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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8대구강의16-불교의우주론과구원론(觀,구선)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16-불교의우주론과구원론(觀,구선)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8 대구강의 16 -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
* 참고서적 : 觀(관), 구선 지음, 봉성기획(서울:1999)

08,11,2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觀' -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

오늘은 구선 스님이 지은 '觀(관)' 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에 대해서 살펴보겠는데, 그 책에는 불교에 나오는 모든 경전은 물론이고, 거기에 첨부해서 '천부경(天符經)' 이라는 것이 있는데, 소위 단군의 후손이라는 자들이 우주에 대해서 설명한 책인데, 즉 '천(天)'에 대한 부경(符經)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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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경 [天符經] - 대종교(大倧敎)의 기본경전.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한배하느님께서 환웅을 통해 백두천산에 내려와 천하만민에게 직접 가르친 것으로서, 환웅이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천부인 세 개를 가지고 와서 교화할 때, 우주창조의 이치를 풀이한 81자로 된 참결(환웅이 직접 내린 말)이다. 현재 것은 묘향산에서 10년간 수도한 계연수(桂延壽)가 1916년에 암벽에 새겨진 내용을 발견하여 대종교에 전하였다고 하는데, 위작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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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교 [大倧敎] - 단군숭배 사상을 기초로 하여, 민속 신앙으로서 조화신(造化神)인 환인(桓因), 교화신(敎化神)인 환웅(桓雄), 치화신(治化神)인 환검(桓儉)의 삼위일체인 '한얼님'을 신앙적 대상으로 삼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 종교. 1909년에 대종사(大倧師) 나철이 처음으로 열었는데, 성(性)·명(命)·정(精)의 삼진귀일과 지(止)·조(調)·금(禁)의 삼법(三法)을 근본 교리로 하며, 삼일신고·천부경 따위를 경전으로 한다. ≒한검교·환검교 - 두산백과,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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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책에는 성경내용도 나오는데, 창세기 6장 4절의 내용이 말이다.

(창 6:4)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기에 대비되는 개념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이 낳은 자식이 '네피림' 인데, 그들이 당대의 용사이고, 유명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자이언츠, 즉 '거인족' 인데, 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거인이니 정상이 아니지만, 그러나 네피림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작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인족의 시조가 수상하다는 말이다의 아담의 계보가 아닌, 뭔가 난데없이 불쑥 침투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사람들의 아들들과 상반되는 개념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개입했다는 말이다.

◈ 아니, 웬 자이언츠 ??

아무튼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을 해서, 표현이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일종의 불량품이라고 할까, 아니면 괴상하다고 할까, 그런 거인족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인족이 태어난 뒤에 이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가? 죄악이 그만 관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기에 그릇이 이렇게 있다면, 죄가 부글부글 끓어서 그 그릇을 그만 철철 넘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 가운데 약속에 준해서 '노아' 라는 사람을 출생시키고, 노아와 7식구를 빼놓고 나머지는 다 몰살시키기로 하셨다는 말이다.

바로 그것을 최초의 언약이라고 하는데, 즉 '노아언약'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언약의 구조가 무엇인고 하니, 빼돌릴 사람은 미리 정해놓고 나머지는 모두 다 작살이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일을 아주 깔끔하게 빈틈이 없이 처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언약이라는 것은 도저히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할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노아의 경우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홍수를 사람들이 상상이라도 했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아무도 노아가 만든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노아를 실성한 영감으로 생각했지 말이다.

(창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창 6: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 '내가 믿는다' 라는 의미는?

지난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이 믿는다는 것은 과거에 축적된 자기의 지식에 부합될 때 믿어지는데, 과거의 자기 경험과 체험에 의해서 말이다. "아하, 내가 과거에 그런 것을 여러 번 경험을 했지. 그렇다면 믿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종의 과학인데, 인간은 그렇게 자기가 동일하게 반복해서 경험한 것만 골라서 믿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택시를 하나 타게 되더라도, 시간이 촉박해서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려고 하면 좀 낡았어도 젊은 기사가 모는 택시가 있으면 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빠른 신속성보다는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가? 나이가 느긋한 기사가 모는 개인택시나, 또한 돈이 많다고 하면 모범택시를 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택시를 골라서 타는 것은, "나는 저 기사를 믿습니다" 라는 것인데, 그것은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자기의 경험에 의해서 형성되고 축적된 것이 있기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해야 사회의 질서가 유지가 되고 말이다.

◈ 헤겔 - 질서는, 신뢰와 신뢰의 만남 !!

헤겔에 의하면, '질서' 라는 것은 신뢰와 신뢰의 만남인데, 만나는 상대방마다 과거를 일일이 추적을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것은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인데, 물론 결혼을 하기 전에 미리 알아볼 것은 다 알아보는데, 그 사람의 집안이나 사람됨됨이, 건강상태, 또한 직장은 어떠한지 말이다. 또 집안에 어떤 특이사항은 없는지 말이다.

◈ 왜 부부들이 이혼을 하는가?

그렇게 자기 나름대로 다 살펴보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이혼을 하는 부부들이 많은가? 그들은 그런 것을 전혀 살펴보지 않고 그냥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만으로 결혼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헤어지는가? 물론 말은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아서 헤어진다고 하는데, 그 내부에는 돈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말이다.

아무튼 가정에서도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헤겔의 유명한 '상호인정' 이라는 것인데. 전에 다 공부를 한 것인데, 기억이 좀 납니까? 그렇게 서로서로 인정을 해준다는 것이다. 만약 서로가 인정을 해주지 못하면 결국 이혼을 할 수밖에 없고 말이다.

교인과 목사 사이에도 어느 정도 신뢰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신뢰' 라고 하는 것은 물론 철저히 알아보고 믿을 만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어느 정도 첫 인상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좋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노?"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한다고 해도 자기가 만나는 상대방을 철저히 추적하지 못하는데, 설령 했다고 해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구선 스님, 인간 전체를 추적하다 ??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 책의 내용은 어떠한고 하니, 인간 전체를 모두 한번 추적을 해보자는 말이다. 그러니 보통 어려운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추적을 해도 '언약'은 인간은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인데, 사람들의 상호인정 가운데도 전혀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 그야말로 생뚱맞은 복음 !!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복음이라는 것이 그 얼마나 생뚱맞은 것인지,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다면, "십자가의 혜택으로서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이것을 책상 앞에 앉아서 밤새도록 한번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도저히 편안하게 잠이나 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라는 것은 "내가 어떤 행동을 일으켜서 나에게 구원을 따내는가?" 라는 의미인데, 그것이 보통 우리의 상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능력으로, 즉 십자가의 혜택을 입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니가 니 자신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라" 라는 것인데, 즉 "니가 니 자신을 정리정돈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혜택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어떻게 정신이 '뿅' 하고 들지 않나요? 신학교에 간다고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목회를 30년을 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것이 너무나도 엉뚱해서,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것을 뭐라고 했는가? '비밀' 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그러한 비밀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로 비밀스럽고 엉뚱한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는 말이다.

◈ 저는 휴지(?) 덕분에 삽니다 !!

누군가가 "목사님은 하루에 몇 끼를 먹나요?" 라고 질문을 했다면, 그런데 제가 뭐라고 답변을 했는고 하니, "저는 휴지 덕분에 삽니다" 라고 했다면,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대답이냐는 말이다. 자기는 그 목사가 하루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얼마나 먹는지, 고기는 얼마나 먹고, 밥은 얼마나 먹는지, 그것이 그것이 궁금해서 질문을 했는데, 그런데 그 목사는 턱도 아니게 휴지를 들먹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흥분을 하게 되는데, 왜 그런고 하니, 자기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렇게 설치고 돌아다녔는데, 그렇게 해서 겨우 하루에 세끼를 먹으면서 사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목사라는 인간은 전혀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소리만 한다는 것이다. "저는 휴지 혜택으로 삽니다" 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그동안 먹고살기 위해서, 또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던 그 모든 것들이 어떻게 되는가? 그런 것이 모두가 다 헛된 짓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의 그러한 황당한 대답으로 인해서 말이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 예수님, '내' 살과 피가 아니면 영생은 없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언약의 복음은 무엇인고 하니까,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은 없다" 라는 했다는 것이다. 물론 상호인정이 있어서 그 동안 앉아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냥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예수님, 안녕히 계셔요" 라고 하고는 말이다. 얼마나 신뢰가 없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는 말이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그런데 이것이 사도바울에게는 어떻게 표현이 되는고 하니, "십자가에게서 나오는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스믈스믈(?) 나오는 그러한 능력으로 말이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은 없다" 라고 하고 말이다.

◈ 신학이여, 철학이여, 안녕 !!

이렇게 되면 예수님과 사도바울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어떻게 다가서는가?" 라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 쪽에서 그 무슨 짓을 해도 말이다. 교회당을 12개를 짓고, 아무리 전도를 고구마로(?) 하고, 또 목사가 되어서 자기 한 평생을 바쳐도, 그런 것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학이여, 철학이여 안녕!" 이라고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십자가에게서 나오는 혜택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라는 것을 믿지 못할 경우에 어떤 질문들이 쏟아지겠는가? 마치 스팸메일처럼 말이다. "목사님, 그러면 교회에 다니지 말까요", "전도를 하지 말까요?", "봉사도 이제 하지 말까요" 등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당신의 말을 믿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 야,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네 !!

그런데 그렇지 않고 만약에 십자가에게서 나오는 혜택으로 구원받는 것이 믿어지게 되면, 그야말로 감격과 기쁨이 쏟아지는데, 그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야, 기분이 째지네" 라고 하게 되는데, 정말로 기분이 좋다는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전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니 말이다.

그러므로 아까 이야기한 "저는 휴지 덕분으로 살아갑니다" 라고 했을 때에, 그것은 "밥을 먹을까요? 먹지 말까요?" 라는 차원이 아니라, "아하, 이미 나는 살았구나" 라는 고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에게는 당연히 그러한 고백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그러면 네피림의 출현을 어떻게?

다시 창세기로 돌아가서, 네피림 시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식구만을 건지기 위해서 노아만 알아듣는 언약을 주셨는데, 그것이 곧 '방주언약(?)' 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괴상한 거인족, 즉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해서 낳은 네피림의 출현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노아방주, 즉 노아 식구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거꾸로 소급해서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 제 아무리 거인족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아무리 설쳐도 하나님께서 보는 관점은 오직 언약의 관점으로 본다는 말이다. "너희들이 얼마나 힘이 세고, 얼마나 영웅들인가?" 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짧은 시간에 얼마나 실적을 많이 남기는지,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으로는 일체 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보는 관점은 언약 관점인데, 즉 방주언약의 "구원은 방주에 있다" 라는 것은, "오직 십자가의 혜택이다" 라는 말이고, 그리고 "예수님의 살과 피가 아니면 안 된다" 라는 것인데, 이것들이 모두가 같은 의미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언약이니 말이다. 즉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들이 자기 체험이나 경험을 모으고 상호인정을 해서 얻어지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언약과 믿음이 한 세트로 !!

그렇게 되려면 언약과 더불어서 무엇이 와야만 하는고 하니까, 그 언약을 믿을 수 있는 믿음도 함께 세팅이 되어서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구원이 자기 밖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자기가 스스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부담감과 무거운 짐에서 해방이 되는데, 그야말로 만세를 부른다는 말이다. '비바' 라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어떤 내용인고 하니, 사실 창세기에 그런 네피림이 분명히 기록이 되어있으니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해석을 그렇게 하자는 말이지, 결코 그들이 없다고 해버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

◈ 그러면, 그들은 무엇을 믿는가?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 사람들은 왜 복음을 믿지 않는고 하니, 사실은 모두들 믿는 구석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믿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공부하게 될 이런 구선스님의 글과 같은 것들을 이 세상 사람들은 믿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을 어려워도 한번 공부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복음을 전혀 모르지만, 그러나 복음을 아는 사람들은 복음도 알고 또한 이 세상도 안다는 것이다. 장기에서 '양수겸장(兩手兼將)' 이라고(?), 그렇게 양쪽을 모두 다 안다는 말이다.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그게 유리하다면 유리한 점인데,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다" 라고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냥 몰라도 된다고 해버리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들이 주장한 것을 따라가면서도, 그것을 마치 복음적이라고 주장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공부하게 되면, "아하, 그래서 정말로 십자가뿐이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등한시하다가 막상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십자가를 깨어보면, 그 안에 이러한 불교정신이 가득히 들어있음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 기존교회의 십자가는, 불교정신의 발현 !!

기존교회에서 아무리 십자가를 외쳐도 그것은 불교정신의 발현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데, 물론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불교를 모른다" 라고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 몰라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병이 들었으면 무슨 병인지 알아야 하듯이 말이다. 즉 복음이 아닌데도 자꾸만 복음이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무엇인지, 그 십자가의 혜택을 이야기하면 그들이 뭐라고 하는가? 자기들은 이미 그런 십자가는 다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것이라고 하면서, 자꾸만 엉뚱한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다. 즉 "숟가락을 어떻게 하고, 또 젓가락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아야 밥을 먹지" 라고 하면서 말아다.

◈ 오늘 결론은, 자기 방어, 자기 옹호 !!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는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람의 모든 행동은 '자기 방어' 인데, 혹은 '자기 옹호' 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를 둘러싼 우주론, 구원론, 혹은 생명론, 이런 모든 것들이 어떤 식으로 논리가 전개되는고 하니, "나는 영원히 나이어야 한다" 라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펼쳐지는 논리들이라는 말이다.

제가 이렇게 미리 결론을 말씀드렸으니, 오늘 이 어려운 공부를 같이 하면서 무엇을 알아야 하는고 하니까, "아하, 인간은 저런 식으로도 자기의 가치와 자기의 존재 의미를 방어하려고 애를 쓰는구나. 그것 참 인간들이 유별나네. 나는 십자가의 혜택으로 구원받는 것을 믿는데, 저 인간들은 자기 방어책을 믿고, 자기 옹호책을 믿는구나" 라고 말이다.

◈ 나는 나다 ??

그래서 그들은 죽으라고 그것만 붙들고 있는데, 즉 "나는 나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나는 나다" 라는 것이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 아닌가?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소개할(?) 때 그렇게 하셨는데,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이야기이지, 인간의 입에 오르내릴 내용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바로 당신이 신인데,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그런데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그때부터는 신처럼 행동을 하도록 악마가 계속해서 부추긴다는 말이다. 즉 "너는 신이야. 니가 신인데 누구를 믿는단 말인가? 예수가 진리라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니가 곧 길이고, 생명이고, 진리이야" 라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악마의 음성일 뿐만 아니라, 구선 스님이 쓴 책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소위 신학에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는 신학자들의 책을 읽고 결론을 내어보면, 자기가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가 바로 신이란 말이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자기를 신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내가 내를 보고 신이라고 하는데 뭐가 문제인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끝이 있는데, 물론 그들은 끝은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하면서 겉으로는 겸손을 떨지만 말이다.

◈ 인간은, 무한의 자기 노선에서 벗어나지를 않아 !!

그것이 수학에서 나오는데, 수학에서는 무한이 무엇이냐는 것은 몰라도, 왜 'π'가 3.14 어쩌구 하면서 계속해서 나가는데, 그렇게 무한대로 나가는데 그러니 끝이 없다는 것이다. 마치 평행선이 끝이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숫자 하나하나가 쌓여서 무한으로 가고 있는데, 절대로 무한의 자기 노선에서 벗어나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 신학자들에게 예수는 일종의 위장술 !!

그것이 바로 신학자들, 즉 불신자들의 특징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 반드시 자기로부터 출발을 해서 자기로 말미암아서 신께로 간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렇게 자기로부터 출발해서 자기로 말미암아 가게 되면, 계속해서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든지, 100년이 지나든지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는 구색을 갖추는 것에 불과하고, 일종의 위장술인데, 그러므로 신학자들은 예수에 관해서 이야기는 하지만, 결코 예수를 믿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예수님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바로 나다" 라는 것을 믿어서 의심치 않기에 말이다.

바로 그것을 구선 스님은 불교의 거대한 경전과 양자역학을 비롯한 첨단 물리학과, 성경과 천부경과 음양오행설을 비롯한 동양철학을 종합해서, 그렇게 해서 길과 진리와 생명에 대해서 나름대로 펼쳐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관(觀)' 이란 책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지금 감히 1시간만에 조지려고(?) 하는데, 그 양반이 평생을 해놓은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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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π) = 3.14 1592 6535 8979 3238 4626 4338 3279 5028 8419 7169 3993 7510 5820 9749 4459 2307 8164 0628 6208 9986 2803 4825 3421 1706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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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재를 살펴보자.

** 흔히 불교를 '도 닦는 종교'로 알고 있다. 맞다. 하지만 무턱대고 도를 닦는 것이 아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우주의 대원리에 부합되고 융합하기 위해서 도를 닦는 것이다.

◈ 불교가, 도를 닦는 종교 ??

지금부터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살펴보겠는데, 지금부터 들으면 마치 이 시간을 동양철학을 강의하는 시간으로 오해하지 싶은데, 그래서 제가 서론격으로 먼저 "성도는 오로지 십자가의 혜택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 동양철학 - 인간은 우주의 일부 !!

서양철학은 '나'를 주체로 삼아서 전개가 되는데, 그러므로 이 자연세계도 자기를 위한 자연세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를 포함한 중국과 인도 등의 동양철학은, '나'를 그런 자연세계, 즉 나를 둘러싼 우주에 합치시킨다는 말이다. 즉 인간과 우주가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우주가 흘러가면 '나'도 흘러가고, 우주가 돌아가면 '나'도 역시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주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된다는 것이다.

◈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

물론 서양철학에서는 과학이 발달해서 인간이 인간을 분석하고 쪼개고 해부해서 "인간은 이러하다" 라고 내어놓지만 말이다. 그러나 동양철학 자기가 자기를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원리가 이미 우주원리의 일부로서 함께 휘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세탁기 안에 있는 둥근 원통처럼 말이다. 그렇게 세탁물이 물의 흐름을 따라서 돌아가듯이 인간도 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양철학에서는, 인간의 경우에도 서양철학처럼 독자적인 자기의 개인적 원리를 생각하지 말고, 우주의 원리를 제대로 알아서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 바로 그러한 우주에서 파생되어서 나왔음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즉 우주에서 파생된 것이 곧 인간이라는 말이다.

◈ 인간의 생로병사가 곧 타락 !!

그런데 인간에게는 '생로병사' 라는 우울한(?) 것이 있는데, 동양철학은 그 생로병사의 해결책을 서양철학처럼 마구 자르고 붙이고 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로병사가 오게 된 원천을 찾아가 보면,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원리에서 파생되어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가 바로 생로병사라는 말이다. 그것을 두고 그들은 '타락(墮落)'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보는 것 같은데, 인간은 그렇게 우주에서 뚝 떨어져 있는데, 타락할 때 그 글자들이 두 개가 더 떨어진다는 의미라는 것이다(떨어질 墮, 떨어질 落). 그렇게 위쪽은 버리고 아래쪽으로 자꾸만 떨어지게 되는데, 그렇게 인간은 중력에 의한 관성에 의해서 자꾸만 아래쪽으로 떨어지려고 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아래쪽이 아닌 위쪽을 쳐다 보라 !!

이러한 인간의 아래쪽은 바로 짐승인데, 그런데 자기의 괴로움을 짐승과 같은 생활로서 해소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짐승과 일치가 된다는 말이다. 거기에서 더 내려가면 식물이 되고, 또한 잡초가 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잡초에서 더욱 밑으로 떨어지면 돌맹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선스님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불자들아, 아래쪽을 보지 말고, 위쪽을 쳐다보아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를 상승시키게 되면, 짐승으로 떨어지던 관성의 습성이 위쪽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묘각(妙覺)'의 세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 이근호 주지가 바라보는 묘각의 세계 ??

이 묘각의 세계는 쉽게 말하면 빛의 세계인데, 즉 너무나도 환한 세계라는 말이다. 사실 이런 내용은 '동화사'에서 불자들을 앞에다 놓고 강의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근호 주지가 바라보는 묘각의 세계" 라고 타이틀을 걸든지 하고서 말이다. (ㅋㅋ)

흔히 불교는 "마음을 비워라" 라는 줄로 알지만, 하지만 그 마음은 이미 타락한 마음이기에 헛방이란 것이다. 즉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 라는 것은 일반 아마추어들이 불교를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 불교에서는, 그러한 마음도 타락한 마음이니, 또한 그 마음은 인간 속에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안', '이, ''비', '설', '신', '의' 이라고 해서 말이다.

◈ 묘각의 세계에서는 죽음조차도 !!

그런데 그런 마음조차도 상승기류를 타야 하는데, 그러면 올라가게 되는데, 그렇게 올라가면 묘각의 세계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묘각의 세계에는 인간을 그렇게 괴롭히는 생로병사가 없다는 말이다. 이 생로병사의 굴레로 인해서 그렇게 고민하는 것을, 이 묘각의 세계에서는 그런 생로병사가, 즉 죽음조차도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죽음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아무리 손을 대봐야, 그것은 서양철학에서는 자기가 자기를 쳐다보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 해결책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승을 해서 묘각의 세계에 들어가면 죽음조차도 흩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투명한데, 즉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다.

◈ '관(觀)'을 통해서 묘각의 세계로 !!

불교에서는 인간을 '영'과 '혼'과 '육'으로 보는데, 그런데 묘각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 경계가 없어지고, 바로 그 묘각의 세계에 올라가는 방법이 이 책의 제목처럼 '관(觀)' 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양반은 자기 책을 다 '관' 이란 제목을 붙여놓았는데, 그렇게 '관(觀)'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 결국,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아무튼 불교에서는 이것에 대해서 사람이 계속해서 질문하는데, "그러면 그 묘각의 세계에 올라가게 되면 또 뭐가 있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결국은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면 그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고 할 수밖에는 없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질문을 해댄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칼빈이라는 사람은 약이 올라서 하는 말이, 그렇게 하나님이 누구인지 질문하는 사람을 위해서 질문을 만들어놓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칼바르트가 인용을 했는데, 그것을 또 지금 제가 써먹고 말이다. (ㅋㅋ)

◈ 만물 하나 하나를 제대로 풀어야 !!

지금 구선스님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해탈을 하는가?" 라는 것은 흔히 스님들이 하는 질문인데, 그러나 그것은 사물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냥 자기가 묘각에 세계로 들어가서 도를 닦으면 그만이라는 자기 일변도의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자연만물 하나 하나를, 심지어 인간의 위장이나 척추뼈 하나라도 제대로 모두 다 풀이를 할 수 있어야, 그렇게 해야 진리가 진리답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도를 닦고 자기가 해탈을 해서 자기가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수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이고, 거기에서 만족하고 머물러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불교가 과학이나 철학이나 또 기독교의 신학에 기가 죽지 않을 만큼, 이 우주전체를 모두 다 완전히 꿰뚫어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불교를 접하고는 "야, 우리보다도 수가 더 높네" 라고 하면서 감격을 하도록, 그렇게 우주전체를 속 시원하게 해명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우주론과 구원론을 제대로 펼쳐야 비로소 불교가 불교답다는 것이다.

◈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석가모니가 가르친 것은, 도만 닦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모든 사물에 대해서 그 원리를, 즉 시작과 중간과 끝의 원리를 다 해결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렇게 석가모니가 해결한 것을 두고서, 사람들이 절에 와서 도만 닦고 자기 병을 정신적으로 이겨낸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다 더 근원적으로 통 채로 알아보고자 욕심을 낸 책이 바로 이 '관(觀)' 이라는 말이다.

◈ 우주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물론 2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다면 1부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우주론' 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상승을 해서 올라가면 결국 우주가 남게 되는데, 그러면 도대체 이 우주는 어떻게 어디에서 생기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우주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라는 질문자체는 어디에서 떠나는고 하니까, "생로병사는 어떻게 해결하지?" 라고 하는, 즉 "아이가 아픈데 어떻게 하지?", 또 "취직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지?" 라고 하는, 그런 시시한 것들에게서는 일단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수준이 낮은 타락에 해당이 되기 때문에 말이다. 즉 그렇게 타락했기 때문에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주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라는 질문자체를 하는 사람은 이미 경지에 올랐는데, 바둑으로 하면 9단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서양철학이나 과학처럼 인간을 분석하는 것은 아마추어라고 보는데, 물리학이든 무슨 학문이든 간에, 그런 과학적 사고, 즉 분석을 하는 학문자체를 그렇게 본다는 말이다.

◈ 불교는 깨달음, 즉 관(觀)에 !!

하지만 여기에 비해서 불교는 무엇인고 하니, 깨달음에 의한 것인데, 그러한 깨달음에 의해서 새롭게 밝혀진 우주는 과학을 다 포함하는데, 즉 과학은 그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과학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로 자동차도 만들고 인터넷도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 과학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한데, 그러니 과학자도 모르고 신학자도 전혀 모르는 이 '관(觀)' 이라는 깨달음에서 비로소 불교가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이 타락에서 벗어나서 타락적인 심성을 가지고 무엇을 아무리 해도 타락한 그 마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러나 타락에서 벗어나 그 이전의 지경으로 올라가면, 인간은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인간도 없고, 결국 남는 것은 우주인데, 그런데 이 우주에서 더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 이 우주마저 없는 고요함의 세계로 !!

그렇게 해서 이 우주가 어디에서 생겼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 우주마저도 없는 세계로 올라가야, 그렇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비로소 우주가 어디에서 생겼는지를 해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철학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서양철학이고, 그것이 곧 주체정신인데, 즉 "나는 나다" 라는 정신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불교는 그런 '나' 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나'를 분석해보면, 안식(眼識)(눈), 이식(耳識)(귀), 비식(鼻識)(코), 설식(舌識)(혀), 신식(身識)(몸), 의식(意識), 이것이 바로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인데, 그런데 이것은 타락된 인간이기에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즉 인간이 물질이 된 것은 타락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물질조차 없는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물질보다 높은 세계가 혼의 세계이고, 혼의 세계보다 높은 세계가 영의 세계라는 말이다. 그런데 구선 스님의 주장은, 그러한 영의 세계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자는 것이다. 스님이 욕심도 많게 말이다. 그런 영의 세계보다 더 높은 세계가 정적의 세계, 즉 고요함의 세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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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식불교 (唯識不敎) -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오직 마음 뿐으로 외계의 대상은 단지 마음이 나타난 결과라는 불교사상이다. 여기서 유식의 '식(識)'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말해서 마음이고 유식이라고 하는 말은 글자 그대로 '오직 마음',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하는 이 학설의 기본적인 주장을 요약한 명칭이다. 유식은 모든 것을 마음의 작용으로 보고 마음이 어떤 형태로 작용하는가를 심도 있게 추구한 이론이라는 의미에서 진정한 심리학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음의 구조와 그 심리작용 등을 잘 인식하고서 활동하면 궁극적인 목적인 성불(成佛)의 단계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원리와 그 수행성을 강조한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다. …
이러한 유식설의 특징은 다음과도 같다. 마음을 8종으로 분류를 하여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 등 8식을 세웠다. 이중 앞의 5식을 전오식(前五識)이라 하고 뒤의 3식을 각각 제6식·제7식·제8식이라고 한다. 제7식(말나식)·제8식(아뢰야식)은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3성설(三性說)을 새롭게 내세우고 있다. 모든 존재의 양상을 마음속으로 환원하여 앞에서 말한 3종으로 분류했다. 3성은 마음의 본래적 양상인 동시에 포괄적으로는 존재의 본래적 양상이다. 요가수행을 통해서 유식관이라는 구체적인 관찰법을 교리적으로 조직하고 체계화했다. …
또한 마음 이외에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식설에서는, 마음을 객관인 소취(所取)와 주관인 능취(能取)로 이분하는데, 능취로서의 마음인 견분(見分)이 사물의 모습으로 유사하게 드러난 소취로서의 마음인 상분(相分)을 바라본다고 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마음이 마음을 본다는 인식구조설에 근거하여, 모든 것은 마음의 드러남에 불과하며 자기 및 외계를 실체라고 보는 마음에서 괴로움과 오류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 네이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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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觀) - 존재, 그 완성으로 가는 길 !!

이 책의 제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는데, "관(觀) - 존재, 그 완성으로 가는 길" 이라고 말이다. 한 마디로 '성화론' 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양반은 어느 정도인고 하니, 소위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무극(無極), 음양(陰陽), 그리고 도가에서 말하는 도(道), 그러한 것들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쟁이들이(?) 말하는 것보다 더욱 더 근원적인 것, 그것이 바로 고요함인데, 곧 정적의 세계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인간은 어떻게 되어있는고 하니, 결코 고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오후에 무엇을 해야할지, 내일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 그러니 항상 분잡스럽다는 것이다. 그러한 분주함, 즉 혼란과 복잡함인데, 그런데 그렇게 복잡하고 분주한 것은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저자에 의하면 말이다. 그리고 인간이 뼈는 단단하고 근육은 좀 물렁물렁한데, 그것도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 자석은 너무 재미있어 ??

그리고 전기도 보면 양극과 음극이 있는데, 옛날에 사람들이 자석을 얼마나 신기하게 여겼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자석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멀쩡한 비싼 라디오도 마구 뜯고 했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는 모든 전자제품에는 다 자석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중국에서 만든 나침반도 자석으로 만드는데, 그런데 이 자석이라는 물건은 어떠한가? 원래는 뭔가가 접촉을 해야만 움직이고 가지고 오는데,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당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여기서 느끼는 점이 바로, 인간이 모르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것은 오직 대자연만 알고 있는 말이다.

◈ 대자연만이 알고 있는 그 무엇 !!

그런데 인간이 대자연에 합일을 하려고 하면, 이것을 모르고서는 자연에 도저히 합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합일을 하지 못하면 인간은 타락한 상태에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반대로 합일이 되면 인간은 타락에서 벗어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접촉하지도 않았는데 자석에 쇠붙이가 당겨온다는 것은, 그런 보이지 않는 중간에 무엇인가가 있다고 보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있다고 보았을 때는, 그렇게 있다고 하는 것을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심, 즉 자석과 끌리는 쇠붙이 사이에 놓여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중심이 곧 핵심이고, 눈에 보이는 것은 그냥 주변이고 보조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 오, 자기장 신이시여 ??

왜 저자가 이런 주장을 하는고 하니, 만약에 그런 식으로 보지 않으면 대자연에 합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양철학은 보이는 것을 중심으로 하니, 보이지 않는 이런 것은 무시한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용할 생각만 하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이용하지 복종하는가? "오, 자기장 신이시여!"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그렇지 않은데, 보이지 않는 것을 섬기기 위해서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야말로 신앙이 그 얼마나 좋아 보이는가? 마치 히브리서 11장 1절의 말씀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말이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헛갈리지 싶어서 앞에서 그런 내용을 먼저 언급했다는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450년 소나무를 위한 첫 천도제 ??

이번에 강원도 평창에서 450년이 된 소나무가 돌아가셨다고 천도제를 올렸다고 하는데, 이 천도제가 책에도 나오는데, 즉 "귀신이여, 편히 가소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나무에게 이렇게 천도제를 올리는 것이 그들도 처음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450년이 된 소나무가 돌아가셔서, 그 나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 천도제를 올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불교에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중심에다 놓고, 보이는 세계를 변두리에다 놓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에 모든 정성을 다할 경우에만 인간에게 언제나 근심이 되는 생로병사의 문제가 그 해답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동양철학이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그대로 기독교에 접목을 시켜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섬겨야 복을 받는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실 의구심이 무척 들기는 하는데, 물론 그런 동일한 아이디어를 사용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그것을 지금 따지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사실은 다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게 되면, 정작 자기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천도제를 드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 왜 인간의 뼈는 단단하고, 근육은 물렁물렁한가?

동양철학에서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기(氣)' 라고 하는데, 아까는 자석을 예로 들었는데 말이다. 이런 '기(氣)'를 저자는 에너지로 보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뼈는 단단하고 근육은 물렁물렁한데, 그러면 그것을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 하겠는가?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불교는 도는 닦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주의 모든 문제를 다 해명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뼈는 왜 단단하고 근육은 왜 물렁물렁한고 하니, 그것은 바로 처음의 원초적인 에너지가 물질화가 되고 타락이 되면서 뼈에게 집중이 되었기에 뼈가 그렇게 단단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집중되는 원리가 각자의 파장, 혹은 파동의 원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파동의 원리가 있어서, 파동이 같은 것끼리 모이다보니, 이것을 '원신(元神)' 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뼈는 단단해지고 근육은 물렁물렁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동이 다른 것은 또 다른 인간이나 그 무엇(?)에게로 간다는 말이다.

◈ 코끼리와 사람의 차이점은?

예를 들어서, 코끼리와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원래 코끼리와 인간의 재료는 다 같은 '원신'(원래의 신?)인데, 이것이 각자의 자기 파동을 찾아서 가다가 보니, 즉 2학년 1반과 2학년 2반이 각각 그렇게 모이듯이 그렇게 코끼리와 사람이 각각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원신(元神)'은 무엇인가? 이 원신은 어디에서 나왔는고 하니, 먼저 파동을 야기하는 원신 이전에 에너지가 있어서, 바로 신이 여기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저자 왈, 고요에서 선천 에너지가 !!

무슨 말인지 이해가 좀 됩니까? 여기에 대한 설명은 조금 있다가 하고, 먼저 저자의 주장을 들어보면, 물론 어렵지만 한번 들어보자는 말이다. 저자인 구선 스님에 의하면, 정적(고요)에서 무엇이 생기는고 하니 에너지가 생기는데, 그것을 '선천 에너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1번 에너지이고, 그리고 또 2번 에너지가 있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묻는데, 비판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이 땡중, 에너지면 에너지이지 선천 에너지가 있고, 또 2번 에너지가 있는가?"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그 양반은 대답하기를, "인간의 모든 물질은 비비고 부딪치는 상대가 없으면 뭔가가 발생이 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음과 양이 있어야, 서로 비비고 부딪치고 한다는 것이다.

음양오행설에서 화(火)와 목(木)이 만나면 토(土), 즉 재가 되는데, 그리고 금(金)과 수(水)가 있는데, 그것은 서로가 상극이기에 만나면 부딪치고 말이다. 그렇게 서로가 돕기도 하고 부딪치기고 하면서 상생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툭', '툭,' '툭' 불거져서 이 세상의 물질들이 다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양철학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말이다.

◈ 어이 이 목사, 전기의 (+)와 (-)는 왜 있지?

여기서 그 땡중이 저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면,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왜 생겼는가?" 라고 말이다. 즉 자석은 남극과 북극으로 나누어지는데, 그러니 불교라고 해서 도(道)만 닦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석이 서로 대립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처음부터 제대로 설명해줄 때에 비로소 불교의 우주관이 제대로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두고서 몰라도 된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뒤로 미루어버린다면, 마치 불교가 허점이 있는 종교처럼 보여진다는 것이다. 즉 "도만 닦으면 다인가? 이 땡중들아! 이 세상은 과학에 맡기면 되나? 이 무식한 불교야!" 라는 소리는 듣기 싫다는 말이다.

비록 서양철학에서는 정신과 물질이 따로 따로 있다고 주장을 하지만, 그러나 불교에서 그런 정신마저도 물질에서 와왔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해명을 해줄 수만 있다면, 그때 비로소 불교가 박수갈채를 받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사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들 스스로 에게 질문을 하고 또 답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불교적으로, 이 불교적이라는 말은 불교에 나오는 팔만 대장경과 같은 모든 경전을 다 살펴보는 것을 뜻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불교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고요가 있었고, 거기에 선천 에너지가 나오고, 또 뒤를 따라오는 에너지가 있어서, 이 두 에너지가 충돌하고 비비게 되면, 여기에서 '의식'이 나온다는 것이다.

◈ 증거를 가지고 해명을 하면 그만 !!

그런데 그런 의식이 나온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가? 그것은 증거를 댈 문제가 아니라, 현재 있는 것이 증거이기 때문에, 증거를 가지고 해명을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의식이 6가지가 있는데,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이라고 해서 말이다. 여기에 '생각하는 것' 까지 더해서 7가지가 되는데, 즉 "6+1"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이 과학적으로 보아서 말이 되는가? 즉 귀를 분해하게 되면 과연 의식이 나오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귀가 있어서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을 듣도록 하기 위해서 귀가 나중에 파생되었다는 말이다.

◈ 저자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데 !!

여기서 저자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데, 진화론이 바로 앞에서 말한 그런 것인데, 즉 듣게 하기 위해서 귀가 나중에 파생이 되었다고 하는 이론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손이 있어서 물건을 쥐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잡아야 하기에 나중에 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고 하니, 예를 들어서, '눈' 이라고 하면 사람의 눈이나 개구리의 눈이나 뱀의 눈이 다 같아야 하는데, 왜 다들 다르냐는 것이다.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지 싶은데, 아까 십자가를 이야기할 때는 무척 쉬웠는데 말이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하는고 하니, 자기가 알고 경험한 것이 아니면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의 눈과 뱀의 눈이 다른고 하니, 만약에 그것을 모르게 된다면 자기가 진리라고 알고 있는 것에 허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 스님, 왜 인간의 눈과 뱀의 눈이 다릅니까?

다시 말해서,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에 묻기를 "저 스님, 왜 인간의 눈과 뱀의 눈이 서로 다릅니까?" 라고 한다면, "그건 모르겠는데요" 라고 하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진리를 이야기합니까?" 라고 하면, 그 얼마나 난감하고 부끄러우냐는 것이다.

자기가 믿고 있는 부처의 논리에 의해서 모든 것이 다 풀리고 해명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어야 마음이 안심이 되고 푸근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힘이 들어서 그 스님이 이런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좀 이해가 됩니까? 그들이 왜 이런 연구를 하는지 말이다.

◈ 학생 여러분, 저는 생물 선생님 !!

물론 이런 것은 과학자들이 하는 일이지만, 하지만 과학자들은 써먹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즉 돈을 벌기 위해서 말이다. 다음은 생물 선생님과 학생과의 대화인데 한번 들어보자.

* 선생님 : 여러분, 반가워요.
* 학 생 : 저희들도 반갑습니다.
* 선생님 : 뱀의 눈은 이렇게 진화가 되었고, 인간의 눈은 또 이렇게 진화가 되었습니다.
* 학 생 : 선생님, 그런데 뱀과 인간의 눈은 왜 그렇게 다르게 진화가 되었습니까?
* 선생님 : 그건 몰라도 돼.
* 학 생 : 왜요?
* 선생님 : 어디서 내 밥그릇을 날리려고, 어서 저리가.
* 학 생 : ? ? ?

◈ 아무튼 인간은 별(?)에서 떨어졌는데 !!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뱀과 인간의 눈이 왜 다른고 하니까, 인간의 원래 있었던 모든 것은 '별(?)'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는 것이다. 너무 어려워서 중간에 있는 과정은 모두 생략했는데,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인간은 별에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별에서 떨어질 때에 원신이 되는데, 즉 원신이 물질로, 또 그 물질이 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신에서 그렇게 떨어져 나온 것에서 파장에 나오는데, 그 파장이 서로 같은 파장끼리 모이면 뱀이 되고, 또 다른 같은 파장끼리 모이면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과학에 없는데, 즉 생물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그들은 우주의 목적과 같은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하나요?

물론 단기 목적은 있는데, 즉 "도를 닦자" 라고 하면 목적이 되는데, 물론 전체해탈에 이를 때까지는 목적이 없는데, 요각의 세계, 즉 환한 빛의 세계에 이르면, 여기에서 '관(觀)' 이라고 하는 것은 '본다' 라는 의미인데, 즉 모두를 다 보고 안다는 것이다. 즉 뱀과 인간의 눈이 틀린 것을 다 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별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원천 에너지와 후천 에너지가 충돌을 일으키면서 의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 이전에 기(氣)가 있어서 음과 양으로 되어있는데, 즉 에너지도 기(氣)고, 여기서 충돌해서 나온 것도 기(氣)인데, 거기서 나온 것이 양기와 음기라는 말이다. 그러면 왜 양기와 음기로 나누는가? 그렇게 둘로 나누어야 자석과 전기 등이 원천적으로 설명되기에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고개를 꺄우뚱하면, 중이 뭐라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니가 한번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성경을 보고 설명을 해봐라. 모르지? 모르면서 무슨 말이 많아. 그냥 입이니 다물고 있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서를 가지고 자석이 왜 음과 양으로 되어있는지 설명이 안 되면 자기가 하는 말이나 경청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 구선 스님과 이근호 목사의 만남 !!

* 구선스님 : 자석이 왜 음극과 양극인고 하니?
* 이 근 호 : 글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 구선스님 : 그러면 니가 한번 설명해봐.
* 이 근 호 : 설명을 못하겠는데.
* 구선스님 : 왜 니가 좋아하는 성경을 가지고 있지?
* 이 근 호 : 물론 가지고 있지.
* 구선스님 : 그것을 가지고 설명을 해봐.
* 이 근 호 : 그래도 힘들지.
* 구선스님 : 왜 이사야서에 그런 내용이 안 나오나?
* 이 근 호 : 안 나오지.
* 구선스님 : 그런데 무슨 말이 많아?
* 이 근 호 : 그래도 알고 싶어서 그렇잖아.
* 구선스님 : 그냥 내 말이나 조용히 들어.
* 이 근 호 : 그러면 제대로 설명을 해야지.
* 구선스님 : 어허, 그래도?
* 이 근 호 : ? ? ?

◈ 어떻게 인간이 나오는가?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들어봐야 하는데, 그렇게 선천 에너지와 후천 에너지가 충돌해서 양기와 음기가 나왔는데, 그 양기와 음기가 의식을 만들어내는데, 거기서 파장이 나오고, 이 파장이 농축이 되면 물질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파장이 농축되면 물질이 된다는 것은 물론 현대 물리학에서 나온 것인데, 그 물질을 분석하면 파장이, 즉 에너지가 나온다는 말이다. 현재 물질을 모두 다 쪼개버리면 빛의 입자가 되는데, 그런데 이 빛은 입자로도 되어있고, 또 파장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님은 입자보다도 파장이 먼저라고 주장하는데, 즉 파장이 모여서 입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 입자라는 것은 아주 조그마한 알갱이인데, 그것을 '코크' 라고 하는데, 그 알갱이가 모여서 중성자와 양자가 되고, 그것이 서로 양력에 의해서 붙어져서 원자핵이 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원자핵의 바깥에는 전자가 구름처럼 몰려있는데, 그것을 원자라고 하고, 그 원자가 모여서 분자가 되고, 그러한 분자가 모여서 단백질과 같은 고분자가 되고, 또 단백질이 모여서 세포가 되고, 세포가 모여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와 반대로, 사람을 쪼개면 세포가 되고, 세포를 쪼개면 분자가 되고 원자가 되고, 또 전자가 되고, 결국 남는 것은 파장인데, 그래서 이 파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는 결코 무식하지 않다는 말이고, 자기도 물리학은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음과 양이 나오는데, 그런데 이렇게 음과 양만 나오면, 즉 돌맹이만 나온다면 아무런 의식이 없는데, 그런데 인간은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음과 양이 나올 때 선천 에너지와 후천 에너지에 의해서 6가지의 의식이 생긴다는 말이다. 또 양과 음에 의해서 물질이 나오고 말이다. 바로 이러한 물질과 의식이 결합해서 고유한 자기 영역, 즉 보는 영역 따로, 듣는 영역 따로, 그렇게 6가지 경계선이 생긴다는 말이다.

◈ 인간을 분석하면 우주가 나오는데 !!

그러한 경계선의 오야붕이 바로 '주체' 라는 것인데, 즉 '나' 라는 것이 주체라는 말이다. 이렇게 6가지 의식을 저자는 꽃잎으로 표현을 했는데, 그 꽃잎마다 다 물질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들은 의식이 몇 개가 안 되는데, 즉 동물은 거의 본능 밖에 없고, 그래서 그 본능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인간은 6가지가 다 있고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동물보다는 훨씬 더 낫는데, 그래서 인간은 처음에 있던 모든 우주의 모습을 제대로 포함하고 있는 증거물이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분석하면 우주가 나온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주가 낳은 것이 바로 인간이니 말이다.

그렇게 인간을 분석하니까, 이러한 인간에게는 6가지 의식이 있는데,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이라고 말이다. 여기에 '나' 라는 것까지 더해서 의식이 7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바로 오야붕이 '나' 라는 의식이라는 말이다.

◈ 그런데 오야붕은, 의식만 있지 물질이 없어 !!

이 오야붕의 특징은 졸개들을 하나로 모으는데, 그래서 눈이 보지만 사실은 '내'가 보는 것이고, 귀가 듣기는 하지만 그것을 듣는 것은 역시 '내'가 듣는다고 한다는 말이다. 과학적으로는 두뇌의 '시넵스' 라는 세포가 활동해서 뭔가를 생각했는데, 결국은 이것도 머리가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을 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나' 라는 것의 특징은 의식만 있지 물질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오야붕인데, 자기는 정작 아무런 물질적인 바탕도 없으면서 혼자서 대장 노릇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발이 아픈데, 그런데 자기가 아프다고 하고 말이다. 불교에서는 바로 이것을 깨달아야 타락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자기가 타락한 것을 알기는 아는데, 그런데 그렇게 타락한 '나'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나요?

물론 이 '나' 라는 것은 온전하지를 못한데, 왜냐하면 처음에는 이 '나' 라는 것이 없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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