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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6-빌립보서,골로새서(강의정리)자유게시판골로새서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6-빌립보서,골로새서(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46 - 빌립보서, 골로새서

05,11,09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태양을 향해, 우주를 향해 !!

오늘은 빌립보서를 하겠는데, 먼저 1장 6절을 보자.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여기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라고 하는데, 이 빌립보서의 조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지요? 그런데 조금 전에 집사님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가을이 되면, 아이들이 선생님이고 공부에 대해서는 좀 멀어진다" 라고 말이다. 즉 마음이 그냥 싱숭생숭(?)하다는 것이다. 낙엽도 떨어지고 하니 마음가짐도 마구 풀리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렇게 인간들이 농땡이를 치든 말든 간에 이 새상은 오로지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자체가 하나의 원칙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 성경말씀은 사람의 활동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 즉 말씀자체의 능력으로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에 대해서, "태양님, 지금은 가을철인데 좀 쉬었다가 하지요?" 라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태양이 사람들이 소유물이 아닌데, 그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태양은 뜨고 진다는 말이다. 그것은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이제 말씀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로 !!

그런데 16세기를 지나서 17세기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이 태양이나 달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그래서 결국에는 인간이 로켓트를 타고 달나라에 가서 착륙하게 되는데, 그래서 "달아, 너는 내 것이다" 라고 하면서 깃발을 꼽아놓고 돌아온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산에 능선이 저렇게 길게 늘어서 있다고 하면, 그것은 멀리서 바라보면 물론 자기 것이 아닌데, 그런데 거기에 가서 열심히 개간을 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개간을 하면 그만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기 소유를 주장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늘의 태양의 경우에도, 그 이전까지는 태양도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에 의해서 뜨고 진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그 태양은 우리 인간들이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한 것을 전제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저 태양이 그렇게 움직인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 이제는 우주는 인간이 접수 ??

그런데 이제는 과학이 발달해서 태양이 있는 곳에 가게 되면, 그곳은 그야말로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주인이 없는 빈 산이라는 말인데, 즉 이제는 우리 인간이 손만 갖다 대면 모두가 다 자기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왜 동화에도 보면, 임금이 손만 갖다대면 모든 것이 다 황금으로 변하는 것이 있지 않는가? 결국 자기 딸까지 황금으로 변하고 말이다.

◈ 16세기 이후에 싹튼 근대주체의식 !!

이처럼 16세기 이후에 근대주체의식이 싹이 트게 되는데, 물론 지금은 그런 근대주체의식이라고 하면 별 것이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말지만, 하지만 이러한 근대주체의식에서 지금 우리의 사고방식이 모두 다 나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손만 대면 다 내 것이다" 라는 것인데, 심지어 남의 지갑이라도 말이다. 갑자기 현철의 '봉선화 연정'이 생각나는데, "손 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그대, 현숙이라(?) 부르리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손만 대면 다 내 것이다" 라는 것에 있어서, "내가 손을 댄다" 라는 원칙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손을 대면 모두가 진리이고, 그 외에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진리가 아니라는 의미는, 이 세상 만사는 자기가 손을 대는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말이다. 즉 무엇을 바라보는 인상이나 관점이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기분이 좋으면 세상도 기분이 좋은 것이고, 자기가 기분이 나쁘면 이 세상도 역시 나빠 보인다는 것이다. 자기가 기분이 좋으면 바닷가의 파도소리도 기분이 좋고, 그렇게 않으면 같은 파도소리라고 해도 기분 나쁜 소리로 들린다는 말이다. 자식도 자기 기분이 좋으면 보물이고, 기분이 나쁘면 무거운 짐이고 말이다. 그렇게 이 세상 모든 것이 자기가 느끼고 보는 것에 의해서 달라진다는 것이다.

◈ 이성의 시대, 의지의 시대, 감정의 시대 !!

그러한 것이 서양역사에 있어서 B.C. 4세기에서 약 A.D. 15세기까지인데, 즉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즉 자기가 이성으로 그렇게 따지는 것은 자기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인간 의지에 의해서, 즉 자기가 손을 대기만 한다면 자기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세기에서 오늘날까지는 인간의 감정에 의해서 지배가 되는데, 물론 모두가 조금은 복합적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오늘날의 시대에서는, 자기가 그렇게 느끼기만 하면 자기의 것이 되는, 그런 시대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길을 가는 아가씨가 예쁘다고 해서, 그렇게 자기 것으로 느낀다면 그것으로 자기 것이라는 말이다. 자기가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그렇게 자기 감정에 의해서 말이다. 그러니 TV에 나오는 어떤 탤런트가 자기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그냥 자기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려운 말로 '상생적 관계' 라고 하는데 말이다.

◈ 샤르트르의 즉자와 대자관계 !!

그것이 무슨 뜻인고 하니까, 다음은 샤르트르가 주장한 것인데, 즉자(卽自) 관계와 대자(對自) 관계가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즉자관계는 존재해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고, 그리고 이 대자관계는 상대방이 '나'를 뭐라고 불러줄 때, 그때 비로소 '내'가 된다고 하는 것인데, 즉 "자기야, 나 이뻐?" 라고 하는데, 그 남자가 "아니야, 호박이야" 라고 한다면, 그 여자는 예쁜 공주님이 아니라 그만 호박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친구를 그렇게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친구야, 반갑다" 라는 프로도 있는데 말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래서 친구가 그립다는 말이다. 그리고 친구의 좋은 점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칭찬해주고, 받아주고, 또 용서해준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기와 항상 놀아주고, 아무튼 "니, 참 잘한다" 라고 해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상대방이 없으면 자기 우주가, 즉 자기 세계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말을 알아주고, 자기의 몸짓을 알아주고, 그래서 자기에게 무엇이라고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자기 우주가 그만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아, 샤르트르 !!

샤르트르가 나타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 당시 프랑스 사회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특히 젊은 사람들이 완전히 그에게 '뽕' 하고 매료가 되고 빠져버렸는데, "아니, 세상이 이런 진리가 다 있는가? 왜 진작 가르쳐주지 않았는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그 이전까지는 뭐라고 했는고 하니, "나는 가만히 있어도 나인데, 그러니 주위에서 뭐라고 해도 그것을 내가 알아서 적당히 조절하고 이용하면, 나의 자신의 세계가 구축된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샤르트르는 그것이 아니라, "남이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나의 세계도 형성이 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 한 아이와 수학 선생님 !!

예를 들어서, 여기 한 아이가 있다고 하면, 그런데 그 아이와 어느 사람이 길에서 만났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얘야, 나는 수학학원을 한단다. 그러니 이제부터 네가 나에게 수학을 배우면, 나는 너의 선생님이 되고 너의 나의 학생이 된다" 라고 했을 때, 그 아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선생님이 되고 또한 학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만 싫다고 거부하고 가버린다면, 그야말로 선생님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학원으로 와서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때 길에서 만난 그 사람이 앉아 있어서, 그에게 수학을 배우기로 했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그 사람은 그 아이의 선생님이 되고 또 아이는 학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혼자서 수학 선생님이라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런 선생님은 없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너무 어렵게 이야기를 했나요? 그렇지 않지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이고, 적절한 예가 되었지 싶은데 말이다. 그런데 샤르트르 이전에는 무엇인고 하니, 다시 한번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 남자의 여자의 만남도 !!

이렇게 남자와 여자가 있다고 하면, 어떤 사람이 "니가 저 여자를 아내로 삼고 싶으면 이야기를 해라. '나는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소' 라고 말이다" 라고 말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런데 그 여자가 "그렇다면 당신이나 그렇게 하소. 나는 그렇게 하기 싫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면 그 남자는 하는 수 없이 "아하, 저 여자는 아니구나. 그러면 이제는 다른 여자를 찾아야지" 라고 하는데, 그래서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래서 드디어 마음에 드는 여자는 만나면 결혼을 하게 된다고, 물론 여자도 남자가 마음에 들어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샤르트르 이전에는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샤르트르 이후에는 무엇인고 하니, "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고 하면, 상대방이 "당신은 멋있는 남자야" 라고 하면, "그러면 결혼합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이전까지는 자기가 남편이라는 생각이 없었는데, 그런데 어떤 자기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비로소 가정이라는 새로운 우주가 자기가 의도한 바도 아닌데, 자기가 그만 포함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왕 어려운 것, 이것을 요약해서 말해보면,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그 무엇은 현재 자기 머리 속에는 자리잡고 있지 않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와서 접촉을 하게 되니 전혀 자기가 예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가 형성이 된다는 말이다.

◈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생긴 일 ??

확실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어느 결혼정보회사를 갔는데,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그 여자의 어머니는 친어머니가 아니고 세컨드이고, 또 직장 여성을 원했는데 그 직장이 정상적인 직장이 아니고, 그렇게 조건들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남자의 경우에는 전혀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저 여자의 복잡한 집안관계와 또 직장문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같이 맞벌이하면서 집도 사도 아이도 낳고 하는, 그런 간단한 것만 생각했는데 말이다. 만약에 수용을 하지 않으면 이혼을 해야 하니 할 수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되면서 자기가 예상하지도 못한 새로운 우주가 생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자기는 그러한 결혼의 미래를 생각한 것이 아닌데,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보니 자기가 원치도 않았던 그러한 세계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현실이 밀려들어와서, 그것이 하는 말이 "이게 너의 미래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혼을 하게 되면, 이혼을 했다는 자기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또 남게 되고 말이다.

◈ 사회문화결정론자 !! 구조주의 !!

그런데 이러한 샤르트르가 주장한, 자기가 원하지도 않은 우주가 자기에게 형성이 된다는 것이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면, "나의 우주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있다" 라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문화결정론자' 라고 하는데, 즉 '구조주의' 라는 말이다. 즉 그 당시 사회문화가 이미 결정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고 말이다.

◈ 여자를 하나 선택해도 !!

예를 들어서, 여자는 전혀 교육을 시키지 않는 나라가 있다고 하면, 그런데 거기서 어떤 여자 한 명이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도 유창하게 잘하고 그야말로 군계일학이 되었다고 하면, 보통 남자들이 그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쉽게 결혼하자고 대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하는 말이, "나는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아. 그냥 집에서 살림이니 잘하고 농사나 잘 지으면 그만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의 모든 여자들이 다 유학을 갔다오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한다고 하면, 결코 남자들이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얼마든지 대시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 여자는 영어는 잘해도 너무 잘난 척을 하고 몸매도 뚱뚱해. 어디 다른 여자 없나?"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여자들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회와, 모든 여자들이 다 유학을 갔다가 온 사회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사회에 이미 형성된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확정이 이미 되었기 때문에 눈 높이 같이 높아지든지, 아무튼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다. 선택이 폭이 또 달라진다는 것이다.

◈ 미래는 자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

이러한 것은 바로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무엇인고 하니, "나의 미래상은 결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서 내가 내 취향에 맞는 것을 하나 선택해서 뽑아서 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여자 분들은 잘 알겠지만, 배추가 한 포기에 2000원을 넘어갈 때 다들 김장을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폭락을 해서 배추가 한 포기에 500원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3000원씩 할 때는 농민들이 밤에 나가서 배추를 지키고 난리를 피웠는데, 도둑놈들이 훔쳐가니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배추 값이 그렇게 비쌀 때 팔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런데 값이 계속해서 오른다고 해서 그냥 두었다가 가격이 그렇게 오르지 않으니 한꺼번에 배추가 몰려서 나오니, 가격이 그렇게 폭락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무도 배추를 사지도 않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이것은 사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에는 자기가 잘못하면 자기가 손해를 보면 되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사회자체가 자기가 정보에 어둡게 되면, 그것 자체로서 자기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윤리와 도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다른 가치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 현대는 사회에 개인에게 가치를 강요 !!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과거에는 자기 행동여하에 따라서 자기 가치를 만들었는데, 그런데 이제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런 자기 행동여부에 상관없이, 이제는 사회가 개개인에게 어떤 가치를 강요하는 시대에 우리가 놓여있다는 것이다. 사회가 말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동창생을 만나서 "야야, 니는 요즘 몇 평짜리에 아파트에 사노? 뭐라고, 국민주택에 산다고? 아직도 그 모양이가?" 라고 한다면, 그런데 집에 와서 이부자리에 누워있으니, "도대체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닌데, 똑같이 사업을 해도 누구는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만 노숙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사회의 구조상 성공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 몇 배로 실패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말이다.

◈ 이제는 일을 하면 할수록 !!

과거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성실해라. 그러면 성공하고 돈을 번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근면하고 성실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는 어디 성실하지 않아서 망했는가?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새빠지게(?) 일을 해도 망하는데 말이다. 물론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공장에서 16시간 이상을 생산하면 망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일을 하면 할수록 망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 사회 문화적 현상들로 인해서 자기도 어쩔 수 없어지는데, 하지만 그런 현상들을 만드는 것도 역시 인간이 아닌가요?

그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최근의 주장인데, 물론 처음에는 인간인 줄 알고 그렇게 연구를 해보니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회의 구조인데, 물론 그러한 사회구조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면 바꾸면 되는데, 그래서 이렇게 부산에서 아세안 정상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면서 그렇게 난리법석을 피운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모여서 회의를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서 석유가 나올 지, 또 어디서 엄청난 산불이 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런 시대는 '불확실성의 시대' 라고 해서,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서 그때그때 적응할 수밖에 없는 시대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사회 문화적 구조가 불확실성으로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 유비쿼터스 ?? 포트폴리오 ??

그러니 지금은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데, 이것을 '유비쿼터스' 라고 하는데, 이것을 잡으려면 무차별적으로 벌려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업을 할 때는 '포트폴리오' 라고 하는데, 그것은 패션개념으로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놓고 그 중에서 하나가 히트를 치면 다른 것은 다 손해가 보상이 된다는 말이다. 지금 'IT' 산업도 그렇고 다 이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공직자가 좋다는 것인데, 토요일도 놀면서 월급을 다 받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 자영업과 같은 것을 하게 되면, 학원을 하든 식당을 하든 간에 말이다. 자기가 그렇게 고생을 해서 학생들을 모아놓았는데, 옆에서 더 큰 학원이 생기면 우르르 다 몰려가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특히 목욕탕 같은 경우에는 옆에 더 크고 시설이 좋은 사우나가 생기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말이다.

◈ 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하더라도 !!

그래서 식당 같은 경우에도, 조금 돈을 벌었다고 해도 손님들의 새로운 취향에 맞추다보니 음식도 그렇지만 가게 인테리어를 한다고 벌었던 돈을 다 써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길거리에서 붕어빵 장사를 해도, 잉어빵이 나왔다가, 금방 국화빵이 나왔다가, 그야말로 정신을 못 차리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횟집을 하다가 패브리오 때문에 치킨 집으로 바꾸었는데, 그만 조류독감이 와서 망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전에 안 되던 횟집은 또 잘되고 말이다. 또 소와 돼지가 돈이 된다고 해도, 자기가 시작하면 값이 폭락하고 말이다. 그래서 퇴직금마저도 다 날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은 인간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는 말이다. (이것은 머피의 법칙 같은데?)

◈ 그러나 이제 현대는 자기 것은 없고 !!

아까 제가 이러한 모든 것이 근대주체사상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이 주체사상을 이야기하다가 치킨 집까지 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태양은 누구 것이라고 했는가? 그야말로 무주공산인데, 그러니 자기가 손을 대면 자기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나'가 관여해서 무조건 자기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그동안은 그것이 진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발전을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가? 그 무엇이라도 자기 것은 전혀 없고, 이제는 손을 대게 되면 아주 데인저러스하고, 하루하루가 위험천만한 지경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우리, 혹시 뭔가를 착각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원인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현대 철학자들은 주장하기를, 그것은 인간이 그동안 뭔가를 착각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오늘 우리가 빌립보서를 공부하는데, 이 빌립보서 1장 6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처음에 보려고 하다가 말았는데 말이다.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그분이 초지일관 그대로 끝까지 !!

여기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전혀 변동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즉 착한 일을 시작하신 그분이 우리들 속에 마치 심지처럼 박혀있어서 초지일관 그대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21절에 보면 "죽은 것도 유익함이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사도바울에게는 오히려 죽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다. 이것은 결단코 찡찡거리거나 울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주 평범하고 객관적으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내 속에 뭔가 일을 시작했으니, 죽는 것이 더 나을 걸"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있는 그분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반드시 모든 일을 다 이루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자기가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혼란에 같이 휩싸일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아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그냥 산 속에서 들어가면 도를 닦으면서 살면 안 되나요?

집사님이 이야기하는 산 속에 들어가는 것과, 사도바울이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사도바울이 하는 말은, 그렇게 할 필요조차도 없이 지금 자기는 기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4장 4절에 보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시민권은 이미 하늘에 있으니 말이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아무리 궁핍에 처하고 형편이 어려워져도 자족하기를 배웠는데, 즉 먹고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그분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

그러니 이것은 바로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데, 즉 이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전혀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서 시작하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니 말이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 이제 주체가 바뀌니 !!

이것은 바로 '주체'가 바뀐다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 안에 계시는 분을 자기와 결부시키지 말고, 그냥 "예, 제가 졌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안에 계시는 분이 자기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기 안에 계시는 그분이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도 마찬가지인데, 과거 중세시대를 살든지 현대를 살든지 말이다.

그렇다면 중세시대에는 이 성경말씀을 어떻게 보았는가? 그 당시에는 성경말씀을, 자기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쪽으로 다시 재조립을(?)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항상 기뻐하라" 라고 하면, 항상 그렇게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짓인데 말이다.

◈ 중세시대에 최초로 사막 수도원이 !!

지금 우리교회에서 제가 중세 교회사를 강의하고 있는데, 그것을 하면서 느낀 점이 무엇인고 하니까, 사도바울이 이렇게 빌립보서에서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또 항상 기뻐하라고 하니까,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고 하니,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사막에 수도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로 생긴 수도원이 바로 이 사막 수도원인데 말이다.

이러한 사막 수도원이 무엇인고 하니까, 아까 집사님이 산에 들어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처럼, 이들은 사막에 가서 그냥 도만 닦으면서 살다가 때가 되면 그냥 그대로 죽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사막은 우리에게는 산과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견디면, 어지간한 것은 다 이겨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왜 흔히들 남자들이 군대에 갔다오면 이 세상에서 웬만한 것은 모두 견딜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것은 전혀 여성들의 착각이라는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군대는 군대이고, 또 사회는 역시 사회라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한번 된통 고생했다고 해서, 다음에 오는 고생을 제대로 견디고 하는 그런 면역력과 같은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은 언제나 유비쿼터스 !!

인간은 언제나 유비쿼터스인데,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적응을(?) 하는데, 그래서 제 아무리 용감하고 정의롭다고 해도, 회사에서 월급을 몇 푼을 더 주면 그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돈을 밝히지 않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를 하더라도, 손님이 팁을 주면 마음 속 깊숙이 감사하는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성경말씀이 그대로 자기들에게 전이(轉移)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즉 사도바울처럼 그렇게 살기 위해서 중세시대에는 방법론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론에는 철학적이고 여러 가지 신비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금식' 이라는 것인데, 그렇게 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다는 것이다.

◈ 멋있는 남자, 쯔빙글리 ??

오늘 오후 7시에 강의할 내용이지만, 바로 이런 중세의 금식에 대해서 공격한 사람이 바로 '쯔빙글리' 라는 양반인데, 아주 멋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루터가 유명하지 이 쯔빙글리는 별로인데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진짜 개혁가는 바로 이 사람인데, 사람들이 고난주일이라고 금식을 하니 자기는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그야말로 사형을 당할 짓을 일부러 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주로 스위스의 쮜리히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지금 금식이라고? 웃기고 있네. 아니, 세상에 날짜를 정해서 집단적으로 다같이 하는 그런 금식이 성경에 도대체 어디 있는가? 그것은 마치 바리새인들이 금식을 하면서, '우리들은 죄인이다' 라고 하는 것과도 같다" 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과격한 주장인가? 그리고 계속해서 주장하기를, "성경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되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능력으로는 제 아무리 해도 그것은 흉내를 내는 것에 불과하고, 그러니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코 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 이 도둑놈들아, 이것이 과연 교회인가 !!

이러한 그의 주장은 바로 기존 교회에 대한 전적인 부정인데, 즉 "지금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그의 제자들 중에서는, 그의 말을 듣고 공감을 해서 실제로 교회와 수도원들을 때려부수어 버린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들도 나름대로는 과격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은 훨씬 더 심했다는 것이다. "이런 도둑놈들아, 너희가 주교이고 신부이고, 이것이 과연 교회인가? 쯔빙글리와 칼빈과 루터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봐"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말썽이 생기자, 교회에서 실제로 군인들을 동원해서 개혁주의자들을 그만 처단하려고 했고, 정말로 죽은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누가 주체인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요?

물론 그러한데, 주께서 다 하신다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는, 그러한 주님을 대행해서 자기가 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고 성질인데, 그러니 자기의 성질을 정당화하면 정말이지 곤란하다는 것이다.

◈ 왜 인간은 죽도록 사랑하고, 또 미워하는가?

아까 말한 것을 다시 해보면, 사람은 자기 세계를 어떻게 구성한다고 했는가? '타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제가 좋은 말로 친구나 배우자로 이야기했는데,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이 있다는 것이다. 원수가 말이다. 그렇게 적이 있을 때, 그 적을 공격함으로 자기 세계가 형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으라고 누구를 좋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죽으라고 누구를 미워하는 것도 역시 문제라는 말이다.

◈ 혹시 '도망자'를 아시나요?

혹시 '도망자' 라는 '미드'를 알아요? 여기서 미드는 미국 드라마의 준말인데, 어떤 형사가 그야말로 어느 한 사람을 죽으라고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켐밸' 이라는 의사이지 싶은데, 마치 자기의 원수처럼 말이다. 레미제라블, 즉 쟝발장에도 그런 형사가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화성의 연쇄살인사건이 있는데, 아직도 현상금을 노리는 추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곧 자기의 미래이고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타인에 대한 집착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그것은 곧 자기 집착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말이다. 어느 누구를 집요하게 좋아한다든지, 집요하게 싫어하는 것은, 정말이지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고 혹은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즉 그러한 타인이 없다고 하면 자기의 세계가 그만 형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여보, 보고 싶어요 !!

지난번이 우리 집에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어머님이 몇 달을 붕 떠서 계시는데, 마음을 잡지 못하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세계가 그만 날아가 버렸기에 그러한데, 그래서 자식은 죽으면 땅이 아니라 자기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어머님은 자식이 죽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무튼 남편이라는 타인을 통해서 자기 세계가 형성되었는데, 그러니 남편이 없어지니 그만 남편의 세계가 아니라 자기 세계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인 하나님 말씀은 그 자체가 결코 우리들의 소유물이 아닌데, 태양이나 달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오히려 그 말씀이 우리를 소유하고 말씀의 원칙대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강조했는데,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듣고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그것을 자기 인생으로, 즉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자기 쪽에서 마중을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큰 문제라는 말이다.

◈ 빌립보서가 다가와서 !!

오늘 우리가 이렇게 빌립보서를 공부하고 있으면, 그러면 우리가 빌립보서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이 빌립보서가 우리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두 알아서 관리를 하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말씀을 관리해서 우리를 그 말씀 속으로 집어넣는데,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인간들은 그런 믿음이 전혀 없으니까, 자기가 말씀을 마중 나가서, 그렇게 해서 말씀이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자기가 달라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간에서 둘이 그만 삐뚤어지고 마는데, 인간과 말씀이 말이다.

그래서 서로가 마찰을 일으키고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결국 어떻게 되는고 하니, "하나님 아버지, 제가 말씀대로 살려고 했는데,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저도 이제 완전히 지쳤는데, 그래서 후퇴를 하겠습니다. 도저히 말씀대로 살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

그러니 인간은 말씀에 다가가든지 도망을 치든지 둘 중에 하나인데,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가만히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우왕좌왕하니 모세가 뭐라고 했는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또 여호사밧 왕이 모압과 암몬을 칠 때도 그렇게 했고 말이다. 야하시엘이 뭐라고 하는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가로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대하 20:16) 내일 너희는 마주 내려가라 저희가 시스 고개로 말미암아 올라오리니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만나려니와
(대하 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그러니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나타날 때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항상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러나 우리들은 그냥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거나 아니면 뒤로 물러난다는 것이다. 즉 무관심하게(?) 도망쳐 버린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러면 목사님, 도대체 가만히 있다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라고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성경말씀도 보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그냥 하루종일 자기 일만 하는 되는 것인가? 아니면 마네킹처럼 그렇게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하는가?

◈ 그러면 '가만히 있는' 것이란?

여기서 제가 '가만히 있는' 케이스를 하나 제시하겠는데, 우리가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뜨면 어떻게 되는가? 햇빛이 마구 들어온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은 누구가 주는 것인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신 햇빛이니 말이다.

그러니 가만히 있는 모델이 어떤 경우인고 하니,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임이 풍성하게 느껴질 때, 그것이 바로 가만히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다 말이다. 즉 "저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이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또한 요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시계도, 책걸상도, 녹음기도 모두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의 심장, 간, 대장, 십이지장 등등, 이런 것도 모두 다 주님이 주셨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가만히 있는 모습인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 나는 지금 어디에 들어있는가?

그렇게 가만히 있는 있는 것을 두고 성경에서는 "어디 어디 안" 이라고 하는데, 즉 영어로는 전치사 'IN'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어디 어디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가만히 있게 되면,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으로 여겨지는데, 즉 자기가 주님의 은총 안에 놓여있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가만히 있는 것이고, 은혜의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로마서 1장에 보면, 인간들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자기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성령을 받지 않은 인간들이 말이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자기 주위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여겼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이다. 시편 23편에도 나오듯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주님을 찬미한다는 것이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그러한 놀라운 은혜를 받고 있으면서도 자기 세계를 구축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화살표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쪽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즉 "내가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향상이 되지? 어떻게 하면 칭찬을 받지? 어떻게 하면 착하게 되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 로마서 1장의 쇼킹, '내어버려두사' !!

그렇게 안으로 모일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까, 그것이 로마서 1장에 나오는데, 그야말로 무지무지하게 무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것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는데, 이렇게 뜸을 들이지 궁금하지요? 그것이 바로 '내어버려두사' 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것은 정말이지 무서운 말씀인데, '내어버려두사' 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에 의해서 내어버려둠을 당하면, 참으로 그 사람은 자기 인생에서 모든 파멸과 저주를 한꺼번에 몽땅 다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어버려두사'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야말로 술을 만땅 마시고 하나님을 마구 욕하고. 즉 "하나님이 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라고 했을 때, 그때 어떠한 형태로든지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때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 삼각산 기도원의 바람소리는 무서버 ??

마치 산 속에 있는 기도원에 가서 소나무를 하나 붙들고 "하나님이여, 살아계심을 보여주세요" 라고 했을 때 그냥 바람소리만 '휭' 하고 나는 것과도 같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고함을 치는 자기만 달랑 남았을 때, 바로 그때 무서움과 두려움과 적막감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자기가 믿었던 하나님은, 사실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혼자 발광한 것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 안에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 1장에 나오는 '내어버려두사' 라는 상태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게 되는데, 정말이지 야곱에게 그 순간은 다행스럽고 행복한 순간이란 말이다. 그래서 야곱은 그러한 자기를 두고 '복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서 살려달라고 씨름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것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 니 마음대로 하세요 !!

그런데 "기도? 미쳤나 내가 기도를 하게. 교회? 미쳤나 내가 교회에 나가게. 성경? 미쳤나 내가 성경을 보게. 만약에 신이 있다면 나는 마구 약을 올릴 거야.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갈 거야. 아니라면 청개구리처럼 정반대로 할거야" 라고 한다면, 그러면 내어버려 두게 되는데, 즉 "니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어버려두사' 라는 상태라는 말이다.

여기서 로마서 1장을 보겠는데, 28절 이하를 보자.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 극도의 공포심이 !!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들을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는데, 그래서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등등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데, 이것만큼 무섭고 싸늘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마치 아이들이, 자기가 시험을 못 치고 왔을 때, 엄마가 야단을 치면 그대로 야단을 맞으면서 울어도 공포나 두려움에 휩싸이지는 않는데, 그런데 아이가 시험을 제 아무리 엉망으로 쳐도 아무런 반응도 없다면, 학교에 결석을 하든지, 친구들과 싸워서 코피가 나든지 말이다.

그런데 엄마가 그냥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하면, "니가 알아서 해라. 나는 이제부터는 모른다" 라고 하고 전혀 말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이는 그만 겁에 질려서 울지도 않고 엄마에게 가서 "엄마, 와 이라노? 정신 차려라" 라고 하면서 들들 떨면서 극도의 공포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에게 잔소리라도 하면 사랑한다는 의미인데, 그런데 그런 잔소리도 하지 않고 남편이 무슨 짓을 해도 가만히 있다고 하면, 그것은 뭔가가 엄청나게 수상하다는 것이다. 작고 연약한 체구의 여성이 가장 무서울 때가 이렇게 말을 하지 않을 때인데, 차라리 "이 웬수야, 이혼하자" 라고 할 때가 마음이 편하지 말이다.

◈ 내어버려 둠을 당한 그것이 곧 지옥 !!

이렇게 내어버려 둔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 해도 공포가 오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냥 방치할 때, 그때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 아래에서 버림받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지옥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지옥의 특징은, 하나님이 주시는 싸늘함, 차가움을 영원토록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버림을 받은 불신자에게도 아침햇살은 따뜻하겠지만, 그러나 불신자에게는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죽으면 그것마저도 거두어가고, 그야말로 싸늘함만이 남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지옥은 그냥 내버려둠의 상태인데, 그야말로 싸늘하고 어둡고 춥다는 것이다.

어떤 아버지의 경우에, 예수님을 믿으라고 그렇게 아들이 이야기하고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을 때가 좋았지, 이제는 그런 아들도 없고 마누라도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리고 자기 주위에 있던 목사나 교인들도 다 보이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외롭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는 술이라도 있어서 달래곤 했는데, 그런데 지옥에 가면 술도 없다는 것이다. 물도 없는데 술이 있겠는가? 물론 화투도 없고, 경마장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전혀 없고, 완전히 홀로 내어버려 둠을 당할 때, 그것만큼 저주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성도는 왜 기뻐할 수밖에 없는가?

그래서 빌립보서 4장 4절에서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것으로 빌립보서는 마치려고 하는데, 왜 "항상 기뻐하라" 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겠지요? 비록 환난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도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일종임을 느끼라는 것이다.

(빌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서 빌립보서 1장 28절을 한번 보자.

(빌 1: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 한쪽은 멸망의 빙거로, 또 한쪽은 구원의 빙거로 !!

여기에서 '빙거(憑據)'는 증거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따뜻한 햇살을 받듯이 늘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그것이 가만히 있는 것인데, 그런 은혜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이 세상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주지 않으니, 그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믿지 않고 거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그리고 그런 똑같은 일로 인해서 오히려 욕을 얻는 먹는 자들이 생기는데, 그러한 자들에게는 그것이 곧 구원의 증거라는 것이다. 동일한 사건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이것도 역시 기뻐할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29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여기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따뜻한 햇빛을 주신 것으로 여기면 되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을 믿고 또한 그러한 주님을 인하여 고난을 함께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주님을 위해서 축복을 받는 것도 다 한때의 축복인 줄 알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오죽 했으면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했겠는가? 그것은 이 세상이 힘들고 살기 싫어서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그러니 고난을 받는 것도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사나죽으나 주의 것이고, 항상 기뻐하게 되고, 그래서 사도바울은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이라도 주님의 이름을 증거하는데 있어서 방해거리는 없다는 말이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며, 어떻게 살았는가?" 라는 것에 대해서 나오는데, 5절 이하를 한번 살펴보자.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이 마음을 품으라 !!

여기에서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는고 하는데,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지만, 자기를 포기하고 종으로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서,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바로 그러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경우에, 바로 그러한 분이 우리 속에서 자신의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이 겁이 나고 두려우냐는 말이다. 즉 자기에는 죽는 것도 저주도 아니고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미 주께서 일을 시작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빌립보서에서 사도바울이 하는 말이, 예수 안에 가만히 있는 사람은 죽음조차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는 것이다. 물론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말이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이 힘이 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우리들 속에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끝을 내는 것도 다 그분이 알아서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걱정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

아까 근대철학의 주체사상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것이 오늘날 인간들이 하나님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나온 주장들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없으니,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말이다. 사람은 항상 그러한데, 하나님은 없다고,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도 없다고 하는 조건아래에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고 해서 형성된 철학이 바로 오늘날 21세기 철학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말이다.

그렇다면 21세기 교회는 어떠하겠는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고 여기고 괜찮은 사람이 되자" 라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주장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나 엉터리인데, 왜 그런고 하니, 이것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하나님에게로 다가서려고 하니 그렇다는 말이다.

마치 성경대로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면서, 뭔가 자기들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과거 스콜라철학이고, 중세철학이었는데, 물론 그것이 오늘날 신학에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다.

◈ 하나님에게 다가서든지, 물러나든지, 가만히 있는 인간은 없어 !!

그러므로 인간들은 가만히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아니라, 불신자들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도망을 치든지, 아니면 기존 교회처럼 하나님처럼 되려고 다가서든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둘 다 모두가 엉터리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비해서 빌립보서는 무엇인고 하니까, "너희들에게 그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 언제나 그것이 주님께서 다 이유가 있어서 하시는 일이니, 그것으로 인해서 기뻐하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 빌립보서 3장에 보면,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흉내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단 6절에서 9절까지 한번 살펴보자.

(빌 3: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빌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 나는 흠이 없는 자이다 ??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사도바울은 자기도 그동안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그렇게 율법으로 엄청나게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 6절에 나오듯이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모든 것들을 다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7절에 보면,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라고 하는데, 즉 과거에 자기가 좋다고 여기던 모든 것을 이제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8절에서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라고 하는데, 즉 이제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난 하나님의 의로서 살아간다고 한다는 것이다.

◈ 율법 외의 한 의(義) !!

그러니 하나님의 의를 이야기할 때는, 이렇게 율법에서 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을 먼저 언급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율법으로 난 의가 아닌 의가 무엇인가? 성경말씀을 지켜서 난 의가 아닌 의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율법 외의 한 의' 인데, 즉 율법의 의는 율법을 지킨 자에게만 주어지는 의이고, 그러나 율법 외의 의는 오직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의라는 것이다.

그러니 두 가지를 다 취하면 안 되고 어느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데, 여기서 사도바울은 율법의 의를 버려버린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제 자기 행함으로 말미암은 의가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행함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의 그런 율법의 의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 여러분, 교회에서 토해내세요 !!

오히려 그런 과거의 자기 행함의 의는 거추장스럽고 구역질나는 배설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배설물이니 그런 것이 몸 속에 있으면 안 되고, 모두 다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로 구토를 하든지, 밑으로 싸든지 해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인간들이 자기가 알아서 말씀을 지켜서 의롭고 착해질 수 있다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토해내어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소주를 한 잔하고 엉뚱하게 길거리에서 토하지 말고, 교회에 와서 모두 토해내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자기에게서 난 의는 모두 다 내다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말이다.

◈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토해낼 것이 있어 !!

그런데 우리교회 교인들은 가만히 보면 아무도 교회에서 토하지를 않는데,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말씀대로 가만히 있어서 그런 것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토해낼 것이 있는데, 굳이 성경의 율법과는 연관이 되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착하게 살려고 매일같이 수고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도 십자가에서 다 토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빌립보서 3장 18절과 19절을 보자.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 야, 이런 돌대가리들아 ??

여기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18절에 보면, 자기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런 자들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19절에 보면, 그들의 마지막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원수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들은 어떠한가?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자들이 말이다. 그것이 20절과 21절에 나오는데, 한번 읽어보자.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 이미 시민권이 하늘에 !!

이렇게 자기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즉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시민권이 이미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만물을 복종하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몸이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자기가 율법을 지켜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만물을 복종시키는 예수님의 믿음의 의로움이 이러한 능력을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자들이 주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이 두렵고 겁이 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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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골로새서를 !!

이제 골로새서를 살펴보겠는데, 조금 전에 한 빌립보서에서는 성도는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고, 또한 예수 안에서 죽는 것도 귀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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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