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8-로마서4(강의정리) - 잘린부분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8-로마서4(강의정리) - 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34)
◈ 구구단을 외자 ??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구구셈을 모르다가 알게 되어서, 그래서 열심히 제대로 외우고 있는데, 그런데 옆에서 악마가 "2×2=5, 2×3=8, 2×4=10, 2×5=13, 2×6=15" 이라고 유혹을 한다는 말이다. 즉 악마는 자꾸만 그렇게 어긋난 박자로 나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악마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본인은 정작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래서 사도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것은, 성경에서는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사람을 두고서 '성도'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아니, 성도가 어떻게 ??
사실은 아까 그 문제보다 이것이 더 어려운데, 아니 어떻게 성도가 되어서, 말 그대로 성도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그러면 항상 악을 이기고 선을 행하는, 그렇게 자아가 승리해서 "하나님, 보시옵소서. 제가 오늘 승리했습니다. 친목회 등산을 가지 않고, 교회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인간승리를 이루어서 만세를 외치고 불러야, 그것이 성도답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그것도 역시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결코 자기 힘으로 전혀 구원될 수 없음을 아는 자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처리해주지 않으면, 자기는 그냥 "안녕, 이 세상아" 이라고 하면서, 곧바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표현이 맞나요? '성도' 라는 표현이 맞나요?
성경에서는 두 가지 다 사용을 하는데, 물론 용도는 좀 다르지만 말이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 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강조할 때 사용하는 것이고, 그리고 '성도' 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에 성도가 아니었다고 하는 것을, 그러한 시절과 구분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는 말이다.
* 질문 - 보통 교회에서 성도를 그냥(?) '거룩한 사람' 이란 개념으로 사용하니, 즉 행실이 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히 잘못인데, 그러니 교회가 아니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그런 착한 행실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좋다고 하는 사람도 역시 성도가 아니고 말이다. 만약 성도라면 그런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제 마지막으로 !!
이제 오늘강의를 마치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되면, 자꾸만 자기 정당화에 나서는데, 그래서 핑계가 마치 마일리지가 쌓이듯이 그렇게 자꾸만 누적이 된다는 말이다. "나는 정당합니다", 혹은 "나는 저 사람보다도 낫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것을 두고 '교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천국에 간다고 하는 그 기쁨보다도, '나' 같은 죄인을 구원을 구원하려고 오신 예수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지, 그런 사랑으로 '나'에게 퍼붓고 있음을 항상 말씀을 보면서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의 얼마나 깊고 넓은지 말이다. 바로 그것이 성도의 기도제목이고, 삶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성도는, 예수님의 위대함을 날마다 !!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의 내용인데, 즉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지 말이다. 바로 그것을 날마다 보여주고 증거하는 것이 성도이고, 즉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가?" 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반면에 불신자는 "내가 얼마나 위대한가?" 라는 것을 날마다 보여주고 증거한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성경은 "내가 바로 그런 사람, 즉 불신자이다" 라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왜 들을 때마다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나요? 그래서 이런 성경공부시간에 뭔가 하나를 배우면, 저에게 적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가르쳐야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러나 일단 자기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그런데 응용문제를 너무 잘 풀다보니 그것이 확대가 되는데, 그래도 너무 일방적으로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성경말씀이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이 이미 다 처리하신 것을 가지고 괜히 우리가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제나 주님께 대한 감사와 고마움이 무르익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 질문 -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무죄(無罪)상태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아직 죄를 발생시키지 않아서 죄가 도사리고 있는 상태인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죄가 발생되면, 마음속으로 죄가 생길 수도 있고, 또한 밖으로 드러날 수도 있지 않나요?
그것하고는 다른데, 즉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마음 상태와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의 마음 상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 질문 - 죄가 그 시기에는 어떻게 지배하고 있나요?
아담의 무죄한 상태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의 저쪽에 있었던 모든 장치는 이미 철거가 다 되었기에 말이다. 그러니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지금 아무리 상상을 해도, 그것은 역시 어디까지나 지금 여기서 출발을 하는 것이기에 모두 엉터리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아담의 무죄상태에서는 십자가를 갖다댈 필요조차도 없는데, 그러면 제가 후자로 질문했던 무죄의 상태(?)라고 하면, 십자가를 들이대면 바로 죄가 드러난다는 말씀인가요? (??)
물론 그러한데, 십자가를 갖다대면 곧바로 자극을 받아서 자기의 본색을 다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참 잘했는데, 항상 이렇게 말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2008,12,11 오후 11시 50분에 마침.
그럼, 신학자들이 고민했던 것은 다음 주로 ??
===========================================
[ 산 영과 살려 주시는 영 ]
2005,05 이름 : 장병엽 (우리교회 질문과 답변)
방송은 약간 어렵고, 문자가 저에게 쉬울 것 같습니다. 게시판을 읽고 많이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은 안중에도 없고, 인간의 자율성에 얽매여 사는 저에게 또 한번의 가르침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
Re.. 산 영과 살려 주시는 영 이름 : 이근호
'산 영' 이란,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 아담에게 남긴 결과로 인해 생겨난 바를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즉 아담을 스스로 '영적존재'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비록 아담이 범죄해도 아담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면에서 계속 '영', 혹은 '생명의 영혼(푸케)' 이라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분은 '살려내는 영'이십니다. 이로서 아담의 흙에 속한 형상을 가진 자라도 여전히 영적존재로 변모할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확인을 받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사도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에 저촉함을 받는 사람은 땡 잡았다는 말입니다.
--------------------------------
Re.. 산 영과 살려 주시는 영 이름 : 장병엽
1) 여기서 영적존재란, 하늘에 속한 자란 말입니까?
2) 영적이지 않은 자는 다 땅에 속한 자로 보면 됩니까?
----------------------
Re.. 산 영과 살려 주시는 영 이름 : 이근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말씀하시는 '산 영' 이란 하늘에 속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원리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 '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