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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행 2" 22-24 (영의 세계)우리교회사도행전

Re..행 2: 22-24 (영의 세계)

이름 : 이근호(IP:)

영의 세계
2003년 10월 29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2;22-24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사람들은 영의 세계에 대해서 낯설어 합니다. 그럴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숨어계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사야 45;15에 보면,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에 의해 포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 세계를 공박하고 공격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인간들로서의 대책은 따로 없습니다. 그 영적 세계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양 선전, 유포하는 식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성도라면 여기에 동조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성도들에게는 완전한 현실 세계이어야 하기 때문이죠. 흔히 하는 말대로, 영의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놓고서 영의 세계에 대해서 본인부터 낯설어 한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 한 것이 되지요.

요한일서 4:5-6에 보면,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 끝에 보면,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함부로 사회에 나가서 거론하기 곤란한 말씀을 사도는 거침없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거침없이 주장할 수 있어야 함에도 웬지 주저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우리 자체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영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이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요? 아무리 성경 속에는 성령이 오셨다고 요란스럽게 떠들어도 남의 동네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습니까?

사람이란 환경에 쉽게 굴복하기 마련입니다. 환경에 적응 못하면 곧 죽음의 위험을 느끼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요구하는 윤리적, 도덕적, 그리고 통념화된 상식을 위반하며 산다는 것은 차라리 스스로 자결하는 꼴에 해당된다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합니다.

어디를 가나 남 눈치봐야 하고, 남의 눈에 거슬리면 되는 일이 없고, 남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어디가도 사람구실 못하고, 인간 대접 못받는다는 상식 중의 상식이라고 믿어지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도들은 어떠합니까? 그 분들의 생각도 그러합니까?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 2장을 막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12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소식도 막 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도들의 인생 삶이라는 것이 예전과 동일할까요 아니면 완전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대하게 될까요?

그들은 영의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담하게 요한일서와 같은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남 눈치 보지 않고 말입니다. 실제 현실에 대해서 자신만만해 가지고 마음놓고 그들은 발언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의 영의 세계를 아느냐?"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만약에 이런 대담함이 없이 예전과 같이 웅크리고 사는 꼴이라면 그들에게 임한 성령의 임재의 중요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사도와 같이 성령을 받은 자 맞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사도와 같이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말씀대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영의 세계란 멀리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는 구름 위에 우리가 도달 할 수 없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마치 비누방울 안에 온 우주보다 더 큰 새로운 세계가 들어있는 것처럼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그 비누방울 안을 들여다 보는 눈이 열려져 있어야 영적인 세계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 영적인 세계 안에는 뭐가 들어있습니까? 힘이 들어있습니다. 영적인 힘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가시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힘은 세상을 구축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은 더욱 있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있는 것을 부정하고, 없애버리고 파괴하고 정죄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없다고 여기는 것으로 채우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죽은 것을 살리는 힘이기도 합니다. 그 힘이 예수님에게 나타났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자로 나서십니다.

즉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는 곧 이 세상 자연의 구조로 그렇게 안정적이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마치 노아 때, 대자연의 큰 변화와 징벌이 있었는데 그 모두다 단지 노아가 받은 하나님의 언약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신 겁니다.

빈대 태우기 위해서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은 하나니은 서슴치 않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이 이 대자연이 늘 든든하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역시 우리 인간이 믿을 것은 대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안정된 질서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그 포근함과 큰 질서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드님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까? 인체의 정돈됨과 자연과의 조화도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라면 우리가 이런 견해를 받을 용의가 있으십니까?

우리 인간들이 자연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잘 보존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 표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우리 자신들이 우리만 염두에 두고 살 때, 대자연을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중심으로 운행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때에, 모든 것을 마무리 할 시점에 와서 하나님께서 비로소 이 대자연을 쥐고 있었던 중심인물을 알려 주십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어떻게 알리느냐 하면, 힘과 기적으로 이 현실 세계의 중심성을 알려 주십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 중심으로 보시면, 이해 안될 것이 없는 그런 일들도 사람 중심이나, 자연 중심이나, 자기 중심으로 세상을 보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그 어떤 해답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큰 권능과 기적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하나님이 제시한 정답 앞에서 자기 태도를 분명히 결정지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든지, 그래서 세상 모든 것,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거부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영의 힘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23-24절에 봅시다. 이 두 개의 견해가 가만히 대치만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님이 나타납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세상은 영을 모릅니다. 그것은 자기 중심적 인식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묶여 사는 신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실 때, 인간의 이런 자태를 죄라고 규정짓기를 명령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인간의 모든 것이 죄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을 거론하면서도 그 와중에서 결코 자기 중심성을 포기한 적이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 자기 아드님을 인간들의 손에 사형당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살해하므로서 예수님께서 비로소 소개하는 참 영의 세계를 아예 제거시켜 없었던 일로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영의 힘보다 세상에서 실패 안하는 힘을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했습니다. 과연 세상 사람들보기에 실패 그 자체로 보일 것입니다. 전혀 힘을 안 가진 분으로 보일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자 될까봐 제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욕심에 의해서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실패해야지요. 빈몸으로 태어나서 빈몸으로 돌아가는 인생, 옷 한 벌 있으면 수지 맞는 장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허락한 힘은 다른 힘입니다. 죽은 예수님이 되살아난 힘입니다. 바로 성령 안에 있는 자는 이런 권능 안에 놓여 있는 겁니다. 로마서 8:10-11에 보면,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은 모두 이런 영을 받았기에 아주 담담하면서도 차분하게 이 세상을 영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성령 받았기에 호들갑 떨 필요도 없이 하나님처럼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보냅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뭔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비의 세계, 영의 세계 그 자체의 권능에 의해서 우리가 소유물로 사로잡혀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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