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2009년 2월 13일 강의 고후 11장 19절
안산 2009년 2월 13일 강의 고후 11장 19절
이름 : 우리교회(IP:124.59.84.82)
090213 어리석은자 vs 지혜로운자 나누는 기준
우리교회(IP:124.♡.84.82)
09-02-14 14:45
관리자(IP:220.♡.41.203)
10-10-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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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24 10:22
안산090213고후11장19절
2010-10-22 23:50:07 녹취 : 박온정
안산090213고후11장19절, 어리석은 자VS지혜로운 자 나누는 기준 / 이근호 목사
고린도후서11장19절을 한번 봅시다.『 19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20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이 두 종류의 사람을 나누었지요? 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나누고 있는데, 우리는 나누게 되면 그 다음에 알아야 될 게 뭐냐 하면, 기준을 알아야 돼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로 나누는 그 기준.
현재 이 고린도후서11장19절에 있어서의 그, 두 종류로 나누는 것만 있지 기준에 대해서는 제시하지 않고 있죠? 기준으로 들어오시는 이가 있죠. 기준으로 개입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에요.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이 뭘 기준으로 나눈다? 이 세상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 부류와 한 쪽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나누고 있지요?
그 다음에 지혜로운 사람은 사도 바울과 같이 지혜롭다고 이야기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고린도후서 11장 13절에서 15절에 보니까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서 호칭이 여러 가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있는데 다 같은 이야기죠? 13절에 보면 저런 사람은 뭐라 했습니까?
거짓사도. 호칭이 또 나오지요? 그 다음에 사단의 일꾼인데 이 사람은 뭐로 위장한다? 의로? 의의 천사로 의의 일꾼으로 가장한다. 이렇게 되는데 그 사람들은 거짓사도, 사단의 일꾼과 사도 바울, 두 부류의 사람이 누구 앞에 누구의 면전에 딱 서 있다? 고린도교인들 앞에 서 있지요. 그렇잖아요.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 가운데 이런 게 있어요.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있어요.-성경을 모른다 생각하고 - 뭐를 묻느냐 하면 신앙인이면 이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신앙인의 모델을 묻는 겁니다. 모델을 묻는 것은 알게 되면 따라가면 되니까.
성경 보려면 힘드니까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사람 따라가면 그 뒤는 도착하는 곳은 어딘가 천국에 도착할 거니까,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사람 모델을 제시하고 모델 제시만 해주시면 따라 가겠습니다. 이야기를 간단하게 끝내는 거예요. 간단하게 끝내는데 고린도교인들 앞에 지금 두 부류의 사람,
두 종류의 인물 중에 하나는 사도 바울이고 하나는 거짓사도 사단의 일꾼들이다 이 말이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어떤 것이 사도인가 궁금하다 이 말이죠. 그런데 고린도후서11장4절에 보니까 이렇게 돼있죠. 4절에 보니까 이미 거짓사도가 누구를 장악했습니까. 고린도교회를 이미 장악했지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뭐라 합니까. 그들은 무엇을 전하는 사람이다? 1)다른 예수 전하는 사람이다. 2)다른 영을 전하는 사람이고,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3)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고 지난 시간에 했지요? 그렇다면 여기까지 한번 정리해봅시다. 우리가 지금 고린도교회 성도라고 생각하고,
구원을 받아야 될 텐데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복음 전하는 사람은 안 되잖아요. 그러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복음은 이쪽의 거짓 사도고, 진짜예수 진짜 영 진짜 복음은 또 누가 있을 거라 말이지요. 그 진짜예수 진짜 영 진짜 복음 편에 선 사람을 누구라 말합니까. 사도 바울이라 했거든요. 그러면 문제는 굉장히 간단해졌죠.
사도 바울이 증거 하는 것에 준해서 무엇을 파악하면 됩니까. 사도 바울에 의해서 증거 하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복음을 전하면 무조건, 그 사람이 얼마나 나에게 정감 있게 애정을 베풀고 구제하고 상관없이 표징이 뭐에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전하면 이유없이 이거는 어디에 속한다? 사단. 예, 악마에 속한다. 그 기준점을 수용할 용의가 되어 있느냐 이 말입니다.
말은 쉽지요, 말은 쉬운데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이 제일 밑의 터전이 뭐냐 하면,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 주장에 의하면 제일 밑바닥에는 생존이고 그 중간에는 소속의 욕구 보호의 욕구 맨 끝의 욕구는 자아실현, 나도 신이라는 자아실현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렇다면 하나의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생존의 욕구가 있다면 그 가운데, 자기에게 정 있게 해주고 자기에게 친밀을 나타내주고 자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도와주는 그것이 먼저 와 닿기 때문이에요. 그렇잖아요. 교회 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교인들이 복음 들으려고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들으려고 온 게 아니잖아요.
어려운데 교회가 좀 관심 가져주고 도와주고, -겉으로는 그걸 숨기지만- 하나님께 빌러 왔다면 비는 목적이 뭐에요. 남들처럼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온 게 아닙니까. 여기에 왔다가 참석 않은 사람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때문에 참석 않는 겁니까? 생존문제죠? 이것이 자기한테는 시급한 문제지 예수, 영, 복음은 저기 열 번 스무 번째 뒤쪽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그 당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낼 수밖에 없죠. 왜냐면 이 사람들은 진짜 예수 진짜 영 진짜 복음은 안 전하니까. 그러면 진짜 예수 진짜 영 진짜 복음을 알았던 사도 바울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니까 23절부터 쭉 뒤에 나오지요?『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하고 그 다음에 26절부터 쭉 보면『…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하여튼 배신자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수고하고 궁핍하고…사도바울이 이런 고생하는 것이 자기 생계 때문에 그런 겁니까? 뭣 때문에 이런 고생을 했습니까? 바로 바른 예수 바른 영 바른 복음으로 인하여 이런 고생을 했잖아요. 그러면 고린도 교회가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사도 바울을 진짜 사도로 받아들이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겠지요.
그런데 현실은 반대가 되어 있지요? 사단의 일꾼들이 이야기하는 것에는 정이 왔고 납득이 되고 사도바울이 하는 것은 여기에 동조를 받아가지고 이미 배척 해버렸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렇다면 고린도후서 11장 사정을 볼 때에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단이라는 것이 구체적입니까? 아니면 추상적인 문제입니까?
구체적인 현실 문제잖아요. 이걸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돼요. 마귀나 악마 같으면 흔히 괴기영화 엽기영화에 나오는 시커먼 날개 달고 시커먼 염소처럼 돌아 댕기는 추상적으로 상상하는 동물로 생각하는데 사도바울이 당했던 현실 속에서는 마귀는 아주 가까이 있지요. 가까이. 그리고 마귀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이고 전에 친했던 사람이고 인간적인 감정이 없는 사람들이에요.
너는 노무현 찍었나, 나는 이명박 찍었다 이것 때문에 싸운 사람들 아니라니까요. 인간적이고 정적인 감정이 없는 사람이고 심지어, 마태 마가 누가에 보면 같은 가족이잖아요. 같은 가족. 같은 식구, 한 핏줄 동생, 자매,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사이에 자기 집안 식구가 누구라 했습니까. ‘능히 원수니라’ 했어요.
그래서 고린도후서11장19절 강의하면서 우선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며는, 이걸 알아야 돼요. 왜 사람들은 진짜 예수 진짜 영 진짜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은 좋아하지 않는가, 성경에서는 그들을 사단의 일꾼이라고 그냥 사도바울이 상당히 소극적으로 이야기 했지만 우리는 이 대목에서 사도 바울 편에 서지 말고 악마, 사단의 마음 상태를 우리가 이해를 해주고 다시 우리는 사도바울에게 올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봐야 돼요.
그쪽 사람의 친척이라고 생각해보자 이 말이지요. 내가 글을 한번 써 볼게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주위사람이나 교인들이나 목사들 이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 욕심, 내가 기대하는 것 있잖아요. 내 기대, 내 희망, 이게 나를, 현재 주신 하나님 은혜를 이걸 가리고 모독하게 됩니다.
감사가 나오지 않고 그 이유를, 시편 같이 봅시다. 28편5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일 하죠? 실제로 일 하는데 하나님 하시는 이 일이 창조만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파괴하시는 거 빼앗는 거 부수는 것,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지 않죠? 보통 하나님 하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부수는 분으로 생각 않지요.
보통 그렇잖아요. 이 본문 말고 다른데 시편에 보면요,『시편 39편5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셀라) 』
제가 여러분께 물을게요. 인생은 다 헛되다. ‘허무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성경 시편39편5절에서 인간은 허사고 하는 일들이 허무하다고 성경에서 얘기해도 우리가 이것을 ‘예, 그렇습니다,’ 하고 수용할 마음의 자세가 됩니까? 애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얘야, 너도 헛것이고 나도 헛것이다,’ 하면서도 헛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이 점을 누가 알고 있냐면, 마귀가 알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현재 이 사람들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에 있는 이 사람들 어떻게 됐습니까. 제가 아까 어떻다 했습니까. 실제적, 현실적이라 했지요? 악마를 추상적으로 보지 말고 악마는 어째서 바른 예수 바른 영 바른 복음을 전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느냐 하며는,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사는 게 정상인데 현재 추방된 존재지요? 추방되면서, 인간이 추방된 세계에서 아무리 해도 자기의 노력하는 이 장소가 에덴동산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되지요. 쫓겨났는데요, 에덴동산 바깥이라는 말은 ‘힘들게 살면 그만이지,’ 라는 문제가 아니고 지금 에덴동산에는 뭐가 있어요? 생명나무가 있잖아요.
선악과 따먹었다고 쫓겨난 게 아니고 생명나무 따먹지 말라고 쫓아낸 거예요.(와...첨 들어 봅니다-녹취자) 선악과 따먹고 살 수도 있는 문젠데 무엇에 접근하지 마라고? 생명나무에 접근하지 말라고 쫓겨낸 겁니다. 그렇다면 추방된 상태에서는 뭐가 없냐 하며는,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는 거예요.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어떤 인간이든 대통령이든 대법원장이든 관계없이 그거 뭡니까, 허사예요 허사. 허사라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추방된 여기에 먼저 유혹한 자가 있지요? 악마지요? 악마가 인간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인간은 모르는데 악마는 아는 것. 선악과 따먹으면 멸망한다는 사실을 악마는 알고 있었어요. 인간은 몰랐어요. 그래서 악마는 뭐냐면 거짓말 한다는 거예요. 거짓말이 뭐에요.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 바꾸는 걸 거짓말이라 하잖아요.
악마가 몰라서 ‘모르겠다’ 그거 아닙니다. 알고 있어요. 선악과 따먹으면 자기가 멸망한 것처럼 인간도 멸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악마가 알고 있는 선악과에 유혹을 받아버리면 인간은 어디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느냐 하며는, 악마한테 지배받아서, 악마에게 지배받는다는 말은 자기 힘으로 악마의 힘을 벗어날 수 있다? 없다? 없어요.
에베소서2장1절에 보면 인간은 첨부터 어떤 속에 있었습니까. 세상이 악마의 권세 속에 있었어도 어떤 사람도 악마의 권세에서 못 벗어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고린도교회 이해하자는 뭔 말이냐 하면 악마의 사슬에서 벗어난다? 못 벗어난다? 못 벗어납니다. 이걸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주세요. 못 벗어난다는 거예요.
제가 얘기하는 취지가 뭐냐 하면, ‘예수 믿으면 될 텐데 답답해!’ 할 수 없는 입장이다 말이죠. 왜냐면 벗어날 수가 없는데요, 벗어날 수가 없어요. 예수 믿을 마음도 없을뿐더러 믿고자 해도 마귀가 가만 두지를 않아요. 그 사슬에서 못 벗어난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죽고 난 뒤에 시편39편5절에 보니까 인간의 모든 것은 ‘허사’지요? 허사라 하면 어려우니까, 허무한.…
허무한 인생을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운 에덴동산을 향하여 허무한 인생을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 만들어주는데 도와주는 일을 누가 합니까. 누가 해요? 악마가 하지요. 인간이 쫓겨난 뒤에 그 품성은 뭐로 바뀌었다? 악마의 주소로 바뀌고 악마에게서 못 벗어나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보니까 인간은 허무하지요? 허무한데 허무한 인간을, 아까 시편에 보니까, 허무하지만 고통은 고통스럽게 떼우고 하나님은 인간이 세운 것은 결국 어떻게 한다? 허문다 말이지요. 그런데 계속 세우고 건설하고, 아까 시편에 봤지요? 그렇게 건설한 것은 누구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냐 말이죠. 누구의 지시에 따라서.
허무한 걸 허무하지 않게 누가 도와줍니까. 악마가 도와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고린도교회에 있는 마귀의 종들은 뭡니까. 당신은 허무하지만 예수를 믿으면 허무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이야기한 자가 누구라고요? 그것이 사단에 의해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가지고 다니잖아요.
지금, 혹시 제 말 이해 못한다면 근본적으로 잘 이해해야 되요, 자기의 허사나 자기의 허무를 이길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이기죠. 못이긴 이유가 악마에게 한번 유혹받고 빠이빠이한 게 아니고 에베소서 2장에 보니까 인간이 어디 영을 받았다? 악마의 지배를 받아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생사는 게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품고 비전을 가지고 ‘어려운데서 벗어나자’ 하고 열심히 하자, 하는 그것을 도와주는 자가 누구냐 말이죠.
마귀가 그렇게 한다 이 말이죠. 왜! 그 사항이 이해가 되니까. 납득이 되니까. -이거 이해 안 되면 곤란한데 -여러분들 지금 힘드십니까, 예수 믿으면 다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리 한 자가 누구냐 말이죠 이게. 이게 악마의 종들이 하는 소리다 이 말이죠!
그러면 ‘목사님, 사도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사도바울은 이렇게 얘기하죠. 당신이 지금 삶이 허무하고 몸이 아프고 당신 죽고 하는 이것도 당신의 죄에 비해서는 그 벌이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이죠. 당신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그것은 당신이 지옥 가는 벌에 비하면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말이지요.
당신이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그 죄는 아직 멀었다 말이죠 그거. 마땅히 저주 받아야 되고 마땅히 심판 받아야 되지, 그걸 어떻게 불평으로 삼느냐 이 말이지요. ‘ 아, 그렇습니다.’ 하면 된다 이 말입니다. 세리와 창기가 어디 간다 했습니까. 세리와 창기가 바리새인보다 먼저 어디간다 했어요? 하나님 앞에 간다 했지요?
그 의미가 뭐여요? 자기 주제파악을 했잖아요. 주제 파악. 내가 지금 부자가 못돼서 천당 못가는 게 아닙니다. 몸이 아파서 천당 못가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오신 근본적인 문제가 뭡니까. 죄 문제 아닙니까. 그 죄가 무슨 살인, 간음,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근본 죄는 뭡니까. 시편51편에 뭡니까. 우리 조상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못 따먹었다? 기본 죄가 뭐냐 하며는, 우리는 생명나무를 따먹을 수 없는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분리’라고 하면 그 분리가 뭐예요? 그게 죄가 되는 거여요.
분리된 죄, 바르게 살면 안 됩니까? 이 사고방식은 무슨 사고방식이냐! 선악 사고방식이에요. 선과 악에서 지은 악보다 더 선을 쌓아서 지은 악을 상쇄시켜가지고 나머지의 선으로 천국 가겠다, 이런 아이디어가 바로 뭡니까. 마귀가 선악과 따먹으라고 이렇게 우리를 만든 거예요 이게.
내가 지은 악보다 선이 더 많을 경우에 하나님께서 악을 빼내고 남아있는 선으로 천국 가거라,는 식의 대차대조표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바로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에 나온 발판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것 때문에 뭘 모른다? 생명나무를 따먹지 마라 했으니까 이런 착각 자체가 뭐가 돼요. 죄가 되지요. 이런 죄 안 가지고 있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부자청년이요, 부자청년이 예수님보고 뭐라 했습니까? ‘선한선생이여…’ 할 때 예수님이 이랬어요. ‘누가 선한데?’ 부자청년이 예수님보고 선한선생이여, 라고 한 이유가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내가 십계명을 다 지켰다,’했지요? 그러면 자기는 뭡니까. ‘지키면 다 지킨다.’ 그 다음에 나보다 더 선한 분은 예수님, 예수님이 뭐라 합니까, 선하신분은 누구밖에 없다? 하나님…
그러니까 예수님과 하나님과 자기와 지금 같은 노선에 있다고 여긴 거예요.(헐...) 자기는 지금 에덴동산을 쫓겨난 주젠데. 예수님은 그 자체가 생명나무고(요한복음6장).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어디서 같이 막먹을라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의 모든 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를 수 있느냐, 할 때, 예수님이 부자청년이 할 수 없고 만들 수 없는 것을 주시려고 오신 분 아닙니까!
이 복음이 뭐냐 하면, 복음은요, 예수님이 주셔야 복음이고 기쁜 소식이에요. 그런데 마귀는 뭐라 합니까. 네가… 자꾸 네가 만들어내라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 믿는다는 것이 내가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은 주시는 겁니까? 내가 만들어내는 겁니까. 예수 믿는 내가 사단을 만들어내는 것이 되지요.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며는, ‘얘들아~ 너희 집 어딨지?’ ‘ 지금 쫓겨났습니다.’ ‘ 생명나무 가는 길을 아나?’ ‘압니다. 에덴 저쪽으로 가면 됩니다,’ ‘빨리 올라와!’ ‘생명나무를 네가 알지?’ ‘알지요~들어본 적 있습니다. (천로역정 분위기-녹취자) 우리 조상은 그거 따먹지 마라고 쫓겨났습니다.’ ‘쫓겨났으면 너희 힘으로 열심히 해서, 생명나무! 믿습니다! 생명나무! ’ 하면서 올라오면 생명나무 길이 열렸다. 이게 선생입니까?
생명나무와 타락한 인간 사이에 뭐가 있습니까. ‘사랑’이 있지요? 이 말은 생명나무의 존재를 안다 할지라도 심지어 예수그리스도를 안다 할지라도 믿을 수 있는 능력은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없어요! 강의 첨부터 한번 정리해 봅시다. 지금 사람들이 생계문제, 돈문제, 경제파탄문제 이게 뉴스꺼리죠? 사도바울이 굶고 고생하고 그렇게 힘들게 살았던 이유가 사도바울이 돈이 궁해서 그렇게 했습니까. 바른 예수 전하려 그렇게 했잖아요.
사도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창세기 3장에 있었던 그 생명나무 그 생명나무 소식을 전하려고 했지요. 근데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허무하잖아요. 산다는 게 힘들잖아요. 힘들 때 사도 바울을 모시겠습니까, 힘들 때 복 준다는 거짓 선지자를 좋아하겠습니까. 거짓 선지자를 좋아한 거예요. 그 도중에 사도바울이 가서 하는 말이 그들이 전한 것은 뭐다? 다른 예수고 다른 복음이고 다른 영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너희 지혜로 왜 그런 어리석은 자들을 용납하느냐 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이에요. 한번 더 읽어보면, 20절 읽어봅시다.『20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찌라도 너희가 용납 하는도다 』왜 사단의 일꾼을 용납하냐 이 말이지요. 왜 이렇게 환영할까요.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 복음 때문에 고생하는 사도바울의 그 인간성이 맘에 든다? 안 든다? 영 맘에 안 드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교회가 당회장 자리 하나가 비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와가지고 오직 복음을 위해서 바른 예수 바른 복음 생명나무 그것만 전하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이런 고생했습니다, 할 때 교인들이 당회장으로 모시겠습니까? 택도 없는 소리죠. 안 모시지요. 교인들이 원하는 것은 뭡니까, 이 교회를 오백년 천년 부흥시키고, 이 교회 다니는 것으로 말미암아 몸이 건강하고, 사업이 잘 되고, 그리고 내가 돈 투자한 이 교회가 안산시내에서 젤 큰 교회 되는 거.
이 교회 다니는 애들이 전부 다 공부도 잘하고 사법고시에 합격되고, 세상적인 복을 받고, 내가 노동한 대가를 받는 거 그거잖아요. 취직도 잘되고 결혼도 잘하고, 다시 말해 이걸 뭐라 합니까, 허무, 허사l, 허무한 인생을 교회 다녀가지고 뭘 바꾼다? 허사 않고, 허무 않으면 내가 교회 다니는 보람을 느낀다 이 말이 아닙니까. 교인들 원하는 게 이거 아닙니까.
그런데 사도바울은 뭡니까, 사도바울이 지금 복음을 알아요? 몰라요? 사도바울이 복음을 알지요? 예수를 알지요? 영을 알지요? 복음을 알고 예수를 알고 영을 안다는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비참하게 살고 있잖아요. 지금.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이 비참하게 살고 영을 알고 복음을 아는 사람이 비참하게 사느냐.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이것이 진짜 허무한 너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뜻이다 이 말입니다.
사도바울이 이거 이야기할 때 이걸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 명이겠어요. 1)1명 2)10명 3) 100명 4)없다. 없지요. 있으면 안 되지요. 왜! 마귀에 속한 사람들, 마귀 지배아래 있는 사람들은 자력으로 이걸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성령 오게 되면 어떻게 되요. 내가 허무하기에 마땅한 존재라는 걸 어떤 경우에만 알아요. 성령이 올 때만, 보세요 여기는 지금 인간들은 마귀에 쫓겨났으니까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지요?
여기에 성령이 오게 되면, 자력으로 생명나무 가는 길이 차단되어 있으니까 누가 전하는 복음을 받게 되요? 사도 바울이 전하는 바른 예수를 받게 되지요? 왜 그러냐면 성령은 누구의 영이죠? 고린도후서4장에 봤지요? 성령은 누구의 영입니까? 그리스도 영이죠. 고린도후서3장18절 한번 봅시다. -정경애 씨 한번 읽어보세요.- 『고린도후서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주의 영이 아니면 우리가 예수님의 광채 빛나는 것, 우리가 맛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적인 노력과 인간적인 행함과 인간적인 기도와 인간의 열심가지고는, 절대로 자력으로는 주의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들어가지요. 주의 영이 있는 곳에 뭐가 있는 곳에 뭐가 있다했습니까. 자유함이 있지요.
지금 사도바울이, 성령 받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아까 고린도후서11장에 뭐라 했숩니까. 나는 힘들게 살고 굶고 했지요. 이걸 두 자로 하면 뭐가 되겠습니까. ‘고생’도 되겠지만 ‘자유’지요. 자유! 자, 그러면 정리해봅시다. 고린도 사는 보통 사람들은 너무나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끌어 모으는 쪽으로 나가고 거기에 누가 동조했고? 마귀가 동조했고 네가 끌어 모아야, 돈도 있어야, 아는 사람 있어야, 빽있는 사람 있어야 교인들이 밥먹고 살 수 있다, 자꾸 이렇게 하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반대가 되지요? 쪼개고, 버리고, 깨지고 찢어지고 굶고 할 때, 껍데기가 벗겨짐으로 말미암아 뭐가 나와요. 나 고생했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고 뭐가 나오느냐 하면, 주의 영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 가 비로소 증거 되겠지요. ‘ 도 바울 당신은 인생을 무슨 재미로 사나?’ ‘나는 예수 땜에 산다’ 이게 말이 되지요. -사적인 대화 &&^&* 안들려요.-
만약에 어느 날 배앗긴다고 볼 때, 욥처럼. 하루아침에 자식 잃고 재산 다 날렸잖아요. 그 다음에 온 몸에 뭐가 났습니까. 원치 않은 간지럼증 동반한 종기 같은 거 났잖아요. 그럴 때 그 모습이 사도바울은 뭐냐 하며는, 그걸 성령 안에서의 자유로 본 거예요. 자유. 그런 모습을 갖출 때 무엇과 대비가 되냐 하며는, 허무한 것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대하는 일반적인 보통 육에 속한 사람과 극한 대비가 되겠지요.
저쪽은 예수를 부르짖고 성령을 부르짖고 복음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뭘 챙기기 위해서? 자기의 허물을, 자기가 기대했던 세상적인 성공과 부흥과 발전을 은근히 노리면서 기도할 테니까 그거 달라고 요청한 게 되지요. 거기에 대해서, 그런 정신상태가 바로 악마에 속한 정신상태기 때문에 여기에 누가 우르르 몰려옵니까. 집에 초콜릿이나 꿀 같은 거 흘려져 있으면 뭐가 기어 나와요? 개미가 기어 나오잖아요.
사람이 그런 마음이 있으면 악마는 추상이 아니고 뭐라? 구체적인 거예요. 악마의 활동은. 그래서 우르르~ 악마의 종들이 몰려들겠지요. 그런데 시편28편5절 보니까 하나님이 자기 성도에게 어떻게 합니까? 사람이 손에 쥔 것을 어떻게 해요? 부수지요. 부수면 이 작업이 우리 보기에는 미움으로 보이지만 미움이 아니고 뭐로 보입니까. 사랑이라! 사랑!
사도바울이 굶고, 사도바울이 고생하고, 도적의 위험과 배신자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강과 바다의 위험과 굶기도 하고 매 맞고 하는 이 모든 것이 나중에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뭐라 하냐면 이것이 ‘은혜가 내게 족하다’ 이걸 가지고 은혜라고, 은혜를 다른말로 하면 선물 아닙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말이죠.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서 사도바울 몸이 가시가 있었어요. 가시가. 여기 12장 7절에 나오지요? 고린도 후서12장7절 가시 있지요.
가시 있어서 빼달라고 했지요? 빼달라고 했는데 하나님 허락 했습니까? 택도 없는 소리죠. 왜 가시가 있어야 됩니까.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높이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11장20절에 보니까 거짓 사도는 어떻게 됩니까. 『고후11:20: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찌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대단하십니다.’ 라고 높여주는 그런 발언들을 거짓사도들에게 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그들은 ‘헤헤~’ 하면서 좋다고 ‘야, 이게 진짜 복음이다.’ 좋아라 붙잡은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하는 말이, 역으로 반대로 나가지요. 23절에 보세요, 저희가 그리스도 일꾼이냐?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죠? 정신없는 말, 횡설수설, 미친넘의 주장, 자기가 하는 말의 뜻도 모르는 말, 이게 바로 정신없는 말이라는 거죠.
그들은 자신을 뭐라고 하냐, 악마의 종들은 뭐라 한다? 악마의 종들은 반드시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뭐라 합니까? 그리스도의 종, 내가 당신을 구원해줄게 라는 구원자의 종으로서 여러분에게 등장할 겁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옳다 그르다 판정받을 기준 자를 누구 세워라? 바로, 사도바울을 하나님께서 판정관으로 세워두었다 이 말이죠.
사도바울과 그들을 비교해 봐라, 소위, 목사라는 인간들과 비교해봐라, 너희의 차이점이 뭔가 한번 보라는 겁니다. 차이점이 뭐냐 하며는, 사도바울에게 뭐가 있었다? 가시가 있었지마나 이것조차 그에게는 뭐라 했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 다음에 그 은혜가 된 이유가 뭐냐 하면 12장9절, 내가 약한대서 온전하여 지죠.
이 이야기를 교회 강대상에서 이거 그대로 설교하면요, 왔던 교인들 그 다음부터 교회에서 안 보입니다. (세상에...진짜입니까?-녹취자) 왜 그럴까요? 왜 안보일까요. 교회 다닌 것은 자기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만 다니고 있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 최고 정점이 ‘내가 이렇게 힘든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버리면 그 사람은 무슨 낙으로 교회 오겠습니까?
뭔가 가족사항을 개선하려고 참혹한 경제상태, 비참하기 짝이 없는 민생을 하나님 믿고 예수님께 복을 받아서 조금이라도 조금 나아졌다는 그런 조짐을 얻기 위해서 교회 나왔는데 그것도 당신에게는 황공무지로소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그 교회 어떻게 나올 수 있단 말입니까. 뭐,'안 나오지요. 안 나오는 건 좋지만 왜 성경말씀을 싫어하는가, 이유를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 노림수에 안 맞으면 이유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안 나와요. 진리에 대한 관심은 있다? 없다? 없고. 진리 대신 누구한테 관심있습니까. 한 자로 하면 ‘나’ 확대하면 ‘나에게 속한 가족,’ 내게 속한 교회, 내게 속한 사업. 결국 축소해보면 나에 대한 관심 때문에 무엇에 관심이 없다? 진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겁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는데, 그 사람들은 내 성공이 나를 자유케 한다는 또 다른 어떤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따로 진리의 말씀이 들어올 리가 없어요. 왜!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될 때 나는 행복하겠다,가 굳혀 있기 때문에 내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깨져야 되는데 누가 나를 손대! 하나님이 나를 손대? 교회 나오나봐라!
이 영적싸움은 목회 처음 할 때뿐만 아니고 십년 이십년 해보세요. 목회 이십년 했다, 돌아온 주일날 또 싸움입니다. 교인이 백 명이다, 그 사람들 이제 우리교회 잘 나오겠지, 그 다음 주에 보세요. 그 백 명이 나올지 안 나올지 그 사람들 스스로 결정하는 거예요. 사람의 힘으로 못 붙듭니다.
붙들 필요도 없고, 교인들 붙들어버리면 뭐가 됩니까.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누구교회 됩니까. 내 교회 되지요. 내 교회 숫자 50명이다. 60명이다. 100명이다. 이렇게 되요. 내교회되면 역시 무엇에 관심이 없다? 진리에 관심이 없고 자기가 세운 교회에 관심이 있어요. 자기 사업장에 관심 있고, 자기 사업장은 생계수단이 되죠. 그게 바로 악마의 종이죠.
사단의 종입니다. 사단은 추상적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사도바울이 가는 곳에서 구체적으로 같이 대조돼서 등장하죠. 그럼 22장 다시 정리해봅시다. “그럼 목사님, 바른 예수, 바른 영 바른 복음이 뭡니까?!” 물으신다면 아까 한 마디로 얘기했잖아요. 그냥 공짜로 주시는 대로 구원받고 사는 거예요.
집에 애가 하나 있잖아요. 하나님이 주셨다고 생각 않습니까? 지금 안산에 가물다가 비 왔잖아요. 어젯밤에 얼마주고 비 오게 했습니까.(ㅜㅜ..) 묻지도 않고 공짜로 주셨잖아요. 공산주의에 주신 빗방울과 민주주의에 주신 빗방울 맛이 다릅니까? 성인과 악인과 상관없이 똑 같이 주셨지요? 마태복음5장에 나오잖아요. 선인과 악인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다 베풀어줬잖아요. 하나님이여 지금 한 달 수입이 오십만 원입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은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270만원 돼야 되겠습니다.” 라고 할 때, 270이 돼야 된다고 할 때 오십만 원이 뭐가 안 됩니까. 50만원은 하나님 은혜가 됩니까 안 됩니까. 은혜가 안 되지요? 사람이 50만원 소득인 사람이 270만원을 잡을 때 270만원 받겠습니다, 라고 기대하는 순간 뭐가 날아가 버렸습니까. 50만원도 거져 받았다는 감사가 없지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리와 창기와 십자가 옆에 선 강도가 왜 낙원에 갔느냐 하며는, 이 사람들은 내거시 아니고 전부다 누구 것이다? 하나님이 거져 준거다 이 말이지요. 하나님께서 세리나 강도나 창기가 나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님 것이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사람의 기대와 희망을 빼앗았겠느냐 이 말입니다. 아까 시편28편에 나오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한다?
인간이 세우는 것은 다 허물어버린다. 그 이야기를 듣고 세상 사람은 무서워하죠. “에구 이 사업체가, 이 교회를 부수면 안 되는데, 밑천 한 삼천만원 들어갔습니까?” 안 되게 하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세리와 창기처럼 돼버리면 내가 강호순처럼 될 수도 있는 사람인데 아직도 살아가는 걸 보니까 이것도 하나님 은혜입니다. 수준도 강호순 수준으로 낮춰버리면 그동안 우리가 놓친 감사가 한두 개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어놓고 짜증받기를 원했겠습니까. 감사 받기를 원했겠습니까.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매날 돈 없다고 짜증내고, 돈 없다고 짜증내고 왜 270만원 안되는데? 남들은 되는데...하면서 짜증을 내면 어떻게 범사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고 성령이 임한 주의 일이 되겠냐 이 말이지요.
데살로니까전서 5장 16~18절 보면 나오죠? 『데전5:16!18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범사에 감사하라! 비가 오든 가뭄이 들든 비가 안 와도 좋아요. 그런 감사가 되려면 인간의 힘으로 돼요 안돼요? 안 되죠! 안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내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부수잖아요. 부수는 것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내 것을 부순다는 건 나를 치는 거예요. 나라는 것이 제대로 하나님 은혜된 것을 아냐 모르냐 말씀대로 치는 겁니다. 말씀대로 쳐버리면 “아! 먹는 것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는 것이 이것이구나!” 돈을 아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이게 장난이 아니고 실제구나. 왜! 돈을 사랑한 순간 뭘 잊어버립니까?
생명나무, 주신 십자가 다 잊어버리죠. 그거는 기본이고 먹고 살게는 해줘야 되지 않습니까. 따지게 된다 말입니다. 그걸 잊어버리면. 지금 환자가 아니라서 여기 있잖아요. 병원에 가보세요. “몸만 나으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 이런 사람 있어요. 이것도 순가나 뿐이고 건강하면 또 돈 벌려고 하겠지만…
제가 우리교회에서 그랬어요. “여러분들 교회 오셨는데 얼마나 할 일이 없어 몸이 비틀어졌으면 교회 나왔습니까. 참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 11시 이 시간 일요일 11시 이 시간에 아무런 전화도 안 오고 아무 일 없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왜! 열심 반쯤 전화 왔다하면 그거 핑계대고 어디 안 나온다? 교회 안 나옵니다.
몸을 비틀면서 아후~ 심심해라 티비 보는 재미도 없고. 교회나 갈까? 라는 심정으로 나와도. 병원에 가는 거 좋아하는 사람 있습니까. 치과에 가겠다고 벼르고 벼르다 가잖아요. 건강한 자는 자기를 쓸데없는 자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좀 바꿔도 괜찮지요? 건강한 자는 의사도 필요 없다,는 말을. 건강한 자는 의사를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의인이란 자를 부르러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어느 인간이 자기를 죄인이라 하겠습니까. 다 못생기고 못나도 자기를 뭐로 간주한다? 나는 의미 있는 의인이라고 보죠? 그러나 주님께서는 어떻게 죄인으로 만들어서 예수님을 믿게 할 때 이게 사도바울에 의하면 뭐라 하냐면, 성령 안에서, 인간의 노력으로 안 되고, 성령 안에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강의를 결론 내리면 뭐냐, 부수는 것도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는 창조의 과정이다. 내가 부서질 때 나의 껍데기가 날라 가죠. 내 위선의 껍데기. 잘난 체 하는 껍데기. 나는 저정도 돼야 돼, 그런 모든 허사와 허구의 껍데기. 그런 껍데기가 벗겨지면 집에 개미가 안 보이는 것도 감사하고,
작은 것 하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거져 주시는 은혜인 것을 알고. 나 잘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내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누구를 증거 한다? 바른 예수 바른 영 바른 복음을 전하는 그런 식으로 나를 사용한다는 사실. 그러한 예수님과의 관계성에서 뽑혀 나왔다는, 선택 되었다는 그 환희! 그것이 사도바울이 알고 있는 예수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악마의 종들의 활동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분주하게, 맹렬하게 우리 주변에서 들끊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끓어 모으고 그러한 일을 통해서 진짜 바른 예수 바른 복음 바른 영을 전했던 사람이 추방당하고 쫓겨나가고 무시당하고 목사 면직되고 심지어 복음 전하는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이런 시대인데, 이런 가운데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를 감사하게 해주시고, 살아있는 의미와 이유가 예수님의 십자가, 거져주시는 사랑, 거져 주시는 생명이 있음을 저희를 통해서 증거 하라고 있는 줄 아오니 저희들 이 사명감에 기쁨으로, 감사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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