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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두렵고 떨리는 손으로자유게시판[신학]

두렵고 떨리는 손으로

이름 : 조 규 현(IP:117.55.150.124)

초등학교 1학년이 간신히 한 숙제를 담임 선생님 앞에 제출할 때 두렵고 떨리는 그 심경으로 소위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합니다.

'무식한 것이 용감하다'는 속담과 같이 만학에 신학을 하여 박사 학위 논문을 쓰겠다고 겁 없이 덤벼든 저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궂이 변명하자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빌3:8)"는 성경 구절을 너무나 사랑하여,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까지 말씀 연구에 매진하리라 결심한 죄 밖에 없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부터 루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도 '루터의 교육 사상'에 대하여 썼습니다. 저 나이도 있고 하여 한 사람의 신학 사상에만 몰두하는 것이 좋을 듯 하여 루터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걸음마 초보 단계의 수준에 있습니다.

'우리교회 홈페이지' '가족 나눔터' 방의 '청년회' 집에 저의 논문 내용을 올려 두었습니다. 지도편달을 부탁드림니다. 논문이라는 것이 한 분야의 내용을 더 깊게 넓게 읽고 연구하여 글로 요약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잘못 정리된 것이 많을 것입니다. 몽둥이로 치든지 회초리로 때리시면 그 매의 고통으로 새롭게 자라가겠습니다.

2009년 1월 2일

대구우리교회

조규현 장로 드림

이미아(IP:119.♡.2.211)

09-01-02 09:09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빌3:8)"는 성경 구절을 너무나 사랑하여,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까지 말씀 연구에 매진하리라 결심한 죄 밖에 없습니다.
......................................................장로님!!!열정에 대한 원동력은 바로 이 고백이 아닐까 생각 되어지니 마음이 찡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근호(IP:117.♡.140.193)

09-01-02 11:59

긴긴 시간에 걸쳐서 루터의 십자가 신학의 핵심을 증거하는데 애쓰시고 수고하신 장로님의 노고에 경이를 표합니다. 교직을 조기에 퇴직하시면서까지 그토록 정립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명예로운 학위가 아니라 십자가가 무엇이며 복음이 무엇인가에 이해 확립에 두지 아니했더라면 감히 이런 논문이 나올 수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촘촘하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몇 가지 저의 평을 남기고자 합니다.
1. 사람의 이성이 십자가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요 도리어 십자가를 반대하는 악마적 요소가 분출된다고 한다면, 과연 십자가가 단순히 인간의 이성만이 공격하는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제가 이 말씀 드리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이성부터 그 근원적인 것, 즉 이성을 산출하고 생산하는 또 다른 요소가 없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반대하는 이성을 도출하는 인간의 다른 부분은 과연 무엇이냐 하는 점이 빠져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욕망이며 이 욕망에서 감정이 나오고 그 감정을 추수리는데서 이성이 나온다고 봅니다. 즉 인간은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먼저 행동에 옮겨놓고서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설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모든 행위를 결정짓는 것에 대해서 인간의 이성에게만 그 책임을 다 물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 관권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행위가 나오게 된 그 죄와(롬 7장) 이성과의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미흡합니다.
2. 장로님께서는 십자가 신학과 영광의 신학을 대비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광의 신학을 십자가 신학과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신학의 결과로서 연결시켜 놓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영광이 있기에 부활의 영광을 언급하면 당연히 십자가 신학을 긍정하고 인정한 것이 되기에 결코 십자가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우기겠끔 합니다. 장로님, 혹은 루터의 주장대로 한다면 십자가 신학/영광의 신학이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신학으로 들어가서 그 헛점과 허구성을 깨부수고 십자가 신학 쪽으로 논리가 튀어나오는 것이 됩니다. 즉 대비가 아니라 영광의 신학으로 개시점으로 해서 변증법적으로 십자가 신학으로 나오는 개시점으로 봐야 하는 겁니다. 루터가 비난하고 싶어하는 영광의 신학과 내용상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순서상 역순되는 것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영광의 신학을 우상숭배로 버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신학을 말하기 위해 일종의 배테리처럼 늘 차고 다녀야 하는 신학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성경에서 보는 십자가 신학은 영광의 신학과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 '주권 신학'과 대비됩니다. 즉 '십자가 신학/주권 신학'이 되어야 옳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주권신학이야 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궁극적 신학과 철학이 최종 결론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권신학은 바로 십자가 사건을 유발하게 했던 유대교의 신학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예정론과 선택론은 따라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십자가 사건은 주권신학을 주창한 자들에 확고한 신관념에 의해 피해를 보는 식으로 발생된 것입니다. 루터가 이 칼빈의 주권신학 때문에 "나는 너를 악마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요? 아담에 속한 모든 육적 사람들은 주권신학에서 마지막 안식터를 얻고자 하지 결코 루터가 주장하는 '쉬지 않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십자가 신학' 속에서 안식터을 얻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십자가가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긴장감을 조성한다'는 인식은 칼빈주의을 신봉하는 자들로 하여금 미완료 성화론에다 루터마저 같은 편으로 오인하게 만든 이유가 된 것입니다. 참된 십자가 능력이 임하게 되면 예리한 긴장감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알게 된 자체 만으로 그 어떤 사태가 일어나도 즐거움과 감사가 삭제당하는 일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십자가 복음을 말하는 요원으로 차출되었다니! 과연 이런 복된 신분이 있을까!"라는 감격이 성령을 통해서 제공됩니다. 이처럼 십자가 복음은 주권사상 안에서 최종 안식을 누리려는 종교적이고 적-십자가적인 발상을 추방시켜 버리게 됩니다. 루터 사상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루터 사상이 일관되게 하려면 바로 십자가 신학/주권 신학과 대비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3.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서 인간의 내부적 심리로서 변증법적인 논리를 따라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라고 보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사도 바울 신학에 있어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는 반드시 인간의 이성적 판단은 빠지고 성령, 곧 십자가의 영의 작용이 개입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바로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 대한 구원론 정립에서도 유력한 논리가 됩니다. 행함으로 율법이나 복음을 어떻게 조화롭게 짜집기 할 것이냐가 관권이 아니라 연결될 수 없는 관계를 성령께서 어떻게 가능케 하느냐가 주안점으로 보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율법(말씀)을 가지고 새삼 성도나 인간을 죄로 죽게 하시는 것이 분이 아니라 이미 죽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 율법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으로 의롭게 되느냐를 말해주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이렇게 설명해주어야 율법이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으로 남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한 것이 어떻게 인간에게 있어 죄를 발생시키느냐가 밝혀질 것입니다. 즉 성령은 인간이 율법을 준수하는데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성도에게 있어 '하나님의 의'가 되느냐가 알리는데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렇게 논리가 전개되면 율법이 과연 필요한가 아니 필요한가의 논쟁이 다 부질없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그리고 하나님께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은 인간이니까...

결론 : 루터는 그 시대의 사람입니다. 그 시대의 인간들은 그 시대의 문화로 들러싸여서 그 문화로 자아를 구성하고 그 구성된 자아로부터 영원한 내세와 불멸을 꿈꾸면서 성경을 보고 교회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루터는 그 껍데기를 치고 또 쳤습니다. 십자가라는 능력을 가리고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십자가는 과연 우상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근거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장로님 논문 끝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 심장한 루터의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 피하라" 즉 루터는 십자가 신비를 인간의 말이나 행위로 온전하게 전하지 못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12:4에서 "말 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라고 고백한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있게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내가 전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렇다면 저주받을 만한 복음 속에는 십자가 운운도 포함될 수 있음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즉 과연 피가 최종적이냐 아니면 피 말고 더 신경쓸게 있느냐를 따져 봐야 합니다. 과연 피의 능력이 현재 자기 머리 위에 퍼붓는 자에게 피 말고 딴 것을 더 생각할 수 있을까 라고 말입니다. 피가 솟아진 사람이 죽음 안에서 비로소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장로님의 여생이 피 안에서 죽어지내는 즐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구득영(IP:203.♡.97.234)

09-01-03 23:10

잘 읽어보겠습니다. 그런데 '루터의 칭의론'이 글이 좀 잘렸네요. 이왕이면 잘림이 없는 논문으로, ㅋㅋ
저도 '이번 수련회때 뵙겠습니다' 라고 할 날이 곧 오겠지요. 주안에서 평안하세요.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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