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대구강의15-인간구원을위한신학4 - 잘린부분
08대구강의15-인간구원을위한신학4 - 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7)
이제 교재 144페이지를 보자.
** 따라서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목회는 우선 교인들로 하여금 안정적인 예배 집행을 기계적으로 수행함으로서 교인들의 정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즉 기계처럼 행동하고 정돈된 각자의 행위에서, 본인들의 신적 질서와 접촉해있다는 환경을 조성하여 신앙적 안심을 제공하는 것이다.
◈ 보다 더 안정적으로 !!
여기서 안정적이라는 것은 기계적이란 의미인데, 즉 특정한 의식과 제도가 고정화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정화된 것을 반복하는 것은 굉장히 쉽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천주교에서 성찬을 하면서 뭐라고 하는가? "이것은 주님의 몸입니다" 라고 하면서 떡을 주고, 또한 "이것은 주님의 피입니다" 라고 하면서 포도주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얼마나 쉽고 안정적이냐는 말이다. 또한 기계적이고 말이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만들어서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냥 기계적으로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것이 안정적이지를 못하고 혼선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 정체성이 그만 깨어지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느낀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신학적으로 정립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그러한 신학에서 의식으로 나아가서, 그렇게 예수님이 그 의식에 박혀있을 때 사람들은 안정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안정적으로 말이다.
◈ 아담한 1층으로 된 벽돌건물이 좋아 !!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이러한 의식으로 인한 안정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까, 전세로 빌린 지하층이나 2층 말고, 교회이름으로 등기가 된 아담한 1층으로 된 공간이 있을 때, 의식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이나 재정적으로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개척교회를 하면서 복음을 전해도 역시 기존의 건물이 있는 예배당으로 간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개척교회를 버리고 다른 개척교회를 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자기 건물이 있는, 그것도 고딕양식으로 된 벽돌건물을 찾아서 말이다.
◈ 인간은 왜 안정적이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데 왜 안정적이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마치 집에서 개를 키울 때 개가 사나우면 키우지를 못하는데, 잡아먹든지 해야지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를 믿는 것이 취미이기 때문에, 취미는 취미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꽁트는 꽁트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고 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취미는 취미일 뿐, 그런 취미가 주업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의사의 경우에 어떠한가? 그 의사는 병원에 가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주업이고, 교회에 가는 것은 취미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렇게 취미생활은 안정적이 되어야지, 그것이 주업을 위협하면 안 되는데, 그러니 안정적인 교회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 취미는 취미일 뿐, 오해하지 말자 ??
바로 그것을 목사가 잘 알기 때문에 그 목사는 어떻게 하는가? 어떻게 해서든 안정적이 되어야 하니, 빚을 내어서라도 안정적으로 자기 건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취미는 취미일 뿐 오해하지 말자" 라고 해서 말이다. 그래서 자기 일이 바쁘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이니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활동하심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히려 예수님은 그렇게 부활해서 돌아다니면 안 되는데, 안정적인 의식과 안정적인 예배당에 마치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앉아서 "불러만 주세요. 시키는 데로 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 안에 곱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은 마치 얌전한 새색시처럼 ??
예수님은 그렇게 예배당 안에 있으면서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하면 들어주면 되지, 괜히 밖으로 나와서 직장에까지 따라오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직장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자기 주업이니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가정의 경우에도 자기가 가장이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든 무엇을 하든 예수님은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집과 예배당은 적당한 간격을 두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물론 자살을 시도해도 섣불리 개입하면 안 되고, 다만 예배당 안에서 용서해주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야 안정적이라는 말이다.
이제 이것만 더하고 마치겠는데, 교재 145페이지를 보자.
** 이처럼 목회자의 본심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싶은 것이다. 정말이지 죽기 싫다. 이대로 굶어죽을 수는 없지는 아니한가. 살고싶은 이 본질에 대해서 이유를 묻지 말라. 지금 살아있으니 더 살고 싶을 뿐이다. 목사도 사람이 아닌가? 어떤 철없는 인간이 다음과 같은 말씀을 가지고 목사에게 들이민다.
(요 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이 글을 쓸 때 제 마음이 참으로 찹찹했는데, 결론은 "목사도 사람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목사도 그야말로 이유 없이 제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들만 고기를 먹고, 목사는 어디 입이 없는가? 고기도 먹을 줄 모르느냐는 말이다.
◈ 혹시 잠자는 공주를 아세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목사님, 그런 것은 이미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다 잠재웠습니다" 라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잠자는 공주'(?) 인데, 그러니 죽을 때까지 수시로 깨어나서 우리를 괴롭힌다는 것이다. 잘 나오던 교인이 갑자가 나오질 않을 때도 깨어나서 괴롭히고 말이다.
그런데 어떤 철없는 인간이 요한복음 12장 25절의 말씀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데,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야말로 철이 없는 인간이 말이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목사는 뭐라고 하는가? 그것은 한 때 이 세상을 훌륭하게 살다가 간, 지금은 계시지 않는 우리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주 훌륭한 교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의 말씀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과거 속에서 그냥 소멸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 오늘날 한국교회는 마음 수련장 !!
그러면 이제 교회는 무엇인가? 요즘 유행하는 일종의 '마음 수련장'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여유가 있으면 교회에 와서 과거에 훌륭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마음을 수련하고, 또 세상에 나가서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수도자가 되는 것인데, 즉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가 바로 이런 식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번식이 되어있는데, 그러니 지금은 전혀 교회가 아니라 '마음 수련장' 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히 맛이 갔는데, 물론 빛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하나님을 도외시하고 말이다.
◈ 그러나, 성령이 임하게 되면 !!
그런데 성령이 임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지금 이 순간이 곧 노아시대와 같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알게 되고, 바로 그러한 곳에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자들인데 말이다. 그런 하나님의 감사하는 것이 바로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주님이 우리의 타인이 아니라, 아예 주님이 우리를 장악하셔서, 우리의 모습이 우리가 지적하고 비판하는 그들과 전혀 다름이 없음을 언제나 깨닫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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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진리를 알게 되면 그 결과로서 신학이 되는 것인가요?
결과가 진리를 앎과 동시에 신학이 팍팍 튀어나오는데, 그러니 신학자들만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교인들도 다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시골교회의 할머니들도 자기 나름대로 신학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성령께서 팍팍 깨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깨면서 수정하고, 또 깨면서 수정하는데,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무엇이 등장하는고 하니까, 진리나 신학이 문제가 아니라, "아, 나는 살고 싶어" 라는 것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인간의 본성이 말이다. 바로 그것이 도출되도록 성령께서 인도하신다는 말이다.
2008,12,01 0시 37분에 마침.
녹매교회에 교인 한 명 늘었다. 띵호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