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을 위한 비거룩 제거
31 거룩을 위한 비거룩 제거 030921지난 주에 레 11장을 통해서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짐승을 통해 피조물의 세계가 예수님을 중심으로 증거하는 거룩과 비거룩을 보여주는 도구로써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다고 배웠습니다. 그 거룩은 윤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분리·구별·차이를 나타내는 구분됨을 의미합니다. 정결한 피조물은 땅과 자꾸 멀어질려는 땅과 구분된 분리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부정한 피조물은 땅과 밀착된 흙과 육과 하나될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도구로써 한쪽은 거룩을 향한 또 한쪽은 비거룩을 향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습니다.정결한 짐승(떠돌이.나그네.땅과 분리)부정한 짐승(죽음.시체.땅을 지향)들짐승1. 발에 굽이 있는 것.1.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굽이 없음)2. 굽이 갈라져 쪽발인 것2. 굽이 있으나 갈라지지 않은( 쪽발이 아닌 것)3. 되새김질을 하는 것3. 되새김질을 못함수중생물1. 지느러미 있는 것1. 지느러미 없는 것2. 비늘이 있는 것2. 비늘이 없는 것날짐승썩은 고기(시체),고인 물(그 내용물) 먹는 것 등등곤충1. 날개가 있고1. 뛰는 다리 없는 것2. 뛰는 다리가 있는 것물1. 샘물, 흐르는 물1. 고인 물. 흐르지 않는 물2. 방축물 웅덩이2. 부정함을 씻기 위해 사용한 물. 도구기타1. 심을 종자(마른 씨앗)1. 물기 젖은 씨앗에 주검이 떨어진 씨앗더 첨가 시킬 부분이 있으니 한번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지금 이스라엘 또한 거룩한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을 증거하는 자들로써 등장합니다. 이 거룩을 유지하는 것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땅의 목적입니다. 즉 다른 모든 땅들도 이 약속의 땅만은 거룩하기를 비거룩의 요소가 다 제거 되기를 저주가 제거되고 거룩이 선포되기를 모든 피조물들과 함께 소망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땅도 하늘에 소망을 두며 약속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고대하는 것입니다. 두 성의 함락을 통해 여리고성은 거룩한 전쟁이 이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아이성 함락은 반대로 이것이 바로 거룩한 전쟁(영의 전쟁)이 무엇인줄 모르고 벌린 "힘의 전쟁. 힘으로 구원. 자력으로 의를 이룰려는 전쟁승리"를 외친 전형적인 육의 전쟁 비거룩한 전쟁임을 보여 줍니다. 또한 아간의 범죄를 통해 인간의 공로(힘.노력.자기 의,성화,자랑,인간믿음)을 내세운 결과인 비거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비거룩인 가나안(함-<노아의 은혜성을 못알아본 죄> 자손)의 죄악을 제거하러 간 이스라엘 자체가 바로 비거룩의 모습을 보여주니 결국 전쟁은 가나안과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비거룩과 용사되신 하나님과의 싸움이 된 내부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즉 소속으로 인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가나안의 사고방식 함의 사고방식을 여전히 간직하는 자는 비거룩으로 간주하여 제거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열심히 바로 약속의 땅에서 구현 된다는 것입니다.이제 여호수아는 태양에게 달에게 명령함으로써 거룩한 전쟁은 세상의 전쟁과 다르게 죄를 겨냥한 전쟁임을 보여주면서 반드시 죄를 제거하고 비거룩을 제거하고 거룩만이 선포되고 그 거룩으로 안식을 누리는 약속이 성취되는 거룩이 유지되는, 약속의 땅이 약속의 땅 다운 약속이 성취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윤리적인 죄가 아니라 노아가 선물 받은 은혜를 못알아본 함이 그 은혜를 못알아본 그 자체가 죄이듯, 거룩 또한 바로 구분된자 노아 구별된자 노아를 못알아본 그래서 그 은혜에 동참치 못하는 그 자체가 비거룩이다는 것입니다. 즉, 방향성입니다.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 되었기에 여째든 저쨋든 간에 생명책이 그들을 하늘로 당기고, 방향성. 땅 흙에서 낫기에 흙으로 돌아가는 당연함을 아무리 하늘로 향할려고 해도 생명책에서 멸했기에 그들은 땅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그것이 주님의 영광임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여호와의 열심 하나님이 직접 이루시는 거룩한 전쟁의 승리입니다.(시 69:26) 『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시 69:27)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시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바로 이런 찬양은 동일하게 한나의 노래, 마리아의 노래에서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거룩한 전쟁을 직접 수행하시는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부른 찬양이기 때문입니다. 한나와 마리아가 기도하고 부르는 찬양의 내용 속에서 구원을 바라보는 시각이 오늘날 교회가 말하는 구원과 전혀 다름을 알수 있습니다 즉 거룩한 전쟁을 염두하고 거룩한 전쟁이 무엇인지 제대로 봤고 그 전쟁을 직접 용사 되시어 수행하시는 주님의 의가 누구를 겨냥하며 싸우는지 제대로 봤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를 모르는 이스라엘 마저도 용사 되신 주님의 전쟁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한나가 누구에게서 핍박 받고 고난을 받는가 하면 바로 이스라엘 속에서 유대인 속에서 멸시당하는 자로써 똑같이 예수님도 바로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멸시받는 고난의 종으로 오심을 미리 앞당겨 보여주는 주님의 의에 참여자로 나타나고 그들의 찬양내용이 그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삼상 2장 눅 1장 물론 시므온 선지자의 찬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알아봤습니다. 어떤자로써요? 이스라엘의 흥함과 패함을 가르는 비방받는 멸시받는 표적으로써요. (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결국 죄란 거룩을 못알아보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즉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거룩한 전쟁에 참여치 않는,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님의 열심에 동참치 않는, 십자가의 공로, 십자가의 지혜, 십자가의 용서를 거부하는 것을 말하고, 거룩이란 땅에서 분리된, 죄에서 분리된, 구별된, 찜 당한 하늘에 속한, 더 이상 땅에 미련을 두지 않는 하늘에 소망을 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모든 것을 건 기생 라합을 거룩이라 합니다.(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땅도 이 죄악에서 벗어나고파 하나님의 약속이 어서 성취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비거룩이 어서 제거 되기를 땅도 태양도 달도 결국 그동안 가나안의 죄악에 몸서리 칠정도로 싫어하는, 그들의 심판이 어서 속히 이루어지길 기다려왔듯, 기생 라합 또한 애굽에서 행하신 여호와의 구원의 일을 놀라워하며 그렇게 놀라우신 여호와를 고대하고 고대하여 영접했듯, 이스라엘 또한 이 기생 라합의 마음과 같은 주님의 거룩함을 눈치채고 알아봤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알지 못하고 눈이 어두운 자는 이스라엘 이었습니다.이제 여호수아서를 맺으면서 정작 믿을려면 이래 믿어라 누구처럼? 갈렙처럼, 기생 라합처럼. 왜?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기에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 낫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너무 너무 아쉽게도 정작 자기 백성은 영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여호수아서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마지막으로 땅분배를 통해( 중부-여리고, 아이 남부 - 기브온, 벧흐론 북부 - 메롬 전선의 승리로 미리 승리했음으로 여기고) 땅을 각지파에게 나누어 주면서 최종적인 갈렙이 차지할 땅을 마지막으로 땅분배를 통한 정복은 끝납니다. 미리 앞당겨 승리했음을 선언하고 나누어주는 전쟁의 승리한 결과물로써 주어지는 전리품격인 셈이지요. 자 문제는 최종적인 갈렙이 땅을 선물로 받음으로 인해 여호수아의 역할은 끝납니다.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모든 것을 걸었던 자가 어떻게 되는 가를 끝까지 지켜보는 역할인 겁니다. 즉 그것은 바로 갈렙이 믿은 그 약속을 성취하신 주님의 낮아지심 주님의 열심 주님의 거룩하심 주님의 섬기심 만이 갈렙을 갈렙 답게 하신거다는 겁니다. 그 약속의 성취는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루어 짐을 여호수아가 증거하는 겁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아무도 안 믿고 어떤 방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끝까지 넉넉한 승리로 우리에게 선물 주시는 겁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우리는 늘 주님의 방해꾼이었지 전혀 도움 안되는 인생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을 용서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