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로마서 때문에...
요즘은 로마서 때문에...
이름 : 구득영(IP:203.223.97.163)
(롬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오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두어 두신 것은 이해가 되는데,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두었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이왕 가두어두려고 하면 순종함에 가두어 두시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두는 이유가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하라' 라고 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마치 발목을 꽁꽁 묶어놓고는 100미터를 달리라고 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일단 순종치 아니함 가운데 가두어두고는, 그 다음에 긍휼을 베풀어서 순종할 수 있도록 하셨다는 말일까요? 과연 그럴까요?
아무튼 요즘은 이 로마서 때문에 제 몸과 마음에 남아나지 않습니다. 마치 토네이도를 만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이근호(IP:117.♡.145.20)
08-12-22 06:22
공중 권세 잡은 자를 염두애 두고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과 싸우게 됩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노리는 바는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고후 4:4) 개인적인 선행이 아닙니다. 선행이라는 바리새인을 따라갈 위인들이 없습니다. 하지만 공중 권세 잡은 '세상 신'은 그들 바리새인을 통해서 예수님을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 예수님의 살해당했음'이 도리어 이 세상에서 구출되는 복음으로 작용하는 것은 공중 권세잡은 세력들이 인식을 하고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 피를 증거하기 못하고 호릇하게 만들기 위해 다른 것들을 자꾸 섞어넣기를 쉬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복음의 광채(예를 들면 태양의 광채로 인하여 세상 사물 보기가 방해받는 것처럼) 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세상을 달리 봅니다. 즉 궁극적으로 세상이 추구하는 것이 예수님이 죽으심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행위성에 몰두하고 그런 모습이 곧 세상 신의 힘에 의해서 눈과 귀가 멀어버린 영적으로 죽은 상태인 것을 압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구원이란 구원받는 개인이 나서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