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41-44절 제목 : 꺼지지 않는 불
막 9:41-44 (꺼지지 않는 불)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9장 41-44절
제목 : 꺼지지 않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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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12-21 13:40
꺼지지 않는 불
2008년 12월 21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9:41-48
(막 9:41, 개역)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막 9:42, 개역)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막 9:43, 개역)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5, 개역)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7, 개역)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8, 개역)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참으로 참혹하고 끔찍하게 들리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려면 우리는 항시 전기톱과 망치 드라이브, 날카로운 송곳 같은 연장들을 챙기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죄짓었다고 여기는 부위를 사정없이 내리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부분이라도 꺼지지 않는 불이 피어나는 지옥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자르고 또 잘라도 계속 되살아나는 것은 죄입니다. 따라서 이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것은 실은 우리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던져준 모든 말씀의 해설판은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처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제 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천국과 지옥은 우리가 골라 잡을 수 있는 대상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천국이냐 지옥이냐를 새삼 고를 처지가 못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취지는, 천국은 고사하고 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겁니다. 지옥만이 현 인간의 미래상입니다.
왜 우리 인간에게 지옥만이 갈 길일까요? 그것은 우리 인간들은 자아에 의한 이미지를 따로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염두에 두신 그 인간형에서 벌써 이탈해버렸습니다. 자기를 위한 자아로서 굳혀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어떤 아내도 남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아내가 사랑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 자신이 만들어낸 남편 이미지를 사랑하는 겁니다.
그 이미지와 겹치지 아니하면 잔소리를 해댑니다. 그래서 그 조준성 안에 머물러 있기를 요구하게 되지요. 원래 ‘나’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나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어줍잖게 신의 흉내를 내게 되었습니다.
즉 “나 아무개는 스스로를 위한 나이다. 만약 그 누구라도, 심지어 신이라도 날 건드리면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는 본성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5:20-23에 보면, 예수님을 가지고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왜 유독 예수님만을 두고서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를 겪고 통과한 최초의 인물이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달리 말씀드려서 모든 사람들은 다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박물관에 가보면 고대인들의 모든 생의 작업이 결국 ‘자신의 영원 불멸과 관련된 작업들’이었고 문화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만이 신이기에 신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부활의 열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통과하지 아니하면 진정한 축복의 불멸과 영생은 그 어디에도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십자가 지신 예수님에게 속하지 아니하면 부활이라는 것도 부활이라는 것이 성사되지 아니하면 천국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자아 이미지를 자르고 자르기 위해 “오른손을 잘라라, 오른눈을 빼라”는 끔찍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사도 바울은 이 취지를 다음과 같은 점잖게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예수님과 더불어 장사된 자는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영원히 살리라”고 말입니다.
즉 인간에게 있어 오른손이 하는 것은 왼손이 모르게 되어있지를 않습니다. 오른눈이 본 것에 대해서 왼쪽이 못보았다고 우길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범죄는 끊임없이 자아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오른손과 오른눈을 아낀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즉 어떤 인간이라도 자신의 오른손에 추억이 담겨있고 자신의 오른쪽 눈에서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것을 잘라라고 하시지만 막상 그 오른손을 자른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의 자아 이미지를 스스로 해체시키는 작업에 해당됩니다. 곱고, 좋았고, 아름다웠다는 그 모든 것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본디 원했던 그 인간형이 아니라면 그런 것들이 죄를 끊임없이 생산케 하는 겁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 이러한 잘라냄을 십자가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십자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지난 과거의 아름다웠던 모든 것이 다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받을 만한 죄 그 자체임을 인정한 바가 됩니다. 죄가 나오는 신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불멸을 시도하는 것은 지옥의 실제 모양새를 몰라서 그러합니다.
지옥에서는 자신의 신체만 불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옆에서 끊임없이 말도 다 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요소들로 함께 영원히 소멸됨이 없이 갑니다. 그것이 바로 ‘꺼지지 않는 불길’이요 구더기도 죽지 않고 소금치듯이 고통을 당하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개인적 자아 이미지를 자기에게 소속된 이미지로 바꾸십니다. 이렇게 됩니다. 누가 최종 진정 ‘나’가 되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진정 ‘나’가 되고 나의 나됨은 오로지 ‘주님의 것’으로만 나가 되는 법입니다. 그 작업에 십자가가 동원됩니다. 십자가는 그냥 재봉 바늘이 아닙니다. 주사바늘입니다.
그 찌름의 과정에서 부활의 용액이 주입됩니다. 요한복음 11:25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홀로 있지 아니합니다.
세상에서는 부활은 좋아해도 십자가는 싫어합니다. 즉 예수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자아가 부정당하기에 싫다는 겁니다. 하지만 성령이 오시게 되면 십자가 마음이 그 사람에게 임하게 되고 그 때부터 그 사람은 자신의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속됨을 자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 해서 물 한 그릇 대접하면 그 행위를 예수님이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 자신부터 그리스도의 속해있음을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이미지가 부셔지는 즐거움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