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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90109-(1)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27강자유게시판에베소서

20090109-(1)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27강

이름 : 오용익(IP:211.194.56.75)

에베소서 제 27강 (이 근호목사, 2009년 1월 9일, 서울의존교회)

에베소서 5장을 할 차례입니다. 에베소서 4:32에 보면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다 압니다. 그러면 다음의 질문도 여러분이 알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도 여러분이 알고 계셨지요?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흙에 속한 형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흙에 속한 형상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만들었는가? 흙으로 만든 사람은 그만 만들고 하늘에 올라갈 수 있는 신령한 몸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없었고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나’가 없었고, 아빠 엄마도 없었고 어린이여러분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없어지고 하나님만 있어도 ‘오케이’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만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 있었던 그 시절이 되어도 우리는 좋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 계셨는데 그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만들었다.’ ‘오케이!’(무조건 좋다는 뜻으로) 그러면 제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었다.’에서 그 만들어진 사람, 곧 ‘나’를 지워버려도 좋습니까?

내가 없어져도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지워버려요. 지워버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나를 만들 때 뭐로 만들었다고 했습니까? 처음에 흙으로 만들었다고 했지요. 흙으로 만들었으니까 무엇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흙으로 만들었으니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무엇으로 만드는가?

고린도전서 15장에 49절에 보니까,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흙에 속한 형상이 따로 있는 것 같이 하늘나라에 갈 형상도 따로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흙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고, 이 쪽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신령한 사람이라고 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흙에 속한 사람을 신령한 사람으로 바꾸는데 흙에 속한 사람은 없애버리고 신령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에 대해서 좋습니까?

이것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어린이 여러분은 도로 흙이 되고 말겠습니까, 아니면 천사같이 되고 싶습니까? 천사같이 되어야 하겠지요? 흙에 속한 사람 따로 있고 천사 같은 사람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 흙에 속한 사람을 천사 같은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겁니다. 그 대목을 읽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44-45

“육이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어제 밤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분이 입관예배를 부탁하길래 ‘금요일은 강의가 있어서 못합니다.’ 해 놓았는데 제가 다시 전화를 해서 ‘할 사람이 정 없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했더니 ‘할 분이 정해졌다.’ 고 답변이 왔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중병에 걸려서 돌아가셨는데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제가 만일 입관예배에서 설교를 한다면 거기 있는 가족들에게 무엇을 말할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가족들이 돌아가신 분을 생각할 때 흙을 빼버리고 그냥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제가 성경말씀을 전하기가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은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분들이 들을 때 얼마나 화를 내겠습니까?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하고 죽은 뒤에는 과연 악마 같은 사람인지 아니면 천사 같은 사람인지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전부가 어디에 속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계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보면 사람이 죽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죽은 사람이 다시 천사같이 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린이여러분! 세상 근심걱정 하지 마세요.

사실은 어린이는 세상 근심걱정도 하지도 않지요. 세상을 알아야 근심걱정을 하지요. 이것은 어른들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근심걱정이 왜 생기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획은 안중에도 없고 하나님의 계획은 듣기도 싫어서 그래요. ‘내가 어떻게 사는가?’ 여기에만 몰두하다 보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사라지는 겁니다.

성경을 신학에서는 ‘계시’라 하거든요. 계시란 ‘지시 한다’는 뜻입니다. 지시한다는 것은 ‘저기에 누가 있다고 지시한다.’는 겁니다. ‘얘들아, 저기 천국이 있다.’ 고 지시하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을 안 본다는 것은 ‘얘들아, 천국이 저기 있다.’는 말을 ‘그만이야기하세요. 듣기 싫어요.’ 하고 하나님의 지시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이 좀 어렵게 들리지요? 그러면 쉬운 말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는 그런 일이 별로 없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가 있습니다. 술을 매일 잔뜩 먹고 들어오는 아빠를 향해서 엄마가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여보, 술 작작 먹고 오세요.’ 라고 합니다. 이것이 계시입니까, 계시가 아닙니까? 계시 아니지요. 이것은 ‘똑바로 해.’ 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다음과 같이 말하면 계시인지 아닌지 잘 들어보세요. 역시 술을 잔뜩 먹고 돌아온 아빠를 향해서 소리 지르는 엄마가 있습니다. ‘여보, 술 작작 먹어요. 저기에 공동묘지가 있어!’ 라고 가리킬 때 이것은 계시입니까, 아닙니까? 이것은 계시지요? 그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첫 번째 이야기한 것은 ‘똑바로 해!’ 인데 이것은 ‘현재 있는 것을 행복하게 살자.’고 잔소리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이야기한 것은 ‘여보, 저기 공동묘지가 있는데 계속 술이나 먹다가는 저기 간다.’ 라고 한곳을 지시하고 가리키지요. 이게 계시다,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성경을 싫어합니까? 사람들이 성경을 뭐로 봅니까? 성경을 잔소리로 보기 때문에 그래요.

‘똑바로 해! 똑바로 하라, 했잖아. 똑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라고 했잖아!’ 이렇게 자꾸 잔소리로 들으니까 ‘밥 먹고 살기 바쁜데 자꾸 바르게 살라고 하니 어떻게 돈 벌면서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지 어떻게 착한 일만 하고 바르게 살 수가 있나?’ 자기반성, 자기개선을 하는 것이 성경인양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전하는 사람들이 자꾸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겁니다.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똑바로 하세요.’ 그것이 계시가 아니고 ‘여러분 천국이 있습니다.’ 이것이 계시지요. ‘천국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목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 도리가 없으니까 목사님은 그저 계시를 전해야 합니다. ‘똑바로 하란 말이야.’ 그러면 교인들이 이럽니다. ‘너나 똑바로 해라. 세상살이 너도 해봐라. 그게 똑바로 되는지.’

우리가 성경을 대하는 이러한 인식자체가 확실하게 달라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시, 이 성경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획이 나와 있습니다. 그 계획은 우리로 하여금 흙에 속한 형상이 하늘에 속한 형상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누구를 바꾸는가 하면 흙에 속한 우리를 바꾸는 겁니다. 흙에 속한 우리 자신을 신령한 사람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바꿀 때 어떻게 바꾸지요? 흙에 속한 형상에서 신령한 형상으로 바꿀 때 흙에서 천사로 바로 갈까요? ‘얘야, 흙에서 천사되어라.’ 하면 흙에서 천사로 바로 바뀝니까? 안되지요. 이것은 약간 어렵습니다. 왜 흙에 속한 사람이 천사처럼 안 바뀌느냐 하면 흙에 속한 사람은 흙에 속할 수밖에 없는 성질(또는 속성, 본성)이 있습니다.

흙에 속한 사람이 흙에 속할 때는 어떻게 그리 되느냐 하면, 흙에 속한 사람이 죄를 짓기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흑인이 세수한다고 백인 될 수 있습니까? 흑인으로 태어났는데 백인이 되려고 애를 쓴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뒤로 걷는 사람. 마이클 잭슨. 그 사람은 처음에 흑인으로 태어났는데 백인 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

이 사람은 자기 속에 흑인이라는 성질이 있는 것을 모르고 껍데기만 바꾸려고 하는데 그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흙에 속한 사람이 있고 천사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나도 천사처럼 될래.’ 라고 하는데 여러분, 안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가 흙에 속했다는 것이 그냥 흙에 속한 것이 아니고 죄를 지어가면서 흙에 속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셔도 우리가 그 성질에서 벗어나서 ‘자, 난 천사다.’ 할 재주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흙에서 천사로 바꾸는 이것은 사람이 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시지요? 그러면 묻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바꿉니까? 너무 어려우니까 다시 해 봅시다. 흙에서 사람 될 때 하나님이 개입해서 흙에서 사람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개입해서 흙에서 사람이 되었습니까?

뭘 제공했지요? 뭘 제공했습니까? 생령,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주니까 흙에서 사람이 되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은 흙에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죄짓고 나서는 다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현재 이 사람은 흙입니까? 사람입니까? 흙에서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흙이 되었으니까 모든 사람은 사람입니까, 흙입니까? 예를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흙입니까, 사람입니까? (사람이오) 죄송합니다. 흙입니다. 흙이 청와대에 살고 있어요.

박 지성 선수가 흙입니까, 사람입니까? 흙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보고 성씨가 어떻게 됩니까? ‘최 아무개입니다.’ 그러면 ‘아, 최 흙이군요.’ 지나가는 아주머니 보고 아주머니는 성씨가 어떻게 됩니까? ‘김 아무개입니다.’ 그러면 아 ‘김 흙이군요.’ 그러면 그 사람은 화냅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하지요. ‘진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람이지만 이것을 흙이라고 간주했을 때에만 진짜 사람이 눈에 보입니다. 당신은 자꾸 사람이라고 여기니까 진짜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만든 신령한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예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흙으로 왔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내가 자꾸 사람으로 왔다고 여기니까 진짜 천사 같은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예요. 천사 같은 사람이 안보이니까 자꾸 뭐가 보이느냐 하면 나를 천사 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계획이 안 보이는 겁니다.

내가 흙이며 하나님이 만드실 천사 같은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할 경우에만 누가 좋으냐? 예수님이 좋고 하나님이 좋은데, ‘하나님, 내가 세상에서 이런 어려운 일을 당했으니까 빨리 보상해 주세요. 빨리 이 어려움을 회복해 주세요.’ 라고 들이밀면 하나님의 계획이 별로 안 좋아요. ‘하나님, 빨리 기적을 베풀어 달란 말이야. 내가 당신에게 헌금을 얼마를 했고 봉사도 많이 했으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그런 모습을 만들어 내라는 말이야.’

이렇게 윽박지르면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천사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기를 원하는데 그 사람은 자기의 원함, 자기가 손해 본 것을 보충해 달라고 빌면서 그렇게 복달라고 하는 거예요. 진짜 복은 천사 같은 사람이 되는 이것인데. 진짜 복은 뭐냐? 천사 같은 사람이 있고 나는 지금 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것이 복입니다.

내가 지금 하루 세끼를 먹고 어떻게 살든지, 나는 지금 흙으로서 아파트에 살고 흙으로서 교회 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어떤 작용에 의해서 내가 천사 같은 사람이 되느냐, 거기에 대해서 마음이 즐겁고 기쁠 것이 아니냐, 그 말입니다. 제 말이 틀린 말이 아니지요? 틀린 말이 아닌데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아요. 이상하지요? 어떤 부자가 와서 ‘의존교회 출석하는 사람에 한해서 1인당 10억씩, 애들은 5억씩, 목사님은 한 20억 드리겠습니다.’ 하면 얼마나 감사하고 기분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흙이고 장차 천사됩니다.’ 그만 해라 많이 들었다. 별로 즐겁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아요. 그만큼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면서 자기생각만 한다는 그 죄를 평생토록 인간은 안 버리고 살아요. ‘나는 내 생각에서 벗어날 의사가 없습니다. 나는 평생토록 내 생각대로 살 겁니다. 흙이라도 좋다. 지옥이라도 좋다. 까짓 거 지옥이라도 간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별로입니다.’ 이 왕고집, 이 독한 것!

그래서 오늘 제가 의존교회 여러분의 환상을 다 깰 겁니다. 여러분은 흙입니다. 아주 제가 독하지요? 제가 아까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어요. 할아버지 되었으니까 돌아가셨다, 그렇게 하지만 저도 할아버지 되고 여러분도 할아버지 됩니다. 내가 할아버지 될 때 그런 소리하면 기분 나쁘지요. 어쨌든 그분은 우리보다 약간 몇 발자국 앞서서 이생을 떠난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순서 따라 곧 떠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도 떠날 때 그런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왜 떠나는지 하나님의 계획이 뭔지, 하나님의 계획만 알면 오늘 떠나든지, 지금 떠나도 그리 섭섭해 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 아닙니까? ‘하나님, 오늘 떠나도 괜찮습니다. 오케이. 섭섭한 것 없습니다. 그 정도 되어야 기쁨이 충만한 것이고 은혜가 충만한 것이고 하나님을 알게 된 보람이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해서 돈 몇 푼 얻어 챙기는 것, 돈 얻고 나면 하나님 안 찾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돈 떨어져야 돈이나 달라고 하나님 찾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자진해서 천사 못된다. 왜? 흙에 속할 때는 흙에 속한 만큼 그 죄가 계속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누가 내 몸에 손을 대. 안 돼. 나는 내 몸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천사가 되든지 악마가 되든지 내 몸이니까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손대지 마. 하나님도 손대지 마. 내 몸 내가 착실하게 알아서 할 거야.’

이러한 악한 본성, ‘나는 내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단 말이야.’ 이런 본성 하에 성경을 백독하고 천 독 하고, 성경공부를 아무리 해 보세요. 이것 천사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쉽다 하고 더 어려운 것을 하겠습니다. 이런 것이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 때 흙으로 살아라. 아무개, 아무개 내가 천사되게 해줄게.’ 이런 식으로 하시면 될 문제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했느냐? 이 문장 잘 들어보세요. 어렵습니다.

흙에 속한 죄악 된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 살아가는 그 모습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천사같이 신령한 사람으로 만드는 그 모델과 유형을 그 속에서 찾아내기 위해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그냥 그대로 살게 하신 겁니다. 어려운 소리인줄 알았지만 그냥 했습니다.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여러분 바벨탑 알지요? 제 2롯데 월드를 짓는다는데 그게 122층이랍니다. 그 조감도를 보니까 꼭 바벨탑 생각이 나요.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 그것을 하나님께서 지켜보니까 그들이 모여서 탑을 쌓아요. 그 탑이 무슨 탑입니까? 바벨탑입니다. 바벨탑을 높이 짓게 된 것은 무슨 연유냐 하면, ‘바벨탑을 짓는 너나 나나 남자나 여자나 우리는 모두 다 한마음이다. 우리는 두 마음이 아니라 딱 한마음으로 뭉쳐져 있다.’ 고 표를 낸 겁니다.

우리는 무슨 마음? 두마음? 세 마음? 아니지요. 한 마음. 성경을 보면서 이 바벨탑이 한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참 많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나는 천국이 너무 좋아서 천국가고 쟤는 지옥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지옥 가. 그래서 네 마음과 내 마음은 딴 마음이야.’ 라고 이렇게 자꾸 오해들을 하시는데, 모든 인간은 누굴 만나도 한 마음입니다.

불교신자, 기독교신자, 이슬람신자, 교회 안다니는 사람, 어른, 어린이, 남자, 여자, 건강한자, 병약한 자 할 것 없이 전부 다 똘똘똘, 뭉치게 되어 있습니다.『피』라는 책의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뭐냐 하면 ‘사람은 정으로 산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나 지옥갈래. 너는 천당 가.’ 하든지 ‘나는 천당 갈래. 너는 지옥 가.’ 라는 식으로 사람들끼리 천당과 지옥을 분리해서 천당 가고, 지옥 가는 그런 것은 없다는 거예요.

지옥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천국가고 싶든 지옥가고 싶든 그 마음은 다 한마음입니다. 그 한마음이 탑을 건립하는 정신인데 그 한마음이 뭐냐? 성경에 나오는 대로 제가 적어보겠습니다. ‘우리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자.’ 제가 바벨탑 이야기를 했고 그 바벨탑을 쌓는 이유는 ‘흩어짐이 없이 전부 한마음이 되자.’고 했기 때문에 바벨탑이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벨탑을 쌓은 이유가 뭘까요?

제 2롯데월드를 짓는 이유는 상가분양을 위한 것이라면 옛날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지어서 높이 올린 이유는 너 나 할 것이 없이 한마음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음이 뭐라고요? 다 같이 따라서 해 봅시다. ‘우리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자.’ 이것이 바로 한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땅에 살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전부 다 하나님께로 가자.’ 이것이 한마음입니다.

종교지요. 교회 나오는 목적도 이것 때문에 절에 가는 목적도 이것 때문, ‘우리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자.’ 다시 말해서 이 지상에 있는 인간을 탑처럼 올리고 또 올려서 올라가면 어디에 도달됩니까? 하늘에 도달되죠. ‘야, 드디어 우리 힘으로 하늘에 올라간다.’ 라고 하는 것이 모든 인간들의 한 마음입니다. 평양에 가면 유경호텔이라고 십수년 넘게 짓고 있는 호텔이 있답니다. 그 빌딩이 105층짜리에 높이가 300미터가 넘는 건물입니다.

왜 평양에 그런 건축물을 짓느냐 하면 그걸 보는 북한 주민들이 뭘 생각하겠습니까? ‘우리가 지금은 힘들고 배고파도 저 빌딩처럼 우리도 한 마음 되면 기어이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마음이 하나 되겠지요? 탑을 세울 때는 이렇게 마음이 하나 되는 겁니다. 2002년도에 상암 축구경기장에서 온 국민이 월드컵 치르면서 하나 되었죠.

그 때 어떤 미친 시민이 ‘대한민국 대표팀은 예선 탈락이나 해라.’고 고함지르면 얻어맞습니다. ‘왜 전부 다 4강 진입 하도록 한 마음으로 원하는데 너 혼자 딴청 피우나.’ 하고 얻어 맞습니다. 만약에 16강도 아니고 4강도 아니고 우승했으면 ‘대한민국 만세’ 하면서 대단했을 거예요. 예선탈락도 아니고, 16강, 4강, 결승, 급기야 우리이름이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는 거에요.

여러분의 엄마들이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뭡니까? ‘너는 부지런히 공부해서 더 높은 곳을 향하여 네가 최고의 사람이 되어라.’ 우리 엄마나 아빠들이 애들에게 그렇게 곧잘 가르치지요? ‘너는 천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소리는 안하지요? 교회 다니니까 하기야 하겠지만 주로 하는 소리는 ‘너는 점점 더 실력을 쌓아서 남들과의 게임에서 패배하지 말고 이기고 또 이겨라. 이기리~라!!!(♬)’

여기에 한 마음으로 탑을 세웠다는 어떤 사람도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도 흙이며 죄를 지었으며 성경의 하나님의 계획은 생각지도 아니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내 믿음이 하늘에 올라갈까.’ 하는 그 방향성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다 꼴아박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다 더 높은 곳으로 나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연초가 되면 교회 마다 신년대축복성회, 7주연속축복성회를 합니다. 이곳 신정동에도 많이 있을 거예요. 그것은 교회가 돈을 받고 희망을 팔아먹는 겁니다. 돈 주고 희망을 살생각만 하지 하나님의 계획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람들이 무조건 한마음으로 원하는 것은 뭡니까? ‘올해는 희망찬 새해가 밝기를 원하는 것.’ ‘올해는 희망찬 새해가 밝기를 원한다.’는 그 말은 ‘올해, 2008년도는 별로 희망차지 않았다.’는 그 말이거든요.

‘2008년도는 내 맘에 안 든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흙인 주제인 인간이 ‘2008년도는 내 마음에 든다.’ 혹은 ‘내 맘에 안 든다.’ 그렇게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여러분은 2008년도를 누구 덕분에 살았습니까? 제가 지금 자신만만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2008년에서 살아남은 사람만 지금 여기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죠.

누구덕분에 살았어요? 주님 덕분에 살았잖아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감사했습니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2008년도는 영 내 맘에 들지 않다.’ 고 하는 거예요. ‘내 맘에 들지 않는다.’ 는 뜻이 뭐냐 하면 ‘2009년도는 희망찬 새해가 되게 해 달라.’는 거예요. 그만큼 2008년도는 시답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2008년도 끝나고 2009년도는 마음에 듭니까?

인간이라 하는 것은 하늘에 닿기 전에는 마음에 드는 인생이 없어요. 왜? 하늘에 닿기 전에는 항상 미흡함이니까. 저는 신자건 불신자건 간에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것 자체가 너무 너무 안타까워요. 자기계획만 잔뜩 있고 하나님의 계획은 없어요. 자기계획만 잔뜩 짜놓고 하나님이 그것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야 보람찬 한해가 된다는 거예요.

신자건 불신자건 하나님이 관리하지 내가 나를 관리하지 않습니다. 내 뜻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어요. 내 뜻대로 안되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면 감사가 나와야 되는데 내 뜻대로 안된다고 감사가 안 나오는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하루하루 감사가 없는 생활 = 하나님의 계획이 안중에도 없는 생활.

제가 이렇게 흙에 속한 사람을 잔소리처럼 길게 늘어놓았는데 그 이유가 뭐냐? 흙에 속한사람이 신령한 사람 될 때, ‘어이, 너 흙에 속했으니 신령한 사람으로 바꿔 들어가라.’ 그런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신령한 사람의 본질이 이 흙에 속한 자기밖에 모르는 이 속에 침투하는 식으로 된다는 겁니다. 그게 어디 나오는가? 고린도후서 4장에 나옵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어려운 것이 또 있는데 계속 해봅시다. 바벨탑으로 인해서 다 한마음이 되어있는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흩어지게 했어요. 흩어지니까 위로 올라간 바벨탑이 옆으로 흩어진 바벨탑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바벨탑을 짓던 사람들이 온 지구상에 흩어지니까 그것은 바벨탑의 긴 그림자라 그 말입니다.

이들이 흩어진 것이 바벨탑을 짓기를 그만 둔 것이 아니고 단지 유보했을 뿐입니다. 이들이 흩어졌다고 해서 하나 아닌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바벨탑의 그 정신, ‘우리가 하늘 대까지 닿게 해서 우리 이름을 내자.’ 하는 그 한마음의 정신이 이제는 옆으로 퍼진 거예요. 키가 작은 사람 밥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키가 더 자라는 것이 아니고 옆으로 퍼지는 거죠.

그렇게 옆으로 퍼지니까 흩어지니까 언어가 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각 민족이 생기고 그들의 언어가 생깁니다. 언어가 맞는 사람끼리 흩어졌는데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인간의 언어에는 항상 무엇이 깔려 있느냐?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해서 하늘에까지 우리 이름을 내자.’라는 것이 들어있는 말들을 한다 이 말이죠.

바벨탑 쌓을 때 그들이 말을 했는데 그 말만 재미있게 한 것이 아니고 목적이 있었는데 ‘우리 이름을 하늘에 내자.’ 하는 목적으로 말들을 했잖아요. 그것을 뭉개니까 그대로 퍼진 채 재잘재잘 하는 소리가 뭡니까? ‘우리는 우리 이름을 하늘에 내자.’ 하는 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렇게 뭉친 인간이 흩어져도 결국은 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는 겁니다.

천사 같은 신령한 사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를 미리 해야 합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금신상, 그것도 한 덩어리잖아요. 그렇다면 만약에 하늘나라 가는 사람이 있다면 똑같은 언어를 사용할 것이고 똑같이 한 덩어리가 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물로서 사람을 구원합니까? 아니면 복음으로 사람을 구원합니까? 십자가복음으로 구원하지요.

그 대목을 읽어볼게요. 로마서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천국을 보여달라고 하니까 천국도 안보내주고 지옥을 보여 달라고 하니까 지옥도 안 보여줘요. 안보여주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로마서 10장 8절에 있는 말씀으로 답합니다.

로마서 8:8-10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

무엇이 네게 가까이 있다고 합니까?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지요. 그 말씀이 ‘믿음의 말씀’인데 그 믿음의 말씀의 내용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 말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죠. 그것을 믿으면 10절에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어디에 이른다? ‘구원에 이른다.’ 그러면 다시 봅시다.

사람이 구원받는데 물위를 걸어야 합니까? 오병이어 기적을 봐야 합니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구원받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받지요. 11절에 ‘누구든지’라고 나오지요?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지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바벨탑을 세울때에 무엇으로 세웠습니까?

벽돌로 세웠기는 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같은 말을 주고받는 언어가 같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 흩어 버리니까 다 흩어졌지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국 가는 사람이냐 하면, 똑같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는 사람은 필리핀에 있든지 미국에 있든지 하나의 바벨탑처럼 한 형제가 되고 한 몸이 되겠지요.

그래서 한국이면 한국말로, 미국이면 미국말로 말씀을 전해서 그 듣는 사람이 ‘그렇다.’ 하고 입으로 시인하면 천사처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간단한데 왜 어려우냐 하면 기존의 흙에 속한 사람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이미 사용하는 언어가 있지요. 그 언어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한다.’는 목적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를 얼마나 유명하게 하고 내 가치를 얼마나 돋보이게 하느냐?’ 이미 그 정신이 가득 들어 있잖아요. 그 정신이 들어 있는데 외부에서 무슨 말이 날아온다? ‘주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했다.’는 새로운 복음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요. 그러면 우리 내부에서 어떤 다툼이 있겠습니까? 내속에서는 내가 위대하고, 들어오는 말씀은 예수님의 이야기이고, 그 내부에서 예수님이 위대하냐, 내가 위대하냐, 그 충돌을 일으키겠지요?

그 충돌을 일으키는 작업을 누가 하느냐, 처음에 흙이 사람 될 때 무엇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생령을 준 것처럼 흙이 천사되려면 성령께서 개입하는데 어떻게 개입하는가? 복음의 말씀으로 개입해서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우리의 타고난 죄성, 나밖에 모르고 나의 위대함만 강조하는 것을 정죄하고 책망하고 부수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속에 날마다 새롭다.’ 이 말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이 부도나서 한 10억을 손해 봤습니다. 교회 와서 ‘하나님아버지, 10억을 찾아주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럴 때 목사가 ‘여러분, 기도하시면 10억을 주십니다.’ 그렇게 해야 되겠어요? 그 사람이 왜 10억을 되찾으려고 하겠어요. 그 사람이 10억을 가지고 있을때는 보통사람이 1억 2억가지고 있다 하면 그 사람은 10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얼마나 부자입니까?

그 사람은 바벨탑으로 치면 1층은 아니고 한 4층쯤 올라갔잖아요. 물론 20층보다는 못하지요. 20층은 200억가진 사람이 올라가 있거든요. 하늘꼭대기까지는 또 어림도 없겠지요. 거기는 한 수백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사람도 한 4층정도는 올라갔지요. 그런데 10억이 부돈났으니 4층에서 어디로 내려갔습니까? 1층이 되어버렸습니다.

1층이 되니까 4층 시절이 그립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층에서 4층 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잖아요. 이것이 바로 인간이 흙이 될 수 밖에 없는,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할 수 밖에 없는 죄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뭐라고 합니까? ‘당신이 기도하시면 20억을 벌어서 4층이 8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 버리면 그 사람은 계속해서 그 안에 4층에서 8층, 이런 바벨탑을 쥐고 있지요. 그러면 그것은 자기계획입니까, 하나님의 계획입니까? 자기계획 아닙니까. 그런데 그 사람을 향하여 ‘그런 것은 생각하지 마시고, 그것이 바로 죄인데 그 죄를 위해서 주께서 죽으시고 당신은 오늘 밤에 죽어도 낙원에 갑니다. 천사됩니다.’ 할 때 그 교회 교인이 그 교회에 다시 오겠습니까, 안오겠습니까?

교회 안 나오겠지요? 노리는 목적이 달랐으니까요. 그래서 그 교회는 교인수가 줄면서 5층짜리 교회가 몇 층 되었어요? 3 층 되었지요. ‘목사님, 오늘 본문에 안 들어가고 왜 주변 이야기 같은 엉뚱한 소리만 하십니까?’ 라고 하실 수 있겠는데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 나오는 그런 사람을 못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이런 인간은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성령께서 그런 인간을 우리 내부에서 책망해가면서 만들어 내는 거예요. 쉽게 그림을 그리겠습니다. 여러분, 조명기구 아시지요? 이것이 환하게 비추는 조명기구입니다.

만약에 이 조명기구에 나비모양의 딱지를 붙이면 그림자에 나비가 나오겠지요. 만약에 코끼리딱지를 붙이면 그림자는 코끼리 그림자가 나오겠지요. 에베소서 4장과 5장에 이런 저런 말씀들, ‘빛의 자녀처럼 살라.’는 등의 말씀들이 많이 나오지요. 이게 뭐냐 하면 주님이 만든 십자가조명기구에 인간이 이렇게 딱지처럼 붙어 있으면 빛은 조명기구에서 나와서 우리는 하나의 빛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뭘 보여주는냐?

그리스도의 용서를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조명기구에 이렇게 모양을 붙여보면 이런 식으로 그림자가 있을게 아닙니까? 그 조명기구에서 용서가 나온다면 그 용서가 우리를 투과해서 세상에 무엇을 남긴다? 용서를 남기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성경말씀을 내가 받아서 내가 실시해버리면 나는 뭡니까? 흙이잖아요.

그러면 용서를 하건 뭘 하건 간에 다 누구 이름을 빛낸다? ‘나처럼 용서 잘하는 사람 나와보라고 해. 나처럼 화 안내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처럼 착한 사람 나와보라고 해.’ 전부 다 자기 이름을 빛내는데 이것이 동원되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들이 ‘여러분, 에베소서 5장을 보세요. 여기 있는 대로 새사람을 입었으면 새 생활을 해야지.’ 라고 하니까 실제로 성경을 보니까 성경이 안틀리거든요.

문제는 세상에 나가서 돈벌이에 바쁘다 보니까 이 성경말씀에 위배되는 생활을 해야 되고 그런 말을 해야 된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술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고 하니까 직장에서 술 먹는데 안가니까 그만 승진에서 누락되어서 생계가 말이 아닌 거예요. 예수님이 시키는대로 못하니까 예수님이 자꾸 잔소리를 하는 셈이 됩니다.

계시가 뭐라고 했습니까? 잔소리라고 했습니까? 지시라고 했습니까? 예수님의 용서를 저쪽 사람에게 지시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나는 조명기구에 붙는 딱지가 되어서 용서를 따라서 저쪽에 가서 증거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용서를 전하려면 나는 뭐가 되어야 합니까? 나는 날마다 용서받은 사람이 되어야 용서가 나오지 ‘나 잘났다.’고 하면 무슨 용서가 나옵니까? 자기 잘난 것이 나오지요.

모든 인간의 본성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내 이름이 우수하고 훌륭하고 대단한가?’ 이것이 인간에게 담겨 있는 본성인데, 거기다가 용서하라고 하니까 더 기가 살아서 ‘그렇지, 내가 제일 용서를 잘하지.’가 되어 버리면 그것이 주님의 용서입니까, 자기 자랑입니까? 그것은 자기 자랑이 되는 거예요. 다음시간에 계속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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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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