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2-로마서8,갈1(강의정리)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2-로마서8,갈1(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42 - 로마서8, 갈라디아서1
05,09,03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이제 한 달의 방학을 마치고 !!
지금부터 로마서 12장을 공부하고, 그리고 갈라디아서로 바로 넘어가겠는데(?), 먼저 로마서 11장의 내용이 무엇이었는고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한 가운데에 묶이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순종치 아니한 가운데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해야만 하는데, 그러니 본인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구원받았다고 여기면 결단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이라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과 예수님이 모두 다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할 몫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냥 두 손을 다 놓고 놀고 있으면 되는가?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알면 된다는 것이다.
◈ 아하, 내가 순종하지 않았구나 !!
이렇게 순종하지 않았음을 아는 것은 오직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성도가 아닌 사람은 여기에 관심도 없고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가 결코 순종할 수 없음을 미리 앞당겨서 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잘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지금이 2005년도인데, 그런데 앞으로 2007년도에 순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도는 미리 앞당겨서 아는데, 그런데 그것을 '믿음'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2019년도에도 결단코 순종을 하지 않고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 기존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는 비교자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2019년 7월 6일에도 자기가 순종하지 않는 것을 미리 당겨서 아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말이다. 참으로 희한하지 않는가? 그런데 성도는 무엇까지도 아는고 하니, 자기가 2019년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아는데, 거기에 하나님께서 긍휼하심을 베푼다고 하는 것까지도 미리 앞당겨서 안다는 것이다.
◈ '순종하지 않음'과 '긍휼히 여겨주심'이 !!
이것이 좀 어려운 내용인데, 2007년도에 저나 여러분이나 다 순종을 하지 않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신다는 것도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하나는 '순종하지 않음'과 '긍휼히 여겨주심' 이라는 것이 말이다. 그것을 바로 지금 2005년 이 순간에 믿게되는데, 그것은 바로 언약 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이제 맘모스 비행선을 타고 !!
이것을 그림으로 크게 보면, 여기에 이러한 커다란 맘모스 비행선이 있는데, 이 비행선 안에 우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창조도 있고 또한 재림도 있는데, 그 창조와 재림 사이에 지금 2005년도도 있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2007년도도 있다는 것이다. 그 전체가 이 캡슐과 같은 비행선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다.
이 비행선 바깥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물론 안에도 계시지만 말이다. 비행선인 예수님 안에는 성도가 들어있는데, 이 비행선 안에는 2005년도, 2007년도, 또한 2019년도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2005년도에 우리가 순종을 하지 않는데, 그렇게 순종을 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베푼다는 것이다. 즉 용서를 하신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용서는 죄가 있을 때 필요한 것이지 죄가 없으면 의미가 없는데, 2005년도에 우리는 순종하지 않고 대신해서 용서를 받는데, 그것은 2007년도에도 마찬가지로 순종을 하지 않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다. 2019년도에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때도 우리는 순종을 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언약 안에서 움직이는데, 우리는 이것을 성경을 통해서 미리 앞당겨서 믿는데, 그것을 두고 '신앙'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하나님은 순종하지 못한 자를 용서함으로 구원해주신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 있는 자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로마서 11장 33절에 나오는데, 다같이 읽어보자.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어떻게 했다고 하는가? '가두어 두심은' 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어디 가두리 양식장이라도 하시는 분인가? 사람을 가두어 두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두어 두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어주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성도는, 지금도 순종하지 않고 사랑을 받고 있어 !!
물론 여기서 '모든' 이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긍휼을 베푼다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없이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원하는 모든 자에게 골고루 다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도 순종을 하지 않고 있고, 또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그래서 35절에 보면,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라고 한다는 말이다.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 바쳐서 복을 주는 하나님은 가짜 !!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인간이 하나님께 먼저 무엇을 바쳐서 보답을 받는 형태로 구원받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인간들이 만든 가짜 하나님이라면 모르겠지만, 진짜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교회에서 사기를 치는 것인데, 즉 "바치면 복을 받는다" 라고 말이다.
그런 것은 전혀 성경에 없는데, 그러니 하나님에게 우리가 무엇을 바쳐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바치기 이전에 우리는 순종하지 않았음을 선언하게 되고, 바로 그렇게 순종치 않았음을 선언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베풀어주심으로서, 그래서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남자들만 회원이 될 수 있는 등산모임에 만약 여자가 뽑혔다고 하면, 그것은 그 여자가 성전환 수술이라도 해도 뽑혔는가? 아니면 이번에는 특별히 넣어주자고 서로 이야기가 되어서 뽑혔겠는가? 결코 남자처럼 되었다고 모임에 가입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와 같이 성도가 천국에 가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저 인간을 넣어주자" 라고 주님께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뽑아서 세워주니, 비로소 우리가 그 모임에 들어와서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36절에 보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
만물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알고 있었던 주님인데, 그 주님이 우리가 알고 있는 주님과 같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지금 우리에게 "당신은 어떤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러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면 된다는 것이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딩동댕' 합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하지 않았는데 주님이 긍휼히 여겨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해도 물론 합격이라는 말이다.
◈ 사도바울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 !!
그러니 우리가 고민을 하지 말고, 성경을 보면 모두 나와있는데, 주님이 누구인지 말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 자기는 통뼈(?)인가? 즉 자기가 틀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오늘 살펴볼 갈라디아서를 여기서 미리 보면, 거기에 다 나온다는 말이다.
먼저 갈라디아서 1장 1절을 보자.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
여기서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그렇게 해서 사도가 되었으니, 그러니 까불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말을 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라고 하면서 아예 못을 박아 버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서 사도가 된 사도바울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그가 증거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고 하니, 무엇을 바쳐서 복을 받는 하나님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주께로 돌아가는가? 그것은 우리의 몸뚱아리 자체가 주께로 돌아가는데, 즉 순종치 아니하는 우리의 몸 전체가 '파닥파닥' 하고 까불지만, 그래도 결국은 주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 '파닥파닥' 까부는 벌레 한 마리 !!
예를 들어서, 여기에 이렇게 접시가 있는데, 그 접시 안에 벌레 한 마리가 파닥파닥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삐뚤삐뚤, 팔짝팔짝, 훌라훌라, 어질어질, 그 무엇이라고 해도 좋고 말이다. 그 어떤 의성어나 의태어를 다 사용해도 좋은데, 그렇게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이 접시로 말미암아 벌레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벌레가 2005년도에 순종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또 2007년도에 순종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아무튼 이 파닥파닥 거리는 벌레가(?) 밑에서 밀어 올리는 힘이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사도바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김 집사님은 이 파닥파닥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온갖 고민의 파닥파닥을 혼자서 다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런 파닥파닥하는 것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과연 무엇이 밑에서 밀어 올리는가? 바로 그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밑에서 밀어 올리는 것이 말이다.
* 질문 - '마음껏' 그렇게 한다는 말씀이죠?
거기서 '마음껏' 이라고 하면 칸트의 자유론이 나오는데, 칸트는 말하기를 "자유는 없다. 다만 '자유는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자유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그의 말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관한 글을 겨울 수련회를 염두에 두고 쓰고 있는데, 결코 만만한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절대악과 절대선은 동일하다" 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참 어려운 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절대악과 절대선이 어디서 나오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주체'에서 나오는데, 즉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그 절대악과 절대선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본인의 행동인데, 즉 "아씨, 엄청나게 나쁘네" 라고 하면 나쁜 것이고, "아씨, 엄청나게 착하네" 라고 하면 착한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주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는데, 그것은 바로 '충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왜 하나님이 바뀌었는가?
이번 겨울수련회의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기독교가 어떻게 성경에 있는 하나님에서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으로 바뀌었는지, 그것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물론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고 서서히 바뀌었는데, 바로 그러한 점을 추적한다는 말이다.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파닥파닥인데, 즉 그냥 구원을 받는데, 하지만 오늘날 교회에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믿어야 하고, 자꾸 무엇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바뀌었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바꾸었는지, 그것이 교회사에서 하는 것인데, 그것이 교회의 역사라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엉터리로 바꾸었는지 말이다. 성경이 엄연히 이렇게 있는데 말이다.
◈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적과 동지를 !!
교회사를 살펴보면,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언제나 적과 동지를 나누는데, 우리가 지금 하는 이런 성경공부는 아무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인간은 모였다 싶으면 패를 가르는데, 심지어는 자기 식구라도 세 사람만 있으면 가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 말린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은 그렇게 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학원연합회를 가도 패를 갈라서, 어느 줄에 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고 말이다.
* 질문 - 그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요?
그냥 자기 유익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데,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인간은 적과 동지를 자기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구별한다는 것이다. 그냥 자연스럽데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자기 애인이 두 명이라고 하면, 심지어 그 애인도 적과 동지로 나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애인이 많았으면,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 라는 하루끼(?)의 소설작품도 있고 말이다.
모든 드라마나 소설도 사실은 정치적인데, 즉 적과 동지를 나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누어져야 아침 드라마가 되고 여자들이 밥상을 치우다가 말고 본다는 말이다. 물론 남자들도 많이 보는데, 그런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정의의 이름으로 악한 자를 착취하는 재미인데, 즉 그 악한 사람이 저지른 악함보다 착한 주인공이 더 많은 착함을 행했을 때, 시청자들은 흡족함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 악한 놈보다 더욱 악한 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인공이 뺨을 얻어맞으면 다시 뺨을 때리면 재미가 없고, 권총으로 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내내 고생을 하기는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데, 하지만 그 악한 놈은 마지막에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다이하드'처럼 말이다. 그렇게 뭔가가 더 더해져야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 다시, 교회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바꾸었는가?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러면 교회가 왜 이렇게 하나님을 바꾸었는가? 그것은 바로 교회가 정치적인 집단이기 그러한데, 사도바울이 이러한 정치에 휘말리는데,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에 보면 사람들이 "아볼로파냐? 바울파냐?" 라고 하니, 사도바울이 여기에 대해서 책망을 한다는 말이다.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전 3:4)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인간의 주체가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을 규정지을 때는 정치적인 영역표시를 하는데, 마치 짐승들이 오줌을 싸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어떤 테두리를 가져야 존재가 되는데,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왜 자기 양복에 선을 긋듯이 말이다. 그렇게 해야 허물허물해지지 않고 주체와 객체가 구별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그렇게 자기 바깥에 대상이 생기게 되면, 그런 대상과 자기와의 차이점을 통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즉 주체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즉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타인과의 차이를 통해서 말이다.
◈ 군발이는 주체가 없어 !!
왜 군대에 가면 어떻게 하는가? 머리를 빡빡 밀고 똑같은 옷을 입혀서 구별이 되지 않도록 하는가? 그렇게 다른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아야 기계가 되어서 시키는 데로 명령에 순종을 한다는 것이다. 즉 주체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왜냐하면, 군인은 일종의 기계와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계는 '너와 나'가 필요 없고, 그냥 시키는 데로 움직여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너와 나'가 이제 구별이 되는 것은 드디어 제대를 할 때인데, 그래서 제대할 고참들을 모자를 써도 좀 삐딱하게 쓰고, 군복도 주름을 더욱 칼같이 세우고, 군화도 삐카번쩍하게 광을 내고, 그렇게 다른 졸병들괴는 차이가 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이제 제대를 하니 너희들과는 다르다" 라는 말이다. 물론 몸조심은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동안 남들처럼 다같이 지내다가 이제 눈에 띄게 행동을 한다는 것은, 이제 대상을 찾아서, 그렇게 해서 "나의 나됨을 확정한다" 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것이 공부하기는 어렵지만 참 중요한 것들인데, 아무튼 인간의 근원적인 주체에서는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옷을 입는다고 하는 것은?
옷은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데, 그래서 조선시대 같은 경우에 보면 신분에 따라서 옷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도, 물론 생김새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옷을 가지고 구분을 지었다는 말이다. 여자는 활동을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 옷을 만들었고, 물론 남자는 그 반대로 아주 활동성이 있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 여자는, 머리를 덮어 !!
특히 여자의 경우에는 머리 부분을 옷을 가지고 덮어버림으로, 그 부분이 남자가 대신해서 차지한다는 것이다. 즉 말하지 말라는 것인데, 보고 들어도 결코 본 것도 들은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무직이나 경리직은 여자가 많은데, 물론 월급을 아끼는 측면도 있지만, 함부로 밖에 나가서 떠들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의 머리나 눈과 귀와 입을 남자에 의해서 대치하기 위해서 복장을 그렇게 머리를 감추는 방식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그 당시 사회의 문화였다는 말이다. 물론 초대교회도 그러했는데, 그래서 여자가 교회에 올 때도 수건을 썼고 말이다.
◈ 그 당시 페미니스트, 창녀 !!
그런데 이런 것을 과감하게 떨쳐버리려는 해방자적인 여성집단이 있었는데, 머리에다 수건 같은 것을 쓰지 않는 집단이 말이다. 그들이 누구인고 하나 바로 '매춘부'였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직접 남자들과 일대일의 관계를 맺기 때문에 남자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아는데, 즉 남자들이 그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말이다.
그러므로 그녀들은 그 당시의 페미니스트이고 여장부라고 할 수 있는데, 자기들은 이왕 버린 몸인데, 머리에 무엇을 쓰고 말고 한다고 해서 더 이상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그런 것들을 모두 다 탈피해버렸다는 것이다.
◈ 지상최대의 사기극이 곧 종교 !!
아무튼 교회에서 신이 바뀌었는데, 즉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는 말이다. 제가 지난 번 수요일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지상최대의 사기극이 바로 종교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천주교와 기독교인데, 왜 사기극인고 하니, 하나님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하나님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체인지 해놓았기 때문에 말이다. 즉 신이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신을 만들어서 교회 안에다 집어넣어 놓고는 유심히 관찰을 하는데, 마치 동물원의 우리 안에다 원숭이를 넣어놓고는 바라보면서 사육을 시키듯이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고, 천주교가 그 유수한 교회사를 통해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개신교도 그런 아류에 지나지 않고 말이다.
◈ 그런데 로마서 11장 32절을 보면 !!
그런데 여기 로마서 11장 32절에 보면, 인간이 하나님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가두어놓았다고 하는데,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순종을 하지 못하도록 가두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주님의 용서하심이 빛이 나니 말이다.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순종을 한다, 못한다" 라고 하면 안 되는데, 그냥 우리는 '파닥파닥' 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아무리 파닥파닥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를 불순종으로 보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기준자체가 인간이 세운 것과 다르다는 말씀이죠?
기준자체가 예수님이 기준인데, 그러니 기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사실 높아졌다기보다는 아예 초월적이라는 말이다. 우리 인간이 도저히 상상도 못하는 기준인데, 즉 오른 눈이 범죄를 하면 빼버리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뽑는 인간이 있다고 하면 정신병원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로마서 12장 1절을 보자.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산 제사 인가? 죽은 제사인가?
여기에 보면 제사가 나오는데, 즉 '산 제사' 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제사는 모두가 다 죽은 제사인데, 즉 죽지 않으면 제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구약의 제사는 5가지인데, 즉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라는 것이다. 혹은 3가지로 해서, 즉 "번제, 속죄제, 화목제"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말이다.
먼저 번제는 전부를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이고,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고, 속죄제는 자기의 죄를 씻어달라는 제사이고, 속건제는 이웃에게 잘못을 했을 때 드리는 제사이고, 마지막으로 화목제는 하나님이 받아주셔서 화목하는, 즉 잔치를 벌리는 제사인데, 그래서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말이다. 소제는 번제에 포함시키고, 또 속건죄는 속죄제에 포함시켜서 3가지로 이야기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러한 구약의 제사특징은 제물이 일단은 죽어야 한다는 것인데, 즉 하나님은 제물이 살아있는 채로 제사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 1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라는 의미는, "이미 끝난 제사이기에, 너희들이 살아서 움직이게 되어있다" 라는 것인데, 즉 이미 끝난 제사이기에 말이다.
◈ 이미 누군가가 죽었기에 !!
그렇다면 제사가 끝났다고 하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죽었다는 의미인데, 그러니 그 안에 있는 자들은 그 무엇을 해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스스로 무릎을 끓고 기도를 한다든지, 아무튼 그렇게 자기가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전혀 받지 않는데,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성도들은 다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무슨 짓을 하든지 말이다.
그렇게 해서 산 제사가 되는데, 그러면 이 산 제사는 의미는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모두 받아주신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이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닌가? 그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주니 말이다.
루터가 자기 무릎으로 성베드로 성당의 계단을 얼마나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모르는데, 마치 히말라야 성자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엎드려서 온 몸으로 기어서 그 길을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욕망을 제어하고 나쁜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육체적 경건의 훈련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이 생활을 하던 친구가 벼락을 맞고 죽는 것을 보고는 "아하, 그렇게 경건의 훈련을 해도 벼락을 맞는구나" 라고 하면서, 지금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받아서 그 혜택을 자기에게 입혀주시는데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왜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짓을 했는지, 바로 그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제 로마서 12장 2절을 보자.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사도바울이 '하라' 라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가?
여기에 보면 마지막에 '하라' 라고 하는데, 그것은 곧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긍휼이 바로 이런 식으로 제공이 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12장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이 말이다. 그렇게 제공되는 긍휼이 바로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는, 그런 사랑을 성도에게 베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이 12장에 계속해서 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말씀도 바로 그런 차원이라는 것이다. 7절 이하에 나오듯이, 우리에게 섬기는 일과 또한 가르치는 일로, 또한 권위라고 구제하고 다스리는 일로 말이다. 그러면서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게 되고 말이다.
(롬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롬 12: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음으로 할 것이니라
(롬 12: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 주께서 긍휼을 베푸시면 !!
그리고 또 10절에 보면,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라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또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게 되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게 된다는 것이다.
(롬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바로 이런 사람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주님에 베풀어주시는데,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우리가 했다고 하면 안 되고, 우리는 순종치 않는데 가두어진 자들이기에, 올해도 순종하지 않고 내년에도 역시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은사로서 베풀어지게 되면, 놀랍게도 말씀에 순종하는 인간이 된다는 말이다.
다음 16절에 보면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라고 하는데, 그리고 17절에 있는 말씀도 역시 그러한데,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롬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만약에 12가지 중에 하나를 놓쳤다면?
여기서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하겠는데, 여기에 '하라' 라는 것이 많은데, 10절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는 있게 하라" 라고 해서, 그렇게 순종을 했는데, 그런데 16절에 있는 "마음을 높은데 두지 말고" 라는 것에 실패했다면 지옥에 가는가? 즉 12개 가운데 11개를 했는데, 하나를 빠트렸다면 말이다.
그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11개도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주님의 사랑으로 그렇게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러 가지 '하라' 라는 것들이 나와있지만,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 우리가 원수를 주께 맡길 수 있는가?
특히 여기 19절에 보면, 원수를 갚는 것은 주께 맡기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인간에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주님은 우리는 이미 죽은 자에게 때문에, 우리가 원수를 갚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이다.
(롬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제 로마서 13장을 보겠는데, 8절에서 10절을 보자.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인간들의 사랑은,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이타주의 !!
어떤 분이 저에게 "목사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라고 질문을 했는데, 즉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 거룩에서 나오는 완전한 사랑이고, 인간의 사랑은 이기주의에서 나오는 이타주의인데, 즉 사실은 이기주의인데 이타주의로 그냥 폼을 잡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들의 사랑은 언제나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그 상대방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열을 받는데, 즉 자기가 사랑한 만큼 왜 사랑을 해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혼의 원인도 이것 하나밖에 없는데, 즉 자기가 해준 사랑만큼 왜 반응이 나타나지 않느냐는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고, "왜 내가 너에게 정성을 다한 만큼 나에게 너는 해주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이것을 포장을 해서 나온 것이, 성격차이가 어떻고, 혼수가 어떻고, 고부간의 갈등이 어떻고 하지만, 그러나 이유는 이것 하나밖에 다른 것은 없다는 말이다. "왜 내가 너에게 해준 만큼 나에게 해주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것이 모두 인간적인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인데, 이타주의의 폼을 내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말씀을 보면서, 자기 속에 이런 이기주의가 가득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전혀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또 명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 성경말씀을 보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자기가 남에게 착했다고 여기게 되는데, 그러니 항상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 제가 예수님을 믿고 제 아내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
예를 들어서,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유별나게 제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말씀을 보지 않으니 그따위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제대로 보게 되면 말이 바뀌게 되는데, "제가 예수님을 알고 난 뒤 제 아내를 전혀 사랑한 적이 없고, 지금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인데, 그런데 그 아내로부터 밥을 얻어먹으니 웬 은혜입니까?" 라고 말이다. 그렇게 바뀌는데, 물론 그것도 주님의 사랑으로 여기고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고마운 줄 알아라" 라는 것인데, 그렇게 고마움과 감사함을 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능력이 임했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을 주고 잘했다고 여기면 안 되는데, 그것은 고마움의 반대말이니 말이다. 즉 고마운 줄 아는 것 자체를 잘한 것이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잘한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고, 우리는 그냥 고마울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왜 사랑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성경말씀을 보면서 잘난 척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나 그런 짓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누구인들 남의 여자를 덮치면서 하면서 "주님, 사랑합니다" 라고 하겠는가? 남의 집 물건을 훔치면서 "주님, 사랑합니다" 라고 하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간음이나 도적질이 아니고, "왜 사랑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더라도, 하지만 사랑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똑같아져 버린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저는 간음도 하지 않고, 도적질도 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해도, 그것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모든 율법은 사랑에 있으니, 즉 무엇을 하든지 말든지 간에 사랑하지 않기는 모두가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그런데, 사랑을 할 줄 몰라도 구원이 !!
아무튼 인간은 사랑을 하지 못하는데,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랑을 할 줄 몰라도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는 거기에 대해서 고마워하게 되는데, 그러니 그런 고마움을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여자를 덮치고 도둑질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님,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서 마누라를 패고 말이다. 그럴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성경은 의외로 간단한데,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하더라도 순종할 수 없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주어진 법들은 주님이 주신 그 사랑 안에서, 즉 그 사랑으로 인해서 성도를 통해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도하신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자기 속에서 아직 그런 모습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것입니까?
◈ 그런데, 자기에게 그런 모습들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집사님이 방금 일어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하지만 그렇게 일어난다든지 일어나지 않는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막상 성경말씀을 보게 되면 사실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적이 말이다.
집사님이 방금 참으로 중요한 질문을 했는데, "방금 목사님이 말씀하신 그런 일들이, 그것이 느낌이든 경험이든 뭐든지 간에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말이다. 즉 자기는 아직까지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보니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좁아서(?)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주님은 사랑을 덤프차로 퍼부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신을 엉뚱한데 쏟고 있어서, 즉 "내가 이 말씀을 해야한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성경말씀을 곡해하고 있으니, 지금도 주님의 사랑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여기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 혹시 김 집사님은 17살 때 ??
자기 속에서 아직 그런 모습들이 일어나지 않는다혹시 김 집사님은 17살 때에 부모님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있나요? 없지만(?) 일단 있다고 여기고,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묻는다면, 즉 "어머님, 그때 제가 잘못한 것을 아시지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뭐라고 하는가? "야야, 그때 너는 너무나 착했단다. 그 나이가 되면 한참 말도 안 듣고, 나쁜 친구들과 몰려다닐 나이인데 말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 집사님은 집사님의 기준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담배도 피우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착한 놈이라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착하다고 받아줄 때는, 그것은 본인이 그렇다는 말인가? 아니면 어머니가 그렇게 받아준다는 말인가? 어머니가 그렇게 여겨준다는 것이다.
◈ 어이쿠, 내가 그만 실수를 !!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받아주시는데,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완벽을 기하기 때문에 언제나 파닥파닥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이쿠, 내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네. 로마서 12장에서 해가 질 때까지는 분을 품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 분을 품고 말았어"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미 다른 것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나름대로 완벽을 기하다보니, 그런 방식으로 자책을 하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자살을 하는 경우에도, 자기 스스로가 그렇게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기서 그런 것인데, 하지만 주님은 살 만한 이유가 다 있어서 살려주시는데 말이다. 그러니 자기의 그런 좁은 소견으로 함부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 미처 자기도 잘 모르는 은혜와 사랑을 이미 베풀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 나는 자기의 그 머뭇거림이 좋아 ??
이마 이런 예가 적절하지 싶은데, 어떤 젊은 선남선녀가 연애를 하는데, 어느 날 남자가 자기 여자를 위해서 분위기 좋은 조그마한 카페에서 멋있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주려고 하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따라 가사가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아서 노래를 부르는 도중에 그만 머뭇머뭇 거리면서 노래를 조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남자는 집에 와서는 자기 방에 그만 틀어박혀서 의기소침해 있는데, 그런데 그 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기를, 자기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다가 그만 가사를 제대로 몰라서 머뭇거리면서, 얼굴까지 벌겋게 되어서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자기에게는 너무나 감명이 깊었다고 한다는 말이다. 즉 "아하, 저 남자를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구나" 라고 여겨서 말이다. 자기의 실수를 여자 쪽에서 그렇게 해석을 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복음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개판인데 주님은 그 개판을 이쁜짓(?)으로 봐주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가서에 나오는 사랑인데, 즉 "니가 그 어디를 가도 끝까지 사랑하리라" 라고 말이다. 정작 본인은 실수를 해서 그야말로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모습조차도 그렇게 예쁘게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남자의 경우에, 그런 사랑의 대상에 여러 명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그것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인간적인 사랑인데,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차버리고 냉정하게 돌아선다는 말이다. 즉 사랑이고 뭐고 간에 아무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돈이 있어야 되지 말이다.
이제 로마서 14장 7절과 8절을 보자.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성도는,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 !!
여기 8절 마지막에 보자면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아까 말한 '파닥파닥'을 담고 있는 바로 그 접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기 백성을 다루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근호야, 너는 이 예수를 어떻게 여기는지 몰라도(?), 나 예수는 너를 이렇게 본다. 니가 그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즉 파닥파닥을 하든지, 퍼득퍼득을 하든지, 뒤뚱뒤뚱을 하든 간에, 그 무슨 짓을 하더라도 너는 내 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이 로마서에서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14장 22절에 뭐라고 하는가?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하는데, 즉 스스로 자기 약점을 끄집어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다 약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롬 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앞에 12장에서 보았지만, 그 가운데 우리가 지킬 것이 있는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잠시 2초 동안 지키는 척 할지 몰라도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몸부림을 쳐도 지키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를 책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쿠 바보야,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지키나?" 라고 말이다.
◈ 결국,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 !!
그래서 23절에 보면,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라고 하는데,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자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자기를 지금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 모르기에 말이다.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하고 말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공자님이나 완벽한 부처님, 이러한 분들과 이분들이 하신 말씀과 그 모든 것들이 다 죄가 되는데, 왜냐하면 믿음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즉 자기가 제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죄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말이다.
(롬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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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갈라디아서를 !!
로마서는 이 정도로 정리하고 이제 갈라디아서로 넘어가겠는데, 일단 갈라디아서 1장 4절의 말씀을 먼저 보자. 이번 여름수련회 때에 강의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오직 예수님의 '자기 몸'으로 !!
제가 여기서 퀴즈를 하나 내겠는데, 갈라디아서 1장 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 )을 드리셨으니" 라고 하는데, 이 ( )안에 무엇이 들어가야 하는가? '자기 몸' 인데, 이것이 사실 엄청 어려운 내용이라는 것이다.
왜 어려운가? 죄는 우리 인간들이 불순종함으로 지었는데, 그렇다면 그 해결도 역시 우리 인간들이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자율성이 있는 인간이니 말이다. 자유는 책임이 따르는 것이고 말이다.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그것을 씻는 것도 당연히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 책임을 누가 담당하셨는가? 예수님이 자기 몸을 드려서 다 해결을 했다는 것이다.
◈ 복음이란, 죄는 인간이, 해결은 예수님, 그 관계 ??
바로 이런 둘 사이의 관계(?)를 두고 '복음' 이라고 하는데, 즉 죄는 인간이 짓고 그 해결은 예수님이 하셨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에는 두 가지 요소가 다 들어가야 하는데, 첫째로 죄는 우리 인간이 지었다는 것과, 둘째는 그러한 우리 인간들의 죄 문제를 엉뚱하게도(?)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드려서 그 죄를 해결했다고 하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이것을 아울러 함께 가지고 있어야 복음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아까 교회를 두고서 정치적 욕망의 장(場)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교회를 개혁하자" 라는 것은 정치적 야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아니라, "니가 정치적 야망을 부르짖던 말던 간에 니는 죄인이고, 나는 너를 위해서 몸을 바쳤다" 라고 하시면서, 그런 간단한(?) 논리로서 접근을 하신다는 말이다.
◈ 그런데 여기에 '법'이 들어오면 !!
일단 이것을 분명히 하고, 여기에 제가 무엇을 하나 집어넣겠는데, 율법을 말이다. 율법이라고 하면 어려우니 그냥 '법' 이라고 하자는 것이자. 그리고 아까 말한 로마서 12장에 의하면, '하라' 라는 것이 줄줄이 나왔는데,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그렇게 말이다.
이렇게 하늘의 법이 들어왔는데, 도대체 이 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아까 제가 우리의 죄를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던져서 해결하셨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이 법을 어디에다 집어넣어야 하겠느냐는 말이다.
* 퀴즈 - 법은 다음 중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가? (1) 우리 죄, (2) 예수님의 자기 몸, (3) 복음
물론 3번인 복음은 1번과 2번을 합친 것이기는 한데, 사실은 이 법은 3번 복음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알아서 복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았기에 우리가 죄인임을 알았기에 말이다. 그러니 일단 법이 복음으로 가서, 그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이다.
◈ 법은 복음에 들어가야 !!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율법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오기는 오는 것이지만, 그러나 곧바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복음으로 가서, 즉 "너희들이 이렇게 이렇게 죄인이니 내가 용서한다" 라고 해서, 그 다음에 우리에게로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그것이 아니라, 율법이 곧 바로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가 이렇게 나쁜 죄인이니 십자가를 믿자"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어디 일반교회들 치고 십자가를 거부하는 교회가 있는가? 그럼에도 그들이 이단인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 죄를 깨닫는다고 하는데, 하지만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 죄를 깨달을 수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자기가 기껏 살아봐야 100년인데, 그러니 인생을 얼마동안 살지를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니, 성경말씀 가운데 어떤 것은 지키고 또 어떤 것을 지키지 못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생전에 바람도 한번 피워보지 못한 사람은 "간음을 하지 말라" 라는 것은 자기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평생을 무인도에서 산 사람이 간음을 ??
하지만 그렇지 않은데, 설령 무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여자를 한번도 구경하지 못한 인간이라도 그것이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일단 법을 자기에게 당겨서 "야, 내가 10개중에서 5개는 지키겠는데, 나머지 5개는 도저히 안 되겠네" 라고 하면서, 즉 자기가 지키지 못하는 5개의 법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해결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행태인데,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이냐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고발하기 위해서 이 갈라디아서가 있다는 말이다. 즉 이 갈라디아서는 "법을 자기에게로 곧 바로 가지고 오는 사람은 엉터리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아니야" 라고 소리치기 위해서 말이다.
◈ 이단 중에서 제일 오야붕은?
그래서 수많은 이단 중에서 제일 오야붕(대장?) 이단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미처 다 지키지 못한 법을,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제대로 한번 지켜 보세나. 그렇게 하세" 라고 하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과거에 하지 못하던 것을,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어서 그 법을 제대로 한번 지켜보겠다고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법이 예수님에게 가는 줄을 모르고, 직접 자기에게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성경책을 보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았는데, 그 죄가 자기 힘으로 되지를 않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해결책을 찾아보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피로 그냥 용서해주신다고 하니, 그 십자가의 피를 찍어 발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서 이제 완전한 새사람이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말씀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놈들이 이단 중의 이단이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살자고 하는 인간들이 그렇다는 말씀이죠?
물론 그러한데,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을 기독교의 정치꾼들이 이용한 것인데, 즉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상식과 타협을 했다는 말이다. 기존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성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해보겠는데, 죄는 우리 인간들이 지었는데 해결은 누가 하는고 하니, 엉뚱하게 예수님이 자기 몸을 드려서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자기 몸을 드려서 끝을 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미 끝난 이야기이니, 굳이 새사람이 되어서 무엇을 더 지키고 말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 예수님이 자기 몸으로 해결, 끝 !!
정말이지 이것이 믿어지면 오늘 죽어도 낙원에 가는데, 혹시 가시면 주님께 안부를 좀 전해주면 좋고 말이다. (ㅋㅋ) 그러니 이 구원의 해결책을 자기에게 끌어오지 말라는 것이다. 구원의 모든 해결책은 이미 주님이 자기 몸으로 해결을 했으니, 그런 해결책을 우리에게 끌어올 필요조차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예수님은 그 모든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시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통고하신다는 것이다.
* 예수님 : 근호야, 니는 내 믿나?
* 이근호 : 믿습니다.
* 예수님 : 정말로 내 믿나?
* 이근호 : 예, 믿습니다.
* 예수님 : 정말로 믿지?
* 이근호 : 예, 정말로 믿습니다.
그런데 개그콘서트의 '출산드라(?)'에 보면 '먹어라' 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것은 '먹어라' 라는 것은 명령이라는 것이다. '믿어라' 라고 해야 하는데 말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요? 여러분은 TV는 전혀 보지 않는 것 같은데, 성경말씀만 보나요? 부흥회를 희화화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인데, 제대로 복음적으로(?) 하려고 하면 "나를 믿어라" 라고 해야 하는데, 믿으면 비쩍 마른 사람이 이렇게 뚱뚱하게 된다고 해야 말이 된다는 것이다. (먹어야 뚱뚱해지는데?)
그런데 자기처럼 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해버리면, 그것은 기존 종교가 되는데, 하지만 이 종교는 지상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말이다. 그 원조가 누구인고 하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 서기관들이라는 것이다. 그 원조들이 예수님을 죽여버렸는데, 하늘에서 내려오신 하나님을 죽여버렸다는 말이다.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 되는데, 그 사건이 갈라디아서 3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 진도를 좀 빨리 빼겠는데, 일단 3장 1절을 보자.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 누가 너희를 꾀더냐 !!
도대체 누가 꾀겠는가? 물론 신부와 목사들인데, 아닌가? 아무튼 지금 사도바울이 뭐라고 말하는가? 갈라디아서 사람들을 보고 어리석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너무나도 선명한데 말이다.
그러면 그들이 뭐라고 하는가? 자기들도 십자가를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알면 왜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법을 지키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모르니 그런 일이 생기는데, 그런데 만약에 십자가를 안다면, 자기가 불순종할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올라갈 수 없는 십자가를 주님이 올라가셨는데, 즉 우리 인간이 행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행하셨다는 말이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고민이 엄청 많을 때는 이 십자가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물론 십자가가 그런 고민거리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고민조차도 자기의 불순종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모든 고민도 말이다.
◈ 예수님, 제 손목이 왜 이렇게 가늘어요?
저는 사춘기 때 고민이 무엇이었는고 하니, 여러분이 들으면 웃을지 몰라도 남들보다 손목이 가늘어서 울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이렇게 손목이 가늘게 생겼느냐는 말이다. 그것을 만약에 종교적인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아하, 내가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가늘게 생겼구나" 라고 할 텐데, 그것이 17살 때 일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30살이 되면 그러한 고민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30살대로의 또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결혼을 못하지?" 라고 말이다. 그런데 60살이 되면 또 나름대로의 고민거리가 있고 말이다. "내가 무슨 축복을 받았기에 이렇게 결혼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았지?" 라고 하든지 말이다. (ㅋㅋ)
하지만 거지 나사로나 강도의 경우를 생각해보게 되면 결국은, "내가 무슨 복을 받았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 평생을 살아왔던가?"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그렇게 자기가 살았다고 하는 자체를 복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것을 귀엽게(?) 보시는데, 마치 벌레가 접시 위에서 그 무슨 짓을 해도 파닥파닥이고, 예쁘게 봐주시듯이 말이다. 그래서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에 받들려져서 하늘나라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는 그냥 비유인데?)
◈ 제 아내가 초상집에서 !!
이번에 집안에 초상이 났는데, 저는 일요일이라서 못 가고 제 아내만 참석했는데, 그런데 가서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친척들이 마구 퍼부었는데,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서 절도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기들도 원래 죽은 사람에게는 절을 하지 않는데, 그런데 그쪽에서 하는 내용인즉, 죽은지 3일 동안은 신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절을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바로 아브라함의 품에 갔는데, 무슨 3일 동안을 머물러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옛날 미신이 그대로 종교화되어서 그러한데, 불교도 아니고 천주교에서 그렇게 주장한다는 말이다. 이번 초상을 천주교식으로 했는데,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눅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러니 이것이 지상최대의 사기극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다. 성경을 보는지 마는지, 성경에는 그냥 죽으면 바로 천국에 갈 사람은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갈 인간들은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지금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초상집에 가서 절을 해본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런 그렇게 절을 하고 말고 하는 것을 진리의 문제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정치적으로 타협을 하는데, 좋은 것이 좋다고 말이다. 즉 옳고 그름이 아니라 가능한 한 자기가 편한 대로, 그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행동을 하는데, 그러니 인간은 순종치 아니함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 주님의 사랑하는 대상이란 이유만으로 !!
다시 말해서, 1968년도에 불순종을 했고, 또한 2019년에도 불순종을 할 것이고, 그렇다고 이런 것을 알았다고 해서 진리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또 정치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간에 우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죄인인데, 그런데 이렇게 살아온 것은 오직 주님께서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것이지, 결코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