즉 이제는 정치 중심으로의 가치가 우선이 아니라 경제 이윤 가치가 우선이 된다. 초창기 유망 업종이었던 섬유 부문은 퇴조하고 석탄과 철도와 같은 중공업이 새로운 성장 분야로 부상하는 것도 이 때다. 농업도 공통적으로 공업을 기반으로 하는 세계경제에 종속되었다. 농업도 점차 자본주의화 되었다. 주된 농업 생산지가 유럽 농촌에서 후진국 농촌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뱅골의 인디고와 황마, 콜롬비아의 담배, 브라질의 커피, 이집트의 면화 등이 그러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의 대량 농업체계는 가격 변동에 따라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철도와 선박(증기선)에 의한 장거리 수송체계의 발달이 원거리 무역을 가능케 했으며 이는 도시로 나가서 임금 노동자층으로 전락해 버린 들 끊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1870년도만 하여도 유럽 세계는 여전히 농촌인구가 도시인구보다 많았다. 하지만 토지에 부과된 운명과 더불어 그 토지에 운명을 맡긴 자의 운명도 달라진다. 이민이 시작된 것이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농촌 출신이었다. 1851년부터 1880년까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의 수는 850만 명이다. 그러나 도시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이들이 곧장 공업인력으로 흡수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도시빈민이나, 비공식 부문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기업의 형태가 거대 기업 형으로 변하고 있었다. 19세기 전반기만 하여도 기업들의 대부분은 한 가족의 자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철도와 야금과 같이 거대 자본을 필요로 했던 분야는 독특한 자본조달 제도를 필요로 했다. 주식회사의 설립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조달에는 불가피하게 `은행이 관련되는데, 영국의 산업금융회사를 매개로 융자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증권거래소 또한 대단한 성황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대규모 자본의 동원은 은행이나 국가의 외자 유치 혹은 국가 자체의 투자를 통해 이루어졌는데 독일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화와 더불어 확대되어갔던 노동자들은 처음에 단일한 계급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했다. 과거에 불안정한 고용으로 노동자와 빈민이 뒤섞여 있었던 것에 반해, 점차 두 개의 구별되는 집단으로 분열되어갔다. 영국의 경우에는 두 집단을 투표권의 부여 여부로 판가름된다. 즉 지적인 장인들에 속한 상층 노동계급은 투표권을 부여받았고, 이른바 위험한 대중들로 규정된 도시빈민들은 투표권이 박탈되었던 것이다. 점차 노동자들의 상층부는 존경받는 노동자로서 노동귀족이 되어 갔는데, 이들이 노동조합의 중핵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들은 점차 빈민대중으로 전락해갔다. 1850년대의 경제적 호황은 이와 같은 부상하는 계층의 정치적 요구를 지배계급이 반영해주게 된다. 선거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선거의 결과는 일련의 정치적 동원기술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즉 대중 운동의 조직화, 대중정당의 조직화, 대중적 선전의 정치와 대중매체의 발견을 뜻한다. 정부와 지배계급들을 곤경에 빠지게 했던 것은 바로 1880년대와 그 후에 갑작스럽게 출현했던 국제적 대중적인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었다. 그 중에서 가장 혁명적인 세력은 프롤레타리아(도시 근로자 계급)였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가 동질적인 대중이 아니었다는 점, 심지어 한 나라 안에서도 동질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이데올르기(이념)가 통해서 점차 통일되어 갔다. 1913년 중부 독일의 선거구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88%가 사회민주당에 투표했다. 이는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을 위해 정치적인 소속감을 요구하고 있었음을 반영한 결과다. 그들은 기존의 종교 이데올르기에 대항해서 나름대로 반성직주의적인 현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추구했다. 장례까지 화장식으로 했다. 그들은 각종 조합을 만들기도 했는데, 1914년에 약 20만 명의 회원을 가진 독일노동자 성가대연합과 13만만 명의 회원을 가진 노동자들의 사이클 클럽과 노동자 우표수집 클럽과 토끼 기르는 노동자 모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를 따랐던 것은 그럴듯한 희망적인 세 가지 사항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현재의 체제 내에서는 예상되는 어떠한 발전도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상황(착취당함)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둘째로는, 자본주의 발전의 본성은 현재의 사회를 전복시키고 새롭고 더 나은 사회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셋째로는, 계급정당에서 조직화된 노동계급은 다가올 영광스러운 미래의 창조자이자 계승자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은 종교계가 제시하는 신의 계시와 유사한 것이었다. 이 혁명은 전의 세대의 두 혁명처럼 과격하고 폭력적이고 봉기적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전투적인 노동운동으로 자본주의 앞에서 빵 한두 조각은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구호는 이것이었다. “혁명적이면서도 혁명은 하지 않는 당”(독일 사회민주당의 카우츠키의 발언)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선거민주화는 국가의 지배자들이 회피하고자 했던 계급적 통일을 야기했다. 시민권의 확장을 위한 투쟁 자체는 불가피하게 노동자들로 하여금 계급적 연대라는 형태를 취하게 했고, 단일한 전국적 차원의 조직을 부여했다. 무엇보다도 국가는 계급을 통일시켰다. 어떠한 집단들이라도 특정한 국법의 제정과 실시를 선호하거나 반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을 추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정당들은 대중적인 기반을 획득하자마자 노동계급에 대해서만 배타적으로 더 신경을 써 줄 여유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동계급의 우선성과 대중정장으로서의 포용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점차 적당한 선에서 대중화 노선으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경향은 국가가 경제문제에 주도적으로 관여하게 됨으로서 자유 부르주아는 점차 퇴조하고 애국과 민족주의를 주창하는 새로운 부르주아가 자본주의 사회의 중간계층을 차지한 경향 때문이다. 민주화의 정치가 낳은 두 가지 산물 가운데 주요한 하나가 노동자 계급정당들의 등장이라면, 나머지 하나는 정치에서 민족주의의 등장이었다. 민족주의를 국가가 이념적으로 주창하므로서 정치적으로 좌파, 우파를 동일한 운동에서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민 온 자들은 대부분은 단순히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한 계급(빈민계급)에서 다른 계급(부르주아)을 내다보면서 온 것이다. 잃어버린 고향과 떠난 고향을 대체해서 국가는 새로운 고향, 새로운 조국의 품 안으로 그들을 감싸 안아서 유대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즉 민족이란 ‘상상’의 산물이다. 종래의 떠나온 사회 질서나 종교나 전통을 대신할 것으로 등장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국가의 새로운 시민종교가 되었다. 국가가 민족주의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다시 그것을 애국(愛國)주의자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통된 모국어가 필요했다. 엄마가 입으로 자식에게 교육시키는 시절은 지나갔고 국가가 공교육을 통해서 전체 대중을 하나의 이념(이데올르기)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었던데 여기에 동원된 것이 공교육제도와 강제 징집에 의한 군복무 규정이었다. 다민족 국가를 단일 민족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국가가 실시하는 교육 수준에 따라 사회로부터 부르주아로 규정받을 것인가 아니면 천민으로 규정받을 것인가가 분류되기 시작한다. 교육받은 인간들 전체는 차츰 단일한 언어와 민족체로 확산되어 있다. 따라서 민족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특권 단체가 둘이 생겨나게 되는데 하나는 이미 귀족 부르주아로 사는 자들에게는 자기들만 만의 언어를 통해서 특권적 직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요, 미처 국가교육을 높은 수준까지 따라가지 못한 빈민층들은 자기 국가로부터도 이방인으로 소외당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인종혐오주의자’들로부터 지독한 냉대를 받게 된다. 즉 값싼 외국인 노동자들의 수입을 반대하는 기존의 노동계급들의 압력이 그것이다. 이로서 민족성이란 단순한 상징적인 공동체 이상의 현실적인 인간관계의 연결망이다. 평 가 오늘날 흔히 구분 짓는 내 국가, 내 민족 개념은 전체 지구적인 경제틀인 ‘자본주의’라는 경제구조를 못 벗어난다. 따라서 진정 ‘나’의 국가, ‘나’의 민족이라는 것은 없다. 필리핀에 가서 원주민을 돕는 어떤 전직 상공부 박 차관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이라고 외치면서 남은 여생을 그들의 불편한 운명과 같이 하고 있다. 그런데 박 차관은 그들에게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농업방식으로 도입해서 가르친다. 좀 더 잘 살게 해 주기 위해서다. “이삭 하나라도 흘리지 마세요. 모두 돈입니다. 일하지 않고서도 돈도 없습니다!” (‘여름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KBS 인간시대 코너에서) 이로서 원주민들에게 보다 많은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려면 경제규모를 늘릴 수밖에 없다. 전통적인 농업 방식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하나는, 노예제 플랜테이션이요 두 번째로는 농노제 농장이요, 세 번째는 전통적 농민경제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자급자족 수준에 머물게 되고 날씨와 토지와 기후에 큰 취약점을 보인다. 시설 보완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 ‘국가’의 정책이 개입되면 보다 안정된 장기 경영을 위해 투자가 확대될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화된 농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활방식은 대대로 이어져온 그들의 생활방식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것이다. 사업에 망하면 졸지에 죄인 되고, 사업이 흥하면 졸지에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사는 세계, 누가 돈을 마다 하겠는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계속 돈이 들어오면 그것이 바로 신의 기적이요 축복으로 간주되는 오늘날 세상에서 “우리가 죄인입니다”고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될 것이다.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나를 사랑하면 하나를 미워하게 마련이다.”(마 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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