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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가복음 11장 1-10절 제목 : 나귀와 호산나설교마가복음

막 11: 1-10 (나귀와 호산나)

이름 : 우리교회(IP:124.59.84.82)

본문 : 마가복음 11장 1-10절
제목 : 나귀와 호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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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2-22 13:37

나귀와 호산나

2009년 2월 22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11:1-10

(막 11:1, 개역)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막 11:2, 개역)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막 11:3, 개역)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막 11:4, 개역)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막 11:5, 개역)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하매』
(막 11:6, 개역)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막 11:7, 개역)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막 11:8, 개역)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막 11:9, 개역)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막 11:10, 개역)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타 실 나귀를 고르는데 일을 일부러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것은 나귀 고르는 일을 통해서 제자들 자신들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로 의미가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무심코 주인 끈에 매여 한가롭게 놓여 있는 나귀, 이 나귀는 결코 주님에게 쓰임받기 위해 사전에 워밍업을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런 사전 수작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람들 속에 묶여 있을 뿐입니다.

이런 나귀 위에 예수님께서 올라탄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말씀이 그 나귀에게 도달되었을 뿐입니다. “주께서 쓰시겠다” 이 한 마리로 인하여 나귀 주인은 군말없이 자신의 나귀를 예수님에게 내어주었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대목인 “호산나”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군중들의 외침 속으로 예수님은 흡족하게 나귀를 타시고 합류하십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위한 배경입니다. 여기에 나귀도 동원되고 인간들도 동원되고 제자들도 동원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과연 우리 외부 인사로부터 선택받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일생을 나의 선택으로만 채워지기를 원하십니까? 어느 가정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대화 가운데 이런게 있습니다. .

엄마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너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자”, 그러자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합니다. “싫어!” 엄마나 불쾌합니다. 그래서 반문입니다. “왜 싫은데?” 그 때 아들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논조가 흘러나옵니다. “엄마는 엄마의 자기 선택에 의해서 교회에 나가듯이 나도 나의 선택에 의해서 교회 안 나갈거야”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보통 엄마는 말문이 막힙니다. 아들의 논조에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쏭달쏭 알 길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점은 딴게 아니라 이것입니다. 즉 “엄마는 엄마 자기 선택으로 교회 나간다”라는 논조는 성경상으로 잘못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참된 성도라면 결코 자신의 선택으로 교회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엄마는 주님에 의해서 불가능한 영역 안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엄마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교회 나가는 것도 자기 선택적 판단에 의해서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참된 성도만이 아는 사실인데, 참된 성도에게 있어서는 인간인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인도받아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겁니다. 아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짜 신앙인과 참된 신앙인의 차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그 어떤 불가능성도 용납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되는데 있어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 오기가 나서라도 그 불가능성을 가능성으로 보란 듯이 뒤바꿔놓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당치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구원이 안된 나를 구원받기 위해서 나는 나를 데리고 예수님께 갑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선합니다. “예수님, 애는 곧 나 자신인데요. 평소에 꼭 천국에 가고 싶어해요. 그러니 이 나라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잘 믿고 있다고 제발 인정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의 모순점은,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가는 ‘나’와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나’가 둘로 분리되어 있어 어느 것이 진짜 ‘나’인지 알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이 논조는, 자신이 하나님 위에 놓여 있는 상위 절대자 노릇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관여하고 간섭하고 조언하고 압력을 가하는 자를 항상 상정하게 됩니다. 이것은 엉터리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반대로 철저하게 불가능성을 외칩니다.

인간은 그 어떤 수를 쓰더라도 구원되는데 성공할 자는 없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우표딱지와 같아서 두께가 없이 세상에 딱들어붙어 있습니다. 그림 속의 나무가 실제로 살아있는 실물의 나무가 아니듯이 인간들 속에서 그려내는 신은 인간들이 창조해낸 가짜 신입니다. 인간들로부터 부림을 당하는 신이요 인간으로부터 쓰임을 받는 신이요 인간의 선택을 존중해주어야만 하는 그런 장난감 같은 신입니다.

참된 신은 인간 중심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하고만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뿐입니다. 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는 자와 그렇지 않고 버림받은 자들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쓰신다’는 속성이 빠진 나귀 위에는 타시지 않습니다.
그들의 호산나 환호 속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쓰시는 나귀’를 타시고 진입하십니다. 이로서 호산나가 예수님을 위를 뒤덮습니다. 그리고 나귀도 같이 호산나를 덮어씁니다. 호산나를 유도하고 호산나를 이끌어내기 위해 예수님께서 준비했던 바는 ‘주께서 쓰시겠다“는 바로 그 사실 자체입니다.

창세기 2:3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을 불어넣지 아니하면 인간은 그냥 하나의 점일 뿐입니다. 면적도, 부피도, 크기도 없고 그냥 존재만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점덩어리가 같은 인간도 성령에 들어오게 되면 비로소 ‘영적 인간’이 되는 겁니다. 육으로 난 사람은 ‘영의 일’을 분간치 못합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자만이 영적 인간됩니다.

바로 이 사실로 인하여 세상에서는 여전히 ‘구원불가능성’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참으로, 진실로 구원받은 자라면 이 ‘구원불가능’을 주춤주춤 의도적으로 누락하려고 하지를 않게 됩니다. ‘구원불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구원은 곧 교회가 가짜들만 가득차기를 전도한 셈이 됩니다.

가짜 성도를 전도하는 이를 아무리 생각해주어도 구원받은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스마엘이요 한 사람은 이삭입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의 가능성에서 나온 아들이요 이삭은 아브라함의 불가능성에 나온 아들입니다. 이 둘 중에 누구 구원받은 자입니까? 이스마엘은 그냥 살다가 간 사람입니다만 이삭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

즉 그는 죽었지만 숲 속에 있었던 수양 덕분에 되살아나게 된 자입니다. 그러니싸 수양의 대신 죽음으로 되살아난 자가 이삭인고로 이삭은 분명히 구원불가능성을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어떤 두 친구가 다음과 같이 대화합니다.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여기에 격분한 다른 친구가 오기가 나서 씩씩거립니다. 그러다면 며칠 후 다시 만났습니다. 전에 구원 못받았던 친구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네 말 듣고 참으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막상 구원받고 보니 정말 네 말이 맞았다. 정말 구원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함이었다”고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직 성령의 선물로만 구원됨을 그 어떤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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