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의 심정은 나의 심정이었다.
바리새인의 심정은 나의 심정이었다.
이름 : 이미아(IP:119.66.96.73)
아무리 한 몸이라고 외쳐도 한 몸을 만들지는 못한다.
한 몸은 무슨 한 몸...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내 자존심 찾고 내 자존심 세우기 위해서 남을 깔아 뭉개는 말과 행동을 일삼고
내 한을 풀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 한 풀려고 나오는 곳이 아니다.
인간의 한이나 풀어주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죄의 한이 밝히 보여지게 하는 곳이다. 십자가가 밝히 보여지는 곳이다.
바리새인의 기도가 가슴 깊이 파고 든다. 왜 바리새인이 저렇게 기도했을까??인간의 생각으로는(모르겠다. 나만의 생각일지도...), 상식적으로라도 세리처럼 기도하지 않았을까???
분명 나라면 세리처럼 겉으로는 그리했을 것이다(여기서 한마디 해주고 가야 할 것 같다...흥!!!웃기고 있네!!!인간은 죽었다 다시 깨어난다해도 자력으로는 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을 때나 하는 말이지...겉으로도 할 수 없다)
그 지독한 바리새인의 본심을 감추고서.......
인간은 윤리에 죽고 윤리에 사는 자들인데 예의가 있지..자기가 한 일을 푼수처럼 떠벌린단 말인가..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그냥 놔두실리 없다. "그래 너 어디 한 번 당해봐라".
그것은 자기 환경 좋을 때 그런 윤리라도 나오지....지금 당장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셔봐라..세리처럼 나오는지.
바리새인처럼 나오는 것이 인간임을 발각시키는 것이다. 내가 남보다 뭐가 못해서 이렇게 하십니까라고.
성경에서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가 옳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었다.
독설이었고 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같이 바리새인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왜 내 한을 돌아보지 않습니까???
내가 뭐 잘못한게 있다고....내가 저 교인보다 못한것이 무엇이 있다고....왜 저만 못잡아먹어서 안달을 내십니까??
그 억울함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삿대질을 해가며 욕을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심정.......난 오늘도 이 심정으로 내 한을 토해내고 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18:11-12)
나 이만큼 했습니다. 하나님.....제발 저 좀 봐주십시요..자기생각대로 되어지지 않는 일에 섭섭하다.
추운 겨울날 허허 벌판을 지나며 얼어 붙을 것 같은 바람에 맞아 흘리는 눈물을 자기 옷소매로 훔쳐낼 때의 서운함이다.
교인들아 나 이만큼 했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느냐 ???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억울함으로 가득찬 바리새인의 심정으로 교회를 떠난다.
철새교인처럼 나를 알아주는 교회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면서 알아주는 것이 시들만하면 또 알아주는 곳으로 옮기고....또 옮기고...그러다 지옥교회까지 옮겨갈 것이다.
저 세리가 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바리새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세리의 심정을....
그러나 세리는 바리새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자기는 바리새인과 같은 인간인데 예수님이 이런 인간으로 만들어 주셨으니까...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
한 몸된 교회는 주님께서만 만들어 가시는군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18:14)
인간적인 방법을 써서 잘 지내 볼려고 하고 자기 위신과 자기 체면과 자기 자랑을 내세울 수 있는 곳은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사탄의 회다.
내가 아프면 남이 대신 아파주지 않고 내가 억울해도 남이 내 억울함을 알아줄리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인간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며 인간이 억울하면 얼마나 억울하단 말인가???
오늘도 나, 나, 나,나만 찾고 있는데....예수님의 아픔, 예수님의 억울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소름끼치도록 자기 욕망과 한을 채우기 위한 존재들임을 발견할 뿐이고 매일같이 낯설고 서먹할 뿐이다.
이 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저주를 담당하신 피를 철철철 흘리고 계시는데.
어떤 인간이 이것을 알아줄리 있을까???
내 심장 찢어지는 것만 원한에 사무치도록 깊어져갈 뿐.
자기를 알아주는 일에 다 끌어 모으고 다 잡아 먹어치우는 팩맨처럼.
바리새인의 기도는 정말 이해가 되는데...세리의 기도를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아!!!!!!!!!!!!!!!!!!!!!억지적인 세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주님의 교회는 세리의 기도가 뿜어져 나오는...주님의 이름때문에 모일 수 밖에 없는 곳이다.
주님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사랑 때문에 모인 곳이다.
이것이 아닌 다른 잣대는 필요치 않다. 왜????인간의 한계이니까....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다른 잣대를 요구하지 말기를!!!
다른 잣대로 모인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사탄의 회다.
복음을 즐기면 그만아닌가???? 채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즐기라고 주신 것이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편103편12-18)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1-9)
강구만(IP:125.♡.86.174)
09-01-21 18:13
내 존재의 정당성과 가치를 신 앞에서 항변하고 싶은 아담의 속성인데 바울은'육'이라고 했지요 .
십자가 앞에서 까지 자아를 따로 챙겨 볼려는 지독한 사랑 입니다. 세리는 나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이 당연 하고 ,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고 고백 하는데, 이런 고백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으면 불가능 이지요. 그래서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세상(교회)은 바리새들이 지배 할수 밖에 없고 세리나 창기는 죄인으로 빌어 먹고 살다가 예수님 품에 안기면 됩니다. 저들은 절대로 세리의 기도를 알지 못하지만 세리와 창기의 눈엔 저들이 보이지요 . 그러나 가라지를 뽑는일은 주님이 하실 일 입니다(마13:30).
이미아(IP:119.♡.96.73)
09-01-22 12:26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