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2009년 1월 9일 강의 고후 11장 13절
안산 2009년 1월 9일 강의 고후 11장 13절
이름 : 우리교회(IP:124.59.84.82)
090109 의(義)의 일꾼의 탈을 쓴 악마의 일꾼
우리교회(IP:124.♡.84.82)
09-01-10 13:12
관리자(IP:220.♡.41.203)
10-10-27 15:45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9안산/안산090109고후11장13절.hwp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9안산/안산090109고후11장13절.pdf
관리자(IP:220.♡.41.203)
10-10-27 15:45
안산090109고후11장13절
안산090109고후11장13절,의義의 일꾼의 탈을 쓴 악마의 일꾼 / 이근호 목사
2010-10-25 21:51:51 녹취 : 박온정
고린도후서11:13~15절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고후11:13~15: 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
여기에 보면 사단이 나오죠. 악마. ‘악마가 있다.’ 이거는 어느 종교든 이야기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있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악마라 해서 악마가 있다. 이렇게 되는데, 여러분, 악마가 있는 거 하고 악마의 일꾼이 있는 거 하고 같아요? 다르겠어요? 악마가 있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너희들끼리 잘 놀아라, 하면 그만인데 악마의 일꾼이 사람이겠습니까? 사람 아니겠습니까?
사람이죠. 그래서 이게 이상하다 말이죠. 우리는 산부인과 산후조절해서 태어난 인간이라고해서 똑 같은 인간이라고 보잖아요. 아들 딸, 아들 딸 그렇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악마의 자식인 일꾼이 태어났네? 이러면 아, 돌아버릴 겁니다. 기분이 굉장히 나쁠 거예요. 왜냐면 악마의 일꾼이 되어버리면 사람으로서는 살 수 없고 악마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는, 그러한 인간이 되어버리죠?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예를 들어서 ‘저 사람 나쁘다, 그 교회 목사님 이단이야, 또는 그 교회 목사는 사람이 덜 되어먹었어! 인간성이 나빠!’ 이거는 용납이 되는데,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이 착할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고 그렇지요? 성질날 때도 있고 마음 착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나쁜 짓 했더라도 개과천선하면 다른 사람 되고, 바른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교도소 가기도 하고, 그런 게 인간이다 말이죠.
그런데, 악마의 종이라고 딱 찍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슨 짓을 해야 되요? 악마의 하수인이 돼야 된다 이 말이죠.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이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되요. 첫 째는 뭐냐면 악마의 일꾼이 사람이라는 거예요, 사람. 악마가 이렇게 괴기영화에 나오는 귀신 머리 풀고 다니는 그런 게 아니고, 진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밥 세끼 먹고 할 것 다하고 잠자고 똑 같은 사람이지만 사람으로 보지 말고 뭐로 봐라?
악마의 일꾼으로 볼 줄 알아야 된다 말이죠. ㅡ집사님 악마의 일꾼 볼 줄 알겠어요?ㅡ우린 그렇게 안 보잖아요. ‘실례지만 고향이 어디십니까?’ 이렇게 묻잖아요. 예? ‘자제분은 몇 분입니까?’ 이렇게 묻고, ‘혹시 한나라당 지지하십니까, 민주당 지지하십니까?’ 이런 건 물을 수 있어도 사람을 보고 악마의 일꾼이라고 못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데, 사도바울은 뭐랍니까? 악마의 일꾼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 안목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아, 이거 무서운 이야기죠? 아, 사람은 별 사람 다 있지 뭐, 사람은 다 똑같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데 사도바울은 어느 특정사람을 가지고 악마의 일꾼이라 한다 말이죠. 두 번째 어려운 점이 뭐냐 하면요, 악마의 일꾼이면 악마의 일꾼처럼 굴어야 되는데, 여기 본문에 보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악마의 일꾼이 뭐로 행세한다? ‘하하, 이것 참 광명한 천사로,’ 마귀가 왜이래요? 마귀면 마귀답게 마귀로 살아야지~(ㅋㅋ) 또 있죠? 그리스도의 사도!
늦게 오신 분이 있어서 다시 할게요. 고린도후서 11장13절,14.15절 말씀인데요, 고린도후서11장에서 세 가지를 하려고 합니다. 사도바울이 어떤 특정인을 뭐라고 불렀다? 악마의 일꾼으로 불렀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키가 몇cm이고 몸이 몇kg고 출신성분이 어딘가 그런 거 보지, 저 사람이 악마에 속했는지 성령에 속했는지 그런 식으로는 안 보잖아요.
근데 사도는 사람을 뭐로 본다? 악마의 일꾼 성령의 사람, 이렇게 구분해서 본다 말이죠. 그렇다면 그런 안목이 꼭 우리한테 있어야 된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악마의 일꾼이 귀신처럼 비올 때 있다가 낮에 없어지는 이런 영적인 것이 아니고 악마의 일꾼이 사람으로 나타나는, 이게 아주 중차대한 문제가 되요. 악마의 일꾼이 천사처럼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악마의 일꾼이 우리와 똑 같은 옆집 아저씨고 아주머니고 사람으로 나타난 거예요. 사람으로.
이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악마의 일꾼이 악마로 다니는 게 아니고 이게 사람으로 나타나요 사람으로. 그러면 누구를 주의해야 되요? 휘이익~ 날아다니는 악마를 주의할 게 아니라 악마는 배후에 숨어있고 정작 활동한 것은 악마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 이 땅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겁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믿을 수 없는 지경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솔직히 악마의 일꾼이 ‘나 악마다’ 이렇게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오늘 고린도후서11장13절에 보니까 악마의 일꾼이 뭐로 가장 하냐면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지요. 악마의 일꾼이 그리스도 사도로 위장한다 말입니다. 거기다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다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는, 악마도 그리스도가 좋긴 좋은 모양입니다. 마귀가. 마귀가 지가 마귀와 원수고 마귀와 싸운다는 것을, 그런 역할 하는 건 알면서도 그리스도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를 악마도 안다 이 말이지요.
그게 만약에 모를 것 같으면요, 만약에 그리스도를 시시하게 볼 것 같으면 ‘나 마귀다!’ 이렇게 나올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스도가 자기보다 더 위대하고 대단하신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는 ‘나 악마다’라고 속이는 것이 아니고 뭐로 속인다? 나도 그리스도 믿습니다. 나도 예수 믿습니다. 라고 속이면서 나타난다 이 말이죠. 첫 번째는 악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리스도의 사도와 광명한 천사로 위장해서 일한다, 이 말이죠.
이런 말 있죠? ‘비록 적이지만 존경한다,’ 이런 거 있잖아요. 비록 적이지만 존경한다, 그건 좋아요 좋은데, 지가 존경하는 사람 그대로 모방해서 지가 그 사람인양 행세하는 건 문제 있지요. 어떤 아저씨가, 박상민이란 가수 있습니까? 선글라스 쓰고 수염길고…그 가수를
예를 들어 ‘나는 박상민이 아닌데 내가 그 사람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 흉내 내고 그 사람 얼굴을 했습니다. 라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어요. 이메지케이션imagication 가수라 합니까? 나훈아 대신 너훈아 같은 거, 조용필 대신 조영필 되는, 이런 건 되는데 이 사람은 그게 아니고 박상민을 지가 박상민이래요, 벌금 물었잖아요. 그 사람. 벌금 한 오백만원 먹었을 거예요.
그거는 완전히 사람을 속이는 거잖아요. 박상민 아닌데 박상민이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보내신 종이 따로 있거든요. 그리스도께 속해 있는 사도와 종들이 따로 있어요.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도바울 같은 경우, 있는데 이게, 빨간매직으로 쓴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라 한다면,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고 어디 속했다? 악마에 속했는데 악마가 사나이답게 ‘나 악마다’ 이렇게 나오면 얼마나 좋아요. 이게 악마의 일꾼이 뭐로 위장합니까.
‘나 그리스도의 사도다!’ 이렇게 위장한 거예요. 여기서, -세 번째 이야기 안 했어요. 어렵기 때문에. 첫 번째 두 번째 이야기 하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마귀가 예수님의 사도와 예수님에 대해서 위대하게 보고 대단하게 보는데, 정작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우습게 같잖게 여기죠.
경제가 어려울 때 예수 생각나던가요? 저는 그 방면에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고철 1kg에 600원하던 것이 100원 한답니다. 휴지 1kg에 60원에 받아 65원에 넘긴다는데 5원 남는 장사를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경제가 어려우면 고물장사 못하죠. 그 이야기가 어떤 시사집지에 보면 고물상 하는 사람들이 이번 경제 어려우면서 얼마나 고물상이 안 되는가를 낱낱이 적어놓은 걸 봤어요. 누구누구 걱정 안 할 수가 없죠. 너무나 걱정이 돼서 가슴 아팠는데.
그럴 때 누가 그리스도라 하면 어쩌겠어요. 지금 경제가 어렵고 장사가 안 되는데, 그리스도라 하면 옷을 딱, 던지잖아요. 지금 그리스도가 문제가 아니라 경제가 어려운 게 더 문제다 말이죠! 마귀가요, 예수님 찾아올 때 세 가지를 얘기 하는데, 세 가지가 인간의 소망입니다. 첫 째는 돌이 떡 되게 하는 거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기 얻는 거고, 궁극적으로 모든 세상의 모든 것으로 세상을 정복한 것.
평소에 사람들이 얼마나 마귀한테 훈련 받았으면 인간들의 튀어나오는 말, 그걸 모두 종합해보면 그 세 가지 안에 다 들어있어요. 그 뿐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찾는 게 좋아서 찾는 게 아니고, 경제 어렵다고 찾고 인기 얻으려고 찾고 세상 것을 가지려고 찾아요. 이것저것 경제고 뭐도 다 빼고 진짜 그리스도만을 박살시키고 없애버리기 위해 진짜 머리 쓴 자가 누구냐 하면 <마귀>라니까요!
다시 할게요. 인간은 그리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왜 그러냐면 돈이 중요하고 떡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작 예수님 기도할 때 찾아오는 게 누굽니까. 사람이 아니죠. 진짜 그리스도가 위험한 인물이며, 그리스도가 있으면 자기 존재가 안 된다는 사실을 진짜 누구밖에 없어요? 마귀밖에 없어요. 그러자 마귀가 무엇을 위장합니까.
그리스도 사도로 위장해가지고, 그리스도를 그냥 대충 믿어라. 알고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그리스도를 믿되 가짜 그리스도를 유포하는 그러한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지고 악마의 일꾼은 설치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한 거 한국교회 목사와 비교해보세요. 제가 그런 강의한 적 있죠? 신학생이 신학교 때는 예수 믿고 졸업할 때는 교회 믿는다고. 신학교나 교수나 목사나 예수에 대해서 관심 있습니까? 장사 아닙니까. 다 장사입니다.
다시 얘기할게요. 그리스도를 안다는 사람이 누굴 우습게 본다? 자기가 믿는 예수님을 옛적부터 우습게 봤어요. 하나님이나 예수가 자기 밥벌이하는데 보탬이 되지만 정작, 예수, 하나님은 별로예요. 안 좋아한다니까! 예? 안 좋아해요. 이제 세 번째 이야기할 건데, 왜 이렇게 뜸을 들이냐면 이 첫 번째 두 번째를 분명히 아셔야 세 번째 어려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가 뭐냐 하며는, 참 어려운 건데요, 어째서 악마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느냐 하는 거예요. 이 문제는 이 본문 가지고는 잘 안 풀리고요, 욥기를 통해서 풀어봅시다. 욥기에 보면, 욥기의 주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사탄이고 사탄이 하나님이에요. 전복이라는 건 거꾸로 뒤집는 걸 전복이라 합니다. 욥의 세 친구하고 욥하고 등장하죠? 욥의 친구 세 명이 등장하는데, 욥의 친구들이 뭘 믿는 사람입니까. 욥기를 아무리 봐도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 외에 딴 건 안 믿죠. 욥의 친구들이. 그렇잖아요.
세상에, 이런 믿음 ‘왔다!’ 아닙니까, 왔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하나님 믿는 것이 욥에게 고난이 오기 전까지는 욥의 하나님이나 자기 하나님이 같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친구 아닙니까. friend! 친구 아닙니까. 그렇게 친하게 지냈고, 욥이 아프다는 소리 듣고 첨에 와서 말도 못했어요. 어려워서요. 양심, 인정, 친구를 위해서 울다니! 술집에도 그런 친구 없다. 정말 따뜻한 마음을 가진, 따뜻한 인간성을 가진 그런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개해보니까, 그 훌륭한 친구 어찌 됐습니까. 욥보고 뭐해요? 저주하지요. 욥 네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르다 정도가 아닙니다. 정 반대였어요. 정 반대. 욥의 주제는 뭐냐 하면 정 반대였어요. 정 반대. 또는 뒤집기, 또는 전복. 욥의 입장에 누가 나오냐면 사탄이 나옵니다. 악마가 나와요. 그러면 사탄은 누구한테 서 있냐면 하나님 앞에 서 있죠.
위층에는 하나님과 사탄이 만나고 아래층에는 욥과 욥의 친구가 만나죠. 사탄이 하나님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어요. 아래층도 별 문제없고 위층도 아무 문제없어요. 위층은 하나님인데 별 문제가 있겠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한 것을 다시 정리해보면, 지금 핵심이 뭐냐 하면 사람들이 ‘나는 악마다’ 하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게 아니고 사탄이 뭐로 위장한다? 그리스도로 위장하면서 그리도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리스도는 사탄의 적이니까. 세상에 자기 적이 얼마나 대단하다는 걸 알았으면 적으로 위장하겠어요. 사탄 입장에서.
그리스도를 욕망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로 위장한다니까요. 예수 욕을 한 게 아니고, 예수는 훌륭하고 예수는 우리의 구원자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자가 누구다? 바로 사탄의 그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이야기한 게 아니고 귀신한테 그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누구한테 한다? 사람을 통해서.
그렇다면 어째서 사탄이 그리스도를 싫어하면서도 그리스도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것을 뒤집는, 전복은 바로 하나님과 사탄이 있고 밑에는 욥과 욥의 세 친구가 있죠? 그렇게 뒤집는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 하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욥에게 뭘 주었죠? 뭘 줬어요? 축복을 줬습니다. 축복을. 그러니까 욥1장에 나오는, 욥이 부자고 자녀 열 명이 있고, 딸들이 예쁘다하는 이것은 결국은 욥의 노동의 결실이 아닙니다.
욥이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서 준 것도 아니고, 그냥 준 거예요. 그냥 줬다 이 말이지요. 그냥 주었는데, 사탄은 똑똑하고 사탄은 고발자죠? 사탄은 선악과를 다 알고 있잖아요. 사탄이 뭐라 합니가. 왜 그냥 주었느냐, 여기서 핵심입니다. ‘하나님! 왜 그냥 줍니까?!’ 하나님이 ‘그냥 줄만해서 주었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이 그냥 줄만해서 주었을 때 욥이 받은 태도가 뭡니까. 믿음이었다고 하잖아요.
욥이 축복을 받을 때 자기 행함에 의한 대가라고 보지 않고 뭘 본거냐면 하나님이 그냥 주었습니다, 하는 믿음. 그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복을 주었는데 사탄은 뭐에 시비 겁니까? 그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욥에게 너무 점수를 후하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거져 준다는 것을 믿은 인간은 없습니다. 다 지가 잘하고 훌륭했기 때문에 축복을 얻은 거지 그냥 주신 것을 하나님이 그냥 공짜로 준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라고 사탄이 시비 걸고 나오죠.
사탄이 그렇게 시비 걸고 나올 수 있는 자기 나름대로 그 정당성이 뭐냐 하면, 바로 욥의 친구들 보세요. 그 사람들은 복을 어찌 받습니까? 욥의 친구들 그 사람들은 복을 어떻게 받았어요? 그저 받았다고 봅니까, 자기들이 의롭기 때문에 받았다고 봅니까. 자기들이 의롭기 때문에 받은 거라고 보는 거죠.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 된 거예요. 욥이 바로 아브라함 시대였어요.
아브라함 하면 탁, 떠오른 게 뭐여요? 행함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천당 가는 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거저 주었습니다, 라고 믿어지는 거고. 바로 그 믿음 층에, 하나님과 욥 사이에 믿음 관계로서 복이 주어졌다는 여기에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는 여기에 누가 시비 거느냐 하면 사단이 시비 걸고 나옵니다. 사단이 뭐냐 하며는, 선악을 알지요. 그죠? 선악을 알지요. 선악으로 생명나무를 치는 게 된다 말이죠. 선악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이 선악과 따먹고 난 뒤에 생명나무를 보호했습니까? 보호 안 했습니까? 하나님은 인간 같은 거 안중에도 없어. 생명나무가 더 중요해요. 그렇지요? 에덴동산에서 누구 쫓아냈습니까. 사람을 쫓아낸 이유가 뭡니까. 선악과 따먹고 생명나무 훼손할까봐 쫓아냈잖아요. 그러면 사람이 중요한 거예요? 생명나무가 중요한 거예요? 생명나무가 더 중요한 거예요.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우리보다 더 중요하다고요. 예수님이! 우리는, 성도는 또 만들면 되니까. 왜!
태초에 말씀이 계시고 말씀이 우리를 만들어내니까. 그런데, 사단은 첨부터 멸망당해야 될 존재 아닙니까? 멸망당하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자기는 이미 멸하기로 작정돼 있어요. 이게 어디 나오냐면, 마태복음 8장에 나옵니다. 우리는 이미 멸망하게 되어 있는 걸, 멸망하게 되어 있는 게 요한계시록12장에 나오는데 멸망하게 되어 있는 인간이 누구를 포섭해서 인간을 타락시켰잖아요. 그러면 누구와 한통속입니까?
인간과 한통속입니다. 인간은 사탄의 수하에 부하예요. 부하니까 인간은 선악과 알았지요? 사탄은 선악과 알았지요? ‘인간아인간아 선악과 따먹어라,’ 네 눈이 밝아져서 신처럼 된다. 신처럼 된다는 게 뭐냐면, 사탄처럼 된다는 거예요. 사탄은 영의 세계를 알잖아요. 사탄은 인간에 비해서 신 아닙니까. 그러잖아요. 베드로가 예수님보고 잘한다 할 때, 예수님도 사탄을 대번에 알아요.
‘사탄이 베드로 너를 꼬시고 있다,’ 그걸 사단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로서 청구해서 그걸 거절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신앙생활 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지켜줄 때만 구원받아요. 근데 이걸 믿는 자가 신앙인이에요.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지켜줄 때만 하는 거예요.(아멘) 경제 어려워요? 인간의 힘으로 못 이깁니다. 예수 믿는 것도 경제 어려우면 다 때려치웁니다. 당연히 그래요. 안 그렇다면 그건 주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역시 돈 버는 것보다 주님이 최고야! 되는 것은 주님이 주신 은혜지 자기가 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선악과 한통속이 되어가지고, 선악과 따먹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선악과 따먹으면 따먹은 자기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누구를 공격하냐 하며는, 생명나무를 공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킨 겁니다. 추방시켜놓고 추방시킨 이유가 나와 있죠? 생명나무 가는 길이 에덴의 동쪽. -연속극 나오잖아요, 에덴의 동족 송승헌이 나온 거-
에덴의 동족은 천사, 화영검은 천사입니다. 천사를 통해서 어떻게 해요? 그걸 지키죠? 이제 인간이 생명나무 멀어진 이유를 알겠죠? 인간 속에 뭐가 있다? 어떻든 선악과를 아는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따먹어가지고 선악과 아는 악한 품성을 가지고 영원히 살고자하는 이 불문의 속성. 모든 불교 모든 기독교 모든 종교의 보편성입니다. 거의 기독교가 위험하죠. 기독교는 사탄의 종교가 됐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고 이슬람교도…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사도바울은 기독교로 보지 않고 적그리스도로 봤어요. 십자가 복음 빠진 것은. 이따 설명할 건데요, 십자가에서는 뭐냐 하며는,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사탄처럼 인식되고 정작 사탄은 누구처럼 되고? 메시야처럼, 하나님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명나무를 공격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겁니다.
마태복음 2장에 예수님 태어났을 때, 예수님도 태어났으니까 예수님도 인간이지요? 베들레헴에 예수님과 비슷한 시간과 날짜에 태어난 아기들 있었지요? 사람들 그대로 한번 보세요. 산후조리원에 아기예수님도 누워있을 때 사진 찍어 보세요. 누구나 사람 아닙니까. 누구나 사람이죠. 아기예수라 해가지고 어른 되고 없죠? 아기죠. 아긴데 사탄이 역사하니까 헤롯에게는 사탄이 역사하고 예수님께는 누가 역사해요? 천사가 역사해가지고 그 누운 아기들 가운데서 예수님은 빼돌리고 나머지 애들은 헤롯에 의해서 두 살 밑의 애들은 다 죽죠.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하느냐 하며는, 인간이 인간을 볼 때는 분간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분간 안 되니까 정치, 경제, 사회문제 기름 값, 이런 문제 신문 방송에 안 나옵니까? 영적인 문제 안 나오죠?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시간에 천사 이런 얘기 안 하잖아요. 그죠? 악마니 사탄이니 그런 얘기 않는다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사람을 보듯이 보는 게 아니고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람을 본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까 예수님 따로고, 헤롯왕이 예수님 죽일 때 헤롯이 정신병 걸려서 애들 죽이는 그런 예가 아니고 무엇을 노리기 위해서 죽였는데 그게 실패로 돌아갔습니까? 죽은 아이들에게 감정 있는 게 아니고 누구에게 감정 있다 말이고? 아기예수께 감정 있었잖아요. 그런데 왜 아기예수께 감정 있느냐 이 말입니다. 신기한 게… 사람이 왕쯤 됐으면 대통령 아닙니까? 대통령이면 청와대 앉아서 정치나 하지 왜 예수에 대해서 민감하냐 이 말입니다.
햐~ 신기하잖아요! 사울이 요새 같으면 대통령 아닙니까? 그런데 사울에게 악신이 임하니깐 누굴 죽여요? 많은 사람도 있어요. 바알300명 다윗에게 창검을 던진다 하니까요. 그런데 사울이 악신이 나가고 맨 정신이 돌아와 “다윗아! 너는 앞으로 이 나라 물려받아야 될 최고야!” 이런다고요. 이상하잖아요. 우리가 평소에 길거리에 사람들 대할 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안 보죠. 성경자체가.
이상한 시선을 가지고, 우리보기에 이상하지만 다 영적인 것이죠. 다시 얘기합니다. 욥과 욥 사이는 어떤 사이? 친구사이. 친구사이니까 ‘같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친구가 되지 다른 하나님 같으면 친구 안됐습니다. 그런데 1장에 있을 때 욥이 아프단 소리 듣고 친구들이 와가지고 대성통곡하면서 울어줬어요. 며칠 동안 말도 안 했습니다. 그 정도로 우정이 깊었고, 인간미가 있던 사람들입니다. -저와는 정 반대지요 -
2장부터 슬슬 보따리 푸니까 나중엔 욥을 뭘로 봤습니까. 저주받을 자식이라 합니다. 욥을. 그런데 정작 누가 저주받을 자식이라서 기도가 필요했던 겁니까. 욥이 아니고 욥의 친구들이 저주받을 자식이라서 욥의 기도가 필요했던 겁니다. 욥기 마지막에. 하나님이 ‘욥아!’ ‘예!’ ‘네 친구 위해서 기도해줘라,’ 그게 뭐에요? 기도 안 해주면 큰 일 나는 거예요. 욥은축복의 사람이니까. 이러한, 단지 차이난다, 틀리다의 정도가 아니라 어째서 이렇게 대변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바로, 제가 이야기했죠? 선악과 쪽에 누가 있다? 사탄! 사탄은 무엇이 옮고 무엇이 그른가, 선악과를 알기 때문에 무엇이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지 다 알아요. 지옥 불에 간다는 것을 자기도 알아요. 그래서 자기 운명은 바뀐다? 안 바뀐다? 안 바뀌는 걸 알아요. 왜냐면 하나님은 너무나 정의롭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께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일체 뭐가 없다? 용서가 없다.
그렇다면 마귀는, 내가 용서 못 받았으면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인간도 나처럼 용서받지 못할 자로 만들면 나름대로 승리죠. 그런데 그 계획에 차질이 났습니다. 왜! 무슨 차질? 분명히 용서받지 못할 자인데 하나님께서 특정 어떤 사람을 용서했으니까. 사탄의 입장에서는, 사탄의 옮고 그름을 따지는 입장에서는, 어떤 특정인에게는 용서하고, 복을 주는 -용서는 복이죠?- 복을 주는 근거가 뭐냐는 거지요. 근거가.
근거를 사탄이 알아요, 몰라요? 그 근거가 누굽니까. 예수그리스도란 말입니다. 그 근거가 예수그리스도라! 강의 첨부터 다시 합시다. 너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시답잖게’ 여기는 자가 오늘날 누굽니까. 소위 예수 믿는 목사들입니다. 그 사람들 장사하기 바빠 예수님을 시답잖게 여깁니다. 목사 사모 말고요, 목사들. 목사 사모야 남편에게 돈 벌어오라면 그만이지만 예수 믿으라는, 그거 관여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믿나?’ 그런 거 확인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그걸 볼 때 사탄의 일꾼이 별난데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교회 자체가,-시간이 좀 남아가지고 여기 둘러봤어요,- 쭈욱 둘러보니까 전부 다 앞에 ‘복’이 달려있어요. 복. 교회이름도 복이 있지만, 복된 교회, 복 받으려는 교회 있지만 출입구에 ‘축복 받습니다,’ 아예, 구호예요 구호. 사탄이 선악과를 알고 거기에 인간을 결속시켜가지고 같이 합세해서 하나님을 공격하지 않는가, 여러분 사탄은 하나님을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누굴 공격합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구원자를 공격하지요. 사실은 공격하지는 못하죠. 하나님도 공격 못하고 예수님도 공격 못하니까 예수님에 의해서 믿는 자를 공격하지요. 마태복음 24장에 나오죠? 택한 자라도 사탄이 미혹하는데 그 방법이 뭐냐, 기적과, 아까 세 가지 얘기 했죠? 돌이 떡 되는 것과 인기 얻는 것과 세상 권력,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안달 나서 부르짖고 난리굿을 하고 있는 그런 자들.
그런 자들은 이미 사탄에 빠졌다, 사탄의 말은 이렇습니다. 사탄의 자식이라고 대표적인 것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다 이겁니다. 어떻게 되냐면 우리가 이왕에 선과 악에 대해서 알고 있잖아요,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줬다는 말은 네가 알고 있는 선과 악으로서 뭘 지키면? 말씀을 지키면 복이 온다. 그 방식이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그 방식이.
물의 없는… 아주 상식적이고 납득이 가고 자연스럽게 마음 편안하게 가지면 착하면 복 받고 나쁜 일 하면 벌 받는다는, 이게 우리 본성으로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건데, 십자가! 이건 죽는다. 과격하고 난폭하고 폭력적인 그러한 내용을 하나님이 주실 리가 없다는 거예요. natural…자연스럽게 부드럽게 신앙생활도 아주 부드럽게. 십자가는 피 자체가 얼마나 엽기적이잖아요.
피를 흘린다든지, 창에 찔리고 못 자국, 그 자체가 폭력적이잖아요. 폭력적. ‘19금’ 난폭하고 고린도후서11장23절 한번 봅시다. 여기 23절에 보면『…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
맨 맞는 얘기예요. 재수 대게 없다! ‘세 번 파산하고’ 배 탈 때 기도 않습니까? 여기 보면 ‘굶기도 하고’ 했어요. ‘여러 번 주리고’ 주기도문에 뭐라 했어요? 일용할 양식을 달라했는데 기도 응답이 없는 모양이라,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이 이야기를 교회 현관에다 붙이겠습니까? 어느 교회가 붙이겠습니까, 이걸.
‘복 받으세요,’ 봤다니까요. 사도바울이 지금 기대하는 게 뭡니까. ‘생명나무를 먹어야 산다,’ 이거지요? 그런데 일반 교회 목적이 뭡니까. ‘그냥 이대로 살자,’ 아닙니까. 이 한 평생 잘먹고 잘 살자, 아닙니까. 다르잖아요. 생명나무를 먹는 사람은 무엇을 알게 되냐 하며는, 하나님이, 메시야 구원자가 일반 죄 짓고 범죄한 인간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나 하나님상하고는 어떻다? 정 반대의 모습이다.
욥과 욥의 친구들 사이에서 드러난다 이 말입니다. 정 반대라 정 반대. 정 반대를 이야기하려 하면 그 사람들 의사를 존중하면 안 되죠. ‘아이고~ 잘하십니다, 아이고~ 캡!’ 이러면 안 되죠. ‘무엇 때문에 기도했습니까,’ ‘기도 제목이 뭡니까,’ ‘교회 또 오셨습니까, 감사합니다,’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심문하듯이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교회 왜 다니시는데요,’ ‘아이고~ 잘 오셨습니다, 내일 또 오시지요,’
교회 목적은 교회 운영과 교회 생존에 있고, 사도바울의 목적은 뭐냐 하며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죄인이기에 전복된, 뒤집어진 메시야가 오게 되는가, 그게 관심사다. 관심사가 달라요. 사도바울은 죽는 게 소원입니다. -저도 지금 죽음에 가까이 가 있습니다.- 이건 내 하나의 사견이고, 그냥 뭐,‘ 기독교에서 쫓겨났다고 울분해서 분개하는 것 같으면 들으면 그만이지만…
성경에서 사도바울이 어떤 영적인 게 아니라 인간을 보고 뭐라 합니까? ‘사탄의 일꾼이 고린도교회를 장악했다’ 할 때는 우리가 이걸 외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이지요. 장사 되고 문 닫고 이 문제가 아니고 교회 관해서의 문제가 아니고, 이게 진리입니다! 진리!
어떤 목사는 그럴 거예요. '목사님 그렇게 고함질러 봤자 관심도 없습니다!‘ 관심도 없고 교회 부흥에 관심 있지 복음에 관심 없습니다, 한다고요. 복음에 관심 없으면 무엇을 유포하게 되냐 하며는, 유포하면 할수록 무슨 세력이 더 많아진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대세로 늘어나겠죠. 적어도 한국교회 첨에요, 복음 이런 거 말하기 전에, 그래도 목사라 하면 고생하는 걸로, 천막치고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걸 당연시 했었어요.
목사라 하면 ‘아내여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순교한다,’ 이런 것이 초창기에 있었다고요, 초창기에는. 지금처럼 이러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대부분이 다 삯군이 되었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 몰리니까 그들이, 적그리스도 사탄의 일꾼들이 대량생산이 되어버렸다 말이죠. 지금 신학교에서 복음이야기 할 교수도 없고 가끔 한두 사람 신학생들 관심 있는 사람 있지, 다른 사람은 복음에 관심 없어요.
노야의 방주에…방주 만드는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방주 만들어서 수출할 것도 아니고, 팔 재품이 아니잖아요. 비매품 아닙니까. 방주 만들면 유람선도 아니고, 타이타닉 만들어서 (뱃머리에서) 폼 잡을 것도 아니잖아요. 방주 왜 만드는데! 한번 물어봐요, 히브리서 11장에서 물어봐요. ‘노아 할배! 그거 왜 만들었습니까!’
노아에게는 방주 만드는 게 믿음의 표시였어요. ‘믿음으로 누구 누구는 할 때’ 요새 말로는 ‘믿음으로 미친 짓 하고’ 욥은 믿음으로 고난 받고, 이게 다르다는 정도가 아니라 이건 ‘거꾸로’예요 거꾸로. 거꾸로라니까요, 사탄이 메시야고 메시야가 사탄이에요. 사람들 교회 생활하면 예수님은 다 사탄 됩니다. 진짜 예수님은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곳에 있어요.(ㅜㅜ,,) ‘차차 예수님 알아 갈게요,’ 알아갈게요 할 때 지식 모자라는 게 아니고 거꾸로라니까요! 지식 모자란 게 아니고!
선악과가 뭐를 공격하느냐 하며는, 선악과가 가만있는 것이 아니고 선악과가 악마와 한 편 되어가지고 예수그리스도를 공격합니다. 공격했다는 그 마지막 증거가 뭐에요. 십자가예요 십자가. 마지막에 예수님 제자들 속에 누가 침투되어 있어요? 떡을 떼는데 침투한 거 봤어요. 떡을 떼면서 예수님이 ‘가룟유다야! 너 할 일 해야지~’ 그러니까 가룟유다가 '예?‘ 제자들은 가룟 유다가 돈, 회계 맡은 사람이라서 식사비 계산 하라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사도요한과 예수님이 알고 뭡니까, 사탄이 네 할 일 해야 된다 이 말이었죠. 하나님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메시야가 어떤 메시야여야 하냐면,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야가 아니고 사람들이 젤 싫어하고 사람들이 마귀라고 여기는 저주 받은 자가 메시야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 잘 믿은 사람은 뭐 받았다? ‘복’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정작 나타난 자는 무슨 자? 복 받은 자가 아니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날 버리시나이까!’
저주, 버림받은 자가 모퉁이에,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돌이 성전의 모퉁이가 된다,입니다. 구원자가 돼버렸어요. 그 기준으로 해서 고린도후서11장4절에 보면, 다 같이 읽어봅시다. 『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이것을 전파할 때 고린도교회가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습니다.
우린 이해합니다. 왜! 그들의 마음속에 뭐가 있다? 은근히 그런 예수, 그런 복음, 그런 영을 얼마나 간절하게 기대했겠습니까. 복음 전하는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복음 너무 사랑합니다,’ 말로는 그렇게 하지만 복음 사랑하니깐 교회 키워주세요. 이게 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복음 전하니까 사업 잘 되게 해달라고.
자, 정리해봅시다. 세 번째: 사탄이 생각하기를, 그리스도가 사람의 행함이 아니고 믿음도 선물로 주고, 구원도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누가 안다? 사탄이 알고 사탄은 뭐하는 사람이다? 사탄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에요. ‘너 같이 죄 지어놓고 구원? 에구~ 염치가 있어라 그래가지고 어떻게 구원받냐?’ 이런 식으로 자신의 선악과를 가지고 고소하면서 사탄은 시시껄렁한 건 고소도 않습니다. 누굴 고소하는지 알아요? 이미 구원받기로 작정된 사람을 우는 사자와 같이 찾아다니면서 공격을 해 댑니다.
욥이 고난을 받은 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뭐냐면, 하나님께 받은 고난이 있고 또 하나는 뭐죠? 친구들한테 받아요. 친구들. 친구들한테 받은 고난과 하나님한테 받은 고난이 하나가 되었지요? 욥의 고난과 신약시대에는 누구란 말입니까? 예수님이죠! 예수님이죠!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는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런 일 하게 하는 것은 저주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축복받으면 축복 받은 근거가 있어야 되듯이 저주받은 것도 저주받는 근거가 있어야 돼요. 여호수아 한번 봅시다. 『여호수아11:20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을 진멸하여 바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을 멸하려 하심이었더라 』
누구의 일꾼들이에요? 보이지 않은 사탄의 일꾼들이죠? 욥에게 누가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이 만들었지요? 인간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살 때뿐이고 죽고 난 다음에는 천국백성 지옥백성 둘로 나누어집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는 저주를 무조건 받아야 되고 한쪽은 무조건 복을 받아야 되요. 그러면 나는 복 받았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저주받는 자가 어떻게 저주받는가를 알게 되면, 내 복 받은 것도 어떻게 복 받은 것인가를 알게 될 것 아닙니까. 저쪽에는 은혜를 받지 못해서 저주 받았지만 우리는 내가 잘나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무엇을 받아서? 긍휼… 불쌍히 여김을 받은 거예요.
마땅히 저들과 같이 저주 받아야 마땅한데, 우리에게 은혜가 와가지고, 이게 바로 축복이거든요. 욥의… 욥이 받은 축복, 욥은 그것을 믿었어요. 그래서 욥이 자식죽고 재산 날라갈 때 뭐라 했습니까. 주신자도 하나님이요 거둔 자도 하나님이다. 평소에 나 같은 건 죽어도 마땅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이죠. 사탄은 욥이 절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해서 자식과 재산을 빼앗아 갔는데 뺏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욥은 뭐라 했습니까. 주신 자도 하나님이요 거둔 자도 하나님이다.…
그럼 욥은 뭘 알았어요? 비록 내게 고난이 온다할지라도 하나님은, 모든 영생은, 우리가 영생나무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영생나무를 그냥 우리에게 주시면 그냥 받는 것이다. 라는 것을 믿었던 사람이 바로 욥이었습니다. 나중에 욥이 재산 다시 그대로 회복되고 예쁜 딸도 새로 생겼고 그래서 복 받았다 했다 말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 욥기를 볼 때 중간은 다 빼먹어버리고 뒤에 있는 것에 세상적인 부귀영화를 또 노리는 거예요. 신약시대에 보면 뭐냐 하면, 골로새서 3장에 보면 ‘우리는 이미 죽은 자요, 욥은 기껏 재산과 딸자식들 받았지만 -자식들 많아봐야 골치 아파요 - 우리가 받은 것은 뭐냐, 우리의 생명은, 이미 안 죽어도 우리 생명이 급해가지고 앞장서서 정목사님 생명은 벌써 하늘나라 가 있어요. 생명이 얼마나 성질 급한지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먼저 생명이 가 있는 거예요. 우리 몸은 뒤따라서 가는 겁니다.
세상에, 자식, 재산 없어도 여유만만 한 거예요. 이게 바로 신약시대의, 신약시대 성도가, 구약보다 신약의, 작은 자가 큰 자보다 더 크다,는 말이 그 말이에요. 더 많이 알고 깊은 내막을 안다 이 말이죠.『무덤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5:28』이 말도 이미 인간이라 하는 것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너 저주 받았어? 복 받았어?’ 그 둘 중에 하나입니다.
어떤 사람이 저주받은 것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시답잖게 여기는 사람. 딴 걸 더 우선시하고 예수님의 관심은 끝! 예수님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 그런 자들이 바로 사탄의 일꾼이고 저주받은 자입니다. 고린도교회가 그런 사람들 꼬임에 빠져 있을 때 사도가 편지를 보냈어요. ‘나, 매 맞았다. 너희들 잘 나갈 때 나, 매 맞았다.’
이 매 맞는 종이 그들 생각에는 거꾸로 된 뭡니까? <그리스도의 종!> 그리스도의 종은 대우받는다? 아니잖아요. 하지만 매 맞는 종, 굶는 종, 그 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은 누구만 사랑했습니까.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예수님만 사랑했던 그것이 바로 참된 성령이요 참된 예수 믿는 주의 종이다 이 말입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어낸 것이 아니고 진실로 성경 그대로, 사도바울이 했던 그 모습이 십자가의 모습이었습니다. 십자가가 그냥 지나간 한때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도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고, 드러내는 축복의 기준이 저주의 기준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저희들 놀랍습니다. 저희들이 무엇이 저주인지 알았사오니, 그냥 주시는 이 영생을 귀하게, 돈보다 더 귀하게, 내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성령받은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이전글
다음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