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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5-에베소서2(강의정리)자유게시판에베소서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5-에베소서2(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45 - 에베소서2

05,10,0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IN CHRIST' !!

오늘은 에베소서를 하겠는데, 먼저 오랜만에 교재를 보자.

** 에베소서는 교회가 누구에 의해서 계획되었으며,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에베소서에 있어서 교회의 시작은 창세기를 능가해서 창세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되었다고 되어있다(1:4,5).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는 세상을 아주 길게 보는 책이라고 여기면 되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면, 여기에 창세기가 있고, 또 세상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요한계시록이 있다고 하면, 이것이 이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이 에베소서는 창세 전부터 해서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간다는 것이다. 이 전체를 모두 마스터하는 책이라는 말이다.

◈ 에베소서를 보면서 두 가지 점을 !!

에베소서가 이렇게 "창세 전부터 해서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라는 것을 첫 번째로 기억을 해야하고, 두 번째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교회라는 것이 언제 생겼는고 하니, 마지막 때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교회가 있으면, "아하, 마지막 때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즉 "교회 있음 = 마지막 때" 라고 말이다. 바로 그것이 에베소서의 초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이 에베소서를 보면서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하는데, 첫 번째가 창세 전부터 해서 요한계시록 이후까지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로는 교회라는 것이 세상의 마지막을 잡아당기면서 등장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이 담요라고 한다면, 교회는 이 담요를 끌어당기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베일이 벗겨지게 되면 마침내 이 세상이 자기 실상을 드러난다는 것이다. 마치 밥상 위의 상보를 벗겨내면 그 밥상의 내용물이 공개되듯이 말이다.

그러니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의 역사라는 상보를 교회가 등장하면서 벗겨버리는데, 즉 이제는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의 역사를 가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벗겨지게 되면, 이 세상이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 마지막의 실상이 다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교회를 통해서 말이다.

◈ 교회는 종말론적 공동체 !!

이러한 교회를 두고서 '종말론적 공동체' 라고 하는데, 즉 종말이기 때문에 나타나서 그 교회 안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니까, 세상은 그야말로 "아하, 이래서 세상은 끝장날 수밖에 없구나" 라는 것을 폭로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참된 교회라는 말이다.

물론 이런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서로 관련이 되어있는데, 즉 처음에는 역사라는 것을 일단 깔아놓고, 두 번째로 그렇게 깔린 것을 교회를 통해서 잡아당겨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드디어 세상의 모습이 숨김없이 낱낱이 모두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냥 마지막이 아니라, 거기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베소서 3장 8절에서 11절을 한번 살펴보자.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여기서 제가 객관식 퀴즈를 하나 내겠는데, "왜 이 세상이 마지막인가?" 라는 것인데, 보기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누가 한번 맞추어보라는 말이다.

(1) 죄를 지었다
(2) 회개를 하지 않는다
(3)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4)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여기서 정답은 몇 번인가? 4번인데, 그러나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도발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는 마지막이 되어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값을 치러야 한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에베소서에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이다.

◈ 아직 때가 아니란 말이야 !!

만약에 우리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고 하면,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들이 그렇게 죄를 짓고, 회개도 하지 않고, 또 선지자를 조롱하고 해도 멸망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거기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그렇다" 라는 것인데, 즉 때가 되지 않아서 말이다.

◈ 모든 것은, 창세 전의 예정하신 뜻대로 !!

그렇다면 그 '때'는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가? 물론 하나님인데,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면, 사람이 요구한다고 들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예정하신 대로만 되는데, 그것을 9절에서는 '비밀'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금 예정하신 뜻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은 심판을 받아야할 때라는 것이 곧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예정하신 뜻이란 말이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에베소서에서 창세 전과 창세 이후로, 그렇게 길게 끌어서 이야기를 한 이유를 알았지 싶은데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창세 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창세 이후부터를 이야기해버리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창세 이후부터의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서 마지막 때에 심판이 퍼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 다시 정리하면 !!

조금 어려운 내용이라서 다시 해보면, 만약에 이렇게 창세 이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또한 요한계시록 이후도 이야기하지 않는고, 그냥 창세 이후부터 요한계시록까지만 그렇게 그 안에서만 어떻게 되는지, 그것만을 이야기해 버리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왜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 답변이 무엇인고 하니까, 인간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의 상식인데, 그런데 에베소서는 그것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그렇게 범위를 넓혀놓고는, "왜 이 세상이 벌을 받는가?" 라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창세 전에 예정하신 뜻에 의해서 그렇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때가 되었기에 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일반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오직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은, 눈이 어디까지 찢어지는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가자미 눈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ㅋㅋ).

그런데 그 눈이 어디까지 찢어지는고 하니까, 창세 이전부터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파악하는 안목을 가질 때, 그럴 때 비로소 그런 사람들을 성도라고 하고, 또한 그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한다는 말이다. (전화가 와서 잠시 쉬었음)

◈ 또 다시 정리하면 !!

다시 한번 더 해보면, 이 에베소서의 내용에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고 했는데, 첫째는 창세 이전부터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그렇게 보는 시야를 '쫙' 하고 넓혀버렸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왜 넓혔는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둘째는, 교회라고 하는 것이 이 세상에 등장한다는 것은, 인간들을 구원시키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즉 창세 이전부터 요한계시록 이후까지를, 마치 상보를 치우듯이 그렇게 들추어내는 기능을 담당하기 위해서 교회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가 등장하니, 교회가 아닌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인간들이 행동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주어진다고 상식적인 선에서 알고 있었는데, 그런데 교회가 등장해서 역사의 커튼을 '확' 하고 열어 젖히니,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인간들의 잘잘못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이미 창세 전부터 감추어져있던 하나님의 예정된 비밀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 속에 차곡차곡 쌓여 왔다는 것이다. 마치 눈이 차곡차곡 쌓이듯이 말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영적인 안목이 전혀 없어서 그런 것을 몰랐는데, 창세 전과 요한계시록 이후를 몰랐기 때문에, 즉 하나님의 예정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인간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이 세상 역사는 자기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으로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등장하니까 어떻게 되는가?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엉터리이며, 이 세상은 오로지 창세 전의 예정된 대로만 진행이 된다는 말이다.

◈ 지금이 마지막 때가 아니라면 교회는 없어야 !!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진행이 되는고 하니까, 지금은 바로 심판의 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마지막 때에 등장하니 말이다. 이렇게 교회가 등장한 것으로 보아서는 지금은 심판의 때라는 말이다. 즉 교회는 바로 그러한 심판의 때임을 보여주는 증표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마지막 때가 아니라면 교회는 아직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교회가 생겼다고 하는 것은, 그런 기존의 이 세상적인 안목과 역사관을 모두 날아가 버리는데,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예정된 뜻에 의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로 그러한 놀라운 일들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에베소서의 내용이고 말이다.

◈ 교회란 무엇인가?

이렇게 보니, 에베소서에 말하는 교회는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창세 전의 예정된 뜻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는 영적인 안목을 가졌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당신이 바로 교회입니다" 라는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그러니 무엇은 교회가 아니라는 말인가? 이 창세 전의 예정된 뜻을 가지고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동에 의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즉 자기가 행동을 잘하면 좋아지고 잘못하면 나빠지는, 그런 인간들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이 세상의 역사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러한 사람은 마지막 때에 등장한 교회와는 무관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 질문 - 마지막 때 '교회' 라는 것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이미 창세 이전부터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관여하는 분인데, 모든 것을 다 말이다. 그러니 창세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의논한 대로 하나하나씩 예정된 대로 진행해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몰랐는가? 우리는 역사라는 상보에 덮여 있었기에, 그래서 몰랐다는 말이다.

◈ 오직 은혜가 임해야 예정을 알게 되는데 !!

그렇다면 도대체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가?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알게 되었는데, 즉 밥상 위의 상보가 스르르 벗겨지니 말이다. 과거 구약시대의 사무엘이나, 다윗이나, 또한 예레미야도 모두가 다 예정된 뜻대로 진행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가 성도가 되었다고 하면, 그것도 결코 우리 자신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창세 전의 하나님의 예정된 뜻에 의해서 성도가 되어야만 하겠기에, 그래서 성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즉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싫다고 해서 버티고 말고 할 성격의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 지금이 말세인 이유도 하나님의 예정하심으로 !!

그러므로 지금이 마지막 때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가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또 회개를 하지 않아서도 아니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도 아니고, 그것은 오직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에베소서의 내용이고 말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좋아요? 아니면 불쾌하고 나빠요? 여기에 계신 오 집사님은 모임에 참석한지가 얼마 되지 않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한가요?

* 답변 - 기분이 나쁜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오 집사님은 어떻게 역사가 진행이 되어야 기분이 좋을까요?

* 답변 - 제가 기분이 나쁜 것은 하나님 마음대로 역사를 진행을 하셔서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기분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면서도 정작 교회가 뭔지도 모르고, 그야말로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면서도 목말라하는, 그런 기분이라는 말입니다.

◈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반응을 !!

그런 대답을 들으니 감격스러운데, 실제로는 이런 에베소서의 이야기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되면 인간의 행함의 역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행함의 역사가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님과 정면충돌을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착하게 행동하면 역사가 좋아지고, 또한 나쁘게 행동하면 역사가 나빠지고" 라고 되어야 납득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다 상당하게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제대로 된 지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닌 운명 ??

그런데 제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이미 창세 전에 예정된 대로 되어버린다면, 예를 들어서, 자기 집에 아이가 두 명이 있다면, 그것은 부모가 궁합이 잘 맞고 금술이 좋아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아이들은 반드시 그 부모에게서 태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을 만나는 것도 자기가 고른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남자를 만나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하나님이 다 알아서 끼워서 맞추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도 하지 못하고 혼자 독신으로 사는 것도 역시 강제조항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고 말이다. 키가 작은 것도 그러한데, 즉 "너는 170이면 돼. 175는 생각도 하지마. 이미 창세 전에 예정이 되었어" 라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이미 창세 전에 예정이 된 체로 진행이 된다는 것이 교회가 등장하니 비로소 밝혀진다는 것이다.

◈ 아,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

그동안 우리는 "내가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더 예쁘고 능력이 있는 마누라를 만났을 텐데" 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에 그동안 자기가 그만 속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속았다' 라는 의미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그 역사 속에서의 인식이 그렇다는 말이다. 창세 전의 예정을 몰랐던 시절에 말이다.

그냥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내린 결론이 바로 "아이 참, 내가 그때 조금만 더 판단을 잘했다면 좋았을 텐데" 라는 것인데, 바로 그런 후회감이나 미련과 같은 것은 이런 하나님의 예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다시 에베소서 3장을 !!

아까 에베소서 3장을 보았는데, 그것을 조금 더 설명을 해보면, 사실 이런 이야기를 누가 해주면 저는 참 기쁘겠는데, "진작 그런 이야기를 좀 해주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되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부질없이 설치면서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쓸데없이 미련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고 말이다.

◈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

이 에베소서를 기록한 사도바울 자신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자기에게 아무도 이러한 창세 이전의 예정에 대해서 이야기해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도바울이 이 모든 비일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서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데, 즉 모든 것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즉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좀 어려우니, 정신을 집중하고 들어야 하는데, 아까 말한 것을 다시 반복하면, 에베소서의 두 가지 특징이 무엇이라고 했나요? 첫째는 이 세상을 창세 이전부터 요한계시록 이후까지 완전히 넓혀서 보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교회의 등장으로 인해서 그동안 인간들이 생각한 모든 것은 다 허상이었고, 그래서 교회가 그것을 걷어내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 이 세상이 심판을 왜 받아야 하는가?

실제로는 하나님의 예정대로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심판은 왜 해야만 하는가?" 라고 물었는데, 심판은 인간들이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심판의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예수님 이전에도 나쁜 짓을 한 인간들이 그렇게 많았지만, 그러나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에 와서 심판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바로 '때가 되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인데, 그러니 인간들이 새삼스럽게 나쁜 짓들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심판을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때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마지막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돌아가셔도, 그 모든 것이 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일을 가지고 전혀 슬퍼할 필요가 없고, 안타까워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다 때가 되어서 돌아갈 사람들인데 말이다.

◈ 그렇다면, 예정된 뜻과 교회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이 어려운고 하니, 교회에 등장에 있어서 "교회가 왜 마지막 때에 등장을 해야 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래서 제가 아까 예정된 뜻에 의해서 교회가 등장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예정된 뜻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교회가 등장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의 그 예정된 뜻에 의하면, 어느 특정인을 중심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는데, 아브라함 중심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 사무엘이나 다윗 중심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사야 중심인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강감찬이나 이순신 장군을 중심으로 통일이 되어야 하는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통일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에베소서 1장 10절에 분명히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즉 누가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결정이 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통고하신다는 것이다.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마치 전국 미용협회에서 "다음 주 화요일에 등산을 갑니다" 라고 하면 미용실을 쉬는데, 그러니 그날 아무리 파마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아하, 이것은 이미 결정된 사항이구나" 라고 하고, 파마를 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수님 중심으로 하기로 하셨다고 하면,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아하, 그렇구나" 라고 포기를 하면 되는데, 억지로 인간들 중심으로, 그렇게 자기 중심으로 통일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말이다.

◈ 나는 그런 거 모른다 ??

그런데 우리는 정작 화요일에 파마를 하는 것은 포기하면서도, 자기 중심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은 너무나도 끈질기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결코 포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는가?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니는 그렇게 해라. 나는 모른다" 라고 하면서 자기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코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예수님 중심으로 통일된다고 하는 것이 대해서 반대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당연히 이 세상 전체가 마지막 때라는 말이다.

◈ 예수님 안에서 통일되면서 마지막 때가 !!

이렇게 '마지막 때' 라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이 된다는 것인데, 이 원칙 말고는 다른 원칙은 전혀 나올 낌새가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통일이 된다' 라고 해놓고 조금 있으면 다른 소리를 할거야"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예수님 안에서 통일이 되면서 곧장 마지막 때가 되어버리니,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그렇게 진행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 집에 아이가 두 명이 있다고 하면, 그렇게 아이가 두 명인 이유가 잠자리를 두 번해서 두 명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아이가 두 명이라는 것이다. 또한 만약에 자기가 백수라고 하면, 그것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백수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 이승엽은 4타수 4안타를 쳐야만 !!

이승엽이 마지막 한신 타이거즈와의 게임에서 왜 4타수 4안타를 쳐야 했는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인데, 그래서 그렇게 홈런도 쳐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심한 비약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는 말이다.

◈ 교회는 막가파의 모임 ??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인식이 마지막 때 등장하는 희한한 단체인 '교회' 라는 단체가 자기고 있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인식이 바로,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 이승엽은 마지막 게임에서 자기는 치기 싫어도 4안타를 치고 또 홈런을 쳐야만 했다는, 바로 그러한 이 세상에서는 없는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창세 전에 예정된 뜻에 의해서 말이다. 그것이 곧 교회라는 말이다.

기존의 역사적 인식 아래에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인식을 품은 교회를 두고 '종말론적 공동체' 라고 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말이다. 그러니 깨놓고 말하면 '막가파(?)'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니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치는 것도, 박주영 선수가 골을 넣는 것도,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교회는 이승엽의 홈런과 그리스도 안의 통일성을 !!

그러므로 교회에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승엽이 홈런을 치는 것과 박주영이 골을 넣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는 것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바로 그것을 막가파인 교회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고 있는 교회에 던져진 숙제라고 하는 게 바로 이 에베소서라는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확정이 되었는데, 더 이상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서 하는 말이, 즉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었다는 것을 어떤 논리로 알 수가 있습니까?" 라고 한다면, 에베소서 2장 5절에서 말하기를,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믿는 자만이 믿는다" 라는 것이다.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믿음으로', 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사실 이 표현에 좀 장난기가(?) 있는 것이,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는다" 라는 표현이 말이다. (녹취자 - TV에서 막 2009년 새해가 밝았다고 하는데, ㅋㅋ)

사실 이것은 어느 것이 옳고 틀리다고 이야기하기가 좀 곤란한데, 이런 두 가지 표현이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말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서 나온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두 가지 표현을 모두 수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에베소서 2장 6절에서 9절을 보자.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2장 6절에 보면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하는데, 즉 하늘에 갇혔다는 것이다. 이것을 동그란 풍선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 풍선은 밖과 안을 이야기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선(線)은 위와 아래를 규정하지만, 동그라미는 안과 밖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둥근 구(球)의 경우에는, 일단 안에서 끌어당겨서 들어가게 되면 밖으로 나올 구멍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밖에서는 안으로도 들어갈 구멍도 없고 말이다.

이러한 점이 굉장히 난해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선(線)으로 되어있다면 아래에 있던 우리가 위로 올라가면 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허용이 되니 말이다. 그런데 동그란 구(球)는 그런 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 구원은, 선(線)이 아니라 구(救) !!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에베소서에서 뭐라고 하는데, 구원을 선(線)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그란 구(救)로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사도바울은 '예수 안' 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갇혀있다' 라고 하는 뉘앙스를 아주 강렬하게 발산하는데, 그러니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말이다.

◈ 구원은, 아메바의 포식장면 ??

저는 이것을 어떻게 표현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좀 했는데, 기껏 생각한 것이 아메바가 먹이를 잡아먹을 때 일으키는 세포분열의 현상인데, 그렇게 아메바가 먹이를 잡아먹으면 경계선이 넓어지는데, 즉 함몰이 된다는 것이다. 안으로 포섭해서 경계선이 넓혀진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어 잡아먹힌 먹잇감은 다시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메바가 이렇게 플랑크톤이나 자기 먹잇감을 잡아먹는 장면도, 이것을 설명하기에는 만족스럽지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오직 예수님은 창세 전의 예정된 뜻대로만 일을 하시는데, 그런데 아메바의 경우에는 시간의 전후가 생긴다는 것이다. 먹잇감을 먹기 이전과 이후가 분명하게 구별이 된다는 말이다.

◈ 아메바로서는 시간의 문제가 해결이 안 돼 !!

이왕 어려운 것 더 어렵게 한번 해보면, 그렇게 창세 전의 예정된 뜻대로만 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이러한 창세 전의 예정된 뜻에는 시간개념이 없는데, 즉 사건의 전후(前後)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현재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아메바의 경우에, 포식자가 어떤 먹잇감을 잡아먹기 전까지는 그 먹잇감은 포식자의 안에 들어있지 않는데, 즉 그 이전에는 먹히지 않았지만 나중 후에는 먹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창세 전의 예정된 뜻하고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건의 전후(前後)가 성립이 되니 역사적이지 결코 창세 전은 아니라는 말이다.

◈ '예수 안'과 '예수 밖' ??

그러니 이러한 두 가지를 모두 다 설명해야 하는데, 즉 이전에는 우리가 악마에게 속했는데, 그런데 그 이후에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전에 악마에게 속한 것이 에베소서 2장 2절과 3절에 나오는데, 한번 살펴보자.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기 3절에 보자면 "전에는 우리가 …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라고 하는데, 그런데 2장 6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이전에는 악마에게 속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큰사랑과 긍휼하심으로 인해서 함께 하늘에 앉히게 되었다" 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과거에게는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꼼짝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있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어떤 세력에 의해서 삼킴을 당했는데, 그래서 하늘에 앉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예수 안'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 그런데, '예수 안' 에서는 시간이 뿅 !!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그 세력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전(前)에는' 라는 것이 성립이 되는데, 그런데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고 나면 '후(後)에는' 이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하늘에 앉혀버렸다는 것인데,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해서, 그렇게 해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는가? 우리는 지금도 이렇게 이 세상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얽매여 이렇게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할 때도 우리는 전혀 거기에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우리가 거기에 있었는가? 우리가 강도였는가? 분명히 아니라는 말이다.

◈ 언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았는가?

그런데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라고 하는데, 도대체 언제 살렸다는 말인가? 예수님이 부활할 때 같이 살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함께' 라는 의미는, 예수님이 먼저 부활하고 우리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함께 부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여러분이 이해를 하든 못하든 진도를 나가야 하겠는데, 일단 로마서 6장을 보자.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 4절에 보면 분명히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라고 하는데, 그리고 8절에도 보면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 '함께' 라는 것은 시간의 전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즉 예수님이 먼저 죽고 그 다음에 우리가 죽고, 또 예수님이 살고 그 다음에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 사도바울은 왜 그런 황당한 논리를 !!

우리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함께 죽었고, 또한 예수님이 부활할 때 함께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아직도 부활이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는 성도가 아니라서 그런가?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십자가 근처에도 가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하는데, 그것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논리이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 속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도대체 누가 그러한 논리로서 그렇게 함부로 이야기를 하라고 했느냐는 것이다. "함께 죽었고 함께 살았다" 라고 말이다.

◈ 왜냐하면, 마지막 때이기에 !!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데, 즉 우리들이 악마에 속했을 때는 이 세상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보게 되는데,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면 항상 전후(前後)로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는, 즉 '예수 안' 에서는 이렇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역사를 초월하게 되는데, 즉 아까 말한 그런 풍선 안에 있을 때는 전후(前後)라는 것이 없고, 오직 여기 이 안에서는 그 혜택을 동시에 함께 늘 누린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그래서 이미 하늘에 앉혔고, 즉 이미 십자가에서 죽고 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안' 이라는 풍선 안에 들어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역사를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논리가 전혀 해당이 되지 않는데, 그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논리인데, 그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서 마땅한 논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얘들아, 창세 전의 세계로 오너라 !!

그러므로 결국 사도바울이 이러한 논리를 펼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 이전의 예정된 관점으로 자기 백성들을 초청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그런 창세 전의 사고방식의 세계로 초대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초대가 되어서, 평소에 우리가 전후를 따지는 그런 역사적인 관점은 인정해주지를 않고, 오직 하나님의 창세 전의 예정된 관점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펼쳐서 거기에 동참하게 만드는 혜택을 우리에게 주는데, 그것을 두고서 '예수 안'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우리는 단 한번도 하나님의 창세 전의 예정된 뜻에서 벗어난 적이 없게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는 이미 심판이 끝난 상태인데, 그런데 우리는 심판이 곧 닥쳐오든지, 아니면 진행이 되고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그런 예정에 의하면, 이 세상은 이미 창세 전에 다 끝난 게임이라는 말이다.

* 질문 - 이미 게임이 다 끝이 났는데, 왜 마지막 때라고 해서 교회가 나타나고 해야 하는가요? 마치 아직 끝이 나지 않고 진행중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었음을 확인해주는데, 쉽게 말해서, 지금 인류역사는 일종의 연극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배우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어이, 이순신, 그리고 원균, 모두가 다 수고했어. 역할들을 잘 소화했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객들은 그 연극을 아주 진지하게 보지만 말이다. (시뮬라시옹??)

* 질문 - 그러니 지금 우리가 "왜 심판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지?" 라고 하면, 그런 표현은 적당하지가 않다는 말이죠?

물론 그러한데, 그것을 좀 더 극단적으로 밀어 부쳐보자면, 이미 창세 전에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게 되어있고, 아브라함이 그렇게 부르심을 받도록 되어있고, 유대인들이 그렇게 불순종하도록 되어있고,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 얘들아, 연극이었어. 매롱 ??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그렇게 주님이 벌린 연극에 속아넘어간 것인데(?),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참아야 돼. 참아야 하느니라" 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 것조차도 이미 예정된 가운데서 다 끝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도에게 어떤 점이 좋은고 하니, 인간의 행함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함은 항상 역사 속에서 미래를 내다보면서 이루어지는데 말이다. "앞으로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잘 될 거야" 라고 하는, 그런 미래자체가 속임수이고, 즉 인간의 행함 자체가 깨어진다는 말이다.

◈ 그러나 인간은 의미 없는 행함을 계속해서 !!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자기의 행함이 깨어지는 순간에도 어떻게 하는가? 자기 행함을 계속해서 고집하게 되는데,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둘 사이에서, 자기의 의미 없는 행함을 지금도 계속해서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의미 없는 행함을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죽는다" 라고 하면 맞는 말인데,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게 죽도록 예정이 되어있는데,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자기 자신은 펄펄 살아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렇게 자기가 살아있는데, 하지만 그렇게 우리 자신이 살아있다고 여기는 것은 연극에 불과하다고 죽음 쪽에서 이야기를 해주면, 우리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 그러면 살아있다는 이 느낌은 무엇인가?

그렇게 죽음이 실상이고,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 허상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지금 우리는 왜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고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되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나요? 여러분은 죽은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죽은 느낌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로마서 9장의 말씀인데, 역사를 끄집어 당겨버리니 이러한 현상들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13절을 한번 보자.

(롬 9:13)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기에 야곱과 에서가 나오는데,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고 하니, 즉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물론 이들은 없지만 그러나 이들이 어떻게 된다고 하는 예정된 뜻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뜻은 시간을 초월하는데, 알파와 오메가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예정된 뜻이 무엇인고 하니까, 야곱은 사랑을 받기로 되어있고, 에서는 미움을 받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예정된 뜻을 펼치기 위해서, 그것이 예정된 뜻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예정된 뜻으로만 끝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지만 말이다.

◈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서 기여를 !!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고 하니까, 그런 창세 전의 예정된 뜻으로 인해서 예수님이 역사를 통해서 주(主)가 되는데, 바로 그런 과정에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서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여를 말이다. '야곱' 이라는 배우가, 또 '에서' 라는 배우가 연극무대에 등장해서 말이다. 야곱은 계속해서 사랑을 받는 역할로, 에서는 계속해서 미움을 받는 역할로 말이다.

또한 사울은 아무리 회개를 해도 용서를 받지 못하고, 다윗은 무슨 짓을 해도 다 용서를 받고 말이다. 살인죄든 간음죄든 간에 말이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서 주가 되심을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과 에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창세 전의 예정된 뜻은 시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그런데 그렇게 예정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사라는 것이 필요했고, 또한 이 피조세계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 목사님, 하나님의 예정된 뜻만 있으면 안 됩니까?

여기에 대해서 만약에 누군가가 "목사님, 만약에 야곱은 사랑을 받고, 또한 에서는 미움을 받는다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된 뜻만 있으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과연 뭐라고 답변을 하겠는가? 예정된 뜻만 있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창세 전의 예정된 뜻만 있는 것을 가지고는, 그렇게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것으로 인정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들은 그러한 예정된 뜻만으로도 통일이 된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가 되어야 !!

그러니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 라고 하는 역사적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어서 주(主)가 되는 과정이 있어야만,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뻐하는 아들로 받아주기로, 그것도 역시 예정된 뜻 가운데 들어있다는 말이다. 즉 역사는 예수님의 주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야곱과 에서는 역시나 하나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인간의 구원문제에 부딪치면 !!

여기까지는 그래도 우리가 어느 정도는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가 않은데, 사실은 그 다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 구원의 문제에 들어가게 되면, 그만 상당히 복잡한 문제가 나온다는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지요? 예수님이 역사적 인물인 나사렛 예수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말이다. 그냥 성자 하나님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라는 33살을 먹은 청년으로서 역사에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으로 역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말이다. (안 된다구요?)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그러면 우리 구원문제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창세 전에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선악과를 따먹든지 말든지 구원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고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데,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무슨 새삼스럽게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죄인이니 구원을 받아야 돼" 라고 하는 말 자체가 우리를 속여도 그렇게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실제로는 구원을 시켜놓고는, "너는 구원을 받아야 돼" 라고 하는 것은 겁주는 것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성도로서 그러한 창세 전의 예정된 뜻을 알았다고 하면, 그렇게 하나님께 버티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아닌가?)

◈ 예수님을 증거하는 용도로서 구원 !!

물론 이런 구원문제를 자기의 개인적인 구원으로만 여긴다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즉 우리 인간들을 구원시키는 구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용도로서 구원이라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누구인가?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이미 창세 전에 생명책에 기록되어서 구원을 받았는데, 또 무슨 구원인가? 참, 귀찮아 죽겠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속임수를(?) 썼다고 여기는데,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의 개인구원 중심으로 생각하면, "내가 미쳤다고 예수를 믿나? 이미 창세 전에 다 예정이 되었는데" 라고 나올 수 있지만, 그러나 구원이 그냥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이 곧 구원자입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는 차원에서의 구원이라고 한다면, 우리에는 그 구원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결코 우리 인간들의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뭔가 자꾸만 예수님에게서 쏟아지는 것으로, 즉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로서의 믿음, 선물로서의 십자가, 선물로서의 천국, 그리고 선물로서의 성령,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것으로서 채워진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이 '밖'이 아니라, '예수 안'에서 예정된 대로 !!

그런데 중요한 것이 이것이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결코 아니라, '예수 안'에서 창세 전에 예정된 대로 성도에게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도에게 자꾸만 믿음도 주고, 성령도 주고, 그렇게 다른 것들도 선물로 마구 마구 퍼준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가 이 피조세계에서 유지되는데, 이것을 두고 예수님을 '머리' 라고 하고 성도를 '지체'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안에는 있는 것을 두고 '교회' 라고 하고 말이다. 바로 이러한 교회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모든 권세자들과 피조물들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에베소서 1장 19절을 보자.

(엡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여기 19절의 말씀을 읽으면서 동그라미 안에, 즉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안에 있다고 여기고 29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라는 것이다. 안에 있으면 쉽게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 밖에 있다고 여기면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깥에 있다고 여기게 되면,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것들이 다 깨어진다는 말이다.

◈ 사도바울의 관심은 '예수 안'에 있는 자 !!

제가 아까부터 이 동그라미를 그리고 강조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동그라미 안에 있는 예수님이 동그라미 안에 있는 자기 백성에게 준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바깥에 있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자기가 예수님에게 무엇을 하나 받았는데, 그런데 그만 자기가 행동을 잘못하게 되면 구원에서 탈락이 되는 수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밖에 있으면 받을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도바울에게서는 이런 것을 일절 찾아볼 수가 없는데, 즉 바깥에 있으면서 아둥바둥 구원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고방식은 그에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이 지금 하는 모든 이야기는 문을 열고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 같이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에게 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또한 그렇게 안에, 즉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데, 왜냐하면 창세 전에 이미 갇혀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창세 전에 이미 다 예정된 뜻에 의해서 주님의 사랑을 받기로 작정된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통일되게 하기 위해서 이승엽이 홈런을 치고 박주영이 골을 넣었다는 말이다. 그런 그런 모든 사건들이 다 "이미 너희들은 구원된 자이다" 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오야가 곗돈을 가지고 날라도 !!

예를 들어서,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부은 곗돈을 계주가 그만 가지고 튀었다고 한다면, 그것도 역시 하나님이 자기에게 "돈을 사랑하지 말라" 라는 성경말씀을 이루는 차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란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창세 전부터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이승엽이 홈런을 치던 말던, 또한 박주영이 골을 넣든 넣지 못하든 간에, 구원은 이미 창세 전의 예정된 뜻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창세 이전에 주님이 주신 권세가 있었는데, 그 권세의 작용이 이승엽으로 하여금 홈런을 치게 했다는 것이다.

◈ 5층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해도 !!

또 예를 하나 들어보면, 자기가 5층에서 창문 밖으로 밑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가 방금 저기에 있었는데, 지금 여기 5층에 있게 해주시니 말입니다" 라고 했다면, 그런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그때 그 자리에서 그만 차에 바쳐서 다쳐도, 설령 죽는다고 해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교통사고가 일어났는데, 5층에서 보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렇게 교통사고가 난 것은 운전자가 운전을 못해서가 아니라, 예정된 뜻에 의해서 그렇게 사고가 나도록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것을 5층에서 그 순간에 밑으로 바라보아야만 했고, 그렇게 해서 다시 확인시키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저는 이런 말씀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물론 지금 여러분은 피곤해서 잠이 몰려올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구절을 더 보겠는데, 2장 4절에서 6절을 보자.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죽은 놈은 살리는 것은 오직 은혜로 !!

여기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이라고 하는데, 즉 우리는 이미 죽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살리셨고, 은혜로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러니 전혀 행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저 때 내가 빨리 잘 건넜지"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6절에 보면, "또 함께 일으키사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하는데, 그렇게 함께 일으키고 앉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결단코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8절과 9절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오, 비밀의 경륜이여 !!

이러한 진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사도바울 당시도 그렇고 말이다. 사도바울은 지금 역사를 초월해서, 즉 그 역사의 커튼을 확 잡아당기고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3장 9절에 보면, '비밀의 경륜'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발생되는 사건을 따라서 복음만 전하면, 끝 !!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런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자기 목숨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자기의 목숨을 귀하게 여기든지 말든지 간에 자기 주위에 주께서 마치 물결이 치듯이 사건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는 그 발생되는 사건을 따라서 복음만 전하면 자기의 사명은 끝이라는 것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분은 따로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복음증거는 사람을 꼬시는 것이 아니라,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된다고 하고, 또 누가 뭐라고 해도 이미 창세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그것이 바로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사명자의 모습이란 것이다.

◈ 아내 된 자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서 "아내 된 자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라고 하는데, 결단코 남편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말이다. 또 남편도 아내를 목숨을 바쳐 사랑하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역사를 창세 이전과 요한계시록 이후로 본 사람이라고 하면, 그런 여유만만함이 나타나야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질문 - 이미 자지가 죽은 자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말입니까?

물론 그것도 포함이 되는데, '죽은 자' 라고 하지 말고 그냥 '동그라미' 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이미와 아직'의 개념에 있어서, 본인이 살아있으되 죽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고, 또 죽었으되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요?

그것이 참으로 놀라운 사실인데, 어떻게 살아있는데 죽었다고 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함께 부활이 되었다는 인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동그라미 안' 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 아예 성경을 불태워버려라 ??

물론 밖에 나가서 그런 소리를 하면 귀때기를 얻어맞는데, "이 놈아, 정신을 차려라. 도대체 누구에게 홀려서 그런 소리를 하는가? 이 바보같은 놈아. 아예 성경을 불태워버려라" 라고 말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실제로 성경이 불에 많이 태워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제가 기존 교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성경을 불태워 없애자는 소리는 차마 못하고, 그런 성경은 우리 인간이 다 알 수 없으니, 성경은 덮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사람을 교회로 어떻게 꼬셔서 데리고 오고, 교회운영은 어떻게 하고, 또 남전도회 회장은 어떻게 뽑고, 등등 말이다. 그것이 도대체 교회인가? 그냥 종교적인 친목단체이지 말이다.

그 다음에, 일단 아까 본 3장 9절을 다시 보자.

(엡 3: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도대체 '비밀의 경륜' 이라니?

여기에 보면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 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만물을 창조할 때는 아직 그 비밀이 나타났다는 것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인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비밀은 만물 안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들어있다는 말인가?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 안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의 비밀을 사도바울에게 이야기를 해주니, 사도바울은 또 오늘날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비밀인가?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은 왜 존재하는가?" 라는 것에 대한 비밀이라는 말이다.

◈ 이 세상의 존재목적은?

그 동안은 이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세상 안에서만 찾으려고 했는데, 하지만 그것은 다 엉터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창세 전의 예정하신 뜻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에 말이다. 그러한 비밀은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감추어진 것이 드러난 것인데, 그것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3장 11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엡 3: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노릇인데, 이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이 존재라는 이유라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을 위해서 예수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13절에 보면, 어떤 환난이 와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엡 3: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이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데, 이제 진도가 팍팍 나가는데, 여기서 4장 7절 말씀을 보자.

(엡 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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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5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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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