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를 바라보면서...
용산참사를 바라보면서...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이것이 저주받은 세상의 모습이다" 라고 악마가 외치고 있지 싶은데, 웬지 '그것이 아니냐' 라고 거부하기가 싫군요. 참, 해도 너무한다 싶은데, 진작 법이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았지만 말입니다. 이근호 목사님의 칠곡철학강의 녹취일부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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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
* 아버지 : 늦어도 밤 11시까지 들어오너라.
* 아 들 : 예. 알겠습니다.
* 아버지 : 어, 왜 11시 40분에 들어왔지?
* 아 들 : 친구들하고 놀다보니 좀 늦었습니다.
* 아버지 : 그러면 법을 어겼잖아?
* 아 들 : 왜 좀 어기면 안 됩니까?
* 아버지 : 안 되고 말고.
* 아 들 : 그것은 가정의 법이라기보다 아버지 혼자만의 법이 아닙니까?
* 아버지 : 너는 가정의 질서를 무시하는가?
* 아 들 : 아닙니다.
* 아버지 : 아니면 왜 그렇게 하나?
* 아 들 : 그런데 어제는 아버지가 11시 40분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 아버지 : 그래? 그렇다면 법을 수정해서 밤 12까지로 한다.
* 아 들 : 완전히 아버지 마음대로이네요.
* 아버지 : 그러니 내가 이 집의 가장이지.
* 아 들 : ? ? ?
그러므로 결국은 이러한 '법' 이라는 것이, 상징적인 인물로 간주되는 사람이 자기가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결국은 바로 이러한 법 때문에 가정이 깨어지고, 또한 국가도 그렇게 깨어진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국가도 일종의 상징이니까 말이다.
원한은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서 !!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가 그렇게 12까지 들어오라고 했는데도 그 아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12시 20분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원한이 발생하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는 다른 자식들보다 상속을 좀 적게 해준다든지, 아니면 손자를 낳으면 두 번 앉아줄 것을 한 번만 앉아준다든지,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 모든 관계에 있어서 이런 원한관계가 마치 거미줄처럼 꼬여있는데,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본인이 상징적인 존재로, 즉 신화적인 영웅으로 항상 군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가 나름대로 법을 만들고 이 법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이 준수하도록 기다린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가정에 밤 12시에 들어오라는 법이 있으면, 그러면 옆집 아이에게는 그 법이 적용되는가? 그 가정에는 그런 법이 없으면 당연히 상관이 없는데, 그런데 아버지는 뭐라고 하는가? 옆집 아이가 밤 12시가 지나서 들어오면,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자기 식구들에게 뭐라고 하는가? "저 옆집 자식놈은 밤 12시가 지나서 집에 오는 법을 어긴 나쁜 놈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내가 진작 그럴 줄 알았지 !!
그런데 그러다가 그 옆집 아이가 어느 날 자기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그 아버지의 입에서 당장에 튀어나오는 말이 무엇인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법을 어기는 나쁜 놈이니 인사를 하지 않는고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다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자기가 만든 법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데, 즉 자기가 만든 법을 어겼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이다. 인사도 할 줄 모르는 나쁜 놈이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사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것이 바로 원한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것이 지금 전 세계에 거물망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원한관계가 말이다. 매사 다 그러한데, 그러니 사람을 만나도 서로가 서로에게 자기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해서 자기가 법을 만들게 되고, 또한 그 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분노와 원한을 만들고 쌓이게 해서 복수심에 불타고, 그러한 복수심은 마침내 행동에 나서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얽히고 얽혀있는 사람들의 관계라는 말이다.
이근호(IP:117.♡.140.25)
09-02-05 01:21
법은 법의 내용이 우선이 아니라 법을 만드신 분을 사랑하느냐가 우선입니다. 만약에 법을 만드신 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없이 법을 준수하게 되면, 그 법의 내용이 바뀌면 자연 화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법을 만드신 분을 사랑하게 되면 법의 내용이 하루 12번씩이나 헷가닥 바뀌어도 여전히 존경심과 애정은 전혀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이로서 신약시대에서(요한복음)는 오직 하나의 법만 남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사랑을 요구하는 하나님에게 "나는 하나님의 법 내용대로 지켰습니다"고 나서는 것은 곧 "나는 나만을 사랑해서 하나님 당신의 법을 지켜주었기에 나는 당신의 법을 지킨 나만을 최종 사랑합니다"는 것이 됩니다. 저주받아 마땅한 자입니다.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