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역대기 제 9강
2008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역대기 제 9강
이름 : 서경수(IP:116.37.101.23)
20090106i 2009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9강)
녹취자: 최형중 목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앞에 그림이 하나 있지요. 이 앞에 그림이 하나 있는데,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아담부터 해서, 아담, 노아, 그 다음에 이삭, 이스마엘, 그다음에 유다, 갑자기 그림 또 잊어버려서 다시 그립니다. 분명히 같은 인간끼리 ... 신을 향하는데, 갑자기 뭔가 땡기는 힘이 쫙 땡겨 올라가니까. 여기에 다윗이 선두 주자가 되어가지고 다른 사람은 여기에 복속되는, 예속이 되는 식으로 딸려 올라가는 거에요.
쫙 딸려 올라가면서 똑같이 고생하고, 애굽에서 같이 고생하고 홍해 때 같이 왔고, 전부다 광야 생활을 같이 했는데, 유독 다윗만 쫙 땡겨 올라온 것은 이미 이 전에 여기 하나님, 숨어 있는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 다윗의 자손으로 오기로 내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중에 다윗이 뽑혀 올라 온 거예요. 만나는 거예요. 만나지만 이용당하지요.
자기가 최고인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니단 말이죠. 유다인 하는 것은 유다인입니다. 유다인, 열두 지파 가운데 유다지파에 속하는 것이죠. 유다인이 다윗이니까 다윗 바로 밑에 유다인이 있겠죠. 유다인. 유다인이 레위 지파와 더불어서 레위 지파를 보호하면서 나머지는 과연 친유다냐? 그 다음에 친하냐? 반유다냐? 그로인해서 반유다쪽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 언약에서는 이게 다 합체가 되죠. 예수님 팔아먹은 사람 이름이 뭐죠?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 이름 좋다고 그냥 턱턱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세벨 보세요. 얼마나 예뻤습니까? 관능적이고. 백날 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아달랴, 그것도 남자 이름 같아. 아달랴. 면접 볼 때 이름을 아달라. 이름 좀 바꿔야겠어요.
여기 다윗 자손의 가문 쪽으로 성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1번이라면, 역대기 나머지 이것이 내려가요. 내려가서 이 유대인들이 자칭 잘났던 유대인들이 쫙 올라가서 다시 내려와 버려요. 이것이 구약성경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돼요.
‘야~ 다왔다 다왔다’하는데 못 잡고, 슬쩍 내려가는 거예요. 전봇대에 풍선 걸려 있는데 자기 아들이 ‘아빠 저 풍선 떼줘’ 하잖아요. 아빠가 간만에 아빠 노릇한다고 올라가지고 짧은 손 해가지고 하는데, 그 때 팔랑 바람이 불어가지고 풍선이 날아가면 쥐도 못하고, 턱 내려지죠. 그 식이라. 아빠는 안 된단다. ...... ‘야~ 내 힘으로 구원 안 되네’ 정말 간단합니다. 이것도 모르면 곤란합니다. 복음을 모르면 곤란합니다.
열심히 교회 다니고, 집사, 장로, 목사, 신학교까지 다 했는데, 역시 내 힘으로 안 됩니다. 목사 시키는 대로 헌금 다하고, 전도하고, 전도 상 받고 했는데, 역시 안 됩니다. 하고 땅에 툭 떨어지죠. 떨어지는데, 누구 약을 올리나?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이단 놈들이 우리 먼저 간데 하면서 가죠. 이게 3번입니다. 이게 신학자들입니다.
2번은 어떤 것인가하면, 3번이 간단 이말이죠. 우리는 안 됐는데, 제들은 무슨 힘으로 됩니까? 하니까 그들이 말하기를 바로 다윗의 자손의 힘으로 구원 받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행함으로 구원 받으려 하다가 그들은 십자가에서, 거친들에서 깨어지고 부서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하는데, 자꾸 그 사람은 자기 행함을 가지고 구원받으려고 하니까 결국 그들은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고 십자가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수많은 성경책, 이 두꺼운 성경책 역사가 다 있는데, 우리가 역사의 주체가 되어가지고 뭔가 해 보겠다는데, 이것 다 재껴두고 십자가? 네 대신 내가 죽는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하니까 진짜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은 이것을 믿고 똑똑하다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삐져서 안 믿고.
교회에서요,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는 말은 이것은 늘 적용되어야 해요. 먼저 된 자가 나중된다. 재밌는 것은 먼저 된 자가 나중되었잖아요.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잖아요. 그 사람 또 나중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다윗 약속 가운데서, 어떤 대목에서 이방인들이, 회개한 유대인들. 이방인들과 더하기 회개한 유대인들이 아무 근거 없이, 그냥 어려움 없이 있는 그 근거가 다윗 언약 속에서 어떻게 이것을 뽑아 낼 수 있는가를 봅시다. 어떻게 이것을 뽑아 낼 수 있는가. 역대상, 그 다음에 좀 뒷부분에 가야죠.
예, 21장. 21장 1절을 다함께 읽어봅시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여기에 사단이 나옵니다. 사단. 악마. 이것 좀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 상대하지 않아요. 사탄은 우리를 개인적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탄 말고 그 하수인들이 하는 짓이고.
사탄이 할 때는, 이것만 아시면 되는데, 어렵게 이야기 안 하고, 간단하게 이야기하겠는데, 결론부터 말해서 사탄은 어떤 것만을 건드리는가하면, 이미 완료된 것만 건드려요. 완료된 것. 사탄이 맛 드리고 노리는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 받기로 확정이 된 그 명단, 그 리스트에 해당되는 사람을 혹 하려고, 빼 내기 위해서 도전하는 겁니다.
시사한 것은 손 대지도 않아요. 원래 자기 편이니까. 그 누가복음에 보면, 그 사탄이 누구를 노리는가 하면, 베드로를 다시 믿음에서 좌절시키기 위해서 사탄이 노리죠. 사탄이 왜 이 것을 노리는가하면, 사탄이 그걸 알아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료된 것은 이미 성립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악마, 사탄이 직접 여기서 시비 걸고 나오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유도했죠.
만약에 사탄이 노릴 것 같으면 이미 그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이미 구원이 완료된 사람이라고 보시면 돼요. 베드로를 노린다는 이 말은 베드로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구원 받기로 확정된 사람이기 때문에 확정되었다는 것 때문에 사탄이 비로소 자기 정체를 드러냅니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뭐냐하면, 물건을 이렇게 구입하고 흥정할 때 진짜 비싼 물건을 흥정할 때는 자기 집 애들이나 밑에 말단 직원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큰 사람끼리 크게, 사장 대 사장으로 우리 거래 성사시킵시다.’하고 크게... 졸개들 보내지 않아요. 사탄이 나선다 이 말은 이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구원되기로 확정되어 있음을 증거하는, 증거용으로 사탄이 활개치는 거예요.
마태복음에 나오죠. 사탄이 마지막 때에 택한 자를 가지고 미혹하기 위해서 설친다 이 말이죠. 그럴 때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유익이 있느냐 하면은 사탄이 주는 그 무기가 시시한 ‘너 ... 했어? 너 전도 몇 명 했어? 너 교회 헌금했어?’ 이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완성된 그 핵심, 핵심추. ‘너 아직도 십자가 그것을 복음으로 믿냐?’ 이렇게 나와요.
무엇이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구원받게 하는 그것을 직접 따고 들어오는 거예요. 예전에 이렇습니다. 사람이라는 하는 것은 예수 믿는 것으로, 십자가 복음으로 안 되고, 선한 일을 해야 착한 일을 해야, 구원받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다가 그리스도를 보고 이미 확정된 것을 뭔가 섞으려하고 그것을 해제시키려하고, 무사시켜서, 고의로 무사시켜 버리면 나머지 더 이상 확정될 것이, 믿을 것이 없게 만들어 버려요.
그래서 십자가 안다고, 십자가 알다가도 십자가 복음을 버려버리면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확정된 것이 없어요. 나도 몰라, 그냥 해 보는 거예요. 그냥 할 때까지 가 보는 거예요. 갈 때까지 가 보는 것. 확정된 것은 없고, 그냥 무조건 신앙 생활 해 보는 거야. 갈 때까지 가 보는 것. 이것을 네 자로, 사자성어로 하면 뭐가 되게요. 갈 때까지 가 보는 것. 이것을 사자로. 여러분 잘 아는 겁니다. 개혁신학입니다.
그냥 갈 때까지 가 보는 것. 확정된 것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해 보는 거예요. 어떻게? 개혁하고, 또 개혁하고, 또 개혁하고, 또 개혁하고 계속 개혁하는 것이 개혁교회 본질이라는 거예요.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개혁교회 신학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점이 뭔가하면, 초신자는 아무리 해도 구원 못 받아요. 왜? 예수 이름으로 하려면 너무 멀었어. 예수 이름에다가 개혁신학까지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세리와 창기는 구원 못 받아요. 왜? 개혁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를 안 했기 때문에.
그런데 십자가 복음은 뭐냐? 십자가 복음은 개혁신학을 했든, 어떻게 했든, 박사가 됐든 관계없이 십자가를 알아버리면 자기 자신은 그냥 아무리 해도 개혁신학해도 안 되고, 뭐 해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는 자기만 십자가 앞에 보인다 이 말이죠.
도마처럼, 주의 창 자국과 못 자국을 만져보고 하는 말이, 그것으로 끝났어요. 창 자국, 못 자국이 있어도 그것 ...가 없어요. 주께서 십자가 지셨네요. 그러면 주는 나의 하나님이고, 나의 그리스도입니다. 끝나버리는 거예요. 그것 몇 초도 안 걸렸어요.
예수 믿기 쉽습니다. 오늘 밤에 죽어도 낙원에 가기 쉬워요. 십자가 앞에서 자기가 안 보이고, 십자가가 보이면, 그것이 1초라도, 2초 사이라도 ... 자기가 보이든 상관없이 그 사람 오늘밤에라도 구원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복음의 요소가 그 사람 속에 잠시 틈을 내서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균열시켜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게 해서 십자가를 믿게 된 것을 성경에서 뭐라고 하냐면, 그것을 가지고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 교회라고 합니다. 모든 성경 이야기는 교회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전부 다 십자가 안에서, 다른 말로 해서 예수 안에서 개념이 나와야지, 십자가 말고, 더 나가서 십자가 떠나버리면 그 모든 개념은 악마가 아주 ‘반갑다 친구야’하고 악수할 그런 이야기입니다.
‘봐라 십자가가 좀 모자리지? 그것으로 안 되는 것을 이제 알았지? 나도 옛날에는 십자가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것 가지고는 모자린다(부족하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하면, 마귀가, 귀신이, 귀신 들린 자가 왔을 때, 예수님께 이렇게 말 했어요. ‘예수야, 우리가 아직 멸망 당하기 전에 일찍 왔습니까?’한 것은 이미 마귀가 압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완성시켜 놓아버리면 빼도 박도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아요.
그런데 누가 모릅니까? 제자들과 사람들은 모르잖아요.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일을 제발 방해하지 마시고, 나를 힘들게 하지 마시고, 제발, 예수님 하시는 일을 하시고, 나는 내 할 길을 하겠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탄이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 언젠가 하면,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갔잖아요.
가룟 유다 속에 들어가서 하는 말이, 가룟 유다 속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팔아 먹었습니다. 이 말은 뭔가하면, 예수님은 전혀 필요 없다는 말이에요. 필요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전혀 필요치 않다. 예수님은 헛소리고,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다는 것은 그것은 거짓말이고, 그건 안들은 걸로 여기라’라는 식으로 팔아 먹는 걸로 과거에 예수 따라가는 모든 보상을, 마음의 보상을, 보상 받으려고 그렇게 시도한 겁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예요. ‘나 당신 몰라요.’하고 3번씩 부인하죠. 그런데 베드로는 왜 구원받고, 가룟 유다는 왜 탈락되었습니까? 그것은 오야 마음대로 아닙니까? 그것, 오야 마음대로를 두 자로 하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뭐냐? 오야 마음대로.
주께서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그래서 베드로에게 찾아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 이야기 한다고. ‘네 전에 소녀에게, 닭 울 때’, ‘아~ 그건 그건, 그건 실수였습니다.’ ‘그 때 내 앞에서...’, ‘아~ 그만하세요. 그 때 미안하다 했잖아요.’, ‘네 내 모른다고...’, ‘아~ 그만하세요. 내 잘못한 것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 내는 것이 아니고, ‘지금 너 나 사랑하냐?’ ‘예 사랑합니다.’ 안 믿죠. ‘나를 사랑하냐?’ ‘죽도록 사랑합니다.’ 안 믿죠. ‘날 사랑하냐?’ ‘죽도록 사랑합니다. 내가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시잖아요.’ ‘난 모르는데... 내가 너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 이것이 일관된 주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베드로는 천국 가는, 면류관을 누구에게 반납해야 하는가하면 주님에게 반납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귀는 택한 자를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삼키려고 이미 완성된 것을 뭐로 바꾸냐하면 미완성으로 바꿔버려요. ‘그것 가지고는 멀었어. 예수 십자가로 다 되는 것이 아니야. 딴 것 해야 돼. 딴 것. 교회 봉사 해야 되고, 십자가 마을 수련회 참석 해야 되고 딴 것 해야 돼.’ 자꾸 딴 것을 더 이야기 하죠.
그래서 안 믿는다 싶으면 간증집회 해 가지고, 증인들 내 세워 가지고 바람잡아야 해요. 바람 잡이 내 세워가지고, 양아치 내 세워가지고, 헌금 봉투 다 돌리고, 그것도 목요일 날 저녁에, 나중에 부흥사 앉아 가지고 갈라 먹기 하고.
다윗 가문 가운데서 어떻게 완료된 것, 그러니까 복음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다윗이 알고 있던 이 다윗 언약 자체, 그러니까 말을 좀 더 쉽게 합시다. 다윗 언약 만으로써 더 이상 빼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그것으로써 구원됨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 그 나오는 것이 뭐냐? 다윗은 그것을 뭐라고 하는가하면, 지금까지 했던 것, 뭡니까? 예? 성전.
그래서 역대상에 보면, 역대상입니까? 하입니까? 솔로몬이 성전에서 하는 기도가 나와요. 그 기도를 보면, ‘하나님, 제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주께서 용서하실거죠?’ 주께서 ‘그래’ ....... ‘주여 멀리 가서 차비가 없어서 이 곳에 못 오더라도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향하여 기도하면 용서해 주실거죠’ ‘그럼 그럼’
‘주여 노하지 마옵소서. 또 있습니다.’, ‘빨리 이야기해봐’ ‘만약에 비가 안 와서 가뭄 들 때에 여기 와서 기도하면, 뿌려 주실거죠?’ ‘그럼 그럼’ ‘또 있습니다.’ ‘뭐, 또 이야기해봐’, ‘전쟁에서 패배해서 돌아왔을 때 기죽어 왔을 때, 여기에서 기도하면 이기게 해 줄거죠?’, ‘그럼 그럼’
그 그럼 그럼을 보여주는 것이 아까 했던 인간의 모통의 어깨들이죠. 그죠? 어깨들이란 말이죠. 전부다. 여로보암, 앗싸. 여호사밧, 미가야. 그들이 진짜 말 안 듣고, 오직 믿음만 의지했다? 하나님을 의지했더니만 갑자기 십팔만 오천 명이 ... 작살났다, 십팔만 오천명이.
야~ 하나님의 약속, 다윗 언약은 변함이 없구나. 그것을 확인해 주는 이 내리막길, 그냥 내리막길이 아니라, 확인해 주면서 ... 하면서도 그런 지적들을 받으면서도 역시 뭡니까? 결국은 ........ ㅠㅜ 바벨론 앗수르 물 바구니로 ‘에라 다 치워버리자 확 치워버리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 마치 텅 빈 축구장 만들어서 텅 비어 있는거죠. 이젠 좀 땅이 쉬겠네. 안식년 동안, 70년 동안 안식하라.
또 여기에 비밀이 있죠. 70년이죠. 70년을 ... 뭐로 바꾸었습니까? 70 이레로 바뀌었어요. 70 전과 후가 뭐냐? 70 전에는 성전이 불타 버렸구요. 70년 후에 성전 재건 되었죠. 70이레라는 것은 다윗이 지었던 성전의 시대는 끝나고, 70 이레가 끝나면 누가 짓느냐? 진짜 다윗 언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성전을 짓는 그 시대가 70 이레 마지막에 있다는 것을 다니엘이 알고 다니엘은 성전을 지어도 고향으로 안 돌아 갑니다. 너희만 가라. 나는 안 갈란다. 가서 많이 지어봐라. 벽돌로 많이 지어 봐라. 이렇게 해 버렸죠.
예수님도 지상에 있는 헤롯 성전을 뭉게 버리고, 부숴 버립니다. 지금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데 지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도 있지만 요르단도 있고, 있죠. 지금 지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면 지금부터 다윗 언약에 가운데서 다윗 언약이 완료된다는 것을 성전인데, 이 성전을 어떻게 뽑아내는지 봅시다.
21장. 사단이 일어났죠. 사단이 일어났다는 것은 드디어 모델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완성되었으니까 원수의 쫄따구가 아니라 주의 원수, 창세기 3장에 뱀의 후손이 아니라 뱀 그 자체. 뱀 그 자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죠.
그래서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단 정도는 오지 않도록 막을... 없으리...상당히 섭섭해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사탄을 경험하려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다 이루었다. 내가 어떤 행동, 어떤 일을 해도 십자가 피로 용서 받았다하는 그 순간, 슬슬 사탄이 와 가지고, ‘그러면 네가 이것 안 해도 되나?’ 성경 말씀 인용해 가지고 자꾸 이것을 쑤실 때, 그것은 완성을 흔들기 위한, 미완으로 만들기 위한, 그게 전략입니다. 그게 안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했기 때문에 안 넘어가는 것이죠. 자기들은 넘어 갈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전화 해 가지고, ‘목사님 아직도 십자가 뿐입니까?’ ‘무슨 말을 하시기를, 듣기를 원하십니까?’ 옛날에는 십자가 뿐이였는데, 지금은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아니고, 생각이 짧았습니다. 십자가 말고, 성화까지 해야 구원 받습니다. 이런 소리하고 ......
다윗이 격동하고, 그 다음에, 다윗은 여기에 완성된 상태로써 규범입니다. 명령이 아니고. 그러나 계수합니다. 여기서 요압이 말리죠. 요압이 가로되 3절에 보세요.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지금보다 백배나 더 하실 수 있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하고 급구 말립니다.
마귀에게 이렇게 쓸리면 이것은 가만 놔 두어야 하지요. 말린다고 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 둬야 합니다. 한 번 네 성질대로 한 번 해봐라. 돌아오게 하실 것은 주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네 성질도 원없이 한 번 해봐라.
하지만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는 해야죠. ‘하나님이여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라고 해여죠. 다윗이 말 안 듣습니다. 인간의 본성, 욕망은 인간의 이성보다 우선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포스트모던이즘에서 밝혀냈죠. 무의식이 의식보다 힘이 더 세다는 거예요.
의식적으로는 뭐가 옳고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무의식에서 오는 이 욕망, 이 욕망을 프로이드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봤는데, 하나는 죽고자 하는 욕망과 계속 살아서 벼슬 하겠다는 욕망, 이것은 선택적 욕망이지만 죽고 난 다음에 뭐가 있을까... 하는 죽고자 하는 욕망, 땅에서는 다 아는데 죽고 난 다음에는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사태가 뭐냐하면 뭔가 금지를 해 놓으면 나는 금지된 그 바깥을 금지된 것을 인하여 나에게 욕망이 자각이 되요. 나는 금지 된 것을 소망한다. 소설 책 이름 아닙니까?
금지를 안 했으면 전혀 안 궁금할텐데,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했으면 선악과 따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보도 안 해요.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고 하니까 갑자기 귀에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따 먹지 마라. 마라. 마라’ 이렇게 됩니다. 나중에 보면 선악과 그것 꼭 따 먹고 싶다. 따 먹고 싶다. 예잇 따 먹어버리자. 이판사판 따 먹어버리자.
결국 이 말은 뭔가하면 인간은 스스로 자기를 조절할 수 있는 .... 처음부터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만든 적이 없어요. 육하면 육이 땡기게 되어 있고, 물욕하게 되어 있는 그런 인간을 아주 선하게 창조했습니다. 아주 선하게.
유혹에 넘어가는 인간을 아주 선하게 창조했어요. 유혹에 안 넘어가는 그런 독한 인간 말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아주 선한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고 계셨다...
이 말은 인간의 운명은 너의 결심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을, 너는 언제든지 너의 결심을 마귀가 들쑤셔 버리면 그것은 하루 아침에 다 깨어진다는 것을.
그런데 또 주께서 인도하시면 아무리 악마가 설쳐도 주님의 공로로 그걸 다 막아서 결국 주님의 공로로 내가 구원 받았습니다. 라는 고백이 평소에 나올 수 있도록 그렇게 새로운 창조를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죽고자 하는 이것을 인간의 제한된 한계 말고 무한함까지 들여다보는 욕망인 반면
살아서 벼슬하겠다는 것은 모든 생물의 충동, 이것을 충동이라 하죠. 충동. 십자가 마을에 하나님의 형상을 두 가지로 보죠. 하나는 죽음과 또 다른 하나는 번식으로 보죠. 생식. 번식과 생식은 같은 겁니다.
남자와 여자가 왜 있느냐? 이 번식을 위해. 그런데 번식된 그 형상이 결국은 백날 번식해도 자기는 죽죠. 놓은 자식도 언젠가 죽고. 그러니까 죽음과 번식을 통해서 아담의 형상이 아닌, 아니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인간의 형상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걸 기초로 해서 하나님의 형상이 뭐냐? 영원히 죽지 않고, 주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시간이 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뭐가 하나님의 형상은 거룩하고... 이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우리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을 하는가?를 실질적으로 보여줘야 그게 형상의 정답이라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
21장, 사탄. 다윗이 참을 수가 없어요. 유혹하는데, 유혹할 때는 넘어가 주는 것이 예의입니다. 안 넘어가주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고, 나는 안 넘어갔다. 안 넘어갔다. 라고 자기가 자기 의를 자랑해요. 또 참으면 그것이 다른 쪽으로 폭발을 해요. ......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 믿으시고, 그냥 팽겨치면, 하나님께서 이걸 이용해서 뭘 하는가하면, 21장 끝에 보면, 17절에 보면(16절후)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여러분 지금 사람들이 ‘굵은 베를 입고 다윗이 자녀들과 함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안 되냐하면, ‘하나님께 아뢰여’ 이것은 안 되요. 이것은 무슨 말인가하면, 굵은 베를 입고 엎드리면서 '봐라 내 믿음 좋제'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 하나님께 보이지 않는 분에게 아뢴다는 것은 넘어갈 수 없는 간격을 뛰어 넘은 거예요. 그 때 하늘에서는 솔직하게 그 기도를 받아주죠.
.........
그 말이, 악을 행한 자는 누구입니까? 납니다. 이게 사람에게 자기 신앙 좋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합니다. 부흥사들이 성경책 옆에 끼고 뭐라고 합니까? ‘연약합니다’라고 하잖아요. 이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나도 한다 이거예요. ‘연약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목소리만 깔면 돼요. 감기도 걸렸겠다. 얼마나 찬스가 좋습니까? ‘부족합니다. 할렐루야. 믿습니까?’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럴 때는 그런 멘트를 날리면서 나는 하나의 의로운 공의를 획득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진짜로 나는 악합니다. 이것은 악마가 말릴 수가 없어요. 악마는 다윗으로 하여금 마음껏 죄를 짓게는 할 수 있는데, 악마가 뭘 못하는가하면, 내가 죄인 맞습니다. 하고 정말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순간, 그 사람들처럼 죄인이기 때문에 주께서 시키는대로 그대로 다 행해야 돼죠. 그러면은 마귀는 지가 해야 할 일 다 끝이 났어요. 여기까지, 손 빼고 가 버립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다음부터는 뭐냐. 제사 지내라. 네 죄는 제사를 지내야 된다. 그래서 오르난의 마당을 사가지고, 그것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24절에 보면 값없이 하지 않고, 값을 주고 그것을 취해서 제단을 쌓을 때에 그 다음에 26절 끝에 27절에 보면, 누가 내려옵니까? 아, 26절, 하늘에서 뭐가 내려와요? 불이 내려 오죠. 불이 내려 오고, 사자를 명하여 저가 칼을 집에 꽂아라, 이렇게 되어있죠.
21세기에 과학적 인식, 합리적인 사고 방식, 인식을 가지고 사회학적 관점을 가지고 이 대목을 바라보면 여기서 등장 인물에서 빠져야 할 것이 빠져요. 뭐냐하면, 천사, 존재하지 않죠. 구름, 후레시가 대신하죠.
전혀 이것을 손대지 못하고 있어요. 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는 천사가 .... 이런 것이 동화에서 나오는 전설이나 동화에서 나오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에서 나오는 이야기이지. 어떻게 이게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눈에 보이는 이것을 믿으란 말입니까? 하지만 이것이 언제 믿어지느냐? 내가 악한 일을 할 때는 안 봐도 성경 전체가 한꺼번에 다 달려들어서 다 믿어져요.
그 때 뭐가 따라오느냐?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이 악한 나도 의인되는 것? 맞습니다. 왜? 약속이니까. 약속이니까. 그게 어떻게 믿어지냐? 몰라. 내가 악한 것을 인정하니까 그게 믿어지는 거예요. 약속이니까. 악한 자가 뭘 고발해요? 받아 챙기면 그만인데. 주시는대로. 하라하면 하고, 까라하면 까고. 무조건 하라하면 다 할 수밖에 없죠. 왜? 나는 악한 자이기 때문에.
그래서 주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죠. 그런데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은 자기가 악한 자가 아니고 뭐냐하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악한 자가 아니라 선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나에게 결제 맡아서 나에게 은혜를 주려고 해도 허락 맡고 주라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완전히 마귀가 홀딱 뒤집어 쒸었지요. 그 다음에 22장 1절 다윗이 가로되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다음에 뭡니까? 전이요 이는 여호와의 번제단이라.
그리고 난 다음에 2절 “다윗이 명령하여 이스라엘 땅에 거류하는 이방 사람을 모으고 석수를 시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돌을 다듬게 하고” 이것을 보면 성전을 건축했던 그 건축에 들어갈, 기초에 들어갈 인물이 다윗입니까? 솔로몬입니까?
다윗이죠. 그러면 성전 지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솔로몬입니까? 다윗입니까? 결국은 다윗이죠. 다윗이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다 준비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
그런데 마귀가, 마귀는 하나님에게 또 농락 당했죠. 그죠? 마귀가. 마귀는 항상 자기가 항상 하나님께서 ‘그만 해라. 거기까지. 넘어서는 안 돼 거기까지 해라.’ ‘좀 더 하고요.’ ‘어허 거기까지.’, ‘알겠심더’ ...
마귀를 사용하여서 성도를 하여금 십자가 복음을 더 뚜렷하게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마귀까지 부리면서, 천사를 부리면서 이렇게 사용합니다. 이번 이 작전에 누가 동원되는가하면 사탄 동원됐지요. 그 다음에 칼 들고 있던 천사 동원 됐지요. 그 다음에 억울하게 죽었던 이스라엘의 7만 명 동원 됐지요. 그 다음에 같이 다윗과 함께 베옷 입고 엎드린 장로들 동원 됐지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교회,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뭐냐? ‘주여 나는 악합니다. 주께서 시키는대로 말씀하소서. 종이 듣게 나이다.’하는 주의 복음의 그 자체가 복음이 완료 된 것입니다.
결국 이 완료라는 것을 정리해 보면 ‘나는 항상 죄인이라는 사실에서 죄인임이 완료된 이 사실에 기초로 해서 ..... 요 자체가 완료되... 이것을 사탄이 깰려고 그렇게 진지하게 애를 씁니다.
자 그러면 앞으로 돌아가 봅시다. ... 이야기 하다가 말았는데요. 그 이야기를 왜 했는가하면, 찬양대, 찬양 신학, 율동 신학 이야기 하다가 그 이야기...
율동 신학이나 찬양 신학에서 뭐라고 이야기했는가하면 지금 찬양을 하려면 시편에 나오는 찬양 가사 대로 찬양을 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찬양에서 질이 떨어지고, 아주 천박한 찬양이다. 18,19세기 미국에서 부흥할 때 부른 노래, 대중 가요 가락에다가 가사만 이렇게 붙여서 사람들이 굉장히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그런 찬송가는 질 떨어지는 찬송가다,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노래에다가 가사만 성경 가사를 갖다 붙이면 대중들이 얼마나 좋아하느냐 말이죠. 좋아하겠죠. ‘노바디 밧유’에다가 뭘 붙이느냐하면 찬송가사를 붙이는 거예요. 그건 노바디 밧유는 붙일 필요가 없어요. 영어 자체가 복음적입니다. 노바디 노바디 벗유.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당신밖에 없습니다. 짝짝짝...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분은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 립스틱 짓게 바르고 그것도 마찬가지예요. 화장을 지우고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다 주님을 향하여 나는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유행가 강의하네.
강수지가 불렀던 보랏빛 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가사를 어떤 인간적인 옛날 생각하지 말고, 주님에 대한 들끓는 하란 말이죠. 그 근거는 아가서. 참 아가서 쉽게 풀린다. 아가서, 연애시인 아가서를 동원해가지고 하면 될 것 아니냐.
여기에 다윗이 25장, 아론이 있고, 근데, 이 찬양이, 내가 찬양을 왜 시비 거느냐 하면 찬양에 가사가 없거든요. 가락이 어떤가가 아니라. 찬양대에 대원들의 신분이, 찬양대 대원들의 신분이, 그 돈텔파파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레위인들이예요. 레위 지파 사람들이란 말이죠.
이 말은 뭐냐? 찬양을 하려면 기존의 모든 세상적인 자기 생존의 직업을 전부다 버린 자들만이 찬양하라. 그 원형이 천사입니다. 천사. 천사입니다.
아하스 죽던 해에, 문둥병 걸린 사람있죠. 아하스 죽던 해에 이사야가 늘 왔다갔다 하던 성전에 들어갈 때 갑자기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까? 찬양 소리가 들렸어요. 이스라엘이 출애굽기 19장에서 시내산 올라갈 때 이스라엘은 멀찍이 산 위에서 무슨 나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뭡니까? 찬양이죠. 찬양이 성사하려면 작곡하고 가사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돈가하면, 하나님과 가까이 들여 붙어 있어도 안 뒤 죽을 그 정도 거룩한 같은 동일한 거룩한 신분이 될 경우에만 찬양이 즐겨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십자가를 알고 갑자기 ...에서 뭐가 됩니까? 의인됐죠. 오늘 밤 죽으면 의인의 자격으로 구원받잖아요. 그러면 안 죽더라도 지금 해야 할 것이 뭡니까? 내가 이런 인간이었나 기뻐서 찬양할 수밖에 없어요. 노바디 노바디 벗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아무도 노바디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당신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찬양대를 한 것은 고정관념, 신분고정. 또 신분고정... 이 쭉 나오는데, 그 다음에 문지기. 문지기는 시편 84편에 나오죠. 유명하게 나오는데, 여러분 잘 아시는 겁니다. 거기에 참새나오고, 제비도 나오고 다 나와요. 시편 84편 봅시다. 시편을 제가 좋아해요.
‘만군의 여호와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 여기 주의 장막이 어딘가하면 바로 다윗 언약입니다. 성전 말고, 다윗 언약에 있는 성전... ‘내 영혼이 주의 궁전을 사모하여 쇠약하며’ ‘야, 이건 좀 오바 같아, 얼마나 주의 궁전을 사모하면 쇠약하며?’ 이건 못 먹어서 쇠약한 것이 아니고 이건 정말 그리워서 쇠약함이며,
그 다음에 뭐냐하면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어나이다’ 이것은 어디서 따 오는가하면 다윗이 지었던 건축 구조물, 성전을 보니까 참새가, 제비가 집을 짓고 있거든요. 그 처럼 내가 저 제비와 가까웠으면, 내가 저 참새가 되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이것은 내가 악하니까 라는 것을 진정으로 알 때... 내가 진정 악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 때, 그 때 참새의 장막에 참새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 말이죠. 가정법 과거, If I am a bird,
내가 참새라면, 내가 참새라면, 내가 제비라면... 그 다음에 뭐냐. 문지기 나와요. 나는 세상에서 천 날 보다 10절에 내가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 천 날보다 나으니라.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내가 하나님, 주의 궁정에 한 날 있는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나으니. 우리 교회에서 이를 실천하는 사람이 김대식 성도님 밖에 없습니다. 아침 9시에 오거든요. 주일 날 아침 9시에 온다고. 다른 사람은 11시 15분에 오는데. 어떤 교인들은 사도신경 안 하지 오래 되었습니다.
내가 안 올 수 있는데, 내가 인간성이 좋아서 와 좋다. 아니겠지요. 그건 아니겠지요. 이해한다고요. 11시 반에 와도 주님께서 발로 차서 왔다고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어떻게 오더라도. 교회 부수러 오더라도 주께서 보내주신 분. 거기에 대해서 목사가 주인도 아닌게 목사가 ... 할 것은 없고, 다만 어떤 마음으로 오는가하면, 시간이 없어서 늦게 오더라도 마음가짐은 나는 악한 이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보다는 교회에서 말씀 듣고 같이 교제하는 것이 세상에 천 날 백 날 노래방 노래 부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어떤 찬송을 부르면 노바디 보다는 찬송가 405장이 훨씬 좋아보이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것이 훨씬 좋아 보이는 거예요. 그걸 일일이 자기 마음을 조정해가지고 노바디 부르고 싶은데, 입이 근질근질 환장하면서도 찬송가 할 때는 따라 부르는데, 박수 치는데, 이렇게 치면 되나? 따라 해가며, 박수치면서... 하니 이게 무슨 신분적으로 어떻게 확정된 신분입니까? 나는 성도라는 점에서 확정짓지 말고, 나는 악인이라는 점에서 확정지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복음이예요.
‘나는 무슨 짓을 해도 목사가 되도 나는 악인 맞습니다.’라고 다윗처럼 엎드릴 수 있다면 그 사람 신분은 마귀가 와도 주께서 다 커버해 주실 수 있는 ... 하나님의... 나는 죄인 중에 뭐라했습니까? 사도 바울이 뭐라했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그 다음에 ... 가 있죠.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창세 전에 언약으로 된 것이다. 디모데전서 5장, 디모데 후서 1장.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인데, 폭행자이고, 예수님의 방해자인데, 창세 전 은혜로 인하여 내가 은혜 때문에 창세 전 은혜 때문에, 내가 이렇게 ... 괴수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구원 받았다. 이 언약을 나는 너에게 소개하고 싶다.
그러면 본인은 뭐 해야 합니까? 본인은 죄인 중에 괴수가 되어 있는 경우에만 복음이 복음답게 전달될 수 있죠. 그것도 안 믿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주님의 뜻이고. 그래서 시편과 역대상에 나오는 다윗의 성전을 비교해보면 뭐냐하면 역대상에서는 항상 기존의 성전을, 다윗이 지었던, 솔로몬이 지었던 성전을 강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딱 보게 되면, 다윗은 그것을 지으면서 뭘 알았는가하면, 아~ 이것은 아니잖아. 이것은 아니잖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에 보게 되면 뭐냐하면, 시온성 해 놓고는, 시온성 해서 자기 ..... 시온 성 해 놓고는 이미 올라갑니다. 하늘에 계신 시온 성. 시온 성이라고 해 놓고, 땅에 있는 시온 성 말고 따로 뭐가 있다? 하늘의 시온 성이 따로 있어서 거기는 주님이, 주께서 계시는 곳. 주님이, 주께서 활동하시는 곳. 이 다윗 말고, 다윗은 죄인이니까.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역대상, 역대하 보시고 시편을 보게 되면, 아~ 시편에서는 이미 세상에서 뭔가 겪은 것을 겪으면서도 이건 아니잖아. 이건 눈에 보이는 거잖아. 그러면서도 이걸 하는 과정에서 그게 눈에 보이... 영적인 것이 틈새가 피어 오르는 겁니다.
오늘 가시는 분이 많다고 해서 다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우리 성도님이 고생하셔서 동영상 뜨게 되니까, 또 녹취하는 사람은 죽으라고 녹취 할 수... 또 녹취하라고 강요하면 안 되니까. 심심하면 하시고, 할 수 있으니까. 내일 이 시간에는 솔로몬으로 넘어갑시다. 다윗은 나는 악한 이라고 하면서 일 끝났어요. 다 했어요. 그 앞에 찬양, 문지기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성실로써 붙여 줘 가지고 확정되어서 고정된 신분인 뭐 같이? 천사와 같이, 뭐 같이? 제비와 같이, 그리고 참새와 같이 누가 뭐래도 하나님의 언약에서 나온 그것은 우리가 행하지 않고 주신 그대로 주신 그것으로 .... 이미 확립된 겁니다. 더 이상 보태지도, 행할 필요도 없어요. 주신 그대로 다윗의 자손 주신 그대로, 예수님 십자가 주신 그대로 이미 하늘에 찬양할 수 있는 천사와 같은 신분으로 된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에 보면 우리는 천사도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고린도교회에다가 성도의 신분을 ... 시켜 놓은 것이죠. 그러면 내일은 솔로몬에서 어떤 일인가 그걸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