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50-히브리서3(강의정리)-2(끝)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50-히브리서3(강의정리)-2(끝)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 아브라함의 허리에는 레위지파가 !!
여기에 보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난 자라도' 라고 하는데, 여기서 '허리' 라는 것은 옛날에는 자식이 나올 때 보통 허리에서 나온다고 표현을 하는데, 그렇게 아브라함의 내부에는 레위인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인데, 이 야곱의 자식들이 12지파가 되는데, 그런데 이 12지파 가운데 레위인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복을 받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레위족속도 아브라함이 복을 받을 때 같이 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또 하나의 신비인데, 그야말로 환장할(?) 신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허리 안에 지금 칠곡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감히 들어있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말로만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복을 받은 자이고, 예수님은 복을 주시는 자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믿어지니 말이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나요? 물론 그것이 믿어지지 않으면 할 수 없고 말이다.
그러니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복을 주는 자는 없어서" 라고 하는, 즉 한번도 복을 받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당연히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기 힘으로 복을 쟁취해야 하기 때문에, 바쳐서 복을 받든지, 빌어서 복을 받든지, 협박을 해서 복을 받든지, 아무튼 그렇게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서 복을 받는 경우는 없으니 말이다.
◈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이유는?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이 누구에게 십일조를 드렸는가? 멜기세덱에게 주었는데, 그렇게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이유가, 그것은 멜기세덱에게 무엇을 바쳐서 복을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먼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그런 영생의 복을 베풀었기 때문에 그렇게 바쳤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복의 출처는 저 자신이 오직 멜기세덱의 공로입니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자기의 전리품 중에서 10분의 1을 바쳤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다전혀 자기 소유가 아니라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것이 곧 십일조의 의미인데, 단순히 전체의 10%가 아니고 말이다.
◈ 잠시 '십일조'의 의미에 대해서 !!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속해서 복을 받는다" 라는 증거로서 무슨 법을 주었는고 하니, '십일조' 라는 법을 주었다는 것이다. 레위지파에게 말이다. 그래서 이 레위지파는 십일조를 대제사장에게 내고, 또 대제사장은 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이 '십일조' 라는 법의 원천은 사실은 레위지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이 그냥 공짜로 복을 받았다고 하는 뜻에서, 그리고 계속해서 그런 관계가 유지된다고 하는 의미에서 바쳤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날 때 십일조를 바친 것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아직까지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 레위지파가 나중에 태어나게 되면, 백성들이 이 레위지파에게 십일조를 바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레위지파는 대제사장에 바치고, 이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런 모든 관계가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그 관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능했던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아직까지 태어나지도 않은 레위지파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 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우리도 이미 !!
지금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우리가 예수님 때 과연 태어났는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이 자기 몸을 바칠 때, 그것이 바로 그 훨씬 후대에 태어난 우리들을 위해서서 이미 예수님이 자기 몸을 바친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은 뭐라고 하는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때 사도바울은 이러한 십자가 근처에 있지도 않았고, 또한 전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이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그 행위 속에는 장차 있을 성도의 모든 것들이 이미 앞당겨서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를 들어서, 자동차를 타고 요금소를 통과하려고 돈을 내려고 하는데, 그 아가씨가 하는 말이 그냥 가리고 한다는 것이다. 이미 앞의 차가 계산을 했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냥 통과하면 되는데, 그런데도 자기가 기어이 요금을 내겠다고 우기는 것은 앞에서 이미 다 요금을 지불한 사람의 성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예수님을 모독하는 한국교회 !!
그러니 지금 한국교회가 바로 그 꼬라지인데, 십일조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고 난리를 친다는 말이다. 이미 예수님이 모두 이루셨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장사가 되고 수입이 짭짤하니, 예수님의 공로로 뭐고 아무런 의미가 없고, 일단 교회가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바로 주님의 복음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이다.
이 히브리서 7장에서 그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런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인간의 종교성이 발동을 거는데, 즉 "내 힘으로 내가 지켜야, 그렇게 내 힘으로 지킨 나로 인하여 내가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는, 그것 말고는 다른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대신해서 다 지켰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미안한 생각은 들지만, 아무튼 자기가 노력해서 자기가 지켰다고 하는 그 흔적을 마치 자기 몸의 지문이나 문신처럼, 그렇게 자기 몸에 간직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기의 노력의 흔적을 가지고 있어야, 그것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여길 수 있다는 말이다.
◈ 섬 무당이 사람을 잡는다 ??
그러니 지금 한국교회에서 전혀 믿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데, 그러면서도 신비적인 흉내를 내고 말이다. 우리 속담에 "섬 무당이 사람을 잡는다" 라는 진리 비슷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한국교회 목사들이 하고 있는 짓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심으로 이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는데, 그러니 우리는 더 이상 십일조든 무엇이든 더 드릴 필요가 없고, 그냥 감사만 드리면 되는 것인가요?
◈ 감사는, 그냥 생겨나는 것 !!
물론 그러한데, 그런데 감사는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생겨나는 것인데,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몸을 드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몸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도가 처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감사는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것이고 말이다.
이상이 히브리서 7장에 나오는 내막인데, 이런 내용이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상당히 어려운데, 하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기쁨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 7장 19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히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여기에 보면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라고 하는데, 이것은 율법을 아무도 지킬 수 없으니 율법을 포기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다 하셨다" 라는 것을 말을 바꾸면, "우리가 지키는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만들 수 없다" 라는, 그런 의미에서 율법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히브리서 7장 11절만 설명하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는데, 한번 찾아보자.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히 7:12)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
지금 이렇게 이 본문을 읽어보면 우리가 문자를 모르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 상당히 어려운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레위지파가 십일조를 드림으로 말미암아서 이미 아브라함부터 복을 받은 것이 증거가 되었는데, 지금 그것을 제가 설명을 했고 말이다.
◈ 만약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그런데 이렇게 십일조를 드림으로서 "만약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라는 문제가 또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이미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을 해서,"그렇다면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아무리 괜찮은 법을 주어도, 인간은 자기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자기가 구원이 되지 않는 줄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라는 말이다. 구원에 관해서도 자기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 새로운 지파인 '유다지파'의 등장 !!
그래서 이 7장 11절에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온전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율법을 주기는 했는데, 그러나 그만 실패했다. 그러니 이제는 다시 바꾸어야 하는데, 그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즉 멜기세덱의 원칙을 따르는 새로운 지파가 주어지게 된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 새로운 지파가 '유다지파' 라는 것이다.
◈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이 유다지파는 결코 제사를 지내는 지파가 아닌데, 그런데 이렇게 제사와 상관이 없는 지파에서 놀랍게도 대제사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인데,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그것이 16절에 나오는데,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히 7:16)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다시 말해서, 인간의 육체와 연관성이 있는 계명의 법을 쫓지 않는, 즉 인간의 행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법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법인고 하니, 인간이 도저히 지키지 못하는 신비의 법인데, 그것을 16절에서는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그 의미는 무엇인가?
◈ 어느 날 파이프가 하나 박혔는데 !!
예를 들어서, 어느 날 자기 집에 파이프가 하나 박혔는데, 그런데 그 파이프가 박힌 것만으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파이프를 통해서 뭔가가 콸콸 흘러들고 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바로 석유라는 말이다. 그러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는가? 석유가 그냥 들어오는데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제로 우리 자신에게 파이프가 박혀서 주님의 영생이 마구 흘러 들어온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시시한(?) 석유가 아니고 말이다. 그것도 전혀 우리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냥 일방적으로 우리의 몸에 박혀서, 그래서 그 파이프로 넘쳐서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옆에서는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발로 그 파이프를 마구 차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십일조나 율법을 온전히 지킬 것 같으면 그런 파이프가 박힐 필요가 없는데, 그런데 그것이 안 되니, 하늘에서 율법이 아닌 파이프가 새롭게 박혀서, 그 파이프를 통해서 영생이 흘러들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7장이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 목사님, 그것이 정말 현실이 맞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은데, 이미 알고 있다는 표정 같기도 하고 말이다. 아마 지금 여러분은 "목사님, 그것이 정말 현실이 맞습니까?" 라고 물어보고 싶은 표정들인데,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 현실이고, 또한 권총을 가지고 협박을 한다고 믿어질 내용도 아니고 말이다. 성경은 옛날에는 몰라도 지금과 같은 과학시대에는 구닥다리에 불과하다고 하면, 그것은 어쩔 수 없고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가 공부한 것도 다 사실인 줄로 압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에 대한 감사가 항상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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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어차피 믿는 것도 위에서 길을 열어주셔야 믿는 것이지요? 그러니 설령 우리가 이런 내용을 알아듣는다고 해도, 택한 백성이 아니라면 잔치집에 온 초대받지 못한 손님과 같은 것이 아닌가요?
물론 그러한데, 하지만 그런데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주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 문제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파이프를 영생을 공급받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본인만이 그것을 알 수 있고 말이다.
2009,01,20 오후 11시 30분에 마침.
오바마는 좋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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