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5: 8- 9 (포도송이의 즙)
사 65: 8- 9 (포도송이의 즙)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이사야 65장 8- 9절
제목 : 포도송이의 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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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9-01-07 20:58
포도송이의 즙
2009년 1월 7일 본문 말씀: 이사야 65:8-9
(사 65:8, 개역)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포도송이에는 즙이 있으므로 혹이 말하기를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 복이 있느니라 하나니 나도 내 종들을 위하여 그같이 행하여 다 멸하지 아니하고』
(사 65:9, 개역) 『내가 야곱 중에서 씨를 내며 유다 중에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 거할 것이라』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자신이 고대하는 열매를 자신이 만들어내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평생을 자기에게 투자하고 봉사하고 섬기게 됩니다. 오로지 원하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서입니다. 그렇다면 그 열매의 끝은 무엇입니까? 어떤 농부가 방앗간을 운영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수 십년 농사 끝에 드디어 방앗간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리 시대가 달라져서 방앗간이 하루 둘 씩 문닫는 추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록 그 농부는 평생의 소원을 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무성 뿐이었습니다. 이 농부가 ‘방앗간의 허무’를 미리 알았더라면 과연 그런 허무성을 위해 자신에 피와 땀을 몽땅 투자했겠습니까..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끝도 모르는채 그저 자기로부터 개시하고 출발되는 것은 무조건 좋은 열매가 간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결정짓습니다. 마태복음 7:17-20에 보면, “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나쁜 열매를 보고 나쁜 나무임을 판정내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나쁜 열매입니까? 이 마태복음 7장의 말씀 바로 직전의 말씀을 보면, ‘거짓 선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짓 선지자나 내놓은 열매가 아무리 신성하고 거룩해보여도 그런 것들은 다 나쁜 나무에서 나온 나쁜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말씀에 의하면 천국 창고에 들어가지 못하고 심판의 타작 마당에서 불에 태워지는 가라지 같은 열매에 해당되는 열매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쁜 열매의 성격이 어떤 것일까요? 그 전의 말씀을 보면, ‘좁은 길’, ‘넓은 길’ 이야기를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즉 ‘넓은 길’은 멸망의 길인데 문제는 이리로 가고 있는 사람이 숫자상 많다는 겁니다.
반면에 ‘좁은 길’은 생명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찾는 사람이 희박하다는 겁니다. 왜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좋은 열매이기를 내심 원하면서도 막상 실제에 있어서도 거짓 선지자들이 제공하는 나쁜 열매를 선호 하는 겁니까? 그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벌리는 것들이 모두 ‘사람들이 은근히 원하고 있는 기적’들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주여 하면서 귀신을 쫗아내고 병을 고친다고 해서 그들이 거짓 선지자들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참된 선지자들이 제공하는 좋은 열매를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1:10에 나오는 말씀처럼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 종이 아니라”는 단언과 같은 취지입니다.
왜 좋은 열매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겁니까? 좋은 열매란 영광이 부활이 가능한 열매이어야 하며 그 부활의 열매는 십자가의 의미를 품게 됩니다. 십자가의 의미란 곧 우리 인간이 날 때부터 죄가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즉 인간이 본성적으로 살아보겠다고 애쓰고 노력하는 모든 것이 다 죄가 되는 것이고 그 끝은 저주에 합류되는 일입니다. 즉 인간들이 기대 열매란 모두 나쁜 열매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알곡 같은 좋은 열매가 되는 겁니까? 이 점도 부할을 통해서 알려질 수 있습니다. 즉 이미 좋은 열매를 하나님쪽에서 장만하셔서 거꾸로 자기 백성에 나누어주는 식이 되어버리면 그것이 바로 좋은 열매가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좋은 열매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나의 열매’라고 여긴 모든 것이 실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열매’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전에는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그 미흡함에서 새로운 포부를 작성하고 그 포부를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나름대로 좋은 열매를 얻고자 했던 그런 시절이 있다면, 이제 십자가 복음을 알고부터는 나의 태어남 자체가 하나님의 좋은 열매의 시작으로 분에 들어오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열매를 가지고 ‘기업’이라고 했습니다. 즉 ‘상속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정하시는 기업, 상속자은 예수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농작물이나 가축이나 심지어 사람까지 ‘맏물’, ‘맏열매’를 하나님의 것으로 반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맏물을 받습니다.
사람의 경우 같으면 ‘맏아들’이 되는 겁니다. 로마서 8:29-30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맏물 되심은 그 분이 직접 영광스럽게 나타나 보임으로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이라도 자신의 출생 이전부터의 감추어진 비밀인 하나님의 예정으로 인하여 자신의 출생과 미래까지 보장한다는 사실을 알고 감격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무리가 있다면 곧 그 배후에는 예수님이 맏아들임을 증명하는 현상이 된다는 겁니다.
즉 사람이란 자신의 죽음의 자리부터 시작해서 다시 자신의 출생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자기 죽음의 자리에 서 있지 아니하면 진정한 현실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지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신경을 쓰며 살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죽고 나면 그 많은 타인들의 눈초리는 주변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죽은 당사자만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로소 제대로 된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동안은 헛 멋에 들린 겁니다. 남이 원하는 인생에 맞춰살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유일한 현실을 놓치고 사는 셈 됩니다. 즉 현실 속에 있으면서 비현실적으로 현실을 해석하면서 살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 복음을 알고 부터는 그 십자가에서 자신이 죽은 자인 것을 눈치 채고 난뒤에는 자신의 모든 것이 결코 자신이 투자한 나의 열매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그 좋은 나무는 이미 확정지어져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 뿐입니다. 그 포도나무의 열매가 되어야 좋은 나무입니다. 천국이 알곡이요 부활의 첫 열매에 참여되는 좋은 열매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태어남부터 하나님의 좋은 열매가 아닌 적이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