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5-로마서1(강의정리)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5-로마서1(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43)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35 - 로마서1
05,05,0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노는 장소가 달라 ??
오늘은 로마서를 하겠는데, 인간이 예수님을 모를 때는 자기 잘난 맛에 사는데, 그것을 로마서에서는 '자기 의' 라고 하고 말이다. 정신과 의사인 이시형 박사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정신적 문제는 '비교의식'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사실 모두들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양반은 특히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런 비교의식은 인간들의 일상인데, 언어학자인 '레비나스'가 말하는 '차이남' 이고 말이다.
* 질문 - 그렇게 비교함으로서 살 길을 찾으려고, 즉 내가 살아남으려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자기 정체성 찾기라고 할 수 있는데, 또한 자기가 누구인지를 다짐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의와 자기 잘남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자기' 라는 것에다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여기 이렇게 '장(場)'이 있는데, 그때부터는 이렇게 장(필드)이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나' 라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는데, 물론 그때는 항상 비교의식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말이다.
◈ 엄마, 왜 나만 검어요?
예를 들어서, "다른 아이는 부모를 잘 만나서 저렇게 잘 입고 다는데,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라고 말이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교회는 왜 이렇게 초라한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비교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알게 되면, 그런 것이 이제는 장(場)으로, 즉 영역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때부터 어떤 영역에 속하게 되면, '나' 라는 것은 그만 빠지게 되고, 그 어떤 영역의 일부분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아인트호벤과 AC밀란이 축구경기를 하는데 관중에 8만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러한 관중 속에 자기 한 사람이 있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나고, 또한 남들이 알아주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나' 라는 것에 대해서 물어볼 입장도 못 되는데, 오히려 너무 설치면 쫓겨나지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면, 인간은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질문할 입장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자기하고 다른 사람을 비교해서, "나와 저 사람 중에서 누가 공부를 더 잘하지?" 라고 하였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영역에서 '나'를 그렇게 따로 떼 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휩쓸려 가게 된다는 말이다.
◈ 아담 안과 예수 안 !!
그것을 오늘 공부하려는 로마서에서는 '아담 안' 이라고 하고, 그 반대 개념을 '예수 안'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IN CHRIST' 라고 하고 말이다. 아무튼 오늘은 조금 어렵게 해보겠는데, 지난번에 사도행전을 하고 로마서를 해야 되는데, 그만 착각을 해서 고린도전서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용이 괜찮았지 싶은데, 아닌가?
로마서의 이 'IN CHRIST' 라는 것이 박사학위논문으로도 많이 나와있는데, 그만큼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하고 제일 어려운 부분이라는 것이다. 제가 볼 때도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철학적인 개념보다도 이 '예수 안'이 어렵지 싶은데, 도대체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이 이런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 노란색이 강렬하게 비쳐지는 방이 있고, 빨간색이 바쳐지는 방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모양새를 하든지 간에 노란조명이 내리쬐는 방에 가면 노란색 인간이 되고, 또한 빨간조명이 내리쬐는 방에 들어가면 빨간색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예수 안' 이란 것은 무엇인고 하니, 아까 이야기한 그렇게 강렬한 조명빨(?)이 비쳐지는 영역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일하셨던 그 모든 성과가 그냥 마구잡이로 자기의 성과로 들어올 때, 그것을 두고서 '예수 안'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께서 하신 그 모든 혜택을 입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말이다.
◈ If I were a bird ??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이쪽 아담 안에 있을 때는 날고 싶어도 날지를 못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조상 아담이 날개가 없기 때문에 우리도 날개가 없어서 날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아담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았기, 즉 DNA는 자기복제를 하는데, 그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담의 후손들은 날개가 없이 태어난다는 말이다.
하지만 새들은 어떠한가? 왜 새들은 날개가 있는가? 그들은 날개가 없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조상이 새가 아니고 아담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저 하늘을 날고 싶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혹시 "If I were a bird?" 라고 아세요? 성문종합영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인데, 아무튼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날개가 없는 것은, 아담의 고정된 운명 안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인간은, 독 안에 든 쥐 !!
저는 그것을 두고 "독 안에 든 쥐" 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 독이 바로 아담이라는 독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장독 안에 놓여있기 때문에, 그 독이 바로 필드이라는 말이다. 성경에서는 항상 이렇게 '장(場)' 영역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개인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역으로 생각하게 되면,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일단 예수님을 믿고, 그 다음에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헌금을 얼마를 하고, 전도를 얼마를 하고, 그렇게 말이다.
◈ 개인이 아닌 필드로 !!
그것은 필드를 모르고 개인의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99%의 교회모습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다들 이렇게 개인으로 가르치는데, 즉 "당신은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조그만 더 땡기면 구원이 됩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무슨 다단계 판매회사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개인의 구원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금 니가 놓여있는 영역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가?", 즉 "지금 너를 비추는 조명빨이 어떤 조명빨인지, 과연 그것을 아는가?"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우리는 아담에게서 살점을 !!
그것이 바로 아담 안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아담 안에서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여러 가지를 물려받았는데, 그것을 구약적으로 표현하면 살점을 물려받았고, 히브리어로 '바사' 라고 해서 말이다. 구약에서는 인간을 정신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다만 눈에 보이는 대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밭을 간다고 하면 육체의 동작이 보이는데, 그러면 거기서 육체는 바로 살점인데, 그러니 살점이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구약에서 살점은 무엇과 대조가 되는고 하니, '뼈'와 대조가 되는데, 또는 '피'와 대조가 되고 말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의 경우에, 이 뼈와 피는 살점으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죽고 나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에 보면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표현을 했는데, 그러니 뼈와 피가 보이지 않고 살점이 움직일 때, 그것을 살아있다고 한다는 것이다.
◈ 따라해 보세요, 네페쉬 ??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 라고 하는데, 그때 코에 불어넣으신 것이 생기라는 것이 바로 '혼' 인데, 이것을 히브리어로는 '네페쉬' 라고 하고 말이다. 오늘 히브리어가 좀 되는데, 한번 따라해 보세요, '네페쉬' 라고 말이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런데 이 혼(魂)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혼의 개념이 아니라, 큰 덩치가 있는 살점을 움직이는 것인데, 생명력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것을 '혼'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넋' 이라고 해도 되고 말이다. 그래서 혼이 나가면 죽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살점이 녹아 내리면서 뼈가 드러나고,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 인간은 수고와 슬픔을 아담으로부터 !!
지금 구약에서 아담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살점을 물려받았는데, 그런데 그런 살점의 한계가 보통 70년이고 길어야 80년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70년, 80년 동안 사람들이 가지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은 수고와 슬픔을 동반하는 살점을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그러므로 "내가 누구냐?" 라고 할 때,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직업이 무엇이고, 어느 집안의 자식이라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저는 선생입니다", 혹은 "저는 백수(?)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아니라, "니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라는 것을 묻는다는 말이다.
◈ 예, 저는 의사입니다 ??
오늘 영 답변이 없는데, 아무튼 "너는 누구야?" 라고 했을 때, "저는 의사입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후대의 살점에 붙어있는 기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성경에서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의사 짓도 하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성경은 바로 그러할 때에 "과연 너는 누구인가?" 라는 것을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니가 어느 덩치 속에 들어있는데, 과연 그 덩치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묻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제대로 인간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 예, 저는 아담입니다 !!
자기가 판사라고 해도, 판사 짓을 하다가 뇌물을 받으면 잘리고, 그러면 판사가 아닌데, 그러니 그런 일시적인 것을 가지고서, "너는 누구인가?" 라고 했을 때, "예, 저는 판사입니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성경에서 묻는 것은 "너는 누구로부터 물려받았는가?" 라고 묻는 것인데, 그래서 "예,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았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아담이다" 라는 말이다.
그러니 괜찮은 아담이라는 것은 없고, 그 모든 전체를 다 동일하게 아담에게서 물려받았는데, 즉 수고와 슬픔을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의사 짓을 하면서 수고와 슬픔을, 어떤 사람은 목사 짓을 하면서 수고와 슬픔을, 어떤 사람은 전업주부를 하면서, 또 어떤 사람은 노가다를 하면서 수고와 슬픔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노숙자나 백수나 깡패의 경우에도 물론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수고와 슬픔이고, 그것을 물려받았다고 히브리서에는 그렇게 동일하게 보는데, 그러니 기능이라는 것은 별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구약에서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기쁨은 무엇인가요? 그러니 인간이 느끼는 기쁨은 기쁨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기쁨이라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니 인간이 느끼는 기쁨은 전도서에 의하면 일종의 한숨인데, '후유'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 순간을 기쁠지 몰라도, 그것도 역시 돌아서면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말이다.
잠시 숨을 돌리고 수고하고, 또 숨을 돌리고 수고하고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마지막 때에 숨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니 그것이 인생이니 헛된 것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은 이렇게 인간을 통 채로 보는데, 다리 따로 팔 따로,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아예 통 채로 구워버린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은 수고와 슬픔 속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추구하나요?
그 이유가 또 나오는데,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살점을 물려받았는데, 그런데 또 물려받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아담의 본성인데, 또는 아담의 형상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까지 한 그것", 바로 그것을 물려받았다는 말이다.
◈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기까지 !!
아담이 무엇을 따먹을 때 이러한 속성을 마음껏 발휘했는가? 바로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의 일인데, 그것이 바로 "따먹지 말라" 라고 한,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기 위해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까지 했다는 말이다. 창세기 3장 6절에 나오는 말이다.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께서 그런 명령을 했어도 그것을 한번 꺾어보려고 하는 충동인데, 예를 들어서, 엄마가 "야야, 이것은 먹지 마라" 라고 하면, 왠지 그것이 자꾸만 더 먹고 싶은, 바로 그런 충동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우리가 물려받았다는 말이다.
◈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
오늘 로마서를 강의하려고 하는데, 이 로마서 1장 28절에 보면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표현해놓았는고 하니,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정말이지 100년을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즉 아침에 눈만 뜨면 이런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생긴다는 것이다.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자기야, 굿모닝 ??
물론 "아침에 눈을 뜨면 사랑하는 아내 얼굴이 보이고" 라는 노래도 있기는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그런 것이 라니라, 아침에 눈만 뜨면 하나님이 싫어지는 것이 곧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우리가 눈을 뜨기도 이전에 이미 마중을 나와서 "자기야, 굿모닝" 이라고 하면서 정다운 인사를 건낸다는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아담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데, 그것을 우리가 부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니야. 나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좋아해" 라고 하면, 저는 그런 사람을 사기꾼으로 보는데,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것은 그야말로 천성인데,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간에 말이다.
그래서 심지어 교인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방금 "하나님 찬양, 어쩌고" 라고 찬송을 해놓고도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찬양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자기가 그런 찬송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주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로또복권을 한 장 구입한다는 것이다.
◈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등등 !!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런 싫어하는 마음은 빈 공간이 되겠는가? 아니면 곧장 다른 것이 빨려 들어서 가득 차겠는가? 그렇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다음 29절 이하에 나오는 것들이 줄줄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롬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롬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롬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러니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 싶으면, "아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그렇구나" 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뇌물을 받고, 그렇게 사고를 하면,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생긴 결과들이란 말이다.
◈ 아하, 나는 이런 놈이구나 !!
사실 사고는 가끔 치지만, 그러나 이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은 천성인데, 그러니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사고를 치지 않는 것은, 그런 환경이 아직 조성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고 말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닌다고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그러한 사람은 자기 천성이 어떠하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안다는 것이다. "아하, 나는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놈이로구나" 라고 말이다.
◈ 저는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자라나서 ??
사람이 성령을 받지 않으면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평소에 이렇게 착한데, 그런데 왜 가끔 나쁜 짓이 하고 싶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엄격한 유교집안에서 자라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예쁜 여자를 보면 한번쯤은 끌어안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은 놈을 보면 두드려 패고 그 돈을 빼앗고 싶고 말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살다보면 그렇게 끌어안고 빼앗고 마음이 가끔 식은 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기는 가정교육을 잘 받아서 평소에 워낙 착하게 살기 때문에, 죽어서는 좋은 곳에 갈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를 하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목사님, 인간이 선한 일을 추구하는 것, 그것도 역시나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것은 아닌데(?), 그것은 자기도 어쩔 수 없는 이상한 바람과 같은 것이란 말이다.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은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 본성만 따지면 안 되고,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이 본성을 다루는 분이 따로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데 하나님을 의식하게 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되고, 예수님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본성이 아니라, 주님의 본성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 질문 - 제가 질문한 의도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선한 일이나 착한 일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착한 일도 하나님을 싫어하는 모습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것을 착한 일이라고 하기보다는, 물론 인간에게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어서, 시기와 질투와 분쟁이 생기는데, 그런데 그런 것도 있지만 뭐도 있는고 하니, '자기 의'가 있다는 말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유대인들을 보면 되는데, 유대인들에게도 당연히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았는가? 그들은 분명히 성령을 받지 않는데, 그런데 그들의 겉모습은 인류 역사상 그들만큼 경건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구를 찾는가? 오직 하나님만을 찾았다는 것이다.
◈ 야, 이놈의 회칠한 무덤들아 !!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시고 뭐라고 하셨는가? '회칠한 무덤' 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깨끗한 무덤 말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다 압축이 되는데, 겉은 그야말로 천하에 경건하고 의로운 자들처럼 보이지지만, 그러나 그 안에는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이 의하면 말이다.
(마 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제가 지지난 주일에 설교를 하면서 이 부분을 했는데, 이렇게 페인트를 칠한 무덤에 대해서 말이다. 겉은 아무리 곱고 예쁘게 칠을 해도, 그러나 그 안은 어떠한가? 제 아무리 무덤을 멋있게 장식하고 꾸며도, 그 안에는 반드시 시체가 들어있고, 냄새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곧 유대인들이고, 인류의 대표라는 말이다. 그러니 모든 인간들의 다 동일하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는데, 10절 이하를 살펴보자.
(눅 18: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바리새인과 세리, 누가 과연 죄인인가?
여기서 바리새인은 자기가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도 드렸다고 하는데, 그런데 세리는 과연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이 과연 누구를 의인이라고 했느냐는 말이다.
14절에 보자면,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라고 하는데, 즉 세리가 의롭다고 여김을 받았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은 지옥에 갈 놈이고 말이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본성을 예수님께서 보는 것과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다. 물론 주님께서 그런 눈을 열어주셨고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개인적인 잘못이 아니라, 아담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개인의 잘못이라고 여기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자살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저렇게 예수를 믿고 잘 되는데, 나는 도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개개인의 경쟁이 아니라, 전체가 다 그렇게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될 때, 그것을 두고 영적인 눈을 떴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모친의 죄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이다.
◈ 인간의 마음은 장터와 같아서 !!
다윗이 그런 말을 했는데, 그러면 다윗의 모친만 죄인이란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곧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싫어하는 마음이 진공상태가 아니라,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등이 가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곳은 마치 장터 같은데, 그것들이 서로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바쁘다는 말이다.
◈ 예, 저는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법조인이 !!
사법 연수원을 입학하기 전까지 법조인들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그때까지는 법을 모르는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헌신하겠다는 것이다. 똑같은 취지로, 기존의 돈만 아는 그런 법조인들에게 대해서 자기들은 역겨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은 그런 돈을 밝히는 자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단 연수원을 졸업하고 나면, 그런데 그들이 모두 다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태반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마는데, 그때부터는 정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첫째,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겠다. 둘째, 돈만 아는 것이 역겨운 법조인은 싫다" 라고 할 때는 그야말로 이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의 상태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아직도 자기 본색이 드러나는 환경에 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자기가 배운 그대로 했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때까지는 아직 30살도 되지 않았기에, 즉 자기가 산 것이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모든 것들이 다 자기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 아하,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
그런데 막상 법조인의 생활을 해보니, 대부분이 변호사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좀 뛰어난 놈들은 정치인을 노리게 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정치인이 되려면 그야말로 정치자금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권에 개입하게 되고 말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처음에 사법 연수원에 들어가기 이전의 생각이 어떻게 되는가? 그야말로 지금 자기 모습이 기성세대와 너무나도 똑같은데, 오히려 그들보다 더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앞의 기성세대로 처음에는 자기처럼 그렇게 했는데,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와보면 미처 자기가 몰랐던 그런 본성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들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 경우들이 생기기 되고, 물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많아지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하나 어떻게 한다고 이 세상이 바르게 되나? 누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고, 때를 기다려야지. 이순신 장군처럼 말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순신 장군도 그렇게 전쟁터에서 죽었으니 그렇게 영웅이 되었지, 살아서 정치를 했다면 똑같다는 것이다.
◈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
이회창의 경우가 그런 게 아닌가? 면도칼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야말로 뇌물도 받지 않은 청렴결백한 법조인으로 각광을 받고 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고건과 같은 사람들, 그야말로 선비타입인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정치를 하면서 다 버려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하,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구나" 라고 말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적으로 살펴보면, "나는 도대체 조상으로부터 무엇을 물려받았기에 이러한가?" 라는 것인데, 그렇게 스스로 자기 진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남자가 생활비로 한 달에 2600만원(?)이나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는 과거에 취미이던 쇼핑을 다 치우고, 이제는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자기는 그런 자기의 건전하고 깨끗한 모습이 저기 빨간 불빛아래에서 몸을 파는 창녀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물론 착각이지만, 그러나 그 여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오해를 때려부수는 것이 바로 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복음이라는 것이다.
◈ 레비나스 - 타인이 나의 초월이다 !!
이것은 좀 어려운 것인데, "사람은 남을 모른다" 라는 말이 있는데, 즉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남처럼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한 몸인 부부라고 해도, 남편이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을 해도 아내가 될 수 없듯이, 인간은 그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타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레비나스의 '차이의 철학'에 보면 나오는데, 그렇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니 타인을 자기의 '초월'로 본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신적인 것에 대해서 이 '초월' 이란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런데 레비나스는 그것이 아니라, "타인이 나의 초월이다" 라는 것이다. 즉 타인이 자기의 신이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아무리 타인에게 접근을 해도 자기가 모르는 것이 거기에 담겨있기에 말이다.
부모라고 해서 자식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는가? 자기 몸에서 튀어나왔지만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고 생소하게 여겨지면 두려움이 생기는데, 자기 품에 있는 자식이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자기 품을 벗어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되는가? 비록 자기 자식이지만 과연 그런 놈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될지, 그야말로 암담하다는 것이다.
◈ 철학은,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것 !!
그렇게 자기 자신을 알아 가는 것이 바로 근대의 서양철학인데, 그런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역사' 라는 것이다. 이 역사라는 것은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아는 것인데, 그리고 또한 사회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다. 역사는 통시적(通時的)인데 반해, 사회는 공시적(公示的)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자꾸만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데, 취직도 하고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뚝 떨어져서 혈혈단신 자기 혼자서 사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혼자 사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공시적으로 그렇게 현재 사회에 대해서는 알 것을 다 아니 시시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주로 위대한 신앙적인 영웅들을 말이다. 부처나 예수, 그리고 공자 등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인데, 그렇게 그들을 연구해서 그들처럼 되려고 하는데, 하지만 여기서 큰 착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 인간은 몽상가 !!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그 당시의 부처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상상하는, 즉 '몽상가' 인데, 그렇게 새로운 자기 나름대로의 부처를 만들어서, 바로 그러한 부처를 닮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블로흐(?)' 라는 독일 철학자의 주장에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양반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는데, 사람은 어느 시점에서 그렇게 '나'가 있으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해서 조금 나은 '나'를 만든다는 것이다. 즉 현재 있는 '나', 그것보다 더 나은 '나', 그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반드시 결핍이 생기는데, 그러니 지금 자기의 기쁨과 즐거움은 미래의 것을 미리 앞당겨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즉 공상 가운데 오는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몽상가' 라는 영화도 있지만 말이다.
◈ 상상과 공상 가운데 오는 즐거움 !!
그러므로 인간이 즐겁다는 것은, 미래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앞당겨서 누리는 즐거움인데, 그것을 '선취(先取)' 라고 하는데, 그래서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나요? 한번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지 말이다. 상상의 기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프로야구를 하는데 삼성이 롯데에게 9회 초까지 5:0으로 지고 있어도 집으로 가지 않고 기다리는데, 왜냐하면 9회 말 공격이 남아있기에 말이다. 물론 그렇게 끝까지 기다려도 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 다음날에 다시 야구장에 나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어제는 졌지만 오늘은 이길 것이라고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 질문 - 아까 지금 현재와 상상하는 미래 사이에 결핍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 라캉 - 오히려 결핍이 욕망을 낳아 !!
자기 욕망에 대한 결핍인데,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결핍이 없으면 욕망이 없다는 것이다. 즉 "결핍이 욕망을 낳는다" 라는 말이다. 흔히들 생각하기로는, 욕망이 결핍을 낳는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게 해야 말이 되는데, 하지만 라캉은 그것이 아니라 "결핍이 욕망을 낳는다고 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핍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바로 타인으로 인해서 생긴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동굴 속에서 도를 닦고 있다면, 그 사람은 굳이 수염을 깎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수염이 길어서 얼마나 흉측한지, 그것을 볼 수 있는 자기의 타인, 즉 거울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울 속에 있는 '나'는 '나'의 타인이기에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수염을 그렇게 길러서 예식장과 같은 곳에 가면 쫓겨나는데, "아니, 젊은 놈이 모양새가 그것이 무엇인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예식장에 가기 전에 거울을 보고 수염을 깎아야 하는데, 그러니 그렇게 수염을 깎는 것은 타인 때문에 깎는다는 말이다. 물론 얼굴이 가려워서 깎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니 것은 니가, 내 것은 내가 가리자 !!
처음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그야말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였는데,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되는데, 즉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니 물건은 니가 가리고, 내 물건은 내가 가리자" 라고 하면서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말이다.
남녀간에 아무리 사랑을 불 같이 해도 끝까지 내놓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최후의 약점인데 말이다. 그래서 결혼을 해도 바보같이 과거의 첫사랑 같은 것은 전혀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이야기해놓고 용서해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이야기하는 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 화목한 가정을 유지하려면?
왜냐하면, 한번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버리면, 틈난 나면 끄집어내는 것이 인간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연애를 할 때, "니, 오빠를 믿지?"라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믿기는 무엇을 믿는다는 말인가? 믿을 놈이 따로 있지 말이다. 그래서 저도 지금같이 이렇게 화목한(?) 가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에게는 그런 상상의 기쁨밖에 없나요?
사실이 그러한데, 그런 기쁨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평소에 그렇게 바라던 1000만원이 하늘에서 떨어져도, 인간은 결코 그것으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부터는 1억을 가진 사람들이 눈에 그만 '확' 하고 들어오니 말이다. 그렇게 되니, 그만 9000만원의 결핍이 생긴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상상할 때까지만 기쁜 것이란 말이죠?
물론 그러한데, 그렇게 해서 새로운 상상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불신자들은 종교로 만들어버리는데, 그래서 종교가 항상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이러한 결핍을 보장받으려고 하는 것인데, 물론 신으로부터 말이다.
◈ 팔공산의 칠순 할머니 !!
나이 70이 넘은 할매가 그 팔공산 갓바위에 왜 올라가는가? 길도 엄청 가파른데 말이다. 등산이 취미라고 그런가? 그것은 바로 이러한 자기의 결핍을 보상받으려고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칼바람이 부는 겨울철에도 손자의 수능시험 때문에 또 올라가고 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런 종교를 민중의 아편으로 보았는데, 제대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 아편의 특징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중독성인데, 그렇다고 항상 아편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울하고 괴로울 때, 그렇게 약발이 떨어지면 또 다시 찾는다는 것이다.
◈ 복음도 아편의 일종인데 ??
사실 이 복음에도 아편적인 요소가 있어서, 처음에 복음을 알 때는 흥분해서(?) 성경공부도 참석해서 질문도 마구 하면서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런데 나중에 조금 안다 싶으면 그만 그 마음이 교만해져서(?) 그만두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약발이 떨어지면 또 다시 찾고 말이다. 새벽기도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인간은 수고와 슬픔을 가지고 태어나서 기쁨을 향해 치달으면서 살다가 죽는다는 것이죠? 수고와 슬픔이란 필드 안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구스타브 융' 이란 심리학자가 말한 것인데, 그런 것을 개인이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전체가 그런 수고와 슬픔이란 것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갇혀있는데 별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기쁨을 추구하는 것밖에는 말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현실적인데, 즉 누군가가 자기 살을 꼬집으면 아프듯이 말이다.
◈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아픔 !!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아픔인데, 그래서 그러한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기쁨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법 중에 하나가 자살인데, 왜냐하면 그러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다.
* 질문 - 인간은 그런 결핍으로 인해서 종교성을 발휘하는데, 그런 우상적 결핍성으로 기대를 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되도 안한 결핍 위에다 그냥 덮어주는 것입니까?
◈ 십자가의 영적세계가 덮치기에 !!
덮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를 몰고 오는데, 그 다른 세계가 죽음으로 인도하는 세계이고, 그것이 곧 십자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의 세계를 '영적세계' 라고 한다는 말이다. 히브리어로 '바사'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곧 '육(肉)' 인데, 즉 '살점'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육적 세계에서는 방금 제가 말한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성도든 아니든 간에 결핍은 다 같은 것인가요? 그렇다면 우리의 결핍이 그렇게 날아가는 것은 다 같은 것인데, 단지 날아오는 것이 다르다는 말인가요?
물론 동일한 결핍이라는 것이다. 육적인 것은 날아오는 것은 없고,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고,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영적인 세계가 다가온다는 것이다. 물론 육적인 세계에서는 종교가 있는데, 이러한 육적인 세계의 종교에서 복은, 자기 결핍, 즉 자기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란 말이다.
◈ 혹시 '솟대' 라고 아세요?
그런데 종교라는 것이 기성종교, 즉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만이 아니고, 문화 인류학을 공부해보면, 모든 인간은 이미 그 가정에서부터 징크스나 터부가 있다는 것이다. 혹시 '솟대' 라고 들어보셨나요? 옛날부터 우리 마을입구에 장승 옆에 서있고 했는데, '긴 대'로서 까마귀 같은 새가 조각되어서 앉아있기도 하는데 말이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 즉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마을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솟대를 보면서 자란다는 것이다. 물론 느티나무에다 고추를 매단 것도 볼 것이고, 봄에는 집 대문마다 '입춘대길' 이라고 적은 것도 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성장하게 되는데,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그런 현대교육은 정신적인 것이 아닌 기능적인 면에 치우친 것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아이가 커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뭔가 사업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그런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도 저렇게 '입춘대길'을 한번 붙여볼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에 시험을 칠 때도 기도를 하는데, 물론 컨닝도 하고 말이다. 이렇게 상상이 되는 모든 것이 이렇게 육적인 종교에 있다는 것이다.
◈ 영적인 세계는 죄인들의 세계 ??
하지만 여기에 반해서 십자가는 무엇인고 하니, 아까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은 자기가 "전도를 했습니다", "구제를 했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했습니다" 라고 하지만, 그러나 세리는 뭐라고 하는가?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 죄인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고 말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세계는 이렇게 인간을 죄인으로 간주하고 그냥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의인이 아닌 죄인으로 말이다.
질문에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인간이 무엇을 구하든지 간에 그렇게 구하는 것 자체가 죄인데, 다만 구원이 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피 때문에 그러한데, 즉 그런 예수님의 생명인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려고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 성도의 특징은, 동그라미가 두 개 ??
이렇게 보면 간단한데, 지금 우리는 아담 안에 있으면서도 끌려가기는 예수님에 의해서 끌려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성도의 특징은 동그라미가 두 개인데, 하나는 이렇게 아담 안에 있으면서, 또한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신자는 그 예수님 안이라는 바깥쪽 동그라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것을 두고 예수님의 용서하심이 없다고 하는데, 그런 예수님의 용서가 없으니 기껏해야 자기 종교로서 버터야 하는데, "열심히 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야 하는데, 그러니 그것은 정말로 예수님이 좋아서, 그런 예수님의 피를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가 얼마나 자기 종교에 헌신하는데, 또한 얼마나 자기 교회 목사를 잘 섬기는지, 그런 것을 통해서 복을 받으니 그렇게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 캭, 한 대 쥐어박고 싶어라 !!
제가 지난번에 야외예배를 드릴 때 설교를 뭐라고 했는고 하니, 물론 주위 분위기상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지 싶은데 말이다. 자기 구원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다고 말이다. 너무 과격한가요? 제가 지금 이렇게 종이를 있는데, 그것을 찢어서 여러분에게 나누어주는 것과 같이, 구원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그냥 주께서 나우어 주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을 주려함이라" 라는 것은 우리 숙제가 아닌 주님의 숙제인데, 그러니 예수님께서 자기 숙제를 하는 와중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예수님 덕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질문 - 그러니 종교라는 것은 복음과 전혀 상관도 없이, 인간적으로 자기 스스로를 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복음은 이런 종교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적이라고 하지 말고, 배운 데로 성경에 있는 것과 같이 육적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영에 속한 사람은 은혜를 아는데, 물론 육에 속한 사람은 모르고 말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자기 스스로 발광체가 되어서 구원을 받아서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지금 한국교회는 육적인 종교집단이라는 말이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데, 지금 천주교나 개신교나 모두가 다 철저하게 육적인 종교집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육적인 종교집단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과학을 신봉하는 것도 일종의 종교가 된다는 것인가요?
물론 당연히 그러한데, 과학을 하는 사람은 철저하게 합리적 바탕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는 사기성이 있다는 말이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러면 왜 우주로켓을 발사하면서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가? 공장을 세우면서도 그렇게 하고, 영화를 개봉할 때도 그렇게 하고, 심지어 차를 사도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 과학도 이제는 확률로 !!
왜 그런가?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몰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합리적으로 한다고 하던 것들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만 확률로 바뀌는데, 그렇게 되면 20세기의 양자역학과 같은 것들이 이제는 그만 확률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확하게 이곳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이 양자역학은 원자는 양자와 전자로 되어있음을 이야기하는 학문인데, 즉 전자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모르는데, 확률적으로 보면 "이 정도의 궤도에 있을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수학적 방정식에 의해서 그렇게 확률로 나오는데, 그것이 불확정성의 원리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여기, 여기' 이렇게 하다가 확률로 맞춘다고 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애매모호하다는 것인데, 통계의 경우에도 "이것도 자르고, 저것도 자르고, 결국 그것이 들어올 확률이 많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확률인데, 물론 변수를 더 많이 집어넣으면 또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 의사들이 수술하기 전에 왜 기도를 하는가?
현대 천문학자들의 경우에도, 과학은 하나의 기능이고 실제로 자기들이 믿는 것이 있는데, 의사들도 수술을 하기 전에 간절히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외과 수술의 경우에 말이다. 만약에 수술이 50%정도의 확률이라면 실력이 있는 의사는 70%까지 올라가는데, 하지만 30%는 항상 오진의 영역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수련의 과정을 점점 더 늘이는데, 오진률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사람마다 하도 다양하다보니, 또한 질병도 서로 복합이 되어서, 변종이 마구 튀어나오고 말이다. 그러므로 결국 모든 환자는 의사에게 마루타인데, 즉 실험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에는 어떠했는가? 그때는 그런 질병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몸에 이상은 있지만 굳이 병이라고 단정지을 만한 것이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 당시는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병이 아니라 그냥 노환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즉 특정 질병이 아닌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이다.
◈ 여보, 아버님 때문에 ??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는 의사들이 그냥 노환이 아니라, "이것은 중풍, 저것은 고혈압, 또한 이것은 뭐뭐(?)", 그렇게 세분화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자식들이 호주머니를 다 털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인간이 60세가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는데, 그래서 집에서 맛있는 것 드시다가 돌아가시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또 그것이 깔끔하고 좋다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병원에서는 나이가 70세가 되고 80세가 되어도 수술을 하는데, 코에다 호스까지 집어넣어서 말이다. 실제로 경북의대 응급실에 가보면 그런 분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오는가? 병원에서 그냥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 이런 불효자식 같으니, 호스를 왜 빼나?
그냥 그렇게 조용하게 돌아가시면 그저 집안이 평안할 것인데, 그런데 고무호스를 집어넣어서 억지로 연명을 시키니 온 집안에 우환거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병원이 환자를 위해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환자가 병원을 위해서 있는 것인지, 그야말로 헷깔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병원이 장사가 안 되면 의사들이 농사를 지으면 되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자식이 그 호스를 빼면 어떻게 되는가? 그 노인네가 화를 내는데, 왜 다른 노인네들은 꼽고 있는데 자기만 빼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졸지에 불효자식이 되고 마는데, 하지만 옛날 같았으면 그러한 것이 전혀 불효자식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현대의학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불효자식이 계속해서 생기게 되는데, 돈이 없어서 종합병원에 데리고 가지 못하면 말이다. 그래서 "불효자는 웁니다" 라는 노래의 가사내용이 요즘 시대에 맞추어서 새롭게 다시 나와야 하는데, 제때에 최고의 대학종합병원에 모시고 가지 못해서 너무나도 죄송하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 로마서 1장은, 아담의 실상에 대해서 !!
지금까지 강의한 것들이 로마서 1장의 내용인데, 즉 "아담의 실상이 무엇인가?" 라고 말이다. 그렇게 로마서 1장은 아담의 실상을 보여주고, 로마서 2장은 그러한 아담의 실상 속에 있는 인간들이 종교를 가지고, 즉 율법으로서의 성경말씀을 가지고 한번 버텨보려고 했던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서 3장은, 인간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고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로마서 1장은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물려받은 대로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바로 그러한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마음" 이라는 말이다. 아마 일기를 써도 이것보다 더 적나라한 내용이 없지 싶은데, "5월 7일, 오늘 왠지 마음에 하나님 두기가 싫어진다. 5월 8일, 오늘은 교회에 가기가 싫다. 등산이나 갈까?" 라고 말이다.
여기서 로마서 1장 21절 이하를 한번 살펴보자.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렇게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그런 마음을 도대체 누구에게서 물려받았는가? 그것은 바로 '아담으로부터' 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우리 인간의 천성이 모두가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것을 우리 스스로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더 더욱 주님 앞에서 속일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집사든, 장로든, 목사든 간에 말이다. 그냥 "주여, 제가 이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망나니 인간입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말이다.
◈ 이제 로마서 2장을 !!
이제 로마서 2장을 보겠는데, 여기에 보면 자꾸만 속이려고 하는 인간들이 과연 어떻게 되는지, 그런 것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먼저 여기 2장 11절을 보자.
(롬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정말 이 한 마디에 우리가 할 말이 없는데, 그렇다면 이렇게 외모로 보지 않으면 그 내부로 어떻게 들어오는가? 그것이 12절에 나온다는 것이다.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인간은, 율법이 있어도 망하고 없어도 망해 !!
이것이 무슨 뜻인가? 즉 "율법이 있어도 망하고 없어도 망한다" 라고 하는 것은, 인간은 이렇게 해도 망하고, 저렇게 해도 망하고, 그러니 도저히 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놓고 13절에서 뭐라고 하는가?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여기에 보면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이냐는 말이다. 단 1초의 방심도 없이 항상 1년 365일을 율법을 지키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의인이 되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신 분은 단 한 분,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이 구절을 가지고 교회에서 목사들이 많이 가지고 써먹지 싶은데요? "여러분, 여기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키세요'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데, 그러므로 그것이 바로 유대교이고 인간들이 만든 종교라는 것이다. 그러한 유대교에 대해서 21절 이하에 나온다는 것이다.
(롬 2: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롬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롬 2: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여기 마지막에 보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라고 하는데, 그러니 하나님은 인간의 활동에 속아넘어간다는 말인가요? 전혀 그렇게 않다는 것이다. 즉 "지금 이근호 목사가 5층에서 저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해도, 하나님은 결코 속아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 인간이 자기 의(義)를 내세울 때, 주님을 모독 !!
물론 교인들은 속아서 넘어가는데, "아니, 세상에 저런 훌륭한 목사가 다 있다니? 저렇게 좋은 말씀도 가르치고 말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속아넘어가지 않는데, 오히려 율법으로 모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나오는데, 인간이 그렇게 자기 의를 내세울 때 주님은 모독을 받는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제가 목사로 봉사한지가 20년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오히려 모독이란 것이다. "제가 이 만큼 전도를 했습니다. 헌금을 했습니다. 봉사를 했습니다" 라는 것도 역시 모독이라는 말이다. "그래, 그렇게 열심히 전도를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한 니가 마음으로 간음을 하는가?" 라고 하면 도대체 뭐라고 하겠는가?
◈ 카네기바(?)에서 내는 퀴즈 !!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퀴즈를 하나 내겠는데, 한번 맞춰보라는 것이다. 만약에 제가 '카네기' 라는 술집에 갔다고 하면, 거기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1)비싼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2)아가씨와 부킹을 했다.
(3)그 아가씨와 부루스을 추었다.
(4)양아치와 한판 싸웠다.
(5)내가 지금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따졌다.
정답은 4번인데, 비록 자기가 술집에는 왔지만, 그래도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해야 잘하는 것인지, 그런 것을 따질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물론 밤낚시를 하면서 이런 성경공부를 녹음한 강의를 들을 수는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두고 자기가 잘한다고 여기기 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다 모독인데, 율법이라는 필드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예수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아까 말한 조명빨(?) 때문에 그러한데, 빨간 조명이 비취면 그곳은 무슨 색깔의 옷을 입었든지 간에 온통 다 빨간색이고, 노란 조명이 비취면 다 노란색이 된다는 것이다. (아닌데, 노란색 옷을 입고 빨간 조명 아래에 가면??)
◈ 그러니, '그리스도 안' 이라는 의미는?
이와 같이 현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고 하니, 일단 우리는 모두가 다 아담 안인데, 그런데 그 안에 또 뭔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 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다 의가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 때문에, 바로 그 그리스도로 인해서 하나님의 의가 된다는 것이다.
◈ '나'는 누구의 용서하심을 누리고 있는가?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 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는 도대체 누구의 용서하심을 누리고 있는가?" 라고 하는, 그것을 항상 명심하면 된다는 말이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이제 로마서 3장으로 !!
그렇게 이야기를 해놓고 3장에 가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조금 어려운 내용이 있는데, 그 질문을 제가 여러분에게 할 테니 잘 들어보라는 것이다. 일단 3장 7절을 보자.
(롬 3: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 바울아, 우리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