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4: 1 (사울과 요나단)
삼상 14: 1 (사울과 요나단)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14장 1절
제목 : 사울과 요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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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2-01 15:11
사울과 요나단
2009년 2월 1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14:1
(삼상 14:1, 개역) 『하루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하고 그 아비에게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본문은 한 줄이지만 이 한줄이 사무엘상 14장 전체로 의미가 확산됩니다. 아버지에게 묻지도 않고 요나단이 자기 시종과 함께 적진에 뛰어들어갑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총사령관이 있음에 불구하고 묻지도 않고 뛰어들어갑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 군대의 명령 계통이 무시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래가지고서도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실 때, 요나단도 사용하시지만 사울왕도 사용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특정 인간이 승리했다고 전쟁이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공로로만 승리했다로 정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 전쟁에서 블레셋도 동원하시고 요나단도 동원하시도 사울왕도 동원하시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도 동원하십니다.
이 동원된 사람들 중에서 누가 자기 영광을 쟁취하려 하는가를 보면 되고 누가 그런 자로 인하여 억울하게 희생되고 밉상을 받는가를 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왕 주변에 사울왕이 지니고 있는 본질과 배치되는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고 마주치게 하십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는 사무엘과의 관계가 그러하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아들 요나단의 관계에서 그것이 비쳐지게 됩니다.
사울왕이 비록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토대 위에서 출현된 왕이지만 사울왕 본인은 여전히 자신을 아끼고 위하고 보호하고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울왕이 지니게 되는 그 가치관 속에서 하나님의 참 뜻이 왜곡하고 변질되어서 결국 참 하나님의 뜻을 가진 자까지 심하게 핍박하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울왕의 하나님에 대한 견해와 요나단의 견해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둘은 상충될 수 밖에 없을 텐데 이 둘 중에 우리가 어디에 속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나단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총사령관이 아버지에게 묻지도 않고 친구 한 사람만 데리고 적군의 진지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아버지 사울왕의 권위로부터의 이탈입니다. 사울왕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자신은 당연히 합법적인 중보자가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이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신이 어떻게 행위하느냐와 관련있다고 보았습니다. 자신과 관련된 딴 노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전쟁을 진행시킬 수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왕 자신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왕이기 때문입니다. 이겨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승리케 하고 져도 오로지 자신의 잘못에 의해서만 패배한다는 책무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존재의 자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통하게 되는 유일한 자리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나단은 그렇게 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블레셋이라는 나라는 이스라엘 그 누구의 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요나단은 이스라엘과 블레셋 나라를 비교하는 겁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의 왕인 자신과 블레셋 나라의 왕과 비교하지만 요나단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사울왕이 자기 아버지이지만 진정 이스라엘을 승리케 하시는 분은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에 속한 그 어떤 백성도 그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따를 수도 있고 그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요나단은 자신이 어떤 의미로서 이 블레셋 전쟁에서 관련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을 어떤 관점으로 보시는지를 저 블레셋과의 전쟁을 통해서 알려준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사울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관심사가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만큼은 왕을 세울 필요가 없다는 그 취지를 이번 전쟁을 통해서 비쳐나오는 것을 당연하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만이 이스라엘을 대표한다고 보았습니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전체가 곧 하나님에 의해서 언제든지 하나 같이 움직일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다수가 하나가 된다는 논리는 곧 특정 인간만이 그 ‘하나’를 독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깨서 이번 전쟁을 먼저 요나단과 그 친구 한 사람에게 붙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전쟁 요나단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임을 의심하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는대로 움직이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요나단의 움직임 속에서 의도적으로 사울왕을 반대성향과 의견을 지닌 인물로 배제하게 됩니다. 요나단을 반대하므로서 요나단이라는 장기알을 움직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물을 드러나게 하고, 이는 곧 사울왕은 오로지 하나님의 지시는 받기는커녕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마저 끌어당길 인물로 부각되게 합니다.
요나단과 친구가 처음에 약 20명을 처단하자, 갑자가 땅이 진동하고 소위 전쟁할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오로지 서로 대치해있던 양편 군대들 사이에는 전쟁해야만 하는 의지만 활활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은 여전히 자신이 이번 전쟁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서 제사장보고 언약궤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왕이 언약궤 앞에서 제사하는 일과 전쟁의 개시는 이미 전혀 상관없는 관계임을 본인도 알았습니다. 즉 이번 전쟁의 개시에 자신이 결코 주도적으로 관여 못한 상태에서 벌어졌음을 본인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괘씸했습니다. 그는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마당에 뒤늦게라도 자신이 기여한 바가 있음을 표내려고 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껏 가담한다는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승리의 영광을 피곤하게 만드는 악을 저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한 그 승리의 기쁨마저 하나님에게 적대적인 사울왕이 개입하므로서 다운되게 만들었습니다. 도무지 누가 적인지 아군이지 모호하게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승리해 놓고서는 승리의 기쁨을 짓밟고 훼손한 당사자는 바로 스스로 전쟁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 사울왕입니다.
사울왕은 백성들이 하나님께만 돌리는 영광을 역류시켜 자기를 경유해서 영광을 돌리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 가운데 임의대로 법을 집어넣어서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로와 영광을 도중에 가로채는 짓입니다. 우리가 소위 교회 지도자라는 당회장과 그 밑에서 순수하고 복음적으로 움직이는 부교역자 사이에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경우를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된 목회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은 자에 불과함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졌음을 아는 자입니다.
적군의 전사자의 태반은 자기네들끼리 칼질해서 전사한 것입니다.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들 가운데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소위 하나님 전쟁은 하나님이 주신 원칙대로 해야한다고 우기는 인물이 등장하므로서 이스라엘 내부도 자멸당할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법의 개입으로 인해 알 수 없는 공포분위가 형상된 것입니다. 사울왕은 군사들에게 배고파도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음식물을 먹는 자는 저주를 내린다고 명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왕의 지시든 하나님이 법이든 고려할 입장에 못되어 적에게 탈취한 소와 송아지를 피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노골적이고도 공개적으로 어긴 것이 됩니다. 이처럼 눈치 안보고 율법을 어기게 되면 이것이 전례가 되어 앞으로도 여차하면 손 쉽게 하나님이 법을 무시하려는 분위기를 이스라엘 내부에 전염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사울왕은 기겁을 했고, 자기 딴에 신앙적이라고 자부했기에 집단적 율법 위반 현상을 묵고하지 못하겠다고 화를 내며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율법 어김으로 인하여 이번 전쟁을 깔끔하게 승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결과까지 하나님이 내리신 징벌차원으로 이해했습니다.
사울왕은 착각하기를, 이처럼 백성들이 노골적으로 율법을 거역한 것은 어디까지나 왕이 사울왕 자신의 지시를 어긴 백성들에게 있지 결코 그런 명령을 내린 자신에게는 있지 않다고 자부하고 자신 만만하게 지시를 어긴 자를 색출하려고 이스라엘을 집합 시켰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이 지시대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남은 사람은 요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명령을 내린 사울왕입니다.
즉 사울왕과 요나단, 과연 이 두 사람 중에서 어느 사람의 잘못으로 온전한 하나님 승리를 망치게 했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하나님 전쟁의 적은 외부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움직인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왕을 세우라고 요청한 백성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말입니다.
사울왕은 끝까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전쟁의 일등 공신 아들을 살해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은 오로지 자신 소유의 나라를 굳히기 위한 일환에서 실시되는 절차입니다. 백성들이 왕의 결정에 반대합니다. 이로서 이스라엘 전체와 사울왕 개인은 따로 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란 이처럼 하나님 전쟁의 마무리 지점에서 그 내용이 밝혀집니다. 겉으로 보는 식으로 선택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공로와 영광를 가로채고 있느냐를 들통나게 하는 선택으로 나서십니다. 마지막 카드를 필지 뽑히지 아니하면 안되는 사람에게 쏠리는 그 신비로움에 앞서서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 쪽에 하나님이 서 계시다는 것을 더 신기하게 봐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진정한 지도자란 죽어 마땅함을 보이는 자로서 세워짐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