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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선악을 아는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묻고답하기미가

선악을 아는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이름 : 관리자(IP:124.59.84.82)

1. 왜 주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번성하게 하고 가나안땅으로 들어와서 점령하게 한것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 창3:22절에서 선악을 아는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란 부분에서 우리란 부분좀 설명해 주십시요
그리고 주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먹은것이 문제인가요

위의 두 질문의 답변과?

제가 추가 해서

3. 우리 와 하나 에 대한 목사님들의 생각을 듣고 프네요
우리는 뭔지 또 하나는 뭔지?
우리 중 하나 란 무엇을 말하는지?

이근호(IP:117.♡.140.25)

09-02-14 17:30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어 내므로서 '만들어내진' 부류와 '만드신' 부류가 발생했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우리'란 '창조주 부류'를 뜻합니다. 이곳에서는 인간류가 개입할 수 없습니다. 이 '창조주 부류'에는 인간이 미처 모르는 창조 원리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악의 원리'입니다. 악마는 이 점을 알았습니다. 이 선악의 원리에 의하면, 신에게 대드는 피조물은 무조건 저주받은 원리입니다. 악마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신의 지식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선악의 원리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되지 못함으로 불만을 가져 신에게 도전했던 악마는 결국 영원한 저주스러운 운명을 지닌채 인간의 세계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유혹해서 저주스러운 자기만의 '선악의 세계에 합류시켰습니다. 즉 "선악을 아는 지식을 알며 신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 창조의 원칙을 벗어내고자 악마가 시도한 것입니다. 이 속성이 온 인류로 번져서 창세기 11장에서는 "우리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자"는 식으로 자기 본성을 드러낸 것입니다.

관리자(IP:124.♡.84.82)

09-02-14 17:59

좀 더 많이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세요 많은 분들이 딱 보기에도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근호(IP:117.♡.140.25)

09-02-14 18:50

1번 답변이 빠졌는데 2번과 연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인간이 범죄하므로서 '인간'이란 존재는 절대로 '선악에 관한 지식을 몰라야 할 존재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를 따먹지 못하는 인간은 저주받는다는 것도 기정사실화 되고 말랐습니다. 악마의 전략은 이러합니다. 즉 "인간들아, 현재 선과 악에 대해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냥 밀어붙이자. 이것으로 '인간'이라고 우기자"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깨서 인간이 불가능한 생명을 얻게 하셨는데 그것이 출애굽을 통해서 '약속의 땅'까지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이란 '탈 애굽'이라는 성격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땅'에는 신명기에 의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약속이 갖고 합류되기를 기다리는 장소입니다. 이 사실은 곧, '약속의 땅'이란 '하나님의 이름'이 동행 능력 없이는 참여될 수 없는 공간임을 시사해주는 겁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탈 애굽' 여정에서 곳곳에 '하나님의 이름'에 의해서만 통과가 성사되는 장애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정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비인간적 속성(선악 의식)으로서 '하나님의 이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에 자력으로 도전해보는데 매번 실패하죠. 하지만 그 실패의 현장이 곧 '하나님의 이름'의 생명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벌린 전쟁의 전리품이 되는 자기 백성과의 만남으로 성사되고 그 백성들 속이 곧 하나님께서 영원히 거하시는 성소가 됩니다. (출15:17) 따라서 조금이라도 선악적 인식을 가지고 구원의 능력 안으로 섞는 모든 법적인 요소는 악마가 집어넣는 독약이 되는 겁니다.

채한욱(IP:122.♡.42.7)

09-02-15 13:50

w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바리세인 질문과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바리세인 질문은 시험 하는 질문이요 제자들의 질문은 앎의 질문입니다. 관리자께서 질문을 하섰는데 어디에 속 한질문인지요? 만약 제자들의 질문 일것 깉으면 목사된자 로써 신실하게 답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이 딱 보기에도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관리자(IP:220.♡.176.150)

09-02-15 13:57

이미 제가 답한 답변이 있습니다. 저에게 늘 질문하는 분이 있는데 저도 그 분에 대해서 상세히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복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고 늘 질문해 주신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교회다닌지 얼마안된 분이라고만 소개하더군요)

아래는 제가 답한 답변들 입니다. 저도 너무 비논리적이고 깔끔하고 쉽게 설명을 못해서 혹시나 싶어서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분 없는가 해서 올려본 질문 입니다.

==============

2009/02/14 14:22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2-14 08:04:46,
왜 주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번성하게 하고 가나안땅으로 들어와서 점령하게 한것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답변 :

애굽의 번성이 그냥 번성이 아니라 에덴동산의 잔재성으로 번성한 겁니다. 자 그렇게 되면 에덴동산을 철폐시킨 의미가 사라집니다.

마치 노아홍수를 통해서 다시는 물로써 심판하지 않겠다 라고 하신 은혜의 조치를 인간들은 다시 바벨탑을 세움으로써 은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노아홍수에 대비하는 자세를 갖추어버리는 겁니다. 그 바벨탑 쌓기의 원조가 바로 가인의 에녹성 쌓기이고 결국 바벨탑을 쌓는 인간은 국가라는 인간의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국가인 인간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 라는 예정과 예비하심을 무시하는데 일관하게 됩니다.

결국 천국은 바로 이런 인간의 나라 와의 차이성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은혜를 양보 못하는 취지입니다. (곧 전쟁이란 한 쪽의 심판이 확실해야 한 쪽의 승리가 확실하다는 겁니다. 그로 인해서 평화라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번성이라는 것은 허물어 지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상대적인 의미입니다. 과연 번성인지 아닌지를 허물어 보면 압니다. 허물기 까지는 쭈욱 쭈욱 높이 높이 번성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이 더 이상의 번성이 없을 것이다 라고 여길 정도로 다 속아넘어가야 허물어 뜨리는 것이 의미가 있겠지요.)

사랑의 나라는 인간의 선악의 법에서는 살 수 없도록 조치한 겁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침투 하듯이 또 침노당하듯이, 인간의 나라와 약속의 나라는 서로가 대립적인 전쟁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육의 소욕은 성령을 훼방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의 소욕을 방해하는 겁니다.

2009-02-14 08:16:06,
창3:22절에서 선악을 아는일에 우리중 하나같이 되었으니란 부분에서 우리란 부분좀 설명해 주십시요
그리고 주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먹은것이 문제인가요

답변 :

이 구절을 이용해서 써먹는 방법이 바로 우리 라는 단어가 복수이니까 삼위일체를 적용하는데 써먹곤 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는 이 우리 라는 단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지금 좀 위험한 발언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선악을 아는 일은 예수님 말고는 알 필요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뱀을 방치 하심으로써 선악을 아는 것에 도전을 할 수 밖에 없는 권세 아래에 가두기 위해서 뱀이 활용이 됩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먹은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약 그렇게 되면 뱀의 말 안 듣고 안 먹으면 됩니다. 조건을 반대로 갖추면 되겠지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럴 권세가 없습니다. 이미 뱀의 권세가 이미 강하기에
죄악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이미 죄가 아담과 하와를 다루고 있지 아담과 하와가 죄를 다스릴 입장이 못 됩니다. 그래서 죄 곧 사망을 다스리는 입장이 못 되기에 사망 아래에서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행동이 바로 선악과를 먹게 된 겁니다.

자 이제 부터가 중요합니다. 이제 사랑은 바로 이런 자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약속이 진행이 되었다는 겁니다.

마귀는 에덴동산 파괴 자체 만으로 자신들이 성공했다고 우기지만
정작 주님의 시작은 이제부터 창조의 시작인 겁니다.

창조 되었다는 것을 피조물인 인간은 모릅니다. 그래서 그 차이로써 창조를 알도록 하시는 은혜가 바로 비창조 세계 속에서 뽑혀나와서 창조의 세계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것을 엑소더스 탈출로 인한 비창조 세계에서 뽑혀나와서 창조로 들어가는 구원을 말하는 겁니다. 결국 인간들이 창조 조차도 선악적인 법으로 보는 이유는 창조가 완벽한데 미흡했기 때문에 깨어진 것 아니냐 라고 법적으로 보겠지만 존재론적으로 말이죠.

그러나 창조란 창조 해 놓고 완료 되었으니 손 때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이를 낳고 아이 자체가 완료이니까 손 때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사랑이라는 관계성으로 먹이고 입히고 간섭을 하는 겁니다. 그 간섭이 사랑인 겁니다.

그래서 너가 어떻게 창조 되었는지 아느냐 라고 계속적으로 간섭하는 겁니다.

오히려 완료 되게 창조 했다면 간섭 하지 말아야 되지 않느냐가 바로 선악인 겁니다.

은혜로만 창조된 피조물이 선악의 법으로 따지게 되면
창조를 운운하면서 창조를 빌미로 삼아서 늘 창조자의 마음을 찌르는 겁니다.

그래서 창조자 곧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려며는
가짜 아버지 손에서 커봐야 하는 겁니다.(몽학선생)
그래서 그 차이를 느껴봐야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선악 이라는 법의 아버지, 또는 가짜 남편인 율법이라는 전남편)
(그래서 율법이 가입이 된 것은 이 선악의 내막을 제대로 알아라고 준 겁니다. 죄 아래 있음을 말이죠. 그런데 어설프게 아니까 율법 흉내를 내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울입니다. 그 흉내가 결국 예수님을 핍박하는 겁니다. 그런데 제대로 알게 되니까(롬 7-8장) 율법이 나를 곤고케 함을 알게 되고 비로소 예수 밖에는 정죄함 뿐이고(율법 뒤에 숨어본들 소용 없음, 거룩한 무화과나뭇잎으로 자기를 가리우는 짖 일 뿐임) 오로지 율법 외에 다른 한 의 가 외부에서 선물로써 주어짐으로써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결국 예수 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알려면 예수 밖에는 즉 모든 인간을 율법 아래에 가두었기 때문에 예수 밖인 율법 아래에서는 정죄함 뿐임을 그 정죄함 뿐인 율법을 남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율법의 정죄함을 두지 않을려고 한다는 사실을 바울은 비로소 늦게서야 자기자신에게 적용 시켜 보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 라고 남이 아닌 자신이 바로 악마임을 알게 된 겁니다. 그 원수에게만 사랑이 의미가 있고, 그 죄인 중의 괴수에게만 구원자가 의미있는 겁니다.)

선악 그리고 율법은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는 자에게만 해당 되는 겁니다.
그런 자가 바로 [우리]에 해당 되는 자입니다.

그런데 자아라는 것이 선악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상
우리에 해당 되지 못하고 자아라는 개별성으로 따로국밥처럼 떨어져 나오게 됩니다.

오로지 선과 악 그리고 율법을 다 완료한 자 만이 이 우리 라는 관계성에 놓여지게 되는 겁니다.

이 우리는 유일하게 예수 안에서만 완료 됩니다. 그것도 나 라는 자아가 아닌
예수님 홀로만이 완료해서 예수 밖과 예수 안으로 나누어 지는 그 의미 속에서
예수 밖 이라는 악 즉 지독한 미움을 완료해서 주어지고
예수 안 이라는 선 즉 지독한 편애를 완료하심으로써 주어지는

바로 십자가의 사건으로 사랑(새언약)을 다 이루심으로 주어지게 되는 겁니다.

결국 우리 중 하나 가 되었다 라고 했기에

두 패거리 중에 하나의 편이 된 겁니다.
즉 창 2장의 한 몸이 되는 원리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따로국밥을 챙겨먹는 방식에서 하나의 편이 된 겁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와의 하나 한 몸 된 방식이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 2장에 언급한 한 몸의 의미의 차이성을 드러내는 겁니다.

그렇다면 마귀처럼 하나님 자리를 넘보다가 쫏겨난 것처럼
그 아비의 그 자식이라고 마귀처럼 하나님 같이 될려다가 쫏겨난 그 사고방식을 그대로 소유하게 된 겁니다.

창세전의 마귀들의 심판하고자 하는 지독한 미움과 창조를 통한 지독한 편애를
창조를 통해서 이 둘을 구체화 시키는 겁니다.
결국 타작마당을 창조한 겁니다. 그것을 알고 마귀는 이 타작마당을 방해하는 겁니다. 아예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성공 합니다.
그런데 웬걸 전혀 손상입지 않고 창조의 원리 다 추구하시고 자기백성 데리고 천국으로 가버리는 겁니다.
즉 지독한 미움 속에 다 들어 갔는데 성공 했습니다. 누가? 마귀가? 천만의 말씀
하나님이 다 성공 했습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성공 하신 겁니다. 예정대로 된 겁니다.
그런데 지독한 미움과 지독한 편애 중에 하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인 영생 곧 예수님의 사랑을 먹을려고 영생할려고 먹게 되면
두 패 중에 한 패로 나누어진 것이 무색해 지고
두 패로 나누어진 것이 무의미 하게 된 겁니다.
(창 3:15절은 두 패로 나누겠다는 약속이고 그 뒤로부터의 모든 사건은 두 패 나누기 사건입니다. 가인과 아벨 사건이 그 선두인 겁니다.)

또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십자가 즉 예수님의 살과 피 조차도 두 패로 나누기 위한 목적이지 두 패를 하나로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을 괜히 나누인게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추방한 겁니다.

(창 3:22,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3, 개역)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창 3:15, 개역)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약속을 문자적으로는 일단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두 패로 나누어놓는 이 약속을 무색케 할려고

양쪽 다 취하는 방식이
일단 마귀에게 속아서 선악을 알게 되었지만 (지옥에 가게 된 운명)

어떻게 해서든 생명나무를 따먹어서 천국을 자기 손에서 해결할려고 한 겁니다.

그래서 지옥도 천국도 두 패로 나누어짐이 없이
즉 지옥이 땡기는 사람인가의 약속의 개시 또는 천국이 땡기는 사람인가의 약속의 개시인
두 세계에서의 끌어당김이 아니라

모든 종교는 지옥도 천국도 자기 행동에 따른 여부로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개인의 행함의 여부로 두어 버린 겁니다.
즉 여전히 생명나무를 따먹고자 하는 열심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금 현재도 말이죠.

결국 인간은 죽음이라는 이미 결정난 사항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죽음이라는 선악을 이미 알기에 이미 결정났기에
죽음 너머의 세계를 이제는 미지의 개척지로써 선택하고픈 겁니다.
그래서 비록 죽지만 그 죽음 뒤의 선악세계 뒤의 세계는 보험회사 보험들 듯이 선택하고픈 겁니다. 그것도 선악적으로 좋은 의미를 두어서 영생한다는 절대지존을 추구하고픈 겁니다.

십자가 라는 골때리는 복잡한 방식 말고 구지 남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자기가 직접 따먹겠다는 겁니다. 영생을 말이죠.

그것도 아주 선한 방식을 추구해서 그 선한 방식이 행함입니다. 행함.

바로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 중에 하나 가 되었으니] 의 방식처럼 되는 겁니다.

위의 내용을 다른 분들에게 좀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복음의 핵심을 다룬 문제입니다.

아무튼 창 2장의 한 몸 개념과 창 3장 15절의 약속과 그 약속을 언약으로 적용시킨 의미가 아닌가 해보는 저의 사적인 잠기 일시적인 소견들을 나열해 봤습니다.

채한욱(IP:222.♡.15.70)

09-02-15 21:07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바리세인(시험하는자)의 질문이란 의미는 형태와 방식에 의한 시험이란 개념이 아니고본질적인 부분에서 나타날수 밖에 없는 시험이란 개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그들은 아무리 많은 질문을 할 벗어나서찌라도 본질적으로 그들은 시험하는 자일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사상과 교훈 자체가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부분에서 자유로 울수 있겠는지요? 이때까지의 질문과답변 그리고 십자가마을 전체의 내용에서 앏 보다 시험의 이미지가 더 강하였음을 부인 할 수 없을것 같기에 질문과 답변 하는자의 입장에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부분을 미리 언급 하면서 질문과 답변에 대하고자 합니다. 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관리자께서 말씀 하신대로 이 질문 자체가 복음의본질과 핵심을 다룬문제라고 보는 부분에서는 동감입니다. 왜나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서의 시작은 선악과와 아담과하와의 관계 에서부터 시작 되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말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죄 의본질과 시작도 선악과로 부터 시작 되어 졌을것 같으면 동일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복음의 본질과 시작도 여기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선악과 문제과 중요하면서도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보지못하고 관점의 차이로 어렵다는 이유로 방치 되없음을 그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이 부분을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이해하고 바라기는 복음의 파수꾼으로 자처하는 십자가 마을에서 통상적인 질문과 답변에서 벗어나서 복음의 근원적인 부분으로 살펴보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 합니다. 질문1과 2의 답변은 본인의"하와는 악처인가 현모앙처 인가" 의 게시물에서 하와의 돕는배필은 무엇인가를 다루는 주제에서 답할까 합니다. 끝으로 자유케 하시는 주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샬롬

관리자(IP:124.♡.84.82)

09-02-15 23:34

솔직히 채한욱씨 ? 의 댓글이 뭔 말인지 잘 모르겠고요

아무튼
시험하든 말든 개의치 마세요. 불순한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복음이 왜곡 되지 않습니다. 이미 완료 그 자체이니까 걱정 하 덜덜 마세요. 도리어 복음을 괜히 건드렸다가 지가 괜히 작살나니까 시험거는 자체가 죽을려고 환장한 지 발등에 도끼 찍는 짖을 한 겁니다. 물론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복음이 그렇게 하도록 한 겁니다. 빛이 어둠이 설친다고 해서 빛이 사라집니까? 도리어 어두움이 등장해야만 빛은 그 빛의 진가를 발휘하기에 빛의 자작극에 어두움이 걸려든 겁니다. 어두우면 어두울 수록 더더욱 빛을 빛납니다.

비판을 받을까봐 또는 함정에 파 놓은 덫에 걸려들까봐 또는 시험에 들까봐 걱정하지 마시고
증거되고 움직이는 운동력은 내가 아니라 복음 자체에만 있으니 복음이 전혀 손상을 입을리가 없다면
마음껏 생각들을 펼쳐보심이 어떨런지요? 이미 완료된 복음이기에 내 주장이 이 기회에 좀 틀려도 상관없이 드러냄으로써 더군다나 잘 다루어 지지 않는 부분이니 여러 생각들을 나타내어 본들 누가 뭐라고 하나요 뭐?

아무튼 저도 성질이 급해서 질문을 보자마자 생각난 것을 바로 적지 않으면 까먹어 버려서 급한 마음에 답변을 하다 보니 역시나 이번에도 질문을 꺼꾸로 보았네요, 늘 그런 식이라서 그런지 다시 이분이 질문을 해 왔는데 답을 달아 보았습니다. (인간이 참 이상한 심리인 것 같습니다. 막상 나만의 공간인 홈페이지에서는 나름대로 은혜롭게 보였는데, 막상 공개한다고 여겨지는 이 곳에, 뭐 다 같은 인터넷상일 뿐인데도 이상하게 여기에 글을 올리니 제가 은혜롭게 느껴졌던 글들이 이상스럽게 지금봐도 유치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래서 공개하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아닐까 하는, 아무것도 아닌데도 그 심리가 이상하게 작용하네요)

목사님들과 또는 성도님들 중에 한번 정리를 쭈욱 해보는 것도 공부가 되지 않나 싶네요.

한 번 나름대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달아보세요. 성경지식 또는 신학 그런거 모르는 저도 복음이 저에게 알려준 것 나름대로 답변 해 보는 겁니다. 목사라면 더더욱 해야 되구요. 유치하면 또 뭐 어떻습니까? 예수님만 안 유치하시면 되지요 뭐

=========
2009/02/15 13:34

침노 당하는 천국

애굽에서의 번성과 가나안 침략

날짜, 보낸사람, 받는사람, 내용

2009-02-14 23:50:53, 애굽에서 번성하게 한 이유는 가나안과 반대급부를 맛보게 하기 위해서인가요 가나안에서 일곱족속은 무엇을 의미하고 애굽에서 번성해서 돌아와야지만 일곱족속을 몰아낼수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답변 :

번성과 소멸 즉 파괴는 인간의 손에서 다루어진 여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사람의 일을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느냐를 그림자로써 먼저 선취해서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애굽에서의 번성은
일종의 탁란입니다.

정작 애굽 자체가 고레스처럼 이스라엘의 번성을 돕는 역할 또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겁니다.

(롬 13:1, 개역)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 13:2, 개역)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그리고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일을 모르는데 있어서 반드시 그 강퍅함을 드러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치 노아홍수의 상대적인 행위가 바벨탑 쌓기이고, 가인의 분노와 이마표가 아벨의 제사의 상대적인 조건 갖추기로 작용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의 번성에 대한 두려움과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그 이유로
이스라엘의 번성을 분명히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이고
이제는 그 번성의 속도가 자기들의 계산을 벗어나 초과하고 위협적으로 작용할때에
이스라엘이 졸지에 이용가치존재에서 적대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지발에 지가 저린 거죠.

찔린 겁니다.

뭔가 이용해 먹었다는 선악적인 사고방식에 의해서
이제는 역으로 이용당할까봐 미리 선수치는 방식이

자손 번창 억제 정책인 겁니다.

분명히 이용해 먹을 때는 언제이고 다시 이용당할까 봐 라는 이 의식은 마치 가인에게 죄의 소원이 덮쳐져서 모든 계산이 선악적이 되고 마는 겁니다.

여기서 벌어지는 것이 가인에게서 나타난 살인이듯이
이제는 국가적인 단위에서 민족말살정책이 펼쳐지는 겁니다.

즉 국가의 속성을 이스라엘의 번성(이스라엘의 편애) 때문에 들추어지는 겁니다.

자 그래서 그런 선악의 나라를 박살내고 탈출 하는 겁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나라가 없는 유령 국가로써
약속의 나라를 향해 가는데

여기서 또 새로운 의미가 적용이 되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 자체는 애굽이라는 골리앗을 이긴 상태입니다.
즉 예수님이 마귀의 3가지 시험을 먼저 이긴 상태에서

예루살렘을 겨냥해서 종말의 전쟁을 벌리십니다.

그 예루살렘이 바로 가나안 땅이고 그 가나안 땅의 점령은 마지막 부족인 여부스 족속의 진멸로써 여부스 족속의 요새인 예루살렘을 함락하는 취지로 약속의 땅이 성취가 되는 겁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마치 예수님과 같은 역할로써

도적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겁니다.

여부스 땅 즉 예루살렘 즉 가나안 땅에는 이미 주인이 있습니다.

그 주인을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가구를 늑탈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도적의 역할로써 하나님 나라를 증거 했듯이

그 의미를 미리 시간적으로 선취해서 땅겨와서

지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점령을 하는데 있어서

그 주인이라고 우기는 가나안 족속들 하나 하나를 결박해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마 12:24, 개역)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2:25, 개역)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 12:26, 개역) 『사단이 만일 사단을 쫓아 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저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마 12:27, 개역)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 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마 12:28, 개역)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개역)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마 12:30, 개역)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1, 개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 12:32, 개역)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33, 개역)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마 12:34, 개역)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5, 개역)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도둑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선악의 사고방식을 지닌 자들은 도둑이라는 이 부정적인 의미로 인해 상대적인 선한 위치에 섬으로써 적대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은 어디를 가든 어떤 모습을 하든 예수님처럼 미움받는 자들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딱하나

이유도 조건도 없이 무조건 미움 받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난 자들이기 때문이고

반대로 저들은 땅에서 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의 의미를 스스로 무시하게 되니까

땅에서 난 자들과 융화책을 벌리게 되고 모든 이방적인 제도를
하나님의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썩어버리게 되는 거죠.

즉 이 땅에서 떠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아벨의 자손 개념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이 이스라엘 개념은 남은자 개념으로 계속 내려오다가
예수님 홀로 이스라엘의 의미를 완성하시는 겁니다.

교회도 두 부류입니다.

이 땅에서 교회라는 가치를 드러낼려는 종교적인 자와 (미완료)
이미 완료 되었이게 이 땅의 권세와의 차이성을 드러내는
하늘의 권세(긍휼입음)를 드러내는 자로써 복음을 증거 합니다.

자 질문을 다시 보고 요약해서 답변 드리면

애굽에서는 미움 받는 자로써 번성 자체가 아무리 미움 받아도 번성을 막을 수 없는
천국은 어떤 방해에도 막을 수 없는 입장을 보여주고

또 가나안 에서는
이스라엘 자체가 천국의 역할로써 침략자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은 침략 당한다는 자체가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 은혜가 된다는 증거가 기생라합을 보면 압니다.

그런데 침략 자체가 뭔가 그 침략을 방어하는 자세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도둑이라는 늑탈하는 자로써 다가가게 되고

또 반드시 그 세계에는 주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주인이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 즉 선악의 세계를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가구를 늑탈 즉 빼앗는 방식이 아니고서는
천국의 의미를 나타내지 않는 겁니다.

이유는 주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그 주인을 결박해서 빼앗는 방식입니다.

결국 빼앗는 방식의 천국의 움직임 속에
빼앗기는 방식을 모르는 자는 가짜 천국을 증거하는 자입니다.

(마 11:12, 개역)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추가로

오해하지 말것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겁니다. 인간에게 또는 인간의 믿음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단지 이 보호자 싸움에 전리품 즉 주인의 가구요 늑탈 대상일 뿐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 곧 천국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천국이라는 박스상자 안에 이스라엘이 담겨져서 이스라엘이 저절로 움직이는 마차 처럼 움직이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천국만 증거하도록 약속만 증거하도록 자기가 한 것이 없이 증거케 되어 있는 겁니다. 미완료 없는 상태인 완료 뿐인 상태로서 말이죠.

결국 주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뭐뭐 아니요 뭐뭐 이다 방식으로 증거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나 아니요 예수님이다 라고 증거하듯이 말이죠.

그래서 보여줄 것은 미리 선취로 보여주는 겁니다. 예수님을(실상=믿음) 미리 앞당겨서 말이죠.

참 그리고 중요한 것 하나 빠뜨렸는데
광야 라는 중간과정인데 사실은 중간과정이라기 보다는
그 가나안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미리 앞당겨 맛보는 곳이 광야 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빼앗길게 있어야 합니다. 마치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주인을 결박하여 도둑이 늑탈하는 것처럼 말이죠.

즉 애굽의 방식을 빼앗겨야 합니다. 육의 소욕을 다 빼앗겨야만 하고 또 그것이 조건이 아니라 육의 소욕이 빼앗겼다면 영의 소욕이 뭔가를 누려야 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 중간의 중립지역인 제 3의 영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들 애굽으로 되돌려 달라고 원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원망을 담는 과정이 광야 입니다. 광야란 일종의 나에게서 나올 수 없는 거룩과 오로지 죄만 나온다는 것을 물증으로 잡혀야 뭐가 의미가 있는고 하니? 피의 공로가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이 피의 공로를 모르고 약속의 땅에 가게 되면 역시 그 약속의 땅은 육의 소욕 선악의 법칙으로 도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 광야에서 누리는 약속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 상대적인 피 밖의 정죄함을 정죄받는 사랑으로 부터 육의 소욕을 빼앗기는 광야를(완료이기에)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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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