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7-로마서3(강의정리)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7-로마서3(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43)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37 - 로마서3
05,05,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
우리가 '믿는다' 라고 했을 때 그래도 뭔가를 보고 믿어야 하는데,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믿느냐는 것이다. 산 위에 올라가서 하늘을 보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소리치면 그냥 메아리가 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오는데 말이다. 그런 것은 허구이고 공상에 불과하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다' 라고 할 때는 그 당시 하나님께서 벌려놓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아무리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해도, 그것은 결국 자기가 신의 존재를 따져보니 신이 있는 것 같다고 하는 하나의 종교에 불과하고, 인간의 상상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포이에르바하 - 신은, 인간의 자기 투시 !!
포이에르바하에 의하면 그것은 '자기 투시' 인데, 혹은 '투사'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자기 자신이 기대하는 바를 상상력을 동원해서 어떤 대상을 만드는데, 그 대상을 곧 '신' 이라고 간주해서, 그것을 자기가 다시 흡수해서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신앙이 아닌 신념으로 !!
그러므로 이런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열망과 열정, 오기, 혹은 기대하고 싶은 비전과 같은 것을 신의 존재와 연결시켜서 "저는 믿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믿음의 내용은 본인이 지어낸 것인데, 그렇게 자기가 지어낸 것을 두고서 '신념'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념이 투철하게 되면 사람이 자기 목숨도 바치는데, 중세 십자군 운동도 이런 차원이고, 안중근 의사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신념은 사상에 관련이 있나요?
그것은 그냥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경험인데, 통밥(?)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즉 자기가 자기에게 최면을 거는 것인데, "된다, 된다, 하면 된다" 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어.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것이 TV 드라마의 주류를 이루는데, 그렇게 오기와 신념을 부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앙과 신념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저는 믿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 믿음을 도대체 누가 만들어내었느냐는 것이다. 자기가 예상한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신념이고, 그런데 자기가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것을 믿는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이라는 말이다.
◈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이 무엇인가?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이 무엇인가? 전혀 자기가 상상하지도 못한, 즉 엉뚱하게도 이미 죽은 태를 가지고 있는 자기 아내에게서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요청한 것이 아닌데, 오히려 아브라함은 그것을 사실상 부담스러워(?) 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모습인데, 즉 신앙인이라면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왠지 싫고 부담스러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가 원했던 것이라고 하면 참으로 흡족해하고 좋아하겠지만, 그러나 전혀 자기가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않은 것이기에, 그런 것은 아무리 공짜로 받아도 싫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왠지 부담스러워 !!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그런 경험을 종종 하게 되는데,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중퇴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대에 합격했다고 집안에서 잔치도 벌이고 했는데, 그런데 정작 본인은 다니다가 도저히 아니라고 판단을 해서 그만두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적이 나빠서 잘리는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말이다.
결혼을 할 때도 보면, 연애를 하는 상대와 결혼을 하는 상대는 대부분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름대로 그런 판단을 내리기 때문인데, 즉 연애는 젊은 시절에 연습 삼아서 한두 번 해보는 것이고, 정작 결혼을 하는 상대는 따로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연애를 한 상대와 결혼을 하게 되면 축하를 해줄 일이지만 말이다.
◈ 아브라함 시대의 신앙은?
아브라함이 결코 자식이 없어서 환장한 사람이 아닌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졸지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그 자식은 아브라함이 원한 자식이 전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해서 주시는 자식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일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이미 죽어버린 태에서 이삭이 태어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일이고, 그것이 또한 아브라함 시대의 신앙이라는 말이다.
◈ 신앙의 내용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기에 !!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앙의 내용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데, 그래서 누군가가 "저는 믿습니다" 라고 했을 때, 도대체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 물어봐서, "예, 저는 돈을 벌 줄로 믿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미 자기 마음속에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기대감과 같은 것을 구체화시키려는 오기이고,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주여, 주자창이 저기 있는데요 ??
예를 들어서, 이렇게 교회당이 있는데 그 공간이 좀 좁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앞에 주차장에 있으면 무슨 마음이 들겠는가? 그 주차장을 구입해서 교회당을 넓히려고 하는데, 그런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고는 목사가 새벽기도회 시간마다 기도제목으로 걸어놓고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 개인적인 신념을 교회전체의 신념으로 탈바꿈시키려고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집단은 자연히 목사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해서 휘둘리게 되는데, 그래서 주차장을 구입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었다" 라고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신념의 탈바꿈한 대가가 무서운데, 결국 헌금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남의 신념에 동조해서 자기 돈을 바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바로 그러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살아있음의 증거물로 삼으려고 하고 말이다.
◈ 그러면 오늘날 이 시대의 신앙내용은?
아무튼 아브라함 시대는 신앙의 내용이 이삭이 태어난 것이었지만, 그렇다면 이 시대 신앙의 내용은 무엇인가? 쉬운 객관식인데, "(1)교회증축 (2)남북통일 (3)난치병정복 (4)예수님의 십자가" 라고 하면, 정답은 몇 번인가? 바로 4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이 왜 4번인가? 그것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로마서 4장에도 나오지만, 이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는 말씀의 완성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증축이나 남북통일은 말씀의 완성이 아닌데, 그런 것이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에 결코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니, 암이 낫다는 것이 학개서나 스가랴서에 나오는가?
◈ 하나님은 말씀을 이루는 차원에서 !!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은 일단 미리 말씀을 던져놓고, 그 말씀을 이루는 차원에서 진행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의 내용이고 말이다. 그러니 개인적인 기대감이나 욕망 등은, 그러한 하나님의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는 낚시를 꼭 가고 싶은데, 그래서 마음속으로 "주여, 비가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아서 "주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했다면, 그러나 그것은 보편성이 없다는 것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자기에만 해당하지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다음과 같이 해서 전도가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A : 너는 믿어라.
* B : 무엇을?
* A : 내가 낚시를 좋아한다는 것을 믿어라.
* B : ? ? ?
그래서 로마서 4장 19절 이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는데, 한번 살펴보자.
(롬 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롬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롬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롬 4:22)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 4: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롬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지금은 십자가를 믿는 것이 신앙의 내용 !!
아브라함이 그 당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서 의심치 않고 확신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날에는 어떤 내용으로 나타나는고 하니까, 그것이 바로 24절 말씀이라는 것이다. 즉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시대에 우리가 믿어야 될 믿음의 내용이 무엇이란 말인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인데, 아니 도대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소생한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영생의 생명으로 다시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3일만에 부활함으로 말미암아서, 즉 그렇게 해서 믿는 자로 하여금 죽음 자체에서 같이 빼내어주는 업적을,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약속이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믿으라고 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믿게 하는 믿음까지도 말이다.
◈ 너, 무엇을 믿지?
자기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잘 아는 친척과 길을 가다가, 그 친척이 갑자기 '툭' 치면서 "당신, 무엇을 믿지요?" 라고 하면, 머뭇머뭇 거릴 것이 아니라, 또한 자기의 개인적 경험이나 신념을 이야기하라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제가 지난주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기적적으로 멀쩡합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할 때는, "내가 죽음 자체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라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 되는데, 그러면 친구가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물으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근거가 됩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다.
사실 저도 지금 여러분의 어깨를 '툭' 치면서 "무엇을 믿습니까?" 라고 물어보고 싶은데, 과연 그것이 맞는지 사도행전 17장 31절을 살펴보겠는데,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행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 아니,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
여기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주었다고 하는가? 믿을 만한 증거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 바로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모든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 아하, 신분이나 자격에 개의치 않고 !!
물론 여기서 '모든 사람' 이란 말은, 단 한 사람도 빼놓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어떤 신분이나 계층에 개의치 않고 주셨다는 말이다. 즉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공평하게(?) 말이다. 그렇게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심판 날을 작정하셨는데,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믿기만 하면 죽음이라고 하는, 이 죽음은 지옥에 가야하는 하나님의 저주인데,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을 믿으라고 증거를 주셨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은 누구에게 적용을 해야 하나요? 목사님이 이전에 "사람들이 말씀을 알아서 구원을 받을까 두려우니라" 라고, 즉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라고 하신 기억이 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 질문 - 그런데 여기서 '모든 사람' 이라고 하면, 그래도 교회에서 전도는 하는데 이런 구절을 많이 인용하지 않습니까? 박옥수 목사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는데 말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이라는 것은, 인간들이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즉 "이 사람은 착하니 예수님을 잘 믿을 것이고, 저 사람은 악하니 잘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말이다. 그런 인간들이 만든 기준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제가 질문한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이 '모든'이 인간 전체를 다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 말입니다.
그것은 조금 전에 말했는데, 그 어떤 신분이나 계층에 개의치 않고, 즉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공평하게 주셨다고 말이다. 성경에서 이렇게 '모든' 이라는 말을 할 때는, 그 당시에 패가 있는데, 즉 "니는 누구 편, 또 니는 누구 편",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다들 경계선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경계선을 뛰어넘어서 일을 하시는데, 즉 그런 것에 의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은 누구에게라도 없다는 말이다. 요즘은 그대로 그런 신분이나 계급이 차이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이다. 세리나 강도나 창기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도 못하던 시대였으니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쉽게 말해서, 예수님이 선택한 '모든 사람' 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런 자격이나 신분에 대한 철폐이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어떤 기본적인 자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가 아니라 말이다.
◈ 이제 로마서 4장을 끝내면서 !!
로마서 4장을 끝내면서 다시 정리를 해드리겠는데, 혹시나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당신이 교회를 다니는데, 도대체 무엇을 믿어요?" 라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데서 다시 살려내심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님을 믿는 자도 부활할 수 있고, 또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엉뚱한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상대방이 십중팔구 다음과 같이 다시 물을 것인데, "그러면 당신은 그 예수님을 믿고 형편이 좀 나아졌는가? 가정이 화목해졌는가?" 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렇게 살림이 나아지고, 가정이 화목해지는 것은, 제가 믿는 이 믿음의 내용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 가정의 화목은 믿음의 내용에 없어 !!
그렇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천당에도 가지만, 사업도 잘 되고, 가정도 화목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라는 식으로 나가면, 십중팔구 마귀의 시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도 반박할 내용이 많은데, "절에 다니는 사람이 더 잘 살던데", 혹은 "교회를 그만두고 절에 가더니 돈을 잘 벌더라" 라면서 시비를 걸고 말이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믿음의 내용에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다고 할 때는, 더 이상 무엇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포함되는고 하니, 개인적인 기대나 상상력, 그리고 욕망 등이 전혀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십자가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혹시 챙겨주지 않겠는가? 하나님도 양심이 있으면 말이다" 라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씨뿌리는 비유에 있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내용이 로마서 5장에 나오는데, 1절에서 4절을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롬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여기 3절에 보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라고 하는데, 저는 성경말씀을 모두 지켰다고 하는 인간들을 보면, 이 말씀을 정말이지 들이대고 싶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어떤 인간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가? 물론 조금 참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악바리들이 있는데, 자기 집안에 우환이 있어도 감사헌금을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환난 가운데 즐거워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 '사랑과 전쟁'을 보고 나서 !!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데, 제 방에 있는 것도 둘 곳이 없어서 그렇고 말이다. 한번은 아내가 틀어놓아서 할 수 없이 TV를 보았는데, '사랑과 전쟁' 이라는 부부갈등을 다룬 드라마인데 말이다. 거기에 보니까 정말이지 제대로 된 경상도 남자(?)가 한 사람 나왔는데, 자기 마누라를 그야말로 하인 다루듯이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정에서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그러나 여자는 전혀 거기에 대해서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황제처럼 군림하는 것이, 마치 남편으로서 나무나 당연한 듯이 여기는데, 남편다움(?)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드라마의 전개가 어떠한고 하니, 여자가 참다가 참다가 안 되어서 이혼을 청구하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저는 그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고 하니, 만약에 그 여자가 교회에 다녔다고 한다면,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 중에 참았지 싶다는 것이다. 즉 "참고 참자. 저 악마 같은 신랑을, 이 천사 같은 내가 참아야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웃으면서 폭력남편을 경찰에 고발해야 ??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싱글벙글 웃으면서(?) 경찰에 고발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웃으면서 고발이 되는가? 그러니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이 때리면 힘을 길러서 받아쳐야 한다는 말이다.
◈ 왜 환난 중에 즐거워해야 하는가?
로마서 5장 3절에서는 이렇게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환난 중에 즐거워해야만 하는가?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는데, 그것은 바로 4절에도 나오듯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바로 그 소망 때문에 말이다.
그러므로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 라고 해서, 즐겁지도 않은데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환난이 자기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거해주는 환난이기 때문에 즐거워하라는 말이다. 즉 자기가 하늘나라의 백성임을 의식하면서 즐거워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소망이고 말이다.
◈ 환난은 오직 복음 때문에 !!
나중에 이 환난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 때문에, 혹은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사고를 치고 나쁜 짓을 해서 당하는 환난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것은 베드로전서에서는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복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인데, 그러니 그런 것이 바로 자기가 하늘나라의 백성임을 증거하는 것이니 즐거워하라는 말이다.
◈ 에구, 만민의 아버지 ??
예를 들면, 아브라함의 경우에 그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 이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람(높음)의 아브(아버지)" 라는 의미인데, 즉 '높음의 아버지' 라는 말이다. 좀 교만한(?) 이름인데,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라함(무리, 만민)의 아브(아버지)"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만민의 아버지' 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새로운 이름을 아브라함에게 줄 때,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놀랍게도 단 한 명의 자식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름은 그렇게 만민의 아버지로 멋있게 잘 지어주었는데, 그런데 정작 자식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모순이냐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얼마나 처신하기 어려우냐는 말이다. 동네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놀렸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그것이 곧 아브라함이 당한 '환난' 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환난은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롭고 왕따를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 노아의 경우에도, 그 현실이 바로 환난 !!
또한 노아가 방주를 만들었을 때 그 얼마나 크게 지었는가? 그것도 산 속에다 말이다. 아마도 노아는 동네 사람들도 모두 다 태울 것이라고 여겼지 싶은데, 그러나 결국에는 누구만 탔는가? 자기를 제외하고 겨우 7명의 자기 식구들만 달랑 탔다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이근호 목사가 그렇게 열심히 목회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내하고 딸만 있더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 얼마나 외로우냐는 것이다. 물론 쪽도 팔리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숫자가 적다고 해서 방주에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가?
지금 외계에서 우주 비행선이 하나 내려왔는데, 그래서 노아가 외치기를 "여러분, 빨리 빨리 타세요. 지구가 망합니다. 함께 우주의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갑시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노아가 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단 한 사람도 그의 말을 듣고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자기의 식구들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우주선을 다시 돌려보내야 하는가? 즉 우주선이 온 목적이 실패했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가 않은데, 결국은 노아의 식구들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가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현실성이 그 얼마나 환난적(?)이냐는 말이다.
◈ 롯의 경우에도, 역시 환난 중에 !!
베드로후서 2장에 보면, 이런 노아와 또 롯이 나오는데, 그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굉장히 환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금 자기가 사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져서 불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누가 믿었는고 하니, 겨우 롯 본인과 두 딸만 믿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사위들도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이다. 아내는 억지로 따라오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는데, 그러니 안 믿는 사람은 결국 세상이 좋아서 다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현실이 얼마나 환난적이냐는 말이다.
(벧후 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벧후 2: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벧후 2:8)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그렇다고 해서 그런 믿음이 있는 사명 받은 사람이 "에라이, 아무도 믿어주지 않으니, 나도 모르겠다. 그냥 같이 살자" 라고 하면 되겠는가? 그렇게 하면 안 되고,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말이다. 그것이 바로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 라는 말씀인데, 즉 인간적인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다시 로마서 4장을 정리해보면 !!
로마서 4장을 다시 정리를 해보면, 제가 처음에 이야기를 했듯이 아브라함의 경우에, 이미 죽어버린 아내의 태를 통해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데, 그런데 그것만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4장 마지막에 나오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5장 3절에 나오는 "환난 중에 즐거워하라" 라는 말씀도 역시 안 된다는 것이다.
제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성경에 나오는 이런 것들은 도저히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데, 그런데 어떻게 말씀을 지킨다는 것인가? 인간은 자기가 만만해 보이는 것만 골라서 지키려고 하는데, 그러나 그런 것조차도 말씀이 막아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겠는가? 그것이 5장 8절과 9절 말씀에 나온다는 말이다.
로마서 5장 8절과 9절 말씀을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불가능, 불가능, 불가능 !!
여기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고, 또한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우리의 힘으로 되겠는가? 역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믿는다는 것은 낚시대회에서 월척을 낚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인데, 그야말로 하나님은 낚시꾼인데, 물론 우리는 물고기이고 말이다. 그분이 낚시에 도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낚이는 것이지, 우리가 잘 물어서 낚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낚시대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
여기서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의인이 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가 어떻게 해서라도 의인이 되어서 마음에 안정을 찾고 구원이라도 한번 받아보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니면서 빌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의인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의 피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에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는데, 그러므로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믿어지는 것이지,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지식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신학자들은 이 말씀을 믿지 않아 !!
제가 그래도 남들보다는 신학서적을 좀 읽는 사람에 속하는데, 그런데 신학자들 중에서 이런 사실을 믿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로마서 5장 8절과 9절에 나오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사랑을 확증했고, 그 피로 인하여 의로움을 입었다" 라고 하는 말씀을 말이다.
만약에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아마 신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성도로서 살게 될 것이니 말이다. 즉 자기가 신학을 하겠다는 그런 더러움(?)을 그냥 아무 미련도 없이 내던지고 뭐라고 하겠는가? "주여, 제가 이런 사실을 믿게 되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로마서는 4장부터 계속해서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음의 5장 10절과 11절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제가 읽겠습니다.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롬 5:11)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하나님과 화목으로 인해 즐거워야 !!
여기서 뭐라고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다고 하는데, 또한 그것 때문에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도 역시 아까 말한 환난 중에서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즐거워한다는 것이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즐거운 마음을 고취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 흥이 나겠지만, 노래방에서 도우미와 한방 땡겨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즐거움은 전혀 그런 차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 술로 인한 즐거움을 반드시 대가를 !!
술로 즐거워하려는 사람은 꼭 끝에 눈물을 보이는데, 처음에는 '위하여' 라고 하다가, 나중에 마치고 나올 때 보면 남자가 찔찔 짜는데, 물론 그것을 달랜다고 하면서 또 한 잔을 하러 가고 말이다. 그러다가 지갑도 다 털리고, 그러니 얼마나 비참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집에 가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가 아파서 찡찡거리고 말이다.
이렇게 거의 일정한 코스가 정해지는데, 그러나 그런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알콜로 인해서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힘으로 인한 즐거움이고, 그런 즐거움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는데, 그런 즐거움 이상의 허무와 허탈감을 말이다.
그러니 즐거움이라고 해도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자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주셨다는 것이다. 또한 자기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아니고, 더욱이 피를 흘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그런 즐거움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 나도 십자가에 달릴 수 있는데 ??
만약에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히면 천국에 갈 수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사람들이 줄을 줄줄이 서지 싶은데, 왜냐하면 순간의 고통을 참으면 영생이 주어지니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천국에 간다고 하면 그 정도의 고통은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리핀에 가면 실제로 오순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흉내내어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인간들이 있다는 말이다. 또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금요일까지는 자기 몸을 학대하고 금식을 하는데, 물론 그 다음날에 배가 터지도록 먹겠지만 말이다.
왜 인간들이 이런 짓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냥 공짜로 구원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즉 주님께서 모든 것을 자기 숙제로 다 하셔서 주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 엉뚱한 짓들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허무함을 메우려고,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지옥에 가지 싶어서 몸부림을 쳐본다는 말이다.
◈ 왜 기쁜 소식, 즉 복음인가?
그런데 이러한 것이 믿어진다고 하면 얼마나 기쁘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로마서 1장에서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정말이지 기쁜 소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는 이런 복음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도록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이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질문 -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은, 자기가 받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부어지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러한데, 중요한 질문을 했는데, 인간에게 주체의식이 있어서, 뭔가가 외부에서 들어오면, 즉 "누군가가 믿음을 부어주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일단 믿고 나면 그렇게 받은 자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부어주셨는가?" 라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는 것이다.
◈ 과연 주체가 누구인가?
바로 그렇게, "누가 부어주셨는가?" 라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것을 두고서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받았다" 라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믿음과 행함이란 것은 "과연 주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인데, 너무 어려운가요?
* 질문 - 그런데 부어지는 것은 '나' 하고는 상관없이 부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 말이 맞는데, 그런데 그렇게 "'나' 하고는 상관이 없다" 라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과연 누가 주셨는지, 거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서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받았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주셨다" 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받았다' 라는 것은 행함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주체의식이 그렇기 때문에 말이다.
◈ 그러면, 왜 인간은 자기 힘으로 구원받지 못하는가?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요약하면,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곁에서(?) 행하신, 바로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은 왜 안 되는가?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이 로마서의 진행을 보면, 사도바울이 자기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반발하는 사람에 대해서,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도 어떻게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가는고 하니까, "왜 인간은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5장 12절에 나온다는 것이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아니,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
여기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래서 사망이 왔다" 라고 하는데, 과연 이런 이야기를 이 세상 그 어디에서라도 하던가? 학교나, 아니면 신문이나 매스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은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은 악해도, 너는 착해야 돼" 라는 것인데, 즉 "비록 이 세상은 악하다고 해도, 너 만큼은 이 세상을 닮으면 안 돼. 너는 분명 가능성이 있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선을 행할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윤리와 도덕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 잠시, 윤리와 도덕에 대해서 !!
물론 윤리와 도덕은 서로 조금은 차이가 나는데, 도덕은 국가와 역사와 시간을 초월해서 최고의 선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이에 반해서 윤리는 그 시대와 그 당시 조건에 맞는, 즉 조직에 임시적으로 가장 적합하게 질서를 잡기 위해서 서로서로 약조한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선은 도덕이고, 그러한 도덕을 달성하기 위한 질서유지에는 윤리가 동원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도덕은 변하지 않지만, 윤리는 진화하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의미가 구분되지만, 그러나 통상적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런 윤리와 도적의 특징은 사람에게 선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지금 교회는 윤리와 도덕을 집대성해놓은 곳 !!
지금 한국교회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고 하니까, 대중들의 윤리와 도덕을 집대성해놓은 곳이 바로 교회라는 말이다. 그래서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도덕적으로는 절대선을 추구하게 되고, 또한 윤리적으로는 그 목사의 말에 순종해서 교회질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종인 목사에게 인정을 받아서 영혼의 안정감을 찾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인간들의 요구 때문에 교회라는 종교단체가 항상 필요로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언제나 "나는 착하지요" 라는 것이 들어있는데, 그러한 것들이 모이고 모아져서 교회를 이룬다는 것이다. 즉 "교회에 다니지 않는 저 놈들은 나쁘지만, 그러나 나는 착하지요" 라는 의식들이 모이고 모여서 말이다.
그래서 교회를 건축하는데 그 아까운 거금을 헌금하는 이유가, 자기는 착하기 때문에 그러한 착함을 밖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아마 이전에 다른 교회에 있었을 때는 헌금을 꽤나 바쳤지 싶은데, 지금 우리교회에 있을 때는 한 푼도 내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이 "누가 착한지 우리 서로 한번 붙어봐" 라는 것인데, 목사가 그렇게 경쟁심을 유발시켜놓으면, 사람이 어디 남에게 지고 살려고 하는가? 그래서 헌금을 경쟁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룬다는 말이다.
◈ 예수님, 장난하냐 ??
그런데 예수님에 의하면 그런 것은 전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개그프로에 보면 이런 말이 있는데, "장난하냐?" 라고 말이다. 이주일씨가 그런 말을 했던가요? 아무튼 지금 교회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교회가 완전히 어린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교회는 전혀 구원하고도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냥 잘난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들의 착함을 자랑하는 친목계를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정말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구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교회는 스스로 선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임이라는 말이죠?
집사님이 오랜만에 깔끔한 문장을 하나 또 들이대는데, 즉 스스로 선하고자 하는 모임, 상당히 일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스스로 선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선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가능성을 내다보고 모인 모임이라는 말이다. 즉 지금은 비록 못난이들의 모임이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왜 태권도장에 오래 동안 다니면 검은 띠를 따지 않는가? 그와 같이 교회에 오래 다니면 천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보다 단수가 높은 띠를 두르기 위해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다. 집사, 장로, 그런 것들이 다 띠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교회를 개혁하려고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개혁을 해도 똑같은데, 그런데 개혁을 하자는 사람은, 교회를 개혁하면 좀 더 착해진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그냥 친목회이고 동호회인데, 그러니 굳이 부수고 말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재미있게 테니스도 치고, 볼링도 하고, 또한 낚시를 즐기겠다고 하는데, 왜 굳이 가서 훼방을 하느냐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박사모'가 있듯이 '선사모' 라고 하면 되겠네요? 선한 것을 사모한다고 말입니다.
◈ 한국교회는 선사모 ??
오늘 집사님이 2타수 2안타인데, 하지만 교회는 바로 이 로마서 5장 22절 말씀에 나오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즉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는데,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을 고백하는 모임,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말이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러므로 교회는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즉 이미 인간이 태어나보니 죄가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죄가 우리를 장악하게 되면, 우리는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한 인간이 지은 그 죄를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다.
◈ 한 사람인데, 왜 다수가 피해를?
지금까지는 웃음이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좀 골치가 아파지는데, 여기 로마서 5장 22절에 나와 있듯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는데, 그런데 그 당사자가 아닌 왜 다수가 피해를 보아야 하느냐는 말이다. 만약에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죄는 그 한 사람에게 국한되어 머물러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 개인의 경우에도, 그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는 그 사람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지은 죄라고 해도 자식이 대신해서 치러야 하는가? 아니라는 말이다. 빚의 경우에도, 자녀가 상속을 포기하면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한 사람이 지었으니, 또 한 사람이 갚으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미리 답안지를 보고 정답을 말해버리면 강의가 김이 빠지는데(ㅋㅋ), 그런 정답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 중간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아담이 분명히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그래서 죄가 인간보다 더 센 힘을 가지고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이다.
◈ 악어들아, 엄마가 왔다 !!
왜 그런 동화가 있지요? 엄마가 없을 때 늑대에게 그만 문을 열어주어서 그만 아이들이 다 잡아먹히는데, 그런데 시계 속에 숨어 들어가서 살아난 아이가 나중에 엄마와 함께 그 늑대의 배를 째고 다시 형제들을 살리는 내용인데 말이다. 지금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주 엽기적인 동화인데 말이다. 사실 동화에 그런 잔인한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 단지, 아담의 후손이란 이유만으로 !!
아무튼 그렇게 죄가 들어오도록 문을 활짝 열어준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아담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너무나도 억울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악과를 먹기는커녕 구경도 전혀 하지 못하고, 그 죄를 다같이 덮어썼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자식들에게도 대대로 말이다.
그런데 아담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한 대가가 무엇인고 하니까, 끔찍하게도 '죽음' 이라는 것이다. 즉 12절에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아담이 문을 열자말자 그 앞에서 죄가 기다렸다는 듯이 "돌격, 앞으로" 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그 죄가 모든 사람들에게 다 덮쳤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저지른 죄는 내가 감당해야 한다" 라고 하는, 그런 우리의 일방적인 상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나도 모르는 그 양반이 사고를 쳤는데, 책임은 내가 왜?"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는 너무나 억울하다는 말인데, 그래서 당연히 아담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담은 자기가 사고를 쳤으면 자기가 해결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온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었느냐는 말이다. 그것도 자손 대대로 말이다. 그래서 '결자해지(結者解之)' 라는 말도 모르느냐고 따지고 싶은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이다.
◈ 왜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온 인류에게 퍼졌는가?
그렇다면 당사자가 해결하지 못하고, 그것이 온 세상에 퍼지게 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2000년의 철학과 2000년의 신학을 총동원해도, 한 사람도 이 문제를 제대로 푼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즉 죄는 정 집사님이 지었는데, 그런데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전혀 왜 상관도 전혀 없는 박 집사님이 같이 져야 하느냐는 말이다.
이것을 보통 '대표론' 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서, 외국에 있는 우리나라의 대사가 뭔가 잘못을 해도 강원도 할머니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결과론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 사람이 사고를 친 것을 모든 인류가 책임을 지도록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답변한 신학자가 아직 없다는 말이다.
* 질문 - 인간이 인간을 복제하기 때문에, 즉 DNA가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요? DNA 속에 죄가 들어있어서, 그것이 계속해서 복제가 되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원숭이는 죄가 있나요?
그런 것은 아니고, 물론 원숭이는 죄가 없는데, 그런데 인간 때문에 같이 후패해져 간다는 것이다. 즉 바로 이러한 죄 때문에 인간뿐만이 아니라, 6일 동안 창조된 모든 것들이 다 썩어져 간다는 것이다. 공중의 새, 바다의 물고기, 심지어 밭에 있는 채소까지도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죄는 인간에게만 있고 동물에게는 없다는 말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동물에게는 죄의 결과만 있다는 것이다. 2000년 동안 해결이 되지 않은 문제의 해답이 방금 한 질문과 답변 속에 들어있는데, 물론 본인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원숭이는 죄를 짓지 못하고 인간만 짓는데, 그러니 "죄란 무엇인가?" 라는 것에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죄의 개념이 달라 !!
무슨 말인고 하니, "아담이 지은 죄를 왜 우리가 덮어서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서, 이때 말하는 죄의 개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죄의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즉 죄를 지었기에 생겨나는 엉터리 죄의 개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진짜 죄의 개념은 무엇인고 하니, 신학을 하면서도 이것을 설명한다는 것이 왜 어려운고 하니, 지금 제가 너무 뜸을 들이고 있지요?
예수님의 의가 죄인 된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로마서 5장의 말씀이고 말이다. 즉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의가 죄인인 우리를 의인이 되게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의인이 되게 한 이유가 로마서 5장에 보니 뭐라고 하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인데, 즉 예수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게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상외로 간단한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이 대해서 시비를 걸고 반기를 드는 것이 곧 죄라는 것이다. 다음이 정말 중요한데, 따라서 죄를 죄가 되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죄를 퍼트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죄가 '죄' 될 때에, 또한 의가 '의' 되기 때문에 말이다.
◈ 예수님의 의가 죄인에게 의가 되는 관계 !!
머리가 좋은 사람은 여기서 감을 잡는데(?),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고 하니, 그냥 "예수님은 의롭다" 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피조물인 우리에게 의가 되는 그 관계, 바로 그런 관계를 두고서 '하나님의 의'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 집사님의 의가 있고, 또 박 집사님의 의가 따로 있다고 하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정 집사님의 의가 있는데, 그 의가 박 집사님의 의가 될 때, 그것을 두고서 '하나님의 의' 라고 규정을 짓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고 하니까, 예수님의 의가 피조물인 죄인까지도 의인이 되게 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라는 것이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물을 수 없고, 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정해놓았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에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의가 푯대(표시?)가 나지 않는데, 이것을 연극으로 하면 좋은데,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뭐라고 하는고 하니, "너의 의가 피조물에게 들어가서 그 죄인들을 의인이 되게 하라" 라고 하면, 아들은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옆에서 마귀가 지켜보고 있다가, "에구, 둘이 놀고 있네" 라고 비웃는다는 것이다.
◈ 의가 있기 때문에 죄가 발생 !!
그러니 이것이 의라고 하면 비웃는 것은 죄가 되는데, 즉 의가 있기 때문에 죄가 발생되었는데, 이미 죄는 천상에서 천사에게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를 더욱 더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진짜로 예수님의 의가 죄인에게 의가 된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계속해서 인간은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이 세상은, 하나님의 자기 아들의 잘남을 증거하는 마당 !!
이제 이해가 좀 됩니까? 그렇게 대대로 죄인이 되고, 또한 대대로 의인이 되는데, 왜냐하면 예수님 때문에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무엇인고 하니, 그러한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의 잘남을 증거하는 마당(?)이라는 것이다. 로마서에서는 이것을 두고서, 하나님의 자기 '아들자랑' 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만물이 주에게서 나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 질문 - 어떻게 보면 완전히 어거지(억지춘향?)가 아닙니까?
사실 우리가 보면 어거지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이 세상은 인간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자기 속성을 드러내는 장(場)이라는 것이다.
* 질문 - 하나님 자신은 교만하신데(?), 그런데 우리 인간을 보고는 겸손하라고 하시네요?
그야말로 '아멘' 인데, 하나님이 얼마나 교만한 분이신지, 우리가 교만하면 그것을 두고서 교만이라고 할 정도로 교만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을 두고 "하나님은 심판주이다" 라고 하는데, 즉 우리 인간은 심판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 지옥은, 하나님의 교만(?)을 거부하는 자들을 위해서 !!
그러니 이 세상에서 가장 악질적인 놈들이 누구인고 하니, 살인자도 아니고 간통을 한 자도 아니고, 예수님의 의가 자기의 의가 됨을 인정하지 않는 놈들인데, 바로 그런 놈들을 위해서 지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간들은 제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다녀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피 때문에 이미 의인이 되었는데, 그런데 그것을 본인이 "예수님, 저도 양심이 있지. 술만 좋아하고 엉망으로 살았는데 무슨 천당에 갑니까?" 라고 하면서,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거부할 때 드러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의 정체라는 말이다.
그것을 보고 주님이 뭐라고 하시겠는가? "자슥아, 아무리 죄를 감추려고 해봐라. 그것이 되는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도저히 자기 죄를 감출 수가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의가 오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 덕분에 의인이 되기 싫고, 제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서 의인이 되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예수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그러니 그것이 바로 아까도 말했지만, 성부와 성자가 서로 의논해서 하는 것을 두고 악마가 조롱하는 모습인데,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한국교회 목사의 설교를 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선사모(?)' 라는 말이다.
◈ 신학자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이것을 2000년 동안 신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의 신학함을 의로 보기 때문에 말이다. 자기들이 신학을 하든 설교를 하든, 그것을 모두 다 죄라고 인정을 하면 보이고 밝혀지는데, 그런데 그것이 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신학자들에게서 나온 나름대로의 해석이, 대표원리이고, 또한 유전원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학자들이 특히 이러한 유전원리를 주장하다가 얼마나 망신을 당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 여자는 그냥 씨앗이 자라는 밭 ??
옛날에 태어날 자식은 여자의 태반 안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의 정자 속에 들어있는데, 아기 자체가 다 들어있다고 보았는데, 그러므로 여자는 그냥 밭만 빌려준다는 말이다. 즉 여자는 새로움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만 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에는 여자를 당연히 무시했는데, 그래서 아기를 낳지 못하면 밭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남자가 아닌 여자를 바꾸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씨내리'가 아닌 '씨받이'가 성행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그야말로 남자들의 전성시대였는데 말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어떻게 되었는가?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런 환상들이 다 무너졌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조사를 해보니까, 처음에 인간에게 남자라는 것은 없고, 여자로 태어나서 나중에 분화가 되어서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것이다. 즉 '에스토로겐' 이라는 호로몬이 많으면 여자가 되고, 없으면 남자가 된다는 것이다.
◈ 여자가 본류이고, 남자는 돌연변이 ??
그렇게 처음에는 다 여자(XX)인데, 그러니 여자는 정상인데 남자(XY)라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XY' 인데, 쉽게 말해서 남자는 '돌연변이' 라는 것이다. 즉 과학적으로는 여자는 성숙되었고, 남자는 조금 덜 떨어진, 그런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까, 여자는 참을성이 강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한데,. 즉 남자는 참을성이 적으니 짐승류에 가깝다는 말이다.
◈ 남자와 여자보다는,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
요즘 페미니즘 철학을 살펴보면, 이와 같이 여성을 그렇게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구스타프 융이 주장한 것처럼,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것은 별 다른 의미가 없고, 오히려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구분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남자라도 여성과 같은 사람이 있고, 여자라도 남성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전적 요인이 70%이고, 환경적 요인이 30%정도라고 보는데, 그러므로 "여자가 더 뿌리인가? 남자가 더 뿌리인가?" 라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로마서 5장을 다시 살펴보겠는데, 먼저 14절을 보자.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 !!
여기 14절에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라고 하는데, 아주 쉽게 말해서, "아담은 오실 자의 마네킹이다" 라고 하면 되는데, 즉 아담은 마네킹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마네킹인고 하니까,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행동의 여파가 주어졌음을 보여주는 마네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5절과 16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서 죄가 들어왔는데, 그런데 또 다른 한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즉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넘쳐서, 바로 그 은혜의 선물로 인해서 의롭다고 함을, 즉 의인이 된다는 것이다.
(롬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롬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그래서 20절에 보면,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고 하는데, 이렇게 더욱 더 넘친다고 하는 것은 정량대로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에 정량대로만 해주게 되면, 나중에 그 정량을 다 까먹고 또 죄를 짓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아담은 처음에 무죄(無罪)였는데 !!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결코 의인이 아닌데, 그냥 무죄(無罪)한 상태이지 말이다. 그러니 언제든지 죄가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