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7-살전후,딤전(강의정리)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7-살전후,딤전(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47 -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서
05,12,1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성령님을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가?
오늘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공부하겠는데, 여기서는 "성령을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이 좋아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성령님을 인격체라고 하는데, 즉 어르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님을 수증기나 어떤 물체라고 이해를 한다면, 과연 개인이 가지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하냐는 말이다. 하지만 성령은 그렇게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하면서 "성령님은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은, 이미 신약성경 자체를 성령님이 인도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여기가 창세기이고 이쪽이 요한계시록이라고 한다면, 그 중간이 소위 역사라는 것인데, 그런데 이 역사가 뒤바뀌는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곧 십자가 사건이라는 말이다.
이 십자가 사건으로 인하여, 이미 지나간 것은 묵인해준 시대였고(?), 이제 앞으로 남은 것은 심판을 받는 심판의 역사인데, 이러한 심판의 시대를 누가 주도하는고 하니까, 성령께서 어떤 심판에 관여를 하셔서 구원이 될 자에게는 성령을 주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성령을 주지 않고, 그냥 심판에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논하라 !!
이번에 경대 철학시험에 무슨 문제가 나왔는고 하니까, 물론 입시시험이 아닌 재학생들이 치는 시험에 말이다.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논하라" 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 집에 있는 딸 진주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답안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먼저 사망에는 두 가지 사망이 있는데, 첫째 사망이 있고 둘째 사망이 있다고 했고, 그리고 생명에도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요한계시록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했다는 말이다.
이 철학과 교수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인데, 그래서 평소에도 진주하고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했는데, 유별난(?) 아버지를 둔 덕택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철학과 교수는 자기도 교회에 다녔지만, 설마 이 요한계시록에 이런 이야기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삶과 죽음에 대한 정말 제대로 된 정답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대부분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너무 새피하게(시시하게?) 본다고 할까요? 아무런 사람들은 이 성경의 깊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한다는 것이다.
◈ 성경은 너무나도 선명하기에 !!
성경은 이렇게 생명과 사망에 대해서 너무나도 명확하게 정의를 하고 했는데, 첫째 사망은 무엇인고 하니, 이 땅에서 꿈틀거리더라도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사망은 그런 사람들에 한에서 지옥의 유황불에서 영원한 저주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첫째 부활이라는 것은, 지금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둘째 부활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20장에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 그리고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 하나님은 요리사 ??
그러니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 인간은 무엇과도 같은고 하니까,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 또한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을 보여주는 하나의 재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식당에서 요리사가 음식재료를 가지고서 자기 마음에 맞는 요리를 만들 듯이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마치 요리사와 같아서, 우리 인간들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 요리를 만드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사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가고, 또한 어떤 사람들은 부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 성령이 오게 되면 생명을 !!
그렇다면 이렇게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인데, 그런데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죽었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즉 죽었기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첫째 부활에 참여된 사람은 이미 그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인데,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굉장히 강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 증거가 바로 성령인데, 지금 제가 성령을 이야기하려고 이런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이렇게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은 예수님의 생명인데,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진짜 생명을 간직하고, 이미 받아놓은 체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 이근호 극본, 우리교회 초등부 출연, '나사로야 나오너라!'
이번에 우리교회에서 초등부 아이들이 연극을 하는데 주제가 '나사로' 인데, 남자 3명과 여자 3명이 등장하는데, 물론 극본은 나연숙이 아닌 이근호이고 말이다. 분명히 이 나사로는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었는데 자꾸만 예수님은 그 앞에서 우긴다는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라고 말이다.
바로 이렇게 죽어도 산다는 것이 바로 부활인데, 그리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사로는 죽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돌무덤에 가서 돌을 치우고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하니, 나사로가 온 몸에 천이 감긴 채로 뒤뚱거리면서 나온다는 것이다.
◈ 성령이 오시면 성경책이 통 채로 !!
그런데 이것이 나사로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보편적으로 실제상황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령의 오심' 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성령이 오시게 되면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 나사로의 부활이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박 집사님, 정 집사님, 그리고 장 집사님의 이야기라는 것인데, 즉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야기라는 말이다. 성령을 받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것도 역시 '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또한 가롯유다의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것도 역시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나'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통 채로 '나'에게 들어오니 말이다.
그것은 '내'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나쁜 것도 '나'이고, 좋은 것도 '나'이고, 그렇게 성경 전체가 모두 다 '내' 속에 들어와서, '내'가 하나의 성경책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요구사항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렇게 만들어버린다는 말이다.
◈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다시 정리를 하자면, 성령님이 오시게 되면 우리는 성경책이 되는데, 그리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다 성경책에 있는 대로 되고 말이다.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로마서 8장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고 했는데, 바로 그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그러니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
다시 말해서, '죄' 라고 확정짓는 것이 없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이 죄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해서 지독하게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정죄함이 없다고 하는 의미도 우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죄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이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어야 정죄함이 없다고 의미도 동반해서 알게 된다는 말이다.
◈ 인간은 죄를 조절할 능력이 없어 !!
여기서 죄를 안다고 하는 것은 죄를 짓는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 왜냐하면 죄를 지을 권리가 우리에게 없으니 말이다. 그냥 죄가 나오는 것이지 말이다. 즉 죄를 짓고 말고 그렇게 조절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간단히 말하자면,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안 된다" 라고 할 수 있는데, 항상 인간은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경책에 있는 내용이 나오게 되어있고,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물론 그것도 성경책에 있는 내용인데,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이 무엇인지, 그것을 드러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계속해서 자기 안에서 퍼내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 나는 왜 계속해서 뭔가를 추구하는가?
이것을 좀 더 어렵게 이야기해보면, 제가 지금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은 철학을 하는 사람들도 해결하지 못했고 말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사람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하는데, 그런데 정작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고서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 '무엇'을 프로이트는 '이드' 라고 말했는데, 인간은 그렇게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르면서 추구한다는 것이다. 제가 "지금 박 집사님은 무엇을 추구하지요?" 라고 물으면, 지금 집사님이 뭔가를 추구하고 노리기는 노리는데, 아무튼 자기가 그 무엇을 추구하는 것이 맞가는 하지만, 그러나 정작 추구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신기한데, 지금 철학자들이 다른 것은 다 알지만(?), 그런데 무엇을 모르는고 하니까, 배운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간에, 즉 천재든지 바보든지 간에, 영구든 아인쉬타인이든 간에 전혀 상관이 없이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뭔가를 자꾸만 추구하는데, 그런데 무엇을 추구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즉 뭔가가 자꾸만 자기를 끌어당기는데, 도대체 무엇이 자기를 끌어당기는지 그 정체를 모른다는 것이다.
◈ 아니, 도박 속에 그 무엇이 !!
예를 들어서, 평소에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고스톱을 치다가 재미가 없어서 컴퓨터로 도박을 하고, 그것도 재미가 없어서 내기골프도 하고, 또한 해외로 원정도박도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하면, 그 사람은 뭐라고 하겠는가? 자기로 하여금 그렇게 도박에 당기도록 하는 것이 그 도박 안에 들어있는데,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박 속의 그 무엇인데, 그것을 'X' 라고 한다면, 수학에서는 이렇게 모를 때 미지의 것을 'X' 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미지의 것이 도박 속에서 잡아당기는데,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이 여자 안에 있어서 잡아당기고, 또 어떤 사람은 술 속에 있어서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 있어서 잡아당긴다는 말이다.
◈ 아니, 교회 안에도 'X'가 !!
그런 사람에게 가서 "지금 당신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의 설교는 바로 이단의 소리인데, 그런데 그런 이단에게 5천만 원을 냅니까?" 라고 하면서 말려도, 그 사람은 전혀 듣지도 않고서 거금 5천만 원을 낸다는 것이다. 부광교회에도 내고 성일교회에도 내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정작 본인들도 왜 그렇게 내는지는 모른다는 말이다.
여자들이 TV를 보면서 홈쇼핑을 하는데, 나중에는 아무리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도 그만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눈이 가고 자동으로 전화번호에 손이 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 불교에서도 해답을 내지 못하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하여금 그 아줌마들로 하여금 그렇게 쇼핑을 하도록 하는지 말이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아줌마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사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 지름신이 내려서 ??
아무튼 그렇게 시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냥 'X'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요즘은 이것을 '지름신'이 내려서 그렇다고 하기는 새로운 학설이 나왔기는 한데 말이다. (ㅋㅋ)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그렇게 무엇인가에 끌려가면서도 정작 누가 자기 인생을 그렇게 끌고 가는지, 그런 알 수 없는 괴물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문인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굴을 파는데 있어서, 계속해서 그냥 파서 나가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그렇게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파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어서 굴을 파세요 !!
지금 이것이 좀 어려운데, 아무튼 제가 하는 설명을 듣고서 나름대로 답변을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굴을 계속해서 파는데, 이렇게 'X' 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X'에 끌려서 계속해서 굴을 파는데, 그런데 이렇게 굴을 파는 사람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앞에 막혀있으니까 판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파는데, 물론 팔 때는 "나는 1M만 파고 더는 파지 않을 거야" 라고 하는데,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1M를 파고 나면, "이제 2M만 파고 더 안 팔게" 라고 하고 말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은 그 'X' 라는 것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수십, 수백M 뒤에 있어서 "계속해서 파야지. 그렇게 해서 나를 발견해야지. 나의 정체를 말이야. 나는 기다릴 거야. 계속해서 파. 그렇게 해서 내게로 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미지의 'X'가 항상 땡기기에 !!
그러한 암시와 같은 것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파 나가는데, 그것이 황우석 교수 같은 경우에는 과학이 되는데, 도박을 하는 인간은 도박이 되고, 또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업이 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매일같이 불사우나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사우나에서 미지의 'X' 라는 것이 자기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피부가 그만 다 벗겨지고 엉망이 되는데, 그래도 간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매일같이 저녁마다 빵을 먹어야 되고 말이다.
비록 이런 것들이 분야는 다들 다르지만, 그러나 뭔가가 땡기는 것은 동일한 것에서 땡긴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들은 교회에 미쳐서 교회를 확장하려고 난리를 피우고 말이다. 그렇게 모두들 미쳐있는데, 아무튼 땡기는 것은 공통적으로 땡긴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결국 자기 욕구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물론 프로이트나 라캉의 경우에는 그것을 인간의 욕구, 혹은 욕망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욕망 속에서 땡기는데, 그런데 그렇게 땡기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미지의 'X'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땡기는 것은 확실한데, 그런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 흥, 이것은 주지 않았지 !!
그런 땡기는 욕구가 있다는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옷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만 고무신을 바꿔 신고 다른 남자를 만나서 시집을 가버렸다고 한다면, 자기가 정말로 다 주었다고 하면 남은 것이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여자가 돌아서자마자 "흥, 이것은 주지 않았지" 라고 하는, 그런 자기 것이 또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일부러 남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퍼주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돌아서니 자기도 그만 열을 받아서 돌아섰는데, 그렇게 하니 또 남아있는 것이 있더라는 것이다. 자기 것이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어떤 힘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고 하면, 그렇게 열심히 하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일을 마치고 나면 그것은 과거가 되어서 연기처럼 그만 사라지고, 뭔가 새로운 것이 자기를 땡기고 있다는 것이다.
◈ 미지의 'X'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미지의 'X' 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것을 기독교나 불교를 포함해서 이 지구상의 모든 종교와 학문과 과학을 총 망라해서 동원을 해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과학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밤을 지새우면서 나선다는 것이다. 미친 듯이 말이다. 황우석 교수의 경우에도, 개를 복제하고 또 무엇을 복제하고, 결국에는 인간을 복제할 것인데, 그러나 결코 인간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도대체 미지의 'X' 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총동원이 되어서 그 정체를 밝히려고 하는데, 그것은 음흉한 미소만 머금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 "너희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나를 몰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철학적으로 그것을 '나' 라고 하면 안 되나요?
그러한 '나'는 여기에 이렇게 분명히 있는 것이고, 이 미지의 'X'가 바로 그 '나'를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이에르바흐가 "신의 나의 투사에 불과하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처럼, 그 '나'도 '나'의 상상에서 비추어져서 나온 것인데, 그러나 그것도 역시 이러한 미지의 'X'는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그 'X'가 하는 말이 "너는 박사학위를 따라' 라고 해서, 그래서 유학도 가고 열심히 공부해서 박사가 되었는데, 그런데 그 미지의 'X'는 또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최고의 과학자가 되어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질문 - 그것을 스스로 단절시킬 수는 없나요?
그것이 바로 불교인데, 하지만 중들이 머리를 빡빡 민다고 하는 것은 이 'X'가 마치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착각을 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전혀 번지수가 틀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치고 못살게 한다면, 즉 그 미지의 'X'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를 없애면 그 'X'도 없어진다고 했는데,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또 누가 더 많이 그렇게 자기 자신의 욕망을 끊었는지에 대해서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요즘은 돌아가신 성철스님이 그러한 다툼에서 대빵인데 말이다. 아무튼 불교는 자기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실패로 말이다.
◈ 이제 미지의 'X'에 대한 정체를 !!
이제 제가 해답을 제시하겠는데, 앞서서 제가 답이 없다고 했지만 말이다. 이것을 성경말씀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여기에 창세기가 있고, 십자가가 있고,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이렇게 있는데, 그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이 있고, 또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상대를 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께서 누구와 상대를 하는고 하니까, 악마와 상대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아닌 마귀와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창세기 3장에서 이미 인간이 범죄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아닌 뱀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즉 뱀에게 저주를 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서 여자에게 저주를 했고, 그 다음에 남자에게 저주를 했다는 것이다. 이 뱀은 기어다니도록 했고, 여자는 해산하는 고통을 맛보도록 했고, 또한 아담은 이마에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하고 말이다.
아까 사람들은 굴을 계속해서 판다고 했는데, 그렇게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기를 땡기기는 땡기는데, 하지만 누가 땡기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미지의 'X'에 대해서,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과 마귀뿐인데, 악마는 영적인 존재이기에 안다는 말이다.
◈ 인간의 본색이 바로 이 'X'에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모든 본색은 바로 이 'X'에 있는데, 그런데 정작 인간은 이 미지의 'X'에 접근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X'에 부단하게 접근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이런 'X'의 속성이 인간에게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미지의 'X'가 우리 인간을 보고 오라고 손을 부르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낚시줄을 던져서 우리 인간이 아가리를 벌리게 해서, 그리고는 낚시바늘을 물게 해서 그대로 잡아 낚아서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도박을 통해서 끌려가고, 어떤 사람은 과학을 통해서 끌려가고, 또한 어떤 사람은 목회를 통해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악마의 본성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이 악마의 본성이 마치 낚시바늘처럼 우리 아가리에 걸려서 꼼짝도 못하고 끌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악마가 당기면 당기는 대로 '쫙쫙' 우리 인간은 끌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미지의 'X'가 바로 악마라는 말이다.
◈ 요한계시록 - 성도가 할 것이 하나도 없어 !!
창세기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뱀과 이야기하고,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전쟁을 하는데, 특히 이 요한계시록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성도가 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움직이는 대로 그냥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하늘에 구름이 이동하는데 과연 우리가 할 것이 무엇인가? 선풍기를 틀면 방향이 바뀌는가? 뭉게구름이든, 조각구름이든 간에 구름이 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그냥 "이런, 또 비가 오겠네" 라고 하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이 구름아, 내일 우리가 놀러 가는데 오면 안 돼. 저리가"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마치 하늘의 구름과 구름의 충돌과도 같은데, 그래서 번개가 치고 비가 오고 한다는 것이다. 즉 하늘의 나라의 영적구름(?)인데, 그렇게 하늘에서 선과 악이 충돌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 지옥은 'X'를 위한 것인데, 딸린 자들도 함께 !!
그런데 지옥에는 원래 누가 들어가야 하는고 하니까,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뱀의 후손이 나오는데, 바로 이 뱀의 후손이, 즉 악마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니 악마를 위해서 이 지옥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미지의 'X'에 의해서 계속해서 이끌려 가는 인간들이 참여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미지의 'X'를 지옥에 집어넣으니 거기에 딸린 인간들도 함께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한 리스트가 요한계시록 21절에 나오는데, 8절을 한번 보자.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기에 보면,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이렇게 줄줄이 다 나오는데, 그러면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제가 군대에 가기 전에 대구역 앞 자갈마당(?)에 잠시 갔다 왔는데, 괜찮을까요? 행음하는 자는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 일시적인(?)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런 세계에 빠져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말이다.
◈ '지옥 리스트'의 특징은?
여기 이렇게 리스트에 있는 자들은, 어떤 개인의 특정한 행동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속성상 그런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데,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우상숭배와 행음과 거짓말을 하는데서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즉 마귀가 던진 낚시에 걸려든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마귀와 함께 땡기면 땡기는 대로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혀 끊어지지 않도록 그렇게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인간을 볼 때는, 그 인간은 항상 배후 세력에 잡혀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보아야 하는데, 즉 도저히 떨어질 수가 없는 아주 밀접한 관계로서 말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배후세력까지도 함께 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 지금부터 데살로니가전후서를 !!
이제부터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보겠는데, 이렇게 힘이 들어도 성경을 전체적으로 한번 훑어보고 나서 각 부분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절 이하를 한번 살펴보자.
(살후 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살후 2: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살후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살후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살후 2: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니 악마가 예수님께서 강림하기 이전까지 어떤 활동을 하는고 하니, 사람들을 자꾸만 유혹해서 그러한 악마의 유혹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기적과 능력을 베푼다는 말이다. 사람들을 꼬셔서 그대로 자기 밑에 두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렇게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1장 8절과 9절에 나오는데, 한번 살펴보자.
(살후 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살후 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지만 여기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그것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과 17절에 나오는데, 한번 살펴보자.
(살전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 눈에 보이는 교회가 복음을 방해하니 !!
바로 여기에 나오는 이 말씀을, 강원랜드의 카지노에서 도박에 열중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하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들은 지금 판돈을 걸어놓고 온통 거기에 몰입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대놓고 이러한 말씀을 이야기하면 말이다. 물론 대부분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쫓겨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하면, 그러면 그들은 대부분이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니, 목사가 교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데, 즉 "저 소리는 내가 주일학교에 다닐 때 들었는데", 혹은 "저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인데"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먼저 교회를 생각하고 또한 목사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결국은 이런 지상에 있는 교회와 목사의 존재 자체가 복음을 가리우는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곧바로 말씀을 말씀대로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한 단계를 더 거치면서 그만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손님,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
무슨 말인고 하니, 그렇게 카지노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하면, 놀라서 집으로 갈텐데 말이다. 그런데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십니다" 라고 하면, 그러한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기가 다녔던 교회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당이라고 하는 거대한 건물이, 또한 거기서 설교하는 목사가 그만 복음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교회는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면, 그런 소리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데올로기와 같은 것으로, 그런 무슨 코드처럼 여겨버리지,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교회가 이 세상에 없다고 하면, 그런 말씀만 생생하게 들려올 것인데, 그런데 교회라는 것이 있기에, 그런 것은 교회에 국한된 것으로 처리해버리고, 자기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진짜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면 기절초풍하겠지만 말이다. "아하, 이것이 교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정말 있는 일이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 데살로니가서에는 교회 이야기가 없어 !!
우리가 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보게 되면 이런 교회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데, 그러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악마와 복음과 사탄과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재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무슨 교회부흥이 있고 목회성공이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하나하나가 다 실제상황인데 말이다.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 또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등이 말이다.
이렇게 하면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대충 어느 정도는 뗐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일단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 이하의 말씀을 한번 보자,
(살전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살전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살전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여기 2절에 보면,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라고 하는데, 즉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주의 날이, 즉 마지막 심판의 날이 교회에만 임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한 특정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세상에 다 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4절에 보면,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라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성도는 바로 빛의 아들들이기에, 즉 어둠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8절에 보면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어둠에 속하지 말라 !!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어두움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하는데,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대낮에 뭐라고 하는고 하니, "어둠에 속하지 말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 환하고도 밝은 대낮인데, 그런데 주님은 어둠을 말씀하신다는 말이다. 즉 제 아무리 밝은 낮이라고 해도, 어둠이 물결처럼 흘러 다니며 활동하고 있음을 주님은 발견하셨다는 것이다.
(요 12:35)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두움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두움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바를 알지 못하느니라
(요 12: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예를 들어서, 여기 다라이(?)에 물이 가득 들어있는데, 여기에 염색약이나 물감을 풀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풀어지는 것이 보이는데, 그러한 것이 곧 어둠의 흐름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어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그것이 제대로 파악이 되어야 "어둠에 속하지 말라" 라는 말씀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빛인가? 어둠인가?
그러므로 이 세상은 이렇게 빛과 어두움, 그러한 두 가지 세계밖에 없는데, 즉 제3의 영역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사탄은 여전히 역사하고 있는데, 즉 계속해서 땡기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전도를 하는 것은 어떻게 되는가? 즉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어둠에 속하는가? 아니면 빛에 속하는가?" 라는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하는 것이 놀랍게도(?) 어둠에 속하는데, 왜냐하면 계속해서 땡기니까 말이다. 전도를 1명했으면 2명을 해야 되고, 또 2명을 했으면 3명을 해야 되고, 또 그렇게 3명을 했으면 4명을 해야 되고 말이다. 그러니 설교를 하는 것도 역시 어둠에 속하고, 또한 찬양을 하는 것도 어둠에 속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빛에 속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다만 우리는 그런 것을 파악할 뿐이라는 말이다.
* 질문 - 어둠에 속해 있는 자기 모습을 파악한다는 것인가요?
그런 의미가 아니고, 이러한 어둠에 속하게 되면 자꾸만 끌려가게 되는데, 왜냐하면 그쪽에서 자꾸만 당기기에 말이다. 즉 "저것을 안 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또 저것을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는데" 라고 하면서, 그렇게 두려움에 떨면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의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의 세계도 있는데, 그렇게 두 개의 세계가 있음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빛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둠에 속한 사람은 자기가 속한 어둠의 세계밖에 모르고 말이다.
* 질문 - 저희들이 부광교회에 나가지 않고 우리교회에 나가는 것도 역시 그러한가요?
물론 그것도 역시 어둠인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강의가 어렵다면 어려운데, 그래서 강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까 강의를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지만, 그러나 막상 자기 문제가 부딪쳐서 질문을 받게 되면 정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수학시간에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다 아는 것 같은데, 그런데 막상 자기가 시험을 치게 되어서 풀려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고 말이다. 그러니 결국 반복하는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 다시 정리해보면 !!
처음에 제가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뱀과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마지막 요한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은 뱀과 상대를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는 십자가가 있는데, 이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데살로니가전후서가 있어서, 여기에서 하는 말이 빛의 아들들이 따로 있고, 또 어둠의 아들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성령께서 이런 구별작업에 친히 나서는데, 그것이 곧 심판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제가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 아무렴 교회를 개혁해야지 !!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자기 혼자서 어둠에 속했기에 빛의 세계로 이동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고 설교하고 찬양을 했다면, 그리고 제대로 된 교회가 있다고 해서 옮기고 해도, 그것도 역시나 뱀에서 계속해서 나는 소리라는 말이다. 즉 뱀이 계속해서 "아무렴 교회를 개혁해야지. 더욱 열심히 개혁을 해서 완전한 교회가 되어야지" 라고 하면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일반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것이니, 골프나 스포츠에 미쳐서 날뛰는 것이나 모두가 똑같다는 것이다. 거기에 얽매여서 전혀 자유하지 못하고 꼼짝도 못한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목소리가 굵은(?) 미지의 'X' 하는 말이 "그것으로는 부족해. 좀 더 해야지. 그렇지" 라고 하면서 땡긴다는 것이다.
◈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 !!
특히 여자들의 경우에, 시집을 가기 전에는 직장생활을 할 때는 그래도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다가, 막상 시집을 가면 어떻게 되는가? 결혼을 해서 아이라도 하나 덜렁 낳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 이야기밖에 다른 것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북대화고 뭐고 간에, 그러한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엄마들이 이런 아이를 교육시키면서 상처를 많이 받는데, "내가 못난 남편을 만나서 아이들 공부도 제대로 못시키고, 이게 무슨 팔자고" 라고 한다는 말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미국과 캐나다로 가서 영어연수를 받는다고 하는데, 자기는 말레이시아도 못 보내고 말이다. 이런 생각이 아이가 크면 클수록 들게 되는데,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고 하니, 부모로서의 '책임감' 이라고 좋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책임감이 아닌, 미지의 'X'로부터 나오는 !!
하지만 그것은 부모의 책임감이 아니라 미지의 'X'로부터 나오는 음흉한 목소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미지의 'X'가 땡기기 때문에 부모들이 그렇게 자식교육을 시킨다고 난리를 친다는 말이다. 즉 태권도, 합기도, 바이올린, 웅변, 수학학원(?), 피아노(?) 등등, 온갖 것들이 다 생긴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것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부모는 그렇게 하면서도 불안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래서 제가 이렇게 수학학원을 해서 먹고사는데요?
그러한 어둠의 자식들 때문에 빛의 자녀들이 먹고 살아가는데, 왜냐하면 이런 어둠의 본질인 미지의 'X'는 모르는데, 그런데 그 'X' 주위에는 환상이 피어나는데, 환각의 구름이 말이다. 그래서 자기 아들이 박사학위를 따면 그것이 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말이다.
그리고 요즘은 장교로 군대에서 제대로 하고도, 마땅히 다른 할 일이 없어서 다시금 하사관 시험을 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미국에서도 그러한 일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리고 박사학위를 따더라도 다시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려고 시험을 치고 말이다.
◈ 미지의 'X'는 언제나 환상의 무지개 구름을 !!
아무튼 미지의 'X'는 환상과 환각으로 땡기고 있기 때문에 항상 아름다운 무지개 구름을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의 환상에 자기 자식을 집어넣게 되면, 그것이 일종의 층을 이루게 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 미지의 'X'는 태양과도 같아서, 점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자기 자신이 타버린다는 것이다.
왜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 보면, '이카루스' 라고 해서, 날개를 만들어준 사람의 말을 무시하고 너무 태양에 가까이 올라갔다가 그만 날개가 녹아서 아래로 떨어지는데, 얼마나 인간의 마음을 예리하게 지적을 했는지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이다. 즉 진실에 가까워지면 자기 자신이 파멸된다는 말이다.
◈ 진실에 가까워지면 자기 자신이 파멸 돼 !!
그래서 사람이 어릴 때부터 너무 정직하면, 그 사람은 분명히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물론 곧이곧대로 착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 정당성에 대한 핑계일 수 있고 말이다. 아무튼 어둠의 주위에는 언제나 환각과 환상이 피어나는데, 그런데 빛의 자녀들은 그것이 환상임을 안다는 것이다. 가보면 아무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것을 성경에는 '안개' 라고 하는데, 멀리서 보면 분명히 뭔가가 존재하는데, 그런데 가까이 가보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멀리서 보면 안개가 피어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름답게 말이다. 이렇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환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러니 그것이 모두가 일종의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신앙이 없이 행복한 가정은 없어 !!
제가 이전에도 여러 번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이 세상에서 신앙이 없이 행복한 가정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겉으로는 온 가족이 모여서 깔깔거리며 웃고 박장대소를 하면서 행복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무엇을 믿는 구석이 없이 행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 빛의 자녀들은, '행하자'가 아닌 '믿자' !!
그러니 빛의 자녀들은 무엇을 '행하자' 라는 것이 아니라, '믿자' 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믿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과 마귀의 전쟁에서 이미 우리는 예수님에게 속해서 첫째 부활은 했고, 둘째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결과를 그냥 믿는다는 말인데, 즉 그것이 자기 현실이고 운명임을 스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자기가 첫째 부활에 이미 속했음을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첫째 부활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은 'X'가 야기시키는 하나의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끌려가면 결국은 죽음밖에 다른 것은 없다는 말이다.
◈ 옛날부터 전해오는 ??
'로렐라이 언덕' 이라고 다들 알지 싶은데, 독일 라인강의 슬픈 전설이 스며들어 있는데 말이다. 노래하는 악마(?)의 그 노래소리에 홀려서,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정신을 잃어서 배가 암초에 부딪쳐서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는 전설이 말이다. 계속해서 그것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생 황진이가 그런 로렐라이 같은 존재인데,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홀렸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 미모와 지식과 섹시함(?)에 말이다. 그런데 유독 빠지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서경덕' 이라고 말이다. 제 아무리 고승이라고 해도 다 넘어갔는데 말이다. 서경덕이 빛을 보아서 그러했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ㅋㅋ)
그런 황진이의 미모에 앞서서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죽음을 보았다면, 결코 그러한 환상에 남자들이 빠지지 않았을 것인데, 사람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결국에는 늙을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하면 어둠의 기색을 감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제 아무리 화장을 떡칠을 하고 보톡스를 맞아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이상하게 작년에 입던 옷이 뭔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진실을 말해준다" 라는 말도 있는데, 그렇게 인간은 눈에 콩깍지가 씌어져서 환상 속에 빠져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들은 환상 속에서 !!
그런데 그러한 환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은 바로 이 성경말씀에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이 데살로니가전후에도 나오고 말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있고,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기적을 동원해서라도 천국에 오지 못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시 한번 살펴보겠는데, 데살로니가후서 2장 11절과 12절을 보자.
(살후 2: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살후 2: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도록 하시는데,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야 되고, 그렇게 해서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도저히 자력으로는 구원을 받을 길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 다만 전리품이 되었기에 !!
그렇게 인간에게 구원을 물 건너갔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셨기 때문에, 바로 그런 전쟁의 결과로서 '전리품'이 된 자들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되었고, 즉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결코 자기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믿어진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빛의 자녀인 증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빛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설교를 하고 전도를 하면서 살아가는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전도나 설교도 역시 어둠의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빛의 자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 어떤 일이라도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뿐이지, 자기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전도를 잘해도, 이렇게 강의를 하면서 돌아다녀도, 그런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아무리 착한 일만 하고 바르게 살아도, 폭력을 한번도 행세하지 않아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것을 아무리 총동원을 시켜도, 그런 선한 일 자체가 "계속해서 착해야지. 더 착해야지" 라고 하는 마귀의 음성에 끌려간 결과라는 것이다.
◈ 진주양, '윤리의 완성'과 '허무주의'에 대해서 쓰세요 !!
이번에 진주의 철학시험에 또 어떤 문제가 있었는고 하니까, "윤리의 완성이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그래서 진주가 뭐라고 답안지를 작성했는고 하니까, "인간들의 윤리에 무슨 완성이 있는가? 그러한 윤리가 한 짓거리가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발칙하고 도발적인 답안인가?
그리고 허무주의에 대한 문제는 뭐라고 답변을 했는고 하니, 허무주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소극적 허무주의에는 쇼팬하우어처럼 바바리 깃대를 세우고 기침을 하면서 나가지만, 적극적 허무주의에는 너무 허무해서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오히려 이 세상을 아주 적극적으로 살아간다고, 즉 "하면 된다. 하면 된다. 아 즐거워" 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허무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즐거운 일을 찾아내어야 한다고, 그렇게 답안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 사람은 사명감이 없으면 슬퍼진다 !!
지난 주일설교시간에 "사람은 사명감이 없으면 슬퍼진다" 라고 했는데, 아무튼 인간은 그렇게 무엇을 해야 즐거운지, 그것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은 무엇인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허무하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그렇게 즐겁게 살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니체와 같은 또 하나의 허무주의라는 것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경우에, 자기 집안에 어떤 치유하기 힘든 심각한 문제가 있다든지 하면, 그것을 극복하려고 유난히 쾌활하게 적극적으로 생활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의 그런 본래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말이다. 그것 말고는 사실 다른 방법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진주가 그렇게 시험을 치고는 걱정을 하는데, 너무 튀는(?) 답을 적어서 학점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말이다. 그래서 제가 출석만 제대로 했으면 학점은 나온다고 위로를 했는데, 실제로 교수들은 출석만 잘하면 학점을 대체로 다 준다는 것이다. 또 교양과목이고 하니 말이다. 사실상 그 정도 같으면 엄청 괜찮은 답안인데, 그렇지 않은가요?
* 질문 - 그런데 교수님이 그 답을 제대로 이해를 할지 궁금하네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 철학과 교수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는데, 물론 그 사람에게 예수는 하나의 윤리적 모델 케이스지만 말이다. 특히 철학을 전공한 교수들은 대부분아 예수를 그렇게 이해하는데, 즉 우리 인간도 열심히 노력하면 예수처럼 착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말이다.
◈ 천성적으로 성품이 착한 사람의 경우에 !!
그런데 이렇게 '착하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직까지 자기보다 착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러한데, 정말로 착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즉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품이 착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은 그런 사람을 흉내도 내기 힘든데, 성질이 급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타고난 유전을 70%, 후천적인 것을 30%로 본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착하다' 라는 기준도 역시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가요?
물론 그러한데, 그런데 그 기준으로 보아도 자기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휴지를 하나 줍더라도 우리는 보통 보기에 좀 지저분하고 또 옆에 휴지통이 있어야 주워서 버리는데,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없는 휴지도 찾아서 줍고, 또 그것을 버릴 곳에 없으면 자기 호주머니에 넣어서 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이 오르고 말이다.
그리고 같이 술을 마셔도 착한 사람이 있는데, 그래서 상대방이 하는 짓을 도저히 보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야, 너는 완전히 술이 좀 들어가니 개구만 개. 나는 이제 그만 집으로 갈란다" 라고 하면서, 그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는 것이다.
◈ 아하, 또 속았구나 !!
하지만 이런 착함에 대해서 인간은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미지의 'X'에 의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 착한 일을 하고 나서도 "아하, 이번에 내가 미지의 'X'에 게 속았구나"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빛의 자녀들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 질문 - 이 세상이 다양하기 때문에 미지의 'X'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다 미치는데, 그런데 그렇게 미치게 만드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가 카 레이싱을 하고 싶다면, 그 방면에 가서 줄을 서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줄이 얼마나 긴지, 즉 도사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 바둑세계를 하나 보더라도 !!
바둑세계를 하나 보더라도, 1등 이세돌, 2등 이창호, 3층 박영훈, 그렇게 줄이 엄청나게 길다는 것이다. 물론 다들 바둑에는 도사들이고 말이다. 아마 이근호는 3947등쯤 하지 싶은데 말이다. (ㅋㅋ) 인터넷에서 바둑을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새벽 2시나 3시에도 수 천명이 잠도 자지 않고 바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 어여쁜 마누라도 제쳐두고 !!
30대 초반에 갓 결혼한 남자도 직장을 같다와서 그 시간에 바둑을 두는데, 어여쁜 마누라가 옆에서 잠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서 잠을 자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두 눈이 벌겋게 되어서는 또 다시 직장에 나가고 말이다. 그래서 잠도 안 자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자기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게 바둑을 둔다고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경우에 정말이지 그렇게 하고 싶은 경우에 어떻게 하면 되는고 하니, 우리는 빛의 자녀들이기에 요령이 필요한데(?), 바둑을 두더라도 무조건 지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승리는 악마는 주는 달콤한 덫이니 말이다. 자꾸 지게 되면 결국 재미가 없어서 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자녀교육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녀교육은 자녀 몫인데, 아이들은 사물이 아니고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고집이 있어서, 아이들이 오히려 부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 질문 - 목사님의 경우에 진주를 어떻게 키웠는지요?
저는 조금은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너무 바빠서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 아내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했지 말이다. 한국교회에 우글우글 거리는 마귀들과 싸운다고 말이다. (ㅋㅋ) 아마도 제가 관심을 가졌다면 진주가 지금보다 더 못했지 싶은데 말이다. 왜냐하면, 제가 엄청 부담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말이다.
* 질문 - 원래 교육에서는 직접 가르치는 것보다 보여주는 효과가 다 크다고 하지 않나요?
아무튼 제가 보여준 것이라고는, 바로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인데, 지금 녹음이 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가 좀 그렇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일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래서 엉뚱한 짓을 한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되니 자식 일을 마치 부모 일처럼 여기는데, 그래서 자식이 고생 고생해서 번 돈을 아버지가 사업을 한답시고 다 꼴아 박고 말이다. 거기에다가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버리고 말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가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인데, 즉 아까도 말했지만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해도 교인들만 알면 되지 우리는 아니다" 라고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해도 교회당을 회상하면서 그냥 지나쳐버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전체를 우리가 한꺼번에 모두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알아서 구원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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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디모데전후서를 !!
이제 디모데전후서를 시작하겠는데, 이 디모데전후서는 놀랍게도 교회에 관한 것인데, 왜 놀라운가? 아까 제가 데살로니가전후서를 강의하면서 뭐라고 했는가? 거기에는 교회에 대해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 어, 디모데전후서에는 교회가 !!
여기게 대해서 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데살로니가전후서가 왜 교회에 대해 고려하지 않았는고 하니, 곧 주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무슨 교회가 필요하냐는 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그것은 자기가 잘못 생각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교회에 관해서 디모데전후서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주장인데, 제가 데살로니가전후서에 교회가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말이다.
◈ 목사님, 혹시 '바라바'를 아세요?
우리교회에 '권영대' 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분이 공부를 하면서 무엇이 궁금했는고 하니까, 자기가 생각하기에 '바라바'가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닌 것 같은데, 왜 목사님은 바라바를 언급할 때마다 살인강도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그 당시 군중들이 어리석고 바보라도 그렇지 어떻게 예수님보다 살인강도를 놓아주라고 하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는 아무래도 민족해방운동가 정도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아도 그런 내용들이 많고 말이다.
왜 그런 내용들이 인터넷에 많은고 하니까, 그것은 자유주의 사상이 많이 퍼져있으니 그러한데, 사실 이 자유주의 신학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 교회사 공부를 이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할 것인데, 물론 보수주의에 대해서도 하고 말이다.
◈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 !!
이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사람이 교회나 종교활동을 통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데, 하지만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의 숙제이고 예수님의 숙제이지 우리의 숙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죽더라도 알고 죽어야 하는데, 구원은 주님이 알아서 우리를 건져주는 것이지, 우리들이 구원을 받으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차라리 백두산에 올라가서 달을 따고 별을 따는 것이 쉬울지 모르는데, 그러니 우리 인간들이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부터 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