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0-고전2,양심,로마서6(강의정리)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40-고전2,양심,로마서6(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40 - 고전2(5장), 양심, 롬6
05,06,2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고린도전서 5장 - '영'과 '육'에 대해서 !!
아침시간이라서 비몽사몽간인지 모르겠는데, 먼저 양해를 좀 구해야 하겠는데, 어제 광주에서 고린도전서를 강의했는데, 그런데 마지막 강의를 녹음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강의가 마음에 들어서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 먼저 고린도전서 5장을 잠시 하고, 그 다음에 계속해서 로마서 9장으로 넘어가 보자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5장에는 '영'과 '육'에 대해서 나오는데, 그런데 먼저 1절에 보면 무슨 내용이 있는고 하니, 고린도교회의 교인 가운데 누군가가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다고 하는데, 물론 자기 어머니는 아니고, 즉 아버지의 첩과 간통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전 5: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 도다
(고전 5: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전 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고전 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 간통을 해도 천국에 가는가?
그런데 여기 5절 말씀을 보면,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 예수의 날은 재림의 날을 의미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이 되면 간통한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천국에 간다는 말인가? 아니면 지옥에 간다는 말인가?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한다고 하니, 즉 놀랍게도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교회 목사들이 이 본문을 가지고서 설교하기를 주저하는데, 만약 설교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드러내 놓고 노골적으로 거짓말은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천국에 못 갑니다" 라고 말이다.
아무튼 목사가 그렇게 설교를 하게 되면, 교인들이 "어, 간통을 해도 천국에 가네. 아하, 그래도 되는구나" 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설교할 설교거리도 모두 사라지고,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 아니, 간통을 해도 구원을 ??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데, 물론 조금은 극단적인 경우이겠지만 말이다. 자살을 하기 이전에, 즉 그냥 한강에 투신을 하거나 약을 먹지 말고, 간통을 원 없이 해보고 나서 죽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물론 육신은 죽겠지만, 영은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일거양득(?)이란 말이다.
아침부터 벌써 은혜를 받는 분위기인데(ㅋㅋ), 아무튼 교인들이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 목사들이 이 본문으로 설교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에 있다고 해서 그대로 다 가르치게 되면, 사람들이 머리를 굴려서 자기 욕심을 다 채우고, 그러면 교회가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 악한 사람은 쫓아버려라 !!
하지만 지금 고린도전서 5장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데, 그러니 성경을 볼 때 함부로 보고, 자기 마음대로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5장 마지막 13절을 보자.
(고전 5:13)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여기에 보면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악한 사람'은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토색하는 자, 사기치는 자들을 의미하는데, 그런 자들을 교회에서 내어쫓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자들을 교회에서 내어쫓으라고 하는가?
◈ 영은 바람과 같아서 !!
먼저 '육' 이라는 것과 '영' 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하면, 5절에서 "육신은 멸하고 영은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좀 어렵기 때문에 천천히 하겠는데, 일단 영은 바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성경에 그렇게 나오니까 말이다. 영은 바람인데,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육은 되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인간의 능력으로는 바람을 못 잡아 !!
이것도 설명을 좀 해야하는데, 여러분은 바람을 잡을 수 있나요? "바람아, 이리 오너라" 라고 말이다. 영은 바람과 같다고 했는데, 즉 하나님의 일은 영이시고,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바람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람과 같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을 좌지우지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단은 영에 속하는가? 아니면 육에 속하는가? 물론 영에 속하는데, 그러니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자살하기 위해서 간통을 아무리 많이 해도, 만약에 사단이 오지 않는다면 그냥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가도록 허락하지 않아서 말이다.
◈ 하나님의 일은, 그냥 혜택만 !!
다시 정리를 하겠는데, 영적인 것은 하나님 마음대로이기 때문에, 즉 바람처럼 불고 싶을 때 불어오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불고 싶지 않을 때는 불지 않는 것이기에, 우리가 전혀 잡을 수도 없고, 조정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데, 하나님의 일은 그 누구라도 잡을 수가 없고, 그냥 혜택만 받는다는 것이다.
◈ 그러면, 육의 특징은?
예를 들어서, 집사님이 오늘 이렇게 맛있는 빵을 사 왔는데, "이번 주에 빵을 사왔으니, 다음 주에도 빵을 사오세요" 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어디에 속한 것인가? 그것은 영이 아닌 육에 속한 것인데, 왜냐하면 육은 되풀이가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므로 음행, 호색, 토색, 우상숭배 등등, 이런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역시 육에 속한 것인데, 그래서 되풀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또한 마약과 술과 담배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역시 이러한 것들도 되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너무 되풀이가 잘되어서 문제이지 말이다.
◈ 술을 마시면, 영혼이 가벼워지는데 ??
예를 들어서, 술을 마시면 그 마음이 향기롭고, 굉장히 가벼워지는데,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 말이다. (이건 마약 분위기가 아닌가?) 여러분은 술을 안 마셔봐서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아무튼 감미로움이 있다는 말이다. 이것 맛 때문에 술을 마시는데, 갑자기 울적했던 마음에 갑자기 향기가 나면서 감상에 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거나 실없이 웃거나 하는데, 감미롭기 때문에 말이다. 심지어 영혼이 가벼워지면서(?), 산들산들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에 술이 깰 때가 되면 어떻게 하는가? 머리가 아프고 또 속이 쓰리고 하면서 냉수를 찾고, 또 북어국이나 콩나물국을 끓여달라고 큰 소리를 치고, 그리고 위장약까지도 사오라고 하면서 난리를 피운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지난밤에 술을 많이 마신 것 후회하면서, 다시는 과음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말이다. "어제 내가 실수한 것은 없나?" 라고 하면서, 또 나름대로 깨어진 품위만큼은 챙긴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술만 먹지 않으면 괜찮은 인간이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날에 또 회사에서 상사에게 스트레스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퇴근하면서 포장마차를 앞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술을 한 잔 기울이게 된다면, 그러면 또 다시 마음이 감미롭고 향기가 나고 기분이 좋아지고 말이다.
◈ 육의 일은 되풀이가 가능해 !!
그러니 마음이 울적할 때 술을 한 잔하면 기분이 상쾌해진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그렇게 되풀이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물론 돈이 좀 들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또 다시 울적해지면 술을 마시고, 그런 것은 얼마든지 되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음행이나 호색이나 사기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이처럼 되풀이가 가능한 것이 곧 육인데, 그런데 영은 되풀이가 되는 게 아니라, 마치 바람과 같아서 "이 정도면 은혜를 받을 때가 되었는데" 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 컴퓨터를 일주일만 하면 ??
흔히 교회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영을 육으로 만드는데, 즉 "어느 특정 기도원의 특정 돌 위에서 기도하면 은혜를 받는다" 라는 식으로, 그런 기술을(?) 가르친다는 말이다. 되풀이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목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데, "저도 바로 이 자리에서 5일 동안 굶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라고 말이다.
실제로 다음과 같은 책도 있는데,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처럼 할 수 있다" 라고 말이다. 아마 베스트셀러이지 싶은데, 사실 모두가 다 똑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책을 보다 많이 팔아먹기 위해서, 또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하는 짓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 목사가 되었듯이 여러분도 될 수가 있어" 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엇인가? 되풀이의 가능성인데, 그렇게 목사가 교인들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즉 "김 집사가 그 기도원에 가서 5일을 굶고 은혜를 받았는데, 당신이 김 집사보다 못 한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할 수 있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목사가 아니고 마귀새끼라는 것이다.
◈ 아이들을 학원에 왜 보내는가?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 어떤 기대치가 있는고 하니, "다른 아이가 되면 나도 된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선생님이 풀이를 할 수 있으면, 자기도 그런 풀이하는 기술을 배우면 가능하다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희망을 가지고 학원을 간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원은 그런 희망을 주어야 하고 말이다. 비싼 돈을 들여서 학원에 보내는 부모도 그렇고 말이다
수학문제의 경우에 처음부터 막히는 수가 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이 뚫어서 풀이하는 것을 보면, "아, 저런 식으로 하면 되는구나. 이런 바보같이 그것도 전혀 모르고" 라고 하면서 자기 무릎을 치는데, 물론 또 다른 문제 앞에 서면 다시금 막막해지지만 말이다.
그래서 학원에서는 다양한 문제들을 많이 풀어서 그런 여러 가지 경우에 대처하도록 하는데, 그렇게 스스로 알아서 문제를 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선생님이 가능하다면, 나도 역시 가능하다" 라는 희망을 주게 되는 것인데, 그렇게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그런 뚫는 기술을 익히면 되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육' 이라는 것이다,
◈ 교회는 육을 핍박해야 !!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영은 누구의 손아귀에 있는고 하니,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는 무엇인가? 교회는 육을 핍박하게 되는데, 즉 육을 배척하고 거부한다는 말이다. 물론 진짜 교회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서 "당신이 구원을 받았으니까, 나도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교회에서는 허용이 되면 안 되는데, 즉 "박 집사가 구원을 받았으니, 나도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박 집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성령님이 바람과 같이 와서 구원을 받게 되었지만, 그러나 바람이 자기에게는 불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자기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 영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가?
바람과 같은 영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인가? 당연히 하나님이지 전혀 인간이 아니기에 말이다. 물론 그런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영을 받고 말고 하는 것은 결코 인간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에서 "사단에 내어주고" 라는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교회에서 하는 일이 전부가 다 영적인 일인데, 그런데 그런 가운데 되풀이가 가능한 육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음행하는 자, 우상숭배하는 자, 토색하는 자, 기타 등등이 고린도 교회 안에 버젓이 들어있었다는 말이다.
◈ 그런데 목사님?
그런데 여기서 "목사님, 그렇게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를 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는 나쁜 사람들이고 분명히 나쁜 짓인데, 그런데 전도나 기도나 봉사 등은, 그런 것들은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나쁜 짓이 아니잖아요?"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답변을 하겠는가" 지금부터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다.
인간이 뭔가를 되풀이하는 이유가 쾌감 때문에 하는 것인데, 이런 쾌감이 언제 생기는고 하니, 다른 사람들이 허용할 때에는 쾌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몰래 먹는 사과가 맛이 있다(?)" 라고 했는데, 물론 지혜 없는 자들이 한 말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람들은 "하지 말라" 라고 금지했을 때, 그래서 그 선을 넘을 때 비로소 쾌감이 생긴다는 말이다.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잠 9:17)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 도다
예를 들어서, 처음에 한 명과 간통을 했다고 하면, 그 다음에 또 다시 그 한 명과 간통을 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두 번째의 사람이 있어야만 하는데, 즉 "이번에는 하지 말아야지" 라고 하는, 바로 그 금지의 선을 넘어야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와 전도의 경우에도, 처음에 교회에 나와서 그런 것으로 목사나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 쾌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두 번, 세 번, 그렇게 계속해서 하면 나중에는 재미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또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역예배도 처음에 참석할 때는, 마치 주의 일을 하는 것처럼 대단한 생각이 들고, 또 굉장히 기분도 좋다는 것이다. 아마 그런 경험을 다들 해보았지 싶은데 말이다. "야, 나도 이렇게 성도의 가정을 돌아보는 아줌마 천사이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고 별 다른 감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다른 넘을 선을 찾게 되는데, 그래서 나이트클럽에 가서 부킹을 하든지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인간은 자꾸만 그런 자기가 넘을 선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넘어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에피쿠로스 학파 - 인간은 쾌감이 없이는 못 살아 !!
그래서 에피쿠로스 학파에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인간은 쾌감이 없이는 살지 못한다" 라고 말이다. 인간은 아주 정확하게 보았는데, 그런 까마득한 옛날에 말이다. 대단한 양반들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인간은 결코 쾌감이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두루뭉실했는데,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산다. 그런데 그 행복에는 정신적인 것도 있고, 육체적인 것도 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 학파는 노골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말했는데, "인간은 자극이 없이는 못 살고, 쾌감이 없으면 못 산다" 라고 말이다. 서로 거룩한 척, 고상한 척 하지 말고 딱 깨놓고 이야기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음식도 더 맛있는 것, 더 달콤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다. 빵을 하나 만들더라도 말이다. 고급 제과점에서의 고민이 이런 것인데, 기존에 유통되었던 것을 만들면 사람들이 싫증을 낸다는 것이다. 그런 곰보빵이나 단팥빵은 대구 칠성시장에서 구입하면 된다는 말이다. 옛날부터 그런 것만 만들어서 팔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성공하려고 하면 늘 새로운 것을 개발해야 하는데, 물론 우리나라 제과점은 꼭 그렇지도 않는데, 맨 날 그 맛이 그 맛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연구해야만 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들은 뭘 위해서 돈을 지불하는고 하면, 쾌감을 위해서 그 아까운 자기 돈을 지불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특히 쾌감은 언제 생긴다고 했는가? 기존의 선을 넘을 때 생긴다는 말이다.
◈ 고스톱도 점 당 1000원 정도는 되어야 !!
예를 들어서, 처음에는 1점에 10원을 내는 화투도 재미가 있는데, 그러나 좀 지나면 100원으로 판돈을 올려야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100원도 몇 번을 치면 시시한데, 그래서 또 돈을 올려야 쾌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100원은 그냥 아줌마 정도 수준이고, 그래도 남자라면 1000원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버스나 택시를 모는 기사들이 이런 도박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월급을 타면 여기에 돈을 다 꼴아 박는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이 1000원이 집이 되고, 심지어 마누라도 되고 말이다.
학원 원장들이 모이면 그래도 나름대로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처럼 폼을 잡고 교양 있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다 껍데기이고 돈만 생기면 쾌감을 누리려고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프를 쳐도 국내에서 하면 재미가 없어서 해외로 원정을 나가고 말이다. 카지노도 국내는 재미가 없어서 마카오로, 또는 라스베가스로 떠난다는 것이다.
◈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본성이기에 !!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주위에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고 하고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인데,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본성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지 말라고 했는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은 성경에 나와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에 따먹지 말라고 해서 60일을 참았다고 하면, 아담과 하와가 말이다. 그렇다면 61일 째는 포기하는가? 오히려 강도가 더 심해지는데, 즉 "60일이나 참았는데, 좀 따먹으면 안 되나?"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젊은 학생들이 스스로 자제해서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고, 즉 자기들이 참는다고 어디 그것이 해결이 되는가? 15일을 참았으니 16일 째는 좀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하지 말라" 라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넘어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쾌감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기존의 쾌감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그러나 기존의 쾌감은 이미 다 맛을 본 것이기에 쾌감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바람을 피우고 말이다. 물론 이제 와서는 다같이 함께 바람을 피우는 스왑핑도 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즉 부부들이 모여서 서로 마누라와 신랑을 바꾸어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 이미 경험한 것은 재미가 없어 !!
이렇게 사람은 무엇이든지 이미 경험한 것은 재미가 없는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되풀이하면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생일이 되어서 '로봇 태권V' 같은 것을 선물로 사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생일에는 그런 장난감은 이제 시시하고, 그래서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는데, 바로 그런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돈이 없을 때는 돈을 벌고 싶어서 환장을 하지만, 그러나 돈에 약간 여유가 생기게 되면 쾌감을 찾아 나서는데, 즉 쾌감을 사냥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는 말이다. 낚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것만 잡아도 대단한데, 그런데 옆에서 월척을 올리면 자기가 잡은 것은 물고기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이 만들어놓은 규정들은 스스로의 쾌감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불과한 건가요?
그런 것은 인간들이 자기 역량에 따라서 자기 나름대로 설정한, 일종의 턱걸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올라가는 재미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이런 음행이나 토색 등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인가요?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었고, 그렇게 때문에 저쪽에서 뭐라고 하는가? "야, 한번 해봐라. 재미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당시 로마문화에 다 퍼졌고, 그것이 교회 안에 그대로 밀려들어왔는데, 그러니 이런 음행이나 토색과 같은 것이 그 당시에 최고로 도전할만한 쾌감거리였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이 가장 원초적인 쾌감이기도 하고 말이다.
* 질문 - 음행과 같은 것을 나쁘다고만 하기에는 좀 그렇고, 그 당시 사회적 현상이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을 규제하는 것은 사회의 질서 때문인데, 그런 것을 용인하게 되면 가정이고 뭐고 다 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 질문 - 과거에 그런 것이 용인되었던 시절도 있었지 않습니까?
물론 그때는 소규모의 집단을 이루고 있을 때인데, 심지어 그러한 시절에는 근친상간도 용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음행이라는 말 자체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상(日常)이었으니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자식들을 번성케 해야 노동력이 풍성해져서 사냥도 하고 농사도 짓고 말이다. 그렇게 해야 자기 집단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인간은 그런 쾌감을 위해서 살아가나요?
물론 그러한데, 인간은 그렇게 계속해서 쾌감을 만들고 생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해본 것은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에게 들이닥친 슬프고 불행한 일인데(?), 왜 그렇게 이미 한번 경험해본 것은 재미가 없느냐는 것이다.
* 질문 - 규정이 많을수록 쾌감도 많아진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북한의 인민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도전할 것이 많으니 말이다. 남한에서 그들보다 잘사는 사람들이 왜 불행한고 하니, 이미 다 해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할 숙제가 많아서 더욱 신이 난다는 말이다. 남한방송을 몰래 듣는 것이 얼마나 재미가 있고, 또 쾌감이 솟아나는지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방송을 듣는 것은 별로 그런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처음에는 우리 남한 사람들도 북한방송을 호기심이 있어서 몰래 듣곤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쾌감이 없는데, 사람은 그런 쾌감이 없으면 하지 아무리 하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등병이 되어서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오면, 처음에는 먹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돈까스, 짜장면, 피자, 치킨 등등, 그러나 그것도 처음 며칠이지, 나중에는 먹는 것도 귀찮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육' 인데,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린도전서 5장 7절을 보자.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
여기에 보면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도바울이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교회에서 이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라고 하면, 아마 100명이면 100명이 다 하는 말이, "그러니 음행하지 마세요. 사기를 치지 마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뒤에도 보면 그런 말씀이 나오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오늘 공부한 것에 의하면, 그렇게 설교를 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오히려 새로운 경계선을 그어서 억지로 참게 하는 것인데,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참게 되면 결국 폭발한다는 말이다. 억지로 참으면 참는다고 마음고생, 또 그렇게 계속해서 참다가 어쩔 수 없이 선을 넘게 되면, 그렇게 선을 넘었다는데 대해서 오는 죄책감으로 시달리는데, 그렇게 사람들을 두 번이나 죽이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참으면 참을수록 자기 의가 생성되지 않나요?
물론 생성이 되는데, 그러나 그런 의는 자기 쾌감과 그냥 바꾸어버린다는 말이다.
* 질문 - 하지만 평생을 폭발하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지 않나요?
그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데, 어떠한 형태로든지 조금씩이라도 스며 나온다는 것이다. 그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바꾸어서라도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참아서 생기는 자기 의는 없나요?
물론 사람들은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런 것은 모두가 사기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것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무엇인고 하니, 무엇을 "하지 말라" 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을 말이다. 그러니 사도바울은 전혀 다른 방법으로서 해결을 한다는 것이다.
◈ 영적이란, '하라' 대신에 예수님의 희생을 !!
다시 말해서, "당신들이 이것을 하세요" 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같이 이런 못난 인간들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라고, 즉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억울한 죽음과 그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쾌감을 맛보는 재미로 사는 이런 인간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억울하게 희생되셨습니다" 라고, 그렇게 희생으로 다가오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 이라는 말이다.
이것이 너무나도 중요해서 다시 이야기를 하겠는데, 육적인 것은 되풀이가 가능하다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하지 말라" 라고 하면, 그러한 선을 넘으려고 하고, 물론 그것을 넘으면 곧장 후회를 하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리바이벌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 이성의 본심은 반성에 !!
이것을 좀 어렵게 이야기하면, "이성의 본심이 반성에 있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사실은 이런 것이 참으로 재미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성은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짜 이성의 본심은 무엇인고 하니, 스스로 자기 잘못을 자책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반성하는 능력이 곧 이성이라는 말인데, "왜 내가 그런 짓을 했을까? 이런 바보야" 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성할 줄 모르는 인간을 두고서 마치 짐승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이성은 이렇게 자아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반성을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 의(義)'이고 말이다.
◈ 금지한 것을 소망할 때 쾌감이 !!
지금 오신 분이 있어서 복습 삼아서 다시 질문을 하겠는데, 아까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산다고 했는가? 인간은 쾌감 때문에 산다고 했는데, 쾌감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면 이 쾌감은 어디에서 생긴 것인가? 그것은 바로 금지한 것을 소망할 때 쾌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경계선을 넘을 때 행복한데, 만약에 그러한 선을 넘지 못하면 넘고 싶어서 미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일단 그 선을 넘고 나중에 이성으로 반성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선을 넘지 않으면 사람이 미치겠고, 그래서 일단 넘어놓고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반성하면 되니, 이것이 얼마나 편리하냐는 말이다. 이성이란 것이 말이다.
◈ 반성하는 재미로(?) 사는 인간 !!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면,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쾌감을 얻기 위해서 금지한 선을 넘고, 곧장 돌아서서는 스스로 자신을 자책하고 말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마치 도시의 사냥꾼처럼 먹이감을 찾아서 떠나고, 또 잘못했다고 반성을 하고, 그렇게 그런 짓을 계속해서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 그어놓은 선을 넘나드는 재미로 살아간다는 말씀이죠?
물론 그러한데, 거기에 자기 나름대로의 도덕적 기준이 필요하고 스스로 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 규정이 없으면 선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규정을 만드는데, 즉 "나는 지금까지 하루에 소주를 3병 마셨는데, 이제는 한 병만 마실 거야" 라고 말이다. 그것이 한 3일을 가는데, 그런데 3일 뒤에 지키지 못하면 다시 반성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인간이 반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아를 확장하는 것이 목적인데, 물론 쾌감은 일을 하는데 즐거워야 하니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성경말씀을 아무리 들이대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당신은 왜 음행을 하고 사기를 쳤는가?" 라고 하면,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으로 그냥 끝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또 금지된 것을 소망하는데, "다음에는 좀 더 멋있게 한 탕을 해야 하는데"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란 말이다.
◈ 예수님이 너 같은 놈을 위해서 희생을 !!
여기에 대한 사도바울의 해결책은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되풀이가 가능한 육적인 것이 아니라, 육은 그냥 놔두라는 것이다. 육은 자기가 반성까지 하면서 계속해서 되풀이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본인이 잘못했다고 그렇게 반성을 하는데, 그렇게 착한 사람에게, 거기에 대해서 무슨 다른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인간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니고, 이 부분이 오늘 제일 중요한 대목인데, "예수님께서 너 같은 놈을 위해서 희생을 하셨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말씀인 고린도전서 5장에 나오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매일같이 반성하고, 헤헤거리고, 또 쾌감을 추구하는 바로 너 같은 놈을 위해서 자기 몸을 희생하셨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 '너'가 과연 누구인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 십자가 사건인가? 그것을 믿는 자기 믿음인가?
예수님이 그렇게 희생을 하셨기 때문에, 자기 밖에 모르고 헤헤거리는 인간에 구원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진리가 등장하는데, 일단 제가 질문을 하나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는데, "구원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받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현재 예수님의 희생을 인정함으로서 받습니까?" 라는 것이다. 즉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는 말이다.
정답은 둘 중에 하나인데,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정답인데, 그런데 이 십자가 사건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고 하니, 아까 이성은 반성하는 기능이 있다고 했는데, 즉 "예수님께서 날 위해서 희생하셨는데, 나는 바보같이 또 죄를 지었구나. 주님, 다시는 제가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반성을 하면서, 그것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다 엉터리이고, 그렇게 되면 큰 일이 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말하는 두 가지의 차이점이 이해가 되지요? 이것은 엄청나게 중요한 차이라는 말이다. 하나는 천국이고, 다른 하나는 지옥이니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그것(?)과는 다르지 않는가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2005년 전의 일인데, 그런데 반성을 한다는 것은 오늘 2005년 현재 이 순간 '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2005년 전의 십자가 사건이 자기를 구원한다고 생각하지를 않고,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자기의 마음가짐이 어떠냐를 가지고 구원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전혀 잘못이라는 말이다.
◈ 사도바울은 왜 유월절 어린양을 반복하는가?
사도바울은 자꾸만 옛날 유월절 어린양으로, 즉 십자가 사건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즉 "제발 니 자신의 힘과 수단으로 구원된다는 생각일랑 좀 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의 힘과 수단으로 구원된다는 생각이 바로 육적인 것인데, 바로 이러한 육의 특징이 되풀이하는데 있다는 말이다. 즉 "저 사람이 되면 나도 된다" 라는 것인데, 하지만 그렇게 되풀이한다고 해서 구원이 성립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이 아침 시간에 비몽사몽간에 힘이 들지 싶은데, 다른 것보다도 이 한 가지는 꼭 이야기하고 싶은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십자가 사건의 능력으로, 즉 주님을 믿는 믿음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믿음은 작업인데, 즉 행함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믿는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이 주신 선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선물로 !!
그렇다면 선물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뇌물 말고 선물을 말이다. 자기는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데 누군가가 주어서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 라고 하고, 또한 '믿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관리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2000년 전의 사건으로 인해서 날아온 선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이 그 정도의 능력이 있고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것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자기의 경계선을 넘고 안 넘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그런 경계선을 넘는 재미로 살아가는데, 여기에 관해서는 다음시간에 좀 자세하게 하지 싶은데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선은 넘었지만 반성하고 후회하는, 그런 것으로 인해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즉 자신의 가능성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육은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영이 활동하고 말입니다.
육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육은 육대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은 영으로 받고 말이다. 그러므로 육은 자꾸만 되풀이를 하는데,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또 다른 것을 찾아서 돌아다니는데, "뭐 다른 재미있는 것이 없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또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그런 상황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규정이 되어있나요?
모두가 다 그렇게 규정이 되어있는데, 왜냐하면 규정이 없으면 질서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질서유지를 위해서 규정을 해놓고는, 그 규정을 어떻게 하는고 하니, 마치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야간자율 학습시간에 몰래 담을 넘듯이, 그렇게 넘나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토요일 23시 59분은 주일이 아니고 1분이 지나야 비로소 주일이라는 말이다.
* 질문 - 하지만 영(0, 靈?)의 세계는 시간을 규정할 수 없지 않나요?
물론 영(0)의 세계에서는 안 되지만, 수학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영(0)' 까지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서 말이다. 영은 원래 수학적 개념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기호인데, 즉 철학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영이 수학의 개념이 되어서 그만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계산이 허용되는 용도로 말이다.
◈ 수학 선생님, 이게 무슨 말이야 ??
예를 들어서, "1,2,3…10" 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이렇게 '1' 옆에 '0'이 붙어서 '10'을 이루면 안 된다는 것이다. '0'은 그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 '0'의 개념은 존재로부터 시작을 하니, 혼돈이 그만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있음'을 설명하려면 '없음'을 가지고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그러니 '있음'을 하나 걸쳐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없는' 있음을 '있음' 이라고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0'을 가지고 '있음'을 있음의 가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0'은 거기에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것이 수학개념이 동원이 되어서 기호가 되어서 그만 가버렸다는 것이다. (??)
◈ 그리스도의 희생을 아는 자가 누구인가?
지금 이야기를 하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말았는데, 아무튼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음행이나 토색이나 사기 등등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그런 짓을 하지 말라" 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이고 또한 영적인 것인데, 그러니 그것은 결코 되풀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지신 분이 우리가 아닌 주님이 지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 인간들이 십자가를 졌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대번에 "니가 진 것을 나는 못 질까?" 라고 하면서 되풀이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사도바울은 음행이나 토색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그러한 육적인 것으로 인해서 주님의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말씀이죠? 되풀이가 되지 않는 영적인 것이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데, 아까도 말했지만 중요하니 다시 반복을 하자면, 목사가 강단에서 "제가 어느 기도원에 가서 입구에 왼쪽에 있는 돌 위에서 기도하니까 예수님 나타나시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라고 할 때, 교인들은 뭐라고 하겠는가? "그 기도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도 가서 은혜를 받고 싶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 육은, 인간의 기대치와 가능성으로 되풀이가 가능 !!
그렇다면 왜 그런가? 목사도 인간이고 자기도 같은 인간인데, 그러니 목사가 은혜를 받았으니 자기도 그렇게 그 기도원의 바로 그 바위에서 기도를 하면, 그렇게 목사와 같이 반복을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바로 그러한 기대치와 가능성으로 되풀이 할 때, 이것을 두고서 '육'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음행이나 토색이나 사기 등의 되풀이나, 또한 약효가 떨어져서 마약복용을 되풀이하는 것이나, 그리고 기도효력이 떨어졌다고 하면서 기도원에 다시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나, 그러한 것들 전부가 다 영이 아니고 육에 속한 것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기도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인간의 하는 모든 것이 다 육적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인데, 그러니 인간보고 무엇을 '하라, 마라' 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나오는 것은 모두 육이니 말이다. 즉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나올 것이 뻔하니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다시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으로 돌아가서, 바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무엇인고 하니, 아까 1번과 2번을 보기로 들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예수님의 행함으로 이뤄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들의 자기 자신의 행위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간통을 했다고 모두 죽이는 것이 아니라 !!
여기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을 하는데, 즉 "목사님 주장대로라면 예수만 믿으면 나쁜 일을 해도 구원을 받으니까, 나쁜 짓을 해도 아무런 상관없다는 말이네요?"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이미 고린도전서 5장 초반에서 다 했는데, 아무나 죽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바람같이(?) 죽을 사람만 죽는데, 즉 간통을 했다고 다 죽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사단에게 내어준 자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 질문 - 인간은 모두가 다 자기만의 도덕적 규정이 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물론 나쁜 짓의 정도차이는 있을 수 있고, 또 자기 나름대로의 쾌감차이도 있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그런 쾌감을 즐기기 위한 행위적인 정도의 차이만 있지, 나쁜 짓을 자기가 계속해서 생성해서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자기 규정 속에서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말입니다. 설령 음행을 계속해서 해도 괜찮다고 해도 제가 지금 그런 환경도 아니고, 또 그런 마음이 계속해서 드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 유대인들의 '율법'과 이방인들의 '양심' !!
이번 십자가 마을 여름 수련회 주제가 '은혜와 양심' 인데, 거기서 이런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신학자들 중에서 특히 이 양심을 다룬 자들의 거의 없는데, 이 양심이 무엇인고 하니 법인데, 성경에서는 이방인들이 받은 법을 '양심' 이라고 하고, 유대인들이 받은 법을 '율법'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양심은 진화하는데,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스스로 자가복제가 가능하고, 자가번식도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양심은 자기 스스로 그렇게 되나요? 아니면 사회적 현상에 의해서 그렇게 되나요?
그것을 칸트가 이야기했는데, 즉 인간 이성의 기능 가운데 외부에서 온 것들을 통합하는, 통합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창조의 기능이 아니고 말이다. 인간의 이성이 무엇을 하는고 하니, 뺄 것은 빼고, 또 넣을 것은 넣는다는 것이다.
◈ 넙죽이, 저 양아치를 죽여라 !!
예를 들어서, 조폭의 세계에서 두목이 하는 말이 "넙죽이, 저 양아치를 죽여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졸따구인 넙죽이의 경우에, 저 양아치가 제 아무리 나쁜 짓을 하고, 조폭의 얼굴에 먹칠을 했어도, 그래도 자기도 자기 나름대로의 규정이 있기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비록 남들 등은 쳐서 먹지만 그래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넘버2나 넘버3의 경우에는 그것이 아니라, 그들은 살인까지도 할 수 있도록 진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넙죽이의 경우에는, 그렇게 사람을 죽이려고 하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릴 때 교회에 갔던 것까지도 떠오른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직까지 양심의 진화가 덜 되었다는 것이다.
고 3때 문제 아이들을 보면, 첫째 시간을 마치고 도시락을 까먹고, 둘째 시간을 마치고는 담을 뛰어넘어서 떡볶이 집에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도 그것을 사실 흉내내고 싶어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영웅처럼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면 집에 계신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그런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가요? 아니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습득을 하는 것인가요?
보통 본성을 70%, 정도로 보고, 환경을 30% 정도로 여긴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모든 인간은 다 양심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런데 그것이 선악에 관한 것이네요?
너무나 당연한데, 왜냐하면 창세기 3장에 의하면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말이다. 이 양심이라고 하는 것이 '초자아' 인데, 즉 신이 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은 진화가 되어봐야 그것이 굳혀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따라서 또 변화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집사님이 질문한 것을 정리해보면, 먼저 인간에게는 법이 있는데, 그 법은 언제든지 핑계를 대고 넓혀질, 즉 금지된 것을 뛰어넘을 만한 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는 양심이 있어서, 물론 사람마다 다들 조금씩 다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아직까지 나는 그것은 용납이 안 돼. 하지만 이 정도는 될 거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제가 어릴 적에 !!
제가 어릴 때 이런 경험을 했는데, 우리 할아버지가 아주 엄격한 유교적 분위기에 자란 분이었는데, 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셨는고 하니까,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갈 때는 이렇게 마구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들어가면 안 되고, 이렇게(?) 해서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에게는 엉덩이부터 들이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된 것인데, 그래서 저는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엉덩이부터 들어가면 큰 재앙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즉 그것이 저의 양심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엉덩이부터 먼저하고, 그렇게 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어갔는데,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새로운 넘을 선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신발을 벗는 것을 제 할아버지가 어떻게 가르쳤는고 하니, 신발은 반드시 가지런히 놓는데, 그것도 나갈 때를 대비해서 밖으로 코가 놓이도록 그렇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 할아버지에게 혼이 나는데, 그래서 저는 또 그렇게 신발을 가지런히 놓지 않으면 또 재앙이 온다고 여겼는데, 예를 들어서 학교성적이 떨어진다든지 말이다. 그런데 하루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했는데, 그래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는 것이다. 학교성적은 더 떨어질 때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ㅋㅋ)
◈ 요즘에 무슨 정조과(貞操科) ??
그런데 그런 것들이 다른 아이들이 보면 제가 거의 미친(?) 수준인데, 지금 다른 아이들은 술 담배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데, 저는 문이 어떻고 신발이 어떻고 하니 말이다. 그런 것 중에 하나가 여성의 정조(貞操)관념인데, 남성의 경우에는 동정(童貞)이고 말이다.
지금 통일교에서 세운 선문대학에 무슨 과가 있는고 하니, '정조과'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코미디 같은 이야기인데, 실제로 있다는 말이다. 정조 임금님을 연구하는 과가 아니고, "여성들이여, 정조를 지켜라" 라고 하는 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윤리를 가르치고 말이다.
◈ 아니, 내가 왜? 왜?
그런데 한 여성이 그렇게 정조를 지켰는데, 그런데 자의에 의했던 타의에 의했던 간에 그것이 허물어졌다고 하면, 그렇게 되어서 후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태도가 180도 달라져서 그만 뻔뻔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왜? 내가 왜?"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자유를 만끽하는데, 그동안 자기가 속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또 새로운 자유를 찾아서 또 새로운 넘을 선을 찾아 나서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곧장 자기 변명에 들어가는데, 즉 과거에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그 양심에서 그만 그 선을 넘어버렸으니 이제는 양심의 폭이 더 넓어지는데, 그것을 양심의 진화라고 한다는 것이다. "대충 그렇게 살지 뭐" 라고 말이다.
* 질문 - 요즘 대학들을 보니 무슨 '순결 서약식' 이니 하면서 부쩍 그런 것을 강조하는 것 같아요?
특히 기독교 계통의 대학들이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이런 강의를 하는데, 교회가 영적인 것이 아니라 되풀이가 가능한 육적인 모임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한 딸의 아버지로서 목사님은 정조관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정조관념을 누가 만들어놓았는가? 그것은 인간문화가 그것을 만들었는데, 그러므로 지키고 말고 하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요" 라는 것이다. 즉 육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 그때그때 달라요 ??
제가 하는 말은 별 권위가 없으니, 그러면 사도바울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모두가 악이다" 라는 것이다. 즉 사랑도 없이 정조든 무엇이든 지키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우리 인간적인 사랑이 아니라, 즉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이혼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복음을 위해서 결혼도, 이혼도 !!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고린도전서의 내용인데, 즉 복음을 위해서 이혼을 할 수도 있으니, 그런 것에 구애(拘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구애받지 말라는 것은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든지, 이혼을 하고 또 결혼을 하든지, 2000년 전의 그 십자가 사건으로 구원한 그 사랑을 받은 영적인 사람은, 그런 육적인 것에 전혀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유명한 이야기인데, 주님에게 얽매인 사람은 사람들의 법에 다시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자기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것인고 하니, '복음을 위해서' 라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서 말이다. 즉 이런 복음을 위해서 사도바울 자신은 고자가 되고 거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 복음을 위해서 놀 수도 있다 ??
여기서 긴장하고 잘 들어야 하는데, "복음을 위해서 놀 수도 있다" 라고 하면 백수들이 참 좋아하지 싶은데, 자기는 그냥 자기 땡기는 대로 놀면서 복음을 위해서 논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사도바울 자신은 정작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에게 "복음을 위해서 놀아라" 라고 하면 다들 좋아하면서도, 정작 사도바울 자신이 한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복음을 위해서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핑계는 복음이지만, 사실은 자기 행복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즉 자기 행복추구가 궁극적인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복음을 핑계로 인간의 행위가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성령께서 그것을 방지하신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우리는 행위적 요소로 나타나지만, 성령께서 제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인가요?
그냥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즉 희생과 억울한 죽음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정말이지 죄송하고 미안하게 되는데,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고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감사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인간이 처음의도는 그럴지 몰라도, 결국 나타나는 것은 자기 행복추구가 아닌가요? 그러니 육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말입니다.
◈ 이제 고린도전서 5장을 정리해보면 !!
물론 그러한데, 이제 고린도전서 5장을 정리하겠는데, 육은 무엇이 가능하고 했는가? '되풀이'가 가능한데, 하지만 영은 그냥 은혜인데, 즉 바람과 같아서 다시 리바이벌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되풀이가 가능한 것은 전부가 다 육이라는 것이다. 즉 "니가 되니 나도 된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제가 크로스빌리지에 '인간이 하루에 몇 번 거짓말을 하는가?' 라는 글을 올려놓았는데, 혹시 읽어보셨나요? 도대체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적어놓았는데, 사실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고 말이다. 그러니 그런 모든 것들이 다 육이고, 그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하나님께서 취하는 것은 영이니, 지금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은 육적인 것이니,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다는 말씀이죠?
만약에 천국에 들어갈 때 검열대를 통과해야 한다면, 그리스도의 피가 있으면 그냥 무사 통과이지만 그 피가 없으면 '삐, 삐, 삐' 소리가 나서 통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공항 검열대를 통과할 때 나타나는 현상처럼 말이다. 마트에 가도 이런 소리가 나는데 말이다. (ㅋㅋ)
* 질문 - 그러니 천국에 가는 것은 '영'이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피가 바로 영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 같이, 인간이 반성하고 어쩌고 하는 모든 것은 다 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해서, 거기에 부모는 속을지 몰라도, 하나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런 것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육은 되풀이되는데,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반성을 많이 하는가? 물론 그것이 다 거짓말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우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것을 묻고 계신다는 것이다. 오직 죄는 어린양의 피로만 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천국에서는 피만 보는데, 즉 우리가 5살 때 무엇을 했고, 12살 때 반성을 얼마나 했고, 결혼을 몇 번했고 이혼을 몇 번했으며 하는,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 '피'만 들어있으면 무사통과 !!
그냥 그 피만 들어있으면 무사통과인데, 그런 자들에게는 천국문이 그야말로 활짝 열려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검소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피가 없다고 하면 천국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그리스도의 피가 없으면 사람 취급도 할 필요가 없는데, 아무리 공자이고, 맹자이고, 부처이고, 도올(?)이고 간에, 그런 사람들은 그냥 좋은 아저씨이지, 그 외에는 별 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전부가 다 자기 핑계이고, 자기 양심을 잘 지켰다는 소리들만 하니 말이다. (도올은 인간성이 넘 더러운데, ㅋㅋ)
* 질문 - 그러니 교회에서 '회개하라' 라는 의미도 그런 것인가요?
그냥 '반성하라' 라는 수준으로 이해해버리면 되는데, 그러니 이 세상에서 제 아무리 최고의 도덕적인 것과 양심을 이야기해도, 그들에게 결단코 천국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옥문이 활짝 열려서 기다리고 있지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인간이 생각하는 성인의 기준은 보편적 양심을 최대한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차원이라는 말씀이죠? 공자나 석가 같은 경우에 말이다.
물론 그러한데, 그 양심이 바로 법이고 말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이 곧 성인군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다들 쉬쉬하고 있는데, 자기가 그렇게 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사실 그 마음은 그 선을 넘고 싶어서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핑계거리가 없어서 넘지 못하는데, 그러면서도 자기는 착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술을 20년 끊었다고 제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자기가 감당치 못할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장에 소주병을 빨게 되는데, 그리고 나서 자기 자신에게 잘못했다고 하면 되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육적인 것을 기대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사도바울의 주장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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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로마서를 !!
이제 로마서를 보겠는데, 우리가 이렇게 성경말씀을 공부하게 되면 속이 참 시원한데,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쓸데없이 고민을 했는지가 드러나니 말이다.
* 질문 -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이 없어진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은 불신자들도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 무엇을 하더라도 또 반성을 하면 되니 말이다. 도둑놈들은 "이번만 하고 손을 씻어야지" 라고 하는데, 물론 목욕은 얼지 몰라도 어디 손이 씻어지겠는가?
* 질문 - 그러니 그것이 인간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지 않나요? 그리고 이 참에 아까 언급한 이성의 통합기능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주시죠.
지금 제가 도서관에서 계속해서 논문들을 복사하면서, 이번 십자가 마을의 여름 수련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