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대구강의01-인간구원을위한신학6-2
09대구강의01-인간구원을위한신학6-2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 예수님의 완료성이 찾아오면, 상황 끝 !!
그러므로 베드로의 경우에, 자기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을 부인을 하든지, 아니면 닭 모가지를 비틀든지 간에, 이 베드로는 누가 지키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완료성이 베드로에게 찾아오게 되면, 이 베드로도 역시 완료성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증거를 사도바울은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까, 바로 십자가로 본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통해서, 그러한 십자가가 찾아온다는 것은 곧 완료성이 찾아온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미 종결된 상태로서 말이다. 그러니 묵시세계인데, 이미 시간이 의미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이번 여름수련회는 다니엘서와 스가랴서를 할 예정인데, 거기에 보면 묵시문학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종결된 상황이, 즉 묵시적 상황이 쳐들어오게 되면, 이 베드로가 무슨 짓을 하고 그 어떤 짓을 해도 전혀 상관이 없이 어떻게 되는가?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해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서, 그 악마의 청구를 일언지하에 기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성화론에 묶이게 되면, 악마의 밥 !!
아무튼 우리가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그 완료성을 놓치게 되면, 그만 성화론이 되어버리고, 그러한 성화론에 묶이게 되면 그야말로 악마의 밥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그들은 성화론을 주장하기 위기서 십자가가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십자가가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말이다. 그것은 바로 아직도 뭔가가 남아있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남았으면 완료성이 아니라 미완료라는 것이다. 뭔가가 남았으면 당연히 모자라는 것이 되니 말이다.
◈ 악령에 사로잡혀야 이런 망발이 ??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사람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제 정신이 아닌데, 즉 악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런 주장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성경을 아는 지식이 모자라서 이러한 소리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에 지식이 모자란다고 하면 다음과 같이 나오는데, 즉 "내가 총신에서 배울 때는 십자가 사건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뭔가 조금 이상해" 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지, "십자가가 전부가 아니야" 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은 본인의 생각이 아니라, 그야말로 악마의 중력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악마는 항상 십자가의 완료성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그래서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부터 시작을 해서 그 뒤에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이 완료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도록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야 악마로서 자기 할 도리를 다한 것이고 말이다. 그것 말고 악마가 더 이상 무슨 짓을 하겠는가?
◈ 사도바울은 이 완료성 덕분에 !!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사도바울은 이 복음의 완료성이 얼마나 대단하지, 자기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세 번 맞고(다섯 번인데?), 또 세 번을 태장으로 맞고, 강도짓을 당하고, 굶어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만, 그리고 자기 몸에 가시로 찌르는 고통이 있어서 참기가 어려웠지만, 그러나 주님의 그 완료성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후 11:23)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고후 11: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고후 11: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바로 그것을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자기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고 하고, 또한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고, 또한 자기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주님의 완료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도 티도 없이 계속 완료성이 유지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가 사도가 맞지 않느냐고,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기의 사도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후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 고린도후서 11장을 다시 살펴보면 !!
그런 의미에서 이 고린도후서 11장이 참 중요한데, 그 전체적 내용이 어떠한고 하니, 사도바울 자신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그리스도와 교인들을 중매하기로 중매쟁이로 나섰는데, 그런데 보니까 먼저 악마의 종들이 악마와의 중매쟁이로 나섰는데, 그들이 사용한 본드가 바로 예수님의 미완료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기도 할 수 없이 자랑을 조금 해야하겠다고 하면서 자랑을 하는데, 삼층천에 갔다 온 이야기도 하면서, 자기가 그야말로 죽도로 얻어맞고 고생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자기는 강해졌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십자가의 완료성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러니 그런 것에 너무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과 복음은 우리에게 완료성으로 주어지니 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사도바울 자기가 그렇게 고생을 했지만, 그러나 그러한 고생으로 인해서 미완료가 아니라, 즉 그러한 고생으로 인해서 구원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고생은 고생대로 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을 통해서 완료성은 더욱 더 부각이 된다는 것이다. 즉 약한데서 온전하여진다는 말이다.
◈ 평소에 감추어진 악마의 중력이 !!
요즘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이야기도 있는데, 어떤 목사가 목회를 하다가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해서 "십자가가 전부가 아니다" 라고 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고린도후서 11장에 의하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그러니 평소에 감추어진 악마의 중력에 의해서 그런 고백이 나왔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데, 즉 "주여, 십자가가 전부가 아니지요?" 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놓고는 바로 회개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악마의 사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악마가 그리스도를 공격하는 것은, 바로 그 십자가의 완료성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이제 교재 161페이지를 보자.
** 어머니 몸에서 생산된 아기가 밖으로 튀어나와 도착한 그곳은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 아기는 악마가 어떤지 아직 모른다. 악마의 세계에서의 원리는 오직 하나뿐이다. "살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라는 원리이다.
그런데 여기에 도착한 아기 중에서 누가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계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그러한 아기들과는 달리 정반대로 나갔다는 것이다. 즉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 그렇다면 왜 악마는 인간을 이런 식으로 다룰까? 그것은 악마가 실제로 겁내는 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분에 의해서 악마는 자신이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물론 악마와 예수님 사이에 아는 비밀이다.
(마 8:29) 이에 저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하더니
◈ 악마와 예수님 사이의 비밀 ??
이것이 악마와 예수님 사이의 비밀인데, 그 비밀은 완료성과, 즉 "다 이루었다" 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그야말로 빈말이 아닌데,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예수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도들은 나중에 성령이 와서 이해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것은, 그 뒤에 시간에 있어서 다른 일들이 있어도, 그것은 바로 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차원에서 진행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고는 "애들아, 다 이루어라" 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차원에서 계속해서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162페이지를 보자.
** 사람이 처음부터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로 시작해서 서서히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의 세계는 장난감의 세계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이들의 장난감이 된다. 뭐든지 환상적인 이미지를 풍겨내는 신기한 것들이다. 매일같이 꿈꾸는 재미로 사는 시절이다.
이렇게 매일 꿈꾸는 재미로 사는 것은 어린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도 역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꿈꾸는 재미라도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이 세상을 누가 살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 자기 자신은 이 넓은 우주의 한 부분으로 인식한다. 큰 궁창 안에 조그만 자기가 들어가 살고 있다. 구름 위로 멋진 시계가 펼쳐져 있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거기 계신다. 지상에서는 힘세고 잘 생기고 지혜로운 영웅이 자기와 엄마 아빠와 지구를 지켜준다고 믿는 시절이다.
◈ 바지 위에 팬티를 입는 유일한 남자는?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상상하고 믿는 하나님인데,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났을 때만, 하나님은 거기에 계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서는 힘세고 잘 생기고 지혜로운 영웅이 있다고 하는데 누구인가? 자기와 엄마 아빠와 지구를 지켜준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 사람이 팬티를 바지 위에 입는 유일한 사람인데, 바로 '슈퍼맨'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슈퍼맨이 바로 악마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자기가 지켜주겠다는 것이 심히 수상하다는 것이다. 전혀 지켜주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런가?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지켜주지 않아도 이미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 이루었다고 믿는 것이 바로 교회인데, 그러니 그것을 어떻게 슈퍼맨을 바라보는 인간들이 믿을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중요한데, 그런데 만약에 지켜주는 것이 따로 있다고 하면, 즉 여기에 있는 이 장난감을 지켜준다고 하면, 이 장난감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장난감이 없으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어지니 말이다.
◈ 하나님, 우리 아파트 값을 지켜주시면 !!
예를 들어서, "하나님, 우리 아파트 값을 지켜주시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렇게 되면 아파트가 있는 조건아래에서만 하나님과 대화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파트가 무너지든지 불이 나면 하나님과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 이루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뭔가 미진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것을 자꾸만 지워나가는데, 왜냐하면 십자가만으로 다 이루었다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십자가를 빼버리고 다른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하나님과 대화에 나서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것을 자꾸만 내세운다면, 주님께서 그때마다 그것을 다 부수어 버린다는 것이다. 내세우면 또 부수고 말이다.
◈ 인간은 만들고, 예수님은 깨부수고 !!
다시 말해서, "이것이 없어도, 저것이 없어도, 오직 십자가만으로 됩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뭐라고 하는가? "이것을 허락해주면, 그때는 하나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인간은 뭔가를 자꾸만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자기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그 장난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가 '내'가 가지고 있는 바비인형을 때리면, 그것은 곧 '나'를 때린 것이 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데, 혹시 서 목사님의 장난감은 무엇인가요?
◈ 여자들에게는 자식이 장난감 !!
여자들에게는 주로 자식이 그 장난감이 되는데, 그래서 "주여, 제 자식만 건들지 않으면 주님을 잘 섬기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자기를 건들지 말라는 것과도 같고 말이다. 하지만 욥은 뭐라고 했는가? 주신 자도 하나님이고, 거두신 자도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욥과는 정반대라는 말이다.
◈ 선교사들의 경우에도 !!
그것은 선교사들이나 신학생들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떠나면서 자기는 죽으려고 간다고 말은 다 그렇게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복음의 완료성에 대해서 들어보면, 전혀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은 모두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만약에 그 선교사가 복음을 외치게 되면, 기존의 한국교회에서 전혀 선교비가 나오지 않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대로 복음을 외치게 되면 모두가 이단소리를 듣는데, 아니 누가 이단에게 선교비를 대겠느냐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 163페이지를 보자.
** 이제 모든 것은 다 떠나보내고 오직 자기 자신만 남았다. 내가 곧 그 옛날의 부러웠던 하나님이 되었으며, 예수님이 되었으며, 또 영웅이 되었다. 옛날의 꿈꾸던 신화는 지금의 자기 역사이다. 왕자처럼 살고 싶고, 공주처럼 화사하게 꾸미고 싶었던 것이 어른이 되니 모두 가능하다. 따라서 신화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만들어내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그러니 결국 신화를 만든 것도 자기 자신이고, 그 신화의 주인공도 역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즉 백설공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백설공주이고, 또한 '내'가 곧 왕자라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 찬가이고 자기 영광인데, 그래서 요한복음 12장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은 자기 영광만 더 챙긴다는 것이다.
(요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성도는, 예수님의 완료성만 찬양 !!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그러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럴 인간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끊임없이 작용하는 악마의 중력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악마의 중력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서 그 자체로 있는 것인데, 하지만 십자가로서 우리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 즉 자기 자신의 미완료성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료성이 서로 만날 때 어떻게 되겠는가? 정말이지 참된 성도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의 미완료보다는 예수님의 완료성에 대해서 진정으로 찬양하게 된다는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위기가 찾아오는 것을 도리어 감사하고, 또 고마워하게 하옵소서. 언제나 저희들은 십자가의 완료성보다는 평소에 가지고 놀던 자기 자신의 장난감이 완료되기를 바라던 자들입니다. 그렇게 주위에 마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의식하면서 살아온 줄 압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완료성으로 인해서, 유명하지 않은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서, 그리고 죽은 자 같으나 산 자임을 언제나 깨달으면서 살아가게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9,02,21 00시 25분에 마침.
울산팀이 원정 갔나? 넘 부러버 !!
앞으로 추기경이 죽으면 1일장을 해라. 아니, 추기경은 죽지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