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48-50 (소 금)
막 9:48-50 (소 금)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9장 48-50절
제목 : 소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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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12-28 13:12
소금
2008년 12월 28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9:48-50
(막 9:48)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우리가 놓여 있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안다는 것은 ‘죽음 사건’으로 인하여 경계선이 그어져야 가능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에서는, 사도란 직책은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살며 만물의 찌꺼기 대접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죽음 사건으로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지난 번에 지옥 이야기했습니다. 지옥에서 고통과 저주를 제공하는 모든 장치는, 예를 들면 불 같은 겁니다. 이 장치를 통해 고통을 받을 대상자를 예수님은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한 표현입니다. 즉 소금 같은 존재가 지옥에서 마치 소금이 불에 볶이듯이 볶이면서 지독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금이 무엇이냐 하는 점은 어느 누구도 다 압니다. 곧 ‘개별자’입니다. 옛날 구약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볼 때에 집단적으로 한 사람 보듯이 다루어오셨습니다. 결코 개별자나 단독자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혹시 어떤 특정 인간을 따로 떼내어 다루실 때에도 어디까지나 전체 이스라엘에 해악을 지켰다든지 아니면 반대로 그 도움을 주었다든지 하는 경우에만 부각시켰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골리앗을 혼자 나가서 쳐 부순 것은 다윗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 전체 이스라엘과의 관련성을 지어서 다윗 개인의 입장을 소개한 것이고, 또한 아간이라는 작자가 몰래 도적질을 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이성 전쟁에서 패배하게 한 경우를 끄집어내는 것도 아간과 전체 이스라엘의 관련성 속에서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고린도교회에서 몇몇 사람을 하나님께서 치셔서 죽이신 것도 개인적인 가치가 아니라 전체 교회를 고려한 조치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 삽비아 부부 동반 죽음 사건도 교회가 진정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결코 개별자 그 자체를 다루신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신세입니다. 이 지상과 에덴동산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나무’가 여기에는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실은 모두가 태어나면서 죽은 자들입니다. 죽은 채로 사업하고 죽은 채로 농사짓고 운동하고 연예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죽은 자로서 증권에 대박 터뜨리는 겁니다. 이 때 적절한 비유가 바로 소금입니다. 소금이란 알갱이 하나하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소금이 당하는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적 행위의 결과로 당하는 겁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인간은 소금을 보았다면 그것은 개별자 입장에서 다루었다는 것이요 이는 곧 전체에 대해서 그 어떤 가치를 줄 수 없음이 최종 확정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소금으로 표현된다는 것 자체가 지옥에서 최종 밝혀질 의미입니다. 그 의미를 예수님을 지금 미리 제자들에게 알려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금, 곧 저주받아 마땅한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로 통하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전제를 예수님께서 먼저 깔아두시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반응을 고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심란하겠습니까. 즉 “너 소금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곧 “너 지옥에서 불의 심판을 실컷 맛봐야 될 자야”라는 말씀과 동일한 말씀으로 제자들에게 당연히 들려오는 겁니다. 또한 그래야 합니다.
제자들은 지옥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쉽게 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소금이라고 불리우면 그것으로 그 인간이 꼭 나쁜 인간이라고만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점이 자연적으로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치 말씀을 다 끝맺지 않았다는 것이 이어가십니다. “소금이 마냥 나쁜 것 만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소금이란 옛적부터 택한 백성을 거룩케 하기 위해 동원되고 뿌려지는 요소가 소금입니다. 소금이 부패를 막는 방부제 기능이 있었어?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리 강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사생활 요령을 강의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소금의 맛을 거론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지시려는 십자가가 바로 ‘소금 언약’으로 대변되는 그 언약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역대하 13:5에서 아비야라는 남쪽 왕이 여로보암이라는 북쪽 왕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참된 나라의 정통성을 잇는 것은 오로지 자기 나라인 남쪽 유다 나라 뿐임을 외칩니다. 그 연설 가운데 ‘소금 언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소금 언약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된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실 때에 한 개인을 다루시는 것처럼 표현하시는데 에스겔 16:4에 보면,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기 백성이 태어날 때에 그 거룩과 정결을 영원토록 책임지고 지켜내었다는 표시로 탯줄을 끊고서는 소금을 뿌리는 것이 옳다는 겁니다. 그런데 처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손 대기 전에는 이러한 영원한 거룩을 보장해 줄 그 어떤 조치도 해주는 이가 없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씀이냐 하며는, 애굽에서 나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추가적인 손질을 가해야 하는데 그 손질에 바로 소금이 주입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소금 손질이 어떤 식으로 투입됩니까? 레위기 2:13에 보면,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8:19에 보면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소금이 쳐진 제물이 곧 이스라엘 자체를 대변합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계속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대표적 표식이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거룩됨을 알려주는 표시가 피와 기름이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이 피와 기름의 원칙을 영원히 보장한다는 뜻에 주어지는 것이 소금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금언약입니다.
개별적인 소금이 전체 거룩에 참여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도 바울이 “나는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달렸다”는 십자가 해석은 옳은 것입니다. 영원한 소금 언약 안에서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일생을 통해서 피와 기름을 내시게 됩니다. 즉 다수를 하나로 모아서 같은 거룩으로 취급하는 요소로서 ‘영원한 소금 언약’이 그동안 진행되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금의 최종 의미는 지옥에서 밝혀집니다. 개별자에 대한 지독한 저주성, 이것이 소금이 지닌 의미요 맛입니다. 이것이 지옥 바깥에서는 짠 맛이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 속에는 지옥의 호된 맛이 들어있습니다.
지금 제자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누가 더 높으냐 논쟁이 일어난 겁니다. 이 논쟁을 종식시키고 진정한 거룩한 백성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알게 하려면, 논쟁하기 위해 주입되는 개별성 가치의 무서운 점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각시키시는 겁니다. 즉 “그토록 개별적 가치를 포기하기 싫으냐? 그렇다면 지옥에서 영원히 불의 고통을 받는 그들이 누군지 알아? 그것이 바로 개별적 가치를 고수하는 작자들이야”라는 겁니다. 이것을 한 단어인 바로 ‘소금’이라고 표현하신 겁니다.
서로 잘났다고 논쟁하는 그 현장을 졸지에 지옥의 현장으로 만드는 개념으로서 적절하다”는 겁니다. 서로 잘났다고 우기는 그 모습이 바로 서로를 볼 때 지옥에서 개별적으로 저주받는 소금의 모습임을 양쪽과 인정한다면 논쟁 자체가 참으로 무의미한 것임을 알게 되면서 지옥이라는 영원한 언약 완성 상태 앞에서 서로가 화목하게 된다는 겁니다.
소금이란 결코 세상 변화나 개혁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지옥같은 세상에서 마땅히 지옥갈 자들 밖에 없는 인간들 속에서도 자신이 소금임을 아는 특별한 구원받은 백성이 등장하고 있음을 증거케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소금의 영원성이 곧 지옥의 영원성임을 알고 우리 뇌리에 영원히 저주받을 자가 우리였음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