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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4-고린도전서1(강의정리)자유게시판고린도전서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4-고린도전서1(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61)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34 - 고린도전서1

05,04,23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성스러움의 영혼화 !!

사도행전은 지난 시간으로 마친 것으로 하고 오늘은 고린도전서를 강의하겠는데(로마서는?), 우리가 이 고린도전서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스러움의 영혼화' 라는 것인데, 아마 모두들 처음 들었지 싶은데 말이다.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밖에 있는 성스러움을 개인적인 성스러움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인데, 그 당시 기존 종교에서 바로 이러한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성스러움의 소유화'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즉 "신만이 거룩한가? 나도 거룩하다"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성스러운 영혼이 자기의 성스러운 영혼이 된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바로 인간이 종교를 가지고자 하는 이유이고 유혹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유혹에 대해서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이 곧 사도바울의 십자가인데, 그러니 그가 주장한 십자가가 의미하는 것은, 성스러움은 결코 인간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성스러움은 전혀 인간의 것으로 전환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 자기의 성스러움을 포기한 자만이 !!

그렇다면 누구의 성스러움으로 남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러움만 남고, 바로 그러한 성스러움에 자기의 성스러움을 포기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은 자기 포기인데, 즉 자기 소유에 대한 전적인 포기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십자가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러니 이 십자가를 설명하려면 반드시 세상 지혜가 무엇인지를 먼저 말해주어야 하고, 그러한 세상 지혜와 십자가는 완전히 연결고리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십자가가 설명되는데, 그러니 다음과 같은 것은 사도바울이 말한 십자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1.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십자가이다.
2. 예수님의 부활로 가기 위한 입구로서 십자가이다.
3. 십자가는 구약의 완성이다.
4. 십자가는 하나님다움을 보여주는 예수님의 신성이다.

보통 교인들은 이러한 4가지가 십자가의 내용을 채운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나 앞서 말한 이 4가지는 이 세상의 지혜로서 얼마든지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금 말한 이 십자가는 이 세상의 지혜와 상관이 없다는 공식(?)에 위배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십자가는 이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 앞에서 말한 4가지는 이 세상의 지혜로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메시야 덕분에 나도 좀 살자"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가 이렇게 이렇게 해줌으로서 자기들도 한번 살아봐야 하겠다는 것인데,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가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이 세상 지혜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말한 십자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은 십자가를 전혀 몰라 !!

그렇다면 도대체 십자가는 무엇인가? 앞에서 나열한 것들이 아니라고 하면 말이다. 그 정답은 바로 '모른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정답인데, 그러니 인간은 도저히 십자가를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그 십자가가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 지혜에서 말하는 죄와 십자가에서 말하는 죄가 충돌이 일어나고, 또한 세상 지혜에서 말하는 대속과 십자가에서 말하는 대속도 역시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지혜에서 말하는 대속은 무엇인고 하니, "나는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데, 누가 나의 죄를 좀 씻어주지 않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일종의 부두교인데, 쿠바의 민속종교이고, 또한 아프리카의 민속종교에 보면 양을 잡아서 죄를 씻어주는 의식이 있고, 또한 파푸아뉴기니의 고대종교에 보면 닭을 잡아서 그 피를 바르면 귀신이 물러간다고 하고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전부가 다 무슨 의식인고 하니까, 액운이 따르는 것은 자기 속에 죄가 있기 때문이고, 그런 죄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제거를 해버리면, 그 액운이 왔다가도 그냥 가버린다는 것이다. 공격할 빌미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귀신이 왔다가도 "어, 죄가 없네" 라고 하면서 돌아간다는 것이다.

◈ 메시야 덕분에 우리도 좀 살자 !!

여기서 우리가 유대교를 알아야 하는데, 이 유대교는 "메시야 덕분에 우리가 좀 살자" 라는 것인데, 여기서 '우리'는 언약 공동체를 의미하는데, 그러니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메시야 덕분이 자기 나라인 이스라엘도 한번 살아보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메시야가 오시는데, 그 메시야가 어떤 일을 하게 되면, 바로 그 메시야 덕분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우리 언약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 머리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것이 바로 유대교라는 것이다.

◈ 예수는 과대망상증 환자 ??

그런데 바로 그러한 유대교에 의해서 돌아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런 유대교에 제일 정통한 사람이 바로 사울(바울)이고 말이다. 그 사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서 가두고 처단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데, 물론 예수는 가짜이고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양반은 과대망상증 환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런데 한번 민중들에게 인기를 얻어서 떠보려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폼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민중들이 좀 따르고 하니, "야, 이것 봐라. 반응이 제법 괜찮네. 이왕 시작한 것 화끈하게 끝까지 나가자" 라고 해서, 그렇게 하니 사람들이 또 '호산나' 라고 하면서 자기를 불러주면서 호응을 한다는 것이다.

◈ 예수는, 구약의 메시야와 전혀 맞지 않는데 !!

여기에 대해서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아무리 성경을 펴놓고 연구해도 "저 목수의 아들은 아니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즉 "지금 저 사람이 민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그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니 그러한데, 하지만 구약을 아무리 조사해보아도 예수는 구약의 메시야와 일치하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사실상 그들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데, 예수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구약의 그 어느 대목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내린 결론은, 예수는 그냥 자아도취에 빠진 인간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가 그렇게 설치고 돌아다니고 민중들이 동조를 하게 되면, 결국은 로마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말이다.

◈ 그런데, 로마의 선진문화가 들어오면 !!

그런데 그렇게 그 한 사람이 자꾸만 말썽을 일으켜서 커다란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되면, 로마에서는 군대를 파견하게 되어서 이스라엘에 주둔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 마음대로 집회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마나 피곤해지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겨우 사정을 해서 얻은 종교적인 자유가 그만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군인이 오면 군인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접대하는 술집의 작부나 창녀들도 오고 말이다. 그 당시 군인들은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는 거의 유일한 집단인데, 600%(?)의 보너스도 받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족들도 따라오는데, 그 부인들이 바로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헬라종교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제일 염려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마카비 시대가 있었는데, 그때에 그들은, 자기들이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엄청나게 고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들은 죄를 지어서 고난을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데, 그런데 자기의 후손들도 역시 그렇게 될까, 그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 아버지, 여기 마돈나의 신곡을 한번 ??

자기 후손들이 계속해서 여호와 종교를 유지하지 않고, 그래서 그야말로 생뚱맞게 자식들이 "아버지, 유월절에 양은 왜 잡습니까?" 라고 한다면, "응, 그것은 출애굽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잡는단다" 라고 한다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아버지, 그것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러니 그런 구닥다리 말고, 요즘 새로 나온 로마의 유행하는 노래를 한번 들어보겠습니까?" 라고 나올 것이 뻔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로마제국이 들어온다는 것은 선진문물이 들어오는 것이고, 그러한 선진문화는 새로운 자극적인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거기에 호응해서 기존의 여호와 종교를 버리고 새로운 것에 다 빠져버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메시야가 올 때까지 도대체 여호와 신앙은 누가 지키며, 또한 마지막 때에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면, 과거처럼 또 다시 벌을 받게 되어서 구원될 여지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 로마와 적당히 타협을 해서 !!

그래서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적당히 로마문화가 들어오지 않도록 정치적인 타협을 이루어놓았는데, 그런데 예수라는 자가 중간에 끼어서 그만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많은 말썽꾸러기들이 있었지만, 그때그때마다 로마 쪽에서 자기들의 요구에 의해서 모두 적절하게 차단을 해주었고 말이다.

물론 로마 측에서도 유대교의 성직자들을 너무 탄압하게 되면, 그래서 그들이 봉기를 일으키게 되면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그 당시 로마의 영토가 엄청나게 큰데, 그래서 다 그 변방들을 지키려고 하면 군대가 많이 필요한데, 유대나라에서 문제가 생겨서 다시 군대를 그곳으로 보내면 다른 곳에 구멍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의 입장에서도 보면, 유대나라에 조금의 소요가 있고 문젯거리가 있어 보여도, 웬만하면 그냥 적당히 서로 좋은 것이 좋다고, 그렇게 타협을 해서 넘어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로마의 기존질서를 그렇게 위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것이 바로 변방에 있는 식민지에 대한 로마 가이사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라는 인물이 나타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든지,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하든지, 그런 것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다만 로마가 허용한 그 질서 속에서만 움직여 준다면 용납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예수의 경우에는?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사실 예수님이 그런 질서를 그렇게 어긴 적은 없지만, 그러나 이번 이 예수의 경우에는 조금 특별한 경우라서 직접 유대 성직자들이 나서서 예수를 체포하게 되고, 그리고 본디로 빌라도의 손에 재판을 받도록, 그렇게 타협점을 찾았다는 것이다.

◈ 사도바울이 새롭게 본 구약은?

바로 여기에 동조한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까 사도바울인데, 즉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사울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거한 스데반을 죽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이 사울이 했다는 말이다. 사울은 정말로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누구를 만났는가? 그분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인데, 그때부터 그는 구약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죄'의 문제인데, 그런데 기존 유대교는 예수님이 아닌 메시야 종교이고, 바로 그 메시야가 와서 자기들의 죄를 대속해주는 것이 구약의 완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아닌 메시야가 부활의 나라, 그것이 이사야 26장에 나오는데, "모든 땅이 죽은 자를 내어주리라" 라고 말이다. 그렇게 메시야가 와서 부활의 나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사 26:18) 우리가 잉태하고 고통하였을지라도 낳은 것은 바람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 세계의 거민을 생산치 못하였나이다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 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그러므로 그들에 의하면 십자가가 아닌 메시야의 고난의 바로 구약의 완성인데, 그리고 그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 즉 신으로서 오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대교는 모든 것이 메시야이고 또 메시야인데, 그런데 이것이 사도바울에게 오면 그 자리에 메시야가 그만 빠지고 예수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 그런데 예수가 누구인가?

그런데 예수가 누구인가? 그냥 목수의 아들에 불과한 한 촌놈, 즉 나사렛의 구체적인 인물인데, 그의 부모와 형제들이 누구인지 다 아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너무나도 평범한 '예수' 라고 하는 청년이 구약에서 약속한 바로 그 하나님의 메시야라고 한다는 것이다.

◈ 사도바울, 그건 죄가 아니야 !!

여기서부터 어려운데, 그렇다면 도대체 '죄' 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이 죄라고 하는 것을, 인간이 구약에서 십계명 등을 보아서 죄를 파악한다고 하면 맞겠는가? 틀리겠는가? 십계명에서 "간음하지 말라" 라고 했다고 해서, 간음을 하지 않으면 죄가 아닌 의가 되는가? 놀랍게도 바로 그러한 생각이 예수님을 죽인 죄라는 말이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곧 죄인이라는 이야기인데, 바로 이런 사실을 사도바울이 처음으로(?) 지적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메시야를 통해서 죄를 씻는다고 하는 것도 역시 이 세상 지혜에 속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신약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는 모르고,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된다고 하니까, 메시야의 자리에 예수님을 넣어서, 즉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씻는다고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그 내용이 유대교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없다면 !!

그래서 죄가 무엇인지 물으면, 간음하는 것, 도적질을 하는 것 등, 그런 것들이 바로 죄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윤리와 도덕으로 죄를 이야기를 하자면, 바리새인들보다도 더 나은 의가 없는데, 그 방면에서는 바리새인들은 전문가들이고 아주 철저히 훈련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어릴 때 그런 나쁜 짓을 했구나. 그러면 안 되는데, 지옥에 가는데. 옳구나, 예수님을 믿어서 용서를 받아야지" 라고 하면,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전혀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뭐라고 하겠는가? "인간은 처음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 끝!"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이미 끝이 났다는 말이다.

◈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 끝 !!

인간이 왜 죽는가? 당연히 죄인이기 때문에 죽는데, 죄의 값은 사망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착함을 근거로 해서 구원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이 임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이것은 착하니 넣고, 이것은 나쁘니 빼고" 라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주장한 십자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자기가 과거 유대교에 열심을 낼 때의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정반대로 모든 것을 새롭게 다 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제는 그를 앞세워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대로 그가 가는 곳마다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 첫째,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십자가이다 ??

이제 아까 말한 사도바울이 주장한 십자가가 아닌 4가지의 경우를 다시 살펴보겠는데, "1.인간의 지혜로서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십자가이다" 라는 것이 틀렸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십자가는 무엇인가? 즉 "나는 전혀 몰랐는데, 십자가의 능력이 임하니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고, 죄가 무엇인지 알아서,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졌다" 라고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앞에서와 동일한 문장인데 무엇이 들어가는가? "나는 몰랐었는데" 라고 하는 것이 추가된다는 말이다. 즉 "이 구원의 문제는 전혀 나의 일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일인데, 바로 그 예수님의 일이 나에게 들이닥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나올 때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죽어서 좋은데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지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 좋은 곳에 가려고 하는 것은 유대교와 모든 인간들의 타고난 욕망이라는 말이다. 아까 말한 부두교도 그렇고 말이다. 모든 종교가 다 그러한데, 결국에는 "내가 살자"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종교가 아무리 십자가를 이야기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 지혜에 속한다는 말이다.

◈ 그렇다면 '세상지혜'란 무엇인가?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세상 지혜로는 이 십자가를 알 수 없다" 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세상 지혜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 세상지혜에 대해서 한번 설명을 해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것을 다시 정리해보면, 제일 처음에 한 것이 "성스러운 것은 내 영혼이 될 수 없다" 라는 것이었는데, 결코 되지 않는데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렇게 된다고 착각을 하고 시도를 했다는 말이다. 성스러운 것은 인간밖에 있는데, 그런데 그 성스러운 것을 인간이 소유하게 된다고 여기면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을 밀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코 성스러운 것은 자기 영혼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잠시 '에라스무스'에 대해서 !!

혹시 '에라스무스' 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루터하고 한바탕 논쟁을 한 인물인데, 그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아니 예수님의 거룩을, 즉 예수님의 손을 만진다고 해서, 어떻게 거기에서 능력이 나오는가?" 라고 말이다. 물론 이것은 루터와 논쟁이 아닌 그 당시 천주교를 비판하면서 말이다.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된다고 하면, 예수님과 입맞춤한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가? 가롯유다라는 것이다. 그가 거룩함에 입맞춤을 했으니 그 가롯유다가 제일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가롯유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가? 오히려 예수님을 돈에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라스무스는 성찬식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그 떡과 포도주에서 능력이 나오느냐? 이 바보들아" 라고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진정한 의미는 도외시하고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느냐는 말이다. 그 당시 천주교를 공격하면서 그렇게 했는데, 또한 성상(聖像)을 숭배하는 것과 함께, 굉장하게 공격을 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것은 맞은 말이지 않습니까?

물론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런데 이 에라스무스가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인간의 능력으로 그런 성스러움을 내 것으로 만들자" 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해서 루터는 당연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고 말이다. 성스러움이 인간을 건져내어서 끄집고 가는 것은 말이 되지만, 그러나 그러한 성스러움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다. 즉 "주님의 성스러움이 나의 성스러움이 되어서 구원하는 것은 성경에 없다" 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에서 이야기하는 성화가 바로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에라스무스가 주장한 내용과 같은 것인데, 그래서 서로 경쟁을 하는데, 즉 "니는 성스러움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나는 이 정도인데"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이용해서 한국교회 무당(?)은 뒤에서 간증집회 등을 통해서 분위기를 부추기고 말이다.

이러한 세상 지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유대인의 '기적'이고, 또 하나는 헬라인의 '지식'인데, 이것이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서 24절에 나온다는 말이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먼저 유대인의 '기적'에 대해서 !!

여기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미련한 곰탱이(?)라서 십자가를 전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십자가는 유대인의 기적과는 연결이 되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 말인데, 그러니 십자가를 믿고 나서 돈을 엄청 벌었다든지, 사업이 잘된다든지, 가정이 화목해진다든지, 혹은 병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그런 눈에 띄는 기적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십자가에 대한 오해이고 모욕이라는 것이다.

◈ 그러나, 십자가는 너무나 볼품이 없어 !!

정작 이 십자가는 너무나 조용하고 볼품이 없는데, 그야말로 길에 떨어진 낡고 떨어지고, 개똥이 발려있는 그런 옷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주워서 '심봤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그야말로 우리가 가장 외면하고 싶은, 인간들이 그 누구나 다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는, 즉 "아이쿠, 저리 치워라. 냄새난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로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말하는 십자가라는 것이다. 그것을 빌립보서 2장에서는, "종의 형태로 죽기까지 복종했다" 라고 하고 말이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근호씨, 나하고 같이 살자 ??

우리가 길을 걸어가는데 제일 귀찮은 것이 무엇인가? 어떤 미친 늙은 여자가 나타나서 "내 신랑이 좀 되어도" 라고 하면 기겁을 하고 도망을 가지 싶은데, 그런데 이 십자가는 그것보다 더 기겁을 하게 하는, 그런 찐득이(?) 라는 것이다. "나하고 같이 살자" 라고 하면, 우리는 "제발 좀 놔도" 라고 하고 말이다. 이렇게 자기에게 달라 붙을까봐 제일 겁을 내고 귀찮아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이다.

◈ 이것은 기적이고, 저것은 아니고 !!

그런데 유대인들은 무엇인고 하니, 기적과 기적이 아닌 것을 골랐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곧 기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그래서 구약성경을 통해서 기적과 기적이 아닌 것을 구별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홍해가 갈라진 것은 기적이고, 자기들이 아이성에서 박살난 것은 기적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기적이고, 또한 사울 왕이 아말렉 군사에게 죽은 것은 기적이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기적이고, 밧세바와 간통한 것은 기적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분류를 해서 장차 메시야가 오면 어떻게 되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유대인들은 그런 자기들의 메시야가 오면 과거 홍해바다를 가른 기적으로, 자기들을 그렇게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서 약속대로 만국의 머리가 되는 나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소망으로 하0나로 뭉쳐서 살아가고 있는데, 현재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러한 소망으로 살아가면서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메시야가 구름을 타고 오면 자기들의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사실상 유대인들 세상이 아닌가?)

◈ 요한복음 6장을 보면 !!

이것이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데, 거기에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할 때, 거기에 모여있던 유대인들은 갑자기 눈이 번쩍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내리신 기적에 해당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고 쫓는데, 자기들이 등 따시고 배 부르려고 말이다.

* 예수님 : 너희들이 왜 나를 쫓는가?
* 무리들 : 당신이 기적을 행하니 말입니다.
* 예수님 : 내가 행하는 기적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기적이 아니야?
* 무리들 : 아니,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 예수님 : 그래서?
* 무리들 : 당신도 광야에서 그렇게 기적으로 우리 5000명을 먹였습니다.
* 예수님 : 그런데?
* 무리들 :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리신 기적과 동일한 것이지 않습니까?
* 예수님 : 그래서?
* 무리들 : 그러니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참된 메시야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예수님 : 그렇다면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는 자만 영생을 얻는데, 그래도 따라올래?
* 무리들 : ? ? ?
* 예수님 : 그렇지 않다면, 나머지는 모두 다 꺼져라.
* 무리들 : ? ? ?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 6: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예수님의 살과 피는, 동사(同死) !!

여기서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것은, 예수님의 그 죽음의 현장에 함께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러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살과 피가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지고 볼을 비빈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바로 그런 살과 피가 어디서 찢기고 튀는지, 바로 그 현장에 동참한 사람에게만 목도되는 것이고, 경험이 되고, 또한 체험이 된다는 것이다.

성찬식에 참여해서 포도주를 마시고 또 떡을 뗀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는가? 그렇게 해봐야 술만 취하고 배만 부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가 죽겠습니다" 라고 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살과 피가 비로소 자기를 살린다는 것을 알지, 자기는 살아있으면서, 또한 살아남으려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이용한다면, 그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니까, 그렇게 많이 따르던 무리들이 모두가 다 떠나가 버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12제자는 아니고 말이다.

(요 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이것은 바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적에 관한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인간들의 본성에는 이러한 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자기 형편이 나아지면 신의 은총이라고 여기는데, 그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이러한 유대인들의 기적과 십자가는 전혀 통하지 않고, 그야말로 완전히 단절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런 기적을 믿고 십자가를 믿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데, 그래서 사도바울은 "약한 것이 곧 십자가이다" 라고 했고 말이다.

◈ 사도바울, 약한 것이 곧 십자가 !!

그것은 바로 "약해져라" 라는 의미가 아니라, "약해져도 괜찮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또 약해지려고 쓸데없이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것이 결코 약함이 아니니 말이다. 왜 그런가? 십자가는 기적과 전혀 관계가 없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이 과연 그런지 시험하기 위해서 자기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이여, 제가 재산을 팔았으니 기적을 보여주세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오히려 자기 재산을 팔아서 약함이 아닌 강하게 되려고 하는, 즉 기적을 손에 잡으려고, 그런 새로운 기적을 창출하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런 것은 전혀 기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입장에서 보면, 홍해가 갈라진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자기들이 광야에서 죽은 것도 역시나 놀라운 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인데, 그런데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은 기적으로 보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그냥 숨기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 !!

그것은 우리도 역시나 마찬가지인데, 자기가 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렇지 않으면 숨기려고 한다는 말이다.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십자가는 유대인들이 말하는 기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죽음이 자기의 죽음과 동질화가 되어야 하는데, 즉 예수님이 죽듯이 자기도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 두 번째로 헬라인의 '지식'에 대해서 !!

이제 두 번째로 헬라인의 지식인데, 이것이 좀 어려운데,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것을 이야기하려면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이 상대성 원리를 엄청나게 오해를 하는데, 즉 "애인하고 같이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는데, 그런데 마누라와 같이 있으면 시간이 늦게 가더라. 그렇게 사람은 느끼는 시간이 상대방에 따라서 때마다 다르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이미 어거스틴이나 베르그송 등이 이야기한 것인데, 그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에게 시간은 없고 다만 시간의식이, 즉 시간을 느끼는 의식이 있어서, 그렇게 시간을 유발할 뿐이라는 것이다.

◈ 어거스틴이 말하는 시간의식 !!

따라서 기분이 좋은 의식상태 같으면 시간이 빨리 느껴지고,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늦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기분이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시간이 빨리 가고, 병원에 누워서 고통을 받고 있으면 시간에 늦게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실제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간을 느끼는 의식만, 즉 그런 감각만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말이 맞지 않는가? 지금 시간이 어디 있는가? 창문 가에 있는가? 아니면 여기 책상 밑에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그 사건을 두고서 '하루' 라고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그 하루를 24로 나누면 '시(時)'가 되는데, 그런데 그러한 '시'이든, '하루'이든, '월'이든, '년'이든, 그런 것을 수납공간(?)을 만들어서 집어넣어야 하는데, 바로 그런 수납공간을 두고서 '시간'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간은 없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있고,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은 있고, 또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도 있고 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어거스틴이 주장한 '시간의식'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엉터리라는 말이다. 아인쉬타인이 그것을 부수어 버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이 그런 시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것인데, 이렇게 모든 것이 죄라는 것은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내뿜는 것이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저의 성이 '이'가 인데, 그런데 그것이 죄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이'씨 성을 가진 것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가 된다는 말이다.

◈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죄는?

앞에서 든 예가 아주 적절한 것 같은데, 그러니 사람이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는 것도 역시나 죄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죄가 아닌데 말이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 것이 죄인가? 당연히 목사가 복음을 전해도, 그것도 역시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무엇을 해도 다 죄라는 말이다.

이 죄라는 것을, 우리는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면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왜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영광을 받기 위함인데, 그런데 그 영광에 이르지 못하니 당연히 죄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가 되지 못하고, 또한 거룩도 될 수 없고, 그러니 죄가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전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선과 악으로 구별해서, 즉 나쁜 짓을 하면 죄이고, 그렇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분류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분류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준 것이 아닌 마귀가 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분류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말이다.

◈ 결론은, 예수 믿으세요 !!

그러므로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든, 목사라고 해서 설교를 하든, 그런 것도 하나님의 마음에는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예수를 믿어라" 라는 것이다. 목사 자신의 설교를 믿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세리가 구원을 받고, 창기가 구원을 받고, 강도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유대인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그들은 오직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만이 구원받는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메시야를 기다리던 그들이 진짜 메시야를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죄가 됨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말이다. 즉 죄가 의를 죽인 것인데, 그래서 죄는 더욱 더 죄가 되고, 의는 더욱 더 의가 된다는 것이다.

◈ 다시 아인쉬타인 영감님을 !!

다시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로 돌아와서, 지금 이렇게 시계가 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래서 나중 1년 뒤에 여기서 2시 정각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런데 그때 각자 사람들이 모일 때 시계가 2시 10분을 가리키고, 또 15분을 가리키고, 그렇게 모두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니 왜 그러하냐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어거스틴과 베르그송의 시간의식을 다시 이야기해보면, 예를 들어서, 수학을 아주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에게는 수학시간이 엄청 빨리 가는데, 그래서 수학문제를 풀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1시간을 있어도 30분으로 짧게 느끼지만, 그러나 마누라와 같이 있으면 30분을 있어도 1시간으로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동일한 시계를 보는데 말이다.

◈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 ??

이러한 현상을 가지고 루터는 "시간은 절대이다" 라고 했는데, 물론 느끼는 것은 각자가 자기 마음대로일지 몰라도, 그러나 그 시간만큼은 절대적이라고 보았다는 말이다. 즉 시간은 그렇게 고무줄 늘어나듯이 줄었다가 늘었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여기에 산이 이렇게 2개가 있다면 최씨가 보던 박씨가 보던 간에 산은 역시 2개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와도 역시 산은 2개이고 말이다. 그러니 공간도 역시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은 바로 과거에 신이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 헬라인들이 말하는 '지혜'는?

지금 우리가 헬라인들의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무엇인고 하니까, 신께서 우리 인간에게 이 대자연을 주었는데, 그러니 그 대자연을 우리 인간이 감각을 가지고 느껴서 그러한 대자연을 이용하는 것이 곧 신의 뜻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헬라인들이 말하는 지혜이고 지식이라는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그야말로 과학인데, 하지만 칸트도 마찬가지이지만, 루터에 의하면 대자연이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되기 때문에, 그러니 이러한 대자연만이 있으면 무엇이 탈락되는고 하니, 더 이상 신은 제거되어도 괜찮은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 과학 - 신이시여, 이제 편히 쉬소서 !!

이것이 바로 '노골적 과학(?)' 인데, 그러니 과학은 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신을 대신한 과학이라는 것이다. 즉 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제 신은 편히 쉬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과학이 그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의 방정식을 파악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과학을 안다는 것은 신의 뜻을 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동양사상의 음양오행설 등은 어떠한가요?

그것은 아인쉬타인과 통하는데, 그것은 나중에 설명을 하기로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아인쉬타인은 무엇을 주장했는고 하니, 누가 보아도 절대적이라고 여긴 이 시간에 대해서 시비를 걸었는데, 자기가 어떻게 느끼든지 간에 그 시간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각자 느끼는 감각이 모두가 다 달라서 그렇지 말이다.

◈ E = MC²??

그런데 아인쉬타인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이 시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속도에 따라서 시간도 변한다는 것이다. 속도에 따라서 말이다. 그러니 문제는 속도인데, 속도가 빠르면 시간은 늦게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 위에 있는 시계는 느리게 간다는 말이다.

◈ 아니, 어떻게 시간이 변하는가?

물리학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데, 만약에 시간이 물건이라면 줄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는데, 즉 "여러분, 여기 책이 이렇게 있는데 이만큼 줄었습니다" 라고 하면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줄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간이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이 시간이라고 하면, 그렇게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이 줄었다고 하는 것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찍 뜨고 일찍 지는 것은 말이 되는데 말이다. 그러나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은 이씨가 오던, 박씨가 오던, 그리고 아무리 띄든지 걷든지 간에 어떻게 그것이 변화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뛰어간다고 해서 해가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아인쉬타인 - 그것이 아니야 !!

그러니 대자연은 인간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자기 원칙대로 움직이는데, 그런데 아인쉬타인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자연은 그냥 정체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서 관찰자인 인간도 따라서 움직이고, 그러니 인간은 각자가 보는 대로 각자의 시간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인쉬타인이 주장한 상대성 원리인데, 그 핵심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동시성이 깨어진다는 것인데, 그것이 곧 '동시성 원리'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동시성이 깨어진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예를 들어서, 여기 일본이 있고 또 이렇게 한국이 있는데, 일본에서 아주머니가 2시 20분에 설거지를 하고, 한국에서는 상암 경기장에서 축구게임을 한다면, 그렇다면 2시 20분이라는 동일한 시각에 둘 다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든 축구를 하든 말이다. 2시 20분은 동일한 2시 20분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데, 물론 한국과 일본은 다같은 표준시각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물론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2시간이나 빠른(?) 중국과 비교해면, 한국이 2시 20분이라면 중국에서는 12시 20분인데, 그렇게 서로 같은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인쉬타인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런 때는 없다고 한다는 것이다.

◈ 동생아, 왜 그렇게 늙었니?

예를 들어서, 쌍둥이 형제가 있는데 형은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났고, 동생은 그냥 지구에 남아서 10년을 그렇게 헤어져서 살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10년 뒤에 보니 동생은 늙었는데 그런데 우주로 떠났던 형은 그만큼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이 훨씬 더 젊어 보인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형이 젊어지는 약을 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조사를 해보니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형은 우주를 여행하는데 5년이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지구에 와보니 그 시간이 10년이라는 말이다. 실제 우주여행을 하는 동안 그것을 동영상을 찍어놓은 것을 조사해보았는데 정말이지 5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두 배라기보다는 예를 들어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 각자의 다른 세계가 있어서 !!

그러니 사람이 속도를 달리하니 다른 시간의 세계를, 이것을 다른 시간의 세계라고 하지 말고 그냥 다른 세계라고 하면 되는데, 그러니 각자 딴 세계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아다페(?)' 라고, 그런 표현은 저승사자밖에 모르는데(?), 아무튼 그렇게 각자의 고유한 세계가 따로 존재하더라는 것이다. 바로 그 세계가 힘의 세계이고, 곧 중력의 세계라는 말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은 지구와 달이 서로 당긴다고 보았는데, 그렇게 당기는 관계를 두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고 질량에 비래한다고 보았는데, 아무튼 그렇게 당기는 힘이 중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과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예측이 된다는 말이다. 말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달이 뜨는 시각도 정확하게 알 수 있고 말이다.

그렇게 대자연이 움직이는 법칙이 발견되고 정리가 되니 신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이 만든 세계의 법칙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것이 곧 만유인력의 법칙인데, 그러니 이제 신은 그만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 뉴턴씨, 그 힘은 어디서 생기지요?

그런데 여기서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 "뉴턴씨, 그 힘은 어디서 생기지요?" 라고 하니, 뉴턴이 그만 답변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서로 당기는 힘이 있는 것은 아는데, 하지만 그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설령 지구를 망치를 가지고 박살을 내어봐야 아무 것도 없으니 말이다. 즉 당겨주는 그 무엇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아인쉬타인 - 중력의 힘은 없어 !!

그러니 뉴턴은 그것은 모르지만, 그러나 당기는 힘으로 가지고 설명을 하니 다 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인쉬타인은 무엇인고 하니, 뉴턴이 주장한 그런 당기는 중력의 힘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뉴턴처럼 설명하지 말고, 이렇게 얇은 군용담요를 넓게 펴서 거기에 물건을 놓으면, 그것이 움푹 패이게 되는데, 질량이 무거우면 많이 패이고 가벼우면 적게 패인다는 것이다.

여기에 태양이 있고 또 지구에 있다면, 그 사이에 있는 작은 달은 균형을 맞추어서 원심력으로 뱅글뱅글 도는데, 물론 그런 힘을 잃어버리면 날아가 버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지구의 경우에는, 이렇게 담요를 푹 꺼지게 만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질량이고 말이다. 그렇게 푹 꺼진 담요처럼, 그런 골을 따라서 지구가 움직이고 돈다는 것이다.

◈ 뉴턴아, 요건 몰랐지? 에너지 담요 !!

그러므로 지구는 뉴턴의 주장처럼 태양에게 당기는 힘이 있어서 도는 것이 아니고, 움푹 파인 지형을 따라서 그냥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주에서 지형을 이루는 이 담요는 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에너지 담요(?)' 라는 것인데, 바로 그것을 '중력장'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좀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빛은 질량이 없는데, 그런데 이 빛이 구부러지는 것을 보니, 뉴턴의 주장처럼 질량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담요와 같이 구부러진 곳을 지나오기 때문에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아프리카의 개기일식 때 증명이 됨으로서 뉴턴의 이론은 그야말로 완전히 찌그러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 인간은, 대자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

그러니 아인쉬타인이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고 하니, 각자 각자 대자연을 구성하는데, 즉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대자연을 구성한다" 라는 말이다. 그렇게 구성하게 되면, 인간은 자연을 구성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인간은 우주를 포함함 이 대자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재이고 티끌에 불과한데, 그러니 그것이 바로 동양철학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이 그렇게 움직이는 대로 춤을 추는 것이 인간이지, 인간의 신이 만든 질서를 알고 법칙을 알아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치 야구장에서 저쪽에서 일어나서 파도응원을 하면 이쪽에서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롯데팬들이 그런 것을 잘하는데, 삼성팬들은 영 엉덩이가 무거워서 말이다.

◈ 인간은, 대자연이 움직이는 리듬에 따라 !!

그렇게 인간은 대자연이 움직이는 리듬에 따라서 춤을 추다가 그냥 소멸해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깃발을 흔든다고 해서 대자연이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각자 각자가 모두들 다른 시간대에 있기 때문에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이씨와 김씨가 있다면, 각자가 다른 인생의 경로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데 "내가 표준이니, 너는 나를 따라와" 라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니는 니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인데, 우리 둘이 합쳐서 대자연을 이룬다. 그러니 우리는 대자연의 일부이고, 대자연의 종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다.

◈ 인간은, 그냥 한 마리의 바퀴벌레 !!

그 이전까지는 대자연이 인간의 종이라고 보았는데, 창세기 1장 28절에도 "다스리고 정복하라" 라고 되어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인쉬타인에 의하면 그것이 아니라, 인간자체가 대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에 불과한데, 마치 바퀴벌레와 같이 말이다. 예를 들어서, 부엌에 가면 무엇이 있는가? 그릇이 있고, 냄비가 있고, 또한 싱크대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부엌을 이루듯이 말이다.

이러한 아인쉬타인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이혼을 해도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혼을 해서 슬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기 인생을 찾지를 못하고 끌려 다녔는데, 각자가 헤어져서 자기 인생을 살면 그만인데 말이다. 또 다시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여자를 만나면 그만이니 말이다.

◈ 그러니, 니 꼴리는 대로 사세요 !!

쉽게 말해서, '자연스럽게' 라는 것인데, 즉 성질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욕구를 따라서 그냥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살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진리가 무엇이고, 무엇이 표준이면, 우리가 그것을 매진해서 따라가야 하고, 누구를 본받아야 하고, 그리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대자연 속에서 모두가 다 똑같은데, 그런데 누가 자기보다 더 나아서 그렇게 믿고 따르고 하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동양철학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석가모니이든 부처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길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대자연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철스님의 말씀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것이다.

◈ 인간의 지혜와 십자가가 연결점이 있는가?

이렇게 해서 드이어 아인쉬타인과 동양철학이 만남의 광장에서 모임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세상은 거대한 '에너지장(場)'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놀라운 인간의 지혜와 십자가가 서로 연결점이 있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전혀 말이다.

제가 방금 말한 이러한 아인쉬타인의 주장이 놀랍게도 헬라철학에서 이미 다 나오는 것인데, 그래서 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들이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즉 "당신, 꼴리는 대로 사세요" 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이야기를 해도, 그것이 아무리 지혜롭게 보여도, 그런 것은 십자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신이 내린 기적도 십자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이러한 인간들이 연구하고 또 연구해서 내놓은 모든 결과물도, 그렇게 대가리와 대거리를 맞대고 해서 내어놓은, 즉 신과 인간의 관계, 즉 인간의 대자연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사고방식조차도 십자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 십자가 - 너는 죄인이야, 끝 !!

헬라인들의 지혜에 의하면, 신은 오묘하고 지혜롭고 신비롭고 장엄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신이 만든 대자연의 일부에 불과하고 말이다. 하지만 십자가는 뭐라고 말하는가? "인간은 죄인이다" 라고 곧장 단정지어 버리는데, 그것은 오직 십자가에 의해서만 발견되어진다는 것이다.

헬라철학에서 인간에 대해서, "인간은 부족하다, 연약하다" 라고 하지만, 즉 신은 완벽한데, 여기에 비해서 인간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동양철학에서도 인간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안다고 해서 구원을 받겠는가? 오직 십자가 앞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해야, 그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상대성 원리 속에 죄인이 들어 있는가?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인간은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바로 이것을 사도바울이 다매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나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사울아, 사울아, 니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말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음성을 말이다.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 속에 이런 것이 있는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핍박하지는 않았지 않습니까?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핍박한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핍박한 것이 곧 주님을 핍박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에베소서에 나오는 개념인데, '몸의 관계' 라고, 아주 어려운데 말이다.

* 질문 - 그 몸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요?

그것은 십자가의 관계가 정립이 되어야 이해가 되는데, 이 몸의 관계는 구약의 제사제도와도 관련이 되어있는데, 출애굽 때 문설주에 피를 바름으로 해서 죽기는 어린양이 죽었는데 그런데 살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어린양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몸으로 !!

그렇게 어린양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한 몸으로서 간주를 해주는데, 자기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하려고 온 죽음의 사자가 그렇게 한 몸으로 봐준다는 말이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고 말이다.

분명하게 문설주에 피가 발리기는 어린양의 피가 발렸는데, 그런데 죽음의 사자 어린양이 죽은 것을 보고는 그 안에서 양고기를 먹과 있는 식구들이 함께 죽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렇게 봐준다는 말이다. 오히려 우리들 생각에는 어떠한가? "아니, 어떻게 그렇게 양의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양이 됩니까?" 라는 것인데 말이다.

◈ 한 몸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의 시선 !!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렇게 한 몸으로 보아주는 시선은 하나님 쪽의 시선인데, 사실 이런 부분이 제일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 제가 하는 강의가 어려운 것도 이러한 부분인데, 우리끼리는 아무리 한 몸이 되자고 해도,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에는 부부가 한 몸이라고 하는데, 과연 부부가 한 몸인가? 한 쪽은 축구경기를 보려고 하고, 다른 쪽은 드라마를 보려고 하는데 말이다. 그야말로 동상이몽이지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한 몸이 될 수 없는데, 이미 아담이 타락을 함으로서 그 모든 것이 다 깨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 되는데, 그런데 한 몸으로 간주해주는 또 다른 시선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저에게 물어보면 안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겠다고 하는데 대해서 우리가 무슨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제 너는 나와 한 몸이야" 라고 해버리면, 그것으로 확정이 된 것이지, 그것을 "예수님, 어떻게 저와 한 몸입니까?" 라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 그것이 곧 하나님의 약속 !!

다시 말해서, "하나님, 제가 어린양과 어떻게 한 몸입니까?", 혹은 "예수님의 죽음이 어떻게 저의 죽음입니까?" 라고 하는 것은 따질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곧 '약속' 인데, 그 약속이 구체화되면 언약으로 드러나고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는 우리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즉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겠다" 라는 것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항상 죄만 짓고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보고서 뭐라고 하시는가? "너는 내 안에서 의인이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렇게 단정을 지어버리면,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단정에 대해서 영향을 입을 수밖에 없고,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제가 이렇게 행동이 엉터리인데, 그래도 의인입니까?"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질 문제가 아니라, 그게 예수 안에서 약속이라는 말이다. 즉 "예수를 믿는 자는 의인이다" 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닌데, 그러니 그냥 수용하고 믿으면 된다는 말이다.

◈ 다시 십자가 이야기를 계속 !!

이것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고, 십자가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겠는데, 먼저 이 십자가는 이 세상 지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1장에 나오는데, 즉 세상 지혜로 본다면 이런 십자가는 너무나도 미련해 보인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세상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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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6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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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