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우리의 년수를 계수하심
주께서 우리의 년수를 계수하심
이름 : 이미아(IP:119.149.24.175)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칠십에 속한다면 절반에서 조금 넘어섰고 강건해서 팔십에 속한다면 절반을 살았습니다.
가장 고귀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했던대로 인생이 진행되어졌다면 어떤 결과가 주어졌을까요???
어떤 재미가 있었을까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생각했던대로 우리 인생이 진행되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예상하고 계획했던대로 우리에게 결과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라이프 플랜(보험 설계사가 인생 계획을 그래프로 다 설계해 줍니다)은
공부하고...졸업하고...취직하고...돈 벌고....결혼하고...집 장만하고...노후대책으로 저축하고...
자식들 휼륭하게 잘 키워서 결혼시키고....손자손녀 재롱보고....정말 평온하고 안락한 여생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욕심 안부렸습니다.
정말 평범하게 사는 것...이것이 욕심이라면 욕심이었습니다.
봄..여름..가을..겨울...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대로......
순리대로 살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인간이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이 그렇게도 잘못되었습니까???
억!!!억!! 억소리나는 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부동산에 붙어 있는 전세 일억 오천, 이억 삼천...이라는 광고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집값이 올랐다고 좋아합니다.
만져보지도 못하는 그림자 같은 그 유령의 돈에 사람의 눈물과 웃음이 농락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것입니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식은죽 먹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으로 마음까지도 살 수 있는 것을 보면요....
돈으로 안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난데없이 들이닥친 일들로 우리의 인생은 바뀌어지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사기를 당하면 다시는 사기를 당하지 않겠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실패를 하면 다시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두드려보고 또 두드려보고
손해를 보면 다시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재보고 또 재보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라는 실체를 더 견고하게 할 뿐이었지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어찌하든지 더욱 더 살 궁리를 하고 자기 영역을 침범받지 않으려 하고 자기 영역을 사수하려는 몸부림으로
무슨 짓을 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더 철저하게 옭아매는 사슬이었습니다.
땅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에 아무리 멋진 건물을 세워도 땅에 세워지는 것이지 하늘에 세울순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무장하고 또 무장하고 재무장하고..."도전하는 자는 아름답다"라는 플랭카드를 내걸고
도전(인간의 감추어진 욕심)을 아름다움으로 포장합니다.
진짜 아름다움이 뭔지 모릅니다.
이렇게 인간의 욕망은 땅을 깊이깊이 파고 또 파고 파서 자기 생존을 뿌리 박습니다.
하늘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아니 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 가끔은 하늘을 쳐다보자....
이것마저도 오로지 높고 높은 하늘....그 하늘 너머까지 볼려고 하는 욕망의 눈입니다. 호기심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땅을 바라보며 걷노라면 어깨를 쭉 펴고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며 당당하게 걸으라고 교육합니다.
생존, 생존, 생존입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책잡힐까봐서 눈물을 보여서도 안됩니다.
죄인에게서 나올 짓이 이 짓 밖에 더 있겠습니까.....
진짜 아름다움은 예수님의 질고와 슬픔입니다. 그 누가 알리요마는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 주신 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마음이 심겨진 자들만이 진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이사야53장)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만이 진짜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기는 보아도 진짜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눈을 가졌습니다.
세상이라는 허상을 보면서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욕정의 눈을......
예수님의 사랑이 덮치지 아니하면 진짜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결코 허물 수 없는 마음의 벽(죄)때문입니다.
"나"의 눈. "나"의 마음. "나"...........
우리는 억지로 몰아 부쳐서라도 예수님을 불사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사신인데 아픔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게임입니다..
예수님은 게임속에 나오는 캐릭터입니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전혀 느낌조차 없는...
예수님은 그냥 마우스로 조종당하면서 나를 위해 싸우는 불사신인 것입니다.
그렇게 몰아 부쳐서라도 우리의 양심은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듯이 툭툭 털어버리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의 무죄를 변명하기 위해서 손을 씻고 깨끗하다는 제스쳐를 취했던 빌라도였습니다.
땅을 초월한 하늘에 닿고 싶은 욕망......땅의 자리마저 이제는 시시한 자리가 되어서 이제는 하늘의 자리까지 탈취하고자 합
니다. 이것을 소유해서 신과의 접촉점을 찾고 신은 나의 수호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것만이 전부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선택한 백성들을 앞서서 끌고 가십니다.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었던 겟세마네의 기도를 듣게 하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게 하시고 갈보리 산 위에 세워
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십니다. 무덤에 갇히어 지옥까지 내려간 죽음의 권세를 맛보게 하시고 무덤에서 부활하게 하사 지
옥의 권세,죽음을 이기는 승리를 안겨 주십니다.
진짜 아름다움을 발하시는 예수님....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울 뿐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의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년수를 계수하심은 평생 죄만 질질 흘리는 우리의 년수속에서 피흘리사 용서하신 그 사랑을 매일같이 새롭게
새롭게 맛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시편 90:9)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사2:22)
한진영(IP:219.♡.124.226)
09-01-20 18:42
마음에 생경한 기쁨을 두시고(시4:7)
그 피의 증거가 믿어지게 하시니(살후1:10)
십자가 품에 안긴 자(시131)라면
고단하고 누추한 인생(시90:10)도
만사 긍정(살전5:18)일 다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