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에 관하여
교회론에 관하여
이름 : 강구만(IP:125.143.86.97)
얼마전 '복음의 메아리' 정낙원 목사님의 글에 관한 상반된 교회론에 대해 목사님의 의견을 구합니다.
복음적인 교회론 정립을 위해서 필요한 토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선 저의 생각은 하나님의 일 또는 교회를 보호 유지 관리 하기 위해 사람의 수고 (돈 포함)가 필요 하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아무것 도 할수 없습니다" 란 고백이 나와야 성도가 아닐까요.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 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전15:10)
헌금이나 봉사도 주신 용서가 너무 귀하고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지 (모두 주님 것 입니다) 보이는 교회를 유지 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고, 보이는 교회가 주님의 몸 (불가시적 교회)을 보호한다 ? 는 것도 사람의 생각 같습니다.
완료 된 것을 누리는 것이 복음 인데 이미 완성된 채 주어 진 것 이 부족 해서 내가 보탤 것 이 있다면 복음적인 교회관 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이근호(IP:117.♡.140.193)
09-01-22 17:58
성경의 교회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십니다. 이것을 '종말론적 현상'에 해당됩니다. 즉 종말이 되지 아니하면 '교회'라는 것이 발생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만드신 교회를 보면서 교인 각자가 자신을 '종말론적 존재'라고 인식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원한 형벌과 저주받기 위해 버림받아야 될 자를 예수님깨서 피 흘려 살려 내셨구나"를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 안에서 무엇을 찾게 되느냐 하면, "아, 나는 이러이러한 인간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아 마땅하고 영원한 형벌 받아 마땅하구나"를 늘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교회 내에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과 더러운 나를 비교하는 사람은 참으로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고 형벌 받아 마땅하다는 태도를 가진 성도가 되고, 만약에 교회 내에서 자신과 타인과 비교한다면 이것은 성도가 아니라 여전히 저주 안에 그대로 놓인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오는 것은 '자신의 최선' 같은 것이 나오지 결코 '예수님의 피'가 나오지 않겠지요. 그러니까 교회란 교회 밖에서 양과 염소가 구분되어질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양과 염소가 구분되어집니다. 자신과 남을 비교하는 사람, 예를 들면 "나는 목사고 너는 평신도이니 너는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이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 안에서 잠약하고 있는 사단의 충실한 종들입니다. 구원은 교회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듯 오직 복음만 쳐다보고 사는 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 몸입니다.
강구만(IP:125.♡.86.97)
09-01-22 19:48
종말론적 교회는 주님의 언약의 토대위에 있기에 복음을 증거 할때만 교회이지 교회가 스스로 교회임을 보이기 위해 애쓸 이유가 없고 교회의 모든 사건과 활동은 성령의 사역 이기에 교회의 역사란 있을수 없는데 사람의 수고로 보호 유지 된다면 여전히 미완료로 남는것 아닌지요?
이근호(IP:117.♡.140.193)
09-01-23 07:31
성경에 나오는 모든 개념들, 교회론이나 죄론이나 언약론이나 율법론이나 하나님의 형상론이나 인간론이나 그리스도론이나 모두 반드시 십자가 복음 사건에서 출발해서 결국은 십자가 복음 사건으로 되돌아 가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는 내비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십자가를 비켜가면 인간의 행함에서 출발해서 인간의 행함으로 되돌아와 버립니다. 즉 십자가 복음에서 출발한 이론이 도중에 인간의 행함으로 빠져버리는 그런 논리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십자가 사건과 과거에 굳어버리고 죽어버린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계속해서 발휘되는 묵시적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 사건에 벌어졌던 예수님과 인간의 충돌은 오늘날도 여전히 발생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론에 있어 완성이란 딴게 아니라 예수님과 인간 행함의 싸움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완성입니다. 즉 교회 내부에서, 교회가 우선이냐 아니면 십자가 복음이 우선을 놓고 영보없는 영적 투쟁이 벌어지는 그 장소가 교회라는 점에서 교회에는 미완료란 없습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것(눈에 보이는 교회) 없이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에서, 성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 피 사건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교회없이는 구원이 안된다고 여기느냐 하며는, 그 교회가 수립되고 운영되는 모든 것이 인간의 행함의 축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성도는 성도가 교회에서 벌린 모든 것은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은혜(은사)로 인한 희생과 봉사로만 이루어졌는데 (벧전 4:10-12) 여기에 동원된 모든 능력은 오직 지금도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능력이 성령으로 주어진 것에 기초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 내의 불신자들은, 교회 있음과 없음에 신앙의 사활을 거는 반면에서, 성도는 지금도 십자가의 은혜가 작용하느냐 아니면 십자가 은혜가 중단되고 이제부터는 인간의 행함이 동원되어야지만 교회가 유지되느냐 하는 문제에 신앙 사활을 걸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충돌이 교회를 중심으로 세상 끝날까지 계속 벌어진다는 점에서 교회은 완성입니다.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실예를 든다면, 이혼했다고 해서 부끄럽다고 교회 안 나오고, 실직하면 부끄럽다고 교회 안나오고, 교회에서 자신의 자존심이 손상당했다고 여기면 삐져서 교회를 포기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교회라는 것이 자신의 죄가 무엇임을 지적하는 곳이라는 점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자존심을 인정해주는 '인간의 정'으로 유지된다고 느끼는 다정한 친목단체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싸우는 곳입니다. 자신이 과연 자존심을 유지할 만한 인간인지 아니면 복음 이름으로 모독을 받아도 그것 조차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인지를 (벧전 4:13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기뻐하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자기 스스로 내부적으로 싸우는 곳입니다. 즉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나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 예수님과 하나님마저 동원시키는 죄인인지를 스스로 파악해서 왜 나같이 저주받을 존재를 위해서 십자가 피를 흘렸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직 십자가 피 복음 만을 전하고 그것을 고대해서 모이면 교회이지만, 그렇지 않고 서로 마음 맞추어 눈에 보이는 교회하나 만들겠다는 나서면 교회가 아니라 악마의 집단입니다. 이런 우상의 전당에서는 예수님의 피는 모독받고 교회 공로자들의 공로만이 바벨탑이 되어 더 높아질 것입니다. 교회에서 자기 행동을 기준으로 해서 형제를 정죄해서 원인제공하는 자도 나쁘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사람은 자기에게 잘못을 지적하지 말라고 버티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희생과 봉사가 없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자기 유리한 것만 챙기면서 자기 과시하는 식으로 사는 자는 교회가 마땅히 권면해야만 합니다. 목사의 입에서 십자가 복음이 안 나온다면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가 없기에 교회 안 나가는게 옳지만, 그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자신의 활동을 안 알아준다고 해서 삐져서 교회 안 나온다는 것은 도대체 그동안 봉사한 것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한 것이 아니라 교회 내에서 자기 패거리 확보차원에서 벌린, 사람만을 의식하는 가짜 봉사였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인간이라면 이런 소질들을 갖고 있고 자신도 모르는채 발휘하고 있기에 교회 내에서 목사부터 시작해서 누구나 예수님의 피 앞에서 계속해서 회개가 일어나야 하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완성된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근호(IP:117.♡.140.193)
09-01-23 07:45
윗글에 두 군데 글자 틀린데 있습니다. 하나는 '십자가 사건가'은 '십자가 사건은'이 맞고, '영보없는'는 '양보없는'이 맞습니다.
강구만(IP:125.♡.86.128)
09-01-23 11:22
완성이기에 충돌이 있음이 옳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군사에게 자신의 적은 없어야 합니다 다만 주님의 적 뿐 임을 성도 에게는 항상 일깨워 주십니다. 현실을 이유로 하나님의 일(교회)에 사람의 개입의 당위성을 변호 할수는 없습니다.권면도 진리를 위한 권면은 마땅하고 주께서 그사람을 통해 회개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유지 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않되겠지요 특히 가르치는자는 개인적인 목적이 아닌 진리만을 증거 해야합니다. 저 개인으로는 가시적 교회 불가시적 교회를 인정하고 싶지않습니다. 주님의 몸 뿐입니다.
이근호(IP:117.♡.140.193)
09-01-23 12:15
교회를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로 나누는 것은 이단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등장하는 모든 신학을 이단이라고 간주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학의 한계성을 스스로 품을 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피의 위세를 실제로 보지 않고 이성으로 다듬어 박제해놓은 신학화시킨 것들이 때문입니다. 참으로 기독교 역사 가운데 성도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교회가 어떠냐'가 아니라 십자가 피 앞에서 "나는 죄인 맞습니다"고 고백한, 그야말로 소리 소문없이 살다가 조용한 그들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외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보는 안목은 충격적으로 인간의 안목과 다르다!"
한진영(IP:219.♡.124.226)
09-01-23 12:31
충격입니다. 근데 충격이 큰 만큼 방어 기제도 재깍 따라 붙습니다.
좀 과한 농담으로 희화하거나 개념만 추려서 지식화하는 것이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고후7:11)을 면하는 지름길입니다.
강구만(IP:125.♡.86.128)
09-01-23 12:43
보고싶은 주님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으면 좋겠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